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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external/www.greatopen.net/200703_12002.jpg일상 생활에서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는 세종대왕. 그래서 만 원짜리 화폐를 달리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존경하는 역사적인 인물로 설문조사를 하면 대부분의 경우 이순신 장군 아니면 세종대왕이 1위를 하며 한국사의 군주들 중에서도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더불어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또한, 이순신 장군과 함께 한국에서 제일 많이 동상이 세워진 사람이다. 서울에만 해도 덕수궁, 여의도, 그리고 광화문광장까지 3개의 큰 동상이 있으며 하다못해 전국 각지의 초등학교에 세워진 동상 삼대장 중 하나가 세종대왕의 동상이다. 나머지 둘은 이순신 장군 동상, 그리고 단군 동상.
한국 역사에 대표적인 성군이자 한반도에 세워진 역대 국가 군주들 중 광개토 대왕과 함께 가장 자주적이며 필요할 때는 무력도 과시하는 정책 덕에 그런게 있지만, 언어(및 글)라고 하는 민족의 정체성에 매우 핵심적인 인물이다보니 더더욱 추앙받으며 대중매체에서도 세종대왕은 절대적인 선이다. 때문에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한국 국민들 입장에서 한국사의 국왕들을 나름대로 존중하더라도 굳이 높임 표현을 쓰지 않는 일이 많지만, 유독 세종만큼은 세종대왕으로 칭하는 것처럼 높임법을 쓰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세종께서"라고 검색하면 현대인이 현대인에게 쓴 글도 많이 보이지만 저 자리에 다른 왕을 집어넣으면 왕조 실록 풍으로 쓰는 글이 대다수인 편이다.
광화문광장의 동상의 밑에는 세종대왕 관련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여기에는 세종대왕의 개인 프로필도 적혀 있는데 여기에 세종의 취미가 공부라고 적혀 있다. 사실이다. 경연에서 신하들이 빌빌거리는 장면이 나올 정도 이같은 모습은 세종대왕 외에 태종, 정조 등 아주 적다.
그만큼 한국인들에게 지금까지도 시대를 앞선 먼치킨급으로 존경받고 있고, '세종대로', '세종대왕급 구축함' 등 세종대왕이 들어간 명칭도 많다. 10,000원권 지폐에 실린 인물도 세종대왕이니 거의 매일 이분의 얼굴을 보고 살고 있는 셈. 인천국제공항의 원래 이름도 '세종국제공항'으로 계획되었으나 인천광역시는 자신들의 지명이 아니었기에 극렬한 반발로 무산되었다. 그리고 이분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자 대한민국 해군 최초의 이지스함에도 명명되었다. 함명은 세종대왕함. 이지스함이나 항공모함 정도의 함정에 이분 아니면 충무공 이순신 밖에 어울릴 만한 이름이 또 없기도 하고. 심지어 세종특별자치시의 이름으로 세종대왕의 시호가 들어가기도 했다.[1] 심지어 영릉의 소재지인 여주시 능서면의 경우 2021년 연말 이후 세종대왕면으로 개칭했을 정도다.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 각국의 문맹 퇴치에 공로가 있는 개인이나 단체에 주는 상'이 바로 '세종대왕상'. 폴란드에는 '세종대왕 고등학교'가 있었다. 세종대왕상은 한국 정부가 출연한 기금[2]으로 운영되는 상이고, 2014년 현재, 세종대왕 고등학교는 재정 문제로 폐교되었다고 한다.
스승의 날인 5월 15일은 바로 세종대왕의 탄신일이다. '한민족의 큰 스승'이라는 의미로 이날로 정한 것. 대만도 비슷하게 공자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로는 한국 인터넷상에서 "신하들을 엄청 부려먹는 악덕 상사" 이미지가 유머 컨셉으로 퍼지고 있다. 세종대왕 밑에 있던 신하들 입장에서야 죽을 노릇이지만[3] 세종 시절은 태평성대의 대명사니, "윗사람이 고생해야 아랫사람들이 편하다."라는 말의 실례인 셈이다. 또한 세종이 육식을 즐겼고 비만한 체형이었을 것이라는 유력한 설이 널리 알려짐에 따라 이전의 창작물에 비해 고증을 위해 세종의 외모를 더 통통하고 후덕하게 묘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어린이 위인전 '생각쟁이 뚱보 세종'에서 고기를 좋아하는 뚱뚱한 체형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아예 고기를 씹다가 한글창제의 원리를 깨달았다는 내용이다(...)
성군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정치 암투나 전쟁이 좋은 소재가 되곤 하는 사극에서 중심 인물로 등장한 적은 많지 않다. 그나마 아버지 태종이나 할아버지 태조가 사극으로 만들기 좋은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 보니 조연으로나마 자주 나왔던 편. 그러나 21세기 이후 대왕 세종처럼 세종을 다루는 사극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주연으로도 나오기 시작했다. 보통은 15세기 조선 군주가 아니라 백성을 우주로 여기는 고금에 없는 초월적인 군주상으로 그려지는 게 특징이며 완벽초인에 백성과 나라 걱정에 여념이 없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실록의 완역이 이루어지며 실록의 기록도 반영된 최근 사극에서는 왕위에 대한 욕심없이 학문을 좋아한 평범한 왕자였으나 큰 형이던 양녕대군에게 세자 자리를 양보를 당하던 것으로 묘사되던 예전과는 달리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면서도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양녕대군과의 대립을 통해 세자 자리 및 왕위에 대한 야심까지 가진 유능한 젊은 야심가로 묘사되기도 한다.
아버지 태종을 대하는 면에서도 꽤나 입장이 달라지는데 1990년대와 2000년대는 태종에게 꼼짝못하는 착한 아들로 그려지는 모습이 강했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아버지를 공경하면서도 일부 정책과 관련해서는 아버지와 대립하는 모습이 많다. 특히나 심온의 사사와 관련해서 아무래도 자신의 아내인 소헌왕후가 연관된 문제이다보니 아버지와 꽤나 대립한다. 더 심하게는 아예 강력한 왕권과 잔혹할 정도의 권모술수를 기반으로 한 태종의 정치 방향과, 상호 존중 및 권력의 조화를 기반으로 한 세종의 방향을 전면으로 대립시키고 태종이 세종의 모습을 '나약해빠졌다','군주로서 이런 잔인함은 불가피하다'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실제 역사와는 많이 다른 부분인데 창작물에서 두 사람의 대립 구도를 허구로 만들어서 극적 긴장감을 만들기 위한 시도이다. 왕자 시절은 물론이고 세종이 왕위에 즉위한 뒤에도 세종과 태종은 사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책적으로도 대립한 적이 전혀 없었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을 진심으로 따랐으며 태종 역시 세종을 입이 닳도록 칭찬하며 크게 아꼈다. 심온 숙청에 대해서도 후대의 연구에 따르면 세종 본인 역시 외척의 입김이 강해지기 전에 숙청의 필요성 자체는 공감했다는게 정설이다. 앞서 말한 정치 방향의 대립도 실제로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태종은 자식들이 자신처럼 가족들까지 처단하며 숙청을 벌이는 군주가 될까봐 매우 걱정하고 수시로 이를 상기시켰다.
2. 소설
-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에서는 세종대왕의 치세로 시작한다. 세종 15년에 홍길동의 아버지인 홍 판서가 첩 춘섬과 동침해서 낳았다는 설정. 다만 홍길동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기를 계산하면 세종 시기를 벗어난다. 또한 시작부터 세종대왕 시대를 '사방에 일이 없고 도적이 없으며 시화연풍하여 나라가 태평하더라'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허균은 딱히 세종대왕을 비판할 생각은 없고 단지 과거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한 단순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홍길동전에서 나타나는 적서차별의 폐단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끌어다 쓴 설정이라는 해석도 있다. 즉, 허균을 비롯한 당대 조선인이 생각하는 최전성기인 세종대왕 시대에도 적서 차별만은 어쩔 수 없었음을 주장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 박종화의 <세종대왕>도 나름대로 수작이다. 다만 이방원과 정도전이 부정적으로 나오고 양녕대군이 미화되어 21세기 독자의 관점으로 보면 역사왜곡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의 국역과 접근성 강화 이전에 나온 작품인 걸 유념해야 한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용의 눈물>이다.
- 스타트렉 시리즈의 작가 중 1명인 조 메노스키(Joe Menosky)가 세종의 한글 창제 이야기를 다룬 대체역사소설을 집필, 출간했다. 제목은 <킹세종 더그레이트>[4]인데 표지에는 ‘킹sㅔ종 더그레이트’로 적혀 있다. 원래는 4시간 분량의 미니시리즈를 생각하고 집필했지만, 출판사의 요청으로 소설로 출간했다고 한다. 후에 적절한 파트너가 있으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다.
- 내가 바로 세종대왕의 아들이다에서도 등장. 아들인 주인공의 성장을 흐뭇하게 지켜보면서 본인도 명군이니 만큼 수많은 업적들을 세우게 되고 말년에 상왕으로 물러나 심양 대학을 세운다.
- 내 조선에 세종은 없다에서는 충녕대군 시절의 모습으로 등장. 원 역사와 마찬가지로 천재적인 지능을 보유하여 겨우 몇 개월 만에 사서를 대학까지 외우고 그 주해까지 해석하는 경지에 이르렀으나, 다이어트를 요구하면 그 뛰어난 지능으로 학문의 성취를 위해선 먹어야 한다는 이유를 갖다 붙이는 데 사용한다. 그 정도로 식탐이 많아서 새로운 미식을 경험하고픈 일념 하나로 주인공의 명나라 사행길에 따라가겠다고 어머니 앞에서 드러눕고 생떼를 부릴 정도. 왕위와 세종이라는 묘호는 주인공이 빙의한 형 양녕이 가져갔으나, 황제가 된 형을 끝까지 도우며 진왕으로 봉해지고 많은 발명품들의 특허권을 갖게 된다.
- 카카오페이지 웹소설 신녕궁주전에서는 왕자 시절부터 주인공 아지에게 양육되었으며, 친모인 정비가 큰형님만을 아끼는 탓에 둘째 형과 같이 친모의 애정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온다. 다만 태종은 겉으로는 잘 대해주진 못해도 속으로는 충녕을 가장 사랑하고 있다. 이후 원 역사대로 행보를 밟아 세자가 되고 왕으로 즉위한다. 태종 사후 아지가 출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어머니가 되어주셔서 감사하다 인사를 하고, 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크게 슬퍼하며 국모에 준하는 장례를 치렀다.
- 코락스작가의 죽지 않는 왕-무왕 단종에서는 잔인한 철혈 정복왕으로 언급된다. 정작 소설 내에서 세종대왕이 출연한 적은 한번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시대가 세종대왕 직후인데다 세종대왕의 유훈을 핑계로 제국주의가 탄생한(...) 관계로 강렬한 존재감을 뽐낸다. 참고로 세종대왕은 코락스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역시 등장한 적은 한번도 없지만 계속 정복왕으로 놀림받으며 수시로 언급된다.
자세한 내용은 죽지 않는 왕-무왕 단종/설정 문서의 세종 명황제 부분을참고하십시오.
이후 다른 대체역사소설에도 영향을 끼쳐 세종대왕이 개그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 경제왕 연산군에서는 아예 한 화 전체에 '진격의 세종~정복왕~' 같은 소제목을 붙이고 '조선인들을 남김없이 구축하려고 의지를 불태우는 여진 예거들은 다 죽어나갔다.' 라고 마무리지었다.
3. 드라마
- 1997년 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배우 안재모[8]가 연기했다. 드라마 자체가 태종(扮: 유동근)의 죽음으로 끝났기 때문에 세종의 치적은 대강 그려졌으나 세자 자리를 사양하는 모습이나 심온(扮: 정하완) 사사 이후 소헌왕후(扮: 임서연)를 폐하라는 대신들에게 맞서는 장면 등은 훌륭히 연기했다.
- 2007년 KBS1 〈한국사 傳〉에서는 배우 이승찬이 연기했다.
- 2008년 KBS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는 배우 김상경이 연기했다.[10] 이 사극 자체에도 제법 주목할만한 면도 있었지만 흥행이란 면에서는 그렇게 잘 나간 편은 아니었다. 다만 〈대왕 세종〉의 경우 아내인 소헌왕후(扮: 이윤지)와의 관계와 적장녀(嫡長女) 정소공주(扮: 주아름)와의 이야기와 세자와의 갈등 등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점도 많았다.
- 2011년 SBS 대기획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젊은 시절에는 배우 송중기, 성인 배역은 배우 한석규가 연기했다. 이제까지의 세종대왕의 모습과는 달리 이 드라마에서는 성질급한 욕쟁이. 한석규가 처음 등장하자마자 "하례는 지랄!", "지랄하고 자빠졌네!"라는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말을 구사하면서 등장했으며 '젠장'이나 '우라질' 등의 욕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왕으로 등장한다. 역사적인 면모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세종대왕의 이미지와는 달리 개성적인 캐릭터를 잘 구축해냈다.[11] 자세한 것은 이도(용비어천가 시리즈) 참고.
- 2021년 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는 배우 김민기가 연기했다. 이전 매체들에서 왕위를 생각 안 하던 충녕대군이 형 양녕대군의 비행 혹은 양보로 반쯤 떠밀려 왕이 되는 것과는 달리, 실록의 묘사에 충실하게 왕위에 야심을 가져서 어린 시절부터 관심을 드러내며 성년이 된 후로는 세자인 큰형과 본격 대립하는 것으로 나온다. 자세한 건 세종(태종 이방원) 문서 참조.
4. 영화
- 1962년 개봉한 영화 〈주유천하〉에서는 배우 김운하가 연기했다.
- 1964년 개봉한 영화 〈세종대왕〉에서는 배우 최남현이 연기했다
- 1978년 개봉한 영화 〈세종대왕〉에서는 배우 신성일이 연기했다.
- 2012년 8월 개봉한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는 배우 주지훈이 연기했다. 이 작품에서의 세종은 그저 고기를 좋아하고 책에만 파묻혀 살았으나 성격이 소심하여 왕위를 양도받는 것을 꺼리는 캐릭터로 나오고 자신을 닮은 거지와 역할을 바꿔서 살아가게 되나 거지로 다니면서 백성들의 고뇌와 고난을 함께 하면서 결국은 성군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 2019년 7월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에서는 배우 송강호가 연기했다. 〈나랏말싸미〉에서는 세종 본인의 업적인 훈민정음 창제가 일개 승려가 주도한 것으로 묘사되며 승려는 물론 신하들에게도 무시를 당하는 유약한 군주로 묘사되어 큰 비판을 받았다.
- 2019년 12월 개봉한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는 배우 한석규가 연기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의 세종과는 전혀 다르면서도 비슷한 이미지로 등장했다. 작중 장영실(최민식 분)과의 브로맨스 장면은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과 비슷하게 인간적이라면, 명나라에 아부하는 신하들을 추궁하는 장면들은 카리스마와 함께 진정한 왕의 이미지가 돋보이는 편.
- 2023년 8월 개봉한 영화 〈연악: 나의 운명〉에서는 배우 손건우가 연기했다. 박연이 주인공인 작품인 만큼 이 작품에서의 세종은 다른 행적보다 음악 관련 행적이 강조되었으나, 사대주의적인 신하들에 맞서 조선의 대명자주성에 대해 설파하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세종의 이미지도 볼 수 있다. 또한 음악 관련 영화인만큼, 박연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박연의 연주를 듣고 새 황종율관 제작이 성공했다는 것을 곧바로 감지하며, 직접 시범 연주까지 해보는[15] '절대음감이고 음잘알이었던' 기존의 사극에서 잘 다루지 않은 세종의 면모를 보여준다.
5. 애니메이션
5.1. 한국사 대모험
자세한 내용은 세종(한국사 대모험) 문서 참고하십시오.6. 게임
- <문명 6>에서는 선덕여왕에 밀려 등장하지 못했었으나, DLC인 리더 패스를 통해 등장이 확정되었다.
공개된 사진이 문명 5의 표준영정 닮은 모습이 아니라 건장하고 체구가 큰 모습으로 재현되어 드디어 고기덕후 세종대왕이 고증되었다는 역덕후들의 농담이 쏟아졌다.
- Paradox Interactive가 제작한 <Europa Universalis III>에서는 행정, 외교, 군사 순으로 6.4.3이라는 낮은 그 자체인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참고로 평균이 5.5.5이고 만렙이 9.9.9이다. 그러나 후속작인 <Europa Universalis IV>에서는 6.6.6이 만점으로 뒤바뀐 상황에서 6.6.5으로 능력치가 대폭 향상되었다. 전작의 능력치로 치환하면 9.9.8인 셈. 이런 이유로 첫 시나리오에서 게임을 시작하면 의외로 AI 조선이 커서 만주와 일본을 집어삼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대부분 세종이 오래 살면 기술 차이로 이렇게 된다. 사실 조선이 세종과 이순신에 모든 스탯을 몰아 받았기 때문에 이후 모든 시나리오에서 왕의 능력치가 좋지 않다. 6.6.5의 능력치로 인해 당대 조선이 AI의 동아시아 국제 질서를 결딴내 버릴 지경으로 커 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에 6.6.5에서 6.5.5로 능력치가 너프되었다.[16] 1444년 게임 시작시, 세종보다 나은 군주는 알바니아의 제르지 카스트라디오티, 6,4,6으로 총합은 동일하지만, 외교보다 군사가 더 중요한 게임특성상 오스만의 메흐메트 2세가 세종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대등한 능력치로 피렌체 공화국의 코시모 디 메디치, 에티오피아의 제라 야코프, 말와 술탄국의 알라 웃딘 마흐무드 샤, 델리 술탄국 로디 왕조의 창건자 바훌 로디 밖에 없다. 소수 국가에서도 세종과 대등한 능력치를 갖는 국가들을 찾아 볼 수 있으나, 체급이 연약해서 군주의 능력치와는 별개로 굉장히 어려운 난이도라 논외로 친다. 상술한 알바니아도 극강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 <월드 오브 다크니스>의 메이지 디 어센션의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하위 룰북인 <소서러 크루세이드>에서는 중세 시대에 활약했던 다이달리안의 위대한 마스터들 중 하나로 언급된다.[17] 그런데 화이트 울프 사에서 착각을 한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그런건지 태종의 업적에 가까운 숭유억불 정책을 써놨다.[18] 이 숭유억불 정책은 당시 동아시아 전역에 퍼져있던 아카식 브라더후드의 영향력을 억제했다고 언급된다.
- <영웅 for Kakao>에서는 마법형 원거리공격 영웅으로 등장한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 <도미네이션즈>에서 유니버시티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자세한 내용은 도미네이션즈/유니버시티/세종대왕 문서 참고하십시오.
- <아라: 히스토리 언톨드>에서 대한민국 문명의 지도자 중 1명으로 등장한다.[19]
- <데블m>에서 대포를 들고 직접 이세계 악마들을 쓸어버리는 캐릭터로 출시되어 유저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7. 뮤지컬
- HJ컬쳐에서 2017년에 트라이아웃 공연을 하고, 2018년에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초연한 뮤지컬 1446. 2019년에 재연하면서 '세종, 1446'으로 공연명이 바뀌었다. 세종의 왕자 시절부터 한글 창제까지의 생애를 집약해놓은 뮤지컬이다. 세종과 더불어 태종, 양녕대군, 소헌왕후, 장영실과 가상 인물인 전해운이 주요 인물이다. 의상 고증은 전혀 안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배경이 고증이 잘 안되곤 하는 조선 초기인 만큼 감안하고 봐야할 것이다.
8. 웹툰
- 네이버 웹툰 《조선왕조실톡》에서는 백성과 고기를 사랑하는 성군으로 나오지만 신하들을 굴리는 악덕상사 모습으로 나온다. 주로 황희와 장영실을 많이 굴린다. 세종(조선왕조실톡) 참조.
-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된 21세기 영웅전에선 저승의 혼란을 틈타 지옥에서 탈출한 영혼들을 잡기 위해 달이라는 여학생과 계약한다.
9. 기타
- 1980년대까지 출판된 위인전에서는 세종이 '문창살'을 보고 한글을 만들었다고 나와 있었다. 문민정부 출범 직전 쯔음, 세종의 한글 창제에 관한 자랑스러움이 사회 전 연령층으로 넓리 소개되며, 위인전 등의 어린이를 대상으로한 제작물에서 그런 언급은 사라져 버렸다. '문창살'을 보고 한글을 만들었다고 가르치는 것은 일제 우민화 교육의 잔재라는 나쁜 평판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가르친 이유는 한글 창제에 관한 과정을 잘 몰라서 였다더라고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 SCP 재단 - SCP-174-KO '세종 Mk.2'라는 유클리드 개체가 존재한다. 실제 세종의 영혼이 깃든 세종대왕 동상인데, 격리 과정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이순신 장군상과 난투극을 벌이는등 약간 정신없는 내용을 가지고있다.
- 외국인 인플루언서 폴서울의 영상에서 최종보스급 존재로 자주 등장한다[20] 폴서울이나 게스트가 김치를 떨어뜨리면 어디서든 불쑥 나타나 맴매를 시전한다. 또한 실제 역사대로 고기덕후 설정도 반영돼서, 고기를 굽다가 세종대왕이 나타나면 불판의 고기를 싹쓸이해간다.(...)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3권 태종 편에서는 대군 시절 세종의 야심을 조명함과 동시에, 형 양녕대군과의 보위 다툼 또한 묘사하였다. 양녕이 세자답지 않은 비행을 저지르는 상황에서 세종은 크게 나서지 않되 왕재에 걸맞은 모습을 은연중에 드러내서 부왕 태종의 마음을 돌리는 형태로 형과의 보위 다툼에서 승리하였다. 용모는 익히 알려진 상상 어진을 반영하여 온후한 인상이나, 자신만만하거나 분노했을 때 눈을 부릅뜬 모습을 보면 확실히 부왕처럼 강한 인상에 때로는 사납기까지 하다.
[1] 세종의 묘호를 따서 명명한 도시인 세종특별자치시의 캐릭터로 젊은세종 충녕이 제작되었고 세종 버스 B0의 현대 일렉시티에 충녕 도색이 적용되었다.[2] 대부분의 유네스코상은 국가나 기업의 지원으로 운영된다.[3]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황희와 조말생. 특히 조말생은 정말 비참한 예시인데, 그나마 세종이 죽기 직전에 겨우 은퇴하고 자연사한 황희와 달리 조말생은 자신이 죽기 직전까지 은퇴를 거부당하고 과로로 죽었다(...)[4] 저자가 한글의 우수성에 감탄해 조사하던 와중에 왕이 창제했다는 사실에 감명받아 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 사실 한 언어의 문자를, 그것도 왕이 만들었다는 사례는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거의 없는 편이다.[5] 2011년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세종의 장인 심온 역.[6] 최만리 역은 〈용의 눈물〉의 정도전으로 유명한 김흥기였다.[7] 1994년 KBS 드라마 〈한명회〉에서는 수양대군 역.[8] 후속작인 〈왕과 비〉에서는 연산군 역, 2014년작 〈정도전〉에서는 이방원 역.[9] 전작 〈용의 눈물〉에서는 세종의 외조부 민제 역.[10] 아역은 이현우.[11] 프리퀄 작품인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남다름이 태종의 아역도 맡은 어린 세종의 모습도 연기했다.[12] 1998년 KBS 드라마 〈왕과 비〉에서는 문종 역.[13] 태종 역을 맡은 사람도 두 드라마 다 배우 김영철이다.[14] 용의 눈물에서는 방간의 아들이자 세종의 사촌형이며, 2차 왕자의 난에 참여했으며 실제 역사에서는 태종 이방원 사후 세종에게 사사를 명받아 죽은 이맹종을 연기했다.[15] 물론 연주 장면은 손싱크 처리되기는 했다.[16] 참고로 작중 이것보다 능력치 총합이 높은 지도자는 앙리 4세ㆍ루이 14세ㆍ악바르 대제ㆍ프리드리히 대왕ㆍ표트르 대제ㆍ구스타브 2세 아돌프ㆍ조지 워싱턴ㆍ제르지 카스트리오티(스칸데르베그)밖에 없다. 이 중 모든 능력치가 최대인 6.6.6을 찍은 인물은 악바르 대제, 구스타브 2세 아돌프, 표트르 대제, 프리드리히 대왕까지 4명뿐이다. 다시 말하면 너프 전의 능력치는 전 세계의 군주들을 통틀어 공동 5위에 달하는 대단한 수준이라는 것이다.[17] 참고로 함께 언급된 인물 중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오더 오브 리즌의 마스터 로널드 호프만 등이 있다. 출처:The Artisans Handbook p69.[18] 물론 세종 때에도 불교 종단을 통폐합하여 선교 양종만 남기고 태종의 폐불 정책 이후 전국에 남아있던 사찰들을 다시 무너뜨려 오직 36개만 남긴 다음 승려들의 도성 내 출입을 금지한 것처럼 억불 정책은 유지되었으나 내불당을 설치하고 승려 신미를 총애하고 승과를 실시하는 등 상당한 친불 정책을 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을 보급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친숙한 부처의 이야기를 책으로 낸 것을 보면 당시 백성들의 불교 신앙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세종은 태종과 달리 불교에 그렇게까지 부정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19] 다른 1인은 유관순이다.[20] 연기자나 인플루언서가 분장한 것이 아니라, 편집할 때 세종대왕 영정의 누끼컷을 가져와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