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6 06:11:18

장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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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외모와 태도3. 생애
3.1. 출생3.2. 기생에서 후궁으로3.3. 악행3.4. 중종반정 이후
4. 대중 매체에서
4.1. 소설4.2. 사극4.3. 영화4.4. 노래

1. 소개

張綠水, ? ~ 1506년

조선 연산군후궁.

2. 외모와 태도

외모 자체는 평범하여 그다지 미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엄청난 동안으로, 30살이 넘은 나이(그 시대에는 중년이다)에도 16세 정도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고. 그리고 연산군이 원하는 것을 잘 알아 비위를 잘 맞추어 주었다고 하는데... 기록을 보면 연산군의 아명을 부르며 때리고 꼬집고 조롱했다고 하니 대체 저게 어떤 식으로 비위를 잘 맞춰준 건지 의문이다(...)[1] 나한테 이런 건 니가 처음이야! 이건가? 그냥 소프트 마조히스트였을수도 있다

연산군마더콤과 애정 갈구의 의혹을 지울 수 없게 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장녹수와 연산군을 다룬 작품에서는 장녹수가 연산군을 어린아이를 대하듯 달래주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 장녹수의 나이가 연산군보다 연상인 점은 확실하므로[2] 대략 짐작이 갈 것이다.

3. 생애

3.1. 출생

실록에 의하면 장녹수의 아버지는 문의현령을 지냈으며 언니는 내수사의 공노비였다. 따라서 얼녀[3]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보로 유명한 제안대군의 가노로 춤과 노래에 능했다고 한다. 시집을 2번 갔던 유부녀에 아이까지 있었다.

3.2. 기생에서 후궁으로

어떤 경우인지 일이 잘 풀려서 연산군의 눈에 띄어 입궐했다. 처음에는 종4품 숙원에 봉해졌고 그 후 종3품 숙용까지 간다.

3.3. 악행

이러한 연산군의 총애를 등에 업고 이런저런 권세를 휘둘렀다. 뇌물을 받고,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하고 등등.

하지만 의외로 장녹수의 악행은 기껏해야 이게 전부다. 뇌물 받고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 축적은 당시 관료들에게도 어느 정도 관행처럼 용인되던 일이었다. 물론 출신을 고려해 보면 엄청난 편이긴 하지만 당시 관료들보다 유독 많이 부정 축재를 한 것도 아니었으며 조정 요직에 자기 일족을 심지도 않았다. 형부 김효손이 당상관에 오르긴 했지만 이것도 거의 연산군 말년에 가서야 이루어진 일이고 제대로 출사한 사람은 이 한 명 뿐이었다. 물론 조정 관료들이 장녹수 집을 짓는 걸 감독하기도 했지만, 이건 연산군이 관료 길들이기 식으로 진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어쨌든 당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 정도만 해도 원성을 사기에는 충분했다.

1504년에는 궁녀 전향, 수근비가 뜬금없이 장형 80대씩을 맞고 유배된 이후 거열형을 받는 사건이 일어난다. 심지어 이들의 분해된 머리와 사지를 순회공연하듯 돌려가며 전시하는 대역죄와 맞먹는 처우를 할 정도였는데도, 도대체 이들이 왜 이런 처우를 받았는지에 대한 전말이 불명확하다. 다만 이들의 미모를 질투한 장녹수의 모함으로 발생했다는 사관의 추측만 전할 뿐이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1505년에는 기생 옥지화가 장녹수의 치마를 밟은 죄로 가혹한 고문을 당한 끝에 효수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할 정도였으니, 이미 연산군이나 장녹수나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연산군의 의중을 잘 알았는지 중종반정 1주일 전인 8월 23일, 잔치를 즐기던 연산군이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아 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人生如草露, 會合不多時)"이라고 시를 읊자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그녀와 전비만이 통곡을 했다고. 이에 연산은 둘을 안으며 "지금 태평한 지 오래이니 어찌 변고가 있겠느냐? 하지만 만약 변고가 있으면 너희는 무사하지 못하겠지."라고 같이 울었다고 한다.

3.4. 중종반정 이후

결국 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이 몰락하자 장녹수는 반정세력에 의해 연산군의 또다른 후궁인 전비, 백견 등과 함께 군기시 앞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그녀의 시신은 처형된 그자리에 그대로 버려졌고 분노한 군중들이 장녹수와 전비 시신의 성기에 돌을 던지면서 "나라의 고혈이 모두 여기로 빨려들어갔다!"라고 외쳤으며 군중들이 던진 돌에 순식간에 돌무덤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실록의 기록은 이렇지만 생식기에 돌을 던지는 게 워낙 충격적이라서, 관련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그냥 시신에 돌을 던졌다고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4. 대중 매체에서

버라이어티한 연산군 시대를 한층 더 드라마틱하게 만든 인물. 연산군을 다루는 사극에서는 반드시 주요인물로 등장할 뿐 아니라 타이틀로 직접 나선 적도 있다. 워낙 캐릭터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연산군의 정실 부인인 폐비 신씨조차 제치고 연산군의 진짜 아내처럼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연산군과 중전과의 관계는 실제로는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연산군 시대가 워낙 사극화가 많이 된 만큼 연산군과 단짝인 장녹수도 사극에 많이 출연했는데 어째서인지 최후를 실록 그대로 그려낸 사극은 단 한 편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정식 절차를 밟아 사형이 집행되고 시체가 거리에 전시된 이후에야 백성들이 몰려들어 돌을 던졌는데 어째 사극에는 장녹수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돌 맞고 죽는 걸로 묘사되거나 아니면 반정군이 그 자리에서 척살해버리는 식으로 처리되는 게 대부분이다. 더불어 위에 언급한 전향, 수근비[4], 옥지화 등의 사건은 극적인 요소가 충분함에도 사극에서 줄줄이 배제되고 있다.

덧붙여 조선왕조실록의 묘사와 달리 사극에서는 항상 연산군 역 배우보다 연하인 미녀 배우가 장녹수를 맡는다.

4.1. 소설

숨덕부의 저자인 오버정우기가 정사와 야사와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서 장녹수의 삶을 녹수별곡이라는 제목으로 그려냈다. #

슈타인호프대체역사소설 '명군이 되어보세!' 에서는 연산군에 빙의한 현대인 주인공이 장녹수와 엮이면 안 좋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초대가수 형식으로 잔치 때 불러서 가무를 감상하기만 하지 궁에 들이거나 가까워지지는 않는다. 녹수는 연산군을 유혹해보려고는 하나 안되자 재위 9년차 쯤에는 거의 포기한 상태. 그래도 여기서는 주인공이 빙의한 덕에 연산군이 폭군 연산이 아닌 명군 무종으로 생을 마쳤고, 녹수도 왕과 특별히 얽힌 점이 없었기 때문에 무종 사후에도 큰 기복 없이 살다가 천수를 누리고 갔을 듯.

4.2. 사극

연산군과 처음 만났을 때의 나이가 30대 초반이며 상당한 동안일 뿐 미인은 분명 아니었다고 기록되었지만, 사극에서는 대체로 20대 후반의 젊은 미녀배우가 장녹수 역을 맡고, 연산군 역은 30대 후반의 남자배우가 맡는다(...)

조선왕조오백년(설중매) 에서는 이미숙이 맡았다.

박지영이 연기한 드라마는 해당 문서

인수대비(드라마)에서는 전소민이 출연하였다.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에서는 이하늬가 출연, 본인의 국악 솜씨를 잘 보여주었다. 본 항목에서 언급된 실제 장녹수에 관하여 기록된 모습들이 극 중에서 구현되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장녹수(이하늬)가 백성들의 돌에 맞아 죽는 것으로 나온다.

7일의 왕비에서는 손은서가 연기하였으며, 본 드라마에서는 임사홍과 함께 진성대군 측을 견제하는 정치적인 인물로 묘사되었다.

4.3. 영화

영화 왕의 남자 에서 배우 강성연이 연기했다. 기자 간담회에서 이준익 감독이 "연산군을 홀린 여자이니 요염하게 등장할 것" 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 중간중간마다 요부 같은 연기를 잘했다는 호평도 있었다.

2014년 민규동이 감독한 간신(영화)에서 뮤지컬 배우이자 가수 차지연이 연기했다. 극중 창소리를 곁들인 나레이션도 이 사람.

4.4. 노래


사극 장녹수의 주제가. 작사 박성훈, 작곡 임택수, 노래 전미경.

사극 사상, 아니 아마도 한국 드라마 사상 가장 큰 인기를 누린 주제가 중 하나일 것이다. 드라마 방영 당시에 그야말로 미칠 듯한 인기를 누렸으며 드라마가 종영한 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노래방 인기가요 리스트 등에 이름을 올릴 정도.[5] 드라마 장녹수를 못 본 사람이라도 웬만하면 이 노래는 알고 있거나 최소한 어디서 들어보긴 했을 것이다.#

애절하면서도 한국 전통적인 멜로디 탓인지, 색소폰 연주자들에게 유독 인기가 많은 곡이다. 나이 지긋한 연주자가 공원이나 지하철 역 등에서 이 곡을 연주하는 광경을 목격한 위키러들도 많을 것이다.


[1] 연산군의 아명은 무작금(無作金) 또는 백돌이라고 하는데 영화 간신에서는 후자를 택했다. 백돌은 야사에는 훗날 연산군의 조카가 되는 인종의 아명으로 나오기도 한다.[2] 연산군이 폐위당하고 곧 사망했을 당시의 나이가 딱 30세였다.[3] 천첩이 낳은 딸[4] 사극 장녹수(드라마), 왕과 비에서는 등장하긴 하는데, 역사와는 달리 장녹수의 모함으로 죽기는 커녕 연산군이 유배될 때도 따라가 임종까지 지키는 역할로 나온다.[5] 확인 결과 2013년 노래방 인기가요 리스트에도 포함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