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3 12:17:11

성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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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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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제 주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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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제 없음
[1]: 주휘잡의 자녀들이 혼인권을 보장받았다는 기록이 있음.
명 황제 }}}}}}}}}}}}
<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명 제8대 황제
헌종 순황제 | 憲宗 純皇帝
파일:Portrait_assis_de_l'empereur_Ming_Xianzong.jpg
출생 1447년 12월 9일
북경 순천부 자금성
(現 베이징시 둥청구 징산첸제4호)
즉위 1464년 2월 28일
북경 순천부 자금성
(現 베이징시 둥청구 징산첸제4호)
사망 1487년 9월 9일 (향년 39세)
북경 순천부 자금성
(現 베이징시 둥청구 징산첸제4호)
능묘 무릉(茂陵)
재위기간 명 황태자
1449년 9월 6일 ~ 1452년 5월 20일
명 기왕(沂王)
1452년 5월 20일 ~ 1457년 3월 30일
명 황태자 (복위)
1457년 3월 30일 ~ 1464년 2월 28일
제8대 황제
1464년 2월 28일 ~ 1487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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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성씨 주(朱)
견준(見濬) → 견심(見深)
부모 부황 영종 예황제
모후 효숙황후
형제자매 9남 10녀 중 장남
배우자 정후 폐후 오씨, 효정순황후
서후 효목황후, 효혜황후
후궁 공숙황귀비
자녀 14남 6녀
작호 황태자(皇太子) → 기왕(沂王)
→ 황태자(皇太子) → 황제(皇帝)
묘호 헌종(憲宗)
시호 계천의도성명인경숭문숙무굉덕성효순황제
(繼天凝道誠明仁敬崇文肅武宏德聖孝純皇帝)
연호 성화(成化, 1465년 ~ 1487년) }}}}}}}}}
1. 개요2. 생애
2.1. 똑똑한 황제였던 시절도 있었다2.2. 말년에 도에 심취하다2.3. 연상을 좋아한 황제
3. 기타4. 대중매체에서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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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명나라의 제8대 황제. 묘호는 헌종(憲宗), 시호는 계천의도성명인경숭문숙무굉덕성효순황제(繼天凝道誠明仁敬崇文肅武宏德聖孝純皇帝). 휘는 주견심(朱見深). 초명은 견준(見濬). 연호는 성화(成化). 정통제의 맏아들. 생모는 귀비 주씨(貴妃 周氏)[1]이다.

토목의 변이 일어나자 황태후의 명에 의해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이후 경태제에 의해 황태자에서 폐위되었다가, 아버지인 정통제가 다시 즉위하자 무사히 황위에 올랐다. 여담으로 폐태자 시절 할아버지 선덕제의 후궁이었던 공신부인 한씨(韓氏)[2]의 보살핌을 받아서# 나중에 황제가 된 후에 그녀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3]

2. 생애

2.1. 똑똑한 황제였던 시절도 있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인 16세에 황위에 오른 헌종은 성격이 차분하고 도량이 넓으며 비교적 충신을 알아보는 황제였다. 성화 3년 헌종의 신임이 두터웠던 좌서자 여순이 상소했다. 헌종이 태자였을 때 폐위당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헌종은 대종 주기옥에게 원한을 품어 황제로 등극한 이상 개인의 원한을 풀기 위해 얼마든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주기옥의 일족을 멸족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피비린내 나는 옥사를 일으키지 않았다. 만약 태자 폐위의 전말을 추궁하면 그 사건과 관련된 수 많은 사람들이 잔혹한 형벌을 피할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오히려 선친 영종에 의해 성려왕이라는 치욕을 당한 주기옥을 다시 황제로 추존하는 은덕을 베풀었다.[4]

또한 헌종은 충직한 신하를 알아보고 중용한 황제였다. 즉위 초기에 비교적 정국의 안정을 이루었던 까닭은 이현, 팽시, 상로 등 충신들을 중용한 덕분이었다. 이현은 선덕 8년에 과거에 급제한 후 정통, 경태, 천순, 성화 연간에 이르는 동안 황제를 바르게 보필하고 국정을 바로잡은 충신이었다. 성화 3년 이현이 59세의 나이에 병사하자 헌종은 그를 태사로 추증하고 문달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애도했다.

또 성화제는 재위 중에 우겸[5]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도 했다.

성화제 시기에는 변방에서 일어난 큼직한 사건 (형양의 반란이나 광서 지역의 반란 등) 몇 개를 제외하면 대체로 평온하였으며, 대체로 원만한 치세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명사에서 평하기를 의 치세가 돌아왔다고 할 정도였으며, 명대 사람들은 성화 - 홍치로 이어지는 시기가 명나라의 마지막 평화였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의 재위 기간은 23년. 끝까지 이대로 갔으면 좋았겠지만 중기 이후에는 실정을 연달아 저지르기 시작했다.

2.2. 말년에 도에 심취하다

성화 연간에 요승, 도사 등 간신배가 불교와 도교를 빙자하여 헌종을 현혹했다. 헌종은 그들에게 법왕, 국사, 선사, 진인 등의 칭호를 하사하고 우대했을 뿐만 아니라 고위관직을 제수하기도 했다. 방술을 배운 이자성은 헌종에게 부적을 바쳐 관직이 예부시랑까지 올랐다. 요승 계효는 어전에서 사술로 헌종의 환심을 사서 국사의 칭호를 제수 받았다. 헌종은 계효가 주청한 일이면 윤허하지 않은 적이 없었을 정도로 그를 절대적으로 총애했다. 헌종의 이목을 즐겁게하고 도술을 부리는 자들은 대부분 법호와 관직을 제수받는 영예를 누렸다. 헌종의 비호 아래 궁궐 곳곳에 사원을 건축하고 국정에 사사건건 간섭했다. 그들의 전횡에 불만을 품은 대신들은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 했지만 헌종은 그들을 옹호하고 전횡을 수수방관했다.

2.3. 연상을 좋아한 황제

또한 성화 연간에 조정의 기강이 문란해진 까닭은 성화제가 가장 사랑한 만귀비(1428~1485)가 실권을 장악하고 조정을 농락했기 때문이다. 성화제는 자신보다 무려 19세 연상의 황귀비인 만정아(萬貞兒)를 총애했던 걸로 유명하다.[6] 당대의 사회상을 생각하면 거의 모자 관계 수준의 나이 차이였고, 실제로 만정아는 성화제를 열 살 때부터 모신 유모 같은 여인이었다.[7]

만정아는 산동성 제성[8] 출신으로 죄를 지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4살 때 입궁하여 궁궐에서 자랐다고 한다.[9] 이렇게 입궁한 만정아는 성화제의 조모 손태후의 시녀로 생활하다가, 동궁의 궁녀로 선발되어 태자 주견심(훗날의 성화제)을 모시게 되었다. 당시 주견심의 생모 주귀비가 생존해 있었지만 황궁의 엄격한 법도는 모자지간의 자유로운 만남과 감정 교류의 장애가 되었고, 이런 엄격한 법도와 어색한 모자 관계 때문에 주견심은 매일 동궁에서 시중을 드는 만정아에게 야릇한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이에 만정아도 태자의 적극적인 구애에 은밀히 화답했다.

만정아는 훗날 황위를 이을 태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신분 상승은 말할 것도 없고, 권력과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만정아는 몸이 뚱뚱하여 태자를 홀릴만한 미색을 갖춘 여자는 아니였지만, 눈치가 빠르고 태자의 비위를 맞추는데 탁월했다고 한다. 결국 이런 만정아의 계략과 태자의 구애가 통하면서 두 사람은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이윽고 마침내 만정아가 오랫동안 공을 들인 연인 주견심이 황위를 계승하여 성화제가 되었다. 일종의 모자 관계 같은 것이 자라면서 애정 관계로 변한 것이라 볼 수 있을 듯.

성화제가 만정아를 얼마나 총애했는지 신분도 낮고 궁녀 출신인 그녀를 황후로 만들려고 온갖 애를 썼을 정도였다. 하지만 신하들과 태후의 반대로 실패해 결국 오씨 성을 가진 여인을 황후로 삼는 대신, 만정아는 후궁의 작위 중 하나인 귀비로 책봉되어 이때부터 만귀비로 불리기 시작했다. 비록 만귀비는 정실 황후보다 아래인 후궁이었지만, 성화제의 총애가 대단했기에 자연스럽게 궁내 실세가 되었다. 만귀비의 권세가 어느 정도였냐면 엄연히 상전이자 내명부의 수장인 황후 앞에서도 싸가지없이 굴었을 정도였다. 결국 이에 빡친 황후 오씨가 만귀비에게 군기 교육을 시도했지만 이를 알고 분노한 성화제에게 주저없이 폐위당하기까지 했다.[10] 이후 새로 들인 왕 황후는 선임의 사례로 배운 게 있었는지 만귀비 앞에서 설설 기었다.

만귀비에게 잘 보여 팔자를 고친 대표적인 사람이 내각의 대학사 만안이다. 만귀비에게 총애를 받는 환관을 매수하여 그녀에게 뇌물 공세를 폈다. 본인의 성씨가 만귀비와 같은 만씨인지라 스스로 그녀의 조카뻘이 된다고 말하며 그녀에게 굽실거렸다. 아무리 대학사보다 귀비의 품계가 더 높다지만 명색이 지체높은 조정 중신에 해당하는 대학사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아부하는 광경이 낯 뜨거웠지만, 만귀비로서는 조정에 자기 심복을 심어 국사에 관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만안이 만귀비의 친척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두 사람은 우연히 성씨만 같을 뿐 친척이 아니었다. 만귀비는 산동성 제성, 만안은 사천성 미주 출신이다. 지금도 산둥성과 쓰촨성은 서로 왕래하기에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곳이다. 만안은 만귀비 일가와 보다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만귀비의 남동생 만통과 친교를 쌓았다. 당시 만통은 금의위지휘로서 황궁의 보위를 책임지고 있는 실권자였다. 만통의 아내 왕씨에게는 어려서 남의 손에 자란 배다른 여동생이 있었다. 만안은 그녀에게 눈독을 들였고 능수능란한 수완을 부려 그녀를 첩으로 맞이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비로소 만귀비 일가의 확실한 구성원이 되었다. 사람들은 만안을 만세각로라고 부르며 비야냥거렸다. 황제의 면전에서 툭하면 만세를 부르는 내각 대학사란 뜻이다.

만귀비도 성화제만큼이나 심각한 인물로 자신이 낳은 아들이 요절하자[11] 후궁들과 궁녀들에게 온갖 패악질을 부리고, 성화제의 다른 후궁이 임신하면 기어이 낙태시키고야 말았다. 가까스로 태어난 황태자 주우극은 모친과 함께 독살당했다. 이때문에 성화제는 말년까지도 후사가 없었고, 환관이 숨겨서 기른 주우탱이 나타나 겨우 후사를 이을 수 있었다.[12][13] 한편 후사에 고민하던 성화제는 주우탱의 존재를 알고 서둘러 황태자 책봉했지만 만귀비가 주우탱의 태아 시절에 낙태 시도와 만귀비 때문에 주우탱이 숨어서 자라야했다는걸 알고도 넘어갔고 만귀비는 그런 황제의 총애를 믿고 무려 황태자가 주우탱마저 죽이려고 들었으나 태후가 맡아 기르는 바람에 실패했다.

황제마저 자기 손아귀에 넣고 조정의 대사를 마음대로 주무른 만귀비는 태자 폐위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크게 낙담했으며, 무엇보다 그녀도 환갑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기력이 급격하게 쇠잔해져 더 이상 태자를 해치기가 힘들어졌다. 그리고 성화 23년 울화병에 시달리다가 그 길로 58세에 사망했다. 성화제는 이를 슬퍼한 나머지 '만귀비가 저승으로 떠났으니 내가 살아 뭐하겠소' 하는 발언을 남기며 시름시름 앓다 결국 같은 해에 죽고야 말았다.[14]

만귀비를 향한 성화제의 사랑이 매우 깊었다는건 그녀가 회임한 다른 후궁을 향한 낙태시도를 일삼고 첫번째 황태자와 그의 모친 현비 백씨까지 독살한 걸로도 모자라, 이후 겨우 본 후사였던 주우탱과 그의 모친 궁녀 기씨까지 독살하려고 시도했음에도 결코 만귀비를 폐위시키거나 처벌시키지 않고 눈감아줬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이유에서든지 군주의 후사를 위협하는 시도를 했다가 끔살당한 이들이 수두룩하다는걸 생각해보면 성화제가 만귀비를 얼마나 봐줬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이 정도 행각이면 만귀비는 다음 황제인 주우탱에게 삼족이 멸문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주우탱은 자신은 물론 친모마저 만귀비에게 여러번 해코지를 당한 전적이 있다. 그러나 대인배인 주우탱은 아버지 성화제를 생각해 만귀비에 관한 일을 불문에 부쳤고, 자신은 아버지와 달리 후궁을 두지 않고 황후에게만 충실하며 내명부에 별다른 분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3. 기타

헌종 치세에 왕직과 양방이 국정을 농단한 대표적인 환관이었다. 그들은 만귀비가 키운 환관으로서 왕직은 성화시절에 공포 정치의 산실이었던 서창의 우두머리였으며 효종 주우탱의 생모 기씨와 마찬가지로 성화 초기에 대등협 전투의 노획물로 끌려와 환관이 된 요족 출신이다. 처음에 황궁의 소화궁에서 만귀비를 섬기는 시종이었다. 위낙 눈치가 빠르고 아부에 능했기 때문에 만귀비의 눈에 쉽게 띄었다. 당시 만귀비는 자신에게 충성을 다할 사당이 필요했다. 그녀의 사조직은 황궁에서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구축되기 시작했다. 왕직은 만귀비의 비호 아래 황제의 말을 관리하는 어마감의 태감으로 승진했다. 직급이 칠품내관에 불과했지만 병부의 일도 맡았으므로 병권에 관여 할수있는 실권자였다. 실제로 그는 북경의 정예부대인 12개 단영의 병사들을 이끌고 반란군 토벌에 나선적이 있었을 정도로 위세가 막강했다. 왕직이 어명을 받들고 변방으로 시찰을 나가면 변방 수비의 책임을 맡고 있는 순무와 도어사들이 성밖 2~3백리 까지 미리 마중나와 멀리서 다가오는 왕직 행렬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은 올렸다. 그가 변방의 관아에 머무르고 있을 때면 관리들이 그를 섬기는 모습이 마치 노예와 같았다.

황명세설신어에 이런 내용이 있다. 왕직이 지방을 시찰할 때마다 만약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소홀히 접대하는 관리가 있다면 그 관리가 쓰고 있는 관모를 가리키면서 "누구의 것이냐?"고 물으며 위세를 부렸는데 "내 덕에 네가 관리가 된게 아니냐"는 일종의 자기 과시이자 '나를 잘 모시지 않으면 언제라도 너의 관모를 벗길 수 있다'는 협박이었다. 한번은 똑같은 질문을 받은 한 현령은 "제가 쓰고 있는 관모는 대장간 골목에서 백은 석냥을 주고 샀습니다"고 대답하여 왕직이 데꿀멍 됐을 뿐 꾸짖지 않았다. 그 성격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또 한번은 그가 강남지방에 시찰을 갔을때 가흥지부 양계종이 아주 청렴한 관리라는 소문을 듣고 일부러 그를 만나러 가 사람들이 양계종이 대단한 인물이라고 말하는데 막상 만나보니 못생긴 사람인 줄 몰랐다고 조롱했다. 모욕을 당한 양계종은 "비록 제 용모가 추하나 신체발부 수지부모이니 아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왕직이 출세를 위해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훼손한 환관임을 지적한 것이다. 얼굴이 홍당무로 변한 왕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후 양계종이 입궐하여 헌종을 배알했다. 왕직은 그를 만나고 싶었지만 만나지 못했다. 하루는 헌종이 왕직에게 짐을 알현한 관리들 가운데 누가 가장 청렴한 사람이냐고 물었는데 왕직은 천하에서 돈을 사랑하지 않은 자는 오직 양계종 한 사람 뿐이라고 답했다. 왕직은 일종의 정보기관인 서창의 수장으로서 반대파를 탄압하고 막대한 재물을 긁어모은 악인이지만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도량이 좁은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훗날 그는 동창제독 상명의 탄핵을 당하고 남경으로 쫒겨났으나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명나라 때 국정을 파탄으로 몰고 간 환관들 중에서는 가장 행복한 인생의 말년을 보낸 인물이다.

양방은 권세가 왕직에게는 미치지 못했지만 재정분야에서 명나라 조정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막대한 이득을 취한 환관이다. 왕직이 권력을 사랑했다면 양방은 금전을 사랑했다. 양방도 헌종의 총애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만귀비의 신임을 얻어야 했다. 그는 만귀비에게 진귀한 보물들을 끊임없이 헌상하여 그녀를 기쁘게 했다. 만귀비의 적극적인 추천 덕분에 헌종의 측근이 된 그는 황실에서 필요한 사치품들은 구입한다는 명목으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재물을 닥치는대로 긁어 모았다. 헌종은 그의 비리를 알고 있었지만 그가 자신의 사욕을 충족시켜 주었고 만귀비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묵인했다.

양방은 또 헌종이 도교와 불교에 탐닉하고 있음을 간파하여 도교 사원이나 불탑 건축에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여 황실의 내탕고를 텅 비게 했다. 양방의 탐욕은 급기야 매관매직으로 발전했다. 그는 이자성, 요승 계효 등과 같은 간신배를 끌어들여 관직을 매매했다. 원래 이자성은 광서성 포정사의 관리였는데 뇌물수뢰죄로 평민으로 강등되었다. 재기의 발판이 필요했던 그는 방중술을 익히고 난 뒤 양방에게 선을 대어 헌종을 알현했다. 헌종은 그가 진상한 최음제를 먹고 쾌락의 도가니에 빠졌다. 계효는 방술을 익혀 돌을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요술을 부려 헌종의 이목을 가렸다. 헌종을 꼬드겨 서시에 거대한 영창사를 건축하면서 거주민 수백 가구를 몰아내고 내탕금 수십만 냥을 낭비했다. 계효의 어머니는 창기였다. 그는 헌종에게 자기 모친의 선행을 기리는 패방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헌종은 두말없이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심지어 헌종은 궁녀들을 계효에게 하사하여 노리개로 가지고 놀게 했다.

양방은 이자성, 계효와 결탁하여 관리의 정상적인 임용 절차가 아닌 성지에 의해 관리를 임용해아 한다고 헌종에게 주청했다. 황제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일이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매관매직에 불과했다. 헌종은 막대한 재물이 굴러들어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어명을 빙자하여 막대한 재물을 받고 임용한 관리가 1,000여 명에 달했다. 당시 그들을 '전봉관'이라고 칭했다. 아무런 공을 세우지 못한 평민도 뇌물 액수에 따라 한 순간에 태상경의 직책까지 승진한 사례가 있었다. 양방은 성화 연간 내내 부귀 영화를 누리다가 효종이 즉위한 이후에야 거세되었다.

조선 중기 채수의 설공찬전에도 등장한다. 자신이 총애하는 신하의 수명을 1년 정도 연장시켜 달라고 애박이란 사람을 보내 염라대왕에게 요청했는데, 염라 대왕이 한 달 이상은 곤란하다고 해도 계속 보채자 결국 화가 난 염라대왕이 "아무리 천자라 해도 사람 살리고 죽이고 하는 건 내 권한인데 어디서 고유 권한 침해냐"며 수명 연장이고 뭐고 없이 당장 그 신하를 잡아오라고 한다. 성화제는 놀라서 본인이 몸소 염라대왕에게 찾아가고, 염라대왕이 앞서 황제가 수명 좀 늘려 달라고 부탁한 그 신하를 잡아다 손을 삶으라고 명령하는 부분에서 소설이 끝난다.[15]

명 황제 중 서출로서 태자를 거쳐 즉위한 첫 황제이다. 이전 황제들은 건문제경태제를 제외하고는 모두 적자였고, 건문제는 적자 없이 죽은 태자 주표의 서장자로서 황태손이 되었으며, 경태제는 토목의 변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즉위하여 태자를 거치지 않고 즉위하였기 때문이다. 토목의 변 와중에 국가 위기 상황에서 비상사태에 대비해 태자는 꼭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급히 태자에 책봉된 것이었지만, 부황인 정통제에게 적자가 태어나지 않아 아무런 논란없이 정상적으로 황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16] 이전 황제인 정통제까지는 대체로 적자가 황위를 계승했지만, 성화제부터는 적자가 태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져 서자가 황위를 계승하는 일이 흔해진다.

아버지인 정통제와 성화제의 어진이나 초상화를 비교해 보면 닮은 것을 넘어 거의 쌍둥이 수준(...)이다.

제후국인 조선과 관련해서 조선이 건주여진 토벌에서 이만주를 죽이자 세조를 칭찬하며 후하게 상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17] 하사한 물건이 하도 많아서 세조(조선)가 "우리 나라는 작은 공(功)으로써 천은(天恩)을 우악하게 받으니, 황공하여 몸둘 바가 없다."고 했을 정도였다. 다만 성화제 입장에서 보면 그럴만도 한데 우선 이만주를 죽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시 명나라는 북원 지역과 전쟁을 벌이는 중이었는데 이 때 요동지역이 상대적으로 허술해졌다. 그런데 이만주는 이 틈을 노려 요동 공략에 나섰던 것. 요동의 가치를 감안해보면 잃어선 안 될 땅이니 명나라는 화가 잔뜩 나서 조선에 협공해서 이만주를 잡아죽이자고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그 제안에 조선도 이만주 토벌에 나섰지만 정작 세조는 이미 이만주는 도망쳤을거라며 괜히 먼저 나섰다가 명나라에게 추궁받을 수 있으니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정작 이만주의 근거지로 가니 이만주는 물론 그 일당이 전부 모여 있었기에 너무나 어이없이 이만주 일당을 소탕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러고도 수일이 지났는데도 명나라군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성화제 입장에서는 자국군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조선군이 알아서 이만주에 그 일당까지 잡아죽였으니 고마웠을 것이다.[18]

4. 대중매체에서

서극 감독, 이연걸, 진곤, 계륜미 주연의 <용문비갑(2011)>[19]에서 만귀비와 환관들의 대화로 나오는데 환관들이 황제의 눈과 귀를 가리고 막고 동창이 신하가 황제에게 보낸 상소문을 도중에 빼돌리고 입막음하려다 이연걸이 막고 동창의 수장이 비명횡사했는데도 동창에서 거짓 보고를 하려는 등 막나간다. 복식(후궁 환관)을 보면 고증을 잘한 것으로 보인다.

2016년 드라마 여의담윤현 후반에 잠깐 등장한다.

2016년 드라마 육선문에서 황후에 의해 독살당했다.

2019년 드라마 대명풍화에서 후반에 아기로 잠깐 등장한다. 친모는 영종이 오이라트에서 데려온 여성이다. 성화제가 아기였을 때 경태제가 성화제의 친모에게 역모혐의를 씌워 처형했다.

홍계월전의 배경이 이 인물의 통치 시기이다.

고전소설 설공찬전에서는 아끼는 신하의 수명을 연장시켜달라고 염라대왕에게 요청하나 "1달 이상은 곤란하다"는 답변에도 계속 보채자 결국 화가 난 염라대왕이 "아무리 천자라 해도 사람 살리고 죽이고 하는 건 내 권한인데 어디서 고유권한 침해냐"며 수명 연장이고 뭐고 없이 당장 그 신하를 잡아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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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 · 왕국광 · 양몽룡 · 양외· 이재(李戴) · 조환 · 정계지 해서 · 구순 · 여곤 · 곽정역
227권 「방상붕등전(龐尚鵬等傳)」
방상붕 · 송의망 · 장악 · 이재(李材) · 육수덕 · 소름 · 가삼근 · 이이 · 주홍모 · 소언 · 손유성 · 사걸 · 곽유현 · 만상춘 · 종화민 · 오달가
228권 「위학증등전(魏學曾等傳)」 229권 「유대등전(劉臺等傳)」
위학증 · 이화룡 유대 · 부응정 · 왕용급 · 오중행 · 조용현 · 애목 · 심사효
230권 「채시정등전(蔡時鼎等傳)」 231권 「고헌성등전(顧憲成等傳)」
채시정 · 만국흠 · 요신 · 탕현조 · 녹중립 · 양순 · 강사창 · 마맹정 · 왕약림 고헌성 · 고윤성 · 전일본 · 우공겸 · 사맹린 · 설부교 · 안희범 · 유원진 · 엽무재
232권 「위윤정등전(魏允貞等傳)」
위윤정 · 왕국 · 여무형 · 이삼재
233권 「강응린등전(姜應麟等傳)」
강응린 · 진등운 · 나대굉 · 이헌가 · 맹양호 · 주유경 · 왕여견 · 왕학증 · 장정관 · 번옥형 · 사정찬 · 양천민 · 하선
234권 「노홍춘등전(盧洪春等傳)」 235권 「왕여훈등전(王汝訓等傳)」
노홍춘 · 이무회 · 이기(李沂) · 낙우인 · 마경륜 · 유강 · 대사형 · 조학정 · 옹헌상 · 서대상 왕여훈 · 여무학 · 장양몽 · 맹일맥 · 하사진 · 왕덕완 · 장윤의 · 추유연
236권 「이식등전(李植等傳)」 237권 「부호례등전(傅好禮等傳)」
이식 · 강동지 · 탕조경 · 김사형 · 왕원한 · 손진기 · 정원천 · 이박 · 하가우 부호례 · 강지례 · 포견첩 · 전대익 · 풍응경 · 오종요 · 오보수 · 화옥
238권 「이성량등전(李成梁等傳)」 239권 「장신등전(張臣等傳)」
이성량 · 마귀 장신 · 동일원 · 두동 · 소여훈 · 달운 · 관충병 · 시국주 · 진백우
240권 「엽향고등전(葉向高等傳)」 241권 「주가모등전(周嘉謨等傳)」
엽향고 · 유일경 · 한광 · 주국조 · 하종언 · 손여유 주가모 · 장문달 · 왕응교 · 왕기(王紀) · 손위 · 종우정 · 진도형
242권 「진방첨등전(陳邦瞻等傳)」
진방첨 · 필강무 · 소근고 · 백유 · 정소 · 적봉충 · 홍문형 · 진백우 · 동응거 · 임재 · 주오필 · 장광전
243권 「조남성등전(趙南星等傳)」 244권 「양련등전(楊漣等傳)」
조남성 · 추원표 · 손신행 · 고반룡 · 풍종오 양련 · 좌광두 · 위대중 · 주조서 · 원화중 · 고대장 · 왕지채
245권 「주기원등전(周起元等傳)」 246권 「만조천등전(滿朝薦等傳)」
주기원 · 요창기 · 주순창 · 주종건 · 황존소 · 이응승 · 만경 만조천 · 강병담 · 후진양 · 왕윤성
247권 「유정등전(劉綎等傳)」 248권 「매지환등전(梅之煥等傳)」
유정 · 이응상 · 진린 · 등자룡 · 마공영 매지환 · 유책 · 이약성 · 경여기 · 안계조 · 이계정 · 방진유 · 서종치
249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0권 「손승종전(孫承宗傳)」
주섭원 · 이운 · 왕삼선 · 채복일 손승종
251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2권 「양사창등전(楊嗣昌等傳)」
이표 · 유홍훈 · 전용석 · 성기명 · 하여총 · 서광계 · 문진맹 · 장덕경 · 방악공 양사창 · 오성(吳甡)
253권 「왕응웅등전(王應熊等傳)」 254권 「교윤승등전(喬允升等傳)」
왕응웅 · 장지발 · 설국관 · 정국상 · 진연 · 위조덕 교윤승 · 조우변 · 손거상 · 조광 · 진우정 · 정삼준 · 이일선 · 장위
255권 「유종주등전(劉宗周等傳)」 256권 「최경영등전(崔景榮等傳)」
유종주 · 황도주 최경영 · 황극찬 · 필자엄 · 이장경 · 유지봉
257권 「장학명등전(張鶴鳴等傳)」
장학명 · 동한유 · 조언 · 왕흡 · 양정동 · 웅명우 · 장봉익 · 진신갑 · 풍원표
258권 「허예경등전(許譽卿等傳)」
허예경 · 화윤성 · 위정윤 · 모우건 · 오집어 · 장정신 · 황소걸 · 부조우 · 강채 · 웅개원 · 첨이선 · 탕개원 · 성용 · 진룡정
259권 「양호등전(楊鎬等傳)」
양호 · 원응태 · 웅정필 · 원숭환 · 조광변
260권 「양학등전(楊鶴等傳)」
양학 · 진기유 · 웅문찬 · 연국사 · 정계예 · 정숭검 · 소첩춘 · 여응계 · 고두추 · 장임학
261권 「노상승등전(盧象昇等傳)」 262권 「부종룡전(傅宗龍等傳)」
노상승 · 유지륜 · 구민앙 부종룡 · 왕교년 · 양문악 · 손전정
263권 「송일학등전(宋一鶴等傳)」
송일학 · 풍사공 · 임일서 · 채무덕 · 위경원 · 주지풍 · 진사기 · 용문광 · 유가인 · 유지발
264권 「하봉성등전(賀逢聖等傳)」
하봉성 · 남거익 · 주사박 · 여유기 · 왕가정 · 초원부 · 이몽진 · 송사양 · 마희 · 왕도순 · 전시진
265권 「범경문등전(范景文等傳)」
범경문 · 예원로 · 이방화 · 왕가언 · 맹조상 · 시방요 · 능의거
266권 「마세기등전(馬世奇等傳)」
마세기 · 오인징 · 주봉상 · 유이순 · 왕위(汪偉) · 오감래 · 왕장 · 진량모 · 진순덕 · 신가윤 · 성덕 · 허직 · 김현
267권 「마종빙등전(馬從聘等傳)」 268권 「조문조등전(曹文詔等傳)」
마종빙 · 장백경 · 송공 · 범숙태 · 고명형 · 서견 · 녹선계 조문조 · 주우길 · 황득공
269권 「애만년등전(艾萬年等傳)」
애만년 · 이비 · 양구주 · 진우왕 · 후량계 · 장령 · 맹여호 · 호대위 · 손응원 · 강명무 · 우세위 · 후세록 · 유국능
270권 「마세룡등전(馬世龍等傳)」 271권 「하세현등전(賀世賢等傳)」
마세룡 · 하호신 · 심유용 · 장가대 · 노흠 · 진양옥 · 용재전 하세현 · 동중규 · 나일관 · 만계 · 조솔교 · 관유현 · 하가강 · 황룡 · 김일관
272권 「김국봉전(金國鳳等傳)」 273권 「좌양옥등전(左良玉等傳)」
김국봉 · 조변교 · 유조기 좌양옥 · 고걸 · 조관
274권 「사가법등전(史可法等傳)」 275권 「장신언등전(張愼言等傳)」
사가법 · 고홍도 · 강왈광 장신언 · 서석기 · 해학룡 · 고탁 · 좌무제 · 기표가
276권 「주대전등전(朱大典等傳)」
주대전 · 장국유 · 장긍당 · 증앵 · 주계조 · 여황 · 왕서전 · 노진비 · 하개 · 웅여림 · 전숙락 · 심진전
277권 「원계함등전(袁繼鹹等傳)」
원계함 · 김성 · 구조덕 · 심유룡 · 진자룡 · 후동증 · 양문총 · 진잠부 · 심정양 · 임여저 · 정위홍
278권 「양정린등전(楊廷麟等傳)」
양정린 · 만원길 · 곽유경 · 첨조항 · 진태래 · 왕양정 · 증형응 · 게중희 · 진자장 · 장가옥 · 진방언 · 소관생
279권 「여대기등전(呂大器等傳)」
여대기 · 문안지 · 번일형 · 오병 · 왕석곤 · 도윤석 · 엄기항 · 주천린 · 장효기 · 양외지 · 오정육
280권 「하등교등전(何騰蛟等傳)」
하등교 · 구식사
281권 「순리전(循吏傳)」
진관 · 방극근 · 오리 · 요흠 · 고두남 · 여언성 · 사성조 · 오상 · 사자양 · 황신중 · 하승 · 패병이 · 유맹옹 · 만관 · 엽종인 · 왕원 · 적부복 · 이신규 · 손호 · 장종련 · 이기(李驥) · 왕영 · 이상 · 조예 · 조등 · 증천 · 범충 · 주제 · 범희정 · 유강 · 단견 · 용사언 · 정적 · 전탁 · 당간 · 탕소은 · 서구사 · 방숭 · 장순 · 진유학
282·283·284권 「유림전(儒林傳)」
범조간 · 사응방 · 왕극관 · 양인(梁寅) · 조방 · 진모 · 설선 · 호거인 · 채청 · 나흠순 · 조단 · 오여필 · 진진성 · 여남 · 소보 · 양렴 · 유관 · 마리 · 위교 · 주영(周瑛) · 반부 · 최선 · 하당 · 당백원 · 황순요 · 진헌장 · 누량 · 하흠 · 진무열 · 담약수 · 추수익 · 전덕홍 · 왕기(王畿) · 구양덕 · 나홍선 · 오제 · 하정인 · 왕시괴 · 허부원 · 우시희 · 등이찬 · 맹화리 · 내여덕 · 등원석 · 공희학 · 안희혜 · 증질수 · 공문례 · 맹희문 · 중어폐 · 주면 · 정접도 · 정극인 · 장문운 · 소계조 · 주천 · 주서(朱墅)
285·286·287·288권 「문원전(文苑傳)」
양유정 · 호한 · 소백형 · 왕면 · 대량 · 위소 · 장이녕 · 조훈 · 서일기 · 조총겸 · 도종의 · 원개 · 고계 · 왕행 · 손분 · 왕몽 · 임홍 · 왕불 · 심도 · 섭대년 · 유부 · 장필 · 장태 · 정민정 · 나기 · 저권 · 이몽양 · 하경명 · 서정경 · 변공 · 고린 · 정선부 · 육심 · 왕정진 · 이렴 · 문징명 · 황좌 · 가유기 · 왕신중 · 고숙사 · 진속 · 전여성 · 황보효 · 모곤 · 사진 · 이반룡 · 왕세정 · 귀유광 · 이유정 · 서위 · 도륭 · 왕치등 · 구구사 · 당시승 · 초횡 · 황휘 · 진인석 · 동기창 · 원굉도 · 왕유검 · 조학전 · 왕지견 · 애남영 · 장부
289·290·291·292·293·294·295권 「충의전(忠義傳)」
화운 · 왕개 · 손염 · 모로 · 왕강 · 왕의(王禕) · 웅정 · 역소종 · 금팽 · 황보빈 · 장영(張瑛) · 왕정 · 만침 · 주헌 · 양충 · 오경 · 곽은 · 손수 · 허규 · 황굉 · 송이방 · 왕면 · 진문시 · 왕부 · 전순 · 주부 · 손당 · 두괴 · 황천 · 왕덕 · 왕일중 · 소몽양 · 장진덕 · 동진륜 · 공만록 · 관양상 · 서조강 · 희문윤 · 주만년 · 장요(張瑤) · 하천구 · 반종안 · 장전 · 하정괴 · 고방좌 · 최유수 · 정국창 · 당환순 · 이헌명 · 장춘 · 염생두 · 왕조곤 · 손사미 · 교약문 · 장병문 · 언윤소 · 길공가 · 형국새 · 장진수 · 등번석 · 장혼방 · 장윤등 · 장광규 · 이중정 · 방국유 · 하승광 · 방유 · 윤몽오 · 노겸 · 공원상 · 왕신 · 사기언 · 양지인 · 왕국훈 · 여홍업 · 장소등 · 왕도(王燾) · 장가징 · 서상경 · 완지전 · 학경춘 · 장극검 · 서세순 · 무대열 · 전조징 · 성이항 · 안일유 · 반홍 · 진예포 · 유진지 · 이승운 · 관영걸 · 장유세 · 왕세수 · 허영희 · 이정좌 · 노세임 · 유인 · 하섭 · 조흥기 · 하통춘 · 진미 · 심길신 · 노학고 · 진만책 · 허문기 · 곽이중 · 최문영 · 서학안 · 풍로운 · 채도헌 · 장붕익 · 유희조 · 왕손란 · 정양주 · 황세청 · 양훤 · 당시명 · 단복흥 · 간인서 · 사오교 · 도임 · 축만령 · 진빈 · 왕징준 · 정태운 · 하복 · 장나준 · 김육동 · 탕문경 · 허담 · 왕교동 · 장계맹 · 유사두 · 왕여정 · 윤신 · 고기훈 · 장요(張耀) · 미수도 · 경정록 · 석상진 · 서도흥 · 유정표
296·297권 「효의전(孝義傳)」
정렴 · 서윤양 · 전영 · 요비 · 구탁 · 최민 · 주완 · 오홍 · 주후 · 유근(劉謹) · 이덕성 · 심덕사 · 사정가 · 권근 · 조신 · 국상 · 왕준(王俊) · 석내 · 사오상 · 주오 · 정영 · 부즙 · 양성장 · 사용 · 하경 · 왕원(王原) · 황새 · 귀월 · 하린 · 손청 · 유헌 · 용사언 · 유자(兪孜) · 최감 · 당엄 · 구서 · 장균 · 왕재복 · 하자효 · 아기 · 조중화 · 왕세명 · 이문영 · 공금 · 양통조 · 장청아
298권 「은일전(隱逸傳)」
장개복 · 예찬 · 서방 · 양항 · 진회(陳洄) · 양인(楊引) · 오해 · 유민 · 양보 · 손일원 · 심주 · 진계유
299권 「방기전(方伎傳)」
활수 · 갈건손 · 여복 · 예유덕 · 주한경 · 왕리 · 주전(周顚) · 장중 · 장삼봉 · 원공 · 대사공 · 성인 · 황보중화 · 동인 · 오걸 · 능운 · 이시진 · 주술학 · 장정상 ,유연연,
300권 「외척전(外戚傳)」
진공 · 마공 · 여본 · 마전 · 장기(張麒) · 호영(胡榮) · 손충 · 오안 · 전귀 · 왕천 · 주능 · 왕진(王鎭) · 만귀 · 소희 · 하유 · 진만언 · 방예 · 진경행 · 이위 · 왕위(王偉) · 정승헌 · 왕승 · 유문병 · 장국기 · 주규
301·302·303권 「열녀전(列女傳)」
정월아 · 제아 · 정금노 · 노가랑 · 탕혜신 · 묘총 · 만의전 · 왕묘봉 · 당귀매 · 양태노 · 정은아 · 두묘선 · 초낭맹 · 호귀정 · 오길고 · 서아장 · 양옥영 · 우봉랑 · 예미옥 · 고형와 · 항숙미
304·305권 「환관전(宦官傳)」
정화 · 김영 · 왕진(王振) · 조길상 · 회은 · 왕직(汪直) · 양방 · 하정 · 이광 · 장종 · 유근 · 장영(張永) · 곡대용 · 이방 · 풍보 · 장경 · 진증 · 진구 · 왕안 · 위충현 · 왕체건 · 최문승 · 장이헌 · 고기잠 · 왕승은 · 방정화
306권 「엄관전(閹黨傳)」
초방 · 장채 · 고병겸 · 최정수 · 유지선 · 조흠정 · 왕소휘 · 곽유화 · 염명태 · 가계춘 · 전이경
307권 「영행전(佞倖傳)」
기강 · 문달 · 이매성 · 계요 · 강빈 · 육병 · 소원절 · 도중문 · 단조용 · 공가패 · 호대순 · 전옥 · 왕금 · 고가학 · 성단명 · 주융희
308권 「간신전(奸臣傳)」 309권 「유적전(流賊傳)」
호유용 · 진녕 · 진영 · 엄숭 · 주연유 · 온체인 · 마사영 이자성 · 장헌충
310권 「호광토사전(湖廣土司傳)」
311·312권 「사천토사전(四川土司傳)」
313·314·315권 「운남토사전(雲南土司傳)」
316권 「귀주토사전(貴州土司傳)」
317·318·319권 「광서토사전(廣西土司傳)」
320·321·322·323·324·325·326·327·328권 「외국전(外國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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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330·331·332권 「서역전(西域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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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화제 즉위 이후에 효숙태후(孝肅太后)로 추존되었다.[2] 본명은 한계란(韓桂蘭). 조선 사람으로서 한확의 여동생이자 인수대비의 고모이다. 사후에 성화제가 공신(恭愼)의 시호를 내렸다.[3] 전 황제 정통제와 현 황제 경태제의 치열한 권력다툼 속에서 황태자였다가 폐위된 3살 아이를 8년 동안 키워낸다는 것은 한씨로서는 목숨을 건 일이였을 것이다.[4] 어차피 주기옥의 유일한 아들인 주견제는 어린 나이에 죽었고 남은 가족이라고 해 봤자 폐황후 왕씨와 왕씨 소생의 황녀 고안공주 정도뿐이었기에, 제위에 위협이 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고 딱히 멸족시킬 만한 일족도 없었다.[5] 정통제 시기의 대신. 토목의 변 당시의 혼란을 바로잡았다.[6] 출생 연도가 한국어 위키백과와 영어 위키백과에는 1428년으로, 중국어 위키백과와 바이두백과에는 1430년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1428년생이라면 성화제보다 19세 연상이고 1430년생이라면 17세 연상이 된다. 명사 후비전에는 '헌종이 16세에 즉위하였고 만귀비는 이미 35세'라고 언급되어 있는데, 성화제의 즉위 당시 나이는 만나이로 셌을 경우 16세가 되기 때문에 두 사람의 나이를 모두 만나이로 기록한 것이라면 1428년생이 맞다. 만약 만귀비의 나이를 세는 나이로 기록했다면 1430년이 되기는 하는데, 같은 기록에서 동시대의 인물을 나이 세는 방법을 다르게 적용해서 나이를 기록했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려우므로 명사 후비전의 기록을 그대로 신뢰한다면 만귀비는 1428년생이 맞다.[7] 성화제의 모후인 효숙황후 주씨는 1430년생, 만귀비는 1428년생이므로 실제로 만귀비는 성화제의 어머니보다 나이가 2살 많다. 주우원의 모후인 효혜황후 소씨도 성화제보다 12살 연상이라는 정보가 있는 것을 보면,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연상의 여인이 취향이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단, 소씨가 1435년생이라는 정보는 한국어 위키백과에만 기재되어 있고 바이두백과에는 소씨의 출생 연도를 모른다고 쓰여 있으므로 검증이 필요하다.[8] 지금의 산둥성 웨이팡 시 산하 주청 시.[9] 확인이 필요하다. 명사 후비전에는 성화제의 또 다른 승은 후궁인 효혜황후 소씨의 경우 '집안이 가난하여 궁녀로 보내졌다'라고 입궁 경위가 적시된 반면, 만귀비의 경우에는 그러한 입궁 경위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10] 그것도 황후가 된 지 한 달 만에 쫓겨났다.[11] 참고로 이때 만귀비의 나이는 48세였기에 아이를 더 갖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 이 시점부터 만귀비를 통해 후사를 얻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었으므로, 당대의 관점에서 판단할 때 성화제로서는 만귀비를 제지할 필요가 있었다. 다만 만귀비가 낳은 아들이 성인으로 성장하였다면 심각한 결함이 없는 한 황제로 즉위하였을 것이므로,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만귀비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12] 홍치제의 어머니 기씨는 소수민족 수령의 딸로 아버지가 토벌 당하면서 죄인으로 끌려와 서적 관리하는 곳에서 일했다. 그러다 성화제의 눈에 띄어 하룻밤 상대가 됐었는데, 이때 홍치제를 임신한 것. 그녀에게도 낙태약을 내리는 궁녀가 찾아갔으나 낙태약 내리는 궁녀가 동정심이 발휘됐던지 약을 덜 줘서 다행히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고.[13] 참고로 홍치제가 나타난 이후로는 만귀비도 포기한 건지 몰라도 성화제는 다른 후궁들에게서도 여러 아들을 뒀다. 만귀비가 낳은 요절한 장남과 독살당한 주우극을 포함하여 14명의 아들을 두었고 그중 11명이 성인으로 성장했으며, 딸은 6명이 태어나 그중에서 4명이 성인으로 성장했다. 실제로 성화제는 명 황제 중 홍무제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아들을 두었다. 어쨌든 홍치제가 태어나서부터야 겨우 후사 걱정을 한시름 놓은 건 사실이다.[14] 이때 만귀비에게 숙부인 경태제가 만들었다가 아버지인 정통제가 없앤 황귀비 작위를 추서하고 공숙단순영전(恭肅端順榮靖)의 시호를 내렸다.[15] 정확하게는 이 뒷부분이 전해지지 않는다. 설공찬전 자체가 내용이 요망하다고 해서 진작에 조정에서는 거두어 불태워 버리도록 명했고, 그걸 이문건이라는 사람이 자기 일기 뒷면에 국문으로 번역해 몰래 베껴둔 게 발견된 것이 현재 알려진 설공찬전의 전부이고, 이나마도 뒷부분 내용을 안 적어서 그 뒤의 이야기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16] 정통제는 황후와의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고, 후궁들 사이에서 9남 10녀를 두었으며 6남 8녀가 성인으로 성장했다.[17] "전자에 짐(朕)이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장차 건주(建州)의 역로(逆虜)를 정토(征討)하려고 하여 왕으로 하여금 천병(天兵)을 협조하게 하였는데, 이제 왕의 주문(奏文)을 얻어 보고 배신(陪臣) 중추부관(中樞府官) 강순(姜純) 등을 보냈음을 알았다. 강순 등은 군중(軍衆) 1만여 명을 거느리어 압록강(鴨綠江)·발저강(潑猪江) 2강(江)을 건너 올미부(兀彌府)의 제채(諸寨)를 공파(攻破)하고, 역로(逆虜) 이만주(李滿住)·이고납합(李古納哈) 부자(父子) 등을 죽이었으며, 그 부속(部屬)의 두축(頭畜)을 참획(斬獲)하고 그 여사(廬舍)에 쌓아서 모아 놓은 것을 불살라 그들이 약탈한 우리 동녕위(東寧衛)의 인구(人口)를 얻게 하고, 배신(陪臣) 이조 참판(吏曹參判) 고태필(高台弼)을 보내어 포로를 바치니, 이미 왕이 가져다 바친 적속(賊屬)은 관례에 따라 인구(人口)를 처치하여 친히 완취(完聚)하게 하여 주었고, 우축(牛畜)은 군둔(軍屯)의 종자로 주었다. 진실로 왕은 대대로 돈독하고 충정(忠貞)함을 말미암은 까닭으로 짐(朕)이 척찰(尺札)로써 왕에게 명하고 왕의 나라의 군중(軍衆)이 해동(海東)에 향응(響應)하여, 짐의 장수와 군졸이 벼락같이 빠르고 바람같이 몰아, 내외(內外)가 합세(合勢)하여 역로(逆虜)가 와해(瓦解)하였으니, 왕은 짐의 명한 바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이를 만하다. 짐과 왕은 군신(君臣)이 마음을 한가지로 하였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이제 내관(內官) 강옥(姜玉)·김보(金輔)를 보내어 왕의 나라에 이르러 왕에게 채단(綵段)·백금 문금(白金紋錦)·서양포(西洋布)를 주고, 그 강순(康純)·고태필(高台弼) 등에게도 또한 각각 주어서 그 노고를 정표(旌表)하니, 왕은 그것을 공경하여 받으라. 국왕(國王)에게는 은(銀) 1백 냥(兩), 청여의규심 융금(靑如意葵心絨錦) 1단(段), 백지록수대보상화 융금(柏枝綠壽帶寶相花絨錦) 1단(段), 청련구화 융금(靑蓮球花絨錦) 1단(段), 단반홍전지보상화 융금(丹礬紅纏枝寶相花絨錦) 1단(段), 직금흉배기린암골타운 대홍저사(織金胸背麒麟暗骨朶雲大紅紵絲) 2필, 직금흉배기린암골타운 흑록저사(織金胸背麒麟暗骨朶雲黑綠紵絲) 2필, 직금흉배기린암골타운 청저사(織金胸背麒麟暗骨朶雲靑紵絲) 2필, 소암화팔보골타운 대홍저사(素暗花八寶骨朶雲大紅紵絲) 1필, 소청육운 저사(素靑六雲紵絲) 2필, 소암골타운 대홍저사(素暗骨朶雲大紅紵絲) 1필, 소앵가록육운 저사(素鷪歌綠六雲紵絲) 2필, 남채견(濫綵絹) 4필, 홍채견(紅綵絹) 8필, 백서양포(白西洋布) 10필(匹)을, 영병관(領兵官) 강순(康純)·어유소(魚有沼)·남이(南怡)에게는 각각 은(銀) 20냥(兩), 직금흉배호표 대홍저사(織金胸背虎豹大紅紵絲) 1필, 소앵가록육운 저사(素鷪歌綠六雲紵絲) 1필, 소청육운 저사(素靑六雲紵絲) 1필, 소흑록육운 저사(素黑綠六雲紵絲) 1필, 홍채견(紅綵絹) 3필, 남채견(藍綵絹) 1필(匹)을 준다."[18] 여담으로 이 1467년 조선과 명의 건주 여진 협공 당시 조선군은 1만 명이었는데, 총 286급을 참수하고 23명을 사로잡았으며, 피로인(被虜人) 7명을 탈취하였다. 반면 명군(明軍)의 군세는 5만 명이었는데, 총 638급을 참수하고 253명을 사로잡았으며, 피로인 1,165명을 탈취하였다. 언뜻보면 조선군의 전과보다 명군의 전과가 월등해 보이지만, 조선의 동원 병력이 명군의 5분의 1이었다는걸 감안하면 오히려 조선군이 명군보다 병력대비 여진족을 더 많이 죽였다.(당시 명나라군은 1만명당 128명의 여진족을 죽였다.)출처:https://www.krm.or.kr/krmts/search/detailView.html?dbGubun=SD&category=Report&m201_id=10038483&local_id=10052878[19] CG를 한국 기업에서 만들었고 서극 감독의 적인걸 시리즈 CG도 같은 회사에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