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4 22:30:57

주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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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추존 공작
명 추존 황제
주세진 | 朱世珍
묘호 인조(仁祖)
시호 순황제(淳皇帝)
주(朱)
세진(世珍)
부황 희조(熙祖)
모후 유황후(裕皇后) 왕씨(王氏)
황후 순황후(淳皇后) 진씨(陳氏)
생몰 1283년 ~ 1344년

1. 개요2. 생애3. 《조선왕조실록4. 여담5. 가계도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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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명나라의 추존 황제이며, 태조 홍무제 주원장의 아버지이자 제3대 성조 영락제 주체의 조부였다. 주세진은 희조 유황제로 추존된 주초일(朱初一)의 4남으로 본명은 주오사(朱五四)였다.

2. 생애

가난한 농부 출신이었으며, 주세진의 아내는 후에 추존된 순황후 진씨로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는데, 막내아들 중팔이 16세(원 혜종 지정 4년, 1344년)였을 때 가뭄과 병충해로 인한 기근과 역병으로 사망했다.

안타깝게도 너무 가난하여 사후 장례비와 매장할 땅이 없었다. 그저 막막한 차에 다행히 주씨 유족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마을 사람인 유계조(劉繼祖)가 자신의 땅에 묻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나선 것이었다.[1] 이에 중팔 형제는 고맙다고 거듭 인사를 했다. 이로써 어떻게든 장지(葬地) 문제는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관이나 수의(壽衣) 따위는 준비할 수가 없었다. 주씨 형제가 일가족을 거적에 둘둘 말아 둘러메고 약속된 산기슭에 이르렀을 때, 낡은 끈이 떨어져 일가족의 시체가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비참한 마음을 참고, 둘째 형이 새로 끈을 가져오기 위해 마을로 되돌아갔다. 시신을 지키던 주중팔(주원장)은 비바람이 억수로 몰아치자 근처의 절로 피신하여 추위에 떨어야만 했다.

찬비가 떨어지는 산골짜기에 내버려 둔 가족 생각에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새벽이 되기가 무섭게 뛰어나와 보니, 가족의 시신은 온데간데 없었다. 대신, 시신이 있었던 자리는 쓸려온 흙이 모여 절로 두툼한 흙무덤이 되어 있었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었다.

훗날 태조 홍무제는 이 날의 참담한 경험을 이렇게 회고했다.
"관곽이 없어 더러운 옷으로 시신을 감싸, 흙으로 살짝 덮어 무덤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하니 제삿상인들 어떻게 제대로 바칠 수 있었겠는가?"

주원장은 대명의 초대 황제로 즉위하자마자, 아버지 주세진과 어머니 진씨를 각각 인조 순황제(仁祖淳皇帝)와 순황후(淳皇后)로 추존했다. 뒤에 홍무제는 아버지의 황릉에 비석을 세우고 묘갈을 쓰면서
"관곽도 마련하지 못해 썩은 헝겊에 싸서 매장했다."
라며 오열했다고 한다.

3.조선왕조실록

조선 제9대 성종 6년(명 성화 11년) 6월 10일 정해 6번째 기사에서 사은사의 서장관인 이경동이 듣고 본 사건(事件)을 말했는데, 명나라 과장의 생원들이 문자(文字)를 짓기 전에 황제의 이름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 명나라 예부에서 내건 방에 대명국 역대 황제들의 이름이 정리되어 있었다고 했다. 이를 알게 된 이경동이 인조 순황제 주세진, 제1대 태조 홍무제 주원장, 제3대 태종(성조) 영락제 주체, 제4대 인종 홍희제 주고치, 제5대 선종 선덕제 주첨기, 제6대 영종 정통제 주기진, 당대인 제8대 헌종 성화제 주견심의 이름을 알렸는데 이를 들은 성종이 이를 승문원(承文院)에 내리라고 했다.

4. 여담

주세진의 장인은 99세로 죽기 직전까지도 허리가 꼿꼿하며 흰 수염이 인상적인 진씨 노인이었다고 한다. 이 노인은 외손자인 주중팔, 즉 훗날의 명태조 주원장에게 자신이 60여년 전에 원나라군에 맞서 싸우러 다닌 일, 그때 승상인 문천상이 항전하다가 원나라군에게 잡혀간 일, 남송의 어린 황제와 조씨 황실에 끝까지 충성을 바친 대신들이 바다에 몸을 던진 일 등을 예기해주었다. 자신은 이 격렬한 전투 중에 함대에서 폭풍우를 만나 죽을 뻔했지만 온갖 고생을 다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즉, 진씨 노인은 한족 왕조인 남송 최후의 혈전이었던 애산 전투의 참전자이자 생존자였다. 남송의 참담하면서도 장대한 멸망을 함께 한 사람의 외손자가 훗날 몽골족의 원나라를 막북으로 축출한 뒤, 한족의 나라를(명나라) 다시 세운 것이었다.

5. 가계도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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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무제 없음
동무제 주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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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계조는 훗날 이 일에 대한 은혜로 의혜후(義惠侯)라는 작위를 홍무제로부터 하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