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18:36:08

위충현

<colbgcolor=#F0C420><colcolor=#ffffff> 위충현
魏忠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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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위충현(魏忠賢)
완오(完吾)
존호 요천순덕지성지신(尭天舜徳至聖至神)
본명 위사(魏四)
가족 아버지 위씨(魏氏)
아내, 딸
주군 만력제
태창제
천계제
숭정제
출생 1568년 2월 27일
대명 북직예성 하간부 숙녕현(現 창저우시)
사망 1627년 12월 11일 (향년 59세)
대명 북직예성 하간부 부성현
국적 파일:명나라 보.svg 대명

1. 개요2. 나라를 가지고 놀다3. 황제 위에 내가 있다4. 구천구백세, 추락하다5. 사후6. 평가7.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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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명나라 말기의 환관으로 명나라를 유린한 간신이다. 위 삽화의 관모부터가 원래 환관은 못 쓰는 고관대작 전용이었다는 점에서 본 문서의 상당부분을 안 보고도 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 나라를 가지고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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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충현은 1568년 2월 27일에 하간부 숙녕현의 한 빈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위사(魏四)로 젊었을 적에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글을 깨우치지 못하고 도박에 중독되어 살았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도박빚이 너무 많은 나머지 처를 버리고 딸을 팔면서까지 도박빚을 갚으려 했을 정도였다.

하루는 시정의 불량배와 도박을 하다가 판돈을 잃고 치욕을 당했다. 분풀이를 하고 싶었지만 무식하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렇게 한평생 남에게 무시를 당하며 비렁뱅이로 살 바에야 차라리 환관이 되어 황궁으로 들어가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환관이 되기 위한 거세는 고환을 훼손해야 하는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었는데[1] 그는 목숨을 걸고 스스로 자신의 고환을 훼손했다. 이후 위충현은 만력 17년(1589년)에 사례병필태감 손섬의 수하로 들어갔는데 이 때 위사는 이름을 진충으로 개명했다.

진충은 무식했지만[2] 머리가 비상하고, 잔꾀를 부리며, 윗사람의 눈치를 잘 살폈기에 얼마 후 손섬의 눈에 띄어 황궁의 창고, 갑자고를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다.

진충은 황궁의 창고지기에 만족할 인물이 아니었다. 당시 환관의 우두머리는 왕안이었는데 성품이 강직하고 정의로워서 양심적인 동림당 계열의 조정 대신들은 그가 환관임에도 진심으로 존경했다.[3] 이렇듯 황실과 조정에서 신망이 두터운 왕안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면 황실 내부로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었다.

진충은 먼저 왕안의 측근 위조에게 아부하여 결의형제를 맺었고, 이후 위조의 천거로 왕안의 문하로 들어가서 왕안의 신임을 얻어 주유교의 생모, 왕재인의 음식수발을 드는 직책을 맡았다.

왕재인은 신분이 낮은 재인 출신이었지만 어쨌든 주유교의 생모였고, 훗날 주유교가 황위를 계승하는 날에는 왕재인이 태후로 등극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진충은 왕재인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고,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다.[4]

또한 진충은 주유교의 유모 객씨에게도 접근했다. 본 문서에 인용한 조천항해록 내용의 '객 내저'가 이 객씨인데 그녀는 일개 유모로서 주유교가 장성하면 더는 필요가 없어지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주유교는 객씨에게 유모 이상의 미묘한 감정을 품고 있었기에 성인이 되고 황제가 되어도 객씨를 총애하여 그대로 자금성에 머무르게 했다.

눈치 빠른 진충은 위조와 객씨의 관계를 감지했는데 객씨는 위조와 대식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5]

위조는 왕안과 주유교를 섬기느라 객씨와 소원해졌는데 진충이 그 틈을 노리고 원래 위조의 여자였던 객씨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아 결국 불륜관계로 발전해렸다.[6] 둘은 천계제 즉위 이후로도 서슴치 않고 간통했는데 천계제는 이것도 모르고 그저 자신을 키워준 유모라고 떠받들었다.[7]

1620년인 태창 원년 9월 광종 태창제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졸지에 황위를 계승한 주유교는 객씨를 향한 연모의 감정이 꿈틀거렸다. 세상에 거리낄 게 없고, 자신의 말이 곧 국법이 되는 황제가 된 그는 즉위한 지 1달도 안 돼서 객씨를 봉성부인으로 책봉하면서 객씨 일족도 하루아침에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다.

당연히 객씨의 정부 진충도 출세가도를 달려 궁궐의 땔감을 관장하는 석신사에서 사례감의 병필태감으로 승진했다. 병필태감은 각 부 대신들이 올린 각종 공문들을 선별하여 황제에게 아뢰는 일과 어명을 대신들에게 구두로 전달하거나 문서로 작성하여 알리는 일을 도맡는 직책으로 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장과 비슷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원래 진충은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무식쟁이였으므로 궁성에서 살아가는 환관이라는 직책이 요구하는 기본 교양 및 덕목이나 지식을 갖췄을 리 만무해 황제의 공문서를 처리하는 병필태감이 될 수가 없었다[8]. 하지만 객씨가 막후에서 은밀히 영향력을 행사했으므로 그는 문맹임에도 파격적인 승진을 할 수 있었다.

병필태감이 된 진충은 천계제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는 철저하게 차단하면서 오로지 천계제가 향락과 목수질에 몰두하도록 했다.

우선 진충은 신하들의 상소를 천계제에게 전달할 때는 꼭 천계제가 목공예에 열중일 때만 노려서 보고했다. 천계제는 목공예에 한참 빠져 있을 때 불쑥 처리해야 할 국정 상소를 받으면 진충에게 '알아서 하라'며 짜증을 냈고, 진충은 이를 핑계로 '황제께서 내게 맡기셨다'며 국사를 자기 멋대로 처리해버리곤 했다.

그러다가 아예 천계제에게 직접 정치를 하라는 허락까지 받아낸 진충은 천계제의 치세 7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온갖 전횡을 휘둘러 명나라를 급속도로 쇠락시켰다. 불학무식한 일자무식의 진충은 그저 황제가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대해온 환관이라는 계기로 벼락출세를 맞은 것이다.

3. 황제 위에 내가 있다

천계 원년(1621), 희종은 객씨 집안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토지를 하사했으며, 진충이 선황제의 황릉을 중수한 공로를 기록에 남기게 했다. 두 사람에 대한 희종의 지나친 총애가 국정혼란을 일으킬 수 있음을 우려한 어사 왕심일이 부당함을 지적하여 간언을 올렸지만 희종은 끝내 듣지 않았다.

천계 2년(1622), 희종은 진충에게 '참으로 충성스럽고 현명한 신하라는 뜻'으로 '충현(忠賢)'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여 진충은 위충현으로 개명했다. 이때부터 어리석은 군주와 교활한 간신의 불행한 변주곡이 본격적으로 울려퍼졌다.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은 위충현과 객씨는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자들을 모조리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먼저 충신 왕안이 도마 위에 오른 물고기 신세였다. 희종은 즉위 이전부터 줄곧 자신을 경호한 왕안에게 사례감을 계속 관장하게 했지만 왕안은 자신은 선황제 시절에 사례감을 맡았으므로 새 황제의 등극에 따라 마땅히 사직해야 한다며 고사했는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충언이었다. 하지만 왕안의 강직한 성품이 오히려 그를 해치고자 한 위충현과 객씨에게 절호의 기회가 되고 말았다. 객씨가 희종에게 왕안의 사직 청원이 법도에 맞는다고 아뢰자 희종도 윤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객씨는 위충현에게 왕안을 당장 살해하여 후환을 없애자고 말했고, 옛정을 생각한 위충현이 망설이자 객씨가 말했다. "당신과 내가 서리와 같은 처지라면, 어찌 후환을 남겨 둘 필요가 있겠어요?" 광종의 후궁, 서리가 주유교를 농락하여 수렴청정을 시도하다가 쫒겨난 일을 객씨가 위충현에게 상기시킨 것이다.

두 사람은 급사중 곽유화에게 왕안을 모함하게 하여 그를 황실의 수렵장인 남해자의 정군[9]으로 몰아냈고, 이후 위충현은 유조를 남해자의 책임자로 보내 왕안을 살해했다. 명나라 시절 환관들 가운데 보기 드물게 청렴하며 강직했던 왕안은 한때 자기 수하에 있었던 위충현과 객씨의 음모로 희생된 것이다.

그해에 희종은 위충현이 광종의 황릉인 경릉을 완공한 공로를 인정하여 위충현의 조카를 지휘첨사로 임명했다. 당시 명나라에서 지휘첨사는 천자를 호위하고 황궁을 지키는 근위대인 금위군의 책임자로서 천자의 측근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책이었다. 이 때부터 위충현은 금의군을 장악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대담하게도 희종을 속여 황궁에서 사병 1만 명을 조련했다. 천자에게 충성하는 금위군의 전력 강화를 위한다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친위대를 조직하여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만한 인사들을 감시하고 제거하는데 활용했다.

천계 3년(1623) 겨울, 희종은 위충현에게 동창(東廠)까지 관장하게 했다. 그야말로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으로[10] 명나라 시절의 동창은 전방위적인 감찰과 정보 기능을 수행하면서 자체적인 수사와 심문도 가능했다. 특히 동창에 끌려가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시신이 되어 나오는 일이 다반사였기에 일반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명나라 황족들과 관리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른바 백색공포가 조정에 엄습했다.

천계 4년(1624), 위충현의 만행과 국정농단에 울분을 품은 동림당 인사들이 분연히 일어났다. 어사 이응숭은 위충현이 궁궐에서 사병을 불법으로 조련한 죄를 희종에게 간했고, 급사중 곽수전은 위충현이 희종에게 자기 집안 사당에 편액을 하사해달라고 요청한 죄를 간했다. 또한 어사 유정좌는 위충현이 음관을 남발한 죄를 고발했고, 급사중 심유병은 위충현이 입가의 형벌[11]을 가한 죄를 고발했다.

그러나 희종은 대신들의 간언에 묵묵부답이었고, 동림당 대신들의 반격에 놀란 위충현은 오히려 희종의 조서를 위조해서 그들을 잡아들여 잔혹한 고문을 가했다. 양심적인 대신들이 줄줄이 잡혀가 고문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부도어사 양련이 목숨을 걸고 위충현의 24가지 대죄를 상세히 밝힌 상소문을 올렸다.[12]

문제는 희종이 문맹이라서 위충현에게 상소문을 대신 읽어보라 했다는 것이다. 당사자인 위충현은 당연히 상소문에서 중요한 부분은 전부 배제한 채 사소한 죄상만 읊었고,[13] 결국 여기에 속아 넘어간 희종은 오히려 위충현을 두둔하면서 비답을 내려 양련을 꾸짖고 파직시켰다. 반면 위충현은 조정에서 일제히 자신을 탄핵하는 분위기를 고려하여 동창의 총책임자에서 잠시 물러났다가 객씨와 함께 희종에게 억울함을 호소하여 복직되었다.

이에 대신들은 또 들고 일어났다. 급사중 위대중, 진량훈, 허예경, 무녕후, 주국필, 남경의 병부상서 진도형 등 대신 70여 명이 위충현을 탄핵하는 상소문을 연이어 올렸지만 희종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당시 위충현의 국정농단에 목숨을 걸고 싸운 인사들인 대부분 동림당 계열의 사대부였다. 대체적으로 그들은 대의 명분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고 유가의 위민 사상에 투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에 일개 환관 따위가 국정을 마음껏 유린하는 악행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치란 언제나 반대세력이 있고, 사회에는 악인과 모리배들이 있기 마련이다. 동림당 인사들에게 불만을 품은 대신들은 사대부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환관 위충현에게 빌붙어 그들을 타도하고자 했다. 당시 동림당 인사들은 위충현을 따르는 환관과 대신들의 정치조직을 엄당(閹黨)이라 지칭했다. 엄(閹)이란 한자가 환관, 내시, 또는 '거세하다'란 뜻이므로, 그냥 직설적으로 '내시 무리'라고 부른 셈이다.

엄당의 대표적인 인물은 예부상서 고병겸으로 위충현에게 굴종하면 죽을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이가 자기보다 18세나 어린 환관 위충현을 아버지로 모시고야 말았다. 위충현도 고병겸을 앞잡이삼아 동림당 인사들을 때려잡고, 조정을 장악할 요량이었다.

고병겸은 동림당 인사들의 명단을 은밀하게 작성하여 위충현에게 건네주었다. 그리하여 이부상서 조남성, 좌도어사 고반룡, 이부시랑 진우정 등 충신 수십 명이 관직에 쫒겨났으며 공부랑중 만경과 어사 임여저는 붙잡혀가 위충현이 가한 혹독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옥사했다. 이후 고병겸은 위충현의 비호를 받아 내각의 최고 직위인 내각보수에 올랐다.

위충현에게 빌붙거나 아부하여 출세의 가도를 달린 사대부는 고병겸뿐만이 아니었다. 최정수라는 자는 뇌물을 받은 죄로 탄핵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위충현에게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며 양아들이 되겠다고 구걸한 인물이다. 그는 동림당 인사와 비동림당 인사의 명단을 별도로 작성한 천감록과 동지제록을 만들어 위충현에게 바치고 동림당 인사들을 제거하는데 앞장섰고, 이후 위충현의 천거로 국방의 최고 책임자인 병부상서의 직책까지 맡았다.

또한 곽유화라는 자는 진사 출신의 관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비열하게 위충현에게 빌붙었고, 그의 앞잡이가 되어 양심적인 동림당 인사들의 탄압에 앞장섰다. 출세를 위해서라면 어떤 비굴한 짓도 서슴치 않는 지식인의 전형이였다.

왕소휘란 자도 만력 연간에 탄핵을 받고 쫒겨났으나 천계 4년에 위충현의 부름을 받아 예부상서가 되었다. 위충현은 왕소휘가 동림당 인사들과 적대 관계임을 알고 그를 중용했다. 왕소휘는 수호전을 모방하여 동림당인사 108명의 명단을 수록한 점장록을 만들어 위충헌에게 바쳤다.[14] 이 명단에 오른 인물들 가운데 양련, 좌광두, 원화중, 위대중, 주조서, 고대장 등 이른바 동림육군자가 위충현 일당에게 가장 혹독한 박해를 당하고 죽었다.

이외에도 위충현의 전횡은 이루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동림당과 정적들을 숙청하여 조정 중신들까지 무릎 꿇린 그는 명실상부 독재자로 올라섰다. 실제로 위충현은 문맹이었던 것과는 별개로 타고난 머리는 좋았는데 그는 경이적인 기억력의 소유자로 궁정의 법률이나 전례를 꼼꼼히 암기하고, 자신과 원한 관계를 맺은 적들의 얼굴과 이름을 결코 잊지 않고 있다가 샅샅이 조사하여 사소한 허물이라도 있으면 놓치지 않고 뛰어난 말솜씨를 동원해 형벌을 내려 복수했다.

일례로 위충현은 술집에서 술에 취한 남자가 위충현을 험담하자 그 남자를 친구와 함께 자신의 앞으로 끌고 와서 잔인하게 고문하고는[열람주의] 그 친구들 4명에게 은 5백 냥의 위무금을 주고는 그대로 풀어줬을 정도로 잔혹했다. 그 외에도 거리에서 사적으로 위충현을 욕하는 사람들도 즉시 붙잡힌 후 가죽을 벗겨내거나 혀를 자르는 혹형에 처해졌다.

당시 명나라는 가히 위충현의 천하라고 할 수 있었는데 왕체건, 이조흠, 왕조보 등 위충현을 추종하는 환관 30명이 황제 주변을 완전히 장악하여 인의 장막을 쳤다. 문관 최정수, 전길, 오순부, 이기룡, 예문환 등 오호가 위충현을 위해 온갖 사악한 음모를 꾸미면 무관 전이경, 허현순, 손운학, 양환, 최응원 등 오표가 음모에 걸려든 자들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또한 십구, 십해아, 사십손 등 위충현의 앞잡이들이 자행한 악행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고, 명나라 조정의 내각과 육부는 물론 전국의 총독과 순무에 이르기까지 위충현 일당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당시 위충현의 위세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일화가 바로 황제가 만세 소리를 들으니 자신더러는 구천세 또는 구천구백세라 외치라고 요구했고, 실제로 그렇게 불렸다는 것이다. 전근대까지 동아시아에서 누군가를 경축할 때 황제에게만 만세를 불렀고, 황태자와 제후들은 천세, 일반인들은 백세를 불렀다. 위충현이 구천세라고 불린 것은 제후, 왕보다 그 위세가 높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중국의 책봉을 받았지만 엄연한 한 나라의 군주였던 조선과 일본의 왕은 물론 명나라의 황태자보다도 높다고 선언한 셈이다.

물론 위충현은 일상생활도 그 권세에 걸맞게 호화로웠다. 자신의 호위를 위해 궁정의 연관 3천 명을 무장시켜 궁중에서 군사훈련을 했고, 외출할 때에는 앞쪽에서는 위사의 대열이 길을 깨끗이 하고는 뒤쪽에서는 인마 수만이 동행하며 길 사이의 백성들에게는 무릎을 꿇게 하면서 '구천세'를 외치게 했다.

나중에 가면 위충현은 자만심이 넘친 나머지 궁중에서 말을 타면서 황제 앞에서도 하마(下馬)[16]나 배례도 하지 않았고, 자기 자신을 요순임금에 견준다는 의미로 요천순덕지성지신(尭天舜徳至聖至神)이라는 존호을 만들어 사용했으며, 심지어 자기를 모시는 생사당(生祠堂)이란 사당을 세워놓고 세인들로 하여금 참배하도록 했다. 만약 절하지 않으면 죽였다. 절강순무로 있는 반여정이라는 사람이 제일 먼저 위충현의 생사당을 세웠다.

이것이 삽시간에 번져 북경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 위충현의 사당과 상이 세워졌고, 또 어떤 사람은 "공자는 소정묘를 없애고 위충현은 동림당을 없앤다."라고 해서 그를 공자처럼 모셔야 한다고 떠들어 댔다.

4. 구천구백세, 추락하다

그밖에도 수년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나라를 얼마나 말아먹었는지 열거하기 밑도 끝도 없지만 결국 천계제의 죽음과 함께 위충현의 명줄도 끝나게 되었다.

황제가 사경을 헤매는 동안 그는 필사적으로 태아 상태인 황제의 아이를 황제에 옹립하려 안간힘을 썼지만[17]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천계제도 그렇게 무뇌는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천계제의 황후인 효애철황후 장언이 위충현을 필사적으로 견제했기 때문. 특히 효애철황후는 위충현이 국정을 농단하는 것을 알고는 그를 매우 싫어했다. 그래서 천계제한테 소인배를 멀리하고 현인을 가까이하라는 충언을 올리기도 했다. 실제로도 숭정제를 즉위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기에 숭정제는 형수한테 고마워하며 효애철황후를 황태후급으로 우대했다. 나중에 효애철황후는 명나라가 멸망할 때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사후 이를 높이 평가한 순치제가 황후의 예로 장례를 치러준다.

게다가 위충현과 객씨가 결탁해 한동안 황제의 아들들을 죄다 제거했기 때문에[18] 이 시점에서 황위 후계자는 숭정제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결국 위충현의 자충수였다.

어쨌든 천계제는 그나마 똑똑해보이는 동생 주유검에게 제위를 넘기고 세상을 떠났다. 실제로도 천계제는 자신이 무식한 상태에서 천자가 되었음이 한스러웠는지 동생 공부는 좀 시켰다고 한다.

위충현은 황제가 죽자 부고 사실을 숨겨 숭정제의 제위를 막으려는 치졸한 짓까지 벌이고 심지어 정변을 일으킬 궁리도 했다. 그러나 전자는 장 황후가 이를 주유검에게 미리 알려줬고 후자는 위충현의 부하들이 회의적이었기에 주유검은 무사히 숭정제로서 즉위하였다.

새로 제위에 오른 천계제의 동생 숭정제는 당연히 위충현을 적대했지만, 위충현을 바로 제거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왜냐면 신하부터 환관들까지 전부 위충현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섣불리 움직이면 자신의 목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터라[19] 숭정제는 위충현의 조카 위량경에게 면사철권을 하사하고, 엄당의 구성원들에게 상을 주는 등 위충현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이 바뀌고 있었음을 감지한 신하들은 발빠르게 위충현과 그 부하들을 탄핵하기 시작했고, 위충현은 결국 등쌀에 못 이겨 사직을 선택했다. 숭정제는 처벌하지 않고 사직을 받아들이며 그를 '그동안 고생했다는 의미로' 고향인 봉양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이때 위충현의 짐을 싸는 데만 해도 사흘이나 걸렸고 무려 수레 40대 분량이나 되었다고 하니 그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위충현의 운명도 여기까지였다. 위충현이 베이징을 뜨자 숭정제는 기다렸다는 듯 체포령을 내렸고 오호며 오표며 하는 그의 수하들도 차례차례 낙마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부성현에서 들은 위충현은 충격을 받고는 도망가지도 맞서 싸우지도 못한 채 목을 매어 자살했다. 이때 그의 짐을 나르던 수많은 하인들은 각자 재물을 챙기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의 곁은 지킨 사람은 유일하게 이조흠밖에 없었고 이조흠도 위충현이 자살하자 따라 자살했다. 한때 황제를 호령하며 구천구백세를 자처하던 사람치고는 비참한 최후였다. 향년 59세로 부르던 9900세의 0.6%밖에 못 살았다.

5. 사후

위충현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를 죽이려했던 숭정제는 분노하여 위충현의 시신을 가져와 목을 베어 효수하였고, 그 시체는 오체분시도 아니고 천 갈래 만 갈래로 찢기는 천참만륙(天斬萬戮)의 극형을 받게 했으며, 위충현을 찬양하던 사당과 상들 역시 모두 파괴되었다. 재산 또한 전부 몰수되었으며 일족들도 남김없이 처형되었다. 위충현의 영혼의 파트너였던 객씨도 무사하지 못하여 그의 사망 후 바로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되어 고문 끝에 그동안의 악행을 모두 자백했고, 그대로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위충현의 아들을 자처했던 최정수는 끝이 다가오는 것을 알았는지 마지막 잔치를 열어 그동안 모은 재산을 전부 탕진하면서 즐길 대로 즐기다가 관병들이 들이닥치자 목을 매어 자살했다. 물론 둘 모두 위충현처럼 부관참시되었다.

위충현은 갔지만 그의 수하들은 여전히 조정 곳곳에 남아있었다. 자신의 윗대가리들의 최후를 본 그들은 바로 태세전환해 상소문을 올리면서 위충현을 손절하려고 시도했고, 나중에 숭정제가 위충현의 수하인 오호 오표들을 정리하려고 하자 아주 가벼운 처벌만 내리는 등 유야무야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숭정제는 이미 이들이 위충현에게 보낸 아부 편지들을 전부 입수한 후였기에 봐주려고 했던 이들마저 전부 색출되어 청산되기에 이른다.

숭정 원년(1628) 엄당 구성원 총 261명이 숙청되었는데, 죄목에 따라 1등(위충현이 해당된다.)부터 8등까지 상세하게 분류되어 목이 잘리거나 삭탈관직, 유배 등 죄목에 따른 처벌을 받게 된다. 당시 지방 관리를 제외한 명의 총 관리 수가 800명대였음을 감안하면, 4분의 1이 칼날의 마수를 피해가지 못한 것이다. 이를 흠정역안이라고 부른다.

오호 오표들은 모두 처형당했는데, 이 과정에서 웃픈 해프닝도 있었다. 명말청초의 유명한 사상가 황종희는 아버지 황존소를 엄당의 옥사에서 잃었는데, 그의 아버지를 고문해 죽인 허현순과 최응원의 심리에 증인으로 불려나갔다. 그런데 증언을 끝내고도 나가지 않더니 불현듯 허현순에게 달려들어 송곳으로 마구 찔러버린 것이다. 관리들은 허현순이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갔을 때 황종희를 떼어놓았으나 그러자 황종희는 최응원에게 달려들어 수염까지 뽑아놓았다.

결과야 어쨌든 위충현의 부하들은 대부분 합당한 처벌을 받았다. 목이 날아가지 않은 이들도 끝이 편치는 않았다. 동림당 인사들을 모함한 핵심인물인 고병겸은 관직에서 쫓겨난 후 집으로 돌아갔으나 성난 군중들이 집을 태워버렸고, 결국 쓸쓸히 죽었다.

마수에서 벗어난 이들이 딱 둘 있었는데, 왕체건과 유약우였다. 유약우는 글을 워낙 잘써서 엄당의 문건을 대부분 담당했기에, 엄당의 죄상을 상세히 기록하는 대가로 면죄부를 얻었다. 왕체건의 경우는 위충현의 심복이었음에도 7등 죄목밖에 받지 않았는데 정황상 일치감치 숭정 쪽으로 붙어 첩자 노릇을 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명나라를 어지럽힌 엄당과 위충현 세력들은 모두 정리되었다. 하지만 이미 명나라는 서서히 몰락의 길로 가고 있었고 숭정제의 여러 번 큰 삽질[20]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막장으로 치달아 결국 위충현이 죽은 지 불과 17년 만인 숭정 17년(1644)에 이자성의 난을 끝으로 명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6. 평가

"천하의 권세를 가진 자는 첫째는 태감 위충현이요, 둘째는 객 내저요, 셋째가 황상이다."[21]
조천항해록 1624년 10월 19일자
명 4대 암군 시기의 무수한 간신배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는 존재로, 단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도 제국(帝國)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산 증인이다. 다만 이때의 명 제국은 위충현 이전부터 가정제, 만력제라는 걸출한 인물과 온갖 해괴한 정치 스캔들, 심각한 부정부패, 잦은 반란, 외침, 기근, 재정 파탄으로 이미 답이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막장 상태였다. 그러나 위충현이 정치가로서 이걸 수습하기는커녕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로 국정을 농단하고 엄청난 부정축재를 해서 명나라의 몰락을 확정지은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진나라조고당나라구사량[22]조차도 그 앞에서 감히 명함을 내밀기 어려워 보인다. '충성스럽고 현명하다'는 본인의 이름(忠賢)하고 완전히 반대로 놀았다고 보면 된다.

7.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중국드라마 천하에서는 역사상의 사실대로 권력을 쥐고 흔들면서 동창이라는 조직을 이용해 반대파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인물로 묘사된다.[23] 배우는 왕회춘. 그러면서 천계제 앞에선 노비가 어쩌구저쩌구~하면서 오만 아첨을 떠는 건 보너스. 천계제가 죽어가면서 권력을 장악하려다가 함께 짝짜꿍하던 객파파의 배신으로 몰락해 자신의 거세한 생식기가 든 항아리를 들고 조용히 리타이어 하면서 사라진다.

중국 영화 수춘도(繡春刀)는 위충현 제거를 명받은 금의위 삼형제 이야기를 다룬다.

다양한 무협지의 메인 빌런으로 모티브가 되었다. 명나라 배경에 권력을 잡고있는 환관이 메인 빌런이라면 십중팔구 위충현이 모티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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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학증 · 이화룡 유대 · 부응정 · 왕용급 · 오중행 · 조용현 · 애목 · 심사효
230권 「채시정등전(蔡時鼎等傳)」 231권 「고헌성등전(顧憲成等傳)」
채시정 · 만국흠 · 요신 · 탕현조 · 녹중립 · 양순 · 강사창 · 마맹정 · 왕약림 고헌성 · 고윤성 · 전일본 · 우공겸 · 사맹린 · 설부교 · 안희범 · 유원진 · 엽무재
232권 「위윤정등전(魏允貞等傳)」
위윤정 · 왕국 · 여무형 · 이삼재
233권 「강응린등전(姜應麟等傳)」
강응린 · 진등운 · 나대굉 · 이헌가 · 맹양호 · 주유경 · 왕여견 · 왕학증 · 장정관 · 번옥형 · 사정찬 · 양천민 · 하선
234권 「노홍춘등전(盧洪春等傳)」 235권 「왕여훈등전(王汝訓等傳)」
노홍춘 · 이무회 · 이기(李沂) · 낙우인 · 마경륜 · 유강 · 대사형 · 조학정 · 옹헌상 · 서대상 왕여훈 · 여무학 · 장양몽 · 맹일맥 · 하사진 · 왕덕완 · 장윤의 · 추유연
236권 「이식등전(李植等傳)」 237권 「부호례등전(傅好禮等傳)」
이식 · 강동지 · 탕조경 · 김사형 · 왕원한 · 손진기 · 정원천 · 이박 · 하가우 부호례 · 강지례 · 포견첩 · 전대익 · 풍응경 · 오종요 · 오보수 · 화옥
238권 「이성량등전(李成梁等傳)」 239권 「장신등전(張臣等傳)」
이성량 · 마귀 장신 · 동일원 · 두동 · 소여훈 · 달운 · 관충병 · 시국주 · 진백우
240권 「엽향고등전(葉向高等傳)」 241권 「주가모등전(周嘉謨等傳)」
엽향고 · 유일경 · 한광 · 주국조 · 하종언 · 손여유 주가모 · 장문달 · 왕응교 · 왕기(王紀) · 손위 · 종우정 · 진도형
242권 「진방첨등전(陳邦瞻等傳)」
진방첨 · 필강무 · 소근고 · 백유 · 정소 · 적봉충 · 홍문형 · 진백우 · 동응거 · 임재 · 주오필 · 장광전
243권 「조남성등전(趙南星等傳)」 244권 「양련등전(楊漣等傳)」
조남성 · 추원표 · 손신행 · 고반룡 · 풍종오 양련 · 좌광두 · 위대중 · 주조서 · 원화중 · 고대장 · 왕지채
245권 「주기원등전(周起元等傳)」 246권 「만조천등전(滿朝薦等傳)」
주기원 · 요창기 · 주순창 · 주종건 · 황존소 · 이응승 · 만경 만조천 · 강병담 · 후진양 · 왕윤성
247권 「유정등전(劉綎等傳)」 248권 「매지환등전(梅之煥等傳)」
유정 · 이응상 · 진린 · 등자룡 · 마공영 매지환 · 유책 · 이약성 · 경여기 · 안계조 · 이계정 · 방진유 · 서종치
249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0권 「손승종전(孫承宗傳)」
주섭원 · 이운 · 왕삼선 · 채복일 손승종
251권 「이표등전(李標等傳)」 252권 「양사창등전(楊嗣昌等傳)」
이표 · 유홍훈 · 전용석 · 성기명 · 하여총 · 서광계 · 문진맹 · 장덕경 · 방악공 양사창 · 오성(吳甡)
253권 「왕응웅등전(王應熊等傳)」 254권 「교윤승등전(喬允升等傳)」
왕응웅 · 장지발 · 설국관 · 정국상 · 진연 · 위조덕 교윤승 · 조우변 · 손거상 · 조광 · 진우정 · 정삼준 · 이일선 · 장위
255권 「유종주등전(劉宗周等傳)」 256권 「최경영등전(崔景榮等傳)」
유종주 · 황도주 최경영 · 황극찬 · 필자엄 · 이장경 · 유지봉
257권 「장학명등전(張鶴鳴等傳)」
장학명 · 동한유 · 조언 · 왕흡 · 양정동 · 웅명우 · 장봉익 · 진신갑 · 풍원표
258권 「허예경등전(許譽卿等傳)」
허예경 · 화윤성 · 위정윤 · 모우건 · 오집어 · 장정신 · 황소걸 · 부조우 · 강채 · 웅개원 · 첨이선 · 탕개원 · 성용 · 진룡정
259권 「양호등전(楊鎬等傳)」
양호 · 원응태 · 웅정필 · 원숭환 · 조광변
260권 「양학등전(楊鶴等傳)」
양학 · 진기유 · 웅문찬 · 연국사 · 정계예 · 정숭검 · 소첩춘 · 여응계 · 고두추 · 장임학
261권 「노상승등전(盧象昇等傳)」 262권 「부종룡전(傅宗龍等傳)」
노상승 · 유지륜 · 구민앙 부종룡 · 왕교년 · 양문악 · 손전정
263권 「송일학등전(宋一鶴等傳)」
송일학 · 풍사공 · 임일서 · 채무덕 · 위경원 · 주지풍 · 진사기 · 용문광 · 유가인 · 유지발
264권 「하봉성등전(賀逢聖等傳)」
하봉성 · 남거익 · 주사박 · 여유기 · 왕가정 · 초원부 · 이몽진 · 송사양 · 마희 · 왕도순 · 전시진
265권 「범경문등전(范景文等傳)」
범경문 · 예원로 · 이방화 · 왕가언 · 맹조상 · 시방요 · 능의거
266권 「마세기등전(馬世奇等傳)」
마세기 · 오인징 · 주봉상 · 유이순 · 왕위(汪偉) · 오감래 · 왕장 · 진량모 · 진순덕 · 신가윤 · 성덕 · 허직 · 김현
267권 「마종빙등전(馬從聘等傳)」 268권 「조문조등전(曹文詔等傳)」
마종빙 · 장백경 · 송공 · 범숙태 · 고명형 · 서견 · 녹선계 조문조 · 주우길 · 황득공
269권 「애만년등전(艾萬年等傳)」
애만년 · 이비 · 양구주 · 진우왕 · 후량계 · 장령 · 맹여호 · 호대위 · 손응원 · 강명무 · 우세위 · 후세록 · 유국능
270권 「마세룡등전(馬世龍等傳)」 271권 「하세현등전(賀世賢等傳)」
마세룡 · 하호신 · 심유용 · 장가대 · 노흠 · 진양옥 · 용재전 하세현 · 동중규 · 나일관 · 만계 · 조솔교 · 관유현 · 하가강 · 황룡 · 김일관
272권 「김국봉전(金國鳳等傳)」 273권 「좌양옥등전(左良玉等傳)」
김국봉 · 조변교 · 유조기 좌양옥 · 고걸 · 조관
274권 「사가법등전(史可法等傳)」 275권 「장신언등전(張愼言等傳)」
사가법 · 고홍도 · 강왈광 장신언 · 서석기 · 해학룡 · 고탁 · 좌무제 · 기표가
276권 「주대전등전(朱大典等傳)」
주대전 · 장국유 · 장긍당 · 증앵 · 주계조 · 여황 · 왕서전 · 노진비 · 하개 · 웅여림 · 전숙락 · 심진전
277권 「원계함등전(袁繼鹹等傳)」
원계함 · 김성 · 구조덕 · 심유룡 · 진자룡 · 후동증 · 양문총 · 진잠부 · 심정양 · 임여저 · 정위홍
278권 「양정린등전(楊廷麟等傳)」
양정린 · 만원길 · 곽유경 · 첨조항 · 진태래 · 왕양정 · 증형응 · 게중희 · 진자장 · 장가옥 · 진방언 · 소관생
279권 「여대기등전(呂大器等傳)」
여대기 · 문안지 · 번일형 · 오병 · 왕석곤 · 도윤석 · 엄기항 · 주천린 · 장효기 · 양외지 · 오정육
280권 「하등교등전(何騰蛟等傳)」
하등교 · 구식사
281권 「순리전(循吏傳)」
진관 · 방극근 · 오리 · 요흠 · 고두남 · 여언성 · 사성조 · 오상 · 사자양 · 황신중 · 하승 · 패병이 · 유맹옹 · 만관 · 엽종인 · 왕원 · 적부복 · 이신규 · 손호 · 장종련 · 이기(李驥) · 왕영 · 이상 · 조예 · 조등 · 증천 · 범충 · 주제 · 범희정 · 유강 · 단견 · 용사언 · 정적 · 전탁 · 당간 · 탕소은 · 서구사 · 방숭 · 장순 · 진유학
282·283·284권 「유림전(儒林傳)」
범조간 · 사응방 · 왕극관 · 양인(梁寅) · 조방 · 진모 · 설선 · 호거인 · 채청 · 나흠순 · 조단 · 오여필 · 진진성 · 여남 · 소보 · 양렴 · 유관 · 마리 · 위교 · 주영(周瑛) · 반부 · 최선 · 하당 · 당백원 · 황순요 · 진헌장 · 누량 · 하흠 · 진무열 · 담약수 · 추수익 · 전덕홍 · 왕기(王畿) · 구양덕 · 나홍선 · 오제 · 하정인 · 왕시괴 · 허부원 · 우시희 · 등이찬 · 맹화리 · 내여덕 · 등원석 · 공희학 · 안희혜 · 증질수 · 공문례 · 맹희문 · 중어폐 · 주면 · 정접도 · 정극인 · 장문운 · 소계조 · 주천 · 주서(朱墅)
285·286·287·288권 「문원전(文苑傳)」
양유정 · 호한 · 소백형 · 왕면 · 대량 · 위소 · 장이녕 · 조훈 · 서일기 · 조총겸 · 도종의 · 원개 · 고계 · 왕행 · 손분 · 왕몽 · 임홍 · 왕불 · 심도 · 섭대년 · 유부 · 장필 · 장태 · 정민정 · 나기 · 저권 · 이몽양 · 하경명 · 서정경 · 변공 · 고린 · 정선부 · 육심 · 왕정진 · 이렴 · 문징명 · 황좌 · 가유기 · 왕신중 · 고숙사 · 진속 · 전여성 · 황보효 · 모곤 · 사진 · 이반룡 · 왕세정 · 귀유광 · 이유정 · 서위 · 도륭 · 왕치등 · 구구사 · 당시승 · 초횡 · 황휘 · 진인석 · 동기창 · 원굉도 · 왕유검 · 조학전 · 왕지견 · 애남영 · 장부
289·290·291·292·293·294·295권 「충의전(忠義傳)」
화운 · 왕개 · 손염 · 모로 · 왕강 · 왕의(王禕) · 웅정 · 역소종 · 금팽 · 황보빈 · 장영(張瑛) · 왕정 · 만침 · 주헌 · 양충 · 오경 · 곽은 · 손수 · 허규 · 황굉 · 송이방 · 왕면 · 진문시 · 왕부 · 전순 · 주부 · 손당 · 두괴 · 황천 · 왕덕 · 왕일중 · 소몽양 · 장진덕 · 동진륜 · 공만록 · 관양상 · 서조강 · 희문윤 · 주만년 · 장요(張瑤) · 하천구 · 반종안 · 장전 · 하정괴 · 고방좌 · 최유수 · 정국창 · 당환순 · 이헌명 · 장춘 · 염생두 · 왕조곤 · 손사미 · 교약문 · 장병문 · 언윤소 · 길공가 · 형국새 · 장진수 · 등번석 · 장혼방 · 장윤등 · 장광규 · 이중정 · 방국유 · 하승광 · 방유 · 윤몽오 · 노겸 · 공원상 · 왕신 · 사기언 · 양지인 · 왕국훈 · 여홍업 · 장소등 · 왕도(王燾) · 장가징 · 서상경 · 완지전 · 학경춘 · 장극검 · 서세순 · 무대열 · 전조징 · 성이항 · 안일유 · 반홍 · 진예포 · 유진지 · 이승운 · 관영걸 · 장유세 · 왕세수 · 허영희 · 이정좌 · 노세임 · 유인 · 하섭 · 조흥기 · 하통춘 · 진미 · 심길신 · 노학고 · 진만책 · 허문기 · 곽이중 · 최문영 · 서학안 · 풍로운 · 채도헌 · 장붕익 · 유희조 · 왕손란 · 정양주 · 황세청 · 양훤 · 당시명 · 단복흥 · 간인서 · 사오교 · 도임 · 축만령 · 진빈 · 왕징준 · 정태운 · 하복 · 장나준 · 김육동 · 탕문경 · 허담 · 왕교동 · 장계맹 · 유사두 · 왕여정 · 윤신 · 고기훈 · 장요(張耀) · 미수도 · 경정록 · 석상진 · 서도흥 · 유정표
296·297권 「효의전(孝義傳)」
정렴 · 서윤양 · 전영 · 요비 · 구탁 · 최민 · 주완 · 오홍 · 주후 · 유근(劉謹) · 이덕성 · 심덕사 · 사정가 · 권근 · 조신 · 국상 · 왕준(王俊) · 석내 · 사오상 · 주오 · 정영 · 부즙 · 양성장 · 사용 · 하경 · 왕원(王原) · 황새 · 귀월 · 하린 · 손청 · 유헌 · 용사언 · 유자(兪孜) · 최감 · 당엄 · 구서 · 장균 · 왕재복 · 하자효 · 아기 · 조중화 · 왕세명 · 이문영 · 공금 · 양통조 · 장청아
298권 「은일전(隱逸傳)」
장개복 · 예찬 · 서방 · 양항 · 진회(陳洄) · 양인(楊引) · 오해 · 유민 · 양보 · 손일원 · 심주 · 진계유
299권 「방기전(方伎傳)」
활수 · 갈건손 · 여복 · 예유덕 · 주한경 · 왕리 · 주전(周顚) · 장중 · 장삼봉 · 원공 · 대사공 · 성인 · 황보중화 · 동인 · 오걸 · 능운 · 이시진 · 주술학 · 장정상 ,유연연,
300권 「외척전(外戚傳)」
진공 · 마공 · 여본 · 마전 · 장기(張麒) · 호영(胡榮) · 손충 · 오안 · 전귀 · 왕천 · 주능 · 왕진(王鎭) · 만귀 · 소희 · 하유 · 진만언 · 방예 · 진경행 · 이위 · 왕위(王偉) · 정승헌 · 왕승 · 유문병 · 장국기 · 주규
301·302·303권 「열녀전(列女傳)」
정월아 · 제아 · 정금노 · 노가랑 · 탕혜신 · 묘총 · 만의전 · 왕묘봉 · 당귀매 · 양태노 · 정은아 · 두묘선 · 초낭맹 · 호귀정 · 오길고 · 서아장 · 양옥영 · 우봉랑 · 예미옥 · 고형와 · 항숙미
304·305권 「환관전(宦官傳)」
정화 · 김영 · 왕진(王振) · 조길상 · 회은 · 왕직(汪直) · 양방 · 하정 · 이광 · 장종 · 유근 · 장영(張永) · 곡대용 · 이방 · 풍보 · 장경 · 진증 · 진구 · 왕안 · 위충현 · 왕체건 · 최문승 · 장이헌 · 고기잠 · 왕승은 · 방정화
306권 「엄관전(閹黨傳)」
초방 · 장채 · 고병겸 · 최정수 · 유지선 · 조흠정 · 왕소휘 · 곽유화 · 염명태 · 가계춘 · 전이경
307권 「영행전(佞倖傳)」
기강 · 문달 · 이매성 · 계요 · 강빈 · 육병 · 소원절 · 도중문 · 단조용 · 공가패 · 호대순 · 전옥 · 왕금 · 고가학 · 성단명 · 주융희
308권 「간신전(奸臣傳)」 309권 「유적전(流賊傳)」
호유용 · 진녕 · 진영 · 엄숭 · 주연유 · 온체인 · 마사영 이자성 · 장헌충
310권 「호광토사전(湖廣土司傳)」
311·312권 「사천토사전(四川土司傳)」
313·314·315권 「운남토사전(雲南土司傳)」
316권 「귀주토사전(貴州土司傳)」
317·318·319권 「광서토사전(廣西土司傳)」
320·321·322·323·324·325·326·327·328권 「외국전(外國傳)」
조선(← 고려) · 안남(대우후여조막조후여조) · 일본 · 유구(삼산유구) · 여송 · 합묘리 · 미락거 · 사요 · 계롱 · 파라 · 마엽옹 · 고마랄랑 · 풍가시란 · 문랑마신 · 점성 · 진랍 · 섬라 · 과왜 · 삼불제 · 발니 · 만랄가 · 소문답랄(팔석아제) · 수문달나 · 소록 · 서양쇄리 · 람방 · 담파 · 백화 · 팽형 · 나고아 · 여벌 · 남발리 · 아노 · 유불 · 정기의 · 파나서 · 불랑기 · 화란 · 고리 · 가지 · 소갈란 · 대갈란 · 석란산 · 방갈랄 · 소납박아 · 좌법인 · 목골도속 · 불랄왜 · 죽보 · 아단 · 알살 · 마림 · 홀로모사 · 유산 · 비날 · 남무리 · 가이륵 · 감파리 · 급란단 · 사리만니 · 저리 · 천리달 · 실랄비 · 고리반졸 · 알니 · 하랄비 · 기랄니 · 굴찰니 · 사랄제 · 팽가나 · 팔가의 · 오사랄척 · 감파 · 아왜 · 타회 · 백갈달 · 흑갈달 · 불름 · 의대리아 · 달단(북원) · 와랄 · 올량합
329·330·331·332권 「서역전(西域傳)」
합밀위 · 유성 · 화주 · 토로번 · 안정위 · 아단위 · 곡선위 · 적근몽고위 · 사주위 · 한동위 · 한동좌위 · 합매리 · 서번제위 · 오사장 · 아난공덕국 · 니팔랄국 · 타감오사장행도지휘사사 · 장하서어통영원산위사 · 동복한호선위사 · 살마아한 · 사록아해 · 달실간 · 새람 · 양이 · 갈석 · 질리미 · 복화아 · 별실리팔 · 합열 · 엄도회 · 팔답흑상 · 우전 · 실자사 · 엄적간 · 합실합아 · 역사불한 · 화랄차 · 걸력마아 · 백송호아 · 답아밀 · 납실자한 · 매진 · 일락 · 미석아 · 흑루 · 토래사 · 아속 · 사합로 · 천방 · 묵덕나 · 곤성 · 합삼등29부 · 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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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항생제가 발달하지 않았던 전근대에 거세는 정말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고, 실제로 환관이 되려고 거세를 하다가 사망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 그 때문인지 중화제국 왕조들이 조공을 받는 품목 중에 궁녀로 채용할 젊은 여성뿐 아니라 환관으로 쓸 화자(고자)도 포함되어 있었을 정도였고, 오죽했으면 환관을 제조하는 도자장들이 환관이 되길 원하는 사람에게 3번의 질문을 해서 약간이라도 망설일 경우 환관으로 만들지 않았다.[2] 평생 동안 문맹이었다...[3] 훗날 왕안은 천계제 주유교의 즉위에도 결정적인 공을 세운다.[4] 다만 왕재인은 만력 47년(1619)에 사주하여 자신의 아들이 즉위하는 것을 보지 못 했다.[5] 한국과 중국에서 당직을 서는 환관은 궁중에서 밥을 지어 먹을 수 없었으므로 본인이 가져온 차가운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궁녀는 궁궐에서 불을 지필 수 있었다. 이에 환관들이 평소에 친한 궁녀에게 음식을 데워달라고 부탁하면서 함께 음식을 먹었는데 이렇게 남녀가 오랫동안 함께 밥을 먹으면 친해지기 마련이었고, 이러한 환관과 궁녀 간의 은밀한 부부놀이가 대식의 유래가 되었다. 중국의 경우, 명초에는 은밀히 행해지다가 만력 이후부터는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군주의 성은을 한 번도 받지 못한 궁녀들끼리 일종의 동성애를 즐기는 행위도 대식이라고 했다.[6] 훗날 그는 황제의 어명을 가탁하여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결의형제 위조를 귀양 보내 죽이는 비열함까지 드러냈다.[7] 위충현은 환관이므로 고자인데 대체 무슨 수로 객씨와 간통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보통 중국 환관과 달리 스스로 거세를 하다가 완벽히 거세를 못 해서 생식기가 남아있었다고도 한다.[8] 물론 글씨를 적어야 할 일은 다른 사람들이 대신 해주었다.[9] 명나라에서 환관들로 구성된 군대를 말하는데 중국에서 환관은 황제의 시중을 들며 경호도 맡았다.[10] 군사정권 시절의 대한민국으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장 겸 경호실장 겸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셈이다.[11] 사람을 세운 채로 나무형틀에 가두어 꼼짝달짝 못하게 하는 잔혹한 형벌이다.[12] 여기엔 단순히 위충현의 부정부패 의혹뿐만 아니라 희종의 자녀들의 미심쩍은 죽음에 위충현과 객씨가 연루되었다는 무시무시한 죄상까지 들어있었다.[13] 물론 위충현 본인도 문맹이었으므로 측근 환관 왕체건이 대신 읽었다.[14] 이 점장록은 송강, 임충, 공손승 등의 인물들에 동림당 인사들을 대입한 책이다. 한마디로 최고의 충신들을 도적떼에 비유해서 모욕하려고 한 것. 위충현은 이 점장록을 보고는 너무 재밌어 해서 천계제에게도 보여줬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천계제가 너무 무식해서 수호전이 뭔지 설명부터 해줘야 했고, 설명을 전부 들은 후엔 오히려 주인공들을 의로운 인물들이라고 칭찬하는 바람에 이 책의 배포 계획은 취소했다고 한다.[열람주의] 자신을 험담한 남자의 가죽을 그 남자의 친구의 눈앞에서 산 채로 벗긴 후 녹인 송진을 전신에 바른 후 정을 쳐 피부를 굳어낸 살과 같이 떼어 내는 방식이었다.[16] 말에서 내리는 것. 전근대 예법에서 하마는 높은 사람 앞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예의였다.[17] 만약 서아시아유럽 같았으면 위충현의 계획이 먹혔을 것이다. 알폰소 13세샤푸르 2세 항목 참조.[18] 천계 3년(1623)부터 5년(1625까지 원자 3명이 태어났지만 모두 요절했다. 앞서 말한 양련이 위충현을 고발한 것에도 황제의 자식을 죽였다는 혐의가 들어가 있었다.[19] 오죽하면 야사에서는 궁에 들어왔을 때 숭정제가 장 황후의 귀띔에 따라 궁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일절 먹지 않고 본인이 밖에서 챙겨온 음식을 먹었으며, 스스로 검을 들고 잠도 자지 못하며 경계했다는 기록까지 있다.[20] 산해관에서 청나라를 방어하던 원숭환을 의심병으로 사형, 이자성의 반란군을 때려 잡던 홍승주의 송산전투로 인한 청나라에 항복 등[21]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에 박관천에 의해 인용되기도 했다.[22] 당나라 시기의 대환관으로 환관들의 최전성기를 연 자이다. 후한양기와 세트일 정도로 악명이 대단하다.[23] 황제의 측근이 되었음에도 과거 자신이 했었던 궁중의 변기 청소일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는 의외의 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