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7-29 01:40:23

육완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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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제기(帝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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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ece5b6>1권 「선제기(宣帝紀)」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사마사 · 사마소(昭)사마염
<rowcolor=#ece5b6>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사마치 · 사마업사마예 · 사마소(紹)
<rowcolor=#ece5b6>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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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ece5b6>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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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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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4><tablebgcolor=#3797e8><tablecolor=#181818,#e5e5e5><color=#ece5b6>31·32권 「후비전(后妃傳)」
장춘화 · 하후휘 · 양휘유 · 왕원희 · 양염 · 양지 · 좌분 · 호방 · 제갈완 · 가남풍 · 양헌용 · 사구 · 왕원희(1) · 하후광희 · 순씨
우맹모 · 유문군 · 두릉양 · 주씨 · 저산자 · 하법예 · 왕목지 · 유도련 · 정아춘 · 왕간희 · 이능용 · 왕법혜 · 진귀녀 · 왕신애 · 저영원
<rowcolor=#ece5b6>33권 「왕상등전(王祥等傳)」34권 「양호등전(羊祜等傳)」
왕상 ,왕람, · 정충 · 하증 ,하소, · 석포 ,석숭,양호 · 두예(預)
<rowcolor=#ece5b6>35권 「진건등전(陳騫等傳)」36권 「위관등전(衛瓘等傳)」
진건 · 배수 ,배외 배해 배헌,위관 ,위항 위개, · 장화 · 유변
37권 「종실전(宗室傳)」
사마부(孚) ,사마옹(邕) 사마숭 사마망 사마무 사마보 사마익 사마황 사마부(裒) 사마작 사마위(韡) 사마소(韶) 사마괴, ,사마규 사마송 사마형 사마돈 사마경 사마도, · 사마권 ,사마식 사마석 사마웅, ,사마굉 사마홍 사마소(邵) 사마숭 사마집 사마준(俊) 사마순 사마회, · 사마태 ,사마략 사마등 사마모, · 사마수(綏) ,사마효, · 사마수(遂) ,사마훈, · 사마손 ,사마수(隨) 사마수(邃) 사마승 사마무기 사마념 사마상지 사마회지 사마휴지 사마윤지 한연지, · 사마목 · 사마릉 ,사마순 사마빈,
38권 「선오왕문육왕전(宣五王文六王傳)」
사마간(榦) · 사마주 ,사마근 사마담 사마요 사마최, · 사마경(京) · 사마준(駿) ,사마창 사마흠, · 사마융 · 사마유(攸) ,사마유(蕤), · 사마조 · 사마정국 · 사마광덕 · 사마감 · 사마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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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침(王沈) ,왕준(浚), · 순의 · 순욱 ,순번 순조 순혁, · 풍담가충 · 양준 ,양요 양제, 위서 · 이희 · 유식 · 고광
<rowcolor=#ece5b6>42권 「왕혼등전(王渾等傳)」43권 「산도등전(山濤等傳)」
왕혼 ,왕제, · 왕준(濬) · 당빈 산도 ,산간 산하, · 왕융 ,왕연 왕징 곽서, · 악광
<rowcolor=#ece5b6>44권 「정무등전(鄭袤等傳)」45권 「유의등전(劉毅等傳)」
정무 ,정묵, · 이윤 · 노흠 ,노지(盧志) 노심, · 화표 ,화이 화항 화교, · 석감 · 온선유의 ,유돈, · 화교 · 무해 · 임개 · 최홍 · 곽혁 · 후사광 · 하반
<rowcolor=#ece5b6>46권 「유송등전(劉頌等傳)」47권 「부현전(傅玄傳)」48권 「상웅등전(向雄等傳)」
유송 · 이중부현 · 부함 · 부지상웅 · 단작 · 염찬
<rowcolor=#ece5b6>49권 「완적등전(阮籍等傳)」
완적 · 혜강 · 상수 · 유영 · 사곤 · 호무보지 · 필탁 · 왕니 · 양만 · 광일
<rowcolor=#ece5b6>50권 「조지등전(曹志等傳)」
조지(曹志) · 유준 · 곽상 · 유순 · 진수(秦秀)
<rowcolor=#ece5b6>51권 「황보밀등전(皇甫謐等傳)」52권 「극선등전(郤詵等傳)」 53권 「민회태자전(愍懷太子傳)」
황보밀 · 지우 · 속석 · 왕접극선 · 완충 · 화담민회태자
<rowcolor=#ece5b6>54권 「육기등전(陸機等傳)」55권 「하후담등전(夏侯湛等傳)」 56권 「강통등전(江統等傳)」
육기 · 육운하후담 · 반악 · 장재강통 · 손초
<rowcolor=#ece5b6>57권 「나헌등전(羅憲等傳)」58권 「주처등전(周處等傳)」
나헌 ,나상, · 등수 · 마륭 · 호분 · 오언 · 장광 · 조유주처 · 주방 ,주무 주초 주효,
59권 「여남왕량등전(汝南王亮等傳)」
사마량 · 사마위(瑋) · 사마륜 · 사마경(冏) · 사마예 · 사마영 · 사마옹(顒) · 사마월
60권 「해계등전(解系等傳)」
해계 · 손기 · 맹관 · 견수 · 무파 · 황보중 · 장보 · 이함 · 장방 · 염정 · 색정 ,색침, · 가필
<rowcolor=#ece5b6>61권 「주준등전(周浚等傳)」62권 「유곤등전(劉琨等傳)」63권 「소속등전(邵續等傳)」
주준 ,주복, · 성공간 · 구희 · 화질 · 유교유곤(劉琨) · 조적소속 · 이구 · 단필제 · 위준 ,위해, · 곽묵
64권 「무십삼왕원사왕간문삼자전(武十三王元四王簡文三子傳)」
사마궤 · 사마간(柬) · 사마경(景) · 사마지 · 사마유(裕) · 사마윤 · 사마연(演) · 사마해 · 사마하 · 사마모(謨) · 사마안 · 사마회 · 사마부(裒) · 사마충(沖) · 사마희 · 사마환 · 사마도생 · 사마욱(郁) · 사마도자
65권 「왕도전(王導傳)」
왕도
<rowcolor=#ece5b6>66권 " 「유홍등전(劉弘等傳)」67권 「온교등전(溫嶠等傳)」68권 「고영등전(顧榮等傳)」
유홍 · 도간온교 · 치감고영 · 기첨 · 하순 · 설겸
<rowcolor=#ece5b6>69권 「유외등전(劉隗等傳)」70권 「응첨등전(應詹等傳)」71권 「손혜등전(孫惠等傳)」
유외 ,유파, · 조협 · 대약사 · 주의응첨 · 감탁 · 변곤 · 유초 · 종아손혜 · 웅원 · 왕감 · 진군 · 고숭
<rowcolor=#ece5b6>72권 「곽박등전(郭璞等傳)」73권 「유량전(庾亮傳)」74권 「환이전(桓彝傳)」
곽박 · 갈홍유량 · 유역 · 유빙 · 유익 환이(彝) ,환운 환활 환비 환충,
<rowcolor=#ece5b6>75권 「왕담등전(王湛等傳)」76권 「왕서등전(王舒等傳)」77권 「육엽등전(陸曄等傳)」
왕담(湛) · 순숭 · 범왕 · 유담 · 장빙 · 한백왕서 · 왕이 · 우담 · 고중 · 장개육엽 · 하충 · 저삽 · 채모 · 제갈회 · 은호
<rowcolor=#ece5b6>78권 「공유등전(孔愉等傳)」79권 「사상등전(謝尙等傳)」80권 「왕희지전(王羲之等傳)」
공유 · 정담 · 도회사상 · 사안 ,사염 · 사혼 · 사현 · 사만 · 사랑 · 사석 · 사막,왕희지
81권 「왕손등전(王遜等傳)」
왕손 · 채표 · 양감 · 유윤 · 환선 ,환이(伊), · 주사 · 모보 · 유하 · 등악 · 주서
82권 「진수등전(陳壽等傳)」
진수(陳壽) · 왕장문 · 우부 · 사마표 · 왕은 · 우예(預) · 손성 · 간보 · 등찬 · 사침 · 습착치 · 서광
<rowcolor=#ece5b6>83권 「고화등전(顧和等傳)」84권 「왕공등전(王恭等傳)」85권 「유의등전(劉毅等傳)」
고화 · 원괴 · 강유 · 차윤 · 은의 · 왕아왕공 · 유해 · 유뇌지 · 은중감 · 양전기유의 · 제갈장민 · 하무기 · 단빙지 · 위영지
<rowcolor=#ece5b6>86권 「장궤전(張軌傳)」87권 「양무소왕전(涼武昭王傳)」
장궤양무소왕 · 양후주
88권 「효우전(孝友傳)」
이밀 · 성언 · 하방 · 왕부 · 허자 · 유곤(庾袞) · 손구 · 안함 · 유은 · 왕연 · 왕담(談) · 상우 · 하기 · 오규
89권 「충의전(忠義傳)」
혜소 · 왕표 · 유심 · 국윤 · 초숭 · 가혼 · 왕육 · 위충 · 신면 · 유민원 · 주해 · 환웅 · 한계 · 주기 · 이웅 · 악도융 · 우괴 · 심경 · 길읍 · 왕량 · 송구 · 차제 · 정목 · 신공정 · 나기생 · 장의
90권 「양리전(良吏傳)」
노지(魯芝) · 호위 · 두진 · 두윤 · 왕굉 · 조터 · 반경 · 범귀 · 정소 · 교지명 · 등유 · 오은지
91권 「유림전(儒林傳)」
범평 · 문립 · 진소 · 우희 · 유조 · 범육 · 서묘 · 최유 · 범륭 · 두이 · 동경도 · 속함 · 서막 · 공연 · 범선 · 위소 · 범홍지 · 왕환
92권 「문원전(文苑傳)」
응정 · 성공수 · 좌사 · 조지(趙至) · 추담 · 조거 · 저도 · 왕침(王沉) · 장한 · 유천 · 조비 · 이충 · 원굉 · 복도 · 나함 · 고개지 · 곽징지
93권 「외척전(外戚傳)」
양수 · 왕순 · 양문종 · 양현지 · 우예(豫) · 유침 · 두예(乂) · 저부 · 하준 · 왕몽 · 왕하 · 왕온 · 저상
94권 「은일전(隠逸傳)」
손등 · 동경 · 하통 · 주충 · 범찬 · 노승 · 동양 · 곽원 · 곽기 · 오조 · 노포 · 범등 · 임욱 · 곽문 · 공장 · 맹루 · 한적 · 초수 · 적탕 · 곽번 · 신밀 · 유린지
삭습 · 양가 · 공손봉 · 공손영 · 장충 · 석원 · 송섬 · 곽하 · 곽우 · 기가 · 구형 · 사부 · 대규 · 공현지 · 도담 · 도연명
95권 「예술전(藝術傳)」
진훈 · 대양 · 한우 · 순우지 · 보웅 · 두불건 · 엄경 · 외소 · 복후 · 포정 · 오맹 · 행령 · 불도징 · 마유 · 선도개 · 황홍 · 색담 · 맹흠 · 왕가 · 승섭 · 곽논 · 나습 · 욕곽 · 태산
96권 「열녀전(列女傳)」
신헌영 · 엄헌 · 종염 · 왕혜풍 · 이락수 · 순관 · 사도온 · 용린 · 유아 · 염부인 · 소혜 · 모황후 · 단원비 · 양황후 · 윤태후
97권 「사이전(四夷傳)」
부여 · 숙신 · 마한 · 진한 · · 토욕혼 · 언기국 · 구자국 · 대완국 · 강거국 · 대진국 · 임읍국 · 부남국 · 흉노
<rowcolor=#ece5b6>98권 「왕돈등전(王敦等傳)」99권 「환현등전(桓玄等傳)」
왕돈 · 환온환현 · 변범지 · 은중문
100권 「왕미등전(王彌等傳)」
왕미 · 장창 · 진민 · 왕여 · 두증 · 두도 · 왕기 · 조약 · 소준 · 손은 · 노순 · 초종
(1) 사마소 부인 왕원희와는 다른 인물로 효회태후로 추존된 사마치의 어머니.
[ 재기(戴記) ]
||<tablebgcolor=#3797e8><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유화 · 유선, 유총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석홍 · 장빈, 석계룡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배억 · 고첨, 모용황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왕타, 부견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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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797e8><colcolor=#fff> 흥평강백(興平康伯)
陸玩 | 육완
시호 (康)
작위 흥평백(興平伯)
(陸)
(玩)
사요(士瑤)
생몰 278년 ~ 342년 1월 7일
출신 오군(吳郡) 오현(吳縣)
부모 부친 - 육희(陸喜)
자녀 아들 - 육시(陸始), 육납(陸納)
1. 개요2. 생애

1. 개요

동진의 인물로 자는 사요(士瑤). 양주 오군(吳郡) 오현(吳縣) 출신으로, 삼국시대 오나라의 명문가인 오군 육씨 집안 출신이다. 형 육엽과 마찬가지로 동진에서 고위 관직을 지냈다. 아들로는 동진에서 상서를 지낸 육시와 상서령을 지낸 육납이 있다.

2. 생애

도량이 깊고 우아하여 약관의 나이에 이르렀을 때부터 이미 아름다운 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명사 하순은 매번 그를 가리켜 청렴하고 공정하다며 칭찬해 마지 않았다. 여러 군(郡)은 물론이고 동해왕 사마월 또한 육완을 초빙하려 했으나, 육완이 이를 전부 거절했다.

건흥 원년(313년) 5월, 낭야왕 사마예가 좌승상에 임명되자, 육완은 그의 부름을 받고 출사해 승상참군이 되었다. 당시 낭야왕 사마예의 총신인 왕도는 강남에서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명문가인 오군 육씨 집안과 사돈 관계를 맺고자 육완에게 혼사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육완이 말했다.
"작은 언덕에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함께 자랄 수 없고, 같은 화분에 향초와 누린내풀을 함께 기를 수 없습니다. 이 완은 비록 재주가 없는 인물이나, 인륜을 어지럽히지 않으려는 의리 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왕도는 육완의 말을 듣고 혼사를 포기했다. 이후 육완이 왕도의 집에 방문해 우유를 마셨다가 병이 들어, 왕도에게 쪽지를 보내 말했다.
"저는 비록 오인(吳人)이나, 하마터면 북방의 귀신이 될 뻔했습니다."
육완이 권세를 가볍게 여김이 이와 같았다. 이후로도 육완은 낭야왕 사마예의 밑에서 누차 승진해 분무장군, 시중을 역임했으나 이내 병으로 사직했다.

대장군 왕돈이 육완에게 자신의 장사(長史)가 되라며 군령으로 협박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왕돈 휘하로 들어갔다. 얼마 뒤, 명제 사마소 왕돈의 난을 평정하자, 상서령 치감이 왕돈의 부하들은 간악을 보고도 바로잡지 못한 죄를 물어 모두 면직시키고 금고형에 처할 것을 주장했다. 이때 육완은 온교의 도움을 받아 다행히 여기에 연좌되지 않고 시중으로 복직되었다. 이후 이부상서, 회계왕사(會稽王師)에 임명받았으나 사양하니, 상서좌복야, 양주대중정으로 옮겨졌다.

함화 2년(327년) 12월, 역양내사 소준이 예주자사 조약과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켜 도성 건강을 함락시키고 황궁을 대거 약탈했다. 육완은 형 좌광록대부 육엽과 함께 궁성을 지켰다.

함화 4년(329년) 정월, 당시 소준은 의병과 싸우기 위해 석두성에 주둔했고, 부하인 광술을 남겨 건강의 궁성을 지키게 했다. 머지않아 소준이 허무하게 전사하자 광술은 육엽과 육완의 설득에 넘어가 동진에 귀순했다. 소준의 난이 평정된 후, 그 공을 인정받아 흥평백(興平伯)에 봉해졌다.

함화 6년(331년) 8월, 조정에서 육완을 상서령 삼았다가, 조서를 내려 좌광록대부, 개부의동삼사로 임명하고 산기상시를 더했다. 육완은 두 차례에 걸쳐 사양했으나 조정에서 전부 불허하여 하는 수 없이 관직을 받아야 했다.

함강 6년(340년) 정월, 승상 왕도, 태위 치감에 이어 사공 유량까지 조정의 유력 대신들이 줄줄이 사망해 조정 내외로 크게 근심했다. 조정에서는 덕망이 높은 육완을 시중, 사공으로 삼고 우림군 40명을 붙여주어 그 빈 자리를 채우고자 했다. 육완 또한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기꺼이 관직을 받았다.

육완이 사공에 임명되었을 때, 어떤 사람이 그의 저택을 찾아와 기둥과 들보 사이에 술 한 잔을 따르고는 말했다.
"오늘날 재목이 부족하여 그대가 주춧돌이 된 것이니, 그대는 나라의 들보를 넘어뜨리지 말지어다!"
육완이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답했다.
"경의 좋은 말, 잘 새겨 듣도록 하겠소."
이윽고 자신의 빈객들을 향해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삼공이 된 것은 천하에 사람이 없기 때문이구나."
동진의 사대부들은 이 일화를 전해듣고 육완을 지혜롭다 여겼다.

육완은 비록 사공에 올랐으나 겸양하는 자세로 속관들을 임용하지 않았다. 결국, 성제 사마연이 보다못해 속관을 두라고 권고하니, 육완은 비로소 사공부에 속관을 두었는데 모두 행실이 올바른 인재들이었다. 육완은 명석하고 항상 위엄이 있어 황제와 조정의 여러 대신들로부터 신망을 받았다. 그렇게 그가 사공을 지낸지 2년이 지났을 무렵, 병이 심해져 스스로 회복될 가망이 없음을 깨달았다. 육완은 상표하여 성제 사마연에게 감사함과 더이상 보좌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한스러움을 전했다.

함강 7년(341년) 12월 14일,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동진 조정에서는 그의 집안에 사병 1,000명을 하사하고 그를 태위로 추증했다. 향년 64세.[1] 시호는 강(康). 아들 육시(陸始)가 후사를 이었다. 훗날 조정에서 동진의 공신 집안에 대한 대우를 대대적으로 삭감한 일이 있었는데, 육완의 집안을 포함한 6개 가문만은 삭감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1] 양력으로 계산할 시, 342년 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