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21:05:15

이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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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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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27 이호준 [[틀:NC 다이노스 감독|
]] · 69 김종호 · 75 진종길 · 76 전민수
· 79 조영훈 · 80 지석훈 · 86 김종민 · 90 손정욱
· 99 이용훈 · # 서재응'''
2군
0 공필성 · 71 손용석 · 72 전상렬 · 74 전형도
· 78 최건용 · 81 김건태 · 83 윤병호 · 85 권정웅
· 92 윤수강 · 98 김수경 · # 박용근
코칭스태프 | 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군 입대 선수등록 선수육성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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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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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만
삼성 라이온즈
파일:SSG 랜더스 엠블럼.svg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svg 파일:한화 이글스 엠블럼.png 파일:NC 다이노스 홈 엠블럼.svg 파일:키움 히어로즈 엠블럼.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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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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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7 2007 2010

파일:NC_Dios_2020_KoreanSeries_Champions.png파일:LG 트윈스 우승 엠블럼 V3.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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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타점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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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82 1983 1984 1985 1986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69타점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 74타점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 80타점
유승안
빙그레 이글스 / 85타점
김봉연
해태 타이거즈 / 74타점
<rowcolor=#fff> 1987 1988 1989 1990 1991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 76타점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89타점
유승안
빙그레 이글스 / 85타점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91타점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114타점
<rowcolor=#fff> 1992 1993 1994 1995 1996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119타점
김성래
삼성 라이온즈 / 91타점
김성래
삼성 라이온즈 / 87타점
김상호
OB 베어스 / 101타점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 108타점
<rowcolor=#fff> 1997 1998 1999 2000 2001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14타점
우즈
OB 베어스 / 103타점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23타점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 115타점
우즈
두산 베어스 / 113타점
<rowcolor=#fff> 2002 2003 2004 2005 2006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26타점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44타점
이호준
SK 와이번스 / 112타점
서튼
현대 유니콘스 / 102타점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88타점
<rowcolor=#fff> 2007 2008 2009 2010 2011
심정수
삼성 라이온즈 / 101타점
가르시아
롯데 자이언츠 / 111타점
김상현
KIA 타이거즈 / 127타점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133타점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118타점
<rowcolor=#fff> 2012 2013 2014 2015 2016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105타점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117타점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124타점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146타점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144타점
<rowcolor=#fff> 2017 2018 2019 2020 2021
러프
삼성 라이온즈 / 124타점
김재환
두산 베어스 / 133타점
샌즈
키움 히어로즈 / 113타점
로하스
kt wiz / 135타점
양의지
NC 다이노스 / 111타점
<rowcolor=#fff> 2022 2023 2024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113타점
노시환
한화 이글스 / 101타점
오스틴
LG 트윈스 / 132타점
}}}}}}}}}

파일:인천광역시 휘장.svg
인천 프로야구 20년 올스타
in 2002. 6. 6. SK 와이번스 공식 홈페이지 팬 투표 선정

OF / 태평양

OF / 현대

OF / 현대

SS / 현대

2B / 청보

3B / 태평양
''' '''
LHP / SK RHP / 현대

1B / 현대
''''''
DH / SK
''''''
C / 현대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타자 마일스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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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
(1993~2010)
2007년 / 2318안타
전준호
(1991~2009)
2008년 / 2018안타
장성호
(1996~2015)
2012년 / 2100안타
이병규
(1997~2016)
2014년 / 2043안타
홍성흔
(1999~2016)
2015년 / 2046안타
박용택
(2002~2020)
2016년 / 2504안타
정성훈
(1999~2018)
2016년 / 2159안타
이승엽
(1995~2017)
2016년 / 2156안타
박한이
(2001~2019)
2016년 / 2174안타
이진영
(1999~2018)
2017년 / 2125안타
김태균
(2001~2020)
2018년 / 2209안타
최형우
(2002~)
2021년 / 2323안타
손아섭
(2007~)
2021년 / 2416안타
이대호
(2001~2022)
2021년 / 2199안타
이용규
(2004~)
2022년 / 2076안타
김현수
(2006~)
2022년 / 2236안타
최정
(2005~)
2023년 / 2133안타
황재균
(2006~)
2023년 / 2040안타
강민호
(2004~)
2024년 / 2000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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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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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훈
(1986~2005)
2000년 / 340홈런
이승엽
(1995~2017)
2003년 / 467홈런
양준혁
(1993~2010)
2006년 / 351홈런
심정수
(1994~2008)
2007년 / 328홈런
박경완
(1991~2013)
2010년 / 314홈런
송지만
(1996~2014)
2010년 / 311홈런
박재홍
(1996~2012)
2012년 / 300홈런
이호준
(1994~2017)
2015년 / 337홈런
이범호
(2000~2019)
2017년 / 329홈런
김태균
(2001~2020)
2018년 / 311홈런
최정
(2005~)
2018년 / 495홈런
이대호
(2001~2022)
2019년 / 374홈런
최형우
(2002~)
2019년 / 373홈런
박병호
(2005~)
2020년 / 380홈런
강민호
(2004~)
2022년 / 319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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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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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호
(1991~2009)
2005년 / 549도루
이종범
(1993~2011)
2009년 / 510도루
이대형
(2003~2019)
2017년 / 505도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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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KBO 리그 투수 마일스톤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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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MV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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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4월 5월 6월 7월 9월 10월
2010 시즌
카도쿠라
SK 와이번스
류현진
한화 이글스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류현진
한화 이글스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송승준
롯데 자이언츠
2011 시즌
박용택
LG 트윈스
이병규
LG 트윈스
가르시아
한화 이글스
윤석민
KIA 타이거즈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오승환
삼성 라이온즈
2012 시즌
정성훈
LG 트윈스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박석민
삼성 라이온즈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이호준
SK 와이번스
서재응
KIA 타이거즈
2013 시즌
양현종
KIA 타이거즈
옥스프링
롯데 자이언츠
손민한
NC 다이노스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2014 시즌
유희관
두산 베어스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찰리
NC 다이노스
강정호
넥센 히어로즈
강정호
넥센 히어로즈
-[a]
2015 시즌
안영명
한화 이글스
이호준
NC 다이노스
김태균
한화 이글스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해커
NC 다이노스
정의윤
SK 와이번스
[a]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으로 인한 브레이크로 MVP 미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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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올스타 40인
(득표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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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선동열 최동원 이종범 이승엽 송진우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장효조 양준혁 구대성 이강철 장종훈
<rowcolor=#fff>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박철순 이만수 정민철 김태균 박용택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김용수 박재홍 정민태 이병규 김시진
<rowcolor=#fff>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임창용 김기태 박경완 백인천 김성한
<rowcolor=#fff>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조계현 이상훈 한대화 김동주 심정수
<rowcolor=#fff>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김재박 박정태 니퍼트 전준호 배영수
<rowcolor=#fff>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홍성흔 이순철 정근우 박진만 우즈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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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장성호 이호준 정명원 이범호 김재현
<rowcolor=#fff>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류중일 마해영 윤학길 김원형 박한이
}}}}}}}}} ||
주제별 }}}}}}}}}

보유 기록
1경기 최다 볼넷 및 최다 연타석 볼넷[1][2] 6회(2012년 5월 20일)
최고령 KBO 포스트시즌 출전 41세 8개월 13일[3]
연속 타석 출루 기록 13타석(2003년 8월 17일~19일 DH2)[4]
}}} ||
이호준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KPBPA_LOGO_N.png (사)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역대 회장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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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5px -1px -11px"
초대 2대 3대 4대 5대
송진우
2000.01~2001.06
이호성
2001.07~2001.12
김동수
2005.01~2005.11
이종범
2005.12~2007.11
손민한
2007.12~2009.11
6대 7대 8대 9대 10대
손민한
2009.12~2011.11
박재홍
2011.12~2012.12
서재응
2013.01~2015.12
이호준
2016.01~2017.03
이대호
2019.03~2020.12
11대 12대 13대 14대 15대
양의지
2020.12~2022.12
김현수
2022.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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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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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2000 2001 2002 2003 2004
최태원 양용모 박계원 김기태 조원우
<rowcolor=#fff> 2005 2006 2007 2008 2009
강성우 김재현 김원형 이호준김원형 박경완김재현
<rowcolor=#fff> 2010 2011 2012 2013 2014
김재현 이호준 박정권 정근우 박진만
<rowcolor=#fff> 2015 2016 2017 2018~2019 2020
조동화 김강민 박정권 이재원 최정
<rowcolor=#fff> 2021 2022 2023 2024 2025
이재원
한유섬 (임시 주장)
한유섬 한유섬오태곤 추신수 공석
}}}}}}}}}}}}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315288> 파일:NC 다이노스 홈 엠블럼.svgNC 다이노스
역대 주장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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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fff> 2012 2013~2014 2015~2016 2017 2018
김동건 이호준 이종욱
박석민손시헌 손시헌박석민
<rowcolor=#ffffff> 2019 2020~2021 2022 2023 2024
나성범박민우 양의지
노진혁양의지 손아섭 손아섭박민우
<rowcolor=#ffffff> 2025
박민우
}}}}}}}}}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315288> 파일:NC 다이노스 홈 엠블럼.svgNC 다이노스
역대 감독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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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fff> 초대 2대 3대
김경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1~2018)
감독 대행
유영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8)
이동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9~2022)
감독 대행
강인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2)
강인권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3~2024)
<rowcolor=#fff> 3대 4대 파일:NC 다이노스 홈 워드마크.svg
감독 대행
공필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4)
이호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5~)
}}}}}}}}} ||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29번
김태동
(1992~1993)
<colbgcolor=#000000> 이호준
(1994~1995)
이원식
(1996)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38번
이상윤
(1990~1995)
이호준
(1996~2000.6.1.)
오우진
(2001)
SK 와이번스 등번호 17번
성영재
(2000~2000.6.1.)
이호준
(2000.6.2.~2001)
안재만
(2002)
SK 와이번스 등번호 27번
오승준
(2001)
이호준
(2002~2012)
백인식
(2013~2013.5.5.)
NC 다이노스 등번호 27번
김태우
(2012)
<colcolor=#00275a> 이호준
(2013~2017)
장현식
(2018)
장현식
(2018)
이호준
(2019~2021)
윤형준
(2022)
LG 트윈스 등번호 70번
임훈
(2019~2020)
이호준
(2022~2024)
결번
NC 다이노스 등번호 27번
이준호
(2024)
이호준
(2025~)
현역
}}} ||
}}} ||
파일:25 이호준.png
<colbgcolor=#315288><colcolor=#fff> NC 다이노스 No.27 [[감독|
]]
이호준
李昊俊 | Lee Hojoon
출생 1976년 2월 8일 ([age(1976-02-08)]세)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現 광주광역시 동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광주중앙초 - 광주충장중 - 광주제일고 - (호남대) (스포츠레저학 / 학사)
신체 187cm, 95kg, O형[5]
포지션 투수[6]1루수, 지명타자[7]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4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해태)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 (1994~2000)
SK 와이번스 (2000~2012)
NC 다이노스 (2013~2017)
지도자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18)
NC 다이노스 1군 타격코치 (2019~2021)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2022~2023)
LG 트윈스 1군 QC코치[8] (2024)[9]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24)[10]
NC 다이노스 감독 (2025~)
계약 2025 - 2027 / 14억 원[11]
연봉 2025 / 3억 원
병역 공익근무요원 (2006~2007)[12]
경력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2016~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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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별명5. 말말말6. 여담
6.1. 야구 관련6.2. 야구 외6.3. 인생은 이호준처럼
7. 사건 사고
7.1. 병역 비리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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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투수는 선동열처럼, 타자는 양준혁처럼, 야구는 이종범처럼, 인생은 이호준처럼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現 NC 다이노스 감독.

2.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이호준/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해태 타이거즈 시절 2000~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군 복무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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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별명

  • 가장 널리 알려진 별명은 '로또준'. 원래는 전성기 시절 '타점을 로또맞듯이 쓸어담는다' 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로또준이라는 별명이 생겼고, FA 계약 이후에는 부상과 하락세로 인해 한창 부진한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잊을 만하면 가끔 터지는 뜬금포로 인해 나온 별명. SK 와이번스 시절에는 '34억짜리 경비원'[21]으로 불렸다. 또한 FA 계약 이후 팀에게 너무 피해를 줬기에 또르노빌, 또쿠시마라고도 불렸으며, 워낙 SK 팬들의 애증의 대상으로 유명해서 야갤에서는 반어적 의미로 '씹솩의 소울'로 불렸다. 하지만 2012년 이후에는 팀에서 최정과 함께 거의 유일하게 쓸 만한 타자가 되어버려서, 진심으로 'SK의 쏘울'이 되었다.
  • NC 다이노스 이적 후에는 디시 NC 다이노스 갤러리에서 유래한 별명으로 '호부지'가 있다.# 이는 호준+아부지의 합성어로, 젊은 타자들의 아버지 역할이자 선수단의 가장으로서 꾸역꾸역 타점을 벌어다가 팀을 먹여살리는 선수라는 좋은 의미이다. 마침 NC 다이노스 시절 이호준 타석 시 응원가도 시의적절하게 "아빠의 청춘"이었다.

5. 말말말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 인생은 이호준.[22]
이승엽은 화려했고, 이호준은 묵묵했다. 이승엽은 임팩트있게 꾸준했고, 이호준은 소리 없이 꾸준했다. 결국 강한 자도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자도 강했다.
이승엽, 이호준이 2015년 올스타 득표 1, 2위 발표가 난 기사의 베스트 댓글.(하지만 지금은 네이버 스포츠 뉴스 댓글이 폐지됨에 따라 볼 수 없다.)
프로는 인내의 삶이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꺼진 뒤의 쓸쓸함을 곱씹을 줄 알아야 한다.
2013년 인터뷰 중, 후배들에게는 본인이 겪은 자기관리에 대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이런저런 잔소리를 할 예정이라 말하며.
부상 전, 나성범 & 이호준의 유쾌한 캠프 수다
(잠시 고민하더니) 진짜 어려운 질문이다.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선 진실된 땀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땀이 아니라. 진실되게 해라. 그리고 '앞으로 크게 내다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2013년 NC 스프링캠프,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 절대 하지 말고 피해야 할 것이 있냐는 박민우의 질문에.
[10대1 인터뷰] NC 이호준"계속 언더로 던졌으면 MLB 갔을 것"
내가 NC 입단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선수들을 한 데 모으는 일이었다. (중략) 유니폼 입고 있는 동안에는 절대 선수단 관련해서 안 좋은 얘기를 하지 말자고 부탁했다. 불만이 쌓인 사람이 있다면 남자답게 감독, 코치 찾아가서 직접 얘기하자는 말도 덧붙였다. 선수들끼리 편이 갈리면 팀이 무너진다. (중략) 지고 있으면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분해서 눈물 흘리는 리더가 필요하다. 내가 말하는 리더는 ‘고참=리더’가 아니다. 게임의 리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2018년 10월 인터뷰, NC에는 선수들의 리더가 필요하고 그래야 또 다른 도약을 할 수 있다고 말하며
일본에서 돌아온 이호준, NC 코치로 출발선에 서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마지막에 귀국 결정을 내린 건 NC에서의 요청도 있었지만 후배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올시즌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상처받고 자신감이 상실됐을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걸 떠올리니까 더 이상 다른 생각이 들지 않더라.
2018년 10월 인터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정식 코치진 제안을 거절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 묻자
일본에서 돌아온 이호준, NC 코치로 출발선에 서다
직구 변화구 두 개 다 잘 치는 거보다는 직구 하나라도 잘 치자. 변화구에 삼진 먹더라도 뭐라 할 사람 한 명도 없으니까 그 부분에 있어서는 타석에서 스트레스 받지 말자.
2020년 4월 SBS sports 전화인터뷰, 팀 타율 2위 및 팀 홈런 1위를 달성한 2019 시즌 타자들에게 계속해서 강조했다는 말.영상
이호준 코치에게 물었다…"NC 어떻게 홈런군단 됐나요"

6. 여담

6.1. 야구 관련

  • 24년간 선수 생활을 해서인지 누적 스탯이 꽤 좋다. 2007년 우승과 2008년 야구붐 이후 SK 팬이 된 사람들은 그 이전에 보여준 이호준의 전성기 활약[23]을 보지 못했고 FA 계약 후 부상과 부진이 이어지며 먹튀 이미지가 컸기 때문에 엄청나게 까이곤 했다. 사실 2007년 우승 후 FA 자격을 얻었을 때만 해도 전성기의 기량을 보였던 데다가 창단 초창기부터 SK의 간판타자 역할을 했기 때문에 팬들이 "우리의 프랜차이즈 스타인데, 꼭 FA로 잡아야 한다."라고 팬 게시판에서 서명운동까지 할 정도로 사랑받았다.[24][25] 그때 팬들의 반응 덕분에 이호준은 예상보다 훨씬 높은 금액의 FA 로또를 터트릴 수 있었다.
파일:이호준타격.gif
이호준의 타격 폼
  • SK 시절 마지막에 보여준 로또와 FA 먹튀 이미지 때문에 꽤나 저평가를 받았던 타자지만, 역대 홈런 순위 9위[26], 역대 타점 순위 8위[27]에 랭크되어 있을 만큼 꾸준한 활약을 했던 타자이다. 특히 NC에 이적해와서는 거의 회춘했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타격 성적이 반등했는데, 나이가 있긴 하지만 2014년까지 통산 285홈런을 때렸고 2015년 6월 18일에는 프로야구 사상 8번째로 300홈런 달성에 성공했다. 최고령 300홈런 기록은 덤.[28][29]
  • 유독 포스트시즌에서 부진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선수 경력동안 7번의 플레이오프에서 24경기 출장해 69타수 12안타 7타점 1홈런 5득점 타율 .174 출루율 .269 장타율 .246[30], 8번의 한국시리즈에서도 37경기 출장해 106타수 23안타 4홈런 11타점 8득점 타율 .217 출루율 .272 장타율 .377[31]로 극도의 부진을 겪었다. 정규 시즌에 좋은 활약을 보여주다가도 이상하게 플레이오프 이상만 가면 죽쑤는 게 일상이었는데 커리어 내내 그가 주로 맡은 타순이 4번 타자임을 감안하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5번의 준플레이오프에서는 18경기 출장해 56타수 23안타 5홈런 15타점 8득점 타율 .411 출루율 .450 장타율 .768[32]을 기록하며 수준급 경기력을 선보이기도 했고 이때의 활약으로 타점을 쓸어담는다는 의미의 로또준이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와일드카드에서는 2017년 NC 다이노스 소속으로 단 한 경기에 출장했으나 1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 프로 데뷔 후 골든 글러브 수상이 단 한번도 없다. 프로 선수 생활 동안 300개가 넘는 홈런을 쳤지만 프로 통산 300홈런 이상 친 타자 중 유일하게 골든글러브를 받지 못했다. 이유는 골글을 받을만한 시즌에 항상 더 괴물 같은 성적을 기록한 사람들이 있어서[33] 그래서 NC 다이노스 갤러리에서는 은퇴 선물로 골든글러브를 만들어서 전달했다. 개인 타이틀도 2004년 타점왕 하나밖에 없다. 살짝 아쉬운 부분. 어쩌면 개인 타이틀에서 밀렸기 때문에 골든글러브 경쟁에서 뒤쳐진 원인일지도 모른다.
  • 2013년 신생팀 NC 다이노스로 FA를 통해 이적한 이후에는 창단 초창기 팀의 주장을 맡으며 팀의 전통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인터뷰에 따르면 전력질주, 격려, 불만제로를 팀 컬러로 정착시켰다고 하며,[34] 또 다른 인터뷰에 따르면 이호준이 NC 입단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선수들에게 유니폼을 입고 있는 한 감독, 코치 흉을 보거나 전날 작전에 대해 잡음이 들리면 벌금 300만 원을 부여하겠다고 강하게 말한 것이라고 한다. 사복 입고 밖에 나가서 삼삼오오 모여 얘기하는 건 자유지만, 유니폼 입고 있는 동안에는 절대 선수단 관련해서 안 좋은 얘기를 하지 말자고 부탁했다고.
  • 이렇듯 이호준은 2014년 NC에 합류한 이종욱손시헌과 함께 후배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며 팀 창단 초기 선수단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기한 사실들이 팬들에게 알려지고 이호준 본인도 나테이박으로 대표되는 클린업 콰르텟의 일원으로도 맹활약 했으니, NC 팬덤에서는 그의 은퇴 후에도 대부분 이호준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으며 그러한 팬들의 신뢰와 지지는 감독으로 팀에 복귀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 선수 시절 가지고 있던 징크스를 다 합치면 100개가 넘을 만큼 많았다. 예를 들면 본인이 손톱을 깎거나 남이 손톱을 깎는 걸 보면 그 날 경기가 잘 안 풀려서 그러한 행동들은 전부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 했다. 또 경기가 있는 날은 이발하는 것도 피하고, 비누 없이 물로만 세수와 샤워를 하며, 계란같이 잘 깨지는 것도 피했다고 한다. 또한 성적이 안 좋으면 쓰던 야구 용품을 모두 버리고 모조리 교체했다고 한다. 반대로 좋은 징크스로는 본인이나 와이프가 똥차를 보면 그날 꼭 홈런을 쳤다고.
  • 고향 팀인 KIA 타이거즈에 지금도 애착이 있다. KIA가 연패에 빠질 때 인터뷰에서 KIA가 연패를 끊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인데, 2009 시즌과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 KIA와 벤치 클리어링이 여러 번 터질 때도 절대 나오지 않았다.[35] 성적 역시 SK 시절에는 유난히 KIA전 성적이 처참했던 적이 있었다. 박재홍이 KIA 타이거즈 시절 빵 사건이나 지명 거부 등으로 별로 사이가 안 좋은 것과는 대비된 부분.
  • 퇴물, 먹튀로 취급받던 시절에도 롯데만 만나면 전성기로 돌아와 불방망이를 휘두르던 로나쌩 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 이후의 SK는 롯데한데 뭘 해도 이기는 팀이라서, 팬들에겐 호구 상대로 스탯쌓기만 한다고 오히려 까였다. 이 때문에 2007년 FA 당시 롯데에서 영입하려 했지만, 영입 실패로 돌아가면서 꼴런트 어디 안 간다고 욕을 먹은 적도 있다.
  • 2012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은 뒤 SK와 협상이 결렬되며 NC로 갔을 때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는 아름다운 이별행이라면서 섭섭함보다 기쁨이 크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호준이 NC로 이적한 후 먹튀짓을 하지 않고, 중요한 순간마다 SK에게 비수를 꽂자 이호준을 까는 데 앞장섰던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는 엔전드라고 부르곤 했다.[36] 그리고 2013년 겨울 정근우가 팬들의 뒤통수를 거하게 치고 떠나면서 좋게 떠난 이호준은 그래도 착한 사람이라는 재평가가 SK 팬들 사이에서 잠깐 일어나기도 했으며 이후 2015년 겨울 정우람이 정근우보다 더한 뒤통수를 거하게 치면서 또다시 재평가를 받았다.
  • 장현석을 야구 선수의 길로 이끈 사람이기도 하다. 장현석이 어린 시절에 마산구장에서 야구를 본 뒤 인파에 밀려 이호준의 자동차 앞바퀴에 깔리는 사고가 있었다. 사고가 난 이후 이호준은 병원으로 데려다 주고 며칠 후 싸인볼 등 선물을 챙겨줬다고 한다. 이때 이호준은 장현석에게 야구 선수를 해보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했고 그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호준 본인 말로는 아이가 에너지가 넘쳐서 그걸 운동으로 발산 안 하면 건달이 될 것 같았다고 한다.
  • 동명이인으로 대구상원고 내야수 이호준이 있는데 이 선수는 2024년부터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게 된다.

6.2. 야구 외

  • 이진주(속칭 펄녀)를 앞장서서 내쫓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SK 팬들은 그를 34억짜리 구단경비원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이게 별 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팀 케미스트리에는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각광받는 유망주들이 자칫 타락으로 빠질수도 있는 길 하나를 막아버린것과 다름없기에 후에 재평가를 더욱 크게 받았다. 실제로 같은 팀 고참이었던 김재현과 함께 둘이서 쌍욕까지 하면서 쫓아냈다고 한다. 아는 형님에서 김광현이 한 이야기로 데뷔 후 20대 초반부터 팀 에이스로 활약했을 때 선배들의 조언으로 야구에만 전념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야구장 이외에 연예인과의 만남이 30대에 출연한 아는 형님 방송이 최초라고 밝힐 정도로 젊은 선수들의 일탈을 막고 과도환 외부활동에 휩쓸리지 않게 하는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훗날 NC로 이적 후에도 베테랑이자 덕아웃리더로서 신생팀의 선수단 기강과 규합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그래서 찰리 쉬렉이 심판 판정에 불복해 한국어로 욕설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한국 욕을 이호준에게 배운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 선수 시절 선수단 기강을 담당하는 등 군기반장 역할을 했기 때문인지 후배 선수들이 엄청 깍듯하게 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NC 다이노스 감독 선임이 된 이후 팀의 고참들에게 연락을 돌렸는데 박민우는 일본에 있다가 비행기 표를 당겨서 바로 귀국한다고 하였고, 권희동, 박세혁, 이재학 등도 바로 훈련하겠다고 말할 정도. 여담이지만 이때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훈련하라는 말이 아니라 감독으로 왔으니 밥 먹자고(...) 얘기하려고 전화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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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 홍연실 씨[37]아주 미인인 것으로도 유명하다.[38] 야구 팬들은 그녀가 하지원 + 성유리 + 김유미를 닮은 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KBO 리그의 WAG 중 최고의 미모라고 해도 반론이 없다며 찬양했다. 인천대학교 출신 전직 대한항공 스튜어디스로, 구애를 할 당시에 자신의 연봉으로 외제차를 뽑았다고 과장을 하면서 들이댔다고 한다.[39] 처음엔 거짓말이었겠지만 이후 현실이 되었으니 부인에겐 진실된 남자. 게다가 이호준이 외출할 때는 신발을 직접 신겨주는 현모양처 스타일이라고 한다. 이호준 부부 인터뷰 딸도 무척 귀엽다.
  • 최동수와 닮은 꼴로 유명한데, 위의 사진에 나온 딸조차 SK로 이적 온 최동수에게 달려가 아빠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 횡령 등으로 무너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차기 회장으로 박재홍을 밀면서 존재감을 다시금 입증했다. 처음에는 자존심 강하고 개인주의적이란 비난을 듣던 박재홍이 선수협 회장을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이 많았으나, 예상외로 박재홍이 선수협을 잘 이끌어 나가자 덩달아 이호준의 평가도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사람 보는 눈이 선구안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 큰아들인 2002년생 이동훈이 프로에 입단할 때까지 뛰는 게 목표라고 한 적이 있다.[40] 인천동막초등학교와 수원북중학교, 휘문중학교를 졸업하고 2018년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했다가 2019년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강릉고로 전학했다. 포지션은 투타 겸업으로 3루수와 투수이다. 공교롭게도 아버지인 이호준 역시 프로 초창기 투수로 입단했고, 타자 전향 후 3루수로 뛴 적이 있다.[41] 사이드암 투수로 130km/h 대의 공을 던지고 있다.# 이동훈은 2021년도 신인 지명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고 강릉영동대학교 야구부로 진학했으나 2년 뒤 드래프트에서도 지명을 받지 못했다. 졸업 후 수원 파인 이그스에 입단했다.
  • 이호준 본인도 해설을 하고 싶다고 여러 차례 말한 적이 있고, 방송국에서도 몇번 섭외 시도가 있었던 듯하다. 봉중근도 이호준은 해설가로 어울린다고 말했다. 2020년 4월 SBS sports 야담법석 전화인터뷰에서도 화려한 언변을 선보여 진행자들과 NC 팬들 모두의 호평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엔씨' 2행시는 백미.#
  • 차덕후다. 이 인터뷰에서는 지금까지 자동차를 24대나 탔다고 하며 좋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싶었던 욕구가 야구 선수로서의 동기 부여가 됐다고 한다. 멋 모를 때는 할부리스 없이 현금으로만 차를 샀다가 취등록세가 어마어마하게 나왔다고 한다.
  • 해산물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SK 시절에는 연안부두 어시장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 NC에서 방출당했다가 재입단한 투수 이효준이 이호준과 비슷한 이름으로 NC 팬들 사이에서 로뚀준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 본의 아니게 임창용을 각성시켜 야구 역사를 뒤바꾸는 데 일조한 바 있다. 광주진흥고 시절 1년 후배인 임창용과 노가리를 까면서 짓궂은 농담으로 "네 공은 도시락 하나 까먹으면서도 칠 수 있으니깐 마음대로 던져봐라" 하며 약올렸는데 그 이후로 임창용이 팔 각도를 사이드 스로로 올리며 죽어라 노력하여 최고구속이 120km 중반대에서 145km로 급상승하자 이호준이 공을 건드리지도 못했다고. 결과적으로 한국 야구 역사를 새로 쓰는 데 간접적인 공헌을 한 셈. 공교롭게도 이 둘은 LG와 막판까지 치열한 선두다툼을 하던 1997년 9월 10일 잠실 LG전에서 소속팀 해태를 패배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기도 했다. 해태가 1점 앞선 9회말 2사 후 임창용이 허문회에게 1루수 앞 강습 안타를 내준 후 1루로 견제구를 던진 것을 1루수 이호준이 포구하지 못하면서 2루를 허용했고 후속 타자 이병규의 적시타로 동점을 내준 후 연장 14회말 2사 만루에서 송구홍에게 역전 끝내기를 맞은 것이다. 이 해 해태가 LG를 1.5게임 차로 밀어내고 정규 시즌 1위를 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 박명환야구TV에서 오상민이 술회하기를 이호준은 조그만 것 가지고도 크게 부풀려서 이야기를 하는 통에 선배들한테 많이 혼났다고 한다. SK 와이번스 초창기에 후배인 이진영과 말다툼이 있었다가[43] 군기반장이었던 오상민이 선배들한테 얻어터진 뒤 이진영을 뚜드려 팼다고... 박명환은 NC 입단 당시 본인이 주로 달던 배번 27번을 이호준이 이미 달고 있어서 22번을 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빠른 1976년생인 데다가 고졸 신인으로 프로 무대에 데뷔하였기 때문에 프로 경력이 굉장히 길다. 만 18세였던 1994년에 데뷔해서 2017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24시즌[44]을 선수로 뛰었고, 은퇴 당시 KBO 최고령이자 가장 연차가 오래 된[45] 선수였다. 동시대에 뛰었고 40대까지 현역 생활을 한 이승엽, 홍성흔, 박진만, 조성환, 임창용, 박정진 등 1976년생들과 동갑내기 취급을 받을 때도 있지만 이호준은 빠른 1976년생이기 때문에 이들보다 1년 선배다. 오히려 김동주, 조인성 등 1975년생들과 친구로 지내고[46], 그리고 1974년생이면서 1년 유급한 김재현[47]이랑도 친구로 지낸다.
  • 가수 김종서와 상당히 친분이 있다고 하며 축구 선수 곽태휘와도 친분이 깊다. 2008년 무릎 연골 수술을 받으러 독일을 방문했을 때, 곽태휘도 마침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받으러 왔고 이후 재활센터에서 같이 재활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이호준이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가했을 때 박찬호, 배우 정경호, 그리고 곽태휘를 지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수상 경력에서 보다시피 KBO에서도 역대급 우승 청부사다. 신인 시절이었던 해태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처음으로 경험해보았고 SK에서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였다. 이후 커리어 말년을 보낸 NC에서는 현역 때는 2016년에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고 은퇴 후 코치로써 우승을 맛보았다. LG 트윈스로 둥지를 옮긴 후에는 2023년에 한국시리즈 우승에 성공하여 자신이 거쳐간 팀마다 모두 우승을 하는 기록을 이어갔다.

6.3. 인생은 이호준처럼

야구 팬들 사이에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 인생은 이호준처럼" 이라는 얘기가 있다.[48] SK 와이번스 시절에 쓰일 때는 대박을 터뜨릴 정도는 아닌 성적을 거두다가 FA 자격 획득 마지막 시즌에 성적이 뛰어서 거액 FA 계약 후 먹튀가 되었다는 조롱의 의미[49]였지만, NC 다이노스행 이후 준수한 활약으로 인해 거진 야구계의 명언이 되어버렸다.

원래는 "야구 선수로서의 기록은 더 뛰어나지만 결혼이 늦었던 양준혁[50]보다, 기록은 좀 뒤져도 미인과 결혼한 이호준이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라는 좀 장난스런 의미였다. 그러나 이후 FA 계약으로 인한 연봉 대박, NC 다이노스로 팀을 옮긴 이후 고령의 나이에도 더 좋은 성적을 내면서 신생팀을 이끌어가는 모범적 고참 선수로 인정받는 등,[51][52] 화려하지는 않아도 꾸준한,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가치가 높아지는 선수라는 경의를 담은 별명이 되었다. 비공식이기는 하나 선수협 차원에서 은퇴투어를 하였다. 이후 그의 계보는 kt wiz에서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꾸준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어린 후배 선수들을 이끄는 리더십으로 팬들의 지지도 함께 받고 있는 유한준이 잇고 있다.

이 말은 워낙에 유명해서 네이버 자동완성에도 저장되어 있고, 아내가 말해줘서 본인도 알고 있다고 한다. '야구는 양준혁처럼,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라는 바리에이션도 있는데, 이 말이 왜 생겼는지 고려한다면 이쪽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카스포인트에서 이걸 놓치지 않고 이 문구가 들어간 광고를 만들기도 했으며, NC 다이노스는 이 구절을 인쇄한 티셔츠를 2014 시즌부터 판매하기도 했다. 자신도 이 별명에 자부심이 있는지 '인생은 조인성처럼'이 나오자 발끈하기도 했다.기사

은퇴 이후에도 지도자로써 NC와 LG의 통합우승을 이끈 주요 코치 중 1명으로 평가받았고 2024시즌 종료 후 본인의 선수 시절 은퇴식을 치뤘던 마지막 팀인 NC 다이노스의 감독으로 금의환향하면서 이 명언도 덩달아 재조명을 받고 있다.

7. 사건 사고

7.1. 병역 비리

이호준 최대의 흑역사. 두 가지 범죄를 저질렀고 전과자 빨간 줄도 그어졌으나 실질적으로 둘 다 처벌 받지 않았다.

본인의 병역 비리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만료로 공소권 없음 처분되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후 재검 뒤 공익 복무로 군 복무를 마쳤다.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고, 이호준을 포함한 당사자들이 함구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로 큰 죄를 저질렀는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상태다.[53]

본인의 병역비리가 운좋게도 공소시효 만료로 넘어간 것과 별도로, 다른 선수들에게 전문 브로커를 소개해 준 행위가 발각되어 병역법위반방조죄로 처벌을 받았다. 허나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감방살이는 면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공소사실이 모두 인정되나 아무 전과가 없는 초범이고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는 점을 참작해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호준이 전과가 없는 초범임을 고려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밝혔으나, 사실은 초범 여부와 상관없이 브로커를 소개한 방조죄만으로 실형을 선고하기가 어려웠기 때문.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도 병역을 기피하고 다른 선수에게 브로커를 소개시켜준 경우 본인의 병역기피로 징역 8월 + 브로커 소개로 2월로 징역 10월을 살게 되었는데, 이호준처럼 본인 병역기피로 실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방조죄만으로 실형이 불가능했다. 왜냐면 실형은 징역 6월 이상부터 가능하기 때문, 그렇다고 방조죄만으로 징역 6월을 내리는 것도 불가능한데,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선수들은 방조죄로 징역 2월 분량이 추가되었으므로 사법 형평성에 어긋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적으로 집행유예만 가능한 상황이었던 것. 물론 사법적인 문제와 관계없이 사회 일반 도덕규범상 이호준이 병역비리를 저지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8. 관련 문서



[1] 한 경기에 6번이나 볼넷으로만 출루했다. 그것도 연타석으로. '1경기 제한'을 없애면 홍문종의 9연타석 고의사구가 최다 기록. 그리고 그날 얻은 별명이 육또선인.[2] 2013년 4월 28일 김태균이 7타석 6볼넷을 얻어 이호준과 타이를 이루긴 했지만 이는 6연타석 볼넷은 아니었고 고의사구가 하나 포함된 것이다. 이호준의 경우에는 고의사구가 하나도 없는 모두 순수한 볼넷. 김태균의 당일 기록은 볼넷-볼넷-고4-안타-볼넷-볼넷-볼넷.[3] 2017년 10월 21일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4] 2007년 제이콥 크루즈, 2014년 정훈과 타이.[5] 기사[6] 해태 타이거즈 입단 시즌에는 투수였으나 바로 다음 해 타자로 전향했다. 여담으로 LG 트윈스의 김재현의 20-20 클럽 가입 허용투수가 바로 이호준.[7] SK 시절 첫 FA 계약을 맺은 2008년 전까지는 주전 1루수였으나 이후 무릎 부상으로 박정권에게 서서히 1루를 내주고 지명타자가 되었다. NC에서는 풀타임 지명타자로 뛰었는데, 1루수 수비가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부상 전력과 나이 문제 등으로 사실상 수비 측면에서는 거의 활약을 기대하기 힘들었다.[8] QC(Quality Control) 코치는 미식축구(NFL)에서 시작된 보직으로 영상 및 통계 분석이 주 업무다. KBO리그에는 2017년 전후 도입됐는데 다양한 보직에 두루 관여하는 역할로 해석한다.[9] ~5월 12일[10] 5월 13일~ 10월 21일[11] 계약금 3억 원 / 연봉 총액 9억 5천만 원 / 옵션 1억 5천만 원[12] 2006년 초에 입대했지만 무릎 부상이 심해져 2007년 초에 의병 제대했다.[13] 이호준의 등장곡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당시 문학야구장 선수 별명판에도 이호준의 별명으로 You're my hero가 나왔었다.[14] 야야야야~ 이호준 날려버려라 (홈런!) 이호준 날려버려라~ (홈런!) 이호준 날려버려라~ (홈런!) X2[15] SK-SSG의 거포 타자를 대표하는 응원가이며 상당히 인기있는 응원가 중 하나다. 2008년에는 이재원도 잠시 사용했고 현재는 한유섬이 사용 중이다. 가끔 배영섭 응원가와 헷갈리는 사람도 있으나 그 노래는 장윤정의 올레다. 본의 아니게 응원가가 비슷해 삼성 팬들은 SK 늙은비룡 이호준이라고 하기도 했다. 응원가를 물려받은 한유섬(당시는 한동민)은 SK 젊은비룡 한동민이라고 했다.[16] 다이노스 이호준 NC 이호준~ 이호준! 이호준! NC 이호준~ 이호준! (홈런!) 이호준! (홈런!) NC 이호준~ 이호준! 이호준! NC 이호준~ 이호준! (홈런!) 이호준! (홈런!) NC 이호준~[17] 다! 이노스! 홈런 이호준! 다! 이노스! 홈런 이호준 오~ 이호준 홈런 오오오 홈런 이호준 홈런~ X2[18] 일명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Eine Kleine Nachtmusik)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그 곡이다.[19] 호준이 딱이야 (NC!) 홈런엔 딱이야 (NC!) NC 다이노스 이호준 휘둘렀다 홈런이다 NC 이호준이다 호준이 딱이야 (NC!) 홈런엔 딱이야 (NC!) NC 다이노스 이호준 다 죽었다 한방이다 홈런 딱 딱 (NC!) 호준이 딱이야[20] 다른 보컬이 부르지 않고 영탁이 직접 녹음에 참여했다.[21] 왜 이런 별명이 생겼는지는 기타 항목 참조. 여기에 엮여서 생긴 김성근 감독의 별명으로 나니욘쥬라는 것도 있었다. 대충 3억짜리 경비원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던 김성근에게 이호준이 40억이라고 알려주자 놀라며 나니?! 욘쥬?!라고 말했다는 드립이 흥하면서 생겼다. 물론 드립이다. 김성근은 당시에도 한국에 산지 30년이 훨씬 넘었었다.[22]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까지는 김응용 감독이 실제로 했던 말인데 다재다능했던 이종범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선동열과 이승엽을 언급한 것이다.[23] SK 최초의 준우승인 2003년 근처 시기에 상당한 활약을 보였다. 베테랑이라기에는 젊은 20대였지만 준우승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힌다.[24] 이호준이 지금은 사라진 용틀임마당에 술을 먹고 쓴 글이 계기가 됐다.[25] 여담으로 이 당시 롯데 자이언츠도 타선 보강을 위해 이호준 영입을 추진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호준이 SK와 우선협상이 결렬되자마자 곧바로 롯데 프런트가 이호준과 접촉해 몇 차례 협상을 벌였으나 금액 차이가 나서 최종적으로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26] 2024 시즌 종료 기준[27] 2024시즌 종료 기준[28] KIA의 이범호가 329홈런을 기록하며 이호준의 통산 337홈런 기록을 넘지 못하고 은퇴했다. 이호준의 홈런 기록을 넘어선 타자는 최정, 박병호, 그리고 이대호 정도.[29] 종전 최고령 300홈런 달성자는 박재홍.[30] 2003년 SK 소속으로 3경기 출장 12타수 2안타 1타점 2득점 1볼넷 3삼진 1병살 타율 .167 출루율 .231 장타율 .167, 2009년 SK 소속으로 2경기 출장 2타석 무안타 2삼진, 2011년 SK 소속으로 3경기 출장 6타수 1안타 2볼넷 1삼진 1병살 타율 .167 출루율 .375 장타율 .167, 2012년 SK 소속으로 5경기 출장 18타수 2안타 2타점 1득점 2볼넷 5삼진 타율 .111 출루율 .200 장타율 .333, 2015년 NC 소속으로 5경기 출장 16타수 4안타 2타점 2득점 2볼넷 3삼진 타율 .250 출루율 .368 장타율 .250, 2016년 NC 소속으로 4경기 출장 13타수 3안타 2타점 1볼넷 3삼진 타율 .231 출루율 .286 장타율 .308, 2017년 NC소속으로 2경기 출장 2타수 무안타[31] 1997년 해태 소속으로 3경기 출장해 3타수 무안타 1삼진, 2003년 SK 소속으로 7경기 출장해 21타수 4안타(1홈런) 1타점 1득점 4볼넷 8삼진 타율 .190 출루율 .320 장타율 .333, 2007년 SK 소속으로 6경기 출장해 24타수 9안타(1홈런) 4타점 1득점 3삼진 타율 .375 출루율 .375 장타율 .625, 2009년 SK 소속으로 5경기 출장해 11타수 2안타(1홈런) 1타점 2득점 1볼넷 3삼진 1병살 타율 .182 출루율 .250 장타율 .455, 2010년 SK 소속으로 4경기 출장해 13타수 2안타 2타점 2득점 1볼넷 1삼진 1병살 타율 .154 출루율 .214 장타율 .154, 2011년 SK 소속으로 2경기 출장해 5타수 무안타 2삼진 1병살, 2012년 SK 소속으로 6경기 출장해 20타수 5안타(1홈런) 3타점 2득점 1볼넷 6삼진 출루율 .286 장타율 .500, 2016년 NC소속으로 4경기 출장해 9타수 1안타 1볼넷 2삼진 타율 .111 출루율 .200 장타율 .111[32] 2003년 SK 소속으로 2경기 출장해 7타수 3안타 1타점 1득점 2볼넷 1삼진 타율 .429 출루율 .556 장타율 .429, 2005년 SK 소속으로 5경기 출장해 20타수 9안타(3홈런) 5타점 4득점 2삼진 2병살 타율 .450 출루율 .476 장타율 1.000, 2011년 SK 소속으로 2경기 출장해 5타수 1안타 1타점 1삼진 타율 .200 출루율 .200 장타율 .200, 2014년 NC 소속으로 4경기에 출장해 17타수 7안타(2홈런) 6타점 3득점 1볼넷 2삼진 타율 .412 출루율 .444 장타율 .941, 2017년 NC 소속으로 5경기 출장해 7타수 3안타 2타점 타율 .429 출루율 .429 장타율 .429[33] 대표적으로 36홈런을 쳤지만 이승엽에게 밀린 2003년. 2003년 시즌 이승엽은 세계 최연소 300홈런에, 당시 아시아 신기록인 한 시즌 56호 홈런을 달성했다.[34] 전력질주는 수비 나갈 때, 방망이 치고 나갈 때, 공수교대 때에 전력질주 하고, 상황이 되었을 때 몸을 사리지 않고 다이빙 캐치하는 것, 격려는 플레이 중 누군가가 잘못 했어도 항상 ‘괜찮다’고 서로 말해주는 것, 불만제로는 선수-코칭스태프-프런트 간 하나로 꽉 뭉쳐서 뒷말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35] 벤치 클리어링은 투수 몇몇을 제외하곤 무조건 나가야 하며, 안 나가면 벌금을 물기도 한다.[36] 실제로 게임인 마구마구에서 NC 레전드 카드로 출시가 되었다. 물론 SK 소속으로도 출시되었다.[37] 사진 속에서 안고 있는 아이는 딸 이동영 양이다.[38] 훈련소에 있을 당시 퇴소 전날에 행사를 진행하였는데 깜짝 영상편지를 띄웠다. 그리고 모든 훈련병들이 우와~를 외쳤다는 썰이 있었다.[39] 물론 그 당시엔 연봉이 적었겠지만 FA로 대박을 친 이후의 연봉은 5억으로, SK에서 박경완, 박재홍과 함께 최고 연봉 수령자였고 KBO 전체에서도 양준혁 - 김동주 - 손민한 - 박진만 - 장성호 다음가는 고액연봉자였다.[40] 물론 농담이고, 2017 시즌 이후 은퇴했다.[41] 2대째 야구를 하는 선수의 경우 아버지의 포지션을 닮아가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내야수 출신인 김한수 감독이 있다.[42] 청소년 대회를 앞두고 서울에서 훈련을 하다가 KFC에 갔는데 양념도 안 뿌려진 치킨이 매운걸 알고 전라도 사투리로 '아따~ 아야~ 닭이 매워야~' 말 한마디로 웃겼고 부대찌개를 먹으면서 '김치찌개라면을 넣어 먹다니 세상에 이런 김치찌개도 있구나'하면서 감탄했다고 한다. 훈련 도중 광주에 다녀와야 할 일이 있어서 버스 타기 전 고속터미널에서 부대찌개를 시켰는데 라면이 안 들어가 있자 '아줌마! 나 시골서 왔다고 지금 라면사리 안 넣어주요!'하고 따지자 아줌마 성대모사를 하면서 '1인분은 라면사리가 안들어가요오~호호'라고 상황설명을 하자 MC들이 터졌다.[43] 이진영이 이호준에게 "형 잠깐 좀 봐요"라고 말했는데 이호준이 이를 고깝게 받아들이며 말다툼이 붙었다. 이진영은 "잠깐 나가서 얘기 좀 하시죠"라는 의도로 말했는데 이호준이 전지훈련 기간 동안 극도로 예민해져 있던 터라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 했다고..[44] 그러나 1995년, 2006년 시즌 1군 출전 기록은 없다. 23년 연속(1991~2013) 1군 경기에 출전한 선수는 박경완.[45] 이호준보다 먼저 은퇴한 이병규최영필은 대학(93학번)을 졸업하고 1997년에 데뷔했고, 이호준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1994년에 데뷔했다.[46] 2012년에 이적한 조인성과 같은 팀이었는데 서로 반말하는 장면이 경기전 방송에 나온 적이 있었다.[47] 이병규랑도 서로 반말하며 친구로 지낸다.[48] 2010년대에는 반의적인 표현으로 사랑은 김동주처럼이라는 말도 간혹 보였다. 김동주 항목 참조.[49] SK에서 FA 이후 2008~2011년까지 4년간 연봉 34억을 받으며 스탯티즈 기준 WAR 합계 2.72를 기록했던 이 기간만을 한정한다면 먹튀라 불릴 만했는데, 2012년에 2억 5천만원이라는 저렴한 연봉으로 SK와 재계약한 후 선수 시절 두 번째로 높은 WAR 4.45라는 대단히 좋은 성적으로 한방에 만회했다. 때문에 SK에서도 다소 많이 받긴 했어도 먹튀까지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SK에서 연봉대비 잘했다는 건 절대 아니고, 그저 애매했지만 받은 돈에 비해서는 평범한 성적을 냈다는 것이다. 단지 먹튀라는 게 다소 심하다는 것 뿐이다. 먹튀/야구 문서에 나와있듯 진정한 먹튀들은 WAR이 0점 대, 마이너스도 수두룩하다.[50] 현재는 19살 차이 어린 아내와 결혼을 했지만, 이 말이 처음 나올 시절만 해도 양준혁은 근 50줄 중반에 육박하던 노총각이었다.[51] 이는 성적에서 역대 정상급의 타자이면서도 팀워크, 인성 등에서 평판이 나빠 환영받지 못하며 은퇴했던 두산 베어스 김동주사례와 대조를 보였다. 성적으로만 따지면 영구 결번이 아깝지 않은 선수이나 은퇴식조차 못하고 초라하게 야구계를 떠났다.[52] 그러나 김동주는 호프집 은퇴식이라며 조롱받긴 하지만 어쨌건 그 개차반 인성과 말년의 급작스런 몰락에도 팬들의 지지만큼은 끝까지 그대로 받다가 간 선수였다. 김동주가 그렇게 초라하게 떠난 진짜 이유는 프런트와 척을 진 점이 컸기 때문에 최소한 ‘환영받지 못하며 은퇴한’ 사례라고는 할 수는 없다. 팬들이 대놓고 ‘우리는 김동주를 원한다’라는 현수막까지 내걸 정도의 선수를 보고 환영받지 못했다고는 볼 수 없지 않은가?[53] 이후 추정상으로 SK 소속 선수들 다수에게 병역 브로커를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건 발생 후 이진영을 비롯한 몇몇 SK 선수들과 약간 사이가 좋지는 않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일부 팬들의 주장이 있다. 다만 이진영의 경우, 이호준과 계속 친하게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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