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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문서: 제20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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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여론조사기관에서 최근 6개월간 실시한 조사에서 2회 이상 집계되거나,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이를 철회하지 않은 인물만 등재 가능.
- 본인이 대선 출마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선언하거나, 최근 3개월 이상 정치활동을 중단한 인물 및 대선 출마가 불가능한 상태의 인물은 등재할 수 없음.
- 각 정당란의 서술은 공식 후보가 확정되지 않은 정당에 한해 그 정당의 후보 선출의 방식과 규정에 대한 내용만 허용하고 각 후보에 대한 찬반으로 이어질 수 있는 내용은 금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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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 | 제6차 1987년 10월 27일 | 시행 불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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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6월 15일 제3차 개헌으로 부통령직 폐지 ** 2014년 7월 24일 헌법재판소가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 내용 중 일부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나 이후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2016년 1월 1일자로 효력을 상실하여 시행 불가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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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22년 3월 9일 치러졌던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가능성이 있었던 대권주자들의 전망에 대해 다룬 문서이다.예비후보자 등록 / 명부 등 기타 사항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물들의 출생지는 출생 당시의 행정구역을 따랐다.
실제 출마 후보는 제20대 대통령 선거/후보를 참고할 것.
2. 원내 정당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2024.5.30. ~ 2028.5.29.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여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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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더불어민주당 - 이재명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이재명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004ea2> | 이재명 (李在明) |
출생 | 1964년 12월 22일[1], 경상북도 안동군[2] |
19대 대선 | 더불어민주당 경선 3위 |
상황 |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
기호 | 1번 |
위기에 강한
유능한 경제대통령
1986년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되었고, 민변 활동을 한다. 2006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정치활동을 시작하여 정동영 및 정세균계에 속한다. 그리고 2010년 6월, 경기도 성남시의 시장이 되어 모라토리엄 선언과 부정부패 척결 등으로 화제를 끌기 시작한다.유능한 경제대통령
2016년 4월, 최성 전 고양시장, 박주민 국회의원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선 몇 안 되는 더불어민주당 당원이다.#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촛불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이른바 사이다 발언으로 큰 관심을 얻으며 한때 여론조사 지지율 2위를 기록하였다. 기성 정치인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며 선명성을 강하게 나타낸 후 당 안팎의 진보층으로부터 지지를 받으며 19대 대선 경선에 참여하였다. 신좌파 성향도 복합적으로 갖추었고, 성소수자에 대해 지지의 문제가 아니라고 퀴어 문제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보여[3], 범좌파와 일부 젊은 층에게 지지를 받았다.[4] 경선 결과 안희정에게 근소한 차이로 밀려 3위로 밀려났다.
2018년 6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경기도지사에 출마하여 남경필을 가볍게 누르고 당선되었다. 지방선거 이후 검찰에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지만 당직을 자진 포기하는 백의종군 선언으로 징계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2018년 11월, 이른바 '혜경궁 김씨 의혹'이 터지면서 친노친문 지지층과의 관계가 더욱 험악해졌다. 이 때문에 향후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친문과 끝장을 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무렵 친노친문 의원들의 모임인 '부엉이 모임'이 드러났는데, 여기에 소속된 최고위원들은 이재명의 징계를, 민평련계 설훈이나 박원순계 남인순 등은 징계를 유보하자고 주장했다.
손가락혁명군으로 대표되는 지지집단의 지나치게 극성맞은 모습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친노·친문 지지세력이라는 거대한 투표층을 끌어오는 데 심각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미 19대 대선 당시 이들이 보였던 모습들로[5] 인해 친문 지지층들의 호감을 크게 상실하였다. 대선 이후로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모습을 보여 비호감 정서가 강해졌다.[6] 이후 이재명 지사는 손가락혁명군과 선을 긋고 문재인 정부에게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으나, 손가혁과는 별개로 해당행위를 하면서 이재명을 신성시하는 극단적인 지지세력이 꾸준히 이재명의 이미지를 망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극단적인 친문 세력에게도 나타나는 것으로 결국 극단적인 지지층은 반대세력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20년 들어서는 행정력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으며 대권후보 지지율 2위 자리를 차지하며 본격적인 대선 경쟁에 뛰어들었다. 재난지원금, 기본소득제 등 진보적인 어젠다로 타 민주당 주자들과의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시도지사 평가 또한 역대 경기도지사 중에서 가장 높은 70% 고지를 밟고 있기에, 경기도의 탄탄한 지지를 바탕으로 선거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7] 또한 경기 지사 취임 후부터 꾸준히 골머리를 썩어왔던 재판도 7월 16일 상고심이 무죄 취지 파기환송 됨에 따라 도정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2021년 4월, 민주당이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함에 따라 경쟁 상대였던 이낙연이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8] 그러나 예상외로 대통령 국정 지지율 마지노선인 30%가 깨지지 않고 30대 초중반을 유지하면서 이재명의 포지션이 애매해졌다. 만약 30%가 깨졌다면 이재명은 그대로 역대 대선주자들과 똑같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였을 텐데[9] 지지율이 유지됨으로써 대놓고 차별화를 하지 않고 친문 지지세력의 눈치를 봐야 함과 동시에 문재인 정부와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는 여러 가지로 곤란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낙연이 내상을 심하게 입으며 여당 내의 독보적 대선주자로 자리를 굳힌 것은 득이 되었으나 재보선만 이기면 대선은 거져먹는다는 민주당의 계획이 깨지고 기울어졌던 대선판이 다시 평평해진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즉 경선을 뚫기는 쉬워졌으나 그 대가로 본선 난이도가 대폭 상승한 것.
2021년 5월 12일, 지지자들, 홍정민, 양향자, 전용기, 이형석, 최기상 의원 등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공개 모임을 가졌다. 대권 레이스에 시동을 건 것으로 해석된다.#
2021년 5월 21일, 2021 DMZ 포럼에서 '소통'과 '협력'을 기반으로 한 대북 정책 구상을 했다 포럼에서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친노 대모 한명숙 전 총리 등 과 자리를 같이하며 세 과시에 나섰다고 평가되고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지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한명숙 전 총리, 문정인 전 문재인 대통령 특보,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10] 등이 참석하며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권주자임을 과시했다고 평가된다.#
현직 지자체장임을 이용한 어젠다 세팅과 특유의 선명한 색깔과 행정력으로 지지율을 모으고 있고 2021년 재보궐선거로 인해 이낙연 등의 경쟁 주자들이 대거 나가떨어져 대안부재론의 주인공이라는 점은 이재명에게 유리한 점이지만 음주운전, 검사 사칭 등 4건의 전과들과 이재명을 둘러싼 수많은 여러 의혹들이 잠재적인 걸림돌로 거론되고 있으며 당내 세력이 상당히 미약한 편이다. 문재인과의 차별화와 동시에 친문과의 관계 개선[11]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2021년 7월 1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021년 10월 10일, 20대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해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만약 당선이 됐다면, 최초의 소년공 출신 대통령이자 검정고시 출신 대통령[12], 경기도지사 출신 대통령, 첫 1960년대생 대통령, 민주화 이후 국회의원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최초의 대통령[13]이 될 것이다.[14] 또한 최초로 운동권 출신도, 독재 정권 연관자도 아닌 대통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15] 축구팀 구단주 출신 대통령, 그리고 비록 경기도 출신은 아니나, 최초로 경기도 정체성, 지지 등을 받으며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더불어 그의 모교인 중앙대학교는 최초로 대통령을 배출하게 되며 또한 6공 출범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보수 10년-민주당계 10년 체제가 유지되는 것이다.
2.2. 국민의힘 - 윤석열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윤석열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E61E2B><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E61E2B>윤석열 (尹錫悅)||
출생 | 1960년 12월 18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
상황 | 국민의힘 대선 후보 |
기호 | 2번 |
국민이 키운 윤석열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
검사로서 2003년 참여정부 인사의 정치자금법 위반, 2008년 이명박 정부의 BBK 특검, 2013년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이명박 대통령의 구속, 2019년 조국 사태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의 수사를 지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살아있는 권력을 좌천까지 당하면서 수사하는 강직한 검사라는 평가와, 검찰 조직에 충성하여 정치적으로 수사한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여야 양측 권력 핵심을 수사한 경력때문에 윤석열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과 반감을 가진 사람이 여야 지지자 모두에게 있다.내일을 바꾸는 대통령
2019년 6월 17일, 검찰총장에 임명되는 과정부터 화제를 끌고, 2019년 9월 조국 사태와, 2019년 11월부터의 추미애 법무부장관과의 갈등까지 이어지며 대중적 인지도가 상승하였다. 이 무렵 보수 진영에서 이렇다 할 대권 후보가 안 보이자 일부 보수층에서 윤석열 총장을 문재인 정부의 대항마, 보수 진영의 대권 후보로 지지하는 여론이 생겼다. 이명박과 박근혜를 감옥으로 보낸 장본인이라는 평도 있었으나 #, 친박의 대표적 인물인 김재원을 비롯 국민의힘 지지층이 우호적, 포용적 자세를 보인다 #.
2021년 3월 4일, 검찰총장직을 사퇴하면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라고 발언하며 정치 입문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 이후 정치 원로들과 만나고, 공부를 하며 정계 진출이 확실해졌다. 다만 잠행이 길어지며 국민의힘에서 제3지대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불안한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2021년 6월 29일,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2021년 7월 12일, 무소속 상태로 대선 예비후보 등록을 했다.
2021년 7월 30일, 국민의힘에 전격적으로 입당했다. # 2021년 11월 5일, 20대 국민의힘 경선에서 홍준표, 유승민, 원희룡 후보를 누르고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2022년 3월 10일,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22년 5월 10일, 제2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헌정 사상 최초로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통령이다.[16] 또한 헌정 사상 최초의 무자녀 기혼 대통령이자[17] 민주화 이후 선출직 공무원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최초의 대통령이며,[18] 민주화 이후 국회의원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최초의 대통령[19]이자 또한 윤석열의 모교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은 최초로 대통령을 배출한 셈이다.
2.3. 정의당 - 심상정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심상정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ffcc00> | 심상정 (沈相奵) |
출생 | 1959년 2월 20일, 경기도 파주군[20] |
17대 대선 | 민주노동당 경선 2위 |
18대 대선 |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진보정의당) |
19대 대선 | 본선 5위 (6.17%, 정의당) |
상황 | 정의당 대선후보 |
기호 | 3번 |
주4일제 복지국가
일하는 시민의 대통령
노동운동가, 민주화운동가 출신인 진보정치인으로 전태일, 김문수와 함께 민주화 시대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일하는 시민의 대통령
2017년 5월,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6.17%라는 진보 정당 자체 역대 최다 득표율을 받았다. 2018년 7월 노회찬 의원 사망과, 2021년 1월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논란으로 사실상 정의당 내의 거의 유일한[21] 대권주자급 위상의 인물이다.
2018년 11월 2일, 이낙연 총리에 이어 차기 진보진영 대선후보 적합도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22]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 본인은 진보 진영 최초로 4선에 성공했고, 당은 20대 총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1대 총선을 거치며 꾸준히 정의당의 비례 득표가 늘어나 9.7%를 기록했다. 하지만 심상정 외엔 지역구 당선자가 없는 데다 국회 내 입지가 좁아진 만큼 정의당과 심상정만의 선명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해졌다. 나아가 메갈리아 옹호 논란에 대한 미흡한 대처 등 정의당의 발목을 잡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약점이 있다.
2021년 4월 28일, 정의당은 대선 후보를 내겠다고 입장을 밝힌다.# 2021년부터 정의당이 점점 더 우클릭하는 더불어민주당을 기득권으로 규정하고, 비판에 나섬에 따라 단일화의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23]
2021년 8월 12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021년 10월 6일, 정의당 후보 경선에서 46.42%를 차지하며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19대 대통령 경선에서는 80.71%를 차지했던 것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이다. 심지어는 정의당 내부에서 심상정 의원이 아닌 새로운 후보가 등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져 심상정 의원에게는 불리한 점이 늘어났다.
2021년 10월 12일, 결선투표에서 51.12%를 차지하면서 48.88%를 차지한 이정미 후보를 누르고 최종후보로 확정됐다. 정의당에게는 압도적 과반은 이뤄지지 않으며 이정미, 김윤기 등 심상정 외 후보의 가능성을 보여준 선거이기도 하지만 심상정에게는 노회찬 전 정의당 원내대표, 조승수 전 의원과 함께 노심조라 불리며 진보정치의 대표 정치인 이었던 위상은 많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심상정 후보의 가장 큰 과제로는 더불어민주당과의 관계설정이 어려운 과제로 통한다. 조국 사태 이후 정의당은 조국에 우호적이지도 비판적이지도 않은 정도의 태도를 취했는데 이 때문에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배신자라 비판을 받고 그 외에서는 민주당 2중대라 비판 받으며 지지도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비례대표 표가 사표가 안되는 투표 개혁이라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의석 증가를 꿈꾸었지만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을 창당하며 종전과 같은 의석인 6석을 가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도 민주당과 크게 틀어졌는데 민주당이 정의당에 위성정당 참여를 제안했으나 정의당은 거절했으며 민주당을 거대양당 기득권으로 설정하며 비판하다보니 민주당과 감정에 이골이 생길 수 밖엔 없었다.
결국 심상정 후보의 출마 이후에도 민주당 지지층의 '비호감 정당' 비판과 비민주당 지지층의 '정의없는 정의당', '민주당 2중대' 등의 비판을 받자, 심 후보는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에 들어가기에 이르르기도 했다.
칩거 이후 심상정 후보는 '남탓하지 않겠다' 라며 그동안 모든 책임을 거대양당 카르텔에만 돌린 것에 반성한다고 밝혔으며 더이상 민주당 2중대로 불리지 않겠다고 기자회견을 하며 반성하고 쇄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보정치인이다 보니 노동자, 농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생산계급 이슈를 주로 주장하며, 지지율 역시 이들과 소위 '강남좌파'로 통하는 화이트칼라에서 자주 나온다. 이점은 심상정 후보에게 강점이자 약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다른 군소정당 후보들과 달리 확실한 집토끼 지지층이 고정적으로 5% 내외는 존재하지만 이외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도 심상정 후보에게 주로 호소되는 대상인 20대 여성, 30대 여성과 40대 여성, 화이트칼라 계급 4050남성에게는 높은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이외 세대에서 5% 보다도 낮은 지지를 받기도 한다.
그 외에도 문제가 하나 더 존재하는데 심상정의 뒤를 받쳐줄 정치세력이 너무 한미하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은 본인 포함 총 6명인데 그나마 지역구는 경기도 고양시 갑의 심상정 본인 혼자뿐이다.
2.4. 기본소득당 - 오준호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오준호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00B1A0> | 오준호 (吳準鎬) |
출생 | 1975년 6월 20일, 대구광역시 |
상황 | 기본소득당 대선 후보 |
기호 | 5번 |
누구나 나답게, 기본소득 대한민국
2021년 11월 11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출마 선언문 기사 전국민 1명당 월 60만 원 기본소득을 보장하겠다고 밝혔으며, 10년 내에는 전국민 1인 월 100만 원 기본소득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선거 후보인 이재명을 비판하였으며, 동시에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후보인 윤석열을 "정책도 비전도 없는 검찰대통령 후보의 집권 가능성만 더 커졌다."며 비판하였다.11월 24일 첫 공약으로 '당신이 누구든 매월 65만 원 기본소득'을 발표했다. # 재원마련 방안으로는 시민세·탄소세·토지세로 구성된 기본소득 목적세를 제시했다. 오준호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공평한 출발선과 획일화한 기회 구조를 깨 경제 자유를 부여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라고 밝혔다.
11월 30일 두 번째 공약으로 '누구도 외롭지 않을 권리, 생활동반자제도'를 발표했다. # 오준호 후보는 가족이 혼인, 혈연관계를 넘어 친밀함과 돌봄을 실천하는 다양한 형태로 나아갔다면서, "누구를 동반자로 택하든 헌법의 행복 추구권을 누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12월 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세 번째 공약 '기후위기 해결, 기본소득 탄소세와 공유지분형 그린뉴딜'을 발표했다. 보도자료 기본소득 탄소세 도입, 탈석탄, 수송 부문 내연기관 전환 등을 약속하며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행 대비 50% 감축할 것을 공약했다. 독특한 정책으로 공공 재정으로 녹색 산업과 기술에 투자하고 국민이 지분권과 수익권을 가지는 공유지분형 그린뉴딜을 제안했다. 한편 "탄소 중립 주간에 '이메일 지우기'에 동참하는 것은 해일이 밀려오는 데 돌 던져 맞선다는 격"이라며 이재명 후보의 정책을 비판했다.
3. 원외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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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붙은 정당은 지방자치단체장 혹은 지방의회 의석이 있는 정당이다. | ||||||||
정당 구분 (원내 · 원외 · 창당준비위) | }}}}}}}}} |
3.1. 국가혁명당 - 허경영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허경영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E7141A> | 허경영 (許京寧) |
출생 | 1947년 7월 13일, 경상남도 밀양군[24][25] |
15대 대선 | 본선 7위 (0.2%, 민주공화당) |
17대 대선 | 본선 7위 (0.4%, 경제공화당) |
상황 | 국가혁명당 대선 후보 |
기호 | 6번 |
국가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둑놈이 많습니다!
2018년 12월 18일, 본인이 출마하겠다고 공언하였다.
2018년 12월 24일, 10년이나 금지되었던 피선거권이 복권되었다. 피선거권이 없어졌던 이유는 17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와 결혼" 공약이 명예훼손으로 유죄, 1년 6개월의 징역도 살았기 때문이다. 공언했던 황교안 당시 권한대행의 사면 복권도 없었다.
2018년 12월 27일, "이제 좌·우파 모두 답이 없다는 사실도, 오직 허경영의 공약만이 대한민국을 살릴 길이라는 사실도 모두가 알아가고 있다. 허경영을 연호하는 물결이 전국에 일어날 것"이라며 대선 출마 계획을 다시 공언했다.#
2019년 8월 15일, 독자 정당인 국가혁명당을 창당하고 당의 대선 후보로 추대받았다. 2019년 10월 21일, 당명을 국가혁명배당금당으로 바꾼다.
2020년 4월 15일, 21대 총선에 비례대표 2번으로[26] 출마했으나 21대 총선 이전에 TV조선의 탐사보도 세븐,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 궁금한 이야기 Y의 잇따른 언론 보도와, 과거 연애설이 불거졌던 최사랑의 허경영 실체 폭로로 인해 논란이 되어 총선에서 출마했던 후보자 전원 낙선했고 결국 2020년 6월 16일, 다시 정당명을 국가혁명당으로 바꾼다.
2021년 4월 7일, 2021년 재보궐선거에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했을 때 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성추행 사건을 일으키면서 정의당은 재보궐선거에 불참했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단일화를 하면서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3등이 유력했던 국민의당, 정의당이 후보를 내지 않게 되면서 운 좋게 처음으로 1% 이상의 득표율을 획득하며 3위를 기록하였다.
2021년 8월 18일, 허경영은 행주산성에서 갑옷을 입고 백마를 타며 등장한 뒤 행주대첩을 재연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출마 선언식에서 안철수와의 단일화를 제안했다.# 또한 당선되면 대통령제를 없애고 황제가 되겠다고 세계일보 인터뷰에 밝혔다. #
2021년 11월 12일, 안철수 후보의 "나만 군필" 발언에 발끈하며, "난 월남전 참전용사"임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출생연도가 1950년도가 아닌 1947년도라는 점이 밝혀졌다. # 또한 여러 사람들에게 녹음된 통화를 돌리며 자신을 투표해줄 것을 홍보했다. #[27]
만약 당선된다면 민주화 이후 국회의원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최초의 대통령[28]이자, 역대 대통령 중 최고령 대통령[29], 역대 대통령 중 김대중에 이어 대선에 가장 많이 출마했던 대통령[30]이 된다.
3.2. 노동당 - 이백윤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이백윤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D70C19> | 이백윤(李百允) |
출생 | 1977년, 충청남도 서산시 |
상황 | 노동당 대선 후보 |
기호 | 7번 |
계속 이렇게 살거야? 바꾸고 싶다면, 사회주의
노동운동가 출신 노동당 대권후보. 현재 캠프로 노동자민중 사회주의 좌파 공동투쟁본부를 두고 있다.1999년 대학구조조정에 항의하며 노동운동가, 학생운동가로 출발한 인물로 2002년 민중의료연합의 간사로 일했으며, 2005년 동희오토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였으나 동희오토가 비정규직만 있는 공장이었기에 이에 대한 투쟁을 하다가 해고 당했다. 이후부터는 계속 노동운동가로 살다, 2015년 지역에서 환경운동, 정치활동을 시작하며 사회변혁노동자당에 입당했다. 2021년, 사회변혁노동자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후 노동당을 중심으로, 사회변혁노동자당, 참세상연구소, 정치경제학연구소소프닉스, 현장실천사회변혁노동자전선, 토지난민연대, 공공운수노조, 인덕마을이주대책위 등이 합류한 사회주의 좌파 대통령선거 지방선거 공동투쟁본부의 대통령 선거 경선에 출마를 선언하고 후보에 등록했다. 기호는 1번을 배정 받았다.
경선은 노동당 후보 2명과 사회변혁노동자당 이백윤 후보가 참여했다. 이백윤 후보(기호1번, 변혁당), 이갑용 후보(기호2번, 노동당), 박성철 후보(기호3번, 노동당) 간의 한국사회 체제전환을 위한 사회주의 좌파 공동투쟁본부 (사회주의 공투본) 경선 결과 이백윤이 후보자로 선출되었다. 이후 변혁당과 노동당이 합당을 하며 노동당[31]의 후보가 되었다.
슬로건으로 계속 이렇게 살거야? 바꾸고 싶다면, 사회주의와 사회주의, 내 삶을 바꾸는 과감한 혁명을 내걸고 있으며 선명성을 강조하고 있다. 2월 14일, 대선 후보로 등록하였다.
3.3. 새누리당 - 옥은호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옥은호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D91E48><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D91E48><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color=#D91E48> ||<:><bgcolor=#D91E48>옥은호 (玉恩鎬)||
출생 | 1971년 7월 10일 |
상황 | 새누리당 대선 후보 |
기호 | 8번 |
선거를 국민에게
자유를 국민에게
선관위 개혁, 부정선거 단죄
지난 2020년 터진 4.15 총선 부정선거 음모론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며 ‘클린선거 시민행동’의 공동대표를 맡았던 강성 친박, 극우 성향의 인물이다.자유를 국민에게
선관위 개혁, 부정선거 단죄
2월 초 예비후보 등록 후 2월 5일 출마 선언을 진행했다.# 이후 2월 14일, 대선 후보 등록기간 마지막날 등록하는데 성공하였다.
선거 포스터에서 지면의 절반 이상을 4.15 부정선거 음모론 관련 내용으로 담았다.# 또한 출마 목적부터 대통령 당선이 아니라 부정선거 방지 목적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10대 공약도 절반 이상을 투표 관련으로 채웠다.
3.4. 신자유민주연합 - 김경재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김경재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AD469F><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AD469F><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AD469F>김경재 (金景梓)||
출생 | 1942년 11월 3일, 전라남도 여수시 |
상황 | 신자유민주연합 대선 후보 |
기호 | 10번 |
자유 우파 구국 대통령
전광훈 목사의 국민혁명당의 상임고문이자 전 한국자유총연맹 회장. 동교동계 출신 전 국회의원으로 김대중, 한화갑의 측근이었으나 김대중의 사망, 한화갑의 정계 은퇴 이후 박세일과 국민생각을 창당, 이후 새누리당과 합당해 친박이 되었다. 이후부터는 극우로 점점 옮겨가는 정치행보를 보였다. 전광훈 목사와 함께 광복절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며 광화문 집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의 원인 중 하나로 비판 받기도 했다.2021년 9월 7일, 국민의힘을 믿을 수 없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2021년 10월 14일,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여 국민혁명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2021년 12월 8일 당대표인 전광훈 목사가 윤석열을 미는 조짐을 보이자 탈당을 하고 무소속으로 출마를 하기로 했다 이후 2022년 2월 8일, 신자민련의 후보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며 2월 14일 대선후보 등록 마지막날 등록에 성공하였다. 신한반도당 박근령 후보, 신한반도평화체제당 최창원 대표가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며, 신한반도평화체제당 고돈식 후보가 행정수도이동위원장을 맡았다.
3.5. 우리공화당 - 조원진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조원진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009944> | 조원진 (趙源震) |
출생 | 1959년 1월 7일, 경상북도 대구시 원대동 |
19대 대선 | 본선 6위 (0.13%, 새누리당) |
상황 | 우리공화당 대선 후보 |
기호 | 11번 |
자유우파로 정권교체!
깨끗한 정치혁명! 조원진과 함께!
깨끗한 정치혁명! 조원진과 함께!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새누리당 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던 인물로, 강성 친박 성향 극우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친박-반윤(윤석열) 성향이기 때문에, 이번 대선 역시 출마가 유력해보였으며 우리공화당 당원들 역시 지속적으로 조원진 대표의 출마선언이 필요하다며 요구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9월 7일, 우리공화당은 본격적인 대선체제에 돌입한다고 밝혔으며 반드시 후보를 낼 것이라 한 뒤 이어 9월 1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으로 잘 알려진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어려울 때 태극기를 들었던 심정으로 힘 모아 서민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10월 4일, 정식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10월 16일 경선에 단독출마하여 우리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으며, # FM코리아와 청년의꿈에 인증글을 남기고 허경영을 벤처마킹한 전화홍보를 돌리는 등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상대로 어필을 하고 있다.
3.6. 진보당 - 김재연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김재연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d6001c><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d6001c><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d6001c>김재연 (金在姸)||
출생 | 1980년 11월 27일, 경상북도 대구시[32] |
상황 | 진보당 대선후보 |
기호 | 12번 |
당신의 땀이 빛나도록
일하는 사람들의 정치혁명
한국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19대 국회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역임한 현 진보당의 대표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정치혁명
젊은 나이, 보라색 미니스커트, 거침없는 언사 등으로 화제덤에 오르며[33]'제2의 이정희'로 통했다.
통합진보당의 분당 과정에서 현 정의당, 노동당 등과 같은 PD, 신좌파 계열과 유시민 등 참여계의 강한 비토를 받기도 했다. 이후 통합진보당 계열 NL파가 민중연합당 - 민중당 - 진보당을 거치며 창당한 이후 상임대표에 선출되었다.
젊은 나이에 비해 정치경력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총선 출마만 18대 총선부터 21대 총선까지 4번을 했을 정도이다.
2021년 8월 5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출마선언에서는 당진 용광로 사고, 평택항 대학생 사망 사고 등을 말하며 힘이 없어 제대로 개혁하지 못했다는 거대 여당의 협박 앞에 우리 국민들이 송구함을 금할 길이 없다며 이는 국민의 탓이 아니며 못난 정치의 탓이라 비판했다. 촛불항쟁으로 새 시대가 열릴 줄 알았지만, 소득주도 성장은 재벌주도 성장으로 바뀌었고, 박근혜 정부보다 못한 최저임금 인상률을 기록했다며 여당과 정부를 비판했다.#
만약 당선이 된다면 최초의 외국어고등학교 출신이자 박근혜에 이은 두 번째 여성 대통령이자 최연소 대통령[34]이 된다. 8월 29일부터 9월 3일까지 당원투표를 실시했고, 단독 출마한 김재연 대표가 대선후보로 선출되었다.#
3.7. 통일한국당 - 이경희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이경희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003793><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003793><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003793>이경희 (李京熹)||
출생 | 1974년 1월 20일, 충청북도 단양군 |
19대 대선 | 본선 11위 (0.03%, 한국국민당) |
상황 | 통일한국당 대선 후보 |
기호 | 13번 |
오직 경제! 오직 통일!
국민분열정치 이제 그만,
국민통합정치 이제 시작!
국민분열정치 이제 그만,
국민통합정치 이제 시작!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한국국민당 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던 인물로, 20대 대선 역시 출마를 선언했다.
삼균주의 성향으로 삼균주의에 따라 민족주의, 사회민주주의, 안보 우선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소속되어 있던 한국국민당이 보수적으로 변하자 탈당한뒤 직접 정당을 창당했다. 1,000억이 넘는 재산을 가지고 있는 자산가기 때문에 다른 군소정당 후보들보다 자금 운용에서 유리하다. 충청도 출신의 인물이라 보니 충청도의 지역 언론이나 정가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충청도 출신 류근찬 전 의원이 통일한국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자금 운용, 1,000억대 재산 등과 별개로 인지도가 심히 낮은 데다, 19대 대선에서도 11위로 낙선해 본선 경쟁력이 낮은 것이 가장 중요한 단점으로 보인다. 이경희 후보도 이걸 알고 있는지 자신의 막대한 자산을 이용해 제19대 대통령 선거때 여야 후보들보다도 더 지극정성으로 16면의 고퀄리티 공보물을 만들어 낸 적이있었지만 효과는 미미했었다.
3.8. 한류연합당 - 김민찬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김민찬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733A87> | 김민찬 (金旻澯) |
출생 | 1958년 2월 4일, 서울특별시 |
19대 대선 | 본선 7위 (0.1%, 무소속) |
상황 | 한류연합당 대선 후보 |
기호 | 14번 |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겠습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사람!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사람!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던 인물로, 20대 대선 역시 출마를 선언했다.
19대 선거 당시 토론회에서 땅굴 음모론을 말하며 남재준 전 국정원장한테까지도 지적을 받았던 전적이 있지만, 한류연합당은 현재는 이러한 성향은 완전히 사라진 채 창당되었다. 오히려 공약에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포함하며 보육 공공성 확대, 돌봄 공동체 확대, 공공 의료의 확대, 장애가 불편하지 않은 삶을 주장하고 있다. 주 공약으로 '한반도 프로젝트'가 존재하는데, 북한과의 합의를 통해 비무장지대를 '세계문화예술도시'로 지정하고 남북공동성명을 통해 문화예술을 발달시키고 한반도 평화체계를 구축하며 경제적인 효과도 낸다는 공약이다. 후보의 출마 사유조차 알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던 19대 대선 당시와 달리 대부분의 공약이 '문화예술', '한반도 평화', '복지', '공공성' 등에 맞춰져 있다.
슬로건이 19대 대선때와 동일하다.
4. 경선 참여자
아래 인물들은 한 정당의 경선에 참여했던 인물들이다.4.1. 더불어민주당
====# 김두관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김두관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004ea2><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004ea2><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004ea2>김두관 (金斗官)||
출생 | 1959년 4월 10일, 경상남도 남해군 |
17대 대선 | 대통합민주신당 예비경선 컷오프 |
18대 대선 | 민주통합당 경선 3위 |
상황 | 경선후보 사퇴 |
경선 번호 | 2번 |
서울공화국 해체, 지방도 행복한 나라
남해군수, 행정자치부 장관을 거쳐 2010년 6.2 지방선거때 무소속으로 경남지사에 출마해 53.5%의 득표율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해 예전에 민주당의 대권주자감으로 거론되던 사람이었다.[35] 그러나 2012년 18대 대선 경선에 출마하려고 경남지사직을 내던지는 정치적 자살행위를 저지른 데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와 경쟁하면서 지나치게 문 후보를 공격한 그의 행보가 두 사람 간의 아름다운 경쟁을 기대했던 친노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큰 실망을 사면서 정치적 고난기를 겪어야 했다.그러나 더문캠 공동선대위원장을 맡는 등 친문과 화해를 기도하고, 지난 2014년 7.30 재보선에서 도전했다가 떨어졌던 곳인 경기도 김포시에서 20대 총선 때 재도전해 당선되면서 가까스로 재기의 기회를 잡았다. 또한, 21대 총선에서는 김포에 안주할 수 있었음에도 당 지도부 및 친문 그룹의 요청에 따라 험지인 양산시 을 선거구에 도전하여 강력한 후보인 전직 양산시장 미래통합당 나동연 후보[36]를 꺾고 당선되어 재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는 그가 민주당 당적을 달고서는 경남에서 처음으로 승리한 것이다. 물론 양산시는 낙동강 벨트에 속하는 곳으로 부산 인접지역이고 문재인 대통령 사저가 있는 등 민주당의 연고성이 있고 지지세가 비교적 강한 곳이기도 했지만, 21대 총선이 PK 전체적으로 민주당이 일보 후퇴하는 가운데에서 사수해낸 승리로 1석 이상의 의미가 있으며, 이를 계기로 대권 잠룡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당선 후 인터뷰에서 김두관은 대권에 도전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당내에서 비주류임에도 대선 주자 반열에 올랐다.
여권에서는 김영춘과 함께 거의 유이한 PK 대망론 주자 중 하나로 당내 경선에 나가면 잔류 비문이나 PK의 표를 얻을 가능성이 크며, 지난 경선 패배 이후 문재인 정권 들어서는 친문과 각을 세우지 않고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친문 유권자의 지지도 어느 정도는 얻을 가능성은 있다. 김경수가 20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어차피 친노친문 직계 대권주자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친문 지지층에서 김두관의 과거 행보에 대한 비토(Veto)가 여전히 존재하는 데다 민주당 비문 지지층은 독주 중인 이재명 지사를, 친문 지지층은 이낙연을 검찰개혁 지지층과 일부 친문은 추미애 전 장관을 택하는 경향이 크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먹구름이 끼었다는 분석이 많다. 거기에 과거 교계와의 만남에서 "양성애가 들어있는데 이성애자 입장에서 이해를 하지 못한다, 동성애에 대한 비판까지 차별 금지법에 적용하는 건 모르겠다"라는 발언 등으로 당내외 진보층에서의 이미지도 실추되어, 대권주자로서 입지는 이래저래 확정적인 지지층이 없는 것이 가장 약점이다. 그래서인지 현재는 몇몇 조사에서는 아예 기타 후보로 포함될 정도로 다른 후보들에 비해 인지도가 무척 달린다.
2021년 5월 9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021년 9월 26일 전북 경선 직후 이재명을 지지하며 사퇴했다.
====# 박용진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박용진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004ea2><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004ea2><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004ea2>박용진 (朴用鎭)||
출생 | 1971년 4월 17일, 전라북도 장수군 |
상황 | 경선 탈락 - 4위 |
경선 번호 | 5번 |
젊고 실력있는 유능한 진보
민주노동당 출신으로 당 내에서 자주 소장파, 당내 진보파로 불려지는 인물. 당내 97세대(90년대 학번·70년대생)의 대표격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초선 당시부터 국정감사에서 현대차 세타 리콜, 이건희 차명계좌 탈세 폭로, 삼바 분식회계 사건 등 여러모로 건드리기 어려운 사안들을 눈치보지 않고 과감히 건드려 큰 호응을 얻었고, 이후 정무위원회에서 밀려 가게 된 교육위에서 역으로 사립유치원 비리 폭로 및 유치원 3법 입법이라는 엄청난 실적을 내면서[37]전국구적으로 스타가 되었다. 성실함, 젊음 등을 키워드로 지지층이 존재하며, 더불어 직설적인 화법, 진보에 친화적인 행동들, 본인의 뚜렷한 소신[38]로 어느 정도 민주당의 차세대 정치인 중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당의 주류인 친문 지지층에게는 소장파를 넘어 마치 튀어보일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다만, 비판적인 이들 역시 박용진이 어느정도 입법 실적 등이 나쁘지 않다는 것은 인정하는 등 상당히 입체적인 평가를 받는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모병제로 전환하고, 남녀 모두 최대 100일간 의무적으로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남녀평등복무제', 대통령 5년 단임제 개헌과, 국회의원 증원(300명 → 330명), 청와대와 대통령의 권한 분산 등 상당히 진보적인 어젠다로 대권 의지를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박용진 대권 도전
2021년 5월 9일, 민주당에서 최초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6월 9일 여론조사에서 최초로 추미애, 정세균을 제치고 당내 대권주자 3위에 안착했다.[39] 정치계 전체적으로 세대교체론이 대두되면서 민주당 소장파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박 의원의 지지도가 올라간 것우로 보인다. 특히 예비경선 중 토론회에서 당 내 지지율 1위였던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소득 등 공약을 집중적으로 비판하면서 관심을 크게 끌었다.
결국 예비경선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박용진은 재선 의원에 불과해 도지사, 다선 의원 경력들이 즐비한 다른 후보에 비하면 체급이 상당히 뒤처지는 것에도 불구하고, 예비경선 과정에서 여러모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3선 도지사, 4선 의원 출신 도지사를 앞질렀던 것이다. 이후 본경선에서는 일부 여론조사와는 다르게 정세균 전 국무총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게 밀리며 5위로 밀려났다. 하지만 재선 국회의원이자 경남도지사 출신인 김두관 의원을 누르며 5위를 차지한 것은 재선의원 치고는 괜찮은 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 양승조 #====
해당 주자에 대한 자세한 내용에 대한 내용은 양승조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004ea2><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004ea2><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004ea2>양승조 (梁承晁)||
출생 | 1959년 3월 21일, 충청남도 천안군[40] |
상황 | 예비경선 컷오프 |
예비경선 번호 | 7번 |
내가 행복한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의 불모지였던 천안에서 17대부터 내리 4선을 하며 충청도 민주당계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이완구, 안희정의 몰락 이후 박수현이 불출마를 하며 충청남도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올라 충남도지사에 올랐다. 충청 대망론의 대상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손학규계로 정계에 입문하여 현재는 손학규와 멀어진 인물로, 지금은 친문이고 비문재인이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계파색이 옅게 분류된다.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단점이라면 단점인 부분으로 "친문은 아니나, 비문과는 친하지 않다"라는 점은 같은 지방자치단체장인 이재명과 비슷한 부분.
코로나 사태 이후 관련된 충청남도 내 논란과 주민 갈등을 해결해내면서 민주당 지지층은 물론 중앙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교민들이 무사히 귀가할 때까지 함께하겠다. 모든 책임을 지고 신종 코로나가 확산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차단하겠다"라며 경찰인재개발원 근처에 임시 거처와 집무실을 마련하고 마을회관을 도지사 현장 집무실로 개조하고 마을회관 가까운 곳에 거처도 구하며 우한 교민 주변에서 집무해 아산 주민들의 걱정도 덜고 교민들의 무사 귀가도 함께하겠다고 발언하며 아산 내 반발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몇몇 언론사는 지방선거 전부터 대권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으며# 이후 충청도 리더를 뽑는 여론조사에서 1위, 충청도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4위의 성적을 내며 나름 대권주자 군으로 분류되곤 했다.
문제는 너무나도 낮은 지지율과 인지도인데, 과거 충청대망론을 토대로 대선 바람을 탔던 안희정과는 다르게 양승조는 안희정에 비해 도정 지지율도 낮고 인지도도 낮은 편이다. 대선 여론조사에서도 거의 이름을 찾아볼 수가 없고, 양승조의 대선 출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대부분 "양승조가 누군데?"라는 반응일 정도이다. 그렇기에 양승조가 민주당 대선에 도전하고 최종 경선 후보 4인이 되기 위해선 인지도를 끌어올릴 비장의 카드가 필요하다.
2021년 5월 12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컷오프 이후 정세균 전 국무총리 지지 선언을 했다.
====# 이광재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이광재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004ea2><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004ea2><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004ea2>이광재 (李光宰)||
출생 | 1965년 2월 28일, 강원도 평창군 |
상황 | 경선 후보 사퇴[41] |
예비경선 번호 | 2번 |
세계의 미래를 가장 먼저 만나는 나라, 대한민국
강원도지사 출신이자 현 원주시 갑 국회의원인 정치인으로, 최문순과 함께 강원 대망론의 대상인 인물이다.친문이 밀고 있던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2심에서도 유죄를 받아 사실상 대권 출마가 불가해지자, 친문 진영이나 언론 등에서 대안으로 친노 출신이고[42] 강원도지사에 당선된 적이 있던 이광재 의원을 임종석 등과 함께 언급하고 있다. 무게감이 있는 정치인 중에서도 거의 보기 드문 강원도 출신이었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발로 뛰는 모습을 보이며 강원도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정치인이다. 실제로 이광재가 강원도지사로 출마했을 땐 강원도가 대경권과 부울경 등에 비해서 보수 정당(당시 한나라당)을 찍어줌에도 홀대받고 있다는 불신이 커지고 있을 때 나타난 민주당 의원이었기에 거물 정치인으로 키우겠다는 도민들의 열망이 표로 결집되어 보수 지역이었던 강원도에서 춘천시, 강릉시, 원주시의 빅3에서 모두 앞서며 53%의 여유로운 득표율로 한나라당 후보를 이기고 민주당계 정당 출신 첫 강원도지사로 당선되었다. 이는 이광재가 지역적으로는 영서지만 문화적으로는 영동인 평창군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영동과 영서의 정서를 모두 가져 지역감정이 있는 영동과 영서가 모두 선호했기 때문도 있었기에 이뤄낸 일이기도 했다.
이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유죄 선고를 받으며 지사직을 상실했으나 평창 올림픽 개최, 도로나 전철 건설 문제로 쌓여있던 업무에 대한 강원도민들의 피로감, 파장과 한나라당의 강원도 죽이기[43]라는 도민들의 서러움이 최문순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때문에 이광재는 강원도에서 동정론을 받았으면 받았지 비토를 받진 않았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돌아온 탕아로 복귀하며 다시 강원 대망론의 한 사람으로 올랐다.
강원도에서의 높은 호감도와 친노의 대안이라는 점 등이 있지만, 전국적인 인지도가 없이 강원도에만 한정된 대권주자라는 점과 지역기반인 강원도가 인구수가 다른 곳들에 비해 적다는 점이 문제로 거론된다. 더불어 이광재 본인이 민주당 소속 치고는 다소 보수적인 성향인 점 또한 당내외 진보 성향 유권자들에게 비토를 받기 좋다.
최근 들어 대선 출마를 시사하며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4.7 부산시장 재보선에서 역할을 맡아 당내 기반을 쌓고 대선 행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차기 강원도지사 출마가 더 낫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광재가 나오지 않으면 민주당 내 후보군이 원창묵과 홍남기인데, 그 둘이 강원도지사 급의 체급인지는 검증이 되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국민의힘 강원도지사 후보로 권성동과 김진태가 꼽히고 있는데, 이 둘이 지지도에서 1위 아니면 2위를 다투는 상황에서 그 체급에 맞추려면 제법 영향력과 무게감이 있는 이광재가 나와야 한다. 다만 최문순이 임기 말에 차이나타운 논란이라는 빅똥을 싸서 민주당 비토 정서가 강하고[44] 이광재도 재보선 실패의 책임이 있어서 강원도지사 출마도 쉽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선 출마설이 도는 김동연 전 장관과 교감 중이라고 한다.#
2021년 5월 27일, 문제는 경제다…일자리, 시장이 주도해야한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시장에서 일자리를 만든다는 주장은 그동안 보수 진영에서 주로 하던 말로[45]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다.
6월 28일,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단일화를 선언했다.#
====# 이낙연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이낙연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004ea2><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004ea2><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004ea2>이낙연 (李洛淵)||
출생 | 1952년 12월 20일, 전라남도 영광군 |
상황 | 경선 탈락 - 2위 |
경선 번호 | 4번 |
본선승리 최강후보
문재인 정부의 첫 국무총리이다. 19대 대선 당시 대선 주자로 거론되었지만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전남지사 시절인 2017년, 리얼미터에서 실시한 광역단체장 직무수행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이어 2위를 차지한 바 있다.#이낙연 전 총리는 동교동계로 출발하여 손학규계, 친문계, 호남을 망라할 수 있는 포지션에 있다. 이는 당심(黨心) 경쟁에서 강점으로 작용하는 요소이다. 또 이낙연은 친노계로 분류된 적은 없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나름 인연이 있어 친노 지지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난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낙연 당시 의원은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으며, 노무현 탄핵 사태 당시 새천년민주당에서 유일하게 반대 표를 던졌다.[46] 그러나 한편으로는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 이낙연은 구 민주당 원내대표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던 과거 전력이 있기도 하다.[47]# 2020년 8월 민주당 당 대표 선거 당시 김부겸 후보가 이 사건을 언급한 적이 있다.
차기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당시, 이낙연 전 총리는 21대 총선 선거 국면에 더불어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과 코로나19 국난극복대책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으며, '미리 보는 대선'이라는 평을 받던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에서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를 18.4% 차이로 승리하며 당선되는 동시에, 범여권이 180석을 차지하는 완벽한 대승을 이끌어내며 대권 도전에 청신호가 켜졌다. 또한 총선 당시 민주당 초, 재선 국회의원 후보 38명의 후원회장을 맡아[48]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미약한 당내 기반을 더불어민주당 총선 대승이라는 실적과 더불어 보완하고 있다.
이낙연의 대선 경쟁력 평가이라면 우선 장점으로 문재인 정부의 첫 국무총리이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왔던 여러 정책들을 잘 이어 받아서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친문계의 기대, 4선 국회의원과 도지사 및 역대 최장기간 재임 총리로서(958일) 국무총리 직을 수행하며 풍부한 행정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49] 다만 문재인 정부의 '실세 총리'였던 점은 양날의 검이기도 한데 만약 문재인 정부가 상당한 실책을 저지르고 정부 심판론이 대두될 경우, 그 정부의 실세 총리인 이낙연 역시 그 책임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의 비호감도가 부쩍 올라가자 이낙연의 지지율도 덩달아 내려가면서, 여권의 또 다른 주자 이재명 경기지사와 지지율 데드크로스를 맞은 바 있다.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우하향하여 결국 3위까지 추락하자 무리수를 던지게 된다.[50] 신년에 난데없이 이명박과 박근혜의 사면설을 제기하였고[51], 또 이를 관철하기 위해 당 최고위에서조차 부결 입장이 났음에도 여기저기 발 빠르게 움직이며 사면을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또한 김옥두[52] 등의 동교동계가 정무직 고문에 임명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자신의 지지기반이었던 친문 진영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깎였다. 실제로 친문이 장악한 커뮤니티로 불리는 클리앙, 딴지 등[53]에는 온통 이낙연에 대한 비난, 사퇴 요구, 당 대표 탄핵, 과거 이낙연이 보인 실수를 지적하는 글이 추천을 받고 있다. 이렇게 되면서 지지층이 많이 떨어져 나갔고, 이제는 일부 친문 세력과 호남 지역, 이낙연계를 제외하면 지지기반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지역 기반인 호남에서조차 이재명에게 지지율을 역전당했다.
2021년 재보궐선거가 다가오면서 이낙연 대표가 당권•대권 분리 조항에 의해 당 대표에서 물러나고 재보궐 선거의 선대 위원장으로 나서게 되는데, 부산은 잃어버리더라도 서울을 사수하는데 성공한다면 다시 지지율을 반등시켜 이재명 후보와 확고한 양강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부산은 물론이고 서울시장 선거에서까지 패배, 그것도 모두 20% 이상 격차의 압도적 패배를 당하면서 대권주자로서의 생명력에 치명타를 입었다. 현재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대권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낙연의 지지율이 이렇게 쭉 빠진다면 공통점이 많은 정세균 총리가 그 지지율을 받아먹고 이낙연으로선 더욱 곤란한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
재보궐선거 이후 잠시 침묵기를 가지다가 의원 포럼을 발족시키고 전국를 순회하며 본인의 정책 브랜드인 '신복지'를 내세우고 있다.# 본격적인 대선 활동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지배적인데, 과거 40%까지 올라갔던 지지율을 10% 대도 간당간당해진 시점에서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심지어는 총선 패배 후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난 황교안보다 못하고 책임을 떠넘기면서 철판 깔고 대권 도전하는 모습이 뻔뻔하다는 비판도 있다. 박성민 청년비서관 임명 논란의 여파도 받았는데, 이낙연 지도부에서 박성민이 청년 최고위원에 뽑혔기 때문이다. 단 박성민을 청와대 비서관으로 뽑은 주체는 정무수석인 이철희이다.[54]
2021년 6월 29일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등록을 했다.#
2021년 7월 5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7월 들어 예비경선 토론회에서 이재명 지사가 상대적으로 의혹에 대한 방어를 제대로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와 대비되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 이낙연의 지지도가 상승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특히 7월 13일에 발표된 윈지코리아컨설팅의 여론조사에서 이낙연-윤석열의 양자대결 시 이낙연이 지지율 43.7%로 윤석열의 41.2%를 2.6% 포인트로, 오차 범위 안으로나마 앞서는 결과가 나오면서 민주당 경선이 이낙연-이재명 2강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보였다. 다만 이로 인해 예비경선 때 이재명만이 일방적으로 견제되던 구도에서 이제 이낙연에 대한 견제도 늘어남에 따라, 이에 따른 본격적인 네거티브 대처의 필요성이 생겼다.
만약 당선이 된다면 김대중에 이어 두 번째 호남 출신 대통령, 최규하에 이어 두 번째 국무총리 출신 대통령이자 최초의 언론인(기자) 출신 대통령, 이승만에 이어 두 번째 딸이 없는 대통령, 최초의 한 자녀 대통령[55]이 될 것이며, 이승만 및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나이와 비슷한 나이에 대통령이 되어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게 될 것이다. 또한 최초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출신 대통령이 될 수 있다.
====# 정세균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정세균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004ea2><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004ea2><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004ea2>정세균 (丁世均)||
출생 | 1950년 11월 5일, 전라북도 진안군 |
18대 대선 | 민주통합당 경선 4위 |
상황 | 경선 후보 사퇴 |
경선 번호 | 3번 |
믿는다! 정세균
정세균 의원은 일단 참여 정부 하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맡은 데다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으로 인해 몰락 직전까지 몰렸던 민주당을 당 대표로서 당시 원내대표였던 원혜영 의원과 함께 수습하여 19대 총선에서 양당 구도로 복구하는 발판을 마련했기에 위기관리 능력과 지도력은 충분히 입증됐다. 총선에서 당선될 시 차기 대권도 노리겠다고 발언했을 때까지는 세균맨 립 서비스한다는 소리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언급되는 등 저평가됐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새누리당 신흥 대권주자로 거론되던 오세훈을 꺾고 6선에 성공했다. 이로써 대권 유력 주자 가운데 하나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제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었다. 따라서 사실상 대권 출마가 불가능했으나, 여론조사에는 계속 포함되었다. 10차 개헌이 이뤄지면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
본디 국회의장은 정계 은퇴를 하는 것이 관례이나, 정세균은 계속 정치를 이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자주 표명하였다. 킹메이커 지역구라 불리는 정치 1번가 종로구를 꽉 잡고 있었으며 특유의 중도적 성향 때문인지, 여론조사상에서 민생당 지지자들의 지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점은 이낙연도 어느 정도는 공통점인데다가 민생당 지지층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지라 강점이자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코로나 위기 상황에 총리직을 계속 수행하면서 인지도도 높여가는 중이고 정세균계 의원들이 모여 싱크탱크를 구성, 본인도 다양한 지역을 누비며 광폭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정치권에선 이러한 정세균 총리의 움직임을 대선을 염두에 둔 활동으로 사실상 기정사실화한 상황이다.
정세균 총리는 과거에도 추석 정책 홍보 만화, 지하철 2호선 육성 안내 방송, 토크쇼 '총리식당' 등 무리한 행보 등을 했는데, 국무총리실이 소셜미디어에 국민들의 코로나 우울감을 총리에게 풀어 달라는 '3컷 만화'를 올려서 또 구설수에 올랐다.#
현재 정세균 총리는 언론에도 자주 노출되며 지하철 육성 안내 방송에도 나오는 등 은근히 부상하는 중이며, 기존에 다크호스로 부상할 가능성이 거론되던 김두관이나 송영길보다도 가능성이 높아진 상태이다. 만약 이낙연이 대선주자 군에서 낙마하는 사태가 벌어질 경우 그 자리를 대체할 민주당의 제3후보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후보인데, 우선 온건한 성격과 민주당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호남을 주요 기반으로 삼고 있고 두 사람 모두 총리를 역임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매우 많아 이낙연의 빈자리를 메꾸기엔 이만 한 후보가 없다.
최근 여권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박용진 의원에게도 밀리며 지켜오던 여권 내 3위를 내주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국무총리 퇴임 이후, 정치로 복귀하되 여의도는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사실상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으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21년 6월 17일 경제 대통령을 슬로건으로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
2021년 6월 28일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단일화 선언을 하고 7월 5일 오전에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단일화했다.#
만약 20대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최규하에 이은 두 번째 국무총리 출신 대통령이 된다. 또한 이승만에 이어 두 번째로 입법부와 행정부의 장(長)을 모두 역임하는 사례가 된다.
2021년 9월 13일 낮은 지지율로 인한 4위 추락으로 경선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 최문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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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ordercolor=#004ea2><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004ea2><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004ea2>최문순 (崔文洵)||
출생 | 1956년 2월 4일, 강원도 춘성군[56] |
상황 | 예비경선 컷오프 |
예비경선 번호 | 8번 |
당신은 귀한 사람
2011년 4.27 보궐선거에서 불리했던 강원도 판세를 뒤집고 당선이 된 이후 주요 정치권 변방으로 평가받던 강원도지사 치고 어느 정도 중앙무대와 교류하는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중,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거치며 잠깐 대권주자로 반짝 떠오르며 대권주자로 불리기 시작했다. 평창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남북정상회담 수행원으로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함께 선정하기도 했다. 이후 2020년 6월, 7월 여론조사에서 김두관, 김영춘 대신 모습을 보이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 포함되었다. 민주당계 정당의 첫 3선 강원지사로 보수 성향이 강한 강원도에서 이례적으로 강하게 지지하고 있는 진보 성향 도지사이며, 민병희 교육감과 12년간 호흡을 맞췄다. 도정 수행 지지도가 연일 60%가 넘는 상위권으로 시도지사 여론조사에서 매번 2~4위의 상위권 위치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강원도에서는 평이 좋은 편. 최근 감자 파는 도지사 등으로 농어촌도민들의 감자, 오징어, 아스파라거스 등 작물들을 대신 팔고 그들을 지원해 주는 등 코로나19 이후 특유의 행정이 인기를 끌어 나름 알려지게 되었다. 신천지 대유행 당시에도 2~3월 몇 주 동안 강원도 내 확진자 0명을 내며 전수조사 및 방역에 집중했다. 특히 '감자 파는 도지사'로 2주 만에 감자 4,000톤을 본인과 도청 직원들이 직접 판매한 것으로 강원도는 물론 대내외적으로 이미지와 인지도가 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대권주자 여론조사에도 이 이후 등록된 것. 정치 성향적으로는 자치분권 개헌을 자주 주장하며 덴마크, 스웨덴 식 '겐트 시스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노동조합비를 높게 내고 노동조합이 실업보험을 관리, 운영하며 노동조합 활성화를 말하는 시스템이다.
이광재의 '강원 대망론' 포지션을 그대로 이어받아 강원도민의 지지와 함께, 여러 행보로 인지도와 행정력 정도는 확보가 되었으나 전 국민적 인지도와 지지가 여전히 떨어지고 그마저도 적강원도 지역에 한정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원 대망론'을 이어받았다 보니 강원 대망론의 한계 역시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 본인도 대권 생각이 있는 듯한 발언을 한 만큼 강원도지사 임기 이후 중앙무대로 진출해 적극적인 대선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같은 강원대망론의 주자인 이광재와의 교통정리가 어느 정도 필요한데, 가뜩이나 강원도의 적은 인구수로 주력 기반의 파이가 적은 상황에서 그 작은 파이마저 이광재와 갈라 먹을 경우 승리 가능성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야심 차게 추진한 사업 중 하나인 강원도 중국복합문화타운 건설 논란 역시 조선구마사 사태로 촉발된 혐중 감정의 불똥이 제대로 튀어 이로 인한 반감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실제로도 중국복합문화타운 반대 청원이 무려 60만 건 이상의 동의를 기록하며 상당히 큰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해당 사업 주체였던 코오롱그룹이 사실상 발을 빼며 백지화 수순을 밟게 되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최문순에게 두고두고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2021년 6월 1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 추미애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추미애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004ea2><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004ea2><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004ea2>추미애 (秋美愛)||
출생 | 1958년 10월 23일, 경상북도 달성군[57] |
17대 대선 | 대통합민주신당 예비경선 컷오프 |
상황 | 경선 탈락 - 3위 |
경선 번호 | 6번 |
사람이 높은 세상, 사람을 높이는 나라
제2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5선 국회의원,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TK 출신 당 대표,[58] 최초의 판사 출신 여성 국회의원, 판사 출신 최초의 야당 국회의원, 여성 의원 최초 지역구 5선 등의 다양한 최초 기록을 가지고 있다. 당 대표에 취임하고 나서 당이 정부를 적극 뒷받침하고 있는 모습에 당 지지자들로부터는 대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민주당 최초로 임기를 채운 당 대표가 되었다.당사자는 당대표 시절에 대권에 도전할 의욕이 있느냐는 질문에 애매모호한 답변을 했지만,# 여론조사 기관에서는 별개로 추미애를 대권주자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한 이해찬 전 총리에게 대권 가도에 등장할 새로운 인물에 대해 물었을 때 다온 답변이기도 하다. 법무부장관 직을 사임한 후인 2021년 3월에는 "시대 요구 과제 푸는데 제가 쓸모 있다면 나서지만 아무 때나 나선다고 되겠습니까"라며 이전보다는 더욱 의지를 드러내는 듯한 발언을 하였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2007년 17대 대선 당시 출마를 선언하고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예비경선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결국 컷오프 되었다.#문재인 집권 이후 정부를 적극 지원하고 야당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친문 성향 유권자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 지역주의가 실재하는 대한민국의 환경에서 친정은 영남, 시가는 호남이라는 가족관계가 영호남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점, 판사 출신 5선 대한민국 국회의원이자 현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당 대표이고 4번의 대선 캠프에서 중책을 맡아 활동하여[59] 정치력과 무게감이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앞장서 주도했기 때문에 사죄한 후에도 친노들이 거부감이 있다는 점이 약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것이 대권 가도의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현재에도 추미애가 비난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즉 범친문으로 분류되지만 친노 계열의 지지를 얻기는 어려운 것이다.
또한 야당에 대한 강한 비판으로 인하여 야당 지지층의 비토 정서가 강해 지지층 외연 확장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약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당 대표일 때는 지지자들의 환호성을 받는 시원시원한 모습이었던 발언들이 반대로 보수 지지자들에게는 비호감 요소가 되는 것. 특히 국민의당을 향한 '머리 자르기' 발언이나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 부결 직후 '생떼' 발언 같은 수위 높은 표현이 더불어민주당 내 지지층을 끌어모을 수 있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야당의 반발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2020년 법무부 장관에 취임하였다. 조국 전 장관 관련 논란으로 다소 주춤해진 검찰 개혁의 동력을 다시 살리고자 한 인사라고 평가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검찰 개혁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위해 의도적으로 판사 출신에다가 5선에 당 대표까지 추미애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한 것으로 보인다.
21대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야권, 검찰과 대립각을 세우며 정국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문제는 법무부 장관 임기 내내 찬반 논란이 거세다. 이 갈등을 통해 추미애는 전국구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윤 총장과 극심한 갈등을 빚으며 평가가 이전보다도 더욱 크게 엇갈리게 되었는데, 진보층에선 추다르크로 칭송받는 반면 보수층에겐 윤석열 검찰총장이 새로운 유력 대권주자로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그야말로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대선 경선이 민주당 지지자들의 지지가 중요한 것을 생각해 보면 더불어민주당 내부 지지자 사이에선 법무부 장관 임기 내 한 일에 대해서 긍정 평가가 더 높아 민주당 내부에서 상황은 더 좋아지고 본인의 확고한 지지층 즉 콘크리트 지지층이 생겼다.
하지만, 이 때문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야권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르게 했다는 점 때문에 아군에게 두 번 칼을 꽂았다며, 제 버릇 남 못 준다는 비아냥도 있다. 야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아예 어둠의 국민의힘 비상 대책 위원(...)이라는 멸칭이 있을 정도로 만만하게 보고 오히려 고마워하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상황일 정도이다. 어찌 됐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뽑은 검찰 총장인 윤석열을 쳐내기 위해서 법무부 직속 외부 자문위원회까지 제쳐버리는 등,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위해 직무정지까지 강행하며 윤석열과 대립각을 세웠는데 오히려 윤석열을 밀려버리며 본인이 역으로 치명상을 입어[60] 체면을 구기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 만약 윤석열과 대선에서 맞붙을 경우 불리할 가능성 있다. 하지만 최근 윤석열 전 검찰총장 본인과 부인 김건희의 여러 논란과 의혹들이 붉어지면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대립각을 세웠던 추미애가 옳았다 라며 재평가 받기도 하는 상황이다.
2021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이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지 않다."라며,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답변해 대놓고 추미애를 실패한 인사라고 인정하는 뉘앙스를 보여주었다. 결국 최종 목표였던 윤석열 총장의 자진 사퇴 유도에 실패하고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사실상 경질당했다. 본인은 경질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이걸 믿는 건 극문들뿐이고, 계속된 윤석열 검찰 총장과의 갈등으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큰 리스크를 줬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교체했다는 것이 대다수의 평가다.#[61]
법무부장관으로 재임하며 여권이 그렇게 바라던 공수처 설치를 성사시켰고 윤석열과의 정면충돌로 매우 높은 인지도, 그리고 친문 지지자들의 신임을 얻는 데는 성공하였지만, 거꾸로 공공기관들끼리 매우 매우 다투며, 시종일관 싸우기만 하는 등 이게 정치판인지 싸움판인지 모르겠다며 중도층에게 상당히 좋지 않은 이미지가 새겨지며 확장성이 크게 저하되는 등 실익이 극명하게 갈렸다. 친문으로 대표되는 사람들에게는 추장군, 추다르크 등으로 칭송되나, 소장파를 포함한 일부 여권과 야권에서는 애미추라는 멸칭이 새겨졌다.[62]
대권주자 여당 후보 여론조사에서 정세균 전 국무총리를 제치고 이재명 경기도지사,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이어 깜짝 3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무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대선 출마를 적극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대선에 나온다면 윤석열과의 정면충돌 경험을 명분으로 제2의 추-윤 대전을 벌이겠다며 등판할 가능성이 높다.#
6월 초 대담집 출간과 함께 대선 출마를 선언할 예정이라고 한다.
2021년 6월 23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021년 7월 1일 자신의 대담집인 추미애의 깃발을 발매했다.
대선출마 이후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여권 빅3라고 불리던 정세균 후보를 매우 큰 표 차이로 꺽어버리면서 자신이 꿩이라고 지칭하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보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를 먼저 잡았다고 평가된다.#
윤석열이라는 지독한 적수를 만들어낸 것이 비판점인데 만약 대선에 둘이 나와서 윤석열이 당선될 경우 추미애의 정치생명이 윤석열의 손아귀 안에 들어가게 된다. 누가 출마하느냐로 선거의 판이 크게 달라지는데 윤석열이 출마하면 무조건 단두대 매치가 된다. 추미애의 상황은 본인이 당선되면 좋겠지만 본인이 낙선되더라도 윤석열만은 막아야 하는 처지이다. 이번 대선의 모든 경우의 수 중 추미애에게 최악이 바로 윤석열 당선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선출마 이후 자신이 꿩 잡는 매라고 자부했다. 윤석열이 대선출마 이후 본인과 부인 김건희의 여러 의혹과 논란이 붉어지며 지지율이 하락하자 윤석열보다는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때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발언으로 이낙연 전 대표에 실망했던 일부 유권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있다.
만약 당선이 된다면 노무현에 이어 두 번째로 판사 출신 대통령이자 박근혜에 이은 두 번째 여성 대통령이 된다. 공교롭게도 둘은 노무현을 탄핵시키기 위해서 잠시 동맹인 적이 있다. 또한 최초의 한양대학교 출신 대통령이 되는 셈이기도 하다.
4.2. 국민의힘
====# 김태호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김태호(1962)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E61E2B><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E61E2B>김태호 (金台鎬)||
출생 | 1962년 8월 21일, 경상남도 거창군 |
18대 대선 | 새누리당 경선 3위 |
상황 | 경선 후보 사퇴 |
공존(共存),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입니다
전 경남지사,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 18대 대통령 새누리당 후보 경선에 나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대선에서도 대권 도전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때 국무총리 내정자로 지명되었을 때에는 경남도민들을 제외한 전국적 인지도는 매우 낮았지만 국무총리 임명 무산 후 정치적 재기에 성공하고 그 이후 새누리당 최고위원 등 당내 중요 직책 등을 역임하면서 당과 친박 내의 비중과 무게감이 지속적으로 높아져 인지도 역시 국무총리 후보 지명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올라간 상황. 최연소 기초 자치단체장, 광역자치단체장을 역임한 점에서 알 수 있듯 50대 초, 중반의 젊은 나이도 어느 정도 장점으로 손꼽히고 있을뿐더러 또한 정치적으로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정치에 입문, 발탁되어 PK로 분류됨에도 새누리 내부에서 PK와 알력 다툼을 하고 있는 TK와도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 TK에서도 통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여겨진다. 이는 김 최고위원의 정치적 기반이 TK와 가까운 북부 경남이기 때문이다.[63]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대권 도전에 선을 긋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바로 그다음 날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고 경남지사 재임 시절부터 대권에 대한 포부를 밝혀왔던 만큼 차기, 혹은 못해도 차차기에 대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2017년 3월 14일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통합당의 텃밭이자 자신의 고향인 거창히 포함된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 지역구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였으나, 자유한국당 중앙당에서는 중진 험지 출마론을 내세워 대립했다. 2020년 3월 5일 홍준표와 함께 미래통합당 공천에서 컷오프 당했고,링크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현역 강석진[64] 후보를 꺾고 4년 만에 원내 복귀에 성공했다.
대통령으로서의 대표적인 사상과 정책으로 개헌을 통한 의원내각제 실현과 이를 통한 협치형 정치를 내세웠다. 이를 위해 선거구제를 중 · 대선거구로 교체하고 해 롤 모델론 독일의 기민련, 사민당의 사례를 들었는데 과거 대통령 중임제를 주장한 것에 비해 생각이 많이 바뀐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대선후보로서의 장점은 야권에서 거의 유일한 PK 잠룡으로서 이를 바탕으로 세몰이가 가능하다는 점. 다른 PK 후보로서 홍준표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현재의 홍준표는 TK에 지역구를 두고 스스로 TK 진골이라고 자칭하며 사실상 TK 권 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상태이기에 사실상 국민의힘 안에서 유일한 PK 잠룡이다. 대선 경선에 들어가면 PK의 지지와 PK 지역구 의원들의 지지를 받아낼 여력이 있다.
단점으로는 낮은 인지도와 부족한 브랜드. 김태호는 국무총리 후보자 시절과 새누리당 최고위원 시기를 제외하곤 중앙정치와는 거리를 두어 인지도가 경쟁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고 할 말은 하는 보수, 성공한 벤처기업가, 개혁보수라는 자신만의 브랜드와 이미지가 있는 다른 경쟁자들과 다르게 김태호는 이 점에 있어서 뚜렷한 특징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보다 강력한 경쟁력을 지니기 위해선 이 부분에 대한 보강이 필요해 보인다.
2020년 10월 29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주도하는 마포 포럼에 참석하여, 대통령 출마를 시사했다.
2021년 7월 15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8월 17일 "분열은 필패의 길"이라며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 박진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박진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E61E2B><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E61E2B>박진 (朴振)||
출생 | 1956년 9월 16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
상황 | 1차 컷오프 |
선진국형 ‘외교안보대통령’ 박진
국민의힘 소속의 정치인으로 정치 1번지 종로구에서 16대~18대 3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8년간 원외에 있다가 21대 총선에서 강남구 을의 국회의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21대 국회 기준 서울 지역구 국민의힘 의원들 중 권영세와 더불어 유이한 4선 중진 의원이다.우리나라에서 선거구로서의 종로구의 위치는 그야말로 어마 무시한데, 무려 그 종로구를 정치적 이해관계도 아니고 연고지로 인한 지역구로 삼고 있는 꽤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2021년 7월 13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 박찬주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박찬주(군인)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91919><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191919> ||<:><bgcolor=#E61E2B>박찬주 (朴贊珠)||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 |
출생 | 1958년 10월 17일, 천안시 |
상황 | 경선후보 사퇴 |
자유회복, 미래지향, 안전보장
대한민국 육군의 전 군인 출신 정치인이다. 보병 병과가 아닌 기갑 병과 출신으로는 최초로 대장까지 진급하여 능력이 출중한 군인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공관병 등을 상대로 한 본인과 아내의 악행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현역 육군대장 2호 피의자[65]라는 타이틀을 달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때 미래통합당 후보로 천안시 을 지역에 출마하려 했으나 컷오프를 당했다. 2020년 7월 미래통합당 충청남도당 위원장이 되었고 2020년 9월 국민의힘 충청남도당 위원장을 역임했다. 2022년 있을 지방선거에서 충청남도 도지사 후보군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구타 가혹행위 가해자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는 상태인지라 예비역들이 기피할 것으로 보여져 선거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21년 8월 6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 이은 4번째 군인 출신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운다.
2021년 9월 12일, 홍준표 지지를 하며 사퇴하였다.#
====# 안상수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안상수(인천)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E61E2B><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E61E2B>안상수 (安相洙)||
출생 | 1946년 5월 28일, 충청남도 서산군[66] |
18대 대선 | 새누리당 경선 5위 |
19대 대선 | 자유한국당 예비경선 2차 컷오프 |
상황 | 2차 컷오프 |
국민 모두가 걱정없는 삶! 안상수가 만들겠습니다
전직 인천광역시장, 3선 국회의원. 前 창원시장 안상수와는 동명이인이다.[67]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새누리당 경선에 참여했으나 5명 중 꼴찌인 5위로 탈락했고, 연달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자유한국당 예비경선 후보에도 참여했으나 1차 컷오프를 넘기고, 2차에서 컷오프 되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윤상현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남영희 후보에게 큰 표차로 밀리며 15.57%로 선거비 보전만 겨우 받으며 낙선했다.[68]
월미은하레일와 151 인천타워로 대표되는 인천광역시장 시절의 정치적 무리수와 실패들로 인천광역시에서의 이미지가 이미 영 좋지 않다는 점은 안상수 후보의 확실한 약점이다. 이를 입증하듯, 윤상현과 남영희의 개인기와 별개로 전직 시장, 3선 의원이 15%를 겨우 받기도 했다.
낙선 이후 정치 활동이 없었으나, 최근 새 책을 내며 정치 활동에 다시 들어갈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브레이크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국민의힘 대선 경선 출마를 시사했다. #
2021년 6월 26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 유승민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유승민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E61E2B><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E61E2B>유승민 (劉承旼)||
출생 | 1958년 1월 7일, 경상북도 대구시[69] |
19대 대선 | 본선 4위 (6.76%, 바른정당) |
상황 | 경선 탈락 - 3위 |
민주당에 강하다
한때는 친박으로 꼽히던 인물이었으나, 박근혜 당시 후보의 증세 없는 복지 발언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비박 성향으로 탈바꿈하였고 개혁보수를 내건 바른미래당에서 활동하다 손학규와의 갈등으로 탈당 후, 새로운보수당 창당, 이후 미래통합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19대 대선에서 바른정당 후보로 출마해 6.76%의 득표율로 4위로 낙선했다.21대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하고 공천이 다 끝날 때까지 칩거. 매년 빠짐없이 참석하던 천안함 추모행사에 참여하여 다시 정치 행보를 이어나갔다. 또한 계파를 따지지 않고 후보자의 선거 유세를 돕겠다며 미래통합당 후보들을 지원을 하고 있다.# 이후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참패했지만, 이는 유승민의 대권 도전에는 호재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황교안은 이낙연에게 큰 차이로 패배했고, 나경원과 오세훈은 아예 정치 신인들인 이수진과 고민정에게 각각 패하면서 당내 대권 경쟁자들이 모두 치명상을 입었다.
김종인 비대위 이후, 유승민 중심으로 당이 개편될 수 있으니 유승민 입장에서는 오히려 자신이 중심이 되어 보수 재건을 꿈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친유계 인사가 적게나마 수도권에서 생환한 데다 유승민에 대해 배신자 이미지가 뿌리박힌 대구 경북에서도 원조 친유들이 대거 원내에 재입성했고, 유승민 본인이 계파를 가리지 않고 지원을 요청하는 대로 수도권 유세를 돌았던 덕분에 유승민에게 먼저 손을 뻗은 타 계파 의원 중에도 적어도 유승민이란 후보를 나쁘게 보는 후보는 적다. 이렇게 되면 총선에 불출마한 대신에 유승민은 대구에서의 비토 정서를 덜어내고 수도권에서 생환한 적지 않은 범친유를 양성한 데다 류성걸 등 핵심 친유들도 상당수 살려내 당내 기반을 마련한 성공을 거둔 셈이다. 당내 세력이 동원력, 대세론 등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걸 고려하면, 21대 총선에서의 약진으로 상대적으로 가장 큰 계파의 수장이 된 유승민은 당장은 몰라도 대선 체제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때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된 장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21년 7월에 본인이 당선되면 여가부를 폐지하겠다고 공약을 내세운 것이 기사에 실리고 유명 우파 유튜버들에의해 언급됨에 따라 인지도와 지지도가 생기고 있다.
2021년 3월 8일부터 국민의힘 중앙선대위의 요직인 중앙선거대책 상임부위원장을 맡게 되며 2021년 재보궐선거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다. 만약 재보선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그 공이 유승민에게도 배분되어 기세를 몰아 대선 행보에 탄력이 붙겠지만 패배할 경우 그 책임 역시 배분되기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후 오세훈 후보가 당선되면서 타격을 입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재 유승민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노년 보수층에서 꽤 강하게 박힌 배신자 이미지를 극복하는 것이며,[70] 한 자릿수의 낮은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아무리 당내 세력이 강해도 대선 지지율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제힘을 발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승민의 대선 도전의 성공 여부는 지지율을 일시에 끌어올릴 결정타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5월 26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71]
====# 오성균 #====
7월 12일부터 8월 29일까지 진행된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 때는 등록하지 않았으나 8월 30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정식 등록 때는 등록하였다.
1차 예비경선 진출 후보 심사에서 탈락했다.
====# 오승철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오승철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E61E2B><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E61E2B>오승철 (吳昇哲)||
출생 | 1957년 9월 30일, 경상남도 부산시[72] |
상황 | 후보 등록 반려 |
국민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대통령
대한인성학회와 부산복지21총봉사회를 설립했던 인물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진구 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3위로 낙선했다.[73]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부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당시 새누리당의 공천에 반발해 탈당한 이종혁 전 의원과 단일화하며 후보를 사퇴했다. 이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국민의힘에 입당해 경선을 치르려고 했으나 서병수 전 시장이 전략공천되었다. 반발해 탈당한 정근 후보와 달리 서병수 시장을 지지하며 당에 남았다.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는 부산광역시장 후보에 등록했으나 경선 과정에서 1차 컷오프 되며 고배를 마셨다. 이후 제20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에 등록했다.약점은 역시 낮은 인지도다. 부산권에서만 알려진 인지도 때문에 경선을 통과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강성현, 오성균 후보를 제외하면 사실상 국민의힘 대권 경선 후보 중 최약체 후보기도 하다.
1차 예비경선 진출 후보 심사에서 탈락했다.
====# 원희룡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원희룡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E61E2B><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E61E2B>원희룡 (元喜龍)||
출생 | 1964년 2월 14일, 제주도 남제주군[74] |
17대 대선 | 한나라당 경선 3위 |
상황 | 경선 탈락 - 4위 |
깨끗한 힘! 원희룡이 바꿉니다
일찍이 43세였던 2007년, 한나라당에서 대선 경선에 참여하여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 3위를 한 바 있다. 이후 보수진영에서 가장 유력한 인물로 떠오르기도 했던 홍준표를 한때 꺾었던 것이다. 이후 2012년 19대 총선 불출마 이후 한동안 중앙 정계에서 멀어졌고, 2014년 제주특별자치도 지사가 된 이후에도 중앙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잠룡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19대 대선 당시에는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었다. 아마도 대권구도 상 문재인을 이길 수 있을 가능성이 없다고 미리 판단해 다음을 기약한 듯하다. 남경필과 함께 대선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애초부터 도지사직을 다 마치고 출마하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지방선거 출마 당시에는 고향인 제주도에서 4년간 행정경험을 쌓고 21대 총선에 출마해 국회로 복귀한 뒤 2022년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계획임을 내보였었지만 최근 정무라인을 복원하는 등의 행보로 제주도지사 재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나왔고 제주도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이나 다 제주도지사 후보들이 지지부진했기 때문에 원희룡은 그대로 재선에 성공했다. 제주도가 비록 인구 100만도 안 되는 작은 광역단체이긴 하지만 특별 자치도로서 행정 자율성이 높은 데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기 때문에 도정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낸다면 대권주자로 새롭게 떠오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야권 대권 주자들이 21대 총선에서 치명상을 입으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원희룡 입장에서는 대권 도전에 비교적 좋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코로나19의 대처도 안정적으로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수진영의 대권후보들이 전멸하면서 당내 초선들은 부상 없이 멀쩡한 원희룡에게 거는 기대가 커지기도 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8명의 통합당-미래한국당 초선 의원이 오세훈, 황교안, 유승민 등의 후보를 제치고 그를 유력 주자로 뽑았다는 것이다. 다만 "없다"가 12명으로서 대부분의 초선들은 여전히 신중론 상태로 아직 원희룡이 완벽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대선에서의 경쟁력이라면 원조 소장파라는 이미지와 국회의원과 도지사를 역임하며 쌓인 행정능력, 바닥부터 시작해서 정상에 오른 스토리가 있어 잠재력이 뛰어나다는 점이지만 단점이라면 낮은 젊은 층 인지도 및 지지도와 대선후보로서 관심을 받기 힘든 제주도라는 지역 기반의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원희룡 본인도 중앙정치에 매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각종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지만 지지율은 요지부동인 상황. 과거에는 젊은 정치인으로 이미지 마케팅에 성공했던 인물임에도 오히려 젊은 층에게 인지도가 밀리기 때문에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듯. 이게 아니더라도 젊은 지지층들은 애매한 후보보다는 확실한 이미지를 가진 유력 후보를 미는 경향이 강하다.
2020년 10월 15일, 대선 출마를 직접 시사했고# 2021년 7월 25일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 윤희숙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윤희숙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E61E2B><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E61E2B>윤희숙 (尹喜淑)||
출생 | 1970년 2월 7일, 서울특별시 |
상황 | 경선 후보 사퇴 |
희망으로 미래로
한국개발연구원 최초 부장까지 오른 여성 경제학자이며 KDI 국제정책대학윈 교수 등을 지내면서 정부위원회에 참여하였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면서 포퓰리즘 파이터 라는 별명이 생겼고 2020년 2월 미래통합당에 영입된 이후 제 21대 총선 에서 서초구 갑에 출마 ,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었다.2021년 7월 2일,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
8월 24일 권익위가 발표한 부동산 불법 투기 관련 국민의힘 소속 의원 12명중 하나로 지목되어 8월 25일 사퇴하였다.
====# 장기표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장기표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E61E2B><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E61E2B>장기표 (張基杓)||
출생 | 1945년 12월 27일, 경상남도 밀양군 |
상황 | 1차 컷오프 |
자아실현의 기쁨과 보람을 누리는 행복한 삶
재야운동가 출신 정치인. 본래는 진보진영 재야 운동계의 거두 중 하나였으나 민중당의 실패와 낙선 이후 민주당계 정당, 보수정당으로 옮겨 통합민주당, 민주국민당, 새천년민주당 등을 전전한다. 이후 정통민주당을 창당했으나 정통민주당은 홍희덕, 천호선 등 진보 정당 정치인들과 일부 민주당 정치인들을 오히려 낙선 시키게 되는 역효과만 내며 새누리당을 돕게 돼 비판받게 된다. 이후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으나 실질적으로 출마를 하지 못했고, 이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소리당 창준위를 결성,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전진당과 함께 미래통합당을 창당해 김해을에 단수 공천 받았다. 하지만, 김해 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김해 갑과 혼동하는 등 실수를 범하며 7번째 낙선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국민의힘의 김해시 을 당협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처음으로 국민의힘에 자리를 잡은 듯하며, 앞으로 다음 선거를 노릴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고 결국 2021년 6월 22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
장기표의 단점이라면 여러 정당을 전전하며 생긴 철새 이미지와 낮은 인지도, 그리고 76살이라는 무시 못 할 고령. 더불어 장기표를 알고 있는 시민 대부분은 장기표를 비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점에 있다.[75]
국민의힘 대선주자 간담회에서 초기에는 다른 후보들이 대통령이 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겠다며 '메기론'[76] 을 꺼내는 듯 했으나, 상대적으로 고령의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면 다음 집권세력은 여러분들일것이라며 빌드업을 한 발언으로 현장에서 웃음을 얻었다. 장기표의 출마에 대해 경선 흥행을 위한 출마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메기 주자로 출마한 것은 아닌 듯.
====# 장성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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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E61E2B><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E61E2B>장성민 (張誠珉)||
출생 | 1963년 9월 5일, 전라남도 고흥군 |
19대 대선 | 본선 9위 (0.06%, 국민대통합당) |
상황 | 1차 컷오프 |
내일이 기다려지는 오늘, 5천만 모두 별의 순간을 잡는 희망국가
동교동계 출신 정치인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총무비서를 거쳐 국정상황실장을 맡았으며 이후 16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7대 대선 과정에서 국민 선택이라는 정당을 창당하여 대선에 출마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TV조선에서 장성민의 시사탱크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으나 역사왜곡 사건인 5.18 북한개입설 보도사건으로 물의를 빚었으며, 진행 능력에 논란이 제기되면서 하차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대통합당이라는 극우 정당을 창당해 출마했으나 본선에서 9위로 낙선했다.이후 재야에 있었으나 7월에 반문 빅텐트를 기치로 출마하겠다며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국민의힘 측에서 접촉할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가 나왔고#, 7월 30일 저녁 국민의힘 대외협력팀장 권영세 의원과의 회동 자리에서 입당을 결정하였다.
2021년 8월 15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 최재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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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E61E2B><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E61E2B>최재형 (崔在亨)||
출생 | 1956년 9월 2일, 경상남도 진해시[77] |
상황 | 2차 컷오프 |
당당한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의 첫 감사원장으로 30여 년간 판사로 재직한 법조인 출신이다.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감사 과정에서 일부 화제에 올랐다. 이후 민주당 송갑석 의원이 최재형 감사원장 측이 "대선에서 41%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라고 발언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논란이 집중되었는데, 최 감사원장 측에서는 이는 정부의 정통성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 것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가 도출되었다는 의견에 국민 대다수가 일반화될 수 있느냐라는 반론을 제기했다고 해명했다.
다만 논란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최재형 감사원장 측이 정치적 발언을 한 것이 아니며, 문재인 정부의 사람이라고 감싸주며 논란은 사그라 들었다. 이후부터는 이회창 등 선대 감사원장 출신 대권후보의 영향을 받아, 대권주자로 간간이 불리고 있었다. 2021년 5월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 측에서 김동연, 윤석열과 함께 언급하며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대권주자로 분류되었고, 이후 여론조사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며 대권주자 선호도에 포함되었다.
윤석열이 출마를 선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장모가 사기 혐의로 구속되는 등 주춤하자 최재형이 새로운 대안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얼마 안가 누군가가 잘못되는 것이, 자신의 이익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누군가의 대안보다 자기 자신으로 평가받고 싶단 말을 하며 사실상의 출마를 시사하였다. #
2021년 7월 7일, 정계 입문을 선언하였다.#
당초에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성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상황인지라 야당 후보인지 여당 후보인지, 출마 의도는 있는지 자체가 미지수라는 평이 있었으나,[78] 7월 15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의구심은 사그라들었다.# 오히려 안철수, 윤석열 등 외부 인사들이 입당을 미루는 사이 속전속결로 입당과 출마 선언을 하면서 국민의힘 지지층에 좋은 인상을 남겼다.
2021년 8월 4일, 온라인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만약 당선이 된다면 최초의 감사원장 출신 대통령이 된다. 또한 최재형의 모교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은 최초로 대통령을 배출한 셈이 된다.
====# 하태경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하태경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E61E2B><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E61E2B>하태경 (河泰慶)||
출생 | 1968년 4월 26일, 부산직할시 동구[79] |
상황 | 2차 컷오프 |
시대교체 하태경! 미래착취 사회에서 미래투자 사회로!
3선 국회의원. 당내 소장파로 분류되는 대표적 인물이다. 젊은 시절 학생운동을 하며 NL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나 전향하여 보수정당으로 오게 된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각종 라디오 채널에 출연하여 인지도를 높였다. 간간이 디시인사이드 등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등장하여 사용자들의 의견을 물어보곤 한다.
2021년 6월 15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 홍준표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홍준표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E61E2B><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E61E2B>홍준표 (洪準杓)||
출생 | 1954년 12월 5일[80], 경상남도 창녕군 |
17대 대선 | 한나라당 경선 4위 |
19대 대선 | 본선 2위 (24.03%, 자유한국당) |
상황 | 경선 탈락 - 2위 |
G7 선진국 시대를 열겠습니다!
전직 경상남도지사이자 현 5선 국회의원으로, 현존하는 국민의힘 정치인들 중 가장 경력이 좋은 인물이다. 서울특별시에서 4선을 했고, 재선 도지사, 원내대표 1회, 당대표 2회[81]를 거쳐 대선 후보로 출마한 적도 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최종 2위를 했다. 하지만 이후 당 대표가 되어 지휘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심을 읽지 못하고 강경 일변도 노선을 미는 바람에 당을 참패로 이끌며 추락하였다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명예를 회복하였다.이미 한 번 낙선한 대권후보이지만, 김대중이나 김영삼, 문재인처럼 여러 차례의 재도전 끝에 당선될 수도 있다.[82] 혹은 이회창처럼 재도전을 했다가 또 다시 패배를 하거나 또는 정동영처럼 한 번 출마한 이후로 영영 대권 도전을 포기할 수도 있다.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가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를 상대한 후보가 문재인이었기에, 대항마적 이미지를 가져가서 문재인이 당내 경선을 뚫고, 최종적으로 대선 승리를 하였다는 분석도 있다. 문재인 정부 4년차에 접어들면서 많은 사건사고들이 터져나오는데, 만약 편안한 임기 마무리를 하지 못한다면, 문재인의 대항마적 이미지로 홍준표가 유리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2017년 대선 당시 최순실 게이트를 일으킨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의 대권 후보임에도 2위를 하는 기염을 토한 만큼 국민들 사이에서는 좋든 나쁘든 홍준표의 인지도 자체는 야권 내에서 가장 높은 편에 드는데다 문재인의 라이벌, 대항마로서의 이미지가 3위를 한 안철수나 4위를 한 유승민에 비해 강하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에 대한 비토가 임기 말에 이르러 지금보다도 훨씬 강해진다면 홍준표가 다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2021년 9월 범보수 여론조사 골든크로스를 달성하며, 국민의힘은 2030의 지지세가 높은 홍준표와 6070의 지지세가 높은 윤석열의 양강구도로 경쟁하고있다.
홍준표의 경상남도지사 시절 실적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양립한다.
- 긍정적으로 보는 측: 당시 홍준표와 경상남도 측이 언론에 밝힌 바에 따르면 홍준표의 도정 운영은 성공적이었다. 우선 도지사로 있던 3년 6개월 동안 총 1조 4천억 원의 채무를 도의 자산 매각 없이 행정개혁, 재정개혁만으로 청산하여 경상남도를 전국 최초의 흑자 광역지자체로 만들었으며, 전국 광역지자체 청렴도 조사에서 2012년 15위, 2013년 14위로 만년 최하위권에 머물던 경상남도는 홍준표 취임 후로 수직 상승하여 2014년 3위, 2015년 2위, 2016년 1위를 차지하도록 이끌었다. 홍준표 도정 아래 경상남도는 대한상공회의소에 의해 2년 연속으로 기업가 입장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지자체로 선정되었으며, 사천[83]과 진주에 항공우주 산업단지를, 밀양에 나노 산업단지를, 거제도에 해양 플랜트 산업단지를 유치하였고, 무상급식을 폐지한 대신 저소득층 자녀들이 ‘여민동락' 카드를 통해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서민자녀 교육지원 4단계 사업을 성공시켰다. 서울로 상경한 대학생들을 위해 쾌적하고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는 기숙사인 남명학사 역시 지금도 많은 경남 출신의 학생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한다.#
- 부정적으로 보는 측: 홍준표의 후임자이자 정적인 김경수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홍준표가 경상남도의 채무를 없애긴 했으나 부채는 5000억 원을 남겼다. 또한 무리하게 채무를 없애기 위해 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한 재정 투자를 취소하거나, 축소하거나, 미뤄버리는 바람에 이전까지 연 평균 4.04%로 전국에서 최상위권이던 경상남도의 경제 성장률이 홍준표 재임 기간에는 0.52%로 곤두박질쳤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홍준표의 후임 자리를 놓고 김경수와 경쟁한 김태호 자유한국당 경남지사 후보마저 “채무 제로는 당면한 시급한 현안에 투자를 감소했다는 뜻도 있다"며 김경수 측의 공격을 인정했을 정도다.[84] 그런가 하면 오히려 투자를 했다가 실패한 정책도 있었는데, 91억원을 들여 하동군에 애버딘 대학교 한국 캠퍼스 개교를 추진하고 건물들까지 미리 세워뒀으나 졸속 MOU 체결 등의 문제 끝에 무산된 것#, 역시 수억원을 들인 진해글로벌테마파크 추진 실패##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다보니 홍준표의 경상남도지사 임기 말 지지율은 폭락하였고, 전국 광역단체장 직무 평가 여론조사에서 수차례 꼴찌를 하거나 최하위권에 올랐다.###
두 차례 당대표를 역임하며 보여준 성적이 신통치 못했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는 2011년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를,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에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패배로 이끌었다. 특히 제7회 지방선거 당시에는 민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강경 일변도 노선으로 당의 이미지를 비호감으로 만든다는 빈축을 샀는데, 당의 공식 지방선거 슬로건을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는 공격적이고 보기에 따라서는 색깔론에 편승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문구를 쓴 것이 대표적이었다.[85] 결국 수많은 자유한국당 소속 후보자들이 홍준표에게 자신들의 유세에 와주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었다.#####
홍준표는 2030 지지세가 강한것을 본인만의 강점을 어필하고 있다. 2021년 10월 여론조사에서 홍준표는 2030세대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특히 다른 국민의힘 후보들과 다르게 30대 여성의 압도적인 지지는 홍준표만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 이는 지난대선의 공약들이 재평가 받으며 지지율이 높아진 경우가 많다. 귀족노조 폐지는 인국공 사태로, 의전폐지와 입시공정성강화는 조국 자녀 입시비리로, 급하지 않은 완만한 최저임금 인상은 소주성 경제성장 실패로 재평가받고있다. 그 외에 19대 대선 후보 당시 사형제 집행과 군가산점 제도 부활을 공약으로 내세웠다는 것. 20대 대선 출마 시 해당 공약을 그대로 쓴다면 사형제 집행은 조두순 같은 흉악 범죄자가 출소함에 따라 여론이 홍준표의 의견에 힘을 줄 수도 있고, 2021년 젠더 이슈가 급부상함에 따라 군가산점 부활로 젊은 남성들의 표를 대폭 가져올 수 있다. 2021년 4월 말 리서치뷰 정기조사 '범보수진영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에서 안철수를 제치고 윤석열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홍준표는 2021년 9월 16일 국민의힘 경선 후보 토론회에서 조국 전 법무장관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정치적인 과잉 수사였다고 발언했으며, 논란이 되자 페이스북에 올린 두 입장문에서도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따라서 조국 이슈에 민감한 청년층으로부터 지지가 깎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홍준표의 첫번째 입장문에는 "조국 수사가 부당 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과했다."고 써있어 조국을 무조건적으로 두둔하는 것은 아니라고 볼 여지가 있으며, 두번째 입장문에서는 국민들의 여론을 감안하여 입장을 바꿀 용의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86] 사실 이는 홍준표가 조국을 옹호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시절 초기 박연차 게이트가 터졌을 당시 참여정부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를 했는데 첫 검찰 조사 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과 언론의 공격이 점점 범죄자로 유죄추정을 하는 등으로 수사를 질질 끌자, "대통령 망신주려고 수사하냐?"며, 검찰을 비판한 적도 있을 정도로 수사를 질질 끌고 유죄를 만들어 무죄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조리돌림을 당하는 걸 굉장히 안 좋아한다. 그가 참여정부 저격수 역할을 했었기에 당시 참여정부 지지층에서 "이 말을 홍준표가???"라며 놀라움을 표현했을 정도. 따라서 윤석열의 조국 수사가 잘못된 게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수사를 질질 끌어댔던 게 문제라고 보는 것이 맞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총선 승리를 위해 중진들의 수도권 등 험지 출마를 요구한 공천관리위원회와 갈등 끝에 미래통합당을 탈당하여 무소속 출마를 선언, 이후 험지가 아닌 보수의 대표적 텃밭 지역인 대구의 수성구 을 지역구에 출마해 정치 신인과 맞붙어 당선되고 8년 만에 원내에 재입성했다. 본래 당선 후 미래통합당으로 복당할 것이라고 했으나, 김종인 비대위 체제로 들어가면서 국민의힘 지지층의 높은 복당여론과#는 반대되는 김종인의 반대 의견으로 미래통합당이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꾼 뒤에도 복당하지 못하였다. 이후 홍준표의 높은 복당여론을 기반으로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후보 5명의 전원찬성#의 결과를 이끌어내게 되며, 이준석 체제가 출범되면서 6월 24일 최고위원회의 전원 찬성#으로 복당하였다.
홍준표의 복당을 두고 당내 핵심지지층을 결집시킬 수도 있기에 반기는 분위기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간신히 당을 정상구도로 올려 놓았는데 홍준표로 인해 도로 자유한국당 이미지가 부활할까 걱정하는 당내 기류도 감지된다.
다만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별개로 홍준표 개인의 역량으로 평가하면 결코 나쁘지 않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사태가 발생해서 대통령 보궐선거라는 기상천외한 선거를 하게 되었을 당시 홍준표는 탄핵당한 대통령을 가진 정당에서 출마한 대통령 후보라는 최악의 디메리트를[87] 떠안은 채로 출마했으나 되려 유력한 당선후보인 문재인과 지지율 호각을 찍어가며 차세대 대통령감이라고 극찬을 받던 안철수를 누르고[88], 저 디메리트를 등에 업은 채 2위라는 낙선했지만 쾌거를 이룩한 바 있다. 낙선할 게 뻔한 대선에 출마하고 보수 지지층을 결집 시키면서 자유한국당이 재기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온갖 막말을 뿌린 것은 광역단체장과 지차제장들이 친박 일색이였기 때문에 이를 축출하기 위함이였던 것이라는 의견도 보인다. 실제로 경기도지사, 인천시장, 부산시장, 울산시장, 경남도지사까지 모두 민주당에게 넘어갔는데 여기서 낙선한 후보 중 일부는 친박계[89]였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황교안 대표 체제로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공천관리위원회의 험지 출마 요구[90]를 거부하고 공천에 대한 불만으로 탈당하여 보수의 텃밭인 수성구 을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홍준표 이름 석자가 유일한 무기인 상태에서 2030세대의 높은 지지를 업고 60대 노년층의 지지를 받는 미래통합당 이인선 후보를 이겨 당선되었다.#[91]
6월 29일 대선 후보 경선 일정이 나오면 예비후보로 등록하겠다고 기자들 앞에서 공언했다. 결국 8월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 등록을 하였다.#
2021년 8월 17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만약 당선이 된다면 헌정 사상 두 번째로 동대문구 지역구 국회의원 출신[92]이자 최초의 경상남도지사 출신, 최초로 유튜버 출신(...)[93] 대통령이 되고, 그의 모교 고려대학교는 이명박에 이어 두 번째로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가 된다.
====# 황교안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황교안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E61E2B><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E61E2B>황교안 (黃敎安)||
출생 | 1957년 4월 15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
상황 | 2차 컷오프 |
행동하는 정의! 대한민국을 초일류 정상국가로!
전 국무총리, 전 대통령 권한대행자, 전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대표. 황교안의 강점은 법무부장관 시절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는 등 보수층에게 강력한 어필 요소가 있고, 특유의 점잖은 말투와 온화한 인상이 중도층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해 대통령 권한대행을 도맡아 국정을 수행해온 바 있어 탄핵 국면에서 보수 지지자들의 희망후보로 물망되었다.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냈고 무려 5개월이나 되는 기간 동안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며 국정을 운영해보았다는 경험이 장점이다.
다만 중도층에서 박근혜 정부의 부역자라는 이미지가 있어[94] 비토층도 존재한다. 또한 선거로 당선된 선출직 공무원이 아니라 관료로만 일을 해왔기 때문에 정치인으로서의 대중성이나 정치력 등은 부족할 수 있다는 점도 단점이 될 수 있다. 권한대행 시절 의전 관련으로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2019년 1월 15일에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입당 후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당대표 선거 출마선언을 했다. 당대표 선거 구도는 비박계의 오세훈, 친박계의 황교안 그리고 태극기 부대를 뒤에 입은 김진태의 삼파전이다. 최종적으로 50%의 득표를 성공해 당대표가 되는 것에 성공했다. 3월 첫째주 기준으로 자유한국당이 탄핵 국면 이후 처음으로 30%대에 들어가고 황교안이 제일 지지율이 높은 대권주자로 꼽히는 등, 정치입문 후 상황이 황교안에게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2019년, 선거 기간 동안에 방을 빌려 열심히 선거운동을 한 본인이 처음 이끈 선거에서 1:1의 결과를 얻었다. 정의당에 내준 1석도 민주당이 정의당과 단일화한 끝에 내준 간발의 차여서,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 봤다. 그런데..
21대 총선에서 정치 1번지 종로에서 이낙연과 매치를 치렀는데, 사실상 여당과 제1야당의 대표 주자, 두 전직 국무총리들이 격돌한 21대 총선 최고의 빅매치였다. 결국 선거에서 패배하며 패배함과 동시에 당대표에서 물러났다. 황교안에 대한 평가는 관료 출신이 친박의 지지아래 갑작스레 거대 정당의 당대표가 되면서 한계를 명확하게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지지 근본은 친박이라 극우 지지자를 챙겨야 하는데 막상 그렇게 하니 중도층을 잡지 못하게 되어 패배가 뻔히 보이게 되는 상황이라는 점이 그렇다. 본인도 그 한계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기에 바른정당 탈당파들을 다시 끌어와 미래통합당으로 합쳐보기도 하고 김종인 전 국민의당 개혁공동정부준비위원장을 선대위원장으로 영입까지 하며 그것을 어떻게든 극복해보려 했으나, 결국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95]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 대표로써 인물 배치를 너무 못하는 바람에 더불어민주당에게 180석이라는 거의 일당제에서나 나올 법한 승리를 안겨주었으며, 본인도 종로에 출마했다가 이낙연을 상대로 삼청동과 가회동을 내주고 사직동과 평창동에서 겨우 승리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대표적인 잘못된 공천으로는 이혜훈 전 바른정당 대표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을에 출마시킨 것[96]·이언주 전 미래를향한전진4.0 대표를 부산광역시 남구 을에 전략공천한 것[97]·인천광역시 부평구 갑에 정유섭 의원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갑에 문병호 전 의원을 출마시킨 것[98]·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를 경상남도 양산시 을에서 컷오프한 것[99]·정병국 전 바른정당 대표를 경기도 여주시·양평군에서 컷오프한 것[100] 등이 꼽힌다.[101][102]
이렇게 우파진영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였지만, 21대 총선 대패로 인해 현재 여론조사에서도 지지 여론이 아주 약해진 상태이다. 총선 이후 잠행 중이던 행보에서 최근 복귀하려는 듯한 행보를 걷고 있다.# 몇 개월 간 잠적하는 중인데도 여론조사에 따라 원희룡, 주호영, 김종인 등보단 높게 나오는 걸로 보아 콘크리트 지지층이 조금은 있는 모양이다.
황교안은 앞에 언급한 것처럼 통진당을 직접 해산시킨 바 있고, 또 특유의 점잖은 말투와 온화한 인상으로 보수 지지층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총선 이전에만해도 이낙연과 투톱을 이루는 강력한 대권후보였던 것인데, 당대표를 하며 기대와는 달리 강성보수 성향 목소리를 내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고, 결국 총선 참패와 함께 당대표에서 사퇴했으며 본인 또한 종로에서 이낙연에게 밀렸다.
또한 2021년 재보궐선거를 통해 친박세력 없이도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친박의 대표주자 황교안의 대선 출마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김종인 대표가 국민의힘을 떠나고 황교안이 다시 몸풀기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당내에서는 부정적인 기류가 매우 강하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직접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이후 황교안에게는 정치인보다는 공무원에 어울리는 인간형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공안검사 출신으로, 명령과 복종에 철저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판을 짜는 대표직을 수행하기에 어려웠을 거라는 의견. 이런 유형의 인간은 장관, 차관 등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어서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관직에는 좀 무리가 있는 인물이다.
2021년 7월 1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7월 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 등록을 하였다.#
만약 당선이 된다면 박정희, 최규하에 이은 3번째 대통령 권한대행 출신 대통령이 된다.
4.3. 정의당
====# 김윤기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김윤기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ffcc00><tablebgcolor=#ffcc00><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191919> ||<:><bgcolor=#ffcc00>김윤기 (金潤起)||
출생 | 1974년 5월 9일, 충청남도 논산군 |
상황 | 경선 탈락 - 3위 |
평등·생태 사회로 체제전환
현 정의당 유성구위원회 위원장으로 전직 대전시당 위원장을 지냈으며, 6기 당직선거에서 김종철 후보와 러닝메이트로 부대표에 당선되었으나 2021년 2월 김종철 대표의 성추행 논란에 책임을 지고 조기 사퇴하였다.당내 좌파 그룹 전환의 조직적 지지를 받고 있으며, 민주사회주의와 생태사회주의를 내세우는 등 타 후보 대비 이념적으로 선명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과 대전 지역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여 지역기반이 탄탄하다는 것이 강점이다. 가장 큰 약점은 황순식 후보와 함께 심상정 전 대표, 이정미 전 대표 등 정의당 내 다른 대권주자들에 비해 인지도가 밀린다는 점이다.
2021년 9월 2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 서현숙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서현숙(예술가) 문서 참고하십시오.
서현숙 (徐賢淑) | |
출생 | 1950년 4월 17일, 전라남도 광주시[103] |
상황 | 경선후보 사퇴 |
저는 일하고 싶습니다!
프랫 인스티튜트 미술대학원 출신 예술가로, 뉴욕에서 설치미술가, 화가, 조각가, 퍼포머로 활동했다. 2015년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귀국해 광주 YWCA, 4.19혁명정신계승전국연합 대표 등을 지내며 사회운동에 참가해왔다. 뉴욕에서도 뉴욕 수요집회에서 활동하거나 세월호 참사 추모 시위를 진행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정의당 당원으로 광주시당에서 활동하던 도중 대선 출마의 변을 내며 기득권 세습제 방지, 양극화 방지, 맞춤형 복지 구성, 생태주의적 전환, 노인 등 재교육 과정 주비 등의 공약을 냈다. 김윤기, 황순식 후보와 마찬가지로 인지도가 밀리는 점이 단점이며,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기에 국내에 정치세력이 적은 점 등이 약점이다.[104]
2021년 9월 3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후보 등록일 당시 후보 등록은 했으나, 후보 등록 기준[105]에 미달하여 정식 등록을 하지 못해 최종 후보에 들지 못하며 사실상 사퇴 처리 되었다.
====# 이정미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이정미(정치인)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ffcc00> | 이정미 (李貞味) |
출생 | 1966년 2월 7일, 부산직할시[106][107] |
상황 | 결선 탈락 - 2위 |
제껴라, 믿는다, 이정미!
제20대 국회의원으로 정의당 당 대표 출신이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인천광역시 연수구 을 지역구에 출마해 사표론에도 불구하고 18.38%라는 진보 정당 후보 치고 매우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는 등 인지도 높은 정치인이다.2021년 7월 7일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가 이정미 전 대표가 대선 출마 선언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정미 정의당 전 대표도 대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 차원의 문제와 당적 차원에서의 문제점이 있는데 21대 총선에서 심상정이 속한 정당의 후보들 중 지역구 당선자가 심상정 혼자(경기 고양시 갑)라서 본인이 현직 국회의원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심상정 정의당 의원보다 인지도가 크게 밀린다는 점으로 볼 때 정의당 대선 경선에서 진보 정치의 기둥인 심상정 의원을 이길만한 비장의 카드가 있어야 한다. 다만, 당내 최대 계파인 인천연합의 지지를 받고 있어서, 심상정 의원이 불출마를 결정할 경우 가장 출마가 유력한 후보이다.
정의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2위에 그치기는 했지만 심상정 의원의 과반 확보를 저지하고 46.42%에 머무르게 하고 결선투표까지 따낸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심상정 의원이 아닌 새간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통한것으로 보인다.
2021년 8월 23일에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첫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 황순식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황순식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ffcc00> | 황순식 (黃淳植) |
출생 | 1977년 12월 15일,서울특별시 |
상황 | 경선 탈락 - 4위 |
정의당 대표선수 교체, CHANGE
정의당 경기도당 위원장이자 한반도평화특위 위원장으로 2006~2014년에 과천시의회 의원을 지냈다. 심상정 이후 포스트 심상정, 노회찬을 내기 위해 물색을 하던 정의당의 입장에서 황순식 위원장의 출마는 반가운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1977년생으로 다른 당의 대선주자들에 비해 매우 젊은 편이다.비교적 젊은 후보란 점에선 우위이지만, 이쪽에선 김윤기랑 겹치는 부분이 있고, 무엇보다도 나머지 세 후보에게 인지도가 밀린다는 게 큰 약점이다.
2021년 8월 31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4.4. 국민의당
====# 강성현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강성현(정치인)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A5504><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EA5504><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EA5504>강성현 (姜聲顯)||
출생 | 1965년 5월 12일, 전라남도 무안군[108] |
상황 | 후보 등록 반려(국민의힘) 후보 등록 반려(국민의당) |
영등포구 전통시장에 터를 잡고 수제 한과 상인을 하고 있는 상인이자 정치인. 2004년 새천년민주당 예비후보로 성남시 중원구 선거구에 도전했고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7위로 낙선,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예비후보로 등록했지만 정동영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하며 탈락했다. 2008년 탈당하고 18대 총선에서 연고지인 전남 무안 신안 무소속 후보로 등록했다가 7위로 낙선했으며, 19대 총선에서 서울 금천구에 무소속 후보로 등록했다가 6위로 낙선했다.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했다가 경선에서 컷오프 되었다. 이후 2021년 7월 12일 국민의힘 소속으로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에 등록했다.
이후, 예비경선 조차 올라가지 못하고 서류심사에서 탈락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대선주자 간담회에 난입해 종이를 던지며[109] 행패를 부리다[110] 당직자들에 저지당해 쫓겨났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본선 후보 등록에 성공했다. 예비후보 면접에서는 떨어진 인물이 본선 후보 등록은 어떻게 되었는지는 미지수이나 아무래도 예비후보와 후보는 별개이고 예비후보를 당시 국민의힘에서는 다소 자의적인 관점에서 받아 진행했기 때문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1차 예비경선 진출 후보 심사에서 탈락했다.
이후 국민의힘을 탈당하여 국민의당으로 당적을 바꾼 것이 선관위 예비후보자 명부를 통해 확인되었다.
그러나 국민의당이 공천관리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사실상 당내의 유일한 대권주자인 안철수 대표가 대선 출마를 확정했기 때문에 선관위 예비등록만 하고 국민의당의 예비후보 등록은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후 2021년 11일 1일 오후 직접 당사에 방문하여 예비후보 등록을 했으나 같은 날 밤 국민의당으로부터 예비후보자 등록경력란에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자 등록 및 서류심사 탈락' 경력을 누락했다는 이유로 부적격 통보를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11월 2일 재심 신청을 제기했으나 11월 3일 오전 국민의당은 재심 심사를 걸쳐 그날 오후 기각 결정을 통보하여 최종 탈락했다.
4.5. 국민혁명당
====# 구본철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구본철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808080><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808080>구본철 (具本喆)||
출생 | 1959년 1월 24일, 인천광역시 |
상황 | 경선 탈락 |
성장의 힘!
전 국회의원.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소속으로 부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111] 이후엔 자유한국당의 계양구 갑 당협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2018년 6월, 자유한국당이 지방선거에서 대패하자 전‧현직 당협위원장 모임인 재건비상행동을 만들어 홍준표, 김무성, 홍문종, 최경환, 홍문표, 안상수, 곽상도, 권성동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정계 은퇴, 불출마 등을 주장하며 '정풍운동' 을 주장한다. 이후 원내대표 선거에서 나경원 후보를 지지했다가, 지지명단 중 일부를 허위로 기재하는 논란이 일며 허위사실에 대한 유포로 당에서 제명되었다.2019년에는 서울역 태극기 집회에 참여했으며 2020년, 자유한국당에 복당했으며 부평구 을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공천 탈락 하였다. 이후 원자력살리기국민행동을 만들어 상임대표로 있었다.
2021년 6월 13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정식으로 출마 철회를 선언하진 않았으나 7월 12일부터 8월 29일까지 진행된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 기간 동안 예비후보 등록을 하지 않은 것에 이어 결국 8월 30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등록 기간 동안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아 불출마...하나 했으나 국민혁명당에 입당해 경선을 치르게 되었다.
====# 이명규 #====
||<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808080><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808080>이명규 ||
상황 | 경선 탈락 |
다시 건국정신으로!
4.6. 노동당
====# 박성철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현린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FF0000><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FF0000><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FF0000>박성철 (朴成哲)||
출생 | 1973년 2월 22일, 부산광역시 |
상황 | 경선 탈락 - 3위 |
개인과 사회가 공존하는 세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계, 사회주의를 향한 붉은 깃발
'현린'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던[112] 사진작가이자, 교사 출신인 정치인으로 전직 노동당 대표이며 현재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로 있다. 대표 시절 기본소득당 분당 이후 분당의 여파로 인해 침체되어 가던 노동당의 방향성을 새로히 잡고 선명성을 강화해 노동당의 새 바람을 불었다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노동당을 중심으로, 사회변혁노동자당, 참세상연구소, 정치경제학연구소소프닉스, 현장실천사회변혁노동자전선, 토지난민연대, 공공운수노조, 인덕마을이주대책위 등이 합류한 사회주의 좌파 대통령선거 지방선거 공동투쟁본부의 대통령 선거 경선에 출마를 선언하고 12월 3일 후보에 등록했다. 기호는 3번을 배정 받았다.
슬로건으로 개인과 사회가 공존하는 세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계, 사회주의를 향한 붉은 깃발을 내걸으며 선명성 있는 후보임을 강조했다. 정의당의 김동연, 안철수 등과의 공조를 비판하며 노동과 거리를 두려하는 것이냐며 각을 세웠다. 민주노총, 진보정당 들이 참여하는 공조나 단일화에도 취지에는 동의하며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하지만,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진보적인 정당정치 체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이갑용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이갑용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FF0000><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FF0000><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FF0000>이갑용 (李甲用)||
출생 | 1958년 7월 27일, 부산광역시 |
상황 | 경선 탈락 - 2위 |
자본이 망친 세상, 노동자가 구하자
노동운동가 출신 정치인이자 노동당 전 대표.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울산광역시 동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었다.노동당을 중심으로, 사회변혁노동자당, 참세상연구소, 정치경제학연구소소프닉스, 현장실천사회변혁노동자전선, 토지난민연대, 공공운수노조, 인덕마을이주대책위 등이 합류한 사회주의 좌파 대통령선거 지방선거 공동투쟁본부의 대통령 선거 경선에 출마를 선언하고 후보에 등록했다. 기호는 2번을 배정 받았다.
슬로건으로 자본이 망친 세상, 노동자가 구하자를 내걸었으며 재벌 해체, 공직사회 개혁, 노동부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으며 준비된 사회주의 대통령이라 강조했다.
5. 불출마자
아래의 인물들은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나 예비후보로도 등록을 안하고 경선 참여도 최종적으로는 하지 않은 후보들을 기재하는 곳이다. 본인이 대선 출마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선언한 인물은 토론 결과 기재가 불가능하다. 단 출마 선언후 예비후보 등록전에 불출마를 선언했으면 기재 가능하다.5.1. 국민의힘
====# 홍성우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홍성우(1941)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91919><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191919> ||<:><bgcolor=#E61E2B>홍성우 (洪性宇)||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 |
출생 | 1941년 2월 20일, 경기도 안성군[113] |
사망 | 2021년 12월 2일 (향년 80세) |
상황 | 불출마 - 미등록, 사망 |
전 국회의원이자 배우.
연예인 출신 1호 국회의원으로,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2대까지 내리 3선을 했으나 불출마 이후 복귀한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이후부터는 다시 배우 생활로 돌아갔던 인물이다.
2021년 2월 8일 오랜만에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동시에 국회 헌정회 회의실에서 대권 출마를 선언했다. 홍성우는 “현 시국으로서는 미래를 지향할 수 없으며 다음세대에 오히려 막대한 부담만 안겨주는 정권이라고 칭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삶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며 출마 의도를 밝혔다.##
당 내 다른 후보들에 비해 인지도가 많이 낮은 편이고[114] 30년 가까이 정치권을 떠나 있던 데다가 나이도 너무 많아 국민의힘 후보로 나올 확률은 낮다. 대부분의 군소후보들이 그렇듯 실제 당선을 목적으로 출마를 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출마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당선이 된다면 김대중[115]을 뛰어넘는 최고령 당선자가 된다.[116]
정식으로 출마 철회를 선언하진 않았으나 7월 12일부터 8월 29일까지 진행된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 기간 동안 예비후보 등록을 하지 않은 것에 이어 결국 8월 30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등록 기간 동안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아 불출마가 확정되었다. 12월 2일 후보 본인이 혈액암으로 사망했는데, 건강 문제로 인해 출마를 접은 것으로 추정된다.
5.2. 신한반도당
====# 박근령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박근령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1F6DDC><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1F6DDC><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color=#1F6DDC> ||<:><bgcolor=#1F6DDC>박근령 (朴槿姈)||
출생 | 1954년 6월 30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
상황 | 미등록 |
박정희와 육영수 사이의 차녀[117]이자 박근혜의 여동생. 본래 이름은 박근영(朴槿瑛)이었으나, 불길하다는 역술인의 조언으로 40세 때 박서영(書永)으로 개명했다가,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4년 또 다시 박근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2020년 7월 9일, 공화당 대표였던 남편 신동욱이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하면서 정당이 해산된뒤 조용히 있던 와중에 2021년 12월 21일 갑작스럽게 대선 출마 선언식을 가졌다. # 너무 조용하게 있었기 때문에 박근령이 신한반도당에 입당했다는 사실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후보 등록을 하지 않고 신자유민주연합 김경재 후보를 지지했다.
이후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갑작스레 이재명 지지를 선언했다.#
5.3. 신한반도평화체제당
====# 고돈식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고돈식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292C93><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292C93><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신한반도평화체제당|]] ||<:><bgcolor=#292C93>고돈식||
[[신한반도평화체제당|]] ||<:><bgcolor=#292C93>고돈식||
출생 | 1964년 3월 16일, 충청북도 음성군 |
상황 | 미등록 |
대한민국의 대한민국에 의한 대한민국을 위한 동반자
신한반도평화체제당의 서울특별시당 대표로 있으며 법률사무소에서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는 법률가. 정의사법실천연대의 이사로 있으며, 대한민국문화체육예술 총연합회 고문, 국제경찰경호무술연맹 스포츠공정위원장 등으로 있다.1월 26일 신한반도평화체제당 소속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선 반드시 새 꿈을 새 그릇에 담아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며 출마를 선언했으나# 후보 등록을 하지 않고 신자유민주연합 김경재 후보를 지지했다.
5.4. 무소속
====# 노남수 #====||<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808080><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無 ||<:><bgcolor=#808080>노남수||
출생 | 1969년 12월 15일, 전라남도 광주시[118] |
19대 대선 |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
상황 | 미등록 |
젊고 참신한 혁신대통령
삼성전자 경영혁신팀 등에 13년 근무했고, OP국제평화재단 혁신위원장 등을 맡으며 시민운동가로도 활동한 바 있는 정치인. 현재는 전국혁신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삼성전자 혁신팀에서 근무하던 중 2000년도 재벌기업의 200억 탈세비리의혹을 고발했다 구속되었으나,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 시민운동가로 전향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광주광역시 북구을 의원으로 무소속 출마 선언을 하였으나 낙선되었고, 과거 광주광역시의원 선거에도 나간 적이 있다. 새정치연합에 소속되었던 적이 있으며, 과거 민주당, 안철수 등을 지지하였으나 현재는 둘 모두 지지하지 않는 듯 보인다. 장애인 특별 지원법등 장애인 관련 법안을 자주 언급하고 노인 복지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 지지자의 상당수도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이며,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듯 하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선언을 하며 예비후보로 등록하였으나 2017년 4월 14일, '미래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디지털경제 국가전략 초청 포럼' 행사장에 들어가려다 주최측에 제지당했고, 이후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한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심장병이 있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최종후보로 등록하지 못했다. 이후 21대 총선 출마, 시민운동가 활동을 이어가다 2021년 12월 1일 광주5.18민주묘역에서 출마를 선언했다#
====# 심동보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심동보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808080><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無 ||<:><bgcolor=#808080>심동보||
출생 | 1954년, 경상남도 함안군 |
상황 | 미등록 |
전 해군 예비역 준장으로 친박 성향의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 2017년 1월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 전시된 박 전 대통령 풍자화 '더러운 잠'을 벽에서 떼어내 바닥에 던져 파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2020년 10월 대법원에서 벌금 100만원이 확정됐다. 당시 뉴스
2021년 7월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유민주주의 공화국 건국과 부국강병의 찬란한 역사를 지닌 위대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복원시키겠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의힘 소속으로, 정식으로 출마 철회를 선언하진 않았으나 7월 12일부터 8월 29일까지 진행된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 기간 동안 예비후보 등록을 하지 않은 것에 이어 결국 8월 30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등록 기간 동안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독자 출마를 선언했다.
====# 안동옥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안동옥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F6B71E><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F6B71E><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F6B71E>안동옥(安東玉)||
출생 | 1960년 2월 10일, 전라북도 진안군 |
17대 대선 |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경제통일당) |
18대 대선 |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경제민주당) |
19대 대선 |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통합민주당) |
상황 | 미등록 |
민심은 천심이다, 천심은 민심이다
언론인, 정치인으로 현재 금도환국당 창당준비위원장으로 있다.
16대 대통령 선거를 시작으로 17대, 18대, 19대 대통령 선거를 모두 출마선언하였으나 최종 미등록 후보로 마감했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때 부터 매 선거(현재까지 7번 미출마)마다 이번에는 확실히 출마하겠다고 밝히지만 선거비 등의 사유 때문인지 최종 출마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만약 최종 출마에 성공한다면 뭔가 정신세계가 비슷한 허경영 후보하고 토론회에서 재미난 토론이 가능해 보인다.
2021년 8월 19일 민심은 천심이다, 천심은 민심이다를 슬로건으로 걸고를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출마 선언문에서는 영국 중심의 대서양 시대, 미국 중심의 태평양 시대를 끝내고 한국 중심의 '상생의 시대'로 나아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20세기는 상극의 시대였으나 이제는 상생의 시대로 소외된 이들도 함께 가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119]
공약으로는 소외계층, 서민, 약자 보호대책, 국가유공자 보상체제 정책, 인종, 성별, 국적, 지역 차별 타파를 위해 고르게 정부에 임용할 것이며 한글세계화추진원, 국가해외전략정보원 등을 설치해 국가의 위상을 높이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선이 되면 현행 대통령제가 아닌 의원내각제나 입헌군주제하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현행이 아닌 방식으로 정치체계를 바꾸겠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환단고기 성향이 강한 후보였으나 이번 선거에서는 공약에서는 간도, 대마도 고토 회복 부분을 제외하고는 환단고기를 전면으로 내걸지 않았다는 특이점이 존재한다.
====# 이승우 #====
||<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808080><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無 ||<:><bgcolor=#808080>이승우||
출생 | 1963년 |
상황 | 미등록 |
서귀포시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업인.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에서 감귤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로, 2022년 1월 26일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출마를 선언했다.#
이승우 후보는 출마선언문에서 1987년 이후 여러번 정권이 바뀌었지만 서민의 삶이 본질적으로 나아지진 못했다며 지역갈등과 소득 불균형 등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성정치권이 아닌 평범한 시민이 중심이 된 정권교체가 필요하다며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당선이 된다면 현 정치제도를 의원내각제로 바꾸고, 공공 정보 공개와 대통령 기록물 공개, 국민통합형 연립정부 구성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당선 이후 공약을 이행하고 의원내각제로 제도가 바뀌면 대통령직에서 내려와 다시 제주도로 돌아와 농사를 짓겠다고도 밝혔다.#
====# 한상균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한상균(1962)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808080><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無 ||<:><bgcolor=#808080>한상균||
출생 | 1962년, 전라남도 나주시 |
상황 | 불출마 선언 |
제11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으로 잘 알려진 노동운동가, 사회운동가.
1987년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사의 중요 사건으로 잘 알려진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추진위원장을 맡으며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2009년 1월 쌍용자동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그해 4월 노동자 2,646명을 무단으로 정리해고한다는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며 사회의 우려와 비판을 받게 되었는데, 당시 한상균 쌍용자동차노조지부장은 구조조정 철회를 요구하면서 5월 21일부터 77일간 평택 공장 점거 파업을 주도했다.[120]
2012년 11월부터 2013년 5월까지 정비지회장 문기주, 쌍용차 비정규직회 수석지부장 복기성과 함께 평택 공장 인근 송전탑에 올라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복직을 요구하면서 171일간 고공에서 농성하였다. 2014년 12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상 최초로 직선제로 치러진 위원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현장파의 노동 전선에게 지지받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구속된 이후 UN 산하 강제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 민주노총 등 여러 곳에서 석방을 요구했으나 한동안 이뤄지지 않았다가 가석방 되었으며 이후에는 노동운동가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 12월 9일, 정의당-진보당-녹색당-노동당-사회변혁노동자당-민주노총이 참여하는 진보단일화 민중경선에 후보로 참여할 것을 밝히며 출마를 선언했다.#
2022년 1월 12일 대선 출마를 철회했다. #
6.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아래의 인물들은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최종 후보 등록 기간에 등록하지 않은 인물들이다. 여기에 속한 인물들은 무소속이거나 군소정당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후 경선 탈락자들은 경선 탈락자 목록에 기재하면 된다. 예비후보자 목록은 선거정보시스템에서 볼 수 있다.6.1. 국민참여신당
====# 김유찬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김유찬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724695> | 김유찬 (金裕璨) |
출생 | 1961년 7월 3일 |
대한민국을 위로합니다
대한민국은 위로갑니다
대한민국은 위로갑니다
전 공무원으로 이명박의 비서로 근무하며 선거기획을 담당했다. 이후 15대 총선에서 이명박의 선거비용 거짓 신고와 이명박과 측근들이 자신을 외국으로 도피시킨 것을 폭로했으며 17대 대선에서 이명박의 투기 의혹을 제기했던 인물이다. 15대 총선 폭로 이후 다른 A 의원의 보좌관으로도 근무했으나, 2주가 채 안지나 A 의원이 이명박 의원을 만났다며 해고했다고 한다.
당시 이명박은 분위기를 보다 심증과 물증들이 나오며 유죄가 굳어지자 국회의원직을 사퇴했으며 결국 대법원은 선거법 위반 혐의와 이명박의 김유찬 도피 혐의에 대한 유죄를 확정하고 7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함으로 이명박은 국회의원 피선거권을 박탈당했지만, 1년 후 김영삼 정부의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되었다.
해당 폭로 이후 한국의정발전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며 이명박 리포트 라는 책을 써냈다. 이후 글로벌 금융 서비스 사인 SIBC에서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그러던 중 2021년 9월 24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
2022년 1월 15일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 20대 대통령 예비후보 등록을 마침으로써 공식적으로 대선에 나섰다. 이후 한국국민당의 공동대표 겸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다. # 이후 1월 28일 보수연합을 선언하고 한국국민당과 국민참여신당이 연합을 선언하며 국민참여신당의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다.# 당원, 자금이 더 많고 당명이 앞인 국민참여신당 쪽으로 출마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듯.
그러나 최종적으로 후보 등록을 하지 않고 신자유민주연합 김경재 후보를 지지했다.
6.2. 국민혁명당
====# 고영일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고영일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013792><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013792><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013792>고영일 (高榮一)||
출생 | 1969년 4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상황 | 예비후보 등록 - 사퇴 |
자유 대한민국, 강한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선거 경선에서는 김경재에 밀려 후보가 되지 못했으나, 김경재가 탈당함에 따라 열린 2021년 12월 13일 국민혁명당 대통령 후보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정해졌다.2월 12일 야권 단일화를 촉구하며 사퇴했다.
6.3. 혁명21
====# 황장수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황장수 문서 참고하십시오.
<colbgcolor=#002E73> | 황장수 (黃壯秀) |
출생 | 1964년 11월 26일, 부산광역시 |
상황 | 예비후보 등록 - 사퇴 |
대안 우파 성향의 정당인 혁명21의 대표.
건강상 문제로 인해 2022년 2월 10일 유튜브 커뮤니티 공지를 통해 최종 후보 등록 포기를 선언했다. #
6.4. 무소속
====# 김기천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김기천(1959)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808080><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無 ||<:><bgcolor=#808080>김기천 (金基天)||
출생 | 1959년 5월 1일, 서울특별시 구로구 |
19대 대선 |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
상황 | 예비후보 등록 - 사퇴 |
전직 의사이자 무영램프, 분산광원 헤드램프를 만들어 성공한 의료기기 제조 업체인 닥터킴의 대표이다. 동명의 배우와는 동명이인. 제19대 대통령 선거에도 예비후보로 등록한 바가 있으나 최종 불출마했다. 김기천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큰 충격에 빠졌으며 기본적인 것을 모르며 학생들을 수장시킨 리더십의 위태로움을 느꼈다며 과학이 점점 발달하여 첨단 과학이 지배하는 시대 자연과학적 지식이 없는 리더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환경문제, 빈부격차, 분단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한다며 이제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국민만을 위한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며 2021년 7월 2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기본적인 정치적 성향은 진보에 가까우나 미국의 암묵적 동의를 얻은 한반도 핵무장을 주장하며, 김정은이 무너져 북한 정권이 붕괴해 중국과 휴전선에서 마주 보게 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며 주장하는 등 안보면에서는 보수적인 듯하다. 후보는 시내 한복판에서 드럼과 기타를 치며 혈압과 혈당을 재주며 건강상담을 해주고 있다고 한다. 핵무장론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경제력으로 이미 (북에)완벽하게 앞서있고, 거기다 핵무기까지 갖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지원만 해 주면 북한 주민들은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은 분위기가 깔리게 된다”면서 “그렇게 되면 김정은의 장악력은 줄어들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흡수통일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닥터킴은 순이익으로만 33억 이상의 매출을 내며 50여 개국에 기기를 수출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자금력 면에서는 다른 무소속, 군소정당 후보보다는 유리할 듯하다. 다만 타 무소속, 원외정당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인지도가 심히 낮은 것이 문제이다.
2021년 8월부터, 여론조사에 본인 및 군소후보들을 포함하지 않고 거대 양당 후보들만을 조명하려 하는 것이 불공정하고 예비후보 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고소하며 여론조사의 불공정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이후 헌법재판소를 통해 불공정 여론조사라며 헌법 소원을 내었으나 이가 기각되자, 2022년 1월 13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대선 예비후보 사퇴 선언을 했다.#
====# 김대한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김대한(1961)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808080><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無 ||<:><bgcolor=#808080>김대한 (金大漢)||
출생 | 1961년 6월 7일 |
상황 | 최종 미등록 |
====# 김성광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김성광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808080><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無 ||<:><bgcolor=#808080>김성광 (金聖光)||
출생 | 1947년 4월 22일, 서울특별시 |
사망 | 2022년 1월 14일 (향년 74세) |
상황 | 예비후보 등록 - 사망 |
강남순복음십자가교회 담임목사, 강남금식기도원 원장으로 전광훈 못지않게 극우 성향이 강했다.
2022년 1월 14일 지병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향년 74세.
====# 양성기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양성기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808080><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無 ||<:><bgcolor=#808080>양성기 (梁聖基)||
출생 | 1960년 12월 2일 |
상황 | 최종 미등록 |
====# 이재원 #====
||<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808080><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無 ||<:><bgcolor=#808080>이재원 (李財源)||
출생 | 1968년 7월 5일 |
상황 | 최종 미등록 |
====# 이원식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이원식(1944)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808080><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無 ||<:><bgcolor=#808080>이원식 (李元飾)||
출생 | 1944년 10월 13일 |
상황 | 최종 미등록 |
====# 손학규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손학규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808080><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無 ||<:><bgcolor=#808080>손학규 (孫鶴圭)||
출생 | 1947년 11월 22일,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 (現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
17대 대선 | 대통합민주신당 경선 2위 |
18대 대선 | 민주통합당 경선 2위 |
19대 대선 | 국민의당 경선 2위 |
상황 | 예비후보 등록 - 사퇴 |
제33대 보건복지부 장관과 제31대 경기도지사를 지냈고, 옛 민주당, 바른미래당 대표를 역임하기도 한 거물급 정치인이다. 사실상 대통령, 국무총리 빼고 어지간한 자리는 다 해봤다. YS 키즈의 일원.[121]
17대 대선, 18대 대선 모두 민주당계 정당의 유력 후보였으나 두 차례 모두 당내 경선 패배(2위)로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19대 대선에서 당적을 변경하여 대선후보 경선에 나갔지만 탈락하면서, 대선 주요 후보로 거론된 11년, 3회의 대선 동안 한 번도 후보조차 되지 못한 정치가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최종 후보로 등록한다면 그토록 원하던 대선후보가 되는게 가능해진다.
손학규의 인생을 돌아보면 정치권에서 언제나 차기 주자로 꼽혔던 경륜의 정치인으로써 보건복지부장관, 경기도지사, 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지금은 비록 여의도의 펠레(...) 정도로 대중에게 인식되지만, 20대 대권주자로 꼽히는 인물들 중에서 손꼽히는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손학규는 어느 자리에 있어도 자신이 능력이 있는 사람임을 입증해왔다. 그래서 손학규는 대통령이 되면 일은 잘할것이다라는 풍문이 나오는것이다.
보수, 진보 두 진영을 오간 전력으로 철새라는 비판을 듣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진영을 떠나 능력을 인정 받기에 그만큼 러브콜을 많이 받는다는 소리이다. 참여정부 당시에는 한나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경제 대통령' 이명박, '민생 총리' 손학규, '책임 당대표' 박근혜"라는 문구가 회자될 정도로 행정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17대 대선 국면에서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대통합민주신당에 투신 했을 때도 보수 정당 태생이라는 태생적 약점을 극복하고 경선에서 2등을 차지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나중에는 친안계를 자처하며 국민의당으로 왔고 이로인해 철새 이미지가 점점 굳어졌다. 바른미래당이 탄생한 뒤에는 자신을 정치에 다시 끌어오게 했던 안철수에 이미지가 바닥을 찍고 2018년에는 재보궐선거의 송파구 을 지역에 관련한 공천 잡음으로 인해서 정당의 이미지 마저 바닥을 찍어버렸다. 이와중에 손학규는 바른미래당 대표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다. 하지만 2019년 재보궐선거에서 본인이 목표로 하는 바른미래당의 10% 득표율도 못 채우고 3%대의 득표율만 기록해 이언주를 비롯한 당내 반대 세력이 더 득세하면서 손학규 개인으로서도 위기인 상황을 겪었고 당의 분열을 막아내야 대권주자로서 가능성이 있었지만 바른미래당은 새로운보수당,국민의당으로 분당 되어버렸고 본인은 정동영의 민주평화당, 박지원, 천정배 등의 대안신당과 합당을 해 민생당으로 차기대권을 노려보려고 했지만 총선에서 0석을 차지하며 참패했고 그나마 있던 가능성도 사라져버렸다.
2021년 11월 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민생당에서 활동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출마 전 오전에 김종인과 회동한 것도 관심을 끌었다. #
2022년 75세로 상당히 고령인데 만약 대선에 나선다면 사실상 마지막 기회가 된다.[122]
2022년 1월 27일, 대선후보 사퇴를 선언하였다.#
====# 최대집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최대집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808080><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無 ||<:><bgcolor=#808080>최대집 (崔大集)||
출생 | 1972년 7월 27일, 전라남도 목포시 |
상황 | 예비후보 등록 - 사퇴 |
국가개혁 자유투쟁
전 대한의사협회의 제40대 회장. 최대집 의원이라는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백색테러 조직이었던 서북청년단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며 '자유개척청년단'을 만들며 어버이연합 등과 연대하며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하던 친박 성향 인사로, 이후 2018년 대한의사협회의 회장에 당선되었다. 최대집이 당선되자, 당시 의협 내부에서도 지나치게 우경화된 인사라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2020년 의료정책 추진 반대 집단행동을 이끌며 의료계 파업을 주도했다. 하지만 의사, 전공의 파업이 장기화되며 의료 공백이 생기고, 사망자가 나오는 등의 부작용이 일어났고 그 이유가 대부분의 대중적인 공감을 사기 어려웠던 탓에 국민적 비판이 커지자 정부와 협의를 진행한다. 이후 전공의들이 협의를 반발하며 탄핵안을 제출했고, 탄핵안이 부결되며 임기를 지키게 되었다.
이후 임기를 마쳤지만 2021년 7월 2일 일요서울TV와 미디어워치를 통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단점으로는 '낮은 인지도'와 '극단적 성향'이 지적받는다. 보수 진영에서도 마이크로의 활용은 가능해도, 대권주자로는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것이다. 인지도 역시 낮다. 의협 회장으로서는 알려져 있지만, 이는 최대집 개인의 실질적인 인지도는 아니다. 출마 선언을 했음에도 변희재의 미디어워치를 제외한 언론에서 조명하지 않은 점이 이를 보여준다.
능력적인 면모를 보더라도 의사로서의 행적 등 정치 외적인 부분들이 좋을 지는 몰라도 과도할 정도의 극우 성향을 매우 노골적으로 표방할 정도로 정치력은 좋지 않은 편이라 고전이 예상된다.
결국 2022년 2월 9일 후보직 사퇴를 선언했다. https://www.fnnews.com/news/202202091141276712
====# 이건개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이건개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808080><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808080><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無 ||<:><bgcolor=#808080>이건개 (李健介)||
출생 | 1941년 10월 17일, 평안남도 평양부[123] |
상황 | 예비후보 등록 - 사퇴 |
전 자유민주연합 소속 15대 국회의원.
예비후보를 등록했으나 2022년 2월 11일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했다.
7. 사퇴 후보
아래의 인물들은 최종 후보로 등록했으나 단일화, 또는 여러 이유로 대선을 포기하고 사퇴한 경우다.===# 국민의당 #===
====# 안철수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안철수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A5504><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EA5504><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 ||<:><bgcolor=#EA5504>안철수 (安哲秀)||
출생 | 1962년 2월 26일, 경상남도 부산시[124] |
18대 대선 | 최종 미등록 예비후보 (무소속) |
19대 대선 | 본선 3위 (21.41%, 국민의당) |
상황 | |
기호 | |
바르고 깨끗한 과학경제강국
믿을 사람, 바른 사람 안철수
2011년 11월,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촉발된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정치 출마 선언을 하지 않았음에도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지는 "안철수 현상"이 일어난다. # 그런데 안철수 원장이 민주당에서 앞서던 한명숙, 박영선 후보가 아닌 5%대 지지율의 무소속 박원순 후보를 지지선언하여 화제가 된다. 박원순 후보는 민주당과도 후보 단일화를 한 뒤 서울시장에 당선된다.믿을 사람, 바른 사람 안철수
2012년 7월, 계속되는 국민들의 양당 혐오와 안철수를 향한 정치 출마 요구에 따라 책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하고, 그 내용과 공약들이 다수 국민들의 공감을 얻는다.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막강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상대로 다시금 거론되었으나, 문재인 후보와 껄끄러운 단일화 과정을 거친 뒤 사퇴했고, 결국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다.
2014년 6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연합과 민주당(2013년)이 대선 때처럼 패배를 할 수 없기에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합당한다. 이후 야당의 지도부를 안철수와 문재인이 번갈아 맡게 된다.
2016년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앙숙 안철수의 국민의당(2016년)과 문재인이 더불어민주당이 갈라서게 된다. 무려 민주당에서 호남을 떼어냈기에 새누리당의 단독 180석 돌파도 예측되었지만, 문재인이 수도권에서 대승하여 더불어민주당이 1당이 된다.[125] 또한 국회선진화법 아래에서 민주+국민 쪽으로도, 새누리+국민 쪽으로도 180석이 되지 못 해서 제3세력으로서의 존재감을 어필하지 못 하게 되고, 3당이 합의해야만 굴러가는 식물국회로 돌입한다.
2017년 5월,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새누리당이 아닌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 예측되었다. 2016년 12월부터 보수진영이 밀던 반기문이 2017년 2월 1일 불출마를 선언하여 보수진영은 무당층이 더욱 급증하게 된다. 2017년 2월 15일 ~ 4월 8일 민주당 경선에 국민의 시선이 쏠리고, 보수진영은 전략적으로 안희정 및 이재명을 지지하기도 하지만, 문재인 후보가 예상대로 선정된다. 보수진영과 언론들은 일시에 4월 첫주에 안철수 대망론을 띄우고, 실제로 오차 범위 내에서 안철수 후보가 앞서기도 한다. 하지만 4월 11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에서 "대형 단설유치원 신설 자제" 공약이 논란이 되며 한 주만에 지지율이 폭락한다. 이후 뒤늦게 홍준표가 흩어진 보수 표를 빠르게 재결집시키자 홍준표에게조차 밀려 최종 3위로 낙선하여 정치적 역량을 많이 잃어버렸다. 그래도 대한민국 역사에서 3당으로 가장 많은 득표인 700만 표를 얻었다는 기록을 세웠다. 일찌감치 다음 대선에도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2018년 6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박원순에게 트리플 스코어로 격차가 벌어졌고 김문수에게도 졌다. 직전해 대선 때의 자신의 지지율조차 찾아오지 못했고,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김문수와의 격차가 대통령 선거에서의 홍준표와의 격차보다도 크게 나와버려, 사실상 안철수의 대권 운명은 끝난 것으로 보였다.
2020년 4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당을 재창당하였지만 기대치에 못 미치는 비례대표 3석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126] 지역이든 계층이든 안철수를 지지하는 기반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127], 안철수가 대권을 노리려면 이번 총선으로 위기에 빠진 범야권 보수세력과 손을 잡을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21년 4월, 2021년 재보궐선거에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공식 출마 선언함과 동시에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될 경우 2022년 대선에 불출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태섭 전 의원과 경쟁은 승리했으나,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의 단일화에서 패하면서 최종 출마하지 못했다. 그러나 안철수는 결과를 빠르게 승복하고 국민의힘 후보들의 유세를 적극 지원하였고[128], 결국 오세훈은 서울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게 됨에 따라, 향후 합당이 이루어질 시에 지분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5월 통합이 쉽지 않다는 소식이 나온다. # 6월에 야권 단일 후보의 필요성을 강조하되 본인은 대선 출마 생각이 없다고도 했다. # 그러다가 8월에 결국 합당이 결렬되며 양당이 각자 대선 출마하는 것으로 방향이 잡혔다. #
2021년 9월 16일, 이번 대선에 기회를 놓치면 새로운 미래는 없다며 출마를 시사했다. # 그리고 2021년 11월 1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2021년 11월 4일, 국민의당 후보 경선에 단독 출마하여, 찬성 92%를 받고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2021년 12월 23일, 유튜브 김성회의 G식백과에 출연하여 자신의 게임정책을 밝혔다. #
2022년 1월 2일, 유튜브 삼프로TV 경제의 신과 함께에 출연하여 자신의 경제정책을 밝혔다. #
2022년 1월 6일, KBS 9시 뉴스에 출연하여 연금 개혁, 노동시간 유연화, 건보확대보다 수가조정, 부동산 보유세 증가 거래세 완화, 백신부작용 보상확대, 원전과 태양광 병행 등을 말했다. #
2022년 3월 3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조건없는 단일화를 선언하며 후보를 사퇴했다.#
===# 새로운물결 #===
====# 김동연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김동연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02BB71><tablebgcolor=#fff,#191919><colbgcolor=#02BB71><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fff,#191919><color=#02BB71> ||<:><bgcolor=#02BB71>김동연 (金東兗)||
출생 | 1957년 1월 28일, 충청북도 음성군 |
상황 | |
기호 | |
품격있는 경제대통령
기득권공화국에서 기회공화국으로
기득권공화국에서 기회공화국으로
문재인 정부의 첫 경제부총리로 흙수저 출신으로 기획재정부의 장관이 되어 화제에 오른 인물이다. 기획재정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이후부터 양당이 모두 영입을 시도했으나 본인은 고사했고 다만 더불어민주당의 충청 지역 후보들의 후원회장이 되긴 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국민의힘에서도 충청 대망론을 중심으로 꾸준히 영입을 주장하는 인물로 특히 국민의힘은 미래통합당 시절 대권주자로 밀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중도적인 이미지 때문에 여야 대권주자로 분류되지 않으며 심지어 야당의 주자로 분리되기도 한다. 김동연 전 부총리가 진영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을 최근에 하긴 했지만 그전부터 계속 야권 주자로만 통계에 나오고 있는 중이다. 민주당 선거운동을 최근에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2021년 4월, 2021년 재보궐선거에 출마한다는 설이 나왔는데, 국민의힘 소속으로 나올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인다. 양당에서 서울시장 경선 출마를 권유했지만 본인이 거절했다고 한다. 본인이 지속적으로 내고 있는 생각은 양극화와 부의 대물림을 끊어야 한다거나 기회를 실질적으로 평등하게 나눠야 하고, 저소득층, 사회적 약자 층에 대한 기회에 대한 평등의 복지가 필요하다는 등의 주장을 했다. 이는 각 진영마다 진보적 주장인지 중도보수적 주장인지를 다르게 해석했기 때문에. 사실상 중도 혹은 아예 제3 후보로 분류되고 있는 중.
2021년 6월 15일, 최근 정계의 흐름을 보면서 본인의 거취 행방을 야권으로 마음을 굳혔다는 측근의 기사가 나왔고# 6월 20일 사실상 대권 출마를 시사하였다.
2021년 7월 4일, 매일경제와 한 인터뷰에서 "정권에 각 세운다고 국가경영 잘 하겠나?", "청와대와도 치열한 논쟁을 벌였지만 정치를 할 목적으로 대립각을 세운 적은 없었다" 라며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직격하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최재형 감사원장과 마찬가지로 낮은 인지도가 큰 걸림돌이다.
2021년 8월 20일, 본인의 고향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였다. 독자적으로 정당을 만들어서 대선에 임할 예정이다.#
2021년 9월 8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2021년 9월 16일, 시대전환이 김동연 후보를 지지하고, 시대전환의 유일한 원내 의원 조정훈 의원이 김동연 대선캠프의 전략기획본부장도 맡았다. 시대전환에 김동연 후보가 입당 또는 창당 후 신설합당할 경우, 김동연 후보는 선거에서 원외정당의 기호 번호가 아닌, 기호 7번을 고정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된다. #
2021년 10월 24일, 새로운물결 창당 발기인대회를 열었다. 이 역시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추천해준 당명이다. 김동연 후보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나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향해서는 "기득권 양당 구조를 깨는데 뜻을 같이한다면 언제든지 (대화를) 열어놓을 것"이라고 말했고, 시대전환 조정훈 대표를 향해서는 "힘을 합쳐서 양강 구조를 깨는 데 필요하다면 세력적 합류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담으로 조정훈 대표와 김동연 후보는 과거 세계은행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다고 한다. #
2022년 3월 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단일화를 선언하며 후보를 사퇴했다.
8. 관련 문서
[1] 형제들이 빨리 죽었기에 늦게 출생신고를 하려는 과정에서 그만 이재명의 생일을 헷갈리는 바람에 어머니가 점쟁이에게 물어 정한 생일이다. 정확히는 22일인지 23일인지가 헷갈려 점쟁이에게 물어봤다고. 이 때문에 실제 생년은 1963년이며, 위에 열거된 생일은 호적상 생일이다.[2] 현 경상북도 안동시[3] 이 때문에 주로 성소수자들이 퀴어 인권에 친화적인 민주당 정치인이 남인순, 진선미, 박주민, 이재명뿐이냐며 한탄하기도 한다.[4] SNS와 오프라인 모임에서 주로 보이는 사람들이 주부나 50대 이상이기에 이런 이미지가 생겼지만, 자원봉사자나 트위터를 확인하면 2030대 진보세력에게도 지지를 받고 있음이 드러난다.[5] 경선과정에서 '이재명이 답이다'라는 억지밈을 만들어 아무데서나 도배하고 다니거나, 심지어 경선으로 문재인이 선출되자 욕을 퍼부으며 안철수를 연호하기도 하였다.#[6] 원팀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문재인을 비방하였다.##[7] 18대 대선에서 문재인은 수도권에서 서울특별시를 제외하고, 인천광역시, 경기도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단 3% 차이로 낙선했다. 전체 인구의 1/3을 넘는 유권자를 보유한 수도권의 지지율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8] 대통령 임기 말에 선거에서 크게 패한다면 레임덕이 발생하면서 당내에 권력이 차기 주자로 이동하기 때문[9] 경기도가 독자적으로 러시아산 코로나 백신을 들여오려는 것처럼 말이다.[10] 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11] 반 이재명, 친 이낙연계 초강성 친문에게 이재명은 철천지원수로 취급받는다. 그 반 이재명 친 이낙연계의 대표주자가 갈등을 겪고 있는 조광한이다. 현재 조광한이 반 이재명계에서 총대를 메고 이재명 죽이기에 나서고 있어서 초강성 친문과의 갈등은 개선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초강성 친문을 제외한 온건친문들 사이에서는 이낙연이 일으킨 각종 병크와 전남지사 시절 각종 실책들이 조명되며 이재명이나 추미애로 옮겨가는 사람 들이 굉장히 많다.[12] 그것도 2번이나 검정고시를 치렀다.[13]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모두 대한민국 국회의원 출신이다.[14] 만약 다음 대선에 재수해서 출마해서 당선되면 국회의원을 거친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대선 패배 이후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되었기 때문이다.[15]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독재자 등재 기준에 부합하고, 노태우 역시 군부독재와 연관이 있으며 박근혜 역시 군부독재자인 아버지의 정권에서 퍼스트 레이디까지 대행했던 만큼 연관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 한편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문재인은 모두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다만, 영향력이 거의 없이 짧게 역임하고 사임한 윤보선, 최규하는 제외한다.[16] 대한민국은 '서울 공화국'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수도권 인구 과포화가 심한 상태지만, 이는 1970년대 이촌향도 현상으로 많은 인구가 서울로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가장 연배가 어린 문재인 대통령이 1953년생인데, 이와 비슷하게 대통령을 바라볼 수준의 세대인 5~60년대생 중에는 '서울 태생'이 많지 않다.[17] 미혼인 박근혜를 제외한 기혼 대통령들은 전부 자녀가 2명 이상 있다.[18] 여태까지 선출직 경험 없이 대통령이 된 경우는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뿐이다.[19]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모두 대한민국 국회의원 출신이다.[20] 현 경기도 파주시[21] 여영국, 이정미 의원 정도가 비슷한 정도지만 인지도 면에서 심상정 대표보다 확실히 약하다.[22] 물론 유승민 의원이 보수진영 적합도 1위인 것처럼 적합도와 지지율에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23] 다만 민주당에서 이재명 등 진보 성향 후보자가 나오거나 정권 재창출 시 정의당 인사의 내각 참여를 보장하거나 하면 더불어민주당과 단일화를 할 가능성도 있다.[24] 현 경상남도 밀양시[25] 주민등록상 나이 및 출생지이며, 본인은 1950년 1월 1일 서울 중랑천 다리 밑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다.[26] 한국은 국회의원 선거에도 여성 할당제가 적용되어, 홀수 번호에 여성이 의무화되어 있다.[27] 하지만 긴급 의료 센터에서까지 무자비하게 많은 전화가 걸려 이에 대한 비판도 상당하다.[28]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모두 대한민국 국회의원 출신이다.[29] 현재 대한민국 역대 최고령 대통령은 김대중으로 당선된 당시 74세였다.[30] 김대중, 이인제가 4회로 공동 1위다. 이회창은 3회다. 허경영은 포기/불가했던 13대, 16대, 18대, 19대 대선을 제외하고도 완주한 대선이 15대, 17대, 그리고 이번 20대로 3회가 된다.[31] 대선-지선을 거치는 6월까지는 노동당으로 활동하며 이후 선관위를 통해 공식적으로 당명을 바꾸고 합당을 한다. 2022년 2월 현재 이 논의는 단일한 사회주의 대중정당(가칭)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32] 현 대구광역시[33] 유시민의 '백바지', 류호정의 '원피스'처럼 젊고 진보적인 의원의 관습 타파하기 등과 비슷한 화제덤이었다. 다만 유시민, 류호정 처럼 강한 저항을 받진 않았다.[34] 현재 대한민국 역대 최연소 대통령은 박정희로 당선된 당시 46세였다.[35] 김두관이 당선된 시절의 경상남도는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의 텃밭이었다.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민주당계에 매우 가까운 인물로서 당선된 건 당시 기준으로는 이변이었다.[36] 결국 미래통합당 내부의 이견으로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한때는 홍준표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양산을 통합당 후보로 출마하려고도 했기 때문에, 전직 경남도지사 출신 대권주자 간의 빅매치 가능성이 언급되기도 했다.[37] 전국적으로 사립유치원의 수가 어마어마하다 보니 지역 소문에 민감한 지역구 국회의원의 특성상 잘못 건드렸다가는 역으로 재선에 실패할 위기가 있었다. 실제로도 많은 유치원들이 선거를 빌미로 박 의원을 협박했을 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의원은 과감히 이 법안을 밀어붙이는데 성공하면서 보란듯이 재선에 성공했다.[38] 민노당 출신이고 권영길에게서 정치를 배운 사람이지만 보수 대통령인 박정희, 이승만을 무조건 나쁘게 보지 않고 공과 과를 구분하자는 입장을 오픈마인드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박 의원 본인은 국민이 먹고 사는 데는 보수 진보가 따로 없다고 한다.[39] 하지만 여기에는 맹점이 있는데 이재명,이낙연,추미애등 다른 후보들은 더불어민주당과 열린민주당 지지자들이 주를 이루는 반면 박용진은 정의당과 국민의 힘 지지자들이 많은것으로 나타낫다. 쉽게 말해 정의당,국힘당 지지자들의 역선택을 받고 있다는 예기.[40] 현 천안시[41] 정세균과의 단일화로 사퇴[42] 일반적인 친노도 아니고 좌희정 우광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노무현의 핵심 측근이었다. 나잇대가 비슷한 문재인과는 다르게 거의 20살 가까이 차이나서 안희정이 정계 은퇴한 이후 노무현의 후계자격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43] 당시 한나라당은 강원도가 지속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해 줬음에도 국책 사업에서 가뜩이나 소외되어 발전이 없던 강원도만 배제하고 원주시에서 계획 중이던 의료 단지 사업까지 대구광역시에 돌린 데다가, 이명박 정부에서의 대북관계 악화로 금강산 관광 등으로 지역 경제를 끌던 고성군 등이 침체하며 한나라당의 태도에 대한 큰 불만이 형성되었다. 이때 강원도민들의 배신감은 현재까지도 이어지며 원주혁신도시, 원주기업도시가 만들어진 지역에서 그 불만이 격화되었다. 이 신도시 때문 만이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강원도를 외면한 대가로 강원도는 보수 성향에서 캐스팅 보터로 바뀌게 되는 기반이 되었다.[44] 특히나 권성동과 김진태가 각각 강릉시, 춘천시라는 보수 텃밭 지역들을 거점으로 가진 것도 크다. 둘 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반민주당 정서를 이용하면 유리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45] 당장 지난 대선 때만 해도 문재인 후보는 공공 일자리를 주장하고, 홍준표 후보는 일자리는 민간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했었다.[46] 최근 친문계로 분류되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당시 탄핵에 찬성 표를 던졌다. 그런데 비문계로 분류되는 천정배, 정동영은 여당이었던 오히려 친노라고 볼 수 있는 열린우리당 소속이었다. 실제로 저 둘은 노무현의 당선에 크게 기여했고 그 뒤 열린우리당 창당 때도 큰 도움을 주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다.[47] 당시 이낙연은 노무현 정부를 향해 '군사독재보다 더 빈부격차를 키운 반서민 정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48] 후원회장을 맡은 후보 38명 가운데 23명이 당선되고 15명이 낙선하였다.[49] 이는 작은 요소는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강점으로 내밀었던 요소 중 하나가 '5년 동안 청와대에서 일하면서 국정 운영 경험을 쌓아본 유일한 후보로서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에서 빠르게 국정을 안정시킬 적임자'였다.[50] 신년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선 그 어떤 곳에서도 1위를 하지 못했다. 이재명은 면접 여론조사에서 1위를 놓치지 않았고, 윤석열은 ARS 여론조사에서 1위를 점했다.[51] 사면은 대통령의 권한임에도 청와대와 협의 없이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얘기도 있는 듯.[52] 안철수 캠프에 있던 사람이며, 과거 복당 불가 선언을 받았던 인물이다.[53] 루리웹 정치유머 게시판은 제외. 여긴 강성 친 문재인, 친 이낙연, 반 이재명 성향이다.[54] 현재의 2030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불공정인데, 박성민이 최고위원으로 선출됐을 당시에도 경력이 일천한데도 뽑혀서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줬다는 평이 많았다. 20대 남성뿐만 아니라 30, 40대 친문지지층들 사이에서도 박성민에 대한 반감이 높다.[55] 미혼인 박근혜를 제외한 다른 기혼 대통령들은 전부 자녀가 두 명 이상이었다.[56] 현 강원도 춘천시[57] 현 대구광역시 달성군[58] 앞서 새 천년민주당 시절, 경북 출신의 김중권이 당 대표를 지낸 적이 있으나, 그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당 대표 위에 당 총재(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당 총재였다)가 있었고, 당 대표는 선출직이 아니라 총재가 임명하는 자리였다.[59] 김대중 당시 후보 캠프 - 유세단장, 노무현 당시 후보 캠프 - 공동본부장, 정동영 후보 캠프 - 공동선대위원장, 문재인 당시 후보 캠프 - 상임선거대책위원장[60] 꼭 치명상을 입었다고 보기 어려운게 전국구적인 이미지는 훼손 됐지만 자신의 확고한 지지층이 생긴건 대권주자로서 이득이기 때문[61] 참고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부터 법무부의 직무수행평가는 만년 꼴찌를 자랑하는 여성가족부 다음으로 낮다. 이 때문에 진보층에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낮은 편은 아니고, 중도층과 보수층에서는 부정평가가 과반을 넘긴다.[62] 야권에서는 나다르크 vs 국썅처럼 여야에서 극단적인 긍·부정적 별명이 혼재하는 나경원이 있다. 쉽게 말해 둘 다 과격한 행보와 막말 때문에 비호감도가 매우 높은 게 공통점.[63] 거창군, 합천군, 창녕군은 행정구역 상으로는 경상남도이지만 대구광역시와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대경권과의 물적, 인적 교류가 많았던 지역이고, 때문에 북경남 출신 지역 정치인들 중에서는 학연, 지연으로 얽힌 TK와 밀접한 경우가 많다. 아예 홍준표 경남지사처럼 본인을 PK라 부르기를 거부하고 TK로 여기는 경우도 있고.[64] 민선 3~4기 거창 군수 출신으로 김태호가 경남지사 출마를 위해 거창 군수 직에서 사퇴하면서 궐석이 된 자리에 보궐선거로 당선된 바 있다. 이후 20대 총선에서 이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65] 1호는 前한미연합군부사령관 신일순 대장[66] 현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67] 두 사람은 이름과 정당은 물론, 나이도 같고 심지어 대학도 같고 본관도 같다.[68] 윤상현 후보는 171표 차표로 생존한지라, 윤 후보의 입장에서는 안상수 후보가 조금이라도 더 분전했다면 남영희 후보가 이기게 되는 아슬아슬한 접전이었다.[69] 현 대구광역시 중구[70] 과거 박근혜 대통령과의 충돌로 빚어진 배신자 프레임에 현재까지도 강하게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역으로 노년 보수층이 아닌 보수층과 중도층에게는 탈친박이라는 이미지가 남아있는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71] 대선 출마 선언 당시 해당 기사 댓글만 봐도 알겠지만 "배신자" 낙인으로 인해 초반에는 다수의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유명 우파 유튜버들에 의해 유승민의 여가부 폐지 공약이 알려지면서 인식이 조금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유승민의 과거 행적들이 알려지면서 진보 지지자들의 지지도 또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72] 현 부산광역시[73] 이때 득표율이 3.91%로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후보와 새누리당 나성린 후보의 3.1%의 표차를 넘는 득표를 했다. 즉, 오승철 후보와 나성린 후보가 단일화를 했다면 나성린 후보가 당선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오승철 후보의 득표율이 고스란히 나성린 후보에게 갈지 자체도 미지수기에 확실하지는 않다.[74] 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75] 사실 장기표는 김문수, 이재오 등 먼저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으로 온 운동가도 아니고, 이인영, 우상호 등 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으로 간 운동가도 아니고, 심상정, 노회찬 등 대한민국의 진보정당으로 간 운동가도 아니고, 우현, 안내상 등 아예 예술계로 빠진 운동가 등 어느 쪽에도 속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대중적 인지도는 앞서 언급된 이들보다도 낮고, 설사 그를 알고 있는 진보진영, 민주당계 활동가들은 대부분 그와 대척점에 있다는 점도 상당한 마이너스 요소다.[76] 출마 후보가 적거나 이슈가 안될 수도 있을 때 경선 흥행을 위해 출마하는 것. 단일화, 낙선 후 지지 등 여러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다 본인 역시 어느정도 인지도와 입지를 확보할 수 있기에 일석이조이다. 민주당 경선에서의 최문순이 바로 이 메기론을 들고 나왔었다. 19대 대선 당시 민주당 경선의 최성과 국민의당의 박주선 역시 마찬가지.[77] 現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78] 사실 비교되고 있는 이회창의 경우 문민정부의 감사원장, 국무총리 출신으로 당시 대통령 김영삼, 여당이었던 신한국당 등과 번번이 충돌하며 야당 주자로 불리기도 했지만 결국 신한국당에 입당해 국회의원 생활을 하고 대선을 치렀다.[79] 현 부산광역시 동구[80] 주민등록상 생년월일이며, 실제 생년월일은 1953년 11월 20일이다.[81] 한나라당 시절에는 여당, 자유한국당 시절에는 야당 대표였다.[82] 김대중은 4번, 문재인과 김영삼은 2번씩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끝에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83] 사천은 KAI의 본사와 공장이 있는 등 원래부터 항공우주 산업이 발달된 지역이다.[84] 또한 홍준표 지사 시절 경제가 안 좋았다는 공격 역시 좋았다고 반박하는 게 아니라 “제가 도지사 재직시절인 2006년에는 경남 경제가 제일 좋았다"고 반박하고, 홍준표가 없앤 무상급식을 전면 확대 시행하겠다고 공약하는 등 홍준표 도정을 실드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당시 김태호 후보가 홍준표와 선긋기를 한 것은 홍준표 도정이 실패했다고 생각해서보다는 홍준표가 당 대표로써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것 때문에 거리두기를 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85] 젊은이들에게는 문재인 정부는 좌파다, 종북이다 하고 말하는 것은 전혀 효과적이지 않고 문재인 정부의 불공정 및 경제 정책 실패 등을 꼬집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2021년 재보궐선거 등을 통해 입증되었다.[86] 두번째 페이스북 게시글에 "정권을 안정시키는 것도 검찰총장의 책무라고 하면서 조국 수사는 문정권 안정을 위해서 한 것"이라고 윤석열이 자인한 적이 있다는 주장을 넣은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홍준표는 자신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자 조국 수사를 지휘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저격하기 위해 이같은 발언을 한 것이다. 다만 원희룡 후보 등은 홍준표가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할지도 모르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의 표심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당장 민주당 경선만 보더라도, 역선택을 딱히 문지 삼지 않는다. 역선택 방지 조항을 찬성하는 건 윤석열과 최재형 둘 뿐.[87] 이 당시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탄핵 직전 박근혜 정부와 같은 4%였다. 그 정동영 보다도 못 얻고 낙선할 수 있다는 비관론까지 나왔었다.[88] 이는 MB아바타 발언 등 안철수 본인의 역량이 심각하게 미숙한 모습만 보여줘 스스로 자멸했던 점도 한 몫했다.[89] 김태호, 유정복, 서병수. 남경필, 김기현은 지역 특성상 비박일 수 밖에 없었다.[90] 무려 구로구 을이였다고 한다. 경력도 일천한 후보가 종로구를 첫 스타트로 끊은 황교안에 대한 반발심이 컸던 모양. 알다시피 홍준표는 서울에서만 4선을 했다.[91] 수성구 을은 본래 주호영의 지역구였는데 대구광역시에서 부촌으로 통하는 지역이다. 주호영의 공약이행률이 90%를 넘는다고 평가 받는 상황에서 황교안 체제의 지도부가 반강제로 주호영의 지역구를 옮기게 하자 유권자들이 반발해 무소속 야권후보로 나온 주호영의 손을 들어줬던 전례와 비슷하게 이번에도 무소속 야권후보인 홍준표의 손을 들어준 것.[92] 첫 동대문구 지역구 국회의원 출신 대통령은 첫 대통령인 이승만으로 이승만은 동대문구 갑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다. 홍준표는 동대문구 을 지역구에서 3선 국회의원을 했다.[93] 홍준표는 TV홍카콜라로 우파 유튜버 활동을 한 바 있다.[94] 박근혜 정부 시절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95] 패스트트랙 정국에서의 삭발과 단식, 총선을 앞두고 각종 실언과 공천파동 등 안 좋은 이미지가 누적된 결과로도 볼 수 있다.[96] 이혜훈은 서초구 갑에서 3선을 지냈고 동대문구 을에는 연고가 없었다. 심지어 서초구 갑과 동대문구 을은 주민들의 정치적 성향이 정 반대이다.[97] 이언주는 경기도 광명시 을에서 재선을 한 인물로 부산에서는 태어나 자랐을 뿐 그쪽에 정치적 기반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나마 처음엔 고향이기라도 한 중구·영도구에 전략공천하려다 당협위원들과 김무성 전 의원 등이 반발하자 옆동네로 보내버린 것. 이언주는 부산 전체가 자신의 고향이니 상관 없다는 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결과는...[98] 원래 정유섭과 문병호 모두 부평구 갑 출마를 희망했는데, 지역구 주민들에게 민심을 잃은 상태였던 정유섭을 선택하고 정작 경쟁력 있던 문병호는 연고도 없는 영등포로 보내버린 것.[99] 유력 차기 대권 주자이며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다 쓰러져가던 당을 이끌고 기적적으로 2위를 달성한 홍준표를 공천 배제하고 인지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나동연을 공천하였다. 참고로 홍준표는 원래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에 출마할 생각이었으나,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양산시 을에 출마한 김두관을 잡겠다며 출마 희망 지역을 바꾼 것이었다.[100] 정병국은 여주·양평에서 5선을 지낸 잠재적 대선주자 급의 중진 의원으로, 의정생활 동안 석불역 개통, 경강선 KTX 개통,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등을 성공시킨 바 있어 지역구에서 인망이 높았다. 그런 사람을 컷오프하고 친박·친황계의 김선교 전 양평군수를 공천했는데 김선교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천 실패 및 여러 가지 논란 탓에 이미지가 나빴다. 아무래도 정병국은 차차기 대선을 노릴 수 있는데다 유승민, 원희룡, 오세훈과 가까워 황교안이 컷오프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101] 특히 홍준표, 정병국 등을 컷오프한 것은 미래에 대권을 두고 자신과 경쟁할 수 있는 잠재적 대권 주자들을 견제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로 그리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많았다.[102] 결국 이혜훈, 이언주, 정유섭, 문병호, 나동연 후보는 모두 낙선했으며, 공천 탈락 후 무소속 출마한 홍준표 등은 당선되었고, 전체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하였다. 그리고 김선교는 당선되었지만 국민의힘의 우세 지역인 여주시·양평군에서 50%를 겨우 받는 망신을 당했다.[103] 현 광주광역시[104]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출마선언문을 보면 단위를 Feet로 표기하는 등 행정적으로 미국 단위계에 더욱 익숙해보인다는 문제점도 있다.[105] 당원 500명의 추천[106] 현 부산광역시[107] 다만 유년기 인천에서 자랐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인천 출신이다.[108] 현 전라남도 신안군[109] # 53분 37초에 장기표 후보자 머리에 정확히 맞췄다.[110] 하필 황교안 후보와 하태경 후보의 설전이 오갈 때라 날이 선 상태였다.[111] 이후 해당 지역구는 당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한 홍영표 후보가 2009년 재보궐 선거로 당선되어 현재 내리 4선을 하고 있다.[112] 본명보다 현린으로 유명하다보니, 당에서도 현린으로 활동한다. 본명보다 호로 더욱 많이 불리던 초기 한국 정치인들이나(유석 조병옥 등) 강신영보다 신성일로 유명해 신성일로 불리던 강신영(강신성일)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113] 현 경기도 안성시.[114] 예외적으로 노년층에게는 인지도가 높다.[115] 당선 당시 74세.[116] 2022년 기준 81세.[117] 박정희에게는 3녀, 육영수에게는 차녀.[118] 현 광주광역시 북구[119] '상생' 등의 말들을 보면 대순진리회나 증산도 내지 대종교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상생 자체가 자주 쓰이는 말인데다, 상극-상생의 대비 주장은 음양오행에서도 등장하다보니 이어령 전 장관이나 조정식 의원 등도 인용한 적 있는 표현이라 속단이 힘들다. 안동옥 본인은 본인을 대순진리회 신자라고 밝힌 적은 없다.[120] 오징어 게임에서 성기훈이 말하는 본인이 다니던 자동차회사에서 일어난 대규모 구조조정과 본인이 노조원으로 있으며 파업을 진행했으며, 동료의 죽음을 목격해 PTSD가 있다고 말한 사건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 맞다.[121] 이명박, 이재오 등의 인물들도 이에 포함된다. 노무현, 손학규, 이명박, 이재오, 이회창은 김영삼이 발탁하긴 했으나, 이들은 김영삼 직계보다 외부 영입인재로 분류되기에 상도동계가 아닌 YS 키즈로 분류한다. 김무성 외에는 강삼재, 김덕룡, 김무성, 박관용 등이 대표적인 상도동계 인사이다.[122] 다만 18대 대선 당시 박종선 후보가 84세의 나이로 출마한 것을 감안하면 꼭 그렇다 라고만은 할 수 없다.[123] 현 북한 평양시[124] 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125] 당시 유권자들이 "민주당의 적폐들을 안철수가 데리고 나가줬다"고 판단하였는데, 이러한 과정이 "안크나이트" 유머 시리즈로 정리되곤 하였다. 1편이 2016년 총선, 2편이 2017년 대선, 3편이 2018년 지선.[126] 이는 개정된 선거법의 취지와 다르게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 당을 창당하면서 소수정당이 피해를 본 사례이다.[127] 2017년 대선에서 가장 표를 얻은 곳은 호남이었다.[128] 부산에도 내려가서 박형준 후보 지지 유세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