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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즌 | 2024년 시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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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왼쪽부터 심정수, 김동주, 타이론 우즈 |
2. 구성원
<rowcolor=#000> 3번 타자 타이론 우즈 | 4번 타자 김동주 | 5번 타자 심정수 |
3. 역사
3.1. 결성 배경
1997 시즌 OB 베어스 중심 타선 기록 | |||||||||||||||
<rowcolor=#ffffff> 선수 | 경기 | 타석 | 안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RC+ | sWAR |
김상호 | 96 | 393 | 108 | 11 | 52 | 45 | 4 | 42 | 71 | .315 | .393 | .499 | .892 | 157.4 | 3.96 |
심정수 | 40 | 145 | 30 | 5 | 22 | 17 | 2 | 22 | 27 | .246 | .359 | .410 | .769 | 119.2 | 1.00 |
김형석 | 111 | 362 | 75 | 12 | 43 | 38 | 0 | 36 | 65 | .234 | .308 | .386 | .694 | 88.7 | 0.13 |
이에 OB는 1998 시즌을 맞이하며 중심 타선을 대대적으로 개편한다. 기량이 많이 저하된 김형석은 IMF 사태로 인한 모기업 재정 문제까지 겹쳐 방출됐고, 대신 새 얼굴인 김동주와 타이론 우즈를 중심으로 새롭게 타선을 구축했다. 아마 시절 고교 무대와 대학 무대 양쪽에서 최고의 유격수(!)[1]로 활약했던 김동주를 199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데려왔고, 여기에 KBO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우즈를 영입하며 심정수와 함께 중심 타선을 맡기게 된다.
3.2. 1998 시즌
시즌 초에는 심정수가 아니라 트라이아웃에서 데려온 또다른 외국인 타자인 유격수 에드가 캐세레스를 3번으로 배치하며 캐세레스-타이론 우즈-김동주 순으로 클린업을 구축했다. 그러나 캐세레스는 타격보다는 수비에 강점이 있는 선수라는 것이 얼마 안가 드러났고, 이에 김인식 감독이 심정수를 5번에 배치한 뒤 다른 타자들을 한 순번씩 앞으로 끌어올려 비로소 우동수 트리오가 결성됐다.김인식 감독이 가능성 있는 선수를 점찍으면 2년은 끝까지 밀어주는 스타일 때문에 클린업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우즈는 변화구를 제대로 치지 못해서 교체설이 있었으며 김동주는 상반기가 끝났을 때 김인식 감독을 제외한 모든 코치들이 2군에 보내야 한다는 것을 무시하고 감독이 붙박이 1군 출전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김동주는 추신수의 2015년 시즌처럼 후반기에 엄청난 반전을 일으키며 신인왕 후보까지 오른다.[2] 우즈는 이 해 KBO 최다 홈런기록을 갱신한 데 이어 이승엽과 홈런왕 경쟁까지 하면서 외국인 선수 돌풍을 본격적으로 일으켰다. 심정수 또한 전년도까지의 부진을 떨쳐내고 대활약하며 일약 우동수 트리오는 급부상하게 된다.
이 해 우동수 트리오는 399안타 85홈런을 합작해냈고, OPS는 .858을 기록하였다.
3.3. 1999 시즌
이 해 심정수는 OPS 10할을 기록하는 등의 맹활약을 선보였다. 당시 프로야구에서 드림리그를 제치고 통합 1등의 승률을 자랑하였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에 스윕을 당해버리며 아쉽게도 시즌을 끝내게 된다.1999년 시즌에는 424안타 87홈런을 합작해내었다. OPS는 .954를 기록.
3.4. 2000 시즌
이 해 우동수는 전설같은 기록을 남겼는데, 2000년 한 해에만 99홈런을 합작해내었고 결국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했지만... 김동주가 손가락 부상으로 시즌아웃 돼서 결국 미완의 트리오로 남았고, 그럼에도 김동주는 출전을 강행하며 부상 투혼을 보였지만 현대 유니콘스에 패하고 말았다. 결국 준우승으로...[3]
2000년 시즌에는 448안타 99홈런을 합작. OPS는 .988을 기록.
그러나 이 시즌이 우동수 트리오의 마지막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3.5. 해체와 이후 행보
2000시즌 후 2차 선수협 사태에 참가하여 구단에 찍혔던 심정수가 보복성 트레이드를 통해 현대 유니콘스의 심재학과 맞교환되며 우동수 트리오는 어이없게 해체됐다. 근 2시즌을 리그 정상급 우타 거포로 활약한 심정수와 달리 심재학은 여러모로 심정수보다 무게감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애초에 밸런스 자체가 안 맞는, 말이 안 되는 트레이드를 한 셈이다.[4] 이에 당시 두산 팬들은 "심정수를 왜 트레이드 시키냐"고 분노하며 구단 측에 항의했지만, 이러한 항의가 프런트에게 받아들여지는 일은 없었다.[5]공교롭게도 트레이드 직후에는 심정수가 현대에서 다소간의 적응기를 가지고, 반대로 심재학은 포텐셜이 제대로 터지며 두산의 새 중심 타선인 '우동학 트리오'(또는 우재주 트리오)[6]의 일원으로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해 두산이 트레이드로 이득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2002시즌부터 심재학은 원상복귀되고, 반대로 심정수가 엄청난 활약을 매년 이어가면서 끝내 트레이드는 현대의 완승으로 끝났다. 물론 애초부터 정치적 목적에 따른 트레이드라 손익을 논하기도 뭐하고, 트레이드로 상처를 입은 두 선수와 팬들만 피해자로 남은 셈.
각 선수들의 우동수 트리오 해체 이후 행보는 다음과 같다.
3.5.1. 타이론 우즈
2001시즌에도 타출장 .291/.402/.571 OPS .973 34홈런 113타점으로 맹타를 휘두르며 두산의 6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탰지만, 2002시즌에는 타출장 .256/.339/.499 OPS .838 25홈런 82타점으로 우즈답지 않은 성적으로 한국 무대에서의 커리어 로우를 찍었다. 당시 우즈의 부진에 관해서 이른바 '우즈존'이라고 불리는 한국 심판들의 외국인 선수를 향한 텃세와 구단 프런트의 안일한 대처가 겹쳐서 태업을 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우즈의 태업설은 우즈가 2003시즌부터 일본프로야구로 무대를 옮겨서도 맹타를 휘두르면서 나름대로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지는 중이다.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 합류한 우즈는 2년 연속 40홈런+공동 홈런왕에 오르며 베이스타즈 역사상 최초로 40홈런을 쳐낸 선수로 이름을 남겼고, 2005시즌에는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해 투수에게 유리한 나고야 돔을 홈으로 쓰고도 매해 30개 이상의 홈런포를 뻥뻥 쳐냈다. 특히 47홈런 144타점으로 홈런-타점 2관왕에 오른 2006시즌의 활약이 백미. 무엇보다도 이 때 우즈는 30대 중반을 넘어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일본 투수들을 상대로 밥먹듯이 장타를 쳐냈다.
2008시즌 일본에서의 커리어 로우를 찍고 주니치를 떠났고, 새 팀을 구하지 못하며 자연스럽게 은퇴했다. 그러나 커리어 로우라는 성적이 타출장 .276/.377/.527 OPS .904 35홈런 77타점에, 볼넷도 78개를 골라 리그 1위에 오르는 등 훌륭했다. 저때 나이가 만으로 39세였음을 고려하면 선수 생활의 끝의 끝까지 최고의 모습만 보이고 간 셈이다.
은퇴 후에는 고향인 플로리다로 돌아가 부동산업과 목장 경영을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2022년에는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에 40위로 선정됐으나 두산 구단에서 우즈 측과 연락이 닿지 않아 실제 시상식은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후 한겨레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간략한 수상 소감이 전해졌다.
3.5.2. 김동주
우동수 트리오 해체 이후로도 두산의 원 클럽 맨으로 활약하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비록 2000시즌에 기록한 31홈런이라는 커리어 하이는 넘어서지 못했지만, 꾸준히 3-4-5의 아름다운 슬래시 라인을 유지하며 부동의 4번 타자로 뛰어 '두목곰'이라는 별명도 받았다. KBO리그 통산 성적만 봐도 타출장 슬래시라인이 .309/.405/.514로 아름답다. 비록 잔부상이 많아 통산 1625경기에 출전해 1710안타 273홈런으로 명성에 비해 누적 스탯은 부족하지만, 2000년대 KBO리그 최고의 3루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평가해도 부족함 없는 활약이었다.그러나 빼어난 활약만큼 구설수에도 자주 오르며 선수 생활 말년은 영예롭지 않았다. FA마다 일본 진출을 위해 간을 보면서 두산 구단과 갈등을 빚었고, 간통을 비롯한 사생활 문제와 팀 케미스트리 문제 등으로 평판을 깎아먹었다. 결국 김진욱 감독이 부임한 2012시즌부터는 노쇠화도 겹쳐 반쯤 전력 외 판정을 받아 출전 시간이 급격히 줄었고, 구단과 코치진의 외면 속에 2013시즌 후 쓸쓸히 팀을 떠났다. 팬덤 일각에서 그래도 김동주를 1군에서 계속해서 기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으나 끝내 묻혔고, 두산을 떠난 후 신생팀 kt wiz와의 계약 무산과 그 과정에서의 인터뷰 등으로 재차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두목곰'이라고 불렸던 전적에 비하면 은퇴식도 없이 프로 무대에서 사라지며 정말로 초라하게 현역 생활을 마쳤다.
그래도 은퇴 이후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일들을 해명하거나 과거 두산 선수들과도 나름대로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의혹을 일부 씻었고, 2022년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에 선정됐을 때는 모처럼 구단의 초청을 받아 시상식을 진행하고 두산 홈 팬들로부터 응원가를 듣기도 했다. 물론 간통 등 씻을 수 없는 논란거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3.5.3. 심정수
현대 이적 후 첫 시즌인 2001시즌에는 사구에 얼굴을 맞는 부상으로 107경기 출전에 그치며 타출장 .294/.404/.491 OPS .895 18홈런 70타점을 기록했는데, 좋은 성적임은 분명하나 한창 발전하던 선수가 잠실을 나와 타자에게 유리한 수원 야구장에 왔음에도 이런 성적을 낸 것에 아쉬워하는 반응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트레이드 맞상대였던 심재학이 2001시즌 대폭발해서 더욱 비교가 됐다.그러나 2002시즌, 부상을 털고 돌아온 심정수는 김용달 코치의 조언에 따라 타격폼을 바꿨고, 그 결과 타출장 .321/.404/.643 OPS 1.047 46홈런 119타점이라는 괴물같은 활약으로 일약 리그 최고의 강타자 반열에 올랐다. 심지어 2003시즌에는 타출장 .335/.478/.720 OPS 1.198 53홈런 142타점으로 KBO리그 역사에 남을 만한 단일 시즌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며, 56홈런으로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운 이승엽만 아니었다면 MVP는 따놓은 당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문제는 이러한 전성기가 너무 짧았다는 점. 이미 심정수는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오버트레이닝으로 어깨와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2004시즌을 앞두고 받은 라섹 수술의 부작용으로 야간에 움직이는 물체의 빛이 번져 보이는 후유증을 겪으며 타격 실력이 떨어졌다. 그 탓에 2004시즌 이후 심정수는 3할은 고사하고 2할 8푼도 넘기지 못할 정도로 타격 정확성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심정수에게는 선구안과 파워라는 무기가 있었고, 이를 통해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2004시즌에도 타율은 .256으로 낮았으나 출루율이 .385에 달했고, 홈런도 22개를 쳐내며 나름의 활약을 했다. 이후 FA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심정수는 2005시즌에는 '심봉사'라는 굴욕적인 별명으로 불리는 와중에도 타출장 .275/.402/.501 OPS .903 28홈런 87타점으로 괜찮은 활약을 했지만, 이듬해인 2006시즌에는 참아온 부상이 터지며 끝내 수술을 결심해 시즌 말미에야 복귀했으나 성적은 좋지 않았다. 2007시즌에는 .258의 낮은 타율에도 .381의 출루율과 31개의 홈런으로 역대 최저 타율 홈런왕에 오르는 등 마지막 불꽃을 태웠지만, 이듬해 22경기만 뛰고 또 무릎을 다쳐 시즌을 접더니, 라섹 재수술 후유증으로 두통과 어지럼증이 극심해지며 끝내 33세의 이른 나이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말았다. 더 오랜 시간 KBO를 호령하리라 기대 받은 천재 타자가 부상과 여러 문제로 너무 일찍 커리어를 접은 셈.
은퇴 이후로는 리틀야구 지도자 등으로 활동하다가 야구 공부를 시작하더니, 그대로 미국에 정착해 생활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버지를 따라 야구 선수의 길을 걷고 있는 심종원과 심종현의 뒷바라지에 진력하는 듯.
4. 기록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타수 | 타율 | 안타 | 홈런 | 4사구 | 타점 | 득점 | 장타율 | 출루율 | OPS | |
1998 | OB 베어스 | 1356 | .294 | 399 | 85 | 143 | 265 | 217 | .538 | .320 | .858 | |
1999 | 두산 베어스 | 1333 | .318 | 424 | 87 | 198 | 300 | 231 | .549 | .394 | .954 | |
2000 | 1402 | .319 | 448 | 99 | 226 | 308 | 244 | .587 | .411 | .988 |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제일 절정에 달했던 2000년. 통합 OPS가 무려 .988이다.[7] 게다가 전원이 타출장 3-4-5를 찍었다!
여기서 개인별 성적을 비교하자면
- 타이론 우즈 :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타수 | 타율 | 안타 | 홈런 | 볼넷 | 타점 | 득점 | 장타율 | 출루율 | OPS | wRC+ |
1998 | OB 베어스 | 452 | .305 | 138 | 42 (1위) | 65 | 103 (1위) | 77 | .619 (2위) | .394 | 1.013 (4위) | 181.2 (1위) |
1999 | 두산 베어스 | 454 | .297 | 135 | 34 | 83 (3위) | 101 | 90 | .566 | .406 | .972 | 146.1 |
2000 | 479 | .315 | 151 | 39 (2위) | 77 (5위) | 111 (2위) | 91 | .605 (3위) | .414 | 1.020 (3위) | 166.6 (3위) |
- 김동주 :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타수 | 타율 | 안타 | 홈런 | 볼넷 | 타점 | 득점 | 장타율 | 출루율 | OPS | wRC+ |
1998 | OB 베어스 | 457 | .265 | 121 | 24 | 29 | 89 | 69 | .473 | .310 | .783 | 111.8 |
1999 | 두산 베어스 | 399 | .321 | 128 | 22 | 41 | 84 | 62 | .564 | .394 | .958 | 144.7 |
2000 | 469 | .339 (2위) | 159 (3위) | 31 | 51 | 106 (4위) | 78 | .603 | .414 | 1.017 (4위) | 168.2 (1위) |
- 심정수 :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타수 | 타율 | 안타 | 홈런 | 볼넷 | 타점 | 득점 | 장타율 | 출루율 | OPS | wRC+ |
1998 | OB 베어스 | 477 | .294 | 140 | 19 | 34 | 73 | 71 | .491 | .346 | .836 | 133.2 |
1999 | 두산 베어스 | 480 | .335 (5위) | 161 | 31 | 53 | 110 (5위) | 79 | .606 | .408 | 1.014 (5위) | 158.7 (4위) |
2000 | 454 | .304 | 138 | 29 | 69 | 91 | 75 | .551 | .400 | .951 | 149.9 |
5. 위상
최전성기이자 마지막 시즌이던 2000년 시즌에는 무려 99홈런을 합작해내었다.
이 때문에 두산을 비롯한 여러 팀 팬들에게 회자되는 클린업 트리오이기도 하다.
이 3명은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의 "우타 거포 계보"에 3명 모두 이름을 올렸다.[8] 다만 김동주를 제외하고 시상식을 진행하기가 영 힘든데, 그 이유는 심정수와 우즈는 미국에 있기 때문. 김동주는 사생활 관련 문제로 현재까지도 계속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다 구단과의 갈등도 있어서 힘들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간신히 시상식을 진행했다.
5.1. VS 이마양 떡밥
또한 가르시아가 위의 추정치 대로 성적을 냈다고 쳐도 우동수, 이마양 6명 중 누구와도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성적이 한참 떨어지기 때문에 우동수나 이마양과 같은 급으로 치는 야구팬들은 거의 없다.[9] 사실 클린업이라는 관념 때문에 3-4-5번 타자를 묶어서 그렇지, 같은 10롯데에서도 가르시아를 빼고 조성환을 넣어 2-3-4번 트리오로 묶는 것이 더 나을 지경. 2010년 롯데의 클린업은 1년 전 두산의 김현수-김동주-최준석 정도. 3, 4번에 비해 5번이 어느 정도 뒤쳐지는 것도 비슷하다.[10]
따라서 대부분의 야구팬들은 이마양과 VS를 시키는 경우가 많다. 우동수가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쪽은 대구 탁구장 드립을 쳤고, 이마양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쪽은 세이버 스탯을 파고들면 잠실 구장 크기와 상관없이 우동수가 훨씬 처진다고 보고 있다.# 사실 활약한 시기가 엇비슷하지만 또 약간 다르기 때문에[11] 단순한 1차 스탯으로는 비교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런 논쟁은 통계를 조금 더 들여다본다면 똑같은 결론으로 끝난다.
위의 클린업 세명이서 wRC+ 186.2를 기록하며 리그 WAR 1,2,3위를 차지하면서 발롱도르 득표 1,2,3위를 차지한 축구의 오렌지 삼총사와 다름없는 맹활약을 펼쳤다. 다만 저런 좋은 성적을 가지고도 우승을 못했다(...).[12] 이외에 93과 97 삼성도 해태 때문에 우승을 못했다.
6. 여담
- 상당히 센 타선이었는데 우승 경험이 한 번도 없다. 사실 포스트시즌은 우동수가 활동할 때 계속 진출했지만 우승 운이 없었다. 1998년에는 1998 KBO 준플레이오프에서 LG 트윈스한테 피스윕, 1999년에는 1999 KBO 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한테 피스윕, 2000년에는 2000년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는데 만난 팀이 사기 캐릭터였다.
중요한 건 위 팀들은 전부 당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대신 세 명 모두 우승 경력은 존재한다.[13]
7. 관련 문서
[1] 당시만 해도 김동주는 늘씬한 체형의 호타준족 유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프로로 오고 나서 체중을 늘리며 3루수로 정착했지만, 유격수 보던 경력 어디 안가서 체구에 비해 날렵한 수비를 선보이기로 유명했다.[2] 이 시즌 김동주가 기록한 희생플라이 13개는 KBO 역대 최다 기록이다.[3] 당시 현대가 얼마나 사기 캐릭터였냐 하면 박경완, 박재홍, 박진만, 전준호, 이숭용, 정민태 등의 삼청태현 레전드가 같은 시기에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다. 한 팀에서 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만 5명이나 나왔고(박종호, 박진만, 박재홍, 박경완, 임선동), 이중 백미는 정민태, 임선동, 김수경의 1~3선발이 18승으로 공동 다승왕을 차지한 것. 괜히 00현대라 불리며 KBO 역대 최강의 팀중 하나로 꼽히는 게 아니다.[4] 트레이드 시점에서의 누적 WAR은 심정수 20.82, 심재학 16.56(투수 경력 포함시 16.58)으로 심정수가 4나 높았다. 세이버 스탯이 없던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더라도 심재학의 성적이 정체된 와중에 심정수의 성적은 계속해서 발전세를 보이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심정수가 3살이나 젊었다. 밸런스가 맞을래야 맞을 수 없는 트레이드였다.[5] 이러한 두산 프런트의 대처는 과거 OB 베어스 항명파동때도 그렇고, 2010년대에 들어서도 임태훈의 송지선 아나운서 관련 사건, 이성열-오재일 트레이드, 윤석민-장민석 트레이드, 진야곱 불법도박, 최규순 게이트 등 구단 프런트의 삽질마다 반복되며 팬들을 답답하게 했다.[6] 좌타-우타 지그재그 배치로 심재학이 4번 타자, 김동주가 5번 타자로 출장한 적도 있었기에 우재주 트리오라는 명칭이 붙었다.[7] 사실 우즈와 김동주 둘 다 OPS가 10할이 넘어갔는데 심정수 혼자 9할대라 그렇게 나왔다. 심정수 혼자 OPS 9할인 건 연초 선수협 사태에 참여한 것과 관련있을 듯. 심정수가 준비만 잘 했어도 통합OPS가 10할이 넘는 전무후무한 클린업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8] 나머지 한 명은 장종훈.[9] 남의 팀 클린업과 비교할 것도 없이 99년 롯데의 박정태-마해영-펠릭스 호세 클린업이 홍대갈 보다 더 뛰어나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이쪽은 박정태의 홈런 갯수가 달릴뿐, 호세와 마해영의 성적은 우동수, 이마양과 비교해도 충분히 훌륭한 스탯이다. 호세가 도핑 의혹이 있다는게 흠이지만(...)[10] 실제로 09 김현수는 10 홍성흔에 홈런과 타점은 뒤졌지만 타율과 OPS는 더 나은 성적을 거뒀고, 09 김동주는 10 이대호의 임팩트보단 못해도 OPS 1위와 타율 4위를 기록하는 등 리그 최고의 베테랑 타자였으며, 09 최준석은 홈런을 제외한 거의 모든 스탯에서 10 가르시아를 압도적으로 눌렀다. 이대호의 7관왕의 업적은 물론 대단한 일이나 클린업의 라인업은 이마양과 함께 최고의 클린업으로 거론되는 10년 전의 OB/두산 클린업은 커녕 1년 전 두산에조차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수준이다.[11] 우동수는 98년~00년까지, 이마양은 02년~03년간 있었고, 양자간 겹치는 해가 없다.[12] 정규리그에서는 압도적인 1위였으나 한국시리즈에서 해태를 만나면서...[13] 김동주와 우즈는 우동수가 해체된 이듬해인 2001년에 우승했고, 심정수는 이미 1995년에 우승 경험이 있었고 현대-삼성 시절에 4번이나 우승을 더 했다. 2001년 두산은 우동학 트리오로 우승.[14] 그러나 김상수는 2018년 데뷔 첫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하고 2019, 2020년에 더 업그레이드된 타격을 선보이면서 재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