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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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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례
2.1. 실제 사례
2.1.1. 국가2.1.2. 정치/정당2.1.3. 기업/브랜드2.1.4. 스포츠 구단2.1.5. 대회2.1.6. 인터넷/웹사이트2.1.7. 방송 채널2.1.8. 항공기2.1.9. 기타
2.2. 가상 사례
3. 관련 문서

1. 개요

/ succession

무언가를 다른 존재로부터 물려받거나 이어받는다는 뜻. 주로 높은 자에게서 낮은 위치에 있는 자가 물려받거나, 자식부모에게서 뭔가를 물려받는다는 의미이다.

워크래프트 3 아서스 메네실은 아버지를 살해해 강제로 왕위를 계승하여 큰 임팩트를 주었다. "왕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아버지"(Succeeding you father)라는 명대사(?)가 생겼다.

역사에서 계승 문제는 상당히 미묘하다. 게르만족의 유산을 계승한 프로이센 왕국이나 로마를 계승했다고 주장하던 국가들처럼 복잡한 문제가 많다. 국가승계 문서 참고.

2.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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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실제 사례

  • 함선
    해군의 역사가 깊을수록 함선의 세대교체가 누적되기 때문에 신형함의 함명을 퇴역한 구세대 함선의 함명으로 명명하여 계승하는 일이 굉장히 많다.

2.1.1.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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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승계는 이전 국가의 영토와 국민을 계승(할 것을 표방)해도 정체(政體)와 이념이 달라진 경우를, 본 단락에서는 주로 국가의 물적 기반은 좀 달라져도 정체와 이념을 계승하는 사례를 적는다.

2.1.2. 정치/정당

2.1.3. 기업/브랜드

2.1.4. 스포츠 구단

2.1.5. 대회

2.1.6. 인터넷/웹사이트

2.1.7. 방송 채널

2.1.8. 항공기


※번외

2.1.9. 기타

2.2. 가상 사례

3. 관련 문서


[1] 한국사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정체성이 여몽전쟁까지 남아 있던 것으로 추정되고 그에 따라서 지배층의 정체성에 따라서 국호가 다분화되었다. 하지만 삼국의 계승 자체는 남북국시대통일 신라부터 이후에 건국되는 모든 국가가 계승해 왔을 뿐더러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고조선의 후예라는 점과 대한이라는 국호 자체가 삼한이 합쳐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은 고구려, 백제, 신라를 국호로도 계승하는 국가이다.[2] 고조선의 구지를 점령한데다 그 자리를 중심지로 삼긴 했지만 이는 고조선이 멸망한지도 이미 수백 년이 지난 뒤에 한사군을 정복하는 과정을 거치며 이루어졌던 것이기 때문에 국시로써 딱히 고조선에 대한 계승을 표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민들의 묘지명 등을 통해 옛 고조선의 문화와 주민들을 계승했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고 확인되며, 이는 한사군 기간 내내 소수의 중국인 지배층 치하에서 고조선 유민들이 토착문화를 이어가며 고조선에 대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 또한 확인시켜 준다. 고고학상으로도 고구려는 한사군 정복 이전인 졸본성을 수도로 삼았던 극초창기부터 소수의 부여 유이민의 지배층과 다수의 고조선계 주민들이 융합되면서 탄생한 국가였다는 게 확인된다. 그럼에도 국가적 차원에서 고조선에 대한 계승을 표방했는가를 보면 여전히 모호하다.[3] 나중에 발해를 정복하게 되는 거란족의 요나라요동지역을 고조선의 구지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요동지방을 점유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 인식이 있었을 것이라고는 추정된다. 당나라의 빈공과에도 합격생을 낼 정도로 지식이 풍부했던 발해 사회였기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신으로 여겼던 만큼 그와 관련된 옛 기록 등을 확인해봤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발해 정부의 입장에서 정확히 어떤 식으로 인식했는지에 대해 내려오는 자료는 없다.[4] 고조선 유민들의 이동으로 세워진 마한 정복을 통해 간접 계승. 특히 준왕 직계인 건마국을 흡수했고 백제 말기에는 그 준왕의 자손이라 지칭된 인물들(답본춘초, 답본양춘)도 등장한다. 다만 역시 국가 차원에서 직접 고조선에 대한 계승을 표방한 기록은 없다.[5] 삼국 중 유일하게 건국신화에 고조선 유민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며 고조선 유민들의 이동으로 세워진 진한 정복을 통한 간접 계승 관계에 해당한다. 다만 여타 삼국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계승을 표방한 기록은 없다.[6] 이상 삼국의 성립과 발전과정에 있어서 고조선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고 삼국도 그 존재를 알고 있긴 했으나 삼국이 직접적으로 고조선에 대한 계승을 명시했는가의 여부는 모호하다.[7] 역사지식이 크게 확장된 시대였고, 특히 이 시대에 유교-성리학적 사관의 도입을 통해 고조선, 부여, 삼한, 삼국 등 모든 국가들의 계승에 대한 관념을 체계화하고 정리하였다.[8] 고조선의 본래 국호는 당연히 그냥 '조선' 이었으며, 조선의 태조 이성계와 사대부층이 국호를 조선으로 정한 것도 모든 한반도 국가들의 정통성을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로는 결국 단군이 세운 고조선이 나오니, 이 예로부터 내려온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걸 내세운다는 의미에서 국호도 그대로 따온 것이다(찬탈자인 위만 왕조는 정통성이 없다고 보아 배제). 물론 국호를 바꾸었다고 해서 고려 왕조에 대한 계승을 부정한 건 절대로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고조선에서 막바로 조선 왕조로 넘어간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선대 왕조인 고려 왕조가 총망라해 놓은 정통성과 역사관을 그대로 승계한 게 바로 조선 왕조였다는 게 조선 왕조의 공식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고려 왕조에서 조선 왕조로의 이행은 국가와 정부는 그대로인데 왕실과 주도권을 잡은 멤버들만 교체된 과정이었덩 만큼 실질적으로도 조선은 고려라는 국가가 그대로 이어진 형태였으며, 이에 조선 정부의 공식입장도 우왕창왕은 정통성이 없는 가짜 왕이니 공민왕공양왕으로 이어진 정통성을 태조 이성계가 그대로 승계했다는 것이었다. 별도로 정치이념의 경우 조선 왕조는 특히 고려 성종 치세의 관념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 성종이 꿈꿨던 유교적 이상 국가 건설은 훗날 유교국가인 조선의 건국으로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도 성종은 유교에 입각한 정치가 높이 평가받아 명군으로 여겨졌다. 정작 유교적 사관에서 벗어난 오늘날에는 성종이 부정적으로 재평가받고 있기도 하지만⋯.[9] 앞의 내용을 줄인 것을 세종대왕의 문답으로 줄인다면, 이조 판서 허조(許稠)가 계하기를, "제사를 지내는 것은 공을 보답하는 것입니다. 우리 왕조(王朝)의 전장(典章)·문물(文物)은 신라의 제도를 증감(增減)했으니, 다만 신라 시조에게 제사 지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삼국이 정립(鼎立) 대치(對峙)하여 서로 막상막하(莫上莫下)였으니, 이것을 버리고 저것만 취할 수는 없다." 하였다. 세종실록 35권, 세종 9년 3월 13일 신축 1번째기사[10] 고구려의 부여에 대한 인식 문제를 떠나서 결국 아예 부여 및 그 후신인 동부여도 정복했고 당연히 자신들이 그 유산도 흡수했다고 여겼다. 백제에선 그닥 인정하지 않은 것 같지만.[11] 삼한 지역에는 이미 토착민들이 소국을 이루고 있었으나 고조선의 후퇴 및 멸망에 따른 그 유민의 이동이라는 충격으로 더 발전된 연맹체제가 성립되었다.[12] 현대 사학, 고고학상 마한은 백제로 이어진 게 명백히 확인되고 당대 백제인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나 삼한=삼국을 뜻하게 되면서 변한이 백제, 마한이 고구려로 이어졌다는 인식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단순히 후대의 오류가 아니라 고구려가 백제의 수도 한성을 정복하고 경기도 일대도 흡수한 뒤 마한연맹 전체도 정복한 걸로 스스로 여겼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생겼다는 설도 있다. 삼한을 삼국에 등치시킬 때 정설대로 백제를 마한의 자리에 놓는 경우 대충 빈 자리를 채워넣는 식으로 변한이 고구려로 이어졌다고 보았다.[13]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에게 찬탈당한 뒤 남하하여 세웠으며 마한연맹의 맹주가 되었다.[14] 본토가 그리스인 데다가 수백 년 동안 페르시아 제국을 적대해 왔고 헬레니즘 문화를 계승했다.[15] 다만 현재는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국명을 바꾸면서 더 이상 마케도니아 왕국과 헬레니즘 제국의 후신을 칭하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는 북마케도니아 정부 얘기고 북마케도니아 국민들은 여전히 자국을 마케도니아 왕국과 헬레니즘 제국의 후신으로 여기고 있지만...[16] 라틴족의 그리스 지배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애초에 십자군 전쟁을 주도한 이들이 라틴 문화권 세력이다.[17] 오스만 제국발칸반도를 정복하기 전까지는 지배층이 튀르크계였으며 문화적으로도 중앙아시아 튀르크 문화의 영향이 매우 강했지만, 그리스를 포함한 발칸반도 국가들을 정복한 이후에는 발칸반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특히 동로마 제국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이러다 보니 오스만 제국 전성기에는 오스만 제국의 그리스계 주민들과 튀르크계 주민들이 서로를 그저 언어(그리스어, 튀르키예어)와 종교(기독교, 이슬람)로만 구별하면서 섞여 살았다. 그로 인해 오늘날에는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문화에서 한중일 뺨치는 엄청난 유사점이 생겨났으며, DNA상으로도 그리스인들과 튀르키예인들은(특히 크레타 섬, 서트라키아, 키프로스의 그리스인들과 동트라키아, 아나톨리아 반도 서부 연안, 북키프로스의 튀르키예인들)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18] 엄밀히 말하면 계승이 아니라 동로마 제국이 곧 로마 제국의 동부였다.[19] 다만 사보이아 백국의 핵심 영토 가운데 사부아프랑스계, 피에몬테이탈리아계였기 때문에 이탈리아계 국가프랑스계 국가에 걸쳐 있었다.[20] 사르데냐 왕국의 본체는 사르데냐가 아니라 토리노가 있는 피에몬테였다. 1815년 이후에는 아예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Regno di Sardegna-Piemonte)으로 국호까지 변경했다.[21] 네덜란드 오라녀나사우 왕조의 지배를 받은 프랑스어권 국가라는 점이 비슷하다.[22] 프로이센 왕국의 본체는 프로이센 공국이 아니라 베를린이 있는 브란덴부르크였다. 호엔촐레른 가문 국왕들도 본인들이 브란덴부르크를 계승했다고 여겼다.[23] 옛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가 결국 나치 독일소련에 의해 멸망했다.[24] 러시아계 국가가 폴란드를 지배하면서 폴란드만의 독자적인 모습을 없애고 자신들에게 종속시키려고 한 점이 비슷하다(전자는 자치권 박탈 이후 직접 통치, 후자는 독립국으로 놔두되 위성국으로 만듦으로써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25] 혈통적 측면에서. 무굴 제국 황실이 티무르 제국 아미르 가문의 후손이었다.[26] 영토 및 문화적 측면에서. 우즈베크족은 티무르 제국을 멸망시켜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땅을 차지한 후 티무르 제국 유민들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이것이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문화의 모태가 되었다.[27] 수도가 캔디였던 왕국[28] 이란 최초의 시아파 왕조이며, 부와이 왕조가 멸망하고 훗날 후술할 사파비 제국이 세워질 때까지 이란은 계속 수니파 문화권으로 남게 되었다.[29] 사파비 제국은 비록 고대 페르시아와 종교는 다르지만 중동의 이슬람교 주류 종파인 수니파를 버리고 시아파로 개종했을 뿐더러 고대 페르시아의 샤한샤 칭호를 부활시켰기 때문에 오늘날의 아랍권 지역과 구별되는 이란만의 정체성을 고대 페르시아 시절만큼 확실하게 구축한 왕조인 셈이다.[30] 타지키스탄은 이란과 같은 페르시아권이라서 언어, 문화적으로 이란과 거의 비슷하지만 이란과 달리 수니파 문화권으로 남아있다.[31] 지금은 이슬람 문화에 패배하여 극소수 이집트인들 사이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콥트 문화는 토착 이집트 문화에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문화와 로마 제국의 라틴 문화,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들어온 기독교 문화가 더해져 형성되었다.[32] 시조인 메흐메드 알리콥트어 부흥 운동 등 다른 아랍권과 차별화되는 이집트만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33] 위의 무하마드 알리와는 정반대로 콥트 문화를 탄압하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구하였다. 그 결과는 참담했지만...[34] 볼리비아 국민들 중 케추아족은 잉카 제국 계승 의식이 강하고 아이마라족은 아이마라 왕국 계승 의식이 강하다.[35] 통일민주당에서 3당 합당에 반대해서 분당된 정당[36] 물론 이들은 통합진보당에 흡수되었다. 하지만 일부는 진보신당 출신과 합쳐서 시민통합당을 결성했다.[37] 기후민생당이 법적 후신이긴 하나, 현재 이 정당은 그냥 제3지대 정당이라고 봐도 무방하며, 당내 인력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새로운미래 등으로 흩어지면서 사라졌다.[38] 정의당인 경우는 정신적 후신이기도 한다. 다만 리버럴이 섞여들어가서 노동중심성에서 멀어졌다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리버럴 계열이 서서히 이탈하고, 특히 2024년 정의당 분당 이후 리버럴 계열과 제3지대 계열이 당에서 대규모로 나가고 NL 계열과 PD 계열만 대부분 남고 산별노조와 연대하면서 노동중심성에서 멀어졌단 비판이 사라지게 되었다.[39] 법적 후신이자 정신적 후신이다.[40] 국민파 내부의 사회적 합의주의에 반대해서 2020년부터는 완전히 독자 노선으로 가고 있다.[41] 내일로미래로가 법적 후신이지만, 직능자영업당, 신한반도평화체제당와 합당하면서 우익 빅텐트 정당이 되었다.[42] CA의 후신이다. 물론 21세기 진보학생연합 시절부터 정파성은 이미 희석된 상태다.[43] 진보신당연대회의 시절 합당했고 바로 노동당으로 개명했다.[44] 노동당 당시에는 신좌파당원회의[45] 한식 요식업 브랜드로서의 계승을 말하며, 비비고 제품만 단종되지 않았다.[46] 미국 프로팀이 연고이전을 할 때 리그 당국에서 공식적으로 옮겨간 팀을 신생팀 취급하고 원 연고지의 프랜차이즈 계승을 인정해 준 사례들이다.[47] 팀 결성 당시 멤버 6명 중 절반이 BK Stars 출신 멤버고, 팀이 만들어진 계기를 살펴본다면 정신적 계승 팀으로 봐도 무방하다.[48] 선수들이 런던 창단 멤버가 되어서 그렇지, C9 콩두와 부산 팀 자체는 런던 창단 이후 각각 콩두 판테라블라썸이 되었으므로 공식적 후신이 따로 있다. 특히 신 콩두 판테라는 OWCK 시즌 2에서 준우승을 하여 런던과는 별개로 구 콩두 판테라-C9 콩두의 후신으로 인정받았다.[49] 2018년에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팀이 된 후, 부산의 스폰을 받은 후 옛 GC Busan과 마찬가지로 오픈 디비전 우승 직후 컨텐더스에 진출하며 옛 부산의 팬층 일부를 이어받았다. 옛 GC Busan은 상술했듯 공식적인 후신이 따로 있지만 그 팀의 성적이 좋지 않아서 선수단은 런던이, 명칭과 연고는 웨이브가 계승한 양상이 되었다. 2022년 12월에 열린 오버워치 2 레전드 배틀에서도 GC Busan 로스터는 옛 부산과 웨이브의 멤버들로 구성되었다.[50] GC 부산 웨이브의 공식적인 후신은 인트로 웨이브이지만, 2020년 4월 웨이브의 로스터 해산 이후 인트로 웨이브로 바뀌는 과정에서 팀 성격이 크게 달라진 관계로 기존 웨이브의 보드진이 독립하고 옛 웨이브 출신 멤버들 일부가 합류하여 6월에 창단한 TDI가 옛 웨이브를 계승한 팀으로 대우를 받는다. 한편 동년 5월에 해체된 Meta Athena 선수들도 대부분 TDI의 창단 멤버로 합류했으나, TDI를 메타 아테나의 후신으로는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51] 구성원 중 일부는 동일인물로 야갤러 일부가 일베를 차렸다.[52] 현재의 종합 커뮤니티가 아닌 디지털 카메라 전문 커뮤니티였던 본래의 성향을 계승했다.[53]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 이후 대다수 문서들이 나무위키로 계승됐다.[54] 메갈리아 내부의 성소수자 배척세력이 따로 살림을 차린 곳이 바로 워마드다. 그래서 TIRF 등도 있었던 구 메갈리아와 달리 워마드는 아예 TERF가 주류가 되었다.[55] 성 관련 막장 사이트란 소라넷의 성향을 계승했다. 결국 해당 사이트도 폐쇄되었다.[56] 정치적 사회적 성향을 계승했다.[57] 동아방송은 라디오 방송, 채널A는 TV방송인 점이 다르지만, 동아일보는 채널A가 동아방송을 계승한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58] 2004년에 중단된 iTV의 TV방송은 2007년에 OBS경인TV가 개국하면서 계승되었다.[59] 투니버스가 애니채널에서 어린이 채널로 바뀐 후에는 애니플러스가 후속이 되었지만, 전자는 한국어판 더빙 방송을 하였고 동양그룹이 자발적으로 개국한 채널이라면, 후자는 자막 방송을 하며, 제이제이미디어웍스가 C&그룹의 경제/자격증채널인 생활경제TV를 인수해서 개국한 채널이다.[60] 이 경우 2개 다 국가가 아닌 국제기구이므로 여기에 서술.[61] 일본 오락실의 전일기록 오프라인 집계 부문 한정. 아케이드 게임 종합지라는 정체성은 이 시점에서 끝.[62] 아바투르의 경우, 저그가 다른 종족과의 공존하고 단일화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사라 케리건의 방침을 따르는 자가라와 달리 저그가 살육병기와 도구로 진화하는 것을 추구하는 초월체와 정신체의 방침을 따르는 데 살육병기와 도구로서의 저그를 추구하는 아바투르가 정작 능동적으로 움직였는 점이 있다.[63] 계획만 하다가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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