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15 17:38:47

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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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황태자/녀
2.1. 동아시아2.2. 서구권
3. 왕세자/녀4. 나무위키에 문서가 존재하는 황태자·왕세자들5. 현존하는 세계 각국의 왕위 계승자들

1. 개요

太子/女
Crown Prince/Crown princess

황제나 동아시아 고대 의 자식 중 서열 1위이자 향후 군주의 자리를 계승할 예정자를 이르는 말.

황제의 친왕[1]/공주일 경우에는 황태자/녀라고 불리고, 왕자, 공주일 경우에는 왕태자/녀라고 부르지만, "왕태자/녀"는 현대 관점에서 어색한 면이 많다. 왜냐면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 속한 국가는 한중일+베트남이 전부이며, 거기다가 일본은 왕실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왕태자"라는 칭호는 중국의 춘추전국 ~ 한, 한국의 고대 삼국 ~ 고려, 구한 말을 빼면 거의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자 혹은 세자라 축약해 부르는 것이 흔하다. 중국은 한나라까지는 제후국 왕자에게도 왕태자라고 했다.[2]

여자일 경우 '황태녀', '왕태녀', '왕세녀'라고도 한다.[3] 중국 당나라 시기, 측천무후의 딸 태평공주와 손녀 안락공주가 황태녀에 오르려 했으나 실패한 바 있다. 스웨덴에서는 바뀐 왕위 계승의 법칙에 따라, 국왕 칼 16세 구스타프의 맏이인 빅토리아 잉그리드 알리스 데시리에 공주가 왕세녀로 책봉되었다.

홍콩 MTR태자역이 있다. 여기서 태자는 에드워드 8세를 말하는데 영어 역명에만 에드워드가 써 있고 중국어 역명은 그냥 태자(太子)다.

별칭으로 동궁(東宮)[4] , 춘궁(春宮)[5], 저궁(儲宮), 저군(儲君), 저사(儲嗣) 등이 있었으며, 세자위를 저위(儲位)라 했다.

2. 황태자/녀

皇太子/女
王太子/女

황태자는 황제국에서 황제의 뒤를 이을 황자/황녀. 차기 제위(帝位) 계승자.[6] 본래 중국에서 사용하던 용어이다. 경칭은 제후국의 왕과 같은 전하.

왕태자는 동아시아 고대, 중세의 왕국의 왕위를 이을 왕자/왕녀. 특히, 외왕내제 체제에서 사용된 예가 있지만, 중세 이후에는 조공책봉외교를 기본으로 했기 때문에, 용어자체가 사멸되었다.

한국의 경우 고조선부터 고려 중기까지 왕태자를 사용하다가 고려 후기 원나라 간섭기에 왕세자로 격하되었다. 그 칭호가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다가 고종 32년(1895) 임금의 칭호가 대군주로 바뀔 때 함께 왕태자로 복귀되었고, 광무 원년(1897년) 칭제를 하며 황태자로 고쳤다가 13년만에 대한제국경술국치로 멸망하면서 황제위를 잃고 이왕으로 격하되어 왕자에 대한 칭호도 다시 이왕세자로 격하되었다.

다만, 왕태자는 사용된 시기가 중세까지 및 고종 재위 중 잠깐이라 현대에는 거의 역사적인 용어, 친숙하지 않은 용어다. 실제로 지금도 왕이 남아 있는 입헌군주국의 차기 국왕이 될 후계자의 작위를 번안할 때, 황태자란 용어를 썼으면 썼지 왕태자란 용어는 잘 쓰이지 않는다.

그나마 왕세녀는 절대적 맏이 계승법이 적용되는 현대 입헌국주국 왕실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반면,[7] 현재 존재하는 유일한 황실인 일본 황실은 여성 천황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존하는 황태녀는 없다. 하지만 일본 황실의 남성 후손이 전멸할 위기에 놓였기 때문에, 황실 전범이 근미래에 개정되어 황태녀가 등장할 가능성은 있다.

2.1. 동아시아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고려 그리고 조선 말에 잠깐 쓰인 기록이 있으나, 곧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태자로 바꿨기 때문에, 용어 자체가 낯설 수밖에 없다. 격 자체는 황태자 쪽이 높다. 왜냐면, 중국에서 역사적으로 왕이란 지위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격을 높인 게 황제이고, 이 개념이 그대로 우리나라에 수입되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태조 왕건이나 기타 고려 초기를 다루는 드라마에서도 나오지만 고려 초기엔 모든 왕자들이 너도 나도 태자라 불려서 왕위 계승자는 맏아들이라는 뜻의 정윤(正胤)이라 따로 불렀다 한다. 고려사, 고려사절요 기록 상 혜종, 경종, 성종 세 사람이 정윤에 봉해졌다.

조선에서 세자와 대군, 군이 같은 왕의 아들이어도 존칭은 엄밀히 구분한 것과 달리[8], 중국이나 일본에서 황태자의 형제인 친왕은 태자와 동급인 전하라고 불린다. 갑오개혁 이후로 임금의 칭호가 대군주로 바뀌어 왕실 호칭이 격상되어서인지 왕태자뿐만이 아니라 왕족에게도 전하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독립신문의 기록을 보면 고종대한제국을 선포하기 이전인데도 불구하고 의화군(의친왕)과 흥선대원군을 가리켜 전하라고 한 기록들이 존재한다.[9][10]

일본에서 군주가 왕인 경우, 왕(여왕)-황태자-왕자로 기묘하게 번역한다. 일본식 작위개념으로 왕/여왕덴노의 증손이나 황실의 일원에게 부여되는 호칭이다.[11] 따라서 이런 식으로 번역하는 경우 뭔가 족보가 꼬여버리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번역한다. 일본발 번역물이나, 일본계 서브컬쳐를 그대로 옮긴 국내 서적이나 간행물에서도 이런 경우가 종종 보이긴 하지만, 국내 언론에서는 왕(여왕)-왕세자-왕자 라고 제대로 번역하는 편이다.

일본 최대 포털인 야후 재팬에서 검색해보면 소설이나 북유럽 왕실[12] 관련 기사에서 많이 쓰는 편이다. 그리고, 룩셈부르크의 차기 공위를 계승할 공자에게는 공세자라는 표현을 쓰며, 경칭은 전하를 쓴다.[13] 그러면서 또, 룩셈부르크 대공에게도 경칭을 전하라고 표기하고 있다. 배우자는 대공비. 사실상 제각각인 서양왕실들을 천황가를 기준으로 맞춘 번역어 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한국의 실정과는 맞지 않는부분이 많으며, 일본어 중역시 주의를 요한다.

2.2. 서구권

동아시아와는 달리 서구권에서는 황태자와 왕세자를 구분하지 않으며 황태자든 왕세자든 모두 crown prince라고 한다. 예외적으로 근대 이후 나폴레옹 1세, 3세와 브라질 황제의 아들이 prince imperial이라는 칭호를 쓴 사례가 있긴 하지만[14] 나폴레옹 이전까지 서유럽의 유일한 황제국이었던 신성 로마 제국의 경우 형식상 선거군주제였기 때문에 황태자라는 자리 자체가 없었다. 신성 로마 제국의 경우 합스부르크 왕조부터 제위 계승자에게 로마왕이라는 칭호를 내리기는 하였다. 비슷하게 동로마 제국에서는 '카이사르'라는 칭호를 내렸다. 이는 사두정치 시기의 부제 칭호인 카이사르에서 유래한 것.

엄밀히 말하면 근대 이전의 유럽에는 태자/세자라는 작위 자체가 없었으며 황제국이든 왕국이든 왕위를 이을 후계자에게는 '웨일스 대공'(영국)이나 '아스투리아스 대공'(스페인), 도팽(프랑스), 오스트리아 대공(이중제국) 등 별도의 작위를 내렸다.

서양의 경우 확정상속인(Heir apparent)과 추정상속인(Heir presumptive)의 구분이 있다. 확정상속인은 그 자신이 확실한 후계자로, 본인이 사망하지 않는 이상 무조건 작위를 이어받는 확정된 지위이다. 예컨대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자처럼 아들 우선 상속법이 시행되는 국가의 왕의 장남 같은 경우.[15] 반대로 추정상속인은 계승법칙 상 1순위인 후계자가 존재하지 않을 때 주어지는 자리로, '일단은' 후계자이지만 우선권이 높은 상속자가 태어날 경우 후계자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순전히 법률적인 의미이기 때문에 우선권이 높은 상속자가 탄생할 실질적인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아들 우선 상속법 기준으로 남자 형제가 없는 군주의 장녀는 잠재적으로 군주의 후계자이다. 그러나 후에 남동생이 태어난다면 남동생이 군주의 새로운 후계자가 된다. 서양에서 지금까지 대부분의 여왕들은 추정상속인 위치에서 왕위를 이어받았다. 현 재위 중인 엘리자베스 2세 또한 마찬가지로 즉위 전까지 왕세녀(Crown Princess)가 아니라 추정상속인이었다.

서양의 확정상속인들은 이에 걸맞는 작위를 부여받는데, 예컨대 유명한 영국 왕세자는 웨일스 공 작위와 콘월 공작 작위 및 로스시 공작 작위[16]를 받는다. 만약 왕세자가 왕세손을 낳은 채 왕보다 먼저 사망하면 왕세손은 왕세자의 뒤를 이어 웨일스 공에 책봉되지만 콘월 공작 작위와 로스시 공작 작위는 받지 못한다. 스페인은 아스투리아스 공과 히로나 공작[17], 비아나 공작[18], 몽블랑 공작 작위 등을 받고, 벨기에는 브라반트 공작, 네덜란드는 오라녜 공을 받는다.

스웨덴덴마크, 노르웨이는 태자 자리(crown prince/ss)가 하나의 작위로 주어진다. 하지만 스웨덴은 전통적으로 베스터고틀란트 공작위를, 덴마크는 몬페차트 백작도 같이 받는다.

사라진 군주정의 예를 보자면 과거 이집트는 태자에게 상 이집트의 공작 작위가 주어졌고 브라질 제국은 그라오 파라 공작 작위를 태자에게 주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은 황태자에게 로마왕 작위를 주었다. 이탈리아 왕국은 샤르데냐 왕국 시절엔 피에몬테 공작위를 주다가 통일 이탈리아 왕국 수립 후엔 나폴리 공작으로 대체했다. 나폴리 왕국시칠리아 왕국의 후계자들은 칼라브리아 공작위를 받았다. 포르투갈 왕국은 1815년에 브라질이 독립하기 전까지 상속자의 작위가 브라질 공작이었다. 브라질 독립 후엔 알가브레 공작을 줬다. 포르투갈 상속자의 장자에게는 베이라 공작이 주어졌다. 불가리나는 투르노보 공작, 루마니아는 알바 율리아 공작 작위를 줬다.

근대 그리스 왕국의 태자는 디아도코스(Διάδοχος)라고 불렸는데 그냥 상속자라는 뜻이며, 디아도코이의 단수형이다. 요르요스 1세가 태자 콘스탄티노스 1세에게 스파르타 공작이라는 작위를 만들어주었지만 귀족 작위를 허용하지 않는 헌법과 충돌된다는 이유로 의회가 반발하였다. 나중에 의회의 승인을 받기는 했지만 이후 사용이 중단되었다. 그래서 스파르타 공작이라는 칭호를 쓴 태자는 콘스탄티노스 1세 딱 1명뿐이다.

요약하자면 나라별 태자/태녀에 대한 호칭은 다음과 같다.

3. 왕세자/녀

王世子/女

의 뒤를 이을 왕자. 왕녀. 차기 왕위(王位) 계승자.

세자 칭호는 4세기 중후반에 제작된 칠지도, 5세기 초반에 제작된 광개토왕비문에 세자 칭호가 보이나 문제점은 한국의 삼국사기, 삼국유사나 일본의 일본서기, 속일본기 등에는 백제에서 세자(왕세자) 칭호가 사용된 기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일본 역사학자 모리 키미유키, 하마다 고사쿠의 주장으론 당시 백제가 동진과 책봉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본래 백제에서 사용하던 태자 칭호를 세자로 고쳤을 것으로 추측하는 견해가 있는 것을 보아 해당 기록들이 백제에서 세자 칭호를 사용한 근거가 되지는 않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광개토왕비문의 세자 칭호를 근거로 세자 칭호가 사용되거나 태자와 세자가 혼용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저 세자 칭호가 5세기 당대에 사용된 용어라 장담할 수 없고 (왜냐면 고구려는 국초부터 유기(留記)라는 역사서를 편찬했기 때문에 거기에 쓰여진 고구려 초기 기록대로 세자라고 호칭했을 가능성이 있다) 애당초 저 기록도 광개토왕비문이 국내 사람만이 아닌 중국이나 외국 사신들도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책봉 관계를 고려해서 일부러 세자로 고쳤을 가능성이 있다. 5세기 중반에 제작된 중원 고구려비에는 왕의 아들을 태자라 호칭하고 있는데 여기서 태자 공은 문자명왕이 아니라 장수왕의 다른 아들로 보이기 때문에 왕의 적장자가 아닌 다른 아들에게 태자 칭호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삼국시대에는 세자 칭호가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에선 차기 왕위 계승자를 동궁(東宮), 춘궁(春宮)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왕세자가 기거하던 세자궁이 왕궁을 기준으로 동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대중에게 친숙하진 않지만 저궁(儲宮), 저군(儲君), 저사(儲嗣)라고도 했으며, 그래서 세자위(世子位)를 저위(儲位)라고 했다.
관련 명칭으로 동생이 왕위를 이을 후계자로 지명되면 왕세제라 했다. 왕세손은 세자의 적장자로서 세손위를 받은 자에 대한 호칭이다. 원손 책봉 후 일정 나이가 되어 세손 책봉을 받아야만 세손이라 한다. 경칭은 '저하(邸下)'와 마마. 그리고 마노라의 격이 낮아지기 전에는 마노라(말루하) 라고 불렀다고 한다. 근대를 거쳐 현대에는 "마누라"가 평범한 남편들이 아내를 부르는 표현의 하나가 되어 버렸는데, 이는 관직명칭인 영감, 양반 등이 속된 표현으로 되어버린 현상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원래 고려 중기까지는 외왕내제였기에 왕태자라는 칭호를 썼는데, 고려 후기 원나라 간섭기에 왕세자로 격하되었다.[22] 그 칭호가 조선 시대까지 이어지다가 고종 32년(1895) 왕태자로 복귀되었고 다시 광무 원년(1897)에 황태자로 고쳤다가 대한제국경술국치로 멸망하면서 황제위를 잃고 이왕으로 격하되어 왕자에 대한 칭호도 다시 이왕세자로 격하되었다. 그러다 보니 서양에서 왕위를 계승할 왕자를 부르는 명칭인 'Crown Prince'를 번역할 때면 왕세자라고 할 때도 있고 황태자라고 하기도 하는 등 왔다갔다한다.

원래 세자는 중국 왕조에서 친왕의 뒤를 잇는 정식 후계자의 봉작이다. 그렇기에 원래 세자의 정실 역시 세자빈이 아닌 세자비(妃)였다. 중국은 황제의 정실을 황후(后)로 하고, 황태자의 정실과 다음 가는 후궁을 비(妃)라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은 살아있는 중궁이 왕비(妃)였기에[23] 어쩔 수 없이 그 다음 가는 봉작이 빈(嬪)이 되다보니 발생한 현상이다.

유교 사회에서의 적장자 계승원칙으로 인해, 특별한 경우[24]가 아니라면 보통 적장자(嫡長子)[25]가 세자가 되어 왕위를 잇는 것이 보통이다. 기본적으로 적장자>적자>장자 순이다. 그리고 왕이 이 순서에 가까울수록 정통성도 아주 높아진다. 그 때문에 장남이 요절하면 차남이 대부분 다음 계승권자가 된다. 물론 임금이 특정 왕자를 총애하여 세자로 삼겠다고 나오면 태어난 순서 따위… 유교적인 원리에 충실해서 죽은 태자의 맏아들(왕에게는 맏손자)을 태손으로 봉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서양의 경우에도 맏손자의 경우 갓난아기, 심지어 뱃속에 있는 태아[26]한테도 철저하게 왕위를 물려줬다. 대습상속[27]이 전세계적으로 보편화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명한 사례가 정조. 참고로 말하자면, 그런데 엄격히 말해 정조도 사도세자의 장남이 아니다. 형인 의소세손이 3살 때 죽으면서 차남이었던 그가 사실상의 장남이 된 것.[28]

조선 때는 세자가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한데 임금이 승하하여 그 뒤를 잇게 된다면, 새로운 왕의 직계존속 중 왕비 중에서 서열이 제일 높으신 분이 수렴청정을 하였다(왕의 할머니나 왕의 어머니).[29] 그 외 동아시아에서 보편적으로는 섭정을 하는 케이스가 제법 된다.

임금이 병으로 누워서 정사를 돌볼 수 없거나, 외국원정 또는 특정 사업에 올인하기 위해, 또는 차기 국왕 수업의 일환이나 퇴위 전 인수인계 그것도 아니면 정치하기 귀찮아서 등을 이유로 세자가 임금을 대리하여 정사를 돌보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 대리청정이라고 한다.

조선의 경우 호위는 1418년(태종 18년), 그 해 2월 세자가 된 (세종)의 안위를 위해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을 설치하여 담당하게 했다. 계방(桂坊)이라고도 불렀다.

세자의 생활은 거의 육군사관학교 생도를 방불케 할 정도로 엄격하다. 아침 기상시간과 저녁 취침시간이 아예 정해져 있으며 일정수준의 학문과 무예를 주기적으로 갈고 닦게 했다. 이 엄격한 훈련을 거쳐서 조선의 임금으로 즉위한다. 물론 수렴청정을 하게 되면 이러한 훈육과정은 없다.

대개 원자가 8~9세가 되면 책봉하곤 했는데 인종의 경우에는 남곤의 주청으로 예외적으로 이른 6세에 책봉이 되었고 조선 후대에 가면서 왕자 복이 귀해져서 곧잘 세자로 책봉되곤 했다. 경종, 사도세자, 순종황제 등이 대표적이다. 연산군은 "중국은 왕자가 태어나면 바로 태자로 책봉하는데, 왜 우리나란 8~9세는 되어야 책봉하느냐??"라고 예조에 묻기도 했는데, 예조에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조(禮曹)가 아뢰기를,

“세자를 8~9세에 책봉하는 것이 어찌 일정한 규정이 있겠습니까? 중국 조정의 일은 또한 알 수가 없습니다만 지금의 황제께서 태자(太子)를 책봉하는 조칙(詔勅)에 ‘조정에 있는 신하들이 태자를 일찍 세우도록 청하므로 여러 사람들의 권유에 못 이겨서 책봉한다.’ 하였습니다. 우리 조정에서는 나이 8~9세가 되기를 기다려 책봉하는 것은 생각건대 반드시 성립(成立)하여 행례(行禮)를 감내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참작하고서 책봉한다는 것인 듯합니다. 또 책봉의 예절도 또한 어려운 것이 아니며, 다만 책명(冊名)만 받을 뿐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세자를 일찍 세우는 것만 같지 못한데, 만약 일찍 세워려고 한다면 책봉(冊封)에 관한 여러 가지의 일은 준비할 수가 있겠는가?”

하매, 예조가 아뢰기를,

“만약 성명(成命)이 있다면, 봉책에 관한 모든 일은 1개월 안에 준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4. 나무위키에 문서가 존재하는 황태자·왕세자들

5. 현존하는 세계 각국의 왕위 계승자들

5.1. 유럽

5.2. 아프리카

  • 모로코: 물레이 하산
  • 에스와티니: 여긴 왕이 아니라 리코도라 불리는 모임에서 왕을 뽑아 후계자가 없다. 근데도 왕위세습국가보다 더한 후진국이다.
  • 레소토: 레로톨리 시이소

5.3. 아시아

5.4. 오세아니아



[1] 황제의 아들[2] 황제라는 게 없는 주나라에서는 왕의 아들이 당연히 태자지만, 왕뿐만 아니라 오등작 귀족의 계승자도 태자라고 했다.[3] '자' 자의 본래 뜻 상 여자라도 황태자 왕세자라고 해도 문제는 없다.[4] 보통 태자궁은 궁궐의 동쪽에 지어졌기 때문.[5] 고려시대 태자궁의 이름은 여기서 따온 수춘궁이었다.[6] 일본은 황태자도 친왕이지만 중국한국에서는 황태자는 친왕이 아니므로 주의.[7] 그럼 과거의 여왕/여제들은 다 뭐냐 하면, '만약 남동생이 안 태어난 채로 왕이 죽으면 얘가 다음 왕이다' 식으로 비공식적인 추정상속인 신분으로 왕위에 오른 것이다.[8] 세자는 저하, 마마가 모두 허락되었으나 이외의 왕자는 모두 대감이었다. 이들을 절대 마마라 부르면 안된다.[9] 네이버 지식백과 독립신문 1897년 1월 9일 토요일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326172&cid=51385&categoryId=51385[10] 네이버 지식백과 1897년 7월 31일 토요일 독립신문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326265&cid=51385&categoryId=51385[11] 1947년 제정된 황실전범에 따라 덴노의 손자/손녀까지는 친왕/내친왕, 증손자/증손녀부터는 왕/여왕이라 한다. 단 1947년 이전에는 4대손까지를 친왕/내친왕, 5대손부터를 왕/여왕이라 불렀다고.[12]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13] 일본에는 저하라는 표현이 없다.[14] 다만 이들은 근대의 혁명이나 전쟁으로 인해 탄생한 황제들로서 그 이전의 봉건적인 군주들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15] 영국은 2015년부터 계승 법칙이 절대적 맏이 상속법으로 바뀌었지만 윌리엄 왕자의 항렬까지는 구법이 적용된다. 그런데 찰스 왕세자는 모든 자녀들 중에서 맏이인지라, 신법을 대입해 봐도 확정상속인 지위에 흔들림이 없다.[16] 스코틀랜드 왕위 후계자의 작위.[17] 아라곤 왕국의 후계자 작위.[18] 나바르 왕국 후계자 작위.[19] 스코틀랜드 왕위 후계자의 작위.[20] 아라곤 왕국의 후계자 작위.[21] 나바르 왕국 후계자 작위.[22] 이 때 모든 칭호를 한 단계 낮게 바꿨다. 그렇기에 후(后)는 비(妃)로, 비는 빈(嬪)으로, 태(太)는 대(大)나 세(世)로 교체했다. 즉, 왕후는 왕비, 대왕태후는 대왕대비, 태자는 세자라 했다. 대군, 군 등의 작위들 역시 (公), (侯) 등의 작위를 사용할 수 없으니 격을 낮추어 만든 것이다.[23] 사후에는 왕후(王后).[24] 임해군처럼 엄청난 막장일 경우[25] 정실부인의 장남[26] 남자로 태어나는 조건으로[27] 상속자가 사망할 때 직계비속이 상속하는 것.[28] 물론 정조의소세손이 죽은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생전에 차남 취급을 받은 적은 없었다고 봐도 된다.[29] 단 왕의 할머니나 어머니라 해도, 후궁수렴청정을 할 수 없었다. 정실인 대왕대비/대비만이 수렴청정을 할 수 있었다. 또 군주의 어머니와 큰어머니가 있으면 큰어머니가 더 서열이 높겠지만 어머니가 수렴청정 한다[30] 만 2살 때 왕세자가 되어 68년째 왕세자 신분이다.[31] 나루히토의 동생, 공식적으로는 '황태자'가 아니라 '황사(皇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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