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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이탈리아 제2의 도시. 롬바르디아의 중심도시로, 롬바르디아 평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강이 이 도시를 흐르고 있다. 밀라노는 국제, 다국적 도시로도 평가되는데, 인구의 15%가 외국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로마가 이탈리아의 정치수도라면, 밀라노는 이탈리아의 경제수도라 할 정도로 이탈리아 최대의 경제 중심지이다.[5] 런던, 파리, 마드리드에 이은 유럽 4대 경제 도시이자 토리노, 제노바와 함께 이탈리아 산업 트라이앵글로 묶인다.
밀라노의 포르타 누오바 지구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지역으로 유니크레딧 타워를 비롯해 고층 건물들이 빌딩 숲을 이루고 있다.[6]
이탈리아의 중앙 주식 시장, 주요 은행의 본점, 여러 대기업의 본사가 집중되어 있으며, 시 외곽에서 시작되어 북쪽 알프스산맥을 따라 기계, 섬유, 의약, 자동차 등 분야의 수많은 공장이 분포하여, 유럽에서는 독일 다음으로 큰 제조업 산업 단지를 구성하고 있어 이탈리아 제조산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경제의 중심지이면서 매우 유서 깊은 도시로 많은 문화재와 문화 시설이 있어 관광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밀라노 대성당, 라스칼라 극장이 특히 유명하며,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다. 1906년 세계 박람회를 이 도시에서 개최했으며 2015년 등록박람회를 개최하였다.
또한 밀라노는 세계 패션과 디자인의 중심지이기도 하며 유명 패션 및 명품 브랜드의 본사와 패션/디자인 박람회가 집중되어 있다.[7] 매년 열리는 밀라노 패션 위크는 세계 4대 패션 위크에 들 정도로 규모가 크다.
2. 역사
최초에는 켈트족의 한 일파인 인수브레스족이 기원전 600년경 건설했던 도시이다. 도시를 건설한 사람은,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에 따르면 갈리아의 왕 암비카투스가 보낸, 암비카투스 왕의 조카 벨로베수스로, 벨로베수스가 무리를 이끌고 와서 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로마 공화정 시절인, 기원전 222년 당시 집정관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칼부스가 군대를 이끌고 인수브레스족을 제압하고 로마가 점령하면서 로마의 통치를 받게 됐다. 이때 도시를 지배하던 인수브레스 족의 성주가 로마를 따르겠다고 하면서, 로마에게 자치권을 얻고 실질적인 이탈리아 동맹도시로 변모하게 된다. 그러면서 도시 이름 역시 메디올라눔(평야 한복판)이라는 라틴식 이름을 붙여지게 됐다.2.1. 서로마 제국의 수도
제정 시대가 된 뒤, 도시의 위치 특성상 알프스 산맥과 가깝고 갈리아 지방과도 인접해 있어,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양아들로 후일 2대 황제가 되는 티베리우스가 젊은 시절 밀라노와 그 근처의 포 강 유역 마을에 머무르면서, 게르마니아 전쟁을 후방에서 준비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 후 북부 이탈리아의 중심지로 꾸준히 발전하면서, 도시가 규모가 커지게 됐다. 그러다가 기원후 286년,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서로마 제국의 수도로 삼았다. 313년에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이곳에서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는데, 이는 그리스도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중요 선언이다. 밀라노는 402년에 라벤나로 수도가 옮겨질 때까지 서로마 제국의 수도였다.2.2. 중세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밀라노는 오도아케르의 지배를 받다가 곧 동고트 왕국에 흡수되었고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고토 수복 전쟁으로 다시금 로마 제국의 품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뒤어어 들어온 랑고바르드족이 세운 랑고바르드 왕국에 의해 569년경 다시금 함락되어 랑고바르드 왕국의 주요 도시로 기능한다. 이후 774년에 카롤루스가 랑고바르드 왕국을 정복하면서 밀라노는 프랑크 왕국에게 항복하고,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서기 961년에 오토 1세에 의해 롬바르디아 지방과 리구리아 지방을 한데 묶은 제노바 변경백령이 창설되었다. 그 뒤에는 에스테 가문[8] 아래에서 1183년 코무네가 성립되었고, 산업, 문화적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1395년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에 의해 밀라노 공국으로 격상되었다.
국제 외교에도 꽤 영향력을 끼쳤는데, 북유럽에서 이탈리아로 내려오는 길목에 있는 중요 도시인 베로나와 밀라노 중 베로나가 당시 이탈리아 제1의 대국으로 여겨졌던 베네치아 공화국에 편입되면서 이탈리아를 차지하려는 유럽 세력[9]들이 이탈리아로 내려가기 전에 반드시 거쳐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산업적으로 융성했음에도 불구하고 16세기 이후부터는 여러 외세에 의해 지배받게 되었다.
2.2.1. 스포르차 가문
1447년 밀라노 공작 필리포 마리아 비스콘티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암브로시아 공화국이 들어서자 이웃한 사보이아 공국의 루도비코가 밀라노를 노렸으나, 곧 용병대장 출신인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필리포의 딸 마리아 비앙카 비스콘티와 결혼하여 암브로시아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다시 군주정으로 회귀했다. 1499년 밀라노 공국의 계승권을 주장한 프랑스가 밀라노를 침공하여 처음에는 프랑스가 밀라노를 합병해 프랑스령 북이탈리아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곧 오스트리아의 반격으로 스포르차 가문이 복귀했다.2.2.2. 경제적 번영
1493년에 묘사된 밀라노 모습
경제적으로는 12세기에는 서양 갑옷을 만드는 산업이 번성했는데 밀라노제 갑옷은 당시부터 최상품으로 대우받았다. 그리고 이 시기에 관개가 시작되어 농업에 기여했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롬바르디아 평원을 비옥하게 만들었다.
13~14세기에 양털 무역이 번성하여 15세기에는 비단 생산으로 이어져 번성하였다. 16세기에는 베네치아나 피렌체처럼 사치품의 생산이 발달하고 중시되어 국제적 명성을 떨친다. 그런 전통 때문인지 모르지만 오늘날의 밀라노는 세계 패션의 중심지이다. 기업 1만 2천여 개, 전시장 8백여 개소, 의류매장 6천여 개소가 있다.
2.3. 중근세
1535년 스포르차 가문의 마지막 공작 프란체스코 2세가 사망하면서 밀라노 공국은 카를 5세를 거쳐 아들인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에게 상속되었다. 1714년까지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로 합스부르크 제국이 밀라노를 획득했다. 근세에 들어서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점령당했다.[10] 1815년에는 다시 오스트리아 제국[11]령이 되었고, 오스트리아 황제가 국왕을 겸하는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에서 독일어 명칭인 마일란트로 불리며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았다.2.4. 근대
1848년에는 혁명 분위기에 힘입어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으로 편입하려는 독립 운동을 일으켰으나 국왕 카를로 알베르토가 오스트리아 제국군 사령관 요제프 라데츠키에게 패배하며 좌절되었고, 11년 뒤 벌어진 이탈리아 통일 전쟁으로 1859년 빌라프란카 조약이 체결되어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영토로 합병되었다. 1861년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이 이탈리아 왕국을 선언하면서 롬바르디아의 주도가 되었다.19세기 중반에 베네치아와 철도로 연결되고 19세기 후반에는 스위스와 철도로 연결되면서 각종 물자가 오고가며 산업이 발전하게 된다.
1906년 이탈리아 최초의 세계 엑스포가 밀라노에서 개최되면서 발전된 도시의 위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20세기 초중반, 밀라노는 사회주의자와 파시스트들이 격렬하게 다투는 곳이었으며 2차 대전 때는 연합군의 주요 폭격 타겟 도시였다. 이탈리아가 연합국에 항복한 이후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하자 반 파시즘 레시스텐자들이 밀라노를 기점으로 활약했으며 이들에 의해 붙잡혀 처형당한 무솔리니의 시체가 밀라노 모레토 광장에 걸리기도 했다.
2.5. 현대
2차 대전 이후 50-60년대에 걸쳐 이탈리아는 공업 국가로 발전하며 일명 일 붐(Il Boom)이라 불리는 경기 호황을 누린다. 이 중심에는 밀라노-토리노-제노바로 구성되는 이탈리아 경제 삼각지대가 있었고 낙후된 이탈리아 남부에서 수많은 인구가 일자리를 찾아 이주해왔다. 50년대 후반부터 밀라노에는 100m가 넘는 마천루가 세워지기 시작한다.60년대 말부터 70년대에는 정치, 사회적 혼란으로 나타난 극좌와 극우의 테러리즘(납의 시대)으로 고난을 겪었는데 폰타나 광장 폭탄테러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에 대한 후일담은 훗날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극작가 다리오 포에 의해 희곡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80년대에는 밀라노 중산층 젊은이들의 파니나로(Paninaro) 패션[12]과 라이프스타일이 크게 유행하였다. 이들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던 펫 샵 보이즈는 Paninaro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80년대에 이탈리아 경제가 다시 호황을 맞자 밀라노 다 베레(Milano Da Bere)라고 불리는 소비주의, 쾌락 추구, 부를 과시하는 향토가 유행하면서 명품 패션 산업이 탄력을 받았다. 이러한 물질주의 풍조는 부정행위, 뇌물이라는 부작용을 낳아 이탈리아의 정치적 타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80년대 이탈리아 경제 호황기의 상징물로 남은 주류 광고. '마시는 밀라노'라는 카피 문구가 크게 히트했다.
2020년 2월에는 코로나19가 이 지역을 위시한 이탈리아 북부를 강타, 롬바르디아 주 전역에서 1만여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였다. 중앙 정부에선 해당 지역을 3월 8일부로 봉쇄하는 등 고강도 조치를 했지만 만시지탄의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9년 가을에 인접 지역의 오폐수에서 코로나19가 검출되는 등 첫 판정자 등장 이전에도 이 지역이 코로나19에 오염되어 있었음이 드러난바 이는 밀라노를 위시한 롬바르디아주 지역에 중국에서 온 노동자의 영향이 컸다는 추측이다. 거기다가 솅겐 조약으로 인하여 중앙 정부가 중국착발 항공기의 취항을 금지한 것도 소용 없어서 중국발 외국인이 제3국을 거쳐서 들어오는 등의 실상과 롬바르디아주에 독감이 유행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는 등 상황을 수배 악화시켰다.
2021년 1월 19일부터 밀라노시가 옥외 흡연을 제한하는 정책 시행에 들어갔다.#
3. 지리와 주민 구성
밀라노는 이탈리아의 북쪽 끝에서 약간 서쪽으로 치우쳐 자리하였다. 북쪽으로 스위스가 가깝다. 밀라노는 이탈리아 북부의 롬바르디아 평원에 위치하는데, 바로 위에 알프스 산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밀라노는 전체적으로 지형이 평평하다.밀라노는 온난 습윤 기후[13]를 띤다. 최난월 평균기온은 7월의 23.6℃이고 최한월 평균기온은 1월의 2.5℃이다.[14] 여름은 덥고 겨울은 비교적 따뜻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연 평균 기온은 13℃로 대략 대전광역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일조량은 연간 1900시간 정도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타 도시로부터 이주민이 늘어났다. 1970년대까지는 이탈리아 다른 지역, 특히 가난한 농촌 지역의 사람들이 밀라노로 이주했다. 이런 이주 붐은 50년대와 60년대의 이탈리아 경제 성장과 맞물린다. 급속한 공업화에 따른 고속 성장이 있었고, 주로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이탈리아 남부 농촌 지역에서 약 40만 명이 밀라노로 몰려들었다.
1980년부터는 동유럽, 북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로부터의 이민이 크게 늘었다. 현재 밀라노 이민자의 출신 국가는 필리핀이 3만 3753명으로 1위, 이집트가 2만 8666명으로 2위, 중국이 1만 8918명으로 3위다. 그밖에 페루, 에콰도르 등의 중남미와 루마니아 등의 발칸반도 동쪽에 위치한 국가 출신 이민자도 상당수 있다.
유럽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밀라노도 도심 공동화를 겪는 바람에, 1970년대 초반 이후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다만 2010년 들어서는 인구 감소세가 안정화한 듯 보인다.
종교는 이탈리아가 다 그렇듯 가톨릭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밀라노 사람들을 밀라네제(Milanese)라고 부른다. 파리지앵이나 뉴요커 비슷한 식.
3.1. 인구
자세한 내용은 밀라노/인구 문서 참고하십시오.4. 경제와 산업
▲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조사한 밀라노 광역 도시권의 경제 규모 및 산업 구조(2014년 기준).
밀라노는 현대 이탈리아의 중요한 경제 도시인데, 중세 중반에도 잘 나가던 부자 도시였다. 알프스산맥에서 발원하는 비옥한 포 강 유역의 평야(롬바르디아 평야)와 알프스로부터의 무역로가 되는 바람에 무역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경제 부흥을 이루어 산업이 발달하고 도시의 재건축도 이루어지고 인구도 크게 증가하는 등의 번영이 있었다. 1980년대에 밀라노의 몇몇 패션 샵들이 국제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밀라노는 세계 패션의 중심지로 인정받게 된다. 프라다, 몽클레르, 발렌티노, 마르니, 아르마니, 베르사체, 돌체 앤 가바나, 에트로, 보테가 베네타 등이 밀라노에 본사를 두고있는 명품 패션 업체들이다.
밀라노는 패션으로 유명하지만, 물론 패션 산업만 있지는 않다. 로마가 이탈리아의 정치적 수도라면, 밀라노는 경제적 중심지이다. 밀라노는 이탈리아 전체 GDP의 9%를 차지하는 도시로서 다국적 은행/금융회사의 본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터넷 분야도 발달해서, 구글, 라이코스, 야후! 등의 지사가 로마가 아닌 밀라노에 있을 정도다. 여러 방송사나 미디어 기업들의 본사들도 있다.
이탈리아 최대 건설 회사인 위빌드(Webuild)의 본사가 있다. 전세계 건설 회사 순위에서 10위권 중하위 정도로 현대엔지니어링과는 근소하게 살짝 낮고 삼성엔지니어링 보다는 높다.
제조업에서는 자동차 산업에 강하다. 알파 로메오[15], 타이어 회사 피렐리가 주목할 만한 회사다.[16] 또, 세계 1위 아이웨어 회사 룩소티카, 세계 1위 전선 케이블 회사인 프리즈미안(Prysmian) 본사가 있다.
그밖에 화학, 기계, 제약과 건강산업 및 엔지니어링이 발달했다. 은행업과 금융업도 발달해서, 유니크레딧을 비롯한 이탈리아의 주요 은행 그룹 및 외국계 은행의 거점이 밀라노에 있다. 밀라노 증권 거래소 또한 이탈리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관광 산업 또한 밀라노의 중요한 경제 활동. 매년 200만 명에 조금 못 미치는 관광객이 방문한다.
2015 밀라노 엑스포로 인해 도시 재개발이 진행되기도 했다.#
브렉시트의 여파로 2019년부터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다국적 금융업계 종사자들이 밀라노로 이주해오고 있어 밀라노 고급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5. 교통
밀라노는 남유럽의 교통 거점이고, 이탈리아 철도망의 중요 거점이다. 밀라노의 5개의 철도역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붐비는 축에 속한다. 2009년 말에는 2개의 고속철도가 개통되어 로마, 나폴리, 토리노로 연결된다.공항은 2개(말펜사, 리나테)가 있는데, 이 중 바레세에 있는 말펜사 국제공항은 대륙 간 노선을 전담하는 국제공항으로 이탈리아 2위의 승객수를 보인다. 2010년 승객 수 1900만 명. 당연히 인천국제공항에서는 말펜사로 가는 여객기만 있으며, 대한항공만 취항하고 있다. 대한항공이 인천-말펜사-로마 노선에 주 3회 취항하고 있으며 로마행의 중간 기착지였으나, 최근 밀라노 엑스포를 계기로 인천-말펜사 직항이 분리되어 개통되었다. 시내에 인접한 리나테 공항은 국내선 및 EU 역내 노선만이 취항한다. 이외에 인접한 베르가모에 소재한 오리오 알 세리오 공항 또한 라이언에어 등 저가 항공사에서 '밀라노 베르가모' 명칭으로 홍보하고 있다. 베르가모 공항은 거리 자체는 말펜사와 비슷한 정도이나 직통 철도가 있는 말펜사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지며, 2013년 한 공항 랭킹에서 필리핀 마닐라의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 다음으로 최악의 공항(...)에 선정되는 굴욕을 안았다. 다행히도(?) 2019년에는 최악의 공항 랭킹에서 빠졌다.[17]
지금은 역할이 줄어들었지만 밀라노 대성당을 건축할 당시에 대량의 대리석을 운반하기 위해 만든 나빌리오 운하가 있었다. 원래는 거리마다 운하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나빌리오 지구를 포함해 일부에만 남아 있다
6. 전시장
7. 관광
이탈리아 어디가 안 그렇겠나만, 밀라노도 관광으로도 잘 알려진 도시다. 2008년에 관광객 191만 명이 방문했는데, 실은 대개가 행사나 전시회에 참석하러 온 것. 일반 관광객들이 볼만한 건 그다지 없는 편이기는 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냥 통과하기도 한다.녹지 비율은 매우 적은 편이지만 공원이 잘 갖춰져 있다. 유명한 셈피오네 공원, 가장 큰 공원인 파르코 포르라니니, 가장 오래된 공원인 지아르디니 퍼블리치 등이 밀라노의 주요 공원이다.
밀라노 두오모. 출처 : 위키피디아
- 두오모(Duomo di Milano)
두오모는 이탈리아어로 성당. 라틴어로 집을 뜻하는 domus에서 유래됐다.
밀라노의 상징이자 사실상 유일한 볼거리. 시내 중심에 있고, 아예 엎으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지하철 이름도 두오모 역이라서 찾기 아주 쉽다. 밀라노 두오모는 1386년에 초석이 놓인 후 장장 500년이 지나 이탈리아 통일이 완료된 후인 1890년이 되어서야 완공되었다. 길이 157m, 너비 92m, 높이 108m로 고딕 양식의 진수를 보여 주는 이 성당의 외부 벽면은 성인들의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모두 3,159체라고 한다. 옥상에 직접 올라가서 그 화려한 조각상 사이를 거닐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 하겠다. 구석구석 정성스러운 조각들이 가득한 거대한 보물덩어리이며, 하늘을 찌르는 듯한 135개의 탑 꼭대기가 성인의 상으로 장식되어 있어 신비한 느낌을 주는데 이 광경은 옥상에 올라가야만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그 많은 조각 중 어느 것 하나 같은 형태의 조각이 없으니 정말 대단한 열정이다. 거대한 삼각형 모양의 전면 파사드(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는 고딕·르네상스·신고전주의 양식이 혼합되어 있어 아주 독창적인 형태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성당에 비해 새로운 느낌을 준다. 내부 입장은 2015년 밀라노 엑스포 이후로 유료이며, 고딕 양식의 성당답게 수많은 스테인드 글라스가 반겨준다. 매표소는 두오모 옆 건물에 있으며 이 건물은 밀라노 왕궁(Palazzo Reale di Milano)으로 일부는 밀라노 두오모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참고로 광장에서 비둘기 모이나 팔찌를 공짜로 준다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많다. 절대 받지 말자. 나중에 돈을 요구한다. 밀라노 대성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그중 가장 악질은 끈쟁이들이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 II)
이탈리아어로 Galleria(갈레리아)는 "두 건물 사이의 천장이 존재하는 보행자용 길"이라는 뜻으로, 이탈리아에는 여러 갈레리아가 있지만[18] 밀라노에 있는 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가 가장 유명하다. 두오모 바로 옆에 있으며, 지하철 두오모 역이 엄밀히는 이곳에 있다. 두오모 상점가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개선문의 형상을 한 장엄한 모양의 5층짜리 아케이드로 된 쇼핑몰로 각종 명품관이 위치하여 있다. 철과 유리로 만든 지붕은 중앙의 유리 돔으로 이어지며, 프레스코로 장식된 루넷과 독수리 상 등으로 장식된 실내 벽면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연출해 낸다. 이렇게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근대적인 신비감이 융합된 느낌은 에펠탑에서 느꼈던 것 이상이었다. 건축가 주세페 멘고니(1829~1877)가 이 쇼핑몰을 설계했는데, 에펠탑이 그랬듯이 건축 당시 역사적인 도시 구조를 파괴한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반대하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밀라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밀라노의 응접실’이 되었다. 바닥의 모자이크 또한 대단히 정교하고 아름답다. 각종 호화 명품매장과 레스토랑, 최고급 호텔이 즐비해 있는데, 가격은 그 비싼 밀라노 물가에서도 호되게 비싼 편. 두오모쪽 반대 방향[19]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석상이 있다. 과거 현재의 쇼핑몰 개념이 없었던 시절, 거리의 로드샵을 실내에 구현하고 싶어서 아케이드 양식으로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호객행위 하는 매춘부와 구걸하는 거지들로 들끓어 매우 더러웠다고...
맥도날드가 여기에 입점하기도 했지만, 갤러리아 격 떨어진다고 쫓겨나서 옆 건물로 이전했다. 이탈리아에서 땅값이 가장 비싸다고 한다.
이름은 이탈리아를 통일한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마지막 국왕이자 초대 이탈리아 왕국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서 유래했다.
- 테아트로 알라 스칼라(스칼라 극장, 스칼라좌)[20]
역사가 오래된 오페라 극장. 모든 불이 켜졌을 땐 황금색으로 빛나는 전경이 매우 고풍스럽게 아름답다. 소리가 가장 울려퍼지기 쉬운 구조로 구상하여 지어졌다고 하며, 지금도 매일~3일에 한 번씩 오페라가 열리고 있다. 좌석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지금까지 상영된 극들의 포스터가 걸려있는데 천천히 보다보면 익숙한 이름도 눈에 띌 것이다. 오페라가 없는 날이나 낮 중에는 박물관으로 개장하고 있으며, 입장료는 6유로. 오페라는 12유로부터 자리가 있는데 가장 싼 것은 꼭대기층에서 봐야하니 일찍 자리잡는 것이 중요하다. 오페라 극장들 중에 가장 극적인 곳이라고 하는데 떼창이 있는건 아니지만 보통 지휘자 입장이나 서곡 종료 주요 아리아가 끝나면 박수를 치고 커튼콜에서 야유로 조지는 다른 극장과는 다르게 여기선 바로바로 반응이 튀어나온다고 한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거장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조차 야유를 견디지 못하고 바로 무대에서 내려오는 돌발행동을 하여 출연금지를 당하였다.[21] 그 덕에 최고라 자부하고 평가받는 오페라 가수들도 스칼라 극장에 선다고 하면 위축된다고 한다.
- 스포르체스코 성
밀라노의 또 다른 상징이다. 밀라노 공국의 초창기 공작가였던 비스콘티 가문의 성이었으며 15세기에 스포르차 가문에서 확장하였다. 성의 외벽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해 1466년에 완성되었다. 웅장하고 위엄 있는 다갈색의 건축물로 성 안에는 고고학 박물관과 스포르체스코 성 미술관, 악기 박물관이 있다. 이 성 역시 세련되고 격조 있어 밀라노 다운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Santa Maria delle Grazie)
두오모에서 약간 멀리 떨어진 구석에 있는 성당.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곳 치고는 겉으로만 보면 정말 아담하고 수수한데, 여기가 유명해진 건 다름 아닌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 성당 안에 있지는 않고 부속 식당에 벽화로 그려져 있다. 유화이기 때문에 보호차원에서 촬영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고, 협소한 공간 때문에 구경인원도 1팀 25명 이내로 제한되어 있다. 때문에 철저한 예약제로 운영된다.[22] 고작(?) 그림 하나 보는데 입장료는 꽤 비싼 편. 당연하지만 식당관 티켓으로 성당 본관도 들어갈 수 있다.뭔가 주객전도가 된 것 같지만 상관없나.[23]
-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과학 기술 전시관
밀라노 서남쪽에 자리한 과학기술관. 이름만 들으면 레오나르도 전용 박물관처럼 보이나 원래 용도는 국립 과학 기술 전시관 쯤에 해당하는 곳이다. 총 3개의 층(지하, 지상, 위층)과 야외전시관으로 구성되는데, 입구가 골목에 있고 출구가 대로에 있는 기묘한 구조. 입장료는 일반 10유로, 학생 7유로이며, 볼만한 곳은 윗층의 레오나르도 전시관[24]과 몇몇 전시관, 그리고 야외의 철도 전시관 정도고 나머지는 어느 나라 과학기술관에 가도 있을 법한 비슷한 것들이라 규모에 비해선 별로 볼 것이 많지 않다.
- 몬테 나폴레오네 거리
두오모의 북동쪽으로 조금만 걸아가면 가 나오는 거리. 패션의 천국인 밀라노 패션의 중심지이며 명품 숍이 즐비한 거리인데, 파리 샹젤리제 거리와 쌍벽을 이루는 곳이다. 밀라노의 대표적인 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 지아니 베르사체, 에트로, 프라다, 돌체앤가바나 등의 숍이 있다.
8. 패션과 디자인
밀라노 하면 뭐니뭐니해도 패션의 본고장. 밀라노 패션 산업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의 주요 명품 브랜드들은 대개 밀라노에 본사를 두고 있다. 프라다, 몽클레르, 보테가 베네타, 에트로, 아르마니, 돌체 앤 가바나, 발렌티노, 베르사체, 에르메네질도 제냐, 보기 밀라노 등이 이런 기업들이다.밀라노가 패션 산업의 도시이다 보니 이탈리아 기업이 아닌 다국적 기업 브랜드들도 밀라노에서 대형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에 본사가 있는 아베크롬비 & 피치가 그러한 예인데, 이런 매장들이 소비자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명소가 되곤 한다. 그리고 시내 곳곳에 다양한 명품 패션 샵이나 백화점 등의 쇼핑가가 있다. 국제 패션 행사인 '밀라노 패션 위크'는 1년에 두 번 열리는데, 세계 패션 업계의 중요 행사다.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밀라노는 고급 가구로도 유명하다. 고가구 및 현대가구 양쪽으로 다 유명하며, 밀라노에서 열리는 밀라노 가구박람회는 가구업계에서 유명한 행사다.
그리고 산업 디자인과 건축 미학에서도 국제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밀라노에서 여러 디자인 관련 행사가 주최되고 있다.
과거에는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던 화파인 밀라노파의 중심지이기도 했으며, 특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여기에서 활동한 것을 계기로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17~18세기에는 보빈을 이용하여 만든 '밀라노 레이스'가 생산되기도 했으며, 주석유약을 입혀 화려한 장식과 인위적 색채를 낸 자기인 '밀라노 파이앙스'가 만들어졌다.
9. 문화와 스포츠
밀라노는 오페라(음악극)와 역사적으로 연관이 깊다. 유명한 오페라 극장인 라 스칼라가 있고, 많은 오페라의 초연이 밀라노에서 공연되곤 했다.밀라노에서 초연된 오페라 중 유명한 것으로는 빈첸초 벨리니의 노르마,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마리아 스투아르다, 주세페 베르디의 나부코, 오텔로, 팔스타프,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 자코모 푸치니의 나비부인, 투란도트 등을 들 수 있다.
이곳을 본거지로 하는 극단인 밀라노 피콜로테아트로 또한 잘 알려져 있다.
라 스칼라, 2005년. 출처: 위키피디아
1951년 이곳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인 밀라노의 기적이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감독으로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막신 나무로 유명한 에르마노 올미가 있다. 본디 베르가모 출신이지만, 밀라노에서 성장기를 보냈다고. 때문에 올미 영화 대부분은 밀라노나 베르가모가 있는 롬바르디아를 배경으로 한다.
고등 교육 분야에서 비교적 강세. 밀라노의 대학생 수가 이탈리아 대학생 수의 10%를 차지하며, 대졸자 수와 대학원생 수에서 있어서는 이탈리아 1위다.
1924년 설립된 대학인 밀라노 대학교가 있으며, 1969년 이탈리아의 대학 입학조건이 완화되면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밀라노 및 인근 지역의 요리는 롬바르디아 요리의 일종으로서 파스타보다는 쌀이 흔히 쓰이고 토마토는 거의 안 쓰이는 특징을 가진다. 비프까스 비슷한 "cotoletta alla milanese"(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제)라는 쇠고기튀김과 오소부코(Ossobuco)라는 쇠고기 정강이살 와인 찜이 유명하다. 밀라노식 살라미와 햄(스페크라든가)이 이탈리아 전역에 널리 퍼져 있고, 특히 밀라노 인근에서 제조되어 왔던 고르곤졸라 치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블루 치즈.
참고로 밀라노에서 오소부코를 먹기는 조금 어려운 편이다. 대부분의 오소부코 취급점은 저녁에만 열고, 정작 찾아가도 부담이 적지 않다. 2012년 중순 기준 1인분에 평균 20유로(저가)~32유로(고가) 선이며, 밀라노식 리조토(사프란 리조토)나 으깬 감자나 옥수수 등이 같이 곁들여진다. 크리스마스에 파네토네를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에서는 축구가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이고, 밀라노에서도 당연히 축구의 인기가 높다. 축구 팬이라면 잘 알겠지만, 밀라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팀을 보유하고 있는데, 챔스 통산 우승 2위 AC 밀란과 이탈리아 클럽 중 유일하게 트레블을 달성한[25]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연고지다. 밀라노는 2개의 유로피안 컵 /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을 유치한 유럽의 유일한 도시며, 유럽에서 가장 큰 운동장 중 하나인 수용인원 8만명의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도 밀라노에 있다. 양쪽 다 자국어식인 Milano가 아닌 영어식인 Milan으로 클럽호칭이 되어있다.
두오모에서 서북쪽으로 나있는 단테 가에 AC밀란 오피셜 스토어와 인테르밀란 오피셜 스토어가 입점하고 있다. 그중 AC밀란은 아예 단테 가 이곳저곳에 AC밀란의 역사를 전시한 간판을 걸어두기도 한다.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26] 출처: 위키피디아
자동차 경주용 트랙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몬차 F1 경기장이 밀라노에 있다. 이곳에서는 F1 경기가 거의 매년 열린다.
올림피아 밀라노라는 이탈리아 농구 강팀의 연고지이다.
연고 배구단으로는 파워발리 밀라노가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배구 리그로 평가받는 이탈리아의 1부 리그, 슈퍼레가[27]에 출전하고 있으며, 근래 플레이오프에도 진출 중인 강팀이다.
2019년 6월 24일 IOC 총회 에서 81표중 47표를 획득해 34표에 그친 스웨덴 스톡홀름-오레를 제치고 202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아이스하키·쇼트트랙·피겨스케이팅은 밀라노에서, 썰매·여자 알파인 스키 등은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열리게 된다. 정확히는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 동계올림픽이다.[28]
자전거 브랜드로 유명한 비앙키가 밀라노에서 시작된 브랜드이다.
2023년에 열리는 세계 펜싱 선수권 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29]. 루카 쿠라톨리 등 이탈리아에도 많은 펜싱 기대주들이 있어 이탈리아 입장에서는 기대해 볼만 하다.
10. 교육
11. 여담
-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한국인 관광객 4명이 캡사이신 성분으로 추측되는 스프레이 테러를 당했다. 8명의 흑인 괴한이 원숭이 소리를 흉내내고 칭챙총, 니하오를 외치며 다가와 스프레이를 뿌리고 금은품을 훔쳐갔다고. # 정작 영사관에서는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식의 대처라 아쉬웠다고 한다.
12. 매체에서 등장
12.1. 이탈리아 영화
-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 - 루키노 비스콘티[32] 감독 / 베네치아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
- 직업(1961) - 에르만노 올미 감독 / 경제 고도성장기 밀라노에서 번듯한 직업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청년에 대한 영화
- 밤(1961) -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 /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 테오레마(1968) -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
- 식인종들(1970) - 릴리아나 카바니[33] 감독 / 그리스 신화 안티고네 이야기를 재해석한 영화. 당시 68혁명 등 서구권의 반문화적 영향이 강한 영화로 밀라노는 길거리에 시체가 나뒹구는 디스토피아로 묘사된다.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맡았는데 음반이 꾸준히 재발매되고 있다.
- 슬랩 더 몬스터 온 페이지 원(1972) -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 /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과 결탁한 언론이 살인 사건을 조작하는 내용의 영화
- 5일(1973) -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 / 1848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밀라노인들의 저항을 다룬 사극으로 감독 필모그래피 통틀어서 호러가 아닌 유일한 영화. 감독 팬들도 이 영화의 존재를 잘 모른다.[34]
- 산 바빌라-8 P.M.(1976) - 카를로 리짜니[35] 감독 / 당시 밀라노 번화가 산 바빌라에서 극우 청년들이 일으킨 살인 사건을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맡았다.
12.2. 게임
12.2.1. 도미네이션즈
- 14레벨의 부두 원정 목적지 중 하나로 등장한다.
[Regione] 레조네[2] Città metropolitana di Milano[Municcipio] 무니치피오[4] Giuseppe Sala[5] 다만 아직까지 로마 광역권의 인구가 밀라노 광역권의 인구보다 많다.[6] 이탈리아는 국토 자체가 유적도 상당히 많고 오래된 건물도 많아서 건축에 제한을 많이 둔 편이라서 드문 편이다. 하지만 밀라노의 경우 경제규모가 워낙 크고 도심 재개발도 상당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드물게 마천루가 많이 세워지고 있다.[7] 그래서인지 한때 섬유 산업이 번창했던 대구광역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8] 분가로 독일의 벨프 가문이 있으며 벨프 가문의 분가인 하노버 가문이 현 영국 왕실의 조상이 된다.[9] 주로 프랑스와 스페인-독일의 황제 세력[10] 이때 베를린에 이어서 나폴레옹이 다시 한 번 영국을 경제적으로 봉쇄시키기 위해 대륙봉쇄령을 선포한 장소가 밀라노이다.[11] 오스트리아 대공국->합스부르크 제국(1526년)->오스트리아 제국(1804년).[12] 몽클레르 패딩과 스톤 아일랜드의 유행.[13] 쾨펜의 기후 구분의 Cfa[14] 위도가 10도 정도 낮은 울산광역시(2.2℃)와 1월 평균 기온이 비슷하다.[15] 줄여서 알파라고 부르며, 영어 철자는 ALFA다.[16] 방패 모양의 패밀리 룩으로 알려져 있는 알파 로메오는 이탈리아 피아트 계열의 자동차 제조 업체며, 피렐리는 세계 최대의 타이어 회사 중 하나다.[17] 주최한 곳이 Sleeping in Airports이고 인터넷 설문 항목이 고작 '전체 만족도'와 '잠자기 좋은 정도' 뿐이어서 진지한 랭킹은 아니다.[18] 나폴리에는 움베르토 1세 갈레리아, 메시나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갈레리아가 있다.[19] 스칼라 극장 방향[20] 구글 맵에선 후자의 이름으로 나온다.[21] 2006년 12월 오페라 아이다에 주역인 라다메스로 출연했던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는 첫 곡을 부르다 야유가 터져나오자 그대로 무대 뒤로 들어가버렸다. 그 때문에 대타인 안토넬로 팔롬비는 의상 입을 새도 없이 청바지차림으로 무대에 뛰어올라가야 했다. 대신 박수갈채는 많이 받았다고. 알라냐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거장으로 프랑스의 국가 행사마다 초청되어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는 성악가다.[22] 예약 없이도 구경할 수는 있으나 예약하고도 남은 빈자리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23] 비슷한 예로 스페인 톨레도의 산토 토메 성당이 있다. 엘 그레코의 걸작인 "오르가즈 공작의 매장"이 성당 입구 벽에 그려져 있고, 나머지는 그냥 별 거 없다. 성당만 볼 경우 무료, 그림을 볼 경우 입장료를 따로 내야 한다.[24] 모조리 사본이지만 레오나르도가 쓴 것을 볼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기록으로만 남긴 기계들의 재현품이 놓여져 있다.[25] 2009-10 시즌[26] AC 밀란의 팬들은 산 시로 라고 부른다. 이 경기장의 이름을 딴 주세페 메아차는 양 밀란에서 모두 뛰긴 했지만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색이 훨씬 짙은 레전드이기 때문이다. AC 밀란에서도 잠시 뛴 적이 있지만 나중에는 결국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 감독까지 역임했다. 엄연히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가 정식 명칭이며 AC 밀란도 정식 명칭으로는 해당 명칭을 사용한다. 산 시로는 해당 지역의 거리 이름일 뿐 실제 경기장 이름과는 거리가 멀다.[27] 이전 명칭은 세리에 A1. 이탈리아 배구 리그의 6부 중 최상위 리그이다.[28] 토리노 때와 마찬가지로 개막식 입장순서에 앙숙인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 끼우지 않고 맨 마지막으로 입장시킨다.[29] 자세한건 이 항목 참조[30] 동문으로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카르도 자코니, 필즈상 수상자 엔리코 봄비에리, 미우치아 프라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자 니노 로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있다.[31]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가 이곳 출신이다.[32] 밀라노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 백작이기도 하다.[33] 샬롯 램플링, 더크 보가드 주연 1974년작 《비엔나 호텔의 야간 배달부》로 유명하며 2023년 베네치아 영화제 평생공로상 수상[34] 평이 나쁘진 않지만 좋지도 않다[35] 50년대엔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르고 80년대엔 베네치아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는 등 존경받는 감독이었는데 2013년, 91세에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