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8 19:46:58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오라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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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ne collega: 동료 없이 단독 선출
황제 겸 집정관 }}}
기원전 100년 기원전 99년 기원전 98년 기원전 97년 기원전 96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티투스 디디우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95년 기원전 94년 기원전 93년 기원전 92년 기원전 91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코엘리우스 칼두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섹스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기원전 90년 기원전 89년 기원전 88년 기원전 87년 기원전 87년 보결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포르키우스 카토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메룰라
기원전 86년 기원전 86년 보결 기원전 85년 기원전 84년 기원전 83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기원전 82년 기원전 81년 기원전 80년 기원전 79년 기원전 78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데쿨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펠릭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이사우리쿠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기원전 77년 기원전 76년 기원전 75년 기원전 74년 기원전 73년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 루쿨루스
마메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리비아누스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기원전 72년 기원전 71년 기원전 70년 기원전 69년 기원전 68년
루키우스 겔리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수라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호르탈루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클로디아누스 그나이우스 아우피디우스 오레스테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크레티쿠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기원전 68년 보결 기원전 67년 기원전 66년 기원전 65년 기원전 65년 보결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마니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푸블리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기원전 64년 기원전 63년 기원전 62년 기원전 61년 기원전 60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마르쿠스 푸피우스 피소 프루기 칼푸르니아누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켈레르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니게르 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
기원전 59년 기원전 58년 기원전 57년 기원전 56년 기원전 55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스핀테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칼푸르니우스 비불루스 아울루스 가비니우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54년 기원전 53년 기원전 52년 기원전 51년 기원전 50년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파울루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푸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스키피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기원전 49년 기원전 48년 기원전 47년 기원전 46년 기원전 45년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퀸투스 푸피우스 칼레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크루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푸블리우스 바티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sine collega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5년 보결 기원전 44년 기원전 44년 보결 기원전 43년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가이우스 비비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아울루스 히르티우스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3년 보결 기원전 42년 기원전 41년 기원전 40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푸블리우스 벤티디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루키우스 안토니우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퀸투스 페디우스 가이우스 카리나스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이사우리쿠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폴리오
기원전 40년 보결 기원전 39년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9년 보결 기원전 38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발부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가이우스 코케이우스 발부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카니디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푸블리우스 알페누스 바루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8년 보결 기원전 37년 기원전 37년 보결 기원전 36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루키우스 겔리우스 포플리콜라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6년 보결 기원전 35년 기원전 35년 보결 기원전 35년 보결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루키우스 코르니피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퀸투스 마르키우스 크리스푸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티투스 페두카이우스
기원전 34년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4년 보결 기원전 33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루키우스 스크리보니우스 리보 가이우스 멤미우스 마르쿠스 헤렌니우스 피켄스 루키우스 볼카티우스 툴루스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기원전 33년 보결
루키우스 아우트로니우스 파이투스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마르쿠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 퀸투스 라로니우스
기원전 32년 기원전 32년 보결 기원전 31년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1년 보결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코르비누스 마르쿠스 티티우스
가이우스 소시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기원전 31년 보결 기원전 30년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기원전 30년 보결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루키우스 사이니우스
기원전 29년 기원전 29년 보결 기원전 28년 기원전 27년 기원전 26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섹스투스 아풀레이우스 포티투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기원전 25년 기원전 24년 기원전 23년 기원전 23년 보결 기원전 22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세스티우스 알바니아누스 퀴리날리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아이세르니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가이우스 노르바누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루키우스 아룬티우스
기원전 21년 기원전 20년 기원전 19년 기원전 19년 보결 기원전 18년
마르쿠스 롤리우스 마르쿠스 아풀레이우스 가이우스 센티우스 사투르니누스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켈리누스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푸블리우스 실리우스 네르바 sine collega 퀸투스 루크레티우스 베스필로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기원전 17년 기원전 16년 기원전 16년 보결 기원전 15년 기원전 14년
가이우스 푸르니우스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리보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프루기
가이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타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우구르
기원전 13년 기원전 12년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2년 보결 기원전 11년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아피아누스 가이우스 발기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카니니우스 레빌루스 퀸투스 아일리우스 투베로
푸블리우스 퀸크틸리우스 바루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 루키우스 볼루시우스 사투르니누스 파울루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기원전 10년 기원전 9년 기원전 8년 기원전 7년 기원전 6년
아프리카누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데키무스 라일리우스 발부스
율루스 안토니우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술피키아누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갈루스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가이우스 안티스티우스 베투스
기원전 5년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5년 보결 기원전 4년 기원전 4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하테리우스 가이우스 칼비시우스 사비누스 가이우스 카일리우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루키우스 비니키우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키우스 파시에누스 루푸스 갈루스 술피키우스
기원전 3년 기원전 2년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기원전 2년 보결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ⅩⅢ 가이우스 푸피우스 게미누스 퀸투스 파브리키우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메살리누스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실바누스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기원전 1년 기원전 1년 보결 연도 불명
코수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 판사 카이트로니아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아울루스 카이키나 세베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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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43년 기원전 435년 기원전 430년 기원전 418년 기원전 403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가이우스 푸리우스 파쿨루스 푸수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불명)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
루키우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 마르쿠스 게가니우스 마케리누스 푸블리우스 피나리우스 (마메르키누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마르쿠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레길렌시스
기원전 393년 기원전 389년 기원전 380년 기원전 378년 기원전 366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마르쿠스 푸리우스 푸수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레길렌시스 스푸리우스 세르빌리우스 프리스쿠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페티쿠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율루스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무길라누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 퀸투스 클로엘리우스 시쿨루스 (포스투미우스 레길렌시스 알비누스)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말루기넨시스 (보결)
기원전 363년 기원전 351년 기원전 340년 기원전 332년 기원전 319년
마르쿠스 파비우스 암부스투스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 임페리오수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카우디누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롱구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메둘리누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퀸투스 푸블릴리우스 필로 (불명)
기원전 318년 기원전 312년 기원전 307년 기원전 304년 기원전 300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크라수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사베리오
가이우스 마이니우스 가이우스 플라우티우스 베녹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 푸블리우스 데키우스 무스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소푸스
기원전 294년 기원전 289년 기원전 283년 기원전 280년 기원전 275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아르비나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구르게스) (불명)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바르바투스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켄소리누스 (스푸리우스 카르빌리우스 막시무스) 퀸투스 카이디키우스 녹투아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파브리키우스 루스키누스
기원전 272년 기원전 269년 기원전 265년 기원전 258년 기원전 253년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프라이텍스타투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블라시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메겔루스
마니우스 쿠리우스 덴타투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켄소리누스 가이우스 두일리우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페라
기원전 252년 기원전 247년 기원전 241년 기원전 236년 기원전 234년
마니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코르비누스 메살라 아울루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아티쿠스 마르쿠스 파비우스 부테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카우디누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소푸스 아울루스 아틸리우스 카이아티누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퀸투스 루타티우스 케르코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불부스
기원전 231년 기원전 230년 기원전 225년 기원전 220년 기원전 214년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베루코수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켄토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 푸블리우스 푸리우스 필루스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페라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
기원전 210년 기원전 209년 기원전 204년 기원전 199년 기원전 194년
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디베스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마르쿠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섹스투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카투스
기원전 189년 기원전 184년 기원전 179년 기원전 174년 기원전 169년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루스쿠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기원전 164년 기원전 159년 기원전 154년 기원전 147년 기원전 142년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코르쿨룸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루푸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루키우스 뭄미우스 아카이쿠스
기원전 136년 기원전 131년 기원전 125년 기원전 120년 기원전 115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발레아리쿠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 또는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달마티쿠스
퀸투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퀸투스 폼페이우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라빌라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프루기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기원전 109년 기원전 108년 기원전 102년 기원전 97년 기원전 92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에부르누스 가이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카프라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게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누미디쿠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89년 기원전 86년 기원전 70년 기원전 65년 기원전 64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클로디아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불명)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루키우스 겔리우스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카피톨리누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기원전 61년 기원전 55년 기원전 50년 기원전 42년 기원전 28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니게르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가이우스 스크리보니우스 쿠리오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이사우리쿠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기원전 22년 기원전 8년 14년 46년 73년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비텔리우스 티투스 카이사르 베스파시아누스 }}}}}}}}}}}}}}}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오라토르
라틴어: Marcus Antonius Orator
생몰년도 기원전 143년 ~ 기원전 87년
출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사망지 로마 공화국 로마
지위 노빌레스
국가 로마 공화국
가족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아버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크레티쿠스(아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아들)
안토니아(딸)
직업 로마 공화정 집정관
로마 공화정 집정관
임기 기원전 99년
전임 가이우스 마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동기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후임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
티투스 디디우스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로마 공화국집정관. 탁월한 웅변술을 발판삼아 로마 정계에서 맹활약한 인물이다. 제2차 삼두정치를 결성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조부다.

2. 생애

헤라클레스의 아들 중 한 명인 안톤을 시조로 삼은 노빌레스 가문인 안토니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는 기원전 5세기 중반에 시빌라 예언서를 관리하고 나라에 긴급한 일이 생길 때 이와 연관된 구절을 찾아본 뒤 원로원에 보고하는 '데켐브리 사크리스 파시운디스(decemviri sacris faciundis: 10명의 신성한 책 관리자)'를 역임한 티투스 안토니우스 메렌다, 기원전 422년 집정 무관을 역임한 퀸투스 안토니우스 메렌다, 기원전 333년 삼니움 전쟁을 치르기 위해 독재관으로 발탁된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루피누스 휘하의 기병장관을 맡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1]를 자신의 역사서에 언급했다. 이렇듯 역사가 오래됐지만 집정관이 한 명도 없었기에, 로마 귀족 사회에서 그들의 지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아버지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라는 이름만 알려졌을 뿐 행적은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에 따르면,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가이우스 라일리우스 사피엔스가 집정관이던 해에 태어난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가 그보다 3살 어렸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그는 기원전 143년에 태어났을 것이다. 유년기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으나, 젊은 시절부터 탁월한 웅변술로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코그노멘으로 쓰인 '오라토르(Orator)'는 웅변가를 의미한다.

키케로에 따르면, 안토니우스는 법학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었지만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기억력이 뛰어나 사전에 치밀하게 짜인 연설을 사람들 앞에서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수려한 웅변을 통해 대중을 설득하는 데 능한 라이벌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와는 달리 제스처 등 비언어적 수단을 통해 대중을 설득했다. 그는 자신의 연설이 책으로 출판될 때 미숙한 면이 많이 노출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출간을 거부했다.

기원전 113년 조영관을 맡아 아시아 속주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브룬디시움으로 이동하던 중 법무관 루키우스 카시우스로부터 근친상간 혐의로 고발당했다. 조영관은 "공공의 필요를 위해 로마를 떠난 사람"으로서 재판을 피할 수 있었지만, 그는 로마로 돌아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속주로 계속 가기로 했다. 그는 재판에서 특유의 웅변술을 발휘해 배심원들을 자기 편으로 끌여들여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1년 후 로마로 돌아온 안토니우스는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킴브리 족과의 전쟁에서 참패해 로마에게 굴욕을 안겨준 혐의로 고발했다. 카르보는 유죄 판결을 받고 막대한 벌금을 내고 추방형에 처해질 위기에 몰리자 독약을 먹고 목숨을 끊었다.

이후 10여 년간 사료에 등장하지 않던 그는 기원전 102년 법무관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이 무렵 중요한 법정 사건을 다루는 대중 연설가로 명성을 날렸으며, 기사계급과 손잡고 그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활동했다. 기사계급과 종종 충돌하곤 했던 파트리키와 노빌레스가 지배하는 원로원은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는지, 원로원은 군대를 지휘한 경험이 딱히 없던 그를 동방으로 보내 킬리키아 해적 토벌을 맡겼다. 하지만 그는 해적 토벌 임무를 잘 수행했고, 킬리키아 해안을 따라 여러 요새를 세워서 속주민들이 해적에게 더 이상 시달리지 않게 했다.

기원전 100년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개선식을 거행한 뒤 집정관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기원전 100년 집정관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정치적 동맹을 맺고 있던 호민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사투르니누스는 이듬해 호민관 선거에 출마하기로 마음먹고, 마리우스가 후계자로 지명한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글라우키아를 당선시키는 대가로 그의 지원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글라우키아는 기원전 100년 12월 10일 집정관 선거에서 낙선했고,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오라토르와 가이우스 멤미우스가 당선되었다. 그러자 사투르니누스의 지지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안토니우스는 가까스로 피신할 수 있었지만, 멤미우스는 살해당했다. 이에 원로원은 사투르니누스를 암살의 배후로 규정하고 원로원 최종권고를 통해 국가의 적으로 선포했고,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원로원의 압력에 못 이겨 사투르니누스 일당을 체포해 신전에 가두고 원로원 지지자들이 신전 천장에서 돌과 기왓장을 떼네어 마구 던져서 사투르니누스 일당을 처단하는 것을 방관했다.

그 후 안토니우스는 기원전 99년 집정관에 파트리키 출신인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와 함께 선출되었다. 그는 호민관 섹스투스 티티우스의 농지 개혁안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은 통과되었지만, 누마 폼필리우스의 궁전에 전시된 마르스의 창이 움직였다는 징조가 보고되자 신들이 농지 개혁안에 분노했다고 해석한 원로원에 의해 파기되었다. 안토니우스는 신들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추가 희생제를 실시하는 법안을 반포했다. 한편 많은 귀족들이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사투르니누스의 압력에 시달린 끝에 로도스로 망명한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누미디쿠스를 복귀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는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척지고 싶지 않았는지 참여하지 않았다.

집정관 임기를 마친 뒤, 안토니우스는 속주민들을 착취한 혐의로 고발당한 마리우스의 측근인 마니우스 아퀼리우스의 변호를 맡아 무죄 판결을 받아내는 등 변호인으로서 활약했다. 당대 사료에 따르면, 아퀼리우스의 혐의는 명백했고 수많은 증인들이 그의 악행을 밝혔지만, 안토니우스가 배심원들이 피고인에게 연민을 느끼도록 그들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기법으로 승부했다. 특히 연설 말미에 마니우스 아퀼리우스의 팔을 붙잡고 튜닉을 찢어서 모든 배심원과 판사가 가슴에 난 흉터를 보게 했다. 그리고는 아퀼리우스가 나라를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우다가 여러 상처를 입어야 했다며, 운명이 적의 무기로부터 구한 사람을 법정에서 심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호소했다. 배심원과 판사는 그의 이같은 설득에 넘어가 무죄를 선고했다고 한다.

기원전 97년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와 함께 감찰관에 선임된 그는 로마 시민권을 부여받은 이탈리아인들 중 시민권을 수여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 자들의 시민권을 박탈했다. 또한 국가 행사에 들어가는 예산을 제한하는 법을 폐지할 것을 제안한 호민관 마르쿠스 드로니우스를 원로원에서 추방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드로니우스는 안토니우스의 검열관 임기가 끝나자마자 뇌물 수수 혐의로 고발했지만 역시나 안토니우스의 탁월한 웅변술에 설득된 배심원이 무죄를 선고하는 바람에 복수에 실패했다.

기원전 95년, 안토니우스는 기원전 103년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의 재판 때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로부터 호민관으로서 거부권을 남발하고 민중을 선동한 혐의로 고발당한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또다른 추종자인 가이우스 노르바누스를 변호했다. 노르바누스는 안토니우스가 킬리키아에서 해적 토벌 작전을 수행할 때 레가투스(Legatus)로서 그의 지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안토니우스는 이 사실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조상의 관습에 따라, 그는 내 아들이다."

술피키우스의 기소에 대한 주요 증인은 원로원에서 프린켑스 세나투스를 맡고 있던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였지만, 안토니우스는 스카우루스의 증인 체택을 거부했고, 노르바누스는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몇 년 후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조카였던 마르쿠스 마리우스 그라티디아누스의 변호를 맡았다. 고발 측 변호인은 그의 라이벌로 거론되던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였지만, 그는 이번에도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기원전 91년 동맹시 전쟁이 발발했을 때 이탈리아인들의 반란을 선동했다는 의심을 받자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포로 로마노에서 열성적으로 연설했다. 키케로는 그가 전쟁 기간 동안 로마에 없었다고 밝혔는데,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그가 혐의를 벗고 로마군에 복무했다고 추정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자발적으로 망명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기원전 87년 로마로 돌아온 안토니우스는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의 심각한 갈등으로 인해 내전이 벌어질 기미가 보이자, 이를 막기 위해 양자의 군대를 해산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술라는 군대를 해산하기를 거부하고 로마 시를 정복했고, 원로원은 마리우스를 국가의 적으로 선포하자는 술라의 제안을 거의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아우구르만이 반대했고, 안토니우스를 포함한 나머지는 침묵을 지켰다. 이후 술라가 제1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동방으로 떠난 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가 술라파 척결을 외치며 봉기를 일으켰다. 이에 원로원은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와 안토니우스를 당시 동맹시 전쟁의 잔당 세력인 삼니움족과 대치하고 있던 메텔루스 피우스에게 보내 로마를 킨나 일당으로부터 지켜달라고 요청하게 했다. 그러나 메텔루스 피우스는 로마를 돕기를 거부했고, 결국 마리우스와 킨나는 로마 장악에 성공했다.

그 후 마리우스와 킨나는 정적으로 간주된 자들을 대거 숙청했는데, 그 중에는 안토니우스도 있었다. 그동안 마리우스의 가족과 측근들을 위해 변호했던 그를 정적으로 간주한 까닭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안토니우스가 국가의 적으로 간주되었던 마리우스와 연을 끊고 술라파와 제휴하는 것을 택하자 마리우스가 이를 배신으로 간주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또는 로마를 포위했을 때 다른 집정관급 인사들과는 달리 마리우스에게 합류하지 않은 것을 괘씸하게 여겼을 수 있고, 마리우스파에 속했던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가 기원전 112년 아버지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를 고발하여 자살로 몰고 간 것에 원한을 품고 그를 숙청 명단에 넣어버렸을 수도 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안토니우스는 한 친구의 집에 피신했다. 이 친구는 가난해서 질이 떨어지는 포도주를 구입하곤 했지만, 이번만큼은 안토니우스를 위해 질 좋은 포도주를 사기로 했다. 노예가 가장 가까운 포도주 가게에 가서 상인에게 주문하자, 상인은 평소처럼 질 낮은 포도주가 아니라 질이 좋고 비싼 포도주를 사는 이유를 물었다. 이에 노예는 주인이 안토니우스를 대접하기 위해 그런다고 밝혔다. 상인은 노예가 떠나자마자 서둘러 마리우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마리우스는 즉시 부관 아니우스에게 군인들을 맡겨 그를 처단하게 했다.

아니우스는 군인들을 건물 안으로 들여보내 안토니우스를 처단하게 한 뒤 자신은 문 앞에 서서 그들이 수급을 가져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군인들이 나오지 않자, 그는 이상하게 여겨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곧 병사들이 안토니우스의 연설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차마 안토니우스를 해치지 못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에 아니우스가 직접 안토니우스를 죽이고 수급을 베어 마리우스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마리우스는 그의 수급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수급 옆에 전시하게 했다.

그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아내와의 사이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크레티쿠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안토니아를 낳았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크레티쿠스는 기원전 74년 법무관을 맡아 크레타에서 해적들과 맞서 싸웠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기원전 71년 크레타 해안에서 사망했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는 기원전 63년 집정관을 맡았고 기원전 42년 검열관을 역임했다. 딸 안토니아는 미셀눔 인근의 별장에서 해적에게 납치되었고 큰 몸값을 지불한 후에야 풀려났다는 것 외에 알려진 바 없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크레티쿠스는 기원전 90년 집정관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결혼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루키우스 안토니우스를 낳았다.
[1] 그러나 종교 의례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두 사람 모두 같은 해에 사임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