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투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 라틴어: Quintus Aemilius Pap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미상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82년 |
전임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 막시무스 |
동기 | 가이우스 파브리키우스 루스키누스 |
후임 |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
임기 | 기원전 278년 |
전임 |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사베리오 푸블리우스 데키우스 무스 |
동기 | 가이우스 파브리키우스 루스키누스 |
후임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루피누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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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 감찰관.2. 생애
고대 로마의 파트리키 가문인 아이밀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기원전 282년 가이우스 파브리키우스 루스키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된 뒤 에트루리아인과 보이족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고 전해지나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기원전 280년 로마군이 헤라클레아 전투에서 피로스 1세가 이끄는 에페이로스군에게 패배한 뒤, 루스키누스, 기원전 283년 집정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와 함께 사절로서 에페이로스 군영에 방문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피로스가 사절들에게 압박을 가하기 위해 전투 코끼리를 갑작스럽게 등장시켰을 때 파푸스를 비롯한 사절단은 화들짝 놀랐지만 루스키누스만이 태연한 얼굴로 "이 집승은 내게 아무런 인상을 주지 못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기원전 278년 루스키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재차 선임되었다. 로마 공화국은 이 시기에 피로스 1세에 대항하기 위해 고대 카르타고와 동맹을 맺었다. 기원전 275년 루스키누스와 함께 감찰관에 선임되었으나, 로마 역사가들이 루스키누스의 행적을 상세시 서술한 데 비해 그에게는 별다른 조명을 비추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행적이 전해지지 않는다.
일부 학자들은 기원전 225년 집정관, 기원전 220년 감찰관을 역임한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가 그의 손자라는 설을 제기하지만, 파스티 카피톨리니에는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푸스의 조부가 그나이우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밝혔기 때문에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