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 라틴어: Lucius Caecilius Metellus Diadematus | |
생몰년도 | 미상 ~ 기원전 89년 이후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증조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조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아버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발레아리쿠스(형) 마르쿠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남동생) 가이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카프라리우스(남동생)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켈레르(아들) 카이킬리아 메텔라(딸)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손자)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17년 |
전임 |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
동기 |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아우구르 |
후임 |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게타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에부르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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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 감찰관.2. 생애
라치오 인근의 팔레스트리나(Palestrina) 시를 건설했다는 전승이 전해지는 불카누스(Volcanus, 불의 신)의 아들 카이쿨루스의 후예로 전해지는 카이킬리우스 가문의 일원이다. 이 가문은 기원전 3세기부터 로마에서 출세가도를 달려 집정관 계급까지 오른 평민 귀족(노빌레스) 집안으로, 증조부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는 기원전 251년과 기원전 247년에 집정관을 맡았으며, 파노르무스 전투에서 카르타고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조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는 기원전 206년 집정관이었으며, 아버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는 기원전 143년 집정관, 기원전 131년 감찰관을 역임했으며, 제4차 마케도니아 전쟁과 아카이아 전쟁에서 활약했다. 형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발레아리쿠스는 기원전 123년 집정관, 기원전 120년 감찰관을 역임했고, 첫째 동생 마르쿠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는 기원전 115년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둘째 동생 가이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카프라리우스는 기원전 113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이름이 카이킬리아인 두 여자형제가 있었는데, 각각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와 결혼했다.
이마에 난 궤양을 가리기 위해 평생 머리띠를 했기 때문에 '머리띠를 한 자'라는 의미인 디아데마투스(Diadematus)라는 아그노멘으로 불렸다고 한다. 기원전 129년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의 정적이었던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사망했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에 따르면, 마케도니쿠스는 아이밀리아누스의 죽음을 공개적으로 애도하고 그를 비롯한 자식들에게 장례식에 참여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현대 학자들은 기원전 180년 최고 행정관 간의 취임 간격을 규정한 빌리우스 법에 따라 기원전 120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으리라 추정한다. 기원전 117년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아우구르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된 뒤 이탈리아에서 임기를 수행했다. 이 시기에 카이킬리아 가도를 건설한 것으로 추정되며, 기원전 116년 갈리아 카실피나 총독을 역임했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기원전 115년,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가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와 함께 감찰관에 선임되었다고 한다. 이 인물이 디아데마투스라는 설과 기원전 119년 집정관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달마티쿠스라는 설이 병립하는데, 어느 쪽이 맞는 지 불분명하다. 두 감찰관은 기원전 116년 집정관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게타를 비롯한 32명을 원로원에서 행실이 좋지 않다는 의유로 제명했다. 기원전 100년 호민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사투르니누스에 대항한 원로원 의원들 중 한 명이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에 따르면, 그는 무기를 챙겨서 동료 귀족들에게 손수 나눠줘서 사투르니누스 일당에 대적하게 했다고 한다. 기원전 99년에는 사투르니누스에게 축출되어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친척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누미디쿠스의 귀환을 추진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아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켈레르는 기원전 90년 집정관을 역임하고 기원전 89년 이후에 조영관을 역임해 아버지가 사망한 지 불과 며칠 만에 아버지를 기리기 위한 검투사 경기를 조직해 '재빠른 자'라는 의미인 켈레르(Celer)라는 아그노멘으로 일컬어졌다. 일부 학자들은 그의 딸 카이킬리아 메텔라가 기원전 79년 집정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의 아내였다고 주장하지만, 기원전 123년 집정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발레아리쿠스의 딸 카이킬리아 메텔라가 아피우스의 아내라는 설도 있어서 불분명하다. 손자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는 기원전 57년 집정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