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 켄소리누스 라틴어: Gaius Marcius Rutilus Censorin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아버지)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310년 |
전임 | 퀸투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 가이우스 유니우스 부불쿠스 브루투스 |
동기 |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 |
후임 | 독재관: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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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 감찰관.2. 생애
플레브스 출신으로 독재관과 감찰관에 처음으로 올랐으며 집정관을 4차례(기원전 357년, 기원전 352년, 기원전 344년, 기원전 342년) 역임한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루틸루스의 아들이다. 기원전 311년 호민관을 맡았고, 기원전 310년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그의 동료가 에트루리아인들을 상대로 페루시아 전투에서 승리하는 등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동안, 그는 알리파에 등 삼니움의 많은 요새와 마을을 파괴하거나 점령했다.삼니움인들은 이에 대응해 루틸루스를 회피해 북상하여 에트루리아인과 연합하기로 했다. 루틸루스는 북상하는 적군을 급히 추격해 알려지지 않은 지점에서 따라잡았으나 뒤이은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여러 트리부누스 밀리툼들과 레가투스가 전사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고 패퇴했다. 이 소식을 접한 로마 원로원은 기원전 309년 북상해오는 적을 막기 위해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를 독재관으로 선임했다.
기원전 300년 플레브스가 사제단에 선임될 수 있다는 오굴리우스 법이 통과되었고, 기원전 299년에 그가 평민 최초로 고위 사제단의 일원인 폰티펙스에 선임되었다. 기원전 294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아르비나와 함께 감찰관에 선임되었고, 기원전 265년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블라시오와 함께 감찰관에 재차 선임되었다. 감찰관에 2차례 선임된 것은 그가 유일했기 때문에 감찰관(Censor)의 명칭을 딴 '켄소리누스(Censorinus)'가 아그노멘에 추가되었다. 이후 감찰관을 한 번 역임한 자는 다시 감찰관에 선임될 수 없다는 법이 통과되면서, 누구도 그처럼 감찰관을 2차례 맡지 못했다. 이외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