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발레아리쿠스 라틴어: Quintus Caecilius Metellus Balearic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증조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조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아버지)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남동생) 마르쿠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남동생) 가이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카프라리우스(남동생)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아들) 카이킬리아 메텔라(딸)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23년 |
전임 |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가이우스 섹스티우스 칼비누스 |
동기 |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
후임 |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가이우스 판니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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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 감찰관.2. 생애
라치오 인근의 팔레스트리나(Palestrina) 시를 건설했다는 전승이 전해지는 불카누스(Volcanus, 불의 신)의 아들 카이쿨루스의 후예로 전해지는 카이킬리우스 가문의 일원이다. 이 가문은 기원전 3세기부터 로마에서 출세가도를 달려 집정관 계급까지 오른 평민 귀족(노빌레스) 집안으로, 증조부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는 기원전 251년과 기원전 247년에 집정관을 맡았으며, 파노르무스 전투에서 카르타고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조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는 기원전 206년 집정관이었으며, 아버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는 기원전 143년 집정관, 기원전 131년 감찰관을 역임했으며, 제4차 마케도니아 전쟁과 아카이아 전쟁에서 활약했다. 첫째 동생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는 기원전 117년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둘째 동생 마르쿠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는 기원전 115년 집정관을 역임했고, 셋째 동생 가이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카프라리우스는 기원전 113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이름이 카이킬리아인 두 여자형제가 있었는데, 각각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가이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와 결혼했다.
기원전 129년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의 정적이었던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사망했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에 따르면, 마케도니쿠스는 아이밀리아누스의 죽음을 공개적으로 애도하고 그를 비롯한 자식들에게 장례식에 참여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현대 학자들은 기원전 180년 최고 행정관 간의 취임 간격을 규정한 빌리우스 법에 따라 기원전 126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으리라 추정한다. 기원전 123년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된 뒤, 서부 지중해에서 해적 행위를 일삼고 있는 발레아레스 제도 주민들을 토벌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플로루스에 따르면, 로마군은 섬에 상륙하는 동안 발레아레스 투석병들의 공격을 받고 상당한 손실을 입었지만 뒤이은 근접 전투에서 쉽게 이겼다고 한다. 그 후 2년 이내에 모든 섬을 정복했다. 파울루스 오로시우스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수많은 섬 주민들이 살해되었다고 한다. 메텔루스는 발레아레스 제도를 정복한 뒤 팔마와 플렌티아 등 여러 도시를 세웠다. 기원전 121년 로마로 돌아와 개선식을 거행하고 '발레아레스 정복자'라는 의미의 발레아리쿠스(Balearicus)를 칭호로 수여받았다. 기원전 120년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프루기와 함께 감찰관에 올랐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메텔루스'라는 인물이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호민관이 되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나중에 마리우스가 제시한 법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를 막으려 했다가 일시적으로 체포되었다고 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인물이 발레아리쿠스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기원전 117년 집정관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라고 주장한다. 기원전 115년 원로원이 그리스 도시 아드라미티온에 대한 법령을 제정할 때 이에 처음으로 서명한 '메텔루스'가 그였는지도 불분명하며, 이외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아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네포스는 기원전 95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또한 카이킬리아 메텔라라는 딸이 있었는데, 학자들은 오랫동안 기원전 79년 집정관이었던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의 아내가 바로 그녀였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최근에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의 딸 카이킬리아 메텔라가 아피우스의 아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어서 어느 쪽이 옳은지는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