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라틴어: Gnaeus Domitius Ahenobarb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아버지)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아들)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62년 |
전임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코르쿨룸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
동기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
후임 |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가이우스 판니우스 스트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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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저명한 노빌레스 집안인 도미티우스 가문의 일원이다. 수에토니우스가 전하는 전설에 따르면, 도미티우스 씨족에 속한 한 사람이 신성한 모습의 쌍둥이 청년을 만나서 그들에게 뺨을 어루만져지자 수염이 붉게 변했다. 이 인물은 아헤노바르부스(Ahenobarbus, "빨간 수염")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것이 그의 후손들에게 통칭이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는 기원전 192년 집정관을 역임했다.기원전 180년대에 화폐 주조관을 역임했고, 기원전 172년 자살한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를 대신해 폰티펙스에 선임되었다. 기원전 169년 말 차기 집정관에 막 선출된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의 추천으로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의 결정적인 국면을 앞두고 로마군의 상태와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의 상황을 연구하기 위한 위원회의 일원이 되었다. 기원전 167년 전쟁에서 승리한 파울루스와 함께 마케도니아의 전후 처리를 담당한 10인 위원회의 일원이 되었다.
기원전 162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코르쿨룸과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가 대 그라쿠스의 압력에 의해 집정관에서 사임하자,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집정관으로서의 행적은 알려진 바 없으며, 이후의 행적 역시 전해지지 않는다.
아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는 기원전 122년 집정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