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 라틴어: Gaius Valerius Laevin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아버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첫째 형)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둘째 형)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76년 |
전임 |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히스팔루스 퀸투스 페틸리우스 스푸리누스 |
동기 | 퀸투스 페틸리우스 스푸리누스 |
후임 | 푸블리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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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저명한 파트리키 집안인 발레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아버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는 기원전 210년 집정관을 역임했고 제1차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활약했다. 큰형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는 기원전 182년 법무관을 역임했고, 둘째 형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는 기원전 210년 집정관 마르쿠스 사후 그와 큰형 마르쿠스가 장례씩을 주관했을 때만 언급된 것을 볼 때 일찍 죽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기원전 189년 집정관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휘하 레가투스를 맡아 아이톨리아 동맹과의 전쟁에 참여했으며, 암브리키아에서 아이톨리아 동맹과의 평화 협상을 중재했다. 기원전 179년 법무관에 선임된 뒤 사르데냐를 통치했다. 기원전 176년 집정관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히스팔루스가 취임 직후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보결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그는 로마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리구리아인들과의 전쟁에 투입되었지만 별다른 공적을 세우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174년 아이톨리아 동맹 내부의 분란을 종식시키고 마케도니아 왕국의 국왕 페르세우스와 협상하기 위해 그리스로 갔다. 그러나 아이톨리아인들은 그의 중재에 응하지 않았고, 페르세우스 역시 그와 만나기를 거부했다. 이에 로마로 돌아가서 페르세우스가 로마를 상대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에 원로원은 마케도니아와의 전쟁을 벌이기로 결정하고, 그가 포함된 새 사절단에게 지중해 동부 전역을 돌면서 로마와 손잡으라고 권하게 했다. 기원전 169년 감찰관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