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히스팔루스 라틴어: Gnaeus Cornelius Scipiō Hispallus | |
생몰년도 | 미상 ~ 기원전 176년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쿠마에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칼부스(아버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형제) 파울라 코르넬리아(아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히스파누스(아들)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76년 |
전임 |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대 그라쿠스 |
동기 | 퀸투스 페틸리우스 스푸리누스 |
후임 |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 퀸투스 페틸리우스 스푸리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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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저명한 귀족 집안인 코르넬리우스 씨족 스키피오 가문 출신이다. 아버지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칼부스는 기원전 222년에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동생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와 함께 히스파니아 전선으로 파견되어 7년간 본국의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여러 차례 승전하며 로마의 히스파니아에서의 입지를 다졌지만 기원전 211년 베티스 고지의 전투에서 참패를 면치 못하고 동생과 함께 전사했다. 형제로 기원전 191년 집정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가 있었다.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기원전 199년 사망한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바를 대신해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가 폰티펙스에 선임되었다고 한다. 학자들은 이 인물이 기원전 176년 집정관과 동일인물일 거라고 추정한다. 기원전 179년 법무관에 선임된 뒤 알려지지 않은 속주에서 직무를 수행했다. 기원전 176년 퀸투스 페틸리우스 스푸리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두 집정관은 각각 2개 군단을 이끌고 리구리아인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북쪽으로 진군할 예정이었다. 페틸리우스는 리구리아로 직접 진격하고, 그는 피사를 배정받았다.
그러나 그는 임지로 부임하기 전인 기원전 176년 봄 알반 산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 넘어져서 신체 일부가 마비되었다. 이후 치료를 위해 쿠마에로 이송되었지만 호전되지 못하고 곧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로마로 옮겨졌고 사회장이 거행되었다. 이후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가 보결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스키피오 가문의 무덤에서 발견된 묘비에 적힌 '파울라 코르넬리아'는 그의 아내라는 가설이 제기되고 있으나 분병하지 않다. 아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히스파누스는 기원전 139년 법무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