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18 18:38:30

마르쿠스 풀비우스 플라쿠스(기원전 125년 집정관)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font-size: 0.742em; letter-spacing: -0.35px"
기원전 200년 기원전 199년 기원전 198년 기원전 197년 기원전 196년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막시무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가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루키우스 푸리우스 푸르푸레오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푸블리우스 빌리우스 타풀루스 섹스투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카투스 퀸투스 미누키우스 루푸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기원전 195년 기원전 194년 기원전 193년 기원전 192년 기원전 191년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메룰라 루키우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롱구스 퀸투스 미누키우스 테르무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기원전 190년 기원전 189년 기원전 188년 기원전 187년 기원전 186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가이우스 라일리우스 그나이우스 만리우스 불소 가이우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기원전 185년 기원전 184년 기원전 183년 기원전 182년 기원전 181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푸블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그나이우스 바이비우스 탐필루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마르쿠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루키우스 포르키우스 리키누스 퀸투스 파비우스 라베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르쿠스 바이비우스 탐필루스
기원전 180년 기원전 180년 보결 기원전 179년 기원전 178년 기원전 177년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루스쿠스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아키디누스 풀비아누스 아울루스 만리우스 불소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기원전 176년 기원전 176년 보결 기원전 175년 기원전 174년 기원전 173년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히스팔루스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 푸블리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파울룰루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퀸투스 페틸리우스 스푸리누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기원전 172년 기원전 171년 기원전 170년 기원전 169년 기원전 168년
가이우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아울루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마케도니쿠스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리구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아울루스 아틸리우스 세라누스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167년 기원전 166년 기원전 165년 기원전 164년 기원전 163년
퀸투스 아일리우스 파이투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아울루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펜누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갈루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퀸투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마니우스 유벤티우스 탈나
기원전 162년 기원전 162년 보결 기원전 161년 기원전 160년 기원전 159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코르쿨룸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루키우스 아니키우스 갈루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가이우스 판니우스 스트라보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기원전 158년 기원전 157년 기원전 156년 기원전 155년 기원전 154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섹스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루푸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코르쿨룸 퀸투스 오피미우스
가이우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기원전 154년 보결 기원전 153년 기원전 152년 기원전 151년 기원전 150년
퀸투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티투스 안니우스 루스쿠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발부스
기원전 149년 기원전 148년 기원전 147년 기원전 146년 기원전 145년
루키우스 마르키우스 켄소리누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마그누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아이밀리아누스
마니우스 마닐리우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가이우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루키우스 뭄미우스 아카이쿠스 루키우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
기원전 144년 기원전 143년 기원전 142년 기원전 141년 기원전 140년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칼부스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가이우스 라일리우스 사피엔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세르빌리아누스 퀸투스 폼페이우스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기원전 139년 기원전 138년 기원전 137년 기원전 136년 기원전 135년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세라피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포르키나 루키우스 푸리우스 필루스 세르비우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가이우스 호스틸리우스 만키누스 섹스투스 아틸리우스 세라누스 퀸투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기원전 134년 기원전 133년 기원전 132년 기원전 131년 기원전 130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아이밀리아누스 푸블리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푸블리우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무키아누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
가이우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프루기 푸블리우스 루필리우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마르쿠스 페르페르나
기원전 130년 보결 기원전 129년 기원전 128년 기원전 127년 기원전 126년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가이우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 그나이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라빌라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마니우스 아퀼리우스 티투스 안니우스 루스쿠스 루푸스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킨나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
기원전 125년 기원전 124년 기원전 123년 기원전 122년 기원전 121년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힙사이우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오피미우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섹스티우스 칼비누스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가이우스 판니우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기원전 120년 기원전 119년 기원전 118년 기원전 117년 기원전 116년
푸블리우스 마닐리우스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 가이우스 리키니우스 게타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에부르누스
기원전 115년 기원전 114년 기원전 113년 기원전 112년 기원전 111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발부스 가이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카프라리우스 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세라피오
마르쿠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가이우스 포르키우스 카토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카이소니누스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베스티아
기원전 110년 기원전 109년 기원전 108년 기원전 108년 보결 기원전 107년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루푸스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퀸투스 호르텐시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스카우루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기원전 106년 기원전 105년 기원전 104년 기원전 103년 기원전 102년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가이우스 마리우스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세라누스 그나이우스 말리우스 막시무스 가이우스 플라비우스 핌브리아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 퀸투스 루타티우스 카툴루스
기원전 101년
가이우스 마리우스
마니우스 아퀼리우스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7px; padding: 0 6px"
}}}}}}}}}}}}}}}


마르쿠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라틴어: Marcus Fulvius Flaccus
생몰년도 미상 ~ 기원전 121년
출생지 이탈리아 로마
사망지 이탈리아 로마
지위 노빌레스
국가 로마 공화정
가족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조부)
마르쿠스 풀비우스 플라쿠스(아버지)
마르쿠스 풀비우스 플라쿠스(아들)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아들)
풀비아(딸)
로마 공화정 집정관
임기 기원전 125년
전임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오레스테스
동기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힙사이우스
후임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가이우스 섹스티우스 칼비누스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 가이우스 그라쿠스의 동지로, 원로원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2. 생애

고대 로마의 노빌레스 가문인 풀비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조부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는 4차례 집정관(기원전 237년, 기원전 224년, 기원전 212년, 기원전 209년)을 역임했고, 기원전 231년 감찰관을 맡았으며, 기원전 213년 기병장관, 기원전 210년 독재관을 맡아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맹활약했다. 그는 세 아들을 두었다. 두 아들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루키우스 만리우스 아키디누스 풀비아누스는 기원전 179년에 집정관을 동시에 맡았다. 그러나 또다른 아들 마르쿠스 풀비우스 플라쿠스는 기원전 180년 트리부누스 밀리툼을 맡았다가 군법을 어긴 혐의로 인해 원로원에 의해 추방되었다. 19세기 독일의 고전 역사가 프리드리히 뮌처는 기원전 125년 집정관 마르쿠스는 아버지가 당한 가혹한 형벌 때문에 어릴 때부터 기득권층을 미워했다고 주장했다.

기원전 133년, 당시 원로원 의원이었던 그는 호민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에게 "부자들이 무장한 노예와 친구들을 거느리고 당신을 공격하려 하니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같은 날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세라피오가 이끄는 무뢰배들의 습격으로 살해되었다. 이후 기원전 가이우스 그라쿠스,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와 함께 농지 분배 위원회의 일원이 되었다. 기원전 129년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스키피오가 살해되었다는 소문이 로마 전역에 퍼졌다. 사람들은 스키피오와 갈등을 심하게 벌였던 마르쿠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가이우스 그라쿠스, 그리고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 중 한 명이 스키피오 암살을 사주했을 거라 여겼지만, 공식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현대 학자들은 고위 행정관의 재임 간격을 설정한 빌리우스 법에 의거해 기원전 128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으리라 추정한다. 기원전 125년 마르쿠스 플라우티우스 힙사이우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당시 그는 그라쿠스의 개혁 확대를 주장했으며, 특히 동맹시에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대다수 원로원 의원들은 이를 단호히 반대했고, 그를 로마에서 다른 곳으로 보내기 위해 로마와 동맹을 맺고 있던 마실리아를 침략하는 리구리아인들에 맞서 마실리아를 구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는 이에 따라 갈리아 트란살피나 속주로 가서 리구리아인들을 물리친 뒤 로마로 귀환하여 기원전 123년 개선식을 거행했다.

그가 로마에 돌아왔을 때,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호민관에 선임된 뒤 전면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그라쿠스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기원전 122년 스스로 호민관에 선임되었다. 아피아노스에 따르면, 그는 그라쿠스와 함께 아프리카로 가서 제3차 포에니 전쟁 후 폐허가 된 카르타고에 식민도시를 세우는 사업을 감독했다고 한다. 반면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그라쿠스만 아프리카로 갔고, 그는 로마에 남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또다른 호민관 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가 그라쿠스가 이탈리아인들을 선동해 로마에 반란을 일으키도록 사주한다는 비난을 퍼부었고, 플라쿠스는 그라쿠스를 옹호했지만 웅변술에서 밀렸다. 그라쿠스는 이 소식을 듣고 예정보다 일찍 로마로 귀환했다고 한다.

기원전 121년, 집정관에 선임된 루키우스 오피미우스원로원 최종 권고에 따라 그라쿠스 추종자들을 토벌하기로 했다. 이 소식을 접한 그는 집에 보관되었던 무기를 지지자들에게 배포하고 아벤티노 언덕을 점령한 뒤 디아나 신전에 자리잡았다. 가이우스 그라쿠스는 시가전을 벌이기를 원하지 않아 그에게 원로원과 협상하자고 설득했다. 플라쿠스는 상황이 여기까지 왔는데 협상은 어불성설이라며 반대했지만, 그라쿠스가 뜻을 굽히지 않자 어쩔 수 없이 막내 아들 퀸투스를 포로 로마노로 보내 오피미우스에게 협상을 제안했다. 그러나 오피미우스는 무조건 항복하라고 요구했다.

퀸투스가 돌아와서 이 소식을 알리자, 그는 이전 제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조건을 담은 제안을 담아 퀸투스를 다시 보냈다. 오피미우스는 퀸투스를 체포하게 한 뒤 병사들을 이끌고 아벤티노 언덕으로 진격했다. 그는 이에 맞서 항전했으나 끝내 패배했고, 버려진 목욕탕이나 누군가의 집에 숨어 있다가 장남 마르쿠스와 함께 발견되어 즉시 살해되었다. 오피미우스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플라쿠스의 수급을 베어서 가지고 온 자에게 그의 머리 무게와 같은 금을 수여하겠다고 선언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그의 머리를 가지고 온 사람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반면 아피아노스에 따르면 보상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다른 그라쿠스 추종자들과 함께 테베레 강에 던져졌고, 그의 집은 철거되었으며, 그의 미망인은 남편을 애도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한편 오피미우스에게 체포되었던 막내 아들 퀸투스는 처형되거나 강제로 자살했다.

그에게는 함께 죽은 두 아들 외에도 딸 풀비아가 있었다. 이 여인은 기원전 90년 집정관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아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