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라틴어: Quintus Marcius Rex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아버지)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아들)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18년 |
전임 |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달마티쿠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
동기 |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
후임 | 루키우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디아데마투스 퀸투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아우구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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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기원전 4세기에 평민들이 집정관에 선임되는 것이 허용된 이래로 많은 집정관을 배출한 노빌레스 가문인 마르키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아버지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는 기원전 144년 법무관을 역임했다. 현대 학자들은 기원전 180년 최고 행정관 간의 취임 간격을 규정한 빌리우스 법에 따라 기원전 121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으리라 추정한다.기원전 118년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이후 제비 뽑기 결과 이탈리아에서 내정을 돌봤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에 따르면, 그는 이 시기에 젊은 나이에 뛰어난 능력과 인성을 갖춰 세간의 기대를 받았던 아들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지만, 슬픔을 가라앉히고 장례식을 주관한 뒤 원로원 회의를 주관하는 등 업무에 충실했다고 한다.
집정관 임기가 끝나갈 무렵 알프스산맥 서부에 거주하는 스탠 족과 전쟁을 치러 승리한 뒤 기원전 117년 로마로 귀환하여 개선식을 거행했다. 또한 갈리아 키살피나 속주에 나르본 시를 새로 건설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19세기 독일의 역사학자 프리드리히 뮌처에 따르면, 그는 2번째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았으며, 기원전 68년 집정관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가 기원전 118년 집정관의 또다른 아들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