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라틴어: Gnaeus Cornelius Dolabella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아버지)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아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손자)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59년 |
전임 | 마르쿠스 코르넬리우스 케테구스 루키우스 아니키우스 갈루스 |
동기 |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 |
후임 |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가이우스 포필리우스 라이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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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파트리키 가문인 코르넬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아버지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는 기원전 208년부터 180년까지 '거룩한 왕(Rex Sacrorum)'[1]을 맡았다. 기원전 165년 수석 조영관에 선임된 뒤 동료 조영관 섹스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함께 메갈레시아 행사 기간 동안 로마 극작가 푸블리우스 테렌티우스 아페르의 희곡 <시어머니>를 공연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연극을 매우 냉담하게 받아들였고, 다들 밧줄 댄서와 검투사 경기를 보러 가버렸다고 전해진다.학자들은 고위 행정관 간의 직임 간격을 설정한 빌리우스 법에 의거해 기원전 162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기원전 159년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뇌물 수수 금지법이 통과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아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는 호민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사투르니누스의 동지였다가 사투르니누스가 원로원 지지자들에 의해 살해되었을 때 탈출을 시도했다가 야채 시장에서 따라잡혀 살해되었다. 손자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는 기원전 81년 집정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