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라틴어: Lucius Cornelius Scipio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바르바투스(아버지) 스키피오 아시나(형제)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칼부스(장남)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아들) |
참전 | 제1차 포에니 전쟁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59년 |
전임 | 스키피오 아시나 가이우스 두일리우스 |
동기 | 가이우스 아퀼리우스 플로루스 |
후임 | 아울루스 아틸리우스 카이아티누스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파테르쿨루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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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 감찰관.2. 생애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파트리키 집안인 코르넬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아버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바르바투스는 기원전 298년 집정관, 기원전 280년 감찰관을 역임하면서 에트루리아, 켈트족, 삼니움족과의 전쟁을 수행했다. 형제 스키피오 아시나는 기원전 260년과 기원전 254년 집정관을 역임했다.기원전 261년 조영관을 역임했으며, 기원전 259년 가이우스 아퀼리우스 플로루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된 뒤 제1차 포에니 전쟁을 수행했다. 요안니스 조나라스에 따르면, 그는 코르시카에 상륙한 뒤 알레리아 시를 습격하고 파괴한 뒤 섬 전체르 어려움 없이 점거했다. 뒤이어 사르데니아로 건너가 올비아를 포위했지만 강력한 적 함대가 등장하자 포위를 풀고 이탈리아로 철수했다고 한다.
반면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코르시카 뿐만 아니라 사르데냐 전체를 장악했다고 하며,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와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플로루스는 그가 올비아를 공략하고 아프리카 자체를 제외하고는 카르타고인들이 발붙일 곳이 없게 만들었다고 기술했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에 따르면, 그가 올비아를 공략하는 동안 카르타고 사령관 한노가 전사하자 그를 명예롭게 묻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스키피오 가문에 깊은 동경심을 품고 그들에게 호의적인 기록을 많이 남겼던 폴리비오스는 정작 기원전 259년 집정관 스키피오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현대 학자들은 공략되었다는 울비아가 이후 기록에도 카르타고의 영역으로 나온 것을 볼 때 올비아는 이 시기에 로마군에게 공략되지 않았다고 추정한다.
이후 로마로 돌아와서 개선식을 거행한 뒤 기원전 258년 가이우스 두일리우스와 함께 감찰관에 선임되었고 로마에 폭풍의 신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두 아들을 두었다. 장남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칼부스는 기원전 222년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차남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는 기원전 218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두 사람은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이베리아 전역에서 맹활약했으나 베티스 고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또한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최종적으로 종결시킨 명장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그의 손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