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루수스 라틴어: Appius Claudius Russus | |
생몰년도 | 미상 ~ 기원전 268년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크라수스(조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아버지) 푸블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형제)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켄토(형제)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형제)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68년 |
전임 | 퀸투스 오굴니우스 갈루스 가이우스 파비우스 픽토르 |
동기 |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소푸스 |
후임 |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리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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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사비니에서 로마로 이주한 이래 기존의 로마 파트리키과 대등한 권세를 누린 명문 귀족 가문인 클라우디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조부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크라수스는 기원전 337년 독재관을 역임했고, 아버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는 기원전 312~307년 감찰관을 역임하면서 아피아 가도를 건설하고 로마의 정치 및 행정 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혁했으며, 기원전 307년과 기원전 296년에 집정관을 역임하고 기원전 285년 독재관을 역임했다. 형제로 기원전 240년 집정관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켄토, 기원전 249년 집정관 푸블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가 있었다.[1]기원전 268년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소푸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두 집정관은 피케니 족의 봉기를 진압하고 개선식을 거행했으며, 아르미눔과 베네벤툼에 식민 도시를 건설했다. 에우트로피우스에 따르면, 그는 집정관 재임 도중에 사망했다고 한다.
[1] 다만 19세기 독일의 역사학자 프리드리히 뮌처는 푸블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와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켄토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의 아들이라 보기엔 고위 행정관을 역임한 년도가 지나치게 차이난다며, 카이쿠스와 두 형제 사이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또다른 '클라우디우스'가 있었을 거라고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