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라틴어: Titus Manlius Torquatus | |
생몰년도 | 미상 ~ 기원전 299년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에트루리아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티투스 만리우스 임페리오수스 토르콰투스(조부)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아버지)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아들)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손자)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증손자)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99년 |
전임 |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코르부스 퀸투스 아풀레이우스 판사 |
동기 | 마르쿠스 풀비우스 파이티누스 |
후임 | 마르쿠스 풀비우스 파이티누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코르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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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행적
고대 로마에서 가장 고귀한 파트리키 가문 중 하나로 꼽히는 만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만리우스 씨족은 기원전 480년 첫 집정관을 배출한 걸 시작으로, 그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기 전까지 집정관 13명에 집정 무관 14명을 배출했다. 토르콰투스라는 코크노멘은 티투스 만리우스 임페리오수스 토르콰투스가 켈트족을 물리치고 족장의 토르퀘스(Torques)[1]를 전리품으로 획득한 데서 비롯되었다. 티투스 만리우스 임페리오수스의 후손들은 대대로 토르콰투스를 물려줬고, 자신들이 주조한 주화에 자랑스럽게 새겼다.조부인 티투스 만리우스 임페리오수스 토르콰투스는 기원전 347년, 기원전 344년, 기원전 340년에 집정관을 역임하면서 리아인과 에트루리아인을 상대로 수차례 승리를 거두어 개선식을 여러 차례 거행했다. 특히 군기를 매우 엄격하게 적용해, 자신의 아들 티투스가 대기하고 있으라는 명령에 불복종하고 적진으로 쳐들어가 적장을 일대일 결투로 사살하자 군기를 어겼다는 이유로 처형했다. 그는 이렇게 죽은 티투스의 아들로 추정된다.
기원전 299년 마르쿠스 풀비우스 파이티누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된 뒤 에트루리아 전선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기병대를 이끌던 중 에트루리아군의 공격을 받고 낙마한 뒤 며칠 후 사망했다. 원로원은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듣고 한 때 독재관을 세우려 했지만 곧 마음을 바꿔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코르부스를 보결 집정관으로 세웠다.
아들 티투스와 손자 티투스는 이름만 언급될 뿐 별다른 행적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증손자 티투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는 기원전 235년과 기원전 224년에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기원전 214년 고대 카르타고와 동맹을 맺고 로마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함프시코라 휘하 샤르데냐인들을 진압하는 임무를 성사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