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 라틴어: Lucius Papirius Cursor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스푸리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조부)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아버지) |
참전 | 삼니움 전쟁 등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93년 |
전임 |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메겔루스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 |
동기 | 스푸리우스 카르빌리우스 막시무스 |
후임 |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구르게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스카이바 |
임기 | 기원전 272년 |
전임 | 가이우스 파비우스 도르소 리키누스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카니나 |
동기 | 스푸리우스 카르빌리우스 막시무스 |
후임 | 카이소 퀸크티우스 클라우두스 루키우스 게누키우스 클렙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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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로마 공화국 초기인 기원전 4세기부터 기록상에 등장하는 파트리키 가문으로서 만리우스, 술피키우스, 포스투미우스 가문과 함께 정계를 주름잡은 파피리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증조부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는 기원전 393년 감찰관을 역임했고, 조부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는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언급되었을 뿐 별다른 행적이 전해지지 않는다. 아버지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는 집정관을 다섯 차례 역임하고 독재관도 수 차례 맡으면서 제2차 삼니움 전쟁에서 맹활약해 후대의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로부터 가장 완벽한 로마인으로 칭송받았다.기원전 293년 스푸리우스 카르빌리우스 막시무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이 해에 대규모 삼니움 군대가 캄파니아를 침공해 약탈을 자행했다. 카르빌리우스는 이에 대응해 코미니움 인근에 진을 쳤고, 쿠르소르는 아퀼로니아 인근에 진을 쳤다. 그는 아퀼로니아에 주둔한 삼니움군과 대치하면서 코미니움을 포위 공격하는 동료와 끊임없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아퀼로니아 전투에서 로마군을 능수능란하게 운용해 적군을 궤멸시킨 뒤, 같은 날 코미니움을 함락시킨 동료와 함께 삼니움의 도시인 벨리아, 팔룸비누스, 헤르쿨라네움을 공략했다.
이후 겨울을 대비해 숙영지로 귀환한 뒤 로마로 상경하여 동료와 함께 개선식을 거행했다. 이때 그는 모든 전리품을 재무부에 넘기고 병사들에게는 어떤 전리품도 나눠주지 않아 분노를 샀다. 반면 그의 동료는 상당한 전리품을 아낌없이 분배해 병사들의 신망을 얻었다. 한편 그는 아버지가 생전에 약속했지만 짓지 못했던 퀴리누스 신전을 건설했다.
기원전 272년 동료 스푸리우스 카르빌리우스 막시무스와 함께 집정관을 재차 역임해 피로스 1세와 연합해 로마에 대항했던 삼니움, 타라스, 루카니아, 브루티움을 상대로 성공적으로 정벌한 뒤 로마로 귀환하여 2번째로 개선식을 거행했다. 그 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