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이우스 풀비우스 켄투말루스 막시무스 라틴어: Gnaeus Fulvius Centumalus Maximus | |
생몰년도 | 미상 ~ 기원전 210년 |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사망지 | 이탈리아 아풀리아 지방 헤르도니아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정 |
가족 |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막시무스 켄투말루스(조부)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켄투말루스(아버지) 마르쿠스 풀비우스 켄투말루스(아들) |
참전 | 제2차 포에니 전쟁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211년 |
전임 |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 |
동기 |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막시무스 |
후임 |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라이비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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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포에니 전쟁 시기에 활동한 고대 로마의 귀족이자 장군. 기원전 210년 2차 헤르도니아 전투에서 한니발 바르카의 카르타고군과 맞서다 전사했다.2. 생애
고대 로마의 노빌레스 가문인 풀비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조부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막시무스 켄투말루스는 기원전 298년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아버지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켄투말루스는 기원전 229년 집정관을 역임했다. 그는 기원전 214년 최고 조영관을 역임하였고, 동료 조영관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와 함께 로마 역사상 최초의 4일 경마 경기를 조직하였다. 기원전 213년 캄파니아 총독에 부임하여 2개 군단을 부여받고 스베술라 일대에서 카르타고군에 맞서 싸웠으며, 칸나이 전투 이후 로마를 저버리고 카르타고 편에 붙으려는 카푸아 귀족들을 상대로 협상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기원전 211년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막시무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원로원은 두 사람이 아풀리아에 남아 한니발에 대항하도록 지시했지만, 카푸아를 공략하여 이탈리아의 상황이 호전되자 두 집정관 중 한 명이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5세에 대항하여 군사 작전을 벌이기로 했다. 제비뽑기 결과 갈바가 그 역할을 맡았고, 그는 아풀리아에서 단독 지휘권을 받아 한니발과 대적했다. 기원전 210년 임기가 완료되었지만, 총독의 권한으로서 그곳에 머물렀다.
그러던 중 헤르도니아 주민들이 로마 편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것을 알게 되자, 군대를 이끌고 그곳으로 향했다. 그는 한니발이 브루티움으로 갔다는 정보를 입수했기에, 거기서 헤르도니아까지 단시일에 오지 못할 거라 여기고 경계를 게을리 했다. 그러나 한니발은 사전에 적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헤르도니아에 먼저 들어갔고, 도시 인근에 진을 치고 로마군이 도착하길 기다렸다. 이리하여 한니발과 정면에서 마주치게 되자, 그는 후방에 진영을 세운 뒤 전투 대형을 결성하여 맞섰다. 로마 보병대는 2열로 늘어서서 카르타고군의 맹공에 맞서 싸웠지만, 적 기병대가 전장을 우회하여 로마군 진영을 점령하고 후방을 강타하면서 전황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이날 7,000명에서 13,000명에 달하는 병사가 전사했는데, 그 중에는 그와 11명의 트리부누스 밀리툼도 포함되었다.
아들로 마르쿠스 풀비우스 켄투말루스를 두었는데, 그는 기원전 192년 법무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