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 라틴어: Publius Sulpicius Ruf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플레브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아버지) |
직업 | 로마 공화정 감찰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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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감찰관.2. 생애
기원전 88년 호민관을 맡아 로마 시민권은 이탈리아인들에게 확대하기 위해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손잡고 제1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을 수행할 임페리움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에게서 마리우스에게 넘기려 했다가 분노한 술라의 로마 진군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의 아들이다. 갈리아 전쟁을 수행하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레가투스를 맡은 그는 기원전 55년 카이사르의 1차 브리타니아 원정 당시 로마 함대가 출항하는 항구를 지키는 임무를 맡았으며, 기원전 52년 말에 하이두이 족의 영역에서 숙영했다.기원전 49년 카이사르의 내전이 발발했을 때 카이사르의 편에 선 그는 카이사르가 이베리아 반도로 진군해 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와 마르쿠스 페트레이우스를 대적할 때 카이사르의 레가투스로 활동했으며, 카이사르가 일레르다 전투에서 두 장군을 궁지에 몰아넣었을 때 아프라니우스의 어린 아들과 협상해 두 장군이 카이사르에 항복하도록 유도했다.
기원전 48년 법무관에 선임된 뒤 칼라브리아의 항구 도시이며 시칠리아 인근인 비보 발렌티아에 주둔한 카이사르의 함대를 지휘해, 메사나 함대 사령관인 마르쿠스 폼포니우스와 함께 폼페이우스 함대의 습격으로부터 이탈리아를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 폼페이우스 편에 선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가 폼포니우스를 격파한 뒤 비보 발렌티아를 습격해 5척을 불태우자, 그는 반격을 가해 카시우스의 삼단노선 2척을 침몰시키고 퀸퀘레메(Quinquereme: 사단노선) 2척을 탈취했다.
기원전 47년 총독의 자격으로 달마티아에서 마르쿠스 옥타비우스를 상대했다. 옥타비우스는 타우리스 해전에서 푸블리우스 바티니우스에게 참패해 아프리카로 도주했고, 그 과정에서 그가 기여한 건 별로 없었지만, 병사들로부터 임페라토르 칭호를 받았고, 원로원은 그의 공적을 기려 감사제를 실시했다. 기원전 46~45년에는 비티니아와 폰토스 속주의 총독을 역임했다.
기원전 42년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와 함께 감찰관에 선임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