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라틴어: Marcus Cocceius Nerva | |
생몰년도 | 기원전 80년경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이탈리아 움브리아 |
사망지 | 미상 |
지위 | 움브리아 귀족 |
국가 | 로마 공화국 → 로마 제국 |
가족 | 루키우스 코케이우스 네르바(형제)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아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손자) 네르바(증손자) |
참전 | 페루시아 내전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36년 |
전임 |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티투스 스타틸리우스 타우루스 |
동기 | 루키우스 겔리우스 포플리콜라 |
후임 | 루키우스 노니우스 아스프레나스 퀸투스 마르키우스 크리스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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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과 로마 제국의 군인, 정치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부관이었다가 나중에 옥타비아누스의 부하가 되었다. 네르바 황제의 증조부다.2. 생애
움브리아 지방에서 유래한 코케이우스 가문의 일원으로, 형제로 루키우스 코케이우스 네르바가 있었다. 두 형제는 기원전 39년 집정관을 역임한 가이우스 코케이우스 발부스와 함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지지했다. 기원전 41년 전직 재무관의 자격으로 안토니우스의 프라에토르(Preetor: 군대 지휘관과 선출직 행정관에게 부여되는 칭호)를 맡았으며, 페루시아 내전 때 안토니우스의 동생인 루키우스 안토니우스의 부관을 맡았다가 기원전 40년 루키우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화해를 주선하는 데 성공했다.기원전 39년 루키우스 무나티우스 플란쿠스의 뒤를 이어 아시아 속주 총독을 맡았으며, 기원전 36년 안토니우스의 지원에 힘입어 루키우스 겔리우스 포플리콜라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가 그해 7월 1일에 사임했다. 기원전 31년 시빌라 예언서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퀸데킴비리 사크리스 파키운디스(quindecimviri sacris faciundis)의 일원으로 발탁되었고, 기원전 29년 로마 귀족의 일원으로 편입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아들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는 뛰어난 법률가로 상당한 명성을 떨쳤던 원로원 의원으로, 젊은 시절부터 아우구스투스의 양자이자 후계자인 티베리우스의 몇 안 되는 절친한 친구였다. 그는 오랜 세월 티베리우스의 법률 조언가로 활약했고, 21년(또는 22년) 7월에 집정관에 올랐다. 티베리우스가 카프리 섬으로 은둔했을 때 함께 따라갔다가 33년 그곳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손자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역시 원로원 의원을 맡으면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에 칼리굴라 집권 시절에 집정관을 역임했다. 증손자 네르바는 베스파시아누스와 친하게 지냈고, 베스파시아누스가 이룩한 플라비우스 왕조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도미티아누스와 공동으로 집정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다 96년 9월 18일 도미티아누스 암살 사건이 발생한 뒤 황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