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라틴어: : Publius Cornelius Scipio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제국 로마 |
지위 | 파트리키 |
국가 | 로마 제국 |
가족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살비토(아버지) 스크리보니아(어머니) 코르넬리아(누이) 코르넬리아 아프리카나(딸) |
직업 | 로마 제국 집정관 |
로마 제국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16년 |
전임 | 가이우스 푸르니우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실라누스 |
동기 |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
후임 |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루키우스 타리우스 루푸스 |
[clearfix]
1. 개요
로마 제국 집정관.2. 행적
아버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살비토는 기원전 47년 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아프리카 원정에 동행했다. 당시 메텔루스 스키피오가 이끄는 반 카이사르파는 "스키피오는 아프리카에서 무적이다"라고 선전했다. 카이사르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마침 군대에 있던 그에게 공식적으로 큰 권한을 부여했다.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이 군인을 천막에 함께 두었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심지어 그가 총사령관인 것처럼 그를 군대의 선두에 앞세웠다고 한다. 고대 작가들에 따르면, 그는 모든 측면에서 하찮고 모든 사람에게 경멸받는 사람이었다고 한다.어머니 스크리보니아는 이 스키피오 살비토와 결혼해 그 외에도 딸 코르넬리아를 낳았지만, 모종의 시기에 살비토와 사별하거나 이혼한 뒤 아우구스투스의 두번째 아내가 되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는 그녀가 대 율리아를 낳은 지 얼마 안가서 스크리보니아와 이혼했다. 이후 그녀는 아우구스투스와 리비아 드루실라 부부에 의해 엄격하게 양듁되는 친딸 율리아를 대면하는 것도 허락받지 못하고 조용히 지내다가, 기원전 2년 율리아가 판다테리아 섬으로 추방되었을 때 딸을 따라갔다.
기원전 16년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이때 그의 누이이자 기원전 34년 집정관 파울루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의 아내였던 코르넬리아가 사망했다. 시인 프로페르티우스는 코르넬리아를 위한 애가를 썼는데, 이 시에서 스키피오와 스크리보니아를 포함한 그녀의 가족을 칭송했다. 몇 달 후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집정관에서 물러났고, 루키우스 타리우스 루푸스가 보결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그 후 기원전 12년부터 10년까지 아시아 총독을 역임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딸 코르넬리아 아프리카나는 에퀴테스 신분인 아울루스 율리우스 프론티누스와 결혼했고, 두 부부의 손자인 섹스투스 율리우스 프론티누스는 74~78년 브리타니아 총독을 역임하고 73년과 98년에 보결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전쟁에 사용되는 전술에 관한 저서 <스트라테게마타(Strategemata)>를 집필했다.
기원전 2년 대 율리아와 간통한 혐의로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추방당한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에 대해, 일각에서는 기원전 16년 집정관 스키피오와 동일인물이라고 추정하며, 또다른 학자들은 기원전 16년 집정관 스키피오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