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 라틴어: Gaius Marcius Figulus | |
생몰년도 | 미상 ~ 미상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지위 | 노빌레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증조부)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조부)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아버지) |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64년 |
전임 |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 루키우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
동기 |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
후임 |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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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노빌레스 가문인 마르키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증조부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는 기원전 162년과 기원전 156년에 집정관을 역임했다. 조부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는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서 법률 문제를 상담할 정도로 훌륭한 법학자로 법무관까지 이르렀지만 집정관에 오르지 못했다. 아버지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피굴루스는 이름만 전해질 뿐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집정관과 다른 고위 행정관 사이의 최소 재임 간격을 설정한 법에 의거한다면, 그는 기원전 67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을 것이다. 기원전 64년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학자들은 마르키우스 씨족과 율리우스 씨족 사이에 오랜 정치적 동맹을 맺었기에 집정관 구성이 이처럼 정해졌다고 추정한다. 그가 집정관이던 시기, 원로원은 집정관, 법무관 등 고위 행정관 후보자 수를 제한하기로 결의했다.
기원전 63년 12월 5일 카틸리나 음모에 가담했다가 로마에서 체포된 인사들의 운명이 결정된 원로원 회의에 참석해 그들을 즉결 처형하는 데 찬성했다. 이후 몇년 안가서 사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저서 <법에 관하여>에서 그의 무덤을 언급했으며, 친구 티투스 폼포니우스 아티쿠스와의 서신에서 당대 로마인들이 끝없는 사치를 추구한다는 증거로 이 무덤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