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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유적 의미
소년가장의 원래 의미에 빗대어, 스포츠계나 연예계 등지에서 소속 팀의 경기력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나이 어린 선수, 혹은 유일한 선수, 즉 원맨팀이다.대개 이런 선수가 있는 팀은 높은 확률로 이 선수 1명을 빼면 나머지 선수들의 기량이 눈뜨고 못봐줄 정도의 막장이라 하위권 혹은 간신히 중위권이다. 간혹 성적이 상위권, 심지어 1위라 하더라도 이 가장의 실력이 나머지 서포팅 캐스트에 비해 너무 압도적 차이가 나서 가장이 조금만 삐끗하거나 다쳐서 못나오기만 하면 바로 다른 강팀의 추격이나 업셋을 허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이런 류의 팀은 약팀이건 강팀이건 원맨팀이라는 비난, 혹은 팬들의 자학을 면치 못한다. 게다가 선수도 혹사당하는 만큼 선수 생명에 그리 좋지 않다. 그리고 이런 류의 선수는 99.9% 팀의 노예라고 보면 된다.[1] 한편 소년가장이 성인인 20대가 되면 청년가장으로 진화하게 된다. 여성형 버전으로는 소녀가장(10대), 여인 가장(20대)가 있다.
1.1. 대표적인 소년 가장
1.1.1. 체육계
1.1.1.1. 국내 야구
- 장명부
이 분야의 대선배이자 KBO 역대 모든 소년가장의 시조격 되는 인물로 독보적인 꼴찌팀이었던 삼미 슈퍼스타즈에 특급 선수로 입단하여 1년 뿐이었지만[2] 427⅓이닝 44선발 36완투 30승 16패라는 말도 안되는 기록을 세웠다.[3]
- 최동원
그 당시 롯데 자이언츠에는 선발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최동원은 선발등판하고 다음날 불펜으로 등판하는 식의 연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83년부터 87년까지 5년동안 1,200이닝을 던졌고 데뷔 후 5시즌 연속 200이닝을 던졌는데 특히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의 4승 1패는[4] 선동열의 통산 방어율 1.20과 함께 KBO 불멸의 기록 중 하나로 꼽힌다.
- 최상덕(해태 타이거즈 시절)
1994 시즌 태평양 돌핀스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그는 첫해 13승에 평균자책 2.51(6위)을 올리며 태평양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힘을 보태 앞으로 돌핀스를 이끌어갈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으나 이듬해 장종훈의 타구에 직격당하는 사고를 당한 이후 슬럼프에 빠져 1996 시즌 개막 직전 박재홍의 반대급부로 해태에 트레이드되었다. 이적 후 두 해 동안은 팔꿈치 부상으로 제몫을 못하다가 1998 시즌에 8승을 올리며 재기 가능성을 보였다. 그 후 팀이 자금난으로 오늘내일하던 2000 시즌과 KIA 타이거즈로 바뀐 2001 시즌에 2시즌 연속으로 185이닝 이상 투구하며 12승씩을 기록[5]하여 무너질대로 무너진 타이거즈 마운드의 유일한 기둥으로 활약했다.[6]
- 손민한
롯데의 암흑기를 홀로 짊어지고 간 선발투수. 2005년에는 팀이 정규시즌 5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MVP를 따 내는 기염을 토했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의 롯데 자이언츠 선발진의 성적그리고 게임의 능력치를을 보면 손민한만이 수준급 선발투수의 성적을 내고 있고, 나머지는 10승을 한 투수가 없을 정도로 초토화 되어 있다.
- 류현진
5886899678시기 한화 이글스의 유일한 자랑이자 영원히 고통받던 에이스. 프로 데뷔 1년차부터 트리플 크라운+MVP+신인왕을 쓸어담았으며, 2년차에도 2년 연속 200이닝을 찍고 탈삼진 1위를 수성하며 맹활약했다. 그래도 1~2년차때는 한화의 투수진이 탄탄했기에 류현진이 독박쓰지는 않았었다. 허나 정민철, 송진우, 구대성 등의 베테랑 투수들이 노쇠화하며 이탈하기 시작한 2008년부터 류현진은 홀로 팀의 투수진을 떠맡는 소년가장이 되었다. 심지어는 한화의 야수 뎁스마저 극도로 얇아지며 타선의 지원도 받지 못했고, 수비는 심각한 수준이라 류현진의 부담을 더 무겁게 했다. 그런 와중에도 류현진이 괴력을 발휘했지만 한화의 탈꼴찌를 막지는 못했다. LA 다저스 입단 후에도 2013년 시즌 초기에는 소년가장 역할을 하였다.
- 손아섭
2013년 한정.
- 이태양(1990년생)
588689967을 기록하면서 초토화된 한화 이글스 토종 선발진을 홀로 이끌고 있다시피 하다. 특히 이태양이 활약한 2014년과 2016년에는 용병 농사까지 망해서 에이스 놀이까지 해야 했을 정도.
- 브렛 필
KIA 타이거즈의 용병 타자로 2014년부터 뛰었지만, 중요한 순간에 해결사 능력이 아주 돋보이는 선수. 605 대첩에서 손등에 공을 맞춰 아작낸 배 모씨만 아니었어도 2014년에 훨씬 좋은 성적을 거뒀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KBO 리그 2년 차인 2015년 6월 9일 현재 결승타를 7개 기록중인데, 특히 만루상황에서 아주 강하다.[7][8]
- 브룩스 레일리
2015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조쉬 린드블럼과 원투펀치역할을 하다가 2018년 린드블럼이 두산 베어스로 이적 후 명실상부한 1선발로 자리잡았고 2019년에는 좋은 모습에도 팀의 저조한 득점지원과 수비실책에 승리를 챙기지못하고 꾸준히 패전을 기록하면서 레크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구자욱
2016년 박석민과 나바로가 이적하고 시즌 삼성의 타선이 부진에 빠지자 당시 1번이였던 구자욱을 3번으로 이동시켰다. 이 후 구자욱을 중심으로 타선이 짜임새가 맞춰 졌다. 특히 삼성의 타선의 혈이 막혔을 때나 안풀리는 경우가 많지만 계속해서 구자욱이 장타를 생산하며 득점과 타점을 꾸준히 올려주고 있다. 현재는 4번타자인 최형우도 살아나면서 3번으로 이동시킨게 적중하였다. 그러나 부상으로 빠진 6월부터 팀이 심각한 부진을 겪다가 8월 복귀 이후 승률이 거의 5할대가 되어간다. 2017년 시즌 4월에는 팀에서 바라는 홈런타자의 모습하고는 상성이 맞지 않는 듯하며 부진했지만, 5월에 원래 페이스를 찾아가면서 홈런, 타율, 타점 등등이 팀 내에서 모두 1위다. 설상가상으로 2018년부턴 팀의 대들보도 이젠 없다. 과연 소년가장...[9][10] 그러나 2020년 이후로 타선이 보강되고 2022시즌 구자욱이 부진하며 한때 원태인으로 넘어가나 했으나 2023시즌 타선이 약화되고 구자욱이 준수한 성적을 내며 그냥 가장이 되었다.
- 2018년의 나성범
NC 다이노스가 창단 처음으로 꼴찌를 기록하고 타선 역시 역대 최악을 찍는 등 그야말로 답이 없는 상황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100득점을 달성했다.
- 이정후
이정후의 경우 이정후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좋지 못한 팀 뎁스에도 불구하고 이정후의 활약으로 매년 가을야구권을 전전하는 성적을 내고 있으므로, KBO 리그 역사에 남을 소년가장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 강백호
고졸신인이지만 소속팀인 kt wiz가 워낙 성적이나 흥행 면에서 약세를 보이다 보니 팀의 중심타자와 흥행 카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러나 2020년대 이후로 kt가 강팀이 되고 반면 강백호는 껌백호 사건 이후로 계속 하락세이다 보니 이러한 이야기가 줄어들었다.
- 원태인
구자욱 이후로 삼성을 대표하는 소년가장이다. 전체적으로 삼성의 투수진은 수준이 낮으며, 리그 평균 구속보다 2km나 팀 평균 구속이 낮은 등[11] 스터프가 매우 떨어진다는 큰 단점을 가지고 있어서 리그 평균보다 좋은 스터프를 보여주는 팀 내 유일한 토종 선발 투수인 원태인은 큰 기대를 받고 있으며, 실제로 최채흥이 부진 이후 입대하고 백정현이 다시 과거의 불안한 모습으로 회귀한 현 삼성에서 유일하게 솔리드 스타터급 활약을 보여주는 토종 선발 투수이기도 하다.
- 에릭 페디
2023년 사실상 붕괴한 NC의 선발진을 지탱해준 유일한 선수이다. 페디가 없었다면 NC는 하위권에 있을 것이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페디의 캐리로 봐도 무방할 정도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1.1.1.2. 해외 야구
- 마이크 트라웃
풀타임 첫 시즌인 20세 때부터 팀 내 최고 선수로 활약했으며, 팀이 하위권으로 추락하던 2010년대 중반부터는 사실상 팀 타선을 홀로 책임지다시피 하고 있다. 현 세대 최고의 야구선수로 인정받는 현재 LA 에인절스의 거의 유일한 자랑거리이다.
- 월터 존슨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세 자릿수 완봉승 기록인 110완봉승을 기록했는데, 그의 소속 팀이었던 워싱턴 세너터스가 너무 약체였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다 완투패 / 최다 0 : 1 완투패 기록까지 동시에 갖고 있다. 심지어 110번의 완봉승 중에서도 38번이 스코어 1:0 완봉승으로 이 부분에서도 1위. 그래서 불펜과 타선이 얼마나 못했는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추신수
2010 시즌까지는 처참한 팀 타선에서 고군분투했으나 정작 타선이 살아났던 2011 시즌에는 오히려 본인이 부진하였다.
- 클레이튼 커쇼
2013년 잭 그레인키가 LA 다저스로 영입되면서 2선발 그레인키와 원투펀치를 이루고 3선발 류현진도 준수한 활약을 하며 소년가장을 벗어났으나 2015년 그레인키가 6년 2억 650만 달러라는 사상 최대 계약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이적하고 류현진이 어깨부상으로 시즌아웃되고 2년 쉬면서 소년가장 역할을 하게 되었다.
- 오타니 쇼헤이
마이크 트라웃, 앤서니 랜던 등 팀 내 주축 선수들의 장기 부상으로 홀로 집중 견제를 받으면서도 2021년 투타겸업으로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만한 몬스터 시즌을 보내고 있다. 타자로는 무려 45홈런을 기록했고, 투수로는 제1선발을 맡으면서 팀 내 최다 이닝과 최다 승수 등을 책임지고 있다. 이렇게 야구계에서는 매우 보기 드물게 투수와 타자 양면에서 LA 에인절스의 소년가장 역할을 맡고 있다.[12]
1.1.1.3. 국내 축구
- 오현규(수원 삼성 블루윙즈)
22년에 득점난에 시달리던 팀의 고민을 완벽하게 해결해주고,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떨어진 상황에서도 극장골로 팀을 잔류시키며 온 수원 팬들한테서 눈물을 뽑아냈다.
- 김주찬(수원 삼성 블루윙즈)
어째 이 팀은 매년 소년가장이 팀을 먹여 살린다
- 유병수
인천 유나이티드 FC 시절. 결국 사우디로 도망갔다(...).그리고 또 러시아로 도망갔지
인천 시절 유병수는 그 전의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방승환 라돈치치가 이적하고 드라간이 노쇠화하여 '왜 대체자로 듣보잡 신인이나 데려오나?'라는 소리를 들었으나, 데뷔전부터 그 소리를 씹어먹고 오히려 팀이 병신이라 미안해 소리를 들을 정도의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2010년은 절정으로, 이렇다할 공격자원이라고는 유병수 뿐인 인천이 역대 최다득점 기록을 세우는데 공헌했다.
1.1.1.4. 해외 축구
- 알레샨드리 파투(AC 밀란)
소년 가장이라는 표현을 양지로 나오게 한 인물. 2009년 3월 스포탈코리아의 구자윤 기자가 파투의 눈물겨운 고군분투를 KT의 이영호에 빗대어 기사를 쓴 것이 그 시초가 되었다.
- 카카(AC 밀란)
위 파투의 선배이자 실제 원조 소년가장 케이스로, 파투 앞시기에 파투 못지 않게 6년동안 밀란에서 빡세게 혹사당하면서 밀란을 이끌었었다. 그리고 밀란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최고 이적료 기록을 세우며 옮긴뒤 먹튀로 장렬히 산화해 먼 친정사랑(...)까지 실천했다.
- 웨일스 축구 국가대표팀
- 라이언 긱스(과거): 본인은 맨유에서 20년씩이나 뛰었고 국대에도 헌신했지만 웨일스 자체가 약체라... 결국 단 한 번도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한 채 2007년 국대에서 은퇴했다.
- 가레스 베일(현재):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이케르 카시야스(레알 마드리드 CF)
파본 정책 시절, '수비진' 한정 소년 가장.
- 조지 웨아(라이베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웨일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본인은 발롱도르 역사상 최초의 비유럽인 수상자에 오르는 등 월드 클래스를 자랑했던 선수였으나, 국적이 라이베리아라 한 번도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때는 본선 진출을 위해 본인이 주장에 감독까지 맡아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 승점 1점이 부족해 지역 예선 통과에 실패했다. 라이베리아 국민들은 어떻게든 원망할 대상을 찾아야 했는데, 웨아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서 달리 눈에 띄는 대상이 없었는지(...) 웨아를 비난하고 나섰고, 빡친 웨아는 즉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다. 이후 축구계를 떠나 정계에 몸담기 시작해 2018년 라이베리아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 네이마르 주니오르(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본인은 FC 바르셀로나의 세계 최강의 공격진인 MSN의 일원이고 영원한 우승 후보이자 월드컵 최다 우승국인 브라질의 에이스 선수다. 하지만 브라질은 예전과는 달리 공격진이 많이 빈약해져 네이마르에 의존하는 팀이 되어 버렸다. 2014년 자국 월드컵에서 네이마르는 에이스다운 활약으로 브라질을 4강으로 이끌었으나 8강전에서 후안 카밀로 수니가의 니킥에 따른 척추 부상으로 아웃되자 다음 경기에서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극이 터지며 울분에 떨어야 했다. 이듬해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퇴장을 당하고 징계를 받으며 남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브라질은 8강에서 무기력하게 탈락한다. 2016년 현재도 네이마르의 소년가장 모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와일드카드 출전으로 코파 아메리카에는 불참했는데, 네이마르가 없는 브라질은 남미의 그저 그런 축구 대표팀으로 전락하며 조별 리그에서 광탈했다. 하지만 자국에서 열린 2019 코파 아메리카에서 부상으로 또다시 불참했지만, 브라질은 그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우승하면서 여기서 벗어날 가능성이 생겼다.
- 마테오 코바치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시절 한정. 이 때의 코바치치는 그야말로 아이돌 그 자체였다.
- 페데리코 키에사(ACF 피오렌티나, 유벤투스 FC): 피오렌티나 2세 트리오 중 제일 존재감 있다. 그도 그럴 게 얘 이전 피오렌티나 성골 유소년 선수가 통수 치고 유벤투스 간 것 때문에 피오렌티나는 성골 유소년 굳히기에 들어가 21세에 주장 달기 시작했다.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2008~2014년): 축덕들은 아예 포르투갈을 '날두국'이라고 한다. 다만 이는 루이스 피구와 후이 코스타로 대표되는 속칭 "황금 세대"가 은퇴한 직후에 제일 어울리며, 포르투갈은 나니, 히카르두 콰레스마, 주앙 모티뉴, 페페, 후이 파트리시우 등이 호날두를 충실히 받혀주며 UEFA 유로 2016 우승에 성공했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16강에 드는 등 2010년대 중반부터는 소년가장 팀이라고 불리기엔 조금 어폐가 있다.
무엇보다 호날두가 이젠 소년이라 불리기엔 너무 늙기도 했고
- 브루노 페르난데스(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맨유에 입단하자마자 팀의 공격을 책임지면서 팀을 챔피언스 리그 진출로 이끌었다.
- 케빈 더 브라위너(맨체스터 시티 FC): 팀의 공격력이 이전만큼 위협이 되지 못해 부진하고 있는 와중에도 더브라위너 만큼은 폼을 유지하며 팀의 공격 전개를 홀로 책임지고 있다.
-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위의 메시, 네이마르, 호날두보다도 의존도가 심한 편이다.
- 스티븐 제라드(리버풀 FC): 리버풀의 심장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야말로 답이 없던 시절의 리버풀을 이끌고 리그 우승 빼고 모든 걸 이루어내었다. 리중딱이라는 별명은 제라드라도 있었기에 리강딱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1.1.1.5. 농구
- 디르크 노비츠키
독일 농구 국가 대표팀 나머지 선수들과의 기량 차이가 워낙 넘사벽이다. 그래서 노비츠키는 국가 대표 출전을 거의 거른 적이 없다.
- 김선형
입단 이후 타고난 스타성과 함께 관중들을 매료시키는 압도적인 스피드와 화려한 테크닉들을 앞세워 SK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런데 매경기 거의 풀타임을 출장하는데다 문경은 감독이 문애런, 문선형이라고 불릴 정도로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심각하여 대체자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지라 대형 FA를 영입하거나 김선형 본인이 SK를 떠나지 않는 이상 소년가장 자리를 탈출하긴 어려워 보인다. 15-16시즌이 끝난 이후 5년간 연봉 6억이 조금 넘는 FA 계약을 했고, 박승리의 귀화 실패 및 그나마 얇던 스쿼드마저 지난시즌보다 더 빈약해져 버렸기 때문에 한동안은 SK의 소년 가장으로 남게 될 듯 하다.
16-17 신인드래프트에서 빅3 중 하나로 평가받는 최준용을 뽑는데 성공했으니 집중 수비견제를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있을 줄 알았는데 본인의 공격과 어시스트 사이의 딜레마가 심하고, 팀 사정상 최준용이 정형화된 포지션 롤을 수행하지 못하면서 공격력이 감소했다. 게다가 테리코 화이트가 무릎 부상이후 경기력 기복이 심해짐에 따라 기어이 소년가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다음 시즌인 17~18시즌에는 나머지 팀원들이 최고조의 기량을 선보이면서 챔프전을 우승하며 소년 가장에서 탈출했다. 다만, SK 입단 이후 누적된 소년가장 생활탓에 본인도 큰 부상을 당해 현재시점인 2018년에는 그 후폭풍을 맛보면서 기량이 떨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이후 30대 중반에 다시 기량을 회복했다. 최준용도 기량이 만개하여 21-22시즌 정규시즌 MVP를 받았고, 김선형은 21-22시즌 챔피언 결정전 MVP를 먹으며 우승을 차지하며 소년가장에서 벗어나 이상적인 시즌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22-23 시즌에는 최준용이 부진을 겪다가 부상아웃당하며 김선형이 노년가장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외국인 선수 자밀 워니가 맹폭해주고 있어서 다행.
- 2014-15 시즌의 김준일
가드 왕국이라고 불리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가드진들이 삽질을 해대는 와중에도 삼성에서 평득 10점 이상을 찍을 수 있는 유일한 국내선수인 탓에 농구팬들에게 동정표를 많이 얻게 되었다. 소년가장 역할에 매우 충실해서 공격스탯은 잘 쌓았기 때문에 친구이자 라이벌인 이승현과 함께 박빙의 신인왕 경쟁을 벌였다. 그래도 15-16시즌에는 구단이 쇼미더머니를 열심히 한 탓에 리카르도 라틀리프, 문태영 등 확실한 공격옵션을 보강했기에 소년가장에선 벗어났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본인이 낮은 BQ로 인해 공격에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 리카르도 라틀리프
모비스 1기 시절에는 3-peat에 공헌한 준수한 외국인 선수로만 평가받았으나,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전성기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어 소속팀에서 줄기차게 굴려지고 있다. 철인으로 소문난 라틀리프 마저도 혹사의 영향으로 17~18시즌을 절반정도 결장하게 되었고, 그 결과 6강에 실패하였다. 2018년 특별귀화로 '라건아'라는 이름을 짓고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여 시즌 중 2018 아시안 게임 국대로 선발된 이후에는 김종규, 이종현, 오세근이 없는 와중에 골밑을 안정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소년가장이 되었다. 대표팀에서 혼자서 뛴다고 들을만큼 뛰어난 활약을 하고[16] 8강전에서 필리핀을 꺾고 4강 진출에 성공했으나 4강전에서 이란을 만나 37득점, 12리바운드를 기록하고도 라틀리프에게만 의존한 결과 대패하여 금메달 획득을 실패하였고 대표팀의 병역 특례도 좌절되었다. 결국 2018 아시안 게임 농구대표팀은 3,4위전에서 대만을 이기고 동메달에 그쳤다. - 조성민
농구단에 대한 소극적인 투자로 유명한 KT에서의 유일한 FA 잔류자로, 매경기 시원한 3점슛과 야투감각을 보여주면서 팀내 에이스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KT 팬들에게는 신적인 대접을 받고 있다. 팀의 공격과 수비의 핵심인 탓에 조성민이 해야 할 역할이 과중되어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났고, 그 결과 매해마다 부상이 누적되어 시즌 중 10경기 정도는 거르게 되는 편이다. 한편 15-16시즌에는 오용준이 SK로 떠나고, 전창진 전 감독이 본인이 꼭 살려내겠다고 선언한 이광재는 뜬금포마저 안터지는 최악의 슛컨디션을 달리고 있어서 팀 내에서 3점을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슈터가 되어 버렸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심했던 견제가 더욱 심해져 팀의 외곽 공격이 정말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깨기위한 전략마저도 없다. 사실 언급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15-16시즌 길렌워터 못지 않은 KBL 극한직업 중 한 사람. 15-16시즌이 끝나고 FA로 김종범과 천대현이 영입되었으니 조성민이 짊어진 공수부담을 얼마나 떨쳐낼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과연 조성민은 소년가장을 탈출할 수 있을까??
어쨌든 16-17시즌 도중 팀을 탈출해서 소년가장 자리도 탈출할 줄 알았는데......LG도 김종규가 부상으로 빠지게 되자 다시 소년가장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렸다. 김종규가 복귀하자마자 공격밸런스가 최고조로 맞아떨어져 5연패 뒤 2연승을 하여 6라운드로 접어든 시점에서 전자랜드와 6강 경쟁을 하는데 큰 보탬이 되고 있다. 후임 감독 시대로 접어든 17~18시즌 부터는 그의 양아들 사랑덕에 본의 아니게 소년가장에서 탈출하긴 했으나 시즌이 끝나고 5억원에 재계약하여 농구팬들은 이런 황당한 계약을 저지른 엘런트에게 의문을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 정영삼
위 문단의 조성민과 비슷한 느낌으로 구단의 열악한 재정상황과 빈약한 스쿼드 때문에 전천후역할을 다 수행해내면서 몸에 조금씩 문제가 생기고 있다. 특히 팀내 2, 3번의 공격 첨병이던 차바위, 김상규의 군복무 및 좋지 못한 외인 공격옵션으로 인해 정병국과 함께 공격부담이 너무 커져 가뜩이나 유리몸 소리 듣던 이미지가 더 심해져버렸다. 하지만 팀 내 국내 선수 중 실질적으로 매경기 평균 10득점이 가능한 유일한 선수이자, 유도훈 감독도 문애런, 문선형 소리를 들을 만큼 쓸놈쓸 정책으로 일관하기 때문에 소년가장 자리를 탈출하긴 힘들어졌다.
지나치게 높은 비중은 팀의 상황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공격 부담을 줄여주어야 할 다른 선수들을 기용하여 스쿼드를 다양화시켜야 했지만 D리그 르브론이라 불릴 정도로 1군에서의 공격 역할도 어느 정도 기대가 되었던 박진수가 은퇴를 선언하고, 반쪽짜리 역할밖에 못하지만 그래도 공격부담을 덜어줄 3,4번 역할을 수행할 함준후는 이대헌과 트레이드로 인해 SK로 떠난데다가, 미드레인지 및 3점슛에서 가능성을 보여주어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꼽히던 한희원마저 KGC로 떠나는 바람에 오히려 15-16시즌보다 공격부담이 더 커질 위기에 봉착해있어 더욱 소년가장 역할이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진심 박찬물하고 트레이드할거면 한희원을 왜 줬냐 어차피 다음시즌 FA인데심지어 박성진은 안치우고 수많은 유망주들을 2군에서 썩히지를 않나 타팀에 보내버리질 않나 이게 뭐하는 짓이야
다행히 16-17 신인드래프트에서 빅3 중 하나로 평가받는 강상재를 뽑는데 성공해서 공수부담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16-17시즌에서는 김지완과 김상규가 나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어 혹사당하는 모습이 없이 20분 내외로 출전시간을 부여받고 있다.
- 양동근, 김주성
국내 가드, 빅맨 레전드인 두 명은 신인때부터 팀과 국대를 안거르고 전대미문의 혹사를 당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두 선수에 대한 팀의 의존도가 매우 심각하다는 점에서 소년가장 취급을 받는다. 16-17시즌 기준 양동근은 FA 재계약으로 3년, 김주성도 마찬가지로 2년의 기간이 남아있는데, 이 두 선수들이 팀 내 소년가장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할 경우, 대체전력을 육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동안 암흑기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결국 양동근이 부상당한 16-17시즌의 모비스는 함지훈이 새로운 소년가장이 되어버렸고 하위권을 맴돌고 있었지만, 양동근이 합류하면서 PO권의 성적을 내고 있다.
1.1.1.6. 배구
- 서재덕
한국배구 전통의 약팀 한국전력에 11-12시즌 입단, 입단 시즌부터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팀원의 절반이 날아가기도 하는 아수라장에서 자연스레 소년가장이 되어 팀을 캐리했다. 시즌 후반 부상으로 시즌아웃되며 13-14시즌 입단한 전광인에게 잠시 소년가장 역할을 넘겨주었다. 사실 넘겨주었다기도 뭐한 것이, 전광인이 몰빵하여 공격을 때리는 만큼 서재덕은 수비를 죽어라 받았다. 그냥 소년가장 쌍두마차였던 셈. 전광인이 현대캐피탈로 이적하면서 한전의 유일한 소년가장 타이틀을 돌려받았다. 18-19시즌 한전 상황은 정말 눈물겨운 수준이었음에도 서재덕 홀로 빛났다. 그리고 군대에 입대하면서 소년가장에서 탈출했고, 그의 군입대 기간동안 이루어진 대대적인 트레이드와 선수단 개편으로 돌아온 구단에서는 기존에 비해 훨씬 나은 환경에서 행복배구를 하고 있다.
- 전광인
2011년 국가 대표팀에 발탁된 이후 소속 팀과 국가 대표팀을 오가며 혹사를 당하고 있다. 공격+수비 능력이 워낙 출중해 소속 팀에서 몰빵을 당하고 있는 실정. 13-14시즌 한전에 입단한 이후에는 이전 소년가장이었던 서재덕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구르고 있다. 데뷔 시즌에 경기당 평균득점 20득점을 찍으며 맹활약했다. 다른 주포들은 수비부담이라도 적은데 이 선수는 수비에서까지 굴러다니는 것이 안쓰러울 정도. 데뷔 시즌 이후에는 그래도 외국인 선수들이 제몫을 해주며 소년가장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국내선수치고 엄청난 비중을 차지했다. 18-19시즌 현대캐피탈로 이적하며 서재덕에게 한전 소년가장 자리를 다시 넘겨주고 떠났다.
1.1.1.7. 수영
- 박태환
우리나라에서 수영은 남녀노소 누구나 배울만큼 대중적인 스포츠 중 하나이지만 정작 국제대회와는 인연이 전혀 없었다. 박태환이 불모지인 한국 수영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며 영웅으로 떠올랐고 유일하게 각종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내며 현재는 대한민국 수영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박태환을 제외하고 눈에 띄는 선수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데 애초에 한국 수영은 아시안 게임을 제외한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낸 선수가 전무한 불모지였기에[17] 다른 선수가 못한다기 보다는 박태환이 너무 뛰어났다고 보는 것이 맞다. 수영선수로서의 전성기가 끝난 이후에도 전국체육대회에서 박태환을 상대할 만한 선수가 전혀 없다가…. 다행히도 그가 은퇴 수순을 밞은 이후 황선우가 등장하여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1.1.2. e스포츠계
1.1.2.1. 스타크래프트
- 이영호
예전부터 탄탄했던 팀의 기존 선수들이 기량 하락을 겪으면서 침체기를 겪은 와중에 발굴된 새로 떠오른 에이스.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3라운드에 들어서 kt 롤스터 선수들이 많이 선전해서 이제서야 가장에서 벗어나는가 싶었으나, 4라운드 들어서 KT의 연이은 부진으로 다시 소년 가장 모드로 들어섰다.1승만 하라고 스막 시발들아하지만 4라운드 마지막에 이영호가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패배함으로 대 하이트 스파키즈전에서 이영호 없이(!) 팀원들이 삼대 떡 스코어를 만들어냈다. 거기에 5라운드 웅진 스타즈 전에서는 이영호 혼자 지고 팀원들이 이겨서 3:1로 승리. 그리고 프로리그 09-10 결승전에서 KT 토스의 활약과 이지훈 감독의 신의 엔트리 작렬로 KT는 이영호 원맨 팀이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벗었나 싶었다.
하지만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시즌 도중 박지수와 우정호가 각각 은퇴와 백혈병 투병[18]을 이유로 로스터에서 빠지면서 심각한 공백이 생겼고, KT가 1~2라운드에서 처참한 성적을 내며 패를 거듭하면서 심각한 부진에 빠져 있었고, 위너스 라운드에서 그나마 팀이 살아나면서 5라운드 끝에는 공동 2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가장이 될 위험은 높았다. 그리고 2011년을 기준으로 그는 20대로 들어서면서 청년 가장이 되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KT는 이영호가 청년 가장인 팀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팀원들이약이라도 빨았는지활약을 하면서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결승전에서 우승했다는 거. 그리고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 1 결승전에서는 이영호가 2패를 하고 정규 시즌에서 잉여라인 취급을 받던 KT 저그가 세 세트를 따냈다는 것.정규시즌에도 잘 해주면 안 되겠니?그리고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 1에서는 김대엽의 활약 덕분에 청년가장을 면했다.
다소 의외인 점은 다른 동료들이 포스트시즌에는 꽤나 활약했다. 09-10 시즌 결승에서는 이영호가 6세트에 출전하기 전 이미 세트스코어 3:2로 라이벌 T1에 우위를 점했다. 10-11 시즌에는 포스트 시즌에 각성한 고강민과 정규시즌에도 든든히 이영호의 뒤를 받쳐준 김대엽-김성대가 활약했다. 결과적으로 이영호를 뺀 다른 동료들이 23승 19패를 기록하며 제 몫을 다했다. 최후의 only 브루드 워 프로리그였던 SK플래닛 시즌1에서도 고강민-김대엽 등 이영호를 제외한 동료들이 17승 11패를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다만 위너스 리그 포스트시즌에서는 여전히 이영호가 소년가장 원맨캐리 롤이었다. 08-09 위너스 리그 포스트시즌에서는 이영호가 0승 2패로 부진하며 광탈했지만, 이어진 09-10 위너스 리그 결승에서 이영호가 3킬을 기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10-11 위너스 리그에서는 팀원들이 T1저그 이승석 1명에게 쓸려나가버리는 바람에 4세트에 출전해서 이승석의 올킬을 저지했으나, 4세트에 출전한 바람에 5세트 맵이었던 테란의 무덤 '아즈텍'에서 김택용에게 패배했다.[19]
하지만 스타크래프트 2와 병행하면서 진행되는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시즌 2. 여기서는 이영호 뿐만 아니라 김대엽, 임정현[20] 등의 에이스들조차 부진에 빠졌다 살아났다 기복을 거치다 결국 정규 시즌을 7위로 마무리,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게다가 옥션 올킬 스타리그 2012 듀얼 이상 진출한 선수, 2012 HOT6 GSL Season 4 코드 A 이상 진출한 선수는 팀 내에서 이영호 뿐이다.
- 이제동
르까프 오즈 시절에는 기존의 에이스였던 오영종이 함께 원투펀치 역할을 해줬으나, 2008년 그가 공군 ACE로 입대하였고 준수한 활약을 하던 박지수마저 KT로 이적하면서 결국 우려하던 청년가장이 되어버렸다. 특히 화승 오즈 시절에 이르러선 혹사 수준으로 사실상 혼자서 팀을 이끌게 되었는데, 이제동이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큰 관계로 이제동 원맨팀이라는 이미지가 상당히 강했다. kt 롤스터의 라이벌 이영호가 그랬듯이, 프로리그에서 주로 본인만 승리하고 팀은 패배를 거듭하였다. 그나마 이제동의 뒤를 바치며 버팀목 역할을 해주던 손찬웅, 손주흥이 부진에 빠지고 위너스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하던 구성훈은 10-11 시즌에 이르러선 큰 기복을 보였다. 또 박준오가 작은 북으로 떠오르면서 희망이 보였으나 역시나 기복을 드러냈고, 일명 화승토스라고 불리던 팀 내 프로토스 라인의 심각한 부진이 안그래도 빈약한 화승의 엔트리를 더 암울하게 만들던 결정적 원인이었다.
특히 대표적으로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8-09를 예로 들 수 있는데, 2009년 3월 22일 위너스 리그 08-09 플레이오프 kt 롤스터와의 경기에서 이제동은 팀에 1승만 맡기는 것도 불안했는지 끝내 KT 대장 이영호까지 제압하며 포스트시즌 최초 선봉 올킬을 달성, 화승 오즈를 결승전에 멱살 잡은 채 끌어올려 놓았다. 이어서 2009년 3월 28일, 위너스 리그 08-09 결승전 CJ 엔투스와의 경기에서 또 다시 선봉으로 나온 이제동은 김정우, 변형태,마모씨까지 차례로 압살하며 3:0 세트 스코어를 기록, 소속팀 화승의 위너스 리그 첫 우승에 단 1승만을 남겨 뒀었다. 4세트에서 조병세를 만나 5드론이라는 극단적인 빌드를 갈기며 뒤를 맡긴 채 내려온 이제동은 이후 화승 팀원들 중 아무도 1승을 해주지 못해서 귀신같이 3:4 역전패를 당하며 준우승을 하였다(...).1승만 하라고 스막 시발들아
그렇게 홀로 계속 팀을 이끌다 2011년 말, 화승 오즈가 해체되는 상황까지 맞이한 이제동은 본의 아니게 제8게임단[21]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해체된 다른 팀에서 건너온 염보성, 전태양 등 나름 준수한 선수들이 있었기에 드디어 청년가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는데… 이제동은 화승에서의 청년가장의 명성을 제8게임단에서도 이어 나갔다.[22] 그러던 2013년 말, 이제동은 스타크래프트 2 전향 후 북미 지역의 Evil Geniuses로 해외 이적[23]하게 되면서 지독히도 따라 붙었던 청년가장 역할을 떼어낼 수 있게 됐다.
- 이윤열
비스폰 팀이었던 SG 패밀리에서[A] 시작해서[25] 팬택앤큐리텔 큐리어스-팬택 EX 시절의 이윤열은 프로리그 개근상을 받아야 할 정도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혼자 팬택 3년 먹여 살렸고, 2005년 초에는 개인 리그/프로리그 모두 결승까지 갔고 안기효가 아웃되어도 임요환, 박태민 혼자 물리쳤으니 이건 뭐…. 2004년부터 2006년까지 팬택 이윤열은 전체 출전의 40%를 담당했으며, 팀 전체 승수의 46%를 챙겼다. 단적인 예로 2006년 전기리그에서 팬택이 거둔 성적은 6승 4패이며, 이 중에 5승이 3:2의 스코어였고 모두 이윤열의 하루 2승으로 챙겼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팀이 2007년 8월 위메이드에 인수되어 위메이드 폭스로 바뀐 후 이윤열은 당시 최고액인 3년 6억 9천만원(연봉 2억 3천만원) 계약이라는 높은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2010년 스타크래프트 2 전향을 위해 팀을 떠났으며, 이후 1년 뒤에 위메이드 폭스는 해체되었다.[26]
- 박성준
비스폰 팀이었던 POS 시절[A] 팀플, 개인전은 물론이고 랜덤까지 뛰었다. 그리고 랜덤 테란으로 조용호를 불꽃 러시로 격파했다. 팀당 경기가 10경기인 시절 박성준은 50경기 넘게 출전했다. 설명이 더 필요한지? 이제동, 이영호를 뛰어넘는 단기 혹사의 레전드. 이고시스와의 스폰완료 후 POS 팀명으로 활동하던 팀은 2006년 3월 MBC GAME에 인수되어 MBC GAME HERO로 바뀐 후 2006년 전기리그 준우승, 후기리그 우승, 통합 챔피언전까지 우승하며 팀은 전성기를 맞게되었고, 박성준은 이에 따라 높은 대우를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2007년부터 모기업인 MBC GAME의 자금난과 신인 선수들의 등장으로 활약에 비해 아쉬운 4000만원이라는 크게 삭감된 연봉을 제시받게 되고 이에 실망한 박성준은 6000만원을 제시한 SK텔레콤 T1으로 이적하면서 팬들은 게임단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었다.[28] 그 후에도 모기업의 자금난으로 에이스였던 김택용이 SK텔레콤 T1으로[29], 이재호가 웅진 스타즈로 이적하면서 약팀으로 전락했다가[30] 모기업 MBC 플러스가 게임채널을 운영하는 것을 포기하고 MBC MUSIC으로의 전환이 확정되면서 MBC GAME HERO는 2011년 8월 31일 해체되었다.
- 오영종
비스폰 팀이었던 Plus 시절[A] 만년 하위였던 팀에서 에이스 역할을 하고 So1 스타리그 2005 우승을 계기로 르까프에서 팀을 인수하여 르까프 오즈 창단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르까프 오즈 시절에는 이제동과 함께 원투펀치로 활약하면서 2007년 전기리그 준우승, 후기리그 우승, 통합 챔피언전까지 우승하여 전성기를 맞게 되었고 이때부터 오영종에 이어서 이제동이 팀의 에이스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2008년 조정웅 감독과의 불화설에 팀이 부진에 빠지다가 오영종은 공군 ACE로 입대하였고 2010년 제대 후 화승 오즈에 복귀했으나 화승은 주전 선수들의 이탈과 부진으로 이제동 혼자 팀을 이끌던 답이 없는 상황에 있다가 복귀한 지 1년도 채 안된 2011년 8월 31일 화승이 게임단 운영을 포기하고[32] 팀이 해체되면서 결국 게이머 은퇴를 하였다.
- 민찬기
그가 공군 ACE에 있던 시절의 선임 테란 게이머들이 한동욱, 차재욱, 서지훈이었는데, 이들은 당시에 이미 전성기가 훨씬 지났다는 평을 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민찬기가 테란 라인에서 청년 가장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33] 그러다가 이성은, 변형태가 새로 들어오면서 상황은 많이 나아졌고 테란 라인의 에이스 자리가 이성은에게 넘어갔다.
- 송병구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때 팀 전체가 최악의 부진을 겪으면서 청년 가장 소리도 들었다. 2라운드 들어서 허영무 등이 다소 회복했으니 다행이었으나 그런데 문제는 자신도 스막화 상태로 돌입했었다.
하지만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부터 자신도 살아나고 팀의 신예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그 어느 누구도 그를 가장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 신상문
하이트 스파키즈 시절에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된 선수들이 대부분 주전급 선수들이었으며, 이명근 감독은 직무 정지를 당했고 단장은 해임돼버린 상태에서 그야말로 홀로 팀을 지탱해야 하는 상황이었다.[34] 이러한 와중에도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2에서 8강까지 가 팀의 마지막 공식전 경기를 기록했으며[35], 그 뒤 온게임넷 모기업인 온미디어가 CJ그룹에 인수됨에 따라 팀도 CJ 엔투스와 합병되면서 소년가장에서 완벽히 탈출했다.
- 이신형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5라운드부터 팀의 투 펀치였던 김윤환과 김구현이 부진하는 바람에 모든 에결을 도맡아 하는 등 급 소년가장 모드가 되었다. 그나마 백업카드인 신대근, 김윤중, 김성현이 있었기는 했기 때문에 이영호나 이제동급으로 가장 노릇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 1에서는 이신형 자신이 급속한 테막(6전 전패)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가장 소리를 듣기는커녕 거품 소리를 들었다. 이는 시즌 2에서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기막힌 것은 방송 경기에서의 계속된 패배로 인해 연습실에서는 신인왕, 다승왕을 휩쓸면서 STX SouL 신흥 소년 가장에 등극한 조성호도 때려잡건만 막상 방송 경기에 나오면 자신감이 하락해서 경기를 계속 말아먹었던 것(…).
1.1.2.2. 스타크래프트 2
- 박수호
스타크래프트 2에 있어서 가장 대표되는 소년 가장. GSTL May 4강에서 혼자 oGs 선수 3명을 상대로 승리해 팀을 결승에 올리고 결승에서도 김동주랑 문성원이라는 손가락 안에 꼽히는 테란들을 상대로 분전했고, 2011 GSTL Season 1에서는 oGs를 상대로 3:1의 스코어에서 출전해 4:3으로 역전, SlayerS와의 2차전에서도 3:1인걸 다시 재역전시켰다.1승만 하기냐 스막 시발들아???:그래도 1승이 어디냐준플레이오프에서는 IM의 안호진한테 3:0으로 밀리는걸 출전해서 3:3까지 돌려놓기까지 했다. 게다가 온게임넷 옥션 올킬 스타리그에서도 16명 중 단 둘 뿐인 저그로 출전, 결국 혼자 남아 결승까지 갔으나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 애초에 2011 GSTL Season 1도 플레이오프, 결승전은 모두 팀원들이 해주면서 소년 가장 소리는 아주 잠깐 들었던 거고 지금은 오히려 박수호가 팀리그에서 힘을 못 쓰는 경향이 있다. 이는 MVP가 협회에 합류한 뒤 출전한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4에도 유효한 상황. 다만 2014년 3월 2일 에결에서 김민철을 잡아내면서 강적 SKT T1을 격파. 오랜만에 수호신의 위용을 드러낸 바 있다.
- 정지훈
NS호서 팀원 중 한 명이 꼭 포텐이 터지면서 멀티 킬을 하고 그 선수가 꺾이면 멀티 킬을 당한다(...). 기세를 굉장히 잘 타기 때문에 특정 선수가 기세를 타기 시작하면 굉장히 잘해서 올킬이 많이 나오지만 반대로 기세를 못 타면 올킬을 당한다. 그래서 최다 피올킬 팀... 팀의 소년 가장을 팀원들이 번갈아가면서 골고루 해주고 있다.좋은 거야 안 좋은 거야라는 얘기는 예전의 일. 최근에는 팀원이 고작 5명 밖에 안 되는 위기의 상황에서 정지훈의 기량에 따라 NS호서의 운명이 왔다갔다 하는 일이 점차 많아 지고 있는 추세다. 이후 팀이 해체되고 다른 팀으로 이적해서 옛말이 되었지만.
- 정윤종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시즌 2 3라운드 내내 스타2 부분에서 자기 혼자 이기고 나머지가 지는 것을 반복했다. 그래서 1라운드와 2라운드에 6~7위를 반복하는 팀에 있어야 했고 2라운드 후반에 들어서 그나마 팀이 에이스 결정전까지는 이끌어주는 덕택에 출전해서 승리, 팀을 3위까지 끌어올리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라이벌 팀의 선수가 해주던 걸 하고 있다.
- 조성호
정윤종과 마찬가지로 시즌 2 내내 엄청 고생을 했다. 에이스 결정전에는 감독이 다른 선수를 내보내는 등 그렇게 혹사시키진 않았지만 문제는 내보내는데 대부분 져버렸다.(...) 결국 에이스 결정전은 다시 자기 몫이 되었고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려고 용을 쓴 덕에 다승왕과 신인왕을 접수했지만 팀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1승만 하라고 스막 시발들아그러나 12-13 시즌에서는 김도우[36], 변현제, 백동준과 함께 막강한 4토스 라인의 일원으로 활약하면서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기여했으며, 결승전에서도 김명운을 막상막하의 접전 끝에 훌륭한 경기력으로 잡아내면서 MVP까지 수상했다. 다만 팀 해체 후 IM에 합류한 뒤부터는 존재감이 옅어져 버렸다.
- 이동녕
FXOpen 팀은 본래 고동녕이라 하여 고병재와 이동녕 투 탑을 앞세운 팀이었지만 고병재가 팀리그는 물론 GSL에서도 코드 S 32강 탈락을 계속하는 등 장기간 부진으로 인하여 팀 리그에서는 이동녕 혼자서 팀을 이끌어가는 처지... 개인 리그로 가면 더욱 처참하다. 이동녕 말고 코드 S에서 분전하는 선수가 없다. 코드 A는... 팀 리그에서 그나마 잘하고 있는 이인수나 남기웅조차 예선을 못 뚫고 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김준호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시즌 2 플레이오프에서부터 정윤종에게 용 2패, 어윤수에게 에결 승을 거두면서 승리한 것[37]에서부터 낌새가 드러나더니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12-13에서는 아예 소년가장에 등극해 버렸다. 지나치게 날빌을 질러대는 정우용과, 토막 기질이 다분한 김정우와는 달리 종족별로 안정적인 성적을 거두어 주고 있기 때문. 그러나 5연승 이후 4연패에 늪에 빠진 동시에 팀도 4연패에 빠지면서 CJ 엔투스의 김준호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함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그 뒤로도 2014~2016년 다승왕을 하고[38]있다. 2015년에는 한지원이 이영호와 김대엽 급으로 잘 받쳐주며 짐을 더나 싶었는데, 2016년정우용의 승부조작 연루 이후 팀이 폭망, 프로리그 2016 2, 3라운드에서 김준호가 에결에 가지 않고 이긴 경기는 딱 한번이다(...) 한지원은 보통 스막이 되어버렸고 나머지 세명 중 변영봉은 0승 클럽 가입자, 신희범은 날빌도 애매한 상황. 이재선은 그나마 낫지만 불안한건 마찬가지. 3라운드에 장민철을 영입하긴 했는데 이쪽도 주성욱을 잡아낸거 말곤 딱히 활약이 없다. 김준호와 그외 3명이 어떻게든 1승을 해서 에결에 가서 김준호가 이기는게 CJ의 승리공식(...)이렇게 올라가도 포스트 시즌에선 올킬의 밥이 되는 신세
- 장현우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4 이후 새롭게 떠오른 소년 가장. 2014년 기준으로 만 17세이니 정말 소년인 데다 1라운드에서는 이정훈, 조성주, 변현우가 모두 빠진 Prime을 홀로 지탱해야 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조성주도 진에어 그린윙스 이적 후 에결에 자주 출전하면서 소년 가장 노릇 한다지만 이쪽은 김도욱, 이병렬, 하재상, 김유진 등의 백업이라도 제대로 갖춰져 있는데 Prime은 차포가 다 빠져 버렸으니... 게다가 성적도 4승 5패로 그다지 좋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 이 패배에는 황규석과의 OME 경기와 김성대의 연패를 끊어 준 경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나마 2라운드에서는 이정훈이 재합류하고 변현우 또한 출전이 예정되어 있어 부담은 덜해질 듯.[39] 그러나 2라운드 3경기에서 전승했건만 Prime의 성적은 1승 2패. 게다가 1승은 에결승까지 거두면서 2승을 챙겼기에 8승 5패로 단숨에 다승 경쟁 순위에 포함되었다. 그나마 T1전의 경우 이형섭, 라이언 비스벡이 포함된 실험적 엔트리를 안고도 에결까지 갔건만 장현우 혼자만 이긴 IM전은... 프라임 해체 후에는 그냥 스막이 되었다.
1.1.2.3. 리그 오브 레전드
나무위키에서는 대개 영원히 고통받는 XX 식으로 표현한다. 롤갤을 위시한 LoL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영고라인이나 소년가장이라는 표현 대신 중국 롤 커뮤니티에서 유래된 고아원장(...)이라는 표현을 직수입해 사용하는데 이를 순화한 원장롤이라는 표현 또한 많이 쓰인다. 이후 씨맥의 통나무론이 인기를 끌면서 통나무를 진다는 관용어도 쓰이고 있다.영고라인의 대표주자, 진에어 시절 딜관련 지표는 싹쓸이를 하면서 KDA도 4점대 후반을 달렸으나 테디가 2데스를 하는순간 20%를 못넘기는 진에어덕에 고통을 받았다.
팀을 승강전에서 승격시키고 20서머시즌 다이나믹스에서 홀로 분투하며 고아원장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동물원장(...)이라는 별명을 획득했다.
21한화시절 모두아요의 멤버였지만 22한화에 들어서서 리그 최고의 탑중 하나이다. 그러나 팀은 변한게 없어서 작년 쵸비 체험을 하고 있다. 심지어 22시즌 스토브리그에 한화생명이 킹겐을 새로 영입하면서 주전경쟁에 지친 나머지 한화생명을 벗어나 광동으로 이적했더니, 이번엔 그 광동이 22한화 MK.2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고통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21한화의 수장이자 모두아요를 끌고 롤드컵 8강이라는 쾌거를 이루어 냈으나 결국 T1에게 저지당하며 끝까지 고통만 받으며 시즌이 끝났다. 하지만 2022 LCK 서머에서 우승하며 성불했다.
서포터 포지션으로써 새로운 도전을 위해 본래 뛰던 리그인 LEC의 1군에서 LCK T1 2군으로 이적하고 본인은 나름 괜찮은 폼을 보였으나 상체의 부진 때문에 24시즌 CL에서 캐리하는 역할을 맡았고 심지어 원래 포지션이던 원딜로 뛰기까지 했다.
한국에서 뛰지 않음에도 영고라인으로 불린다.
1.1.2.4. 철권 시리즈
- 통발러브
말이 필요없는 데빌진콩빌진의 최고봉. 팀이 다 나가 떨어졌을 때 대장으로 나와 역으로 관광시킨 경기가 수두룩하다.근데 중요한 대장전에서는 콩라인.하지만 2번 이기면서 콩라인 탈출...? 자세한 건 통발러브 참고. 최근 들어서는 무릎이 통발러브와 역할을 바꾼 상태이다.즉 거의 퇴물 상태.
- 잡다캐릭
시즌 4 때부터 The Predator의 대장으로 나와 거의 혼자서 팀을 이끌듯이 했다. 또한 시즌 7 나진 제우스 팀의 대장으로 들어가 또 혼자서소년 가장 포스로 데자뷰 팀과 나진 스페셜리스트(!)를 역올킬하면서 조 1위로 4강전 안착.이러다가 진짜 시즌 4 4위, 시즌 5 3위, 시즌 6 2위, 시즌 7 1위의 꿈이 이루어질지도...?그러나 시즌 7 2위로 마감하여 결국 콩라인이 되었다!
- 고어택
시즌 6때 더 거너스의 대장으로 나와 거의 혼자서 4강까지 끌고 갔고 심지어 3, 4위 전에서 3몬스터즈(빈창, 다살기, 미스티[40])를 올킬하면서 시즌 6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로저의 한계인지 아니면 대응법이 나온 것인지 시즌 7에서는 16강전에서 무기력하게 패배. 시즌 8에서는 예선 탈락을 하고야 말았다.
1.1.2.5. 오버워치
- 김병선(Flash Lux, 서울 다이너스티)
오버워치 소년가장의 대명사. 플레타 럭스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혼자서 팀을 이끌고 영원히 고통받고 있다. 오버워치 HOT6 APEX 시즌 4에서는 CoMa 손경우 선수도 같이 같이 고통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2017년 10월 15일 리그 서울팀으로 이적하면서 영고라인 탈출에 성공했다! 싶었는데.... 여기서도 소년가장이 됐다. 아예 '플레타 데드리프트'라는 용어까지 생겼을 정도.
노영진(CONBOX Spirit)
보스턴 업라이징, 이후 상하이 드래곤즈에서는 행복워치를 하고 있지만 CONBOX 시절에는 상단의 김병선 선수와 맞먹는 한국 오버워치계의 고통의 상징이기도 했다.
- 하정우,
정원협, 김해성(Meta Athena, 사야플레이어 한정 플로리다 메이헴)
오버워치 HOT6 APEX 시즌 4에서 팀이 막장 탱커진과 힐러진 때문에 무너지고 있는 와중에 두 선수가 분투하고 있지만 팀원 절반이 구멍인 상황에서는 답이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단행된 리빌딩에서 리베로 선수는 팀을 탈퇴하여 뉴욕 엑셀시어에 입단하면서 영고라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사야플레이어는 플로리다 메이헴으로, 아프리카 프릭스 시절부터 영고라인에 있다가 메타 아테나로 이적했던 아르한은 휴스턴 아웃로즈로 이적하며 셋 다 어찌저찌 소년가장을 탈출했다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리베로는 진짜로 탈출했고, 아르한은 행방불명인데, 사야플레이어는 여전히 고통받는다는게 정설이다.
- 케빈 린드스트룀 (플로리다 메이헴, 스웨덴 국가대표)
스웨덴이 FPS 강국이지만, 어째 혼자서 멱살캐리하면서 고통받는 모습을 많이 보여 준다. 오버워치 월드컵에서도 2연속 3위를 하는 등 고통받고 있다. 심지어는 오버워치 리그에서조차 영고라인 신세.
- 니클라스 스미트 옌센, 달튼 베니호프 (밴쿠버 타이탄즈)
기존 선수들을 모두 갈아엎은 뒤 컨텐더스 출신의 선수들을 영입해서 신생 밴쿠버로 거듭났으나 완벽한 폐급 탱힐진이 구성되어버려 쇼크웨이브 영입 전에는 달튼 혼자 보이스를 올뮤트하고 빡캐리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며, 쇼크웨이브 영입 후에 과장섞어 말해서 컨텐더스에서도 중하위권 이하의 탱힐진을 딜러진 둘이서 강제캐리하며 엄청난 고통을 받으면서도 3승을 수확했다.
- 청위, 치하오먀오, 차이스룽 (LA 발리언트)
팀이 중국자본에 인수되면서 선수들이 전부 중국인으로 바뀌었는데 이 세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의 기량이 처참하다...1점프 1데스 메인탱커, 케어를 몰빵해주지 않으면 킬 못내는 서브딜러, 한타때 수도없이 주님곁으로 가는 메인힐러 때문에 이 세 선수가 훌륭한 케어능력과 한타를 뒤집는 장면을 여러번 보여줘도 팀이 처참한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사실상 3대6 구도가.. 만들어졌다. 당연히 팀은 전패..중이며 압도적 꼴찌를 기록중이다.
1.1.2.6. 그 외
- 크레이지레이싱 카트라이더
- 이은택
사실 이은택은 팀 내 최고 연장자이기에 소년가장은 아니긴 하나, 약한 팀을 혼자서 견인하는 것으로는 카트라이더에서 가장 유명하기 때문에 서술한다. '은택에몽'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약한 팀을 데리고 아이템전을 계속 승리해내는 엄청난 모습을 보여준다. - 최윤서
어쩌면 이 쪽이 \'소년\'가장에 더 어울리는 선수일 것이다. KDF(前 AF) 소속 시절 기복 없이 든든한 미들 플레이로 '든든한 막내'라고 불리며 핵심 전력이 되었고, 실제로 최윤서가 휴식을 선언한 이후 KDF는 끊임없이 약해지고 있어 최윤서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되었다. - 박민호
실력은 충분히 프로팀으로 갈 자격이 있는 선수이나, 수퍼컵 당시 프로팀으로 갈 기회를 버려가면서까지 아마추어 팀이자 원년 동료들이 있는 팀인 THREAT에 남아 팀을 위해 혼자 4인분 몫을 해내며 분전했기 때문에 '낭만좌', '의리남' 등으로 불리며 소년가장 노릇을 톡톡히 했다. 심지어 평균 순위도 2.8 언저리로 수퍼컵 2위이기 때문에 더더욱.
1.1.3. 연예계
1.1.3.1. 그룹 멤버
- 황광희(제국의아이들) : 지금은 임시완이 해를 품은 달 버프로 떴고 박형식이 진짜 사나이로 인지도를 늘렸고 김동준까지 체육돌 이미지와 최근 여러 예능, 드라마에 나오면서 뜨고있지만 그 전까지 제국의아이들에서 아이돌 산업 역사상 전무후무한 성형돌이라는 독보적인 캐릭터로 홀로 예능을 뛰어다녔다. 이제는 모두 팀 및 기획사를 떠났다.
- 조권(2AM) : 사실 그룹 전체가 소년가장처럼 버려진 신세였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부지런히 팀을 먹여 살린 멤버는 깝권이다. 하지만 조권도 JYP와 결별하면서 그룹 자체가 사실상 와해되었다...
- 니엘(틴탑) : 데뷔 때부터 곡 파트도 니엘에게 편중되었었고 예능도 니엘 위주로 출연하는 등 니엘 편중이 굉장히 심했다. 나중가서는 니엘 편중이 좀 덜했지만 억지로 분배시킨 느낌이 있으며 아직도 니엘의 의존도가 높은 상황. 이제는 멤버들 모두가 기획사를 떠나면서 그룹이 사실상 와해되었다. 그러다가 놀면 뭐하니?에서 그룹 이름에서 파생된 원탑이 결성되고 틴탑이 주목받으면서 다시 재결합되었다가 리더가 탈퇴 하면서 4인조로 재편성 되었다.
- 김우석, 이진혁(업텐션) : 프로듀스 X 101 출연 후 본인들은 물론 그룹 업텐션의 인지도까지 오르면서 2명의 개인 활동이 증가하였고, 업텐션 나머지멤버들의 활동 또한 다시 활발해졌다.
- 유키스 : 동호[41] → 준 → 수현 : 아예 이 그룹은 활동을 하면 시점상 막내가 소속사와 그룹을 먹여 살리고 있다. 동호는 천하무적 야구단으로 팀을 알렸다면, 중간에 합류한 이준영은 더 유닛과 부암동 복수자들을 통해 그룹의 존재감을 다시 알렸다. 하지만 멤버 대부분이 소속사를 떠난 상태. 그러다가 2020년 수현이 문명특급에 출연하면서 본인과 유키스 모두의 인지도를 다시 띄우게 되었다.[42]
- 민경훈(버즈), 이홍기(FT아일랜드), 제이(트랙스), 정용화(씨엔블루) : 이들의 공통점은 밴드의 리드보컬이라는 점. 한국의 밴드 형태의 그룹에 대해 보컬 외의 연주자들을 백 밴드 취급하는 일반인의 시선상 좋든 싫든 팀의 얼굴인 보컬이 가장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 ASTRO - 차은우 : 화려한 비주얼 덕에 각종 드라마, CF, 예능 등에 출연하고 있으며 ASTRO 중에서도 인지도가 가장 높은 멤버다. 사실상 차은우가 먹여살리고 있는 상태. 다른 멤버들에 비해 인지도가 넘사벽 수준이며 다른 멤버들은 대중들이 모르는 경우가 상당한 반면[43] 차은우는 대중들에게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대부분 ASTRO는 몰라도 차은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이며. 한 마디로 차은우 혼자 멱살 잡고 하드캐리한 수준이다. 이 정도면 보이그룹 버전 수지라고 볼 수 있겠다.[44] 이후 문빈이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높은 인지도를 얻으며 소년가장 노릇을 끝내는 듯 했으나 그의 사망으로 인하여 다시 소년가장 신세가 되었다.
- AB6IX - 이대휘, 박우진 : 그룹 자체는 전웅을 제외한 모든 멤버들이 프로듀스 101 시즌2 출신이기 때문에 정식 데뷔 전부터 멤버들의 인지도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이들 중에서도 시즌2의 최종 프로젝트 그룹 Wanna One 경력이 있었던 이대휘와 박우진의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높다.
- CIX - 배진영 : 전에 워너원으로 데뷔했던 배진영이 센터로 서 있어서 타 멤버들보다 배진영의 인지도가 훨씬 더 높은편이다. 그러나 배진영도 개인 활동이 별로 없는 것이 흠. 그러다가 2024년 8월 1일 전속계약 만료로 그룹 탈퇴를 한다.
- 블락비 - 지코 : 2011년~2018년 한정. 블락비에서 제일 인지도가 높고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멤버였으며 대중들 또한 블락비 하면 십중팔구 지코를 떠올렸다. 그나마 지코 다음 박경이 유명했었으나 지코에 비하면 인지도가 많이 낮았다. 지금은 그나마 박경도 많이 알려지고[45] 피오도 예능에 많이 나와 대중적으로 알려지며 지코도 소년가장에서 벗어났다.
- 비투비 - 육성재 : 2021년 11월에는 기준 군 복무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브랜드 평판 순위 100위 안에 들 정도로 비투비 내에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가장 높은 멤버로 2015년 후아유 - 학교 2015, 우리 결혼했어요와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을 통해 그룹을 알리면서 인지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후 2016년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에 출연해 본격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예능 차트를 달리는 남자 14회에서는 비투비의 소년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언급되었다. 또한 2015년부터 인지도를 바탕으로 드라마, 예능, 광고 등 개인활동이 가장 활발한 멤버였는데 당시 멤버들이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수익분배는 팀이 나눠갖는 구조상 육성재의 기여분이 크다는 듯한 발언을 했으며 서은광이 세바퀴에 출연했을 때 재차 언급했다. 그리고 이 때 육성재 본인도 스케줄이 많아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 촬영 당시 KTX까지 타고 다니면서 그룹 활동에 참여했다. 그나마 2017년 수익분배가 개인정산으로 바뀌고 하반기 <그리워하다>를 시작으로 2018년 <너 없인 안 된다>와 <아름답고도 아프구나> 활동을 통해 최고 성적을 꾸준히 갱신함에 따라 수익적인 부분에서 소년가장 역할을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지만 아직까지 비투비 멤버들 중 가장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다.
- iKON - 구 B.I, BOBBY : 데뷔 전 이 둘은 쇼미더머니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었으며 데뷔 이후에도 파트도 그렇고 인지도도 이 둘에게 심하게 편중되어 있다. 지금은 비아이가 마약 문제로 탈퇴를 하였고 바비가
혼자 먹여 살려야 하는그룹의 소년가장이 되었다. 데뷔한 지 5년이 되가는 지금도 대중들은 아이콘 이라고 하면 바비나 비아이만 떠올린다. 다른 멤버들은 당연히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 게다가 예전에 구준회가 팬의 피드백을 무시하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 라고 하여 논란을 일으킨 탓에 더욱 답이 없는 상황. 그러나 최근에는 바비마저 혼전임신 사건을 일으키는 바람에 팬덤 분열이 일어났고 그룹의 존속 자체가 위태로워지게 되었다. 최근에도 활동이 뜸하며 이렇다 할 성과가 별로 없는 상태.
- 골든차일드 - 최보민(2017~2024): 웹 드라마 에이틴에 출연하여 이름을 알렸으며, 2019년 7월 5일부터 2020년 7월 17일까지 뮤직뱅크 MC를 맡았다.[46] 그 외에도 각종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오면서 그룹을 먹여 살리는 소년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약 하지 않고 그룹을 탈퇴했으며, 멤버들의 군백기도 겹쳐서 활동이 뜸한 상태이다.
- SF9 - (구)로운 : 찬희가 SKY 캐슬으로 유명해지기 전에는 로운 혼자 압도적인 활동량으로 그룹을 하드캐리했다. 오히려 개인 활동 탓에 팀 활동을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정도. 그러다 배우로 전향하면서 그룹을 탈퇴했다.
- 로미오 - 황윤성 : 내일은 미스터트롯 출연으로 멤버들 중에서도 인지도가 독보적으로 높고 개인활동도 그만큼 많다. 하지만 군입대로 피크타임에 팀16시로 출연하게 되었으나 통편집 되었다.
- SS501 - 김현중 → 허영생, 김규종 : 데뷔 초부터 상당한 인기를 누리다가 2007년쯤 일본에서 활동하는 동안 인기도 떨어지게 되었고. 그러다가 국내로 돌아와 김현중이 우리 결혼했어요, 꽃보다 남자에 출연하면서 침체되었던 그룹의 인기도 다시 올라가게 되었다. 김현중이 꽃보다 남자로 큰 성공을 거두자 인기와 인지도가 올라갔다.[47] 하지만 2010년 끝으로 그룹은 활동을 10여년간 중지. 존재감이 점점 없어지다가 2020년 허영생, 김규종이 문명특급에 출연하면서 인지도가 올라가고 SS501 존재감을 알리면서 입덕, 재입덕이 늘고있다.
- 펜타곤 - 후이 (2016 ~ 현재): 펜타곤을 초기에 알리는 데에 기여한 멤버이며. 작곡가로도 활동하고 있다.또한, 펜타곤의 타이틀곡을 미니 4집부터 미니 11집까지 전부 다 작곡했다. 리더이자 메인보컬 중 한 명이자 리드댄서라는 위치 자체로도 펜타곤 내에서도 입지가 큰 편이다. 그러나 펜타곤도 그리 인지도가 높은 그룹이 아닌지라 후이가 보이즈플래닛 에 참여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던 의문의 1승[48] - ZEROBASEONE - 성한빈
1.1.3.2. 그룹 전체
- 방탄소년단 - 그룹 데뷔 1년 전에 소속사가 다른 기획사와 합작해서 데뷔시킨 걸그룹이 실패한 지라 빚을 안고 시작했으며, 뮤직비디오에 매니저가 나와서 연기했을 정도로 제대로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성장했다. 그러다가 외국에서 인기를 꽤 얻으면서, 소년가장을 넘어 아예 소년재벌이 된 상태. 어찌보면 빅히트를 하이브로 바꿔서 규모를 크게 키운 1등 공신이다.
- BIGBANG - 현재 YG 엔터테인먼트는 2NE1, WINNER, iKON, BLACKPINK를 성공적으로 데뷔시킬 정도로 대한민국 대표 기획사 중 한 곳이 되었지만, 그 전에 YG를 지금의 규모로 성장해 후배그룹을 양성할 수 있었던 건 모두 빅뱅이 한 몫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상 YG의 개국공신이다. 사건사고가 웬만한 아이돌 그룹들보다도 많긴 해도 팬덤이 존재하며 YG 수익 대부분도 빅뱅이 차지하고 있으며 "YG=빅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2020년 기준 현재 멤버 전원 군복무를 마쳤고[49] 또 YG와 재계약해 조금씩 활동을 재개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50] 구 막내의 버닝썬 게이트로 인해 명예는 과거형이 되었다. 결국 멤버들은 YG와 계약하지 않고 1인 소속사를 만들거나 타 소속사와 계약했다. 게다가 탑은 탈퇴를 발표하고 YG에 있던 지드래곤마저 전속계약이 종료되어 빅뱅이 다시 뭉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졌을 찰나 2024년 9월 1일에 열린 태양의 솔로콘 서트에서 G-DRAGON과 대성이 게스트로 나와 한 줄기의 희망을 보였다.
- B.A.P - TS를 대표하는 보이그룹이자, 소속사의 어려운 사정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소년가장. 하지만 TS의 처우 때문에 법정 공방까지 간 적이 있다.[51] 결국 방용국이 TS와 계약 만료 후 결별했고, 그 후 2019년 2월 18일에 해체에 이르고 2021년 TS엔터도 폐업했다.
- B1A4 - WM엔터테인먼트의 개국공신이고 회사 수입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그룹이지만 2018년 6월 30일에 멤버 2명(진영, 바로)가 재계약을 포기한 데다가 2019년 1월 22일 신우의 입대 이후 주요 멤버들이 군입대를 앞두고있고 후배 보이그룹 온앤오프는 활동이 부진한 상태이다. 한편, 2018년부터는 유명 걸그룹으로 크게 떠올라 2018년 1월 비밀정원으로 데뷔 첫 1위를 차지한 오마이걸이 발매한 음반마다 승승장구하면서 소녀가장으로 자리잡았다.
- 인피니트 -> 골든차일드 - 3세대 걸그룹에서 확고한 컨셉으로 자리잡은 러블리즈와 2017년에 데뷔한 골든차일드도 있지만, 인피니트가 울림에서 가장 큰 수입을 담당하고 있다. 다만, 2018년부터는 멤버들의 군입대[52]가 시작되었다. 2020년 1월 성규가 만기전역, 이후 열린 콘서트 규모가 현 소속사 내에서 가장 큰 것을 볼 때 여전히 수입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현재 모든 멤버가 소속사를 떠났고, 상표권도 무상 양도하고, 러블리즈도 계약만료 됨에 따라 현재는 골든차일드가 소년가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소녀가장은 후배 아티스트 권은비. DRIPPIN, 로켓펀치, 이수정은 골든차일드, 권은비보다 부진하다.
- 비투비 - 2016년 큐브엔터테인먼트의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아티스트들에 대한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포미닛은 해체를 했으며 비스트는 계약 종료 후 장현승을 제외한 멤버 전원이 다른 소속사로 이적해 하이라이트로 재데뷔를 했다. 게다가 CLC는 데뷔한 지 1년이 갓 넘은 신인 걸그룹이었으며 차기 신인 보이그룹이었던 펜타곤도 경영권 분쟁의 영향을 받아 데뷔까지 어려움을 겪었는데 시기마저 비스트가 실질적으로 소속사를 떠난 시기와 맞물렸다. 따라서 큐브엔터테인먼트에서 실질적으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아이돌은 비투비가 유일했기 때문에 비투비는 2016년 미니 9집 NEW MEN부터 2018년 리더인 서은광이 군입대를 한 직후 발매한 스페셜앨범 HOUR MOMENT까지 큐브엔터테인먼트의 소년가장이었다. 이후 이창섭과 이민혁도 차례로 군에 입대를 하면서 비투비의 소년가장 역할은 끝나고 대신 (여자)아이들이 2020년부터 소녀가장으로서 포지션을 이어받았다.
- 세븐틴 - 2015~2017년 4월 한정, 2022년 3월 ~ 2023. 당시 애프터스쿨은 말할 것도 없고 프리스틴은 활동이 부진했으며[53] 뉴이스트가 소속사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해외만 돌리는 탓에 한국에서 거의 잊혀졌고 그동안 세븐틴이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높여가며 소속사를 먹여 살렸었다. 그러나 프로듀스 101 시즌 2에 뉴이스트 멤버들이 출연하고 황민현이 워너원 데뷔에 성공하고 뉴이스트 멤버들도 얼굴을 알리고 음방, 음원차트에서도 1위를 얻게 되면서 인지도가 높아졌다. 이로써 세븐틴의 소년가장 노릇도 끝이 났다. 그러나 2022년 3월, 뉴이스트의 활동종료로 다시 소년가장이 되었다가 2024년에 TWS가 데뷔하자마자 나름 준수한 인기를 얻고 있어 소년가장에서 벗어났고 멤버 정한을 필두로 한국인 멤버들의 군백기가 시작될 예정이다.[54]
- 보이프렌드 (2011 ~ 2015) → 몬스타엑스 (2015 ~ ) : 스타쉽의 첫 보이그룹인 보이프렌드는 2011년에 데뷔하여 후배 그룹 몬스타엑스가 데뷔하기 전까지 유일한 보이그룹이었다.[55] 2015년, 몬스타엑스가 데뷔하며 국내•외로 탄탄하게 팬덤을 쌓고 준수한 성적을 달성하며 씨스타가 해체한 2017년부터 IVE가 데뷔하기 전인 2021년까지 소속사에서 가장 큰 수익을 담당하는 그룹이었다.[56] 2020년, 프로듀스 X 101에서 팬덤과 인지도가 높았던 연습생 4명[57]을 포함한 차기 보이그룹 CRAVITY가 데뷔하면서 드디어 몬스타엑스가 소년가장에 벗어나나 했지만 데뷔한 지 5년차가 지난 지금까지도 아이돌 판에서 큰 조명을 받지 못 한 채 부진을 겪고 있으며, 여전히 데뷔 10년차가 된 몬스타엑스가 지금도 스타쉽의 대표 보이그룹으로 자리잡고 있다.
- Stray Kids - JYP가 걸그룹 명가로 알려져있지만 큰 수익을 담당하는 그룹은 Stray Kids이다.
1.1.3.3. 그 외
- 런닝맨 - SBS에서 방영되고 있는
SBS 예능계의 유일한 희망이자 SBS 방송사의 소년가장 역할을 하고 있는예능. 2012년까지만 해도 두자릿수 시청률은 물론 19~20%를 왔다갔다하며 황금전성기를 누렸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던 주요 스태프가 죄다 중국으로 가 버리는 바람에 시청률은 한자릿수로 추락했고, 그 이후에 암흑기와 안정기를 왔다갔다했다. 그러다가 전소민, 양세찬을 교체하여 점차 안정기를 찾다 싶었지만 다시 하락하는 등 엄청난 부침세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런닝맨은산소호흡기 혹은 사실상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는갤럽, L.Point 리서치 플랫폼 라임에 의한 '지난 주 재미있었던 예능 순위', 런닝맨의 주요 타깃시청층인 2049 시청률에서 꾸준히 높은 순위를 기록한 덕분에 광고단가도 꽤 비싸게 팔리고 있다. 거기다 중국, 베트남에서 각각 그 나라 버전의 런닝맨 프로 제작은 물론 런닝맨 애니매이션 제작과 런닝맨 모바일 게임까지 발매되는 등 sbs에 엄청난 수입을 안겨주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네이버 웹툰 머니게임 표절논란이 일어났지만, 멤버마다 사건 사고를 끊임없이 터트렸던 옆 동네에 비해 런닝맨 멤버들이 아닌 제작자들의 사건사고였기에 프로그램 자체를 폐지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었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런닝맨 관련 해외 버전 프로그램과 애니매이션 제작, 해외 사업 등이 많기 때문에 런닝맨을 폐지하기에는 sbs에 가져다주는 수입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표절논란이 일어난 이후에 2019년 5월 19일 방송분부터 이전 런닝맨 부흥기를 이끌었던 정철민 PD가 복귀를 선언하면서 과연 런닝맨의 부흥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해 보자.
2. 노년 가장
위의 의미와 비슷하나 반대로 고령의 선수나 멤버가 그 팀을 먹여 살리는 상황이 일어날 때 이를 캐리하는 사람을 흔히 노년 가장이라 한다. 대체로 노익장과도 어느정도 겹친다.2.1. 대표적인 노년 가장
2.1.1. 야구
- 박용택: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팀내 최고 타자로 활약했다. 이병규가 은퇴하고 정성훈, 이진영도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서 베테랑 4인방에서 노년가장이 되었다.
- 오승환: 2020년대 기준 가장 대표적 사례로 40대 초반의 나이에도 팀내 불펜진 중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1.2. 해외축구
- 아리츠 아두리스: 14/15시즌부터 15/16시즌까지 뛰면서 UEFA 유로 2016의 엔트리에 까지 들었다!
- 안토니오 디 나탈레: 14/15시즌에는 온갖 유망주를 빅클럽에게 빼앗긴 우디네세를 혼자 캐리했다. 비록 그 다음 시즌 노쇠화에 따라 우디네세와 작별했지만...
- 루카 토니: 14/15시즌에는 마우로 이카르디와 함께 세리에 A 득점왕을 했는데 역대 최고령 득점왕 기록을 썼다! 15/16시즌에는 비록 부상으로 오래 빠졌지만, 나올때는 클래스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결국 팀의 최하위 강등을 막지 못하고 자신은 은퇴하게 되었다.
- 하비에르 사네티
- 줄리우 세자르: QPR 시절 한정. 그리고 그의 역할은 사미르 한다노비치에게로....
- 사미르 한다노비치: 암흑기판 줄리우 세자르.
- 로드리고 팔라시오: 공격수판 사미르 한다노비치. 사실 한 경기 임시로 골키퍼로 나선 적이 있긴 하다.
- 리오넬 메시: 소년가장과 노년가장에 다 해당되는 케이스다. 이는 2019년 기준 현재진행형으로 MSN 시기에는 그나마 네이마르,수아레즈가 있기라도 했지 네이마르가 떠나고 수아레즈가 노쇠화를 겪으면서 점점 메시 원맨팀화가 가속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국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 본래는 이런 비유로 널리 쓰이는 용어는 아니었으나 프로게이머 이영호가 2008년 경부터 스갤 등에서 소년 가장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차츰 타 분야의 혹사당하는 어린 선수들에게도 붙는 용어가 됐다.[2] 물론 다음 해에는 전년도보다는 부진했지만 무려 261이닝이나 던졌기 때문에 소년가장이라 할 수 있다.[3] 2015시즌부터 적용된 KBO의 한시즌 경기수인 144경기로 환산하면 대략 615이닝, 그 당시 시즌 절반을 던졌다고 보면 된다(...)[4] 4번 선발등반, 1번 구원등판으로 이 중 1승은 구원승이고 1패는 완투패다.[5] 이 두 시즌 동안 완투만 총 14회, 완봉은 총 4회를 기록했다.[6] 1999 시즌부터 해태 마운드는 그야말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1999 시즌을 공친 이대진은 2000 시즌의 혹사 후유증으로 2001 시즌부터 기나긴 재활에 들어갔고 무릎부상으로 1999 시즌을 통째로 쉬었던 이강철은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으나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해 해태가 KIA로 바뀌기 직전인 2001년 7월말 타이거즈로 반품되었다. 1997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던 김상진은 1998 시즌 후부터 위암을 앓다가 1999년 6월 10일 유명을 달리했고 임창용은 1998 시즌 종료 후 양준혁, 곽채진의 반대급부로 삼성으로 트레이드되었다. 이들을 대신하여 마운드를 지킨 곽채진, 곽현희, 소소경, 오철민, 유동훈 등은 너무나 중량감이 떨어졌다. 이렇게 붕괴된 해태 말기의 마운드에서 그나마 가장 활약했던 선수가 바로 최상덕이었다.[7] 시즌 만루 상황이 4차례 있었는데 3차례 안타를 기록했고, 그 중 2개가 만루홈런이니 말 다 했을 정도.[8] 단 매우 훌륭한 클래식 스탯에 비해 세이버메트릭스적 관점에서 보면 그 공헌도가 과대평가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브렛 필/2015년 항목 참조.[9] 더군다나 2017년에는 중심타선이었던 최형우, 채태인과 선발투수 차우찬이 이적하고 2017시즌 이후에는 이승엽마저 은퇴하기 때문에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사실상 러프와 둘이서 팀을 먹여살려야 할 판이다.[10] 이사만루2017에서도 한명재 캐스터가 "소년가장 구자욱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라고 한다.[11] 참고로 삼성 라이온즈의 평균구속-KBO 평균구속 차이와 KBO 평균구속-NPB 평균구속의 차이가 같다(...) 그 정도로 삼성이 피네스 피처를 압도적으로 선호한다는 얘기.문제는 피네스 피처라는 투수들이 구속만 느리고 제구, 운영능력도 없다.[12] 2010년대는 마이크 트라웃이 소년가장의 역할이였다면, 2020년대에는 오타니가 그 역할을 계승할 처지인 셈. 이쯤되면, 에인절스가 제대로 된 투수 보강이 안 이루어지면서 나타나는 고질병이라고도 볼 수 있다.[13] 07/08 시즌 호나우지뉴 방출 직전, 12/13시즌, 19/20시즌~20/21시즌[14] 2010 남아공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 ~ 2021 코파 아메리카 브라질[15] 감독이 해괴한 전술과 선수단 운용을 보여주며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처참하게 멸망하거나 본인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축구팬들을 실망시킨 적도 여럿 있다. 2018년 리오넬 스칼로니 감독의 부임 이후 성공적인 세대교체로 코파 아메리카와 월드컵을 우승하면서 소년 가장에서 탈출하게 되었다.[16] 예선 3경기에서만 100득점을 기록하였다.[17]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던 선수는 조오련과 최윤희가 있었기에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후에는 아시안게임에서도 메달을 기대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2010년대 후반 이후 김서영이 여자 수영에서 나름 좋은 성적을 냈다. 그리고 2020년대에는 박태환 이후 처음으로 세계대회 포디움급 성적을 낼 수 있는 스타 플레이어 황선우가 탄생했다.[18] 이후 우정호는 1년여간의 투병 끝에, 2012년 8월 23일 숨을 거둔다.[19] 동료들이 이승석만 잡아줬어도 이영호가 아즈텍에서 역상성 종족을 상대해야하는 불상사가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20] 본래 웅진 스타즈 선수였다가, 2011년에 이적하였다.[21] 애초에 이 팀은 비슷한 시기에 해체된 팀의 우수 선수들을 모아서 만든 팀이다.[22] 물론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시즌 2 때에는 화승에 비하면 화려한(?) 팀 멤버들이 각성하여 골고루 활약해주었지만, 정작 제8게임단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이제동의 에결 5연승이었다.[23] 정확히는 1년 전인 2012년 말에 임대로 먼저 이적했다. 이때 Team Liquid와 연합한 EG-TL 소속으로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12-13에 참가했다.[A]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가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부터는 팀마다 스폰서가 생겼지만, 그 전까지는 비스폰 팀이 대부분이었고 대부분 감독 사비나 우승 상금으로 힘들게 팀을 운영하였다.[25] 데뷔는 IS에서 했다가 중간에 홍진호와 함께 KTF로 임대된 것을 거쳐, IS에서 갈라진 SG 패밀리로 복귀했다. (참고로 홍진호는 이후 KTF로 완전히 이적.)[26] 원래는 이윤열이 팀을 떠난 시기에 팀을 해체하려고 했으나, 어찌저찌해서 운영을 1년 더 연장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A] [28] 하지만 박성준은 SK텔레콤 T1에 이적한 뒤에도 부진을 겪었고, 결국 1년만에 STX SouL로 이적하여 부활하였다. 이후 스타크래프트 2가 출시되면서 그쪽에서 활약한 뒤 군 입대로 인해 은퇴하였다.[29]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몇달 뒤에는 팀플레이에서 뛰다가 막 스타리그에 진출한 정영철도 같은 이유로 김택용과 같은 팀으로 이적한다.[30] 특히 이재호가 이적했을 때는 선수층이 부족해서 그런지 온갖 2군 및 신인 선수들을 마구 기용하였으나 0승 클럽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만들었다.[A] [32] 화승은 이후 제8게임단의 유니폼을 후원한 적이 있긴 하다. 문제는 질이 안 좋아서 그렇지. 한편 해체 이후 화승의 모기업인 화승그룹은 화승을 다른 곳에 매각하였다.[33] 추가로 민찬기는 드래프트 세대로는 처음으로 공군 ACE에 입대한 게이머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김성기.)[34] 실제로 이 당시에 신상문은 플레잉코치의 역할까지 감당해야 했다.[35]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해체된 eSTRO도 김성대가 같은 대회에서 8강까지 가서 팀의 마지막 공식전 경기를 기록했다.[36] 종족 전환은 군단의 심장으로 진행된 4라운드부터.[37] 다만 이 대회에서 스타1(프로토스가 아닌 저그로 플레이)은 츨전한 모든 경기에서 패했다.[38] 그만큼 에이스 결정전에 많이 나왔다는 말도 된다.[39] 근데 변현우는 2라운드가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40] 에디신 미스티 맞다![41] 정작 동호 본인은 자기가 대중적 인지도는 있어도 팬덤의 인기는 별로라고 한다.[42] 이준영도 여전히 활동 중이긴 하지만 이준영은 가수보다는 배우로서의 활동이 더욱 왕성하다.[43] 그래도 2020년부터는 MJ의 뮤지컬 출연 및 다섯장 활동, 문빈&산하, 진진&라키 등 유닛 활동으로 다른 멤버들도 차차 인지도를 올리고 있는 중이다. 후술하듯 나중에 가서는 문빈이 차은우 다음으로 인지도 있는 멤버가 되어 잠시 소년가장을 벗어났다.[44] 실제로 차은우와 수지는 비슷한 부분이 굉장히 많은데 그룹보다 개개인이 더 유명한 것, 다른 멤버들과의 인지도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비주얼로 유명세를 탄 것, 둘 다 장신인 것, 연기자 테크를 타고 있는 것 까지 매우 비슷하다. 단, 음악방송 1위가 적고 음원차트 상위권에는 오른 적이 한번도 없는 ASTRO와 달리 미쓰에이는 음원차트 1위를 여러 번 해봤으며, 음악방송 1위도 여러 번 경험했었다. 다만, ASTRO는 중소 기획인 판타지오의 첫 보이그룹이고 미쓰에이는 대형 기획사인 JYP 걸그룹이기 때문에 출발점이 다르다. 그리고 보이그룹은 걸그룹에 비해 대중성이 약하기 때문에 음원에서 좋은 성적을 이루기가 힘들다. 그나마 미쓰에이가 데뷔한 2010년 초반까지는 중소기획사 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보이그룹이 꽤나 많았지만(비스트, 엠블랙, 인피니트, B1A4, 블락비, 비투비, 빅스 등) 2010년 중반 이후에는 중소기획사에서 보이그룹으로 대중성을 쌓기 매우 어려워졌다. 방탄소년단과 세븐틴 정도만이 중소출신 보이그룹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45] 단. 박경은 서서히 이름을 알려가며 승승장구 하려던 찰나 학교폭력 가해자임이 만천하에 밝혀져 이미지가 추락해 버렸다.[46] 2019 KBS 연예대상 베스트 커플상 공동수상을 하였다.[47] 개인으로 CF도 찍고 상도 많이 받았고 솔로곡으로 음방 1위도 다 해봤다.[48] 던은 펜타곤에서 탈퇴하고 솔로 아티스트로써 자립하였는데 펜타곤 시절보다 훨씬 인지도가 높고 현아의 연인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하지만, 펜타곤의 메가 히트곡 <빛나리> 이후로 그룹이 유명세를 떨치려던 찰나에 던의 열애설 때문에 팬덤이 엄청나게 축소가 되었다. 충분히 인지도가 높은 그룹이 되었을 수도 있었으나 그 귀한 기회를 날리는 데에 던이 큰 일조를 했다.[49] 탑은 2017년 의경으로 입대 후 대마초 혐의로 사회복무요원으로 전환 후 2019년 7월 6일에 소집해제, GD는 10월 26일에, 태양과 대성은 11월 10일에 전역했다.[50] 본래 2020년 4월에 미국 코첼라 페스티벌 무대로 컴백할 예정이었으나 예상치 못한 전 세계적인 전염병 창궐로 취소 되었다.[51] 이 때문인지 2018년 4월 28일 김태송 대표의 부고가 떴을 때 정산 관련 문제를 들먹이는 댓글이 올라왔다.[52] 2022년 8월 21일 부로 전역, 소집해제 되었다.[53] 결국 프리스틴은 소속사의 방치 끝에 해체하였다.[54] 에스쿱스가 십자인대 부상 안 입었으면 예정대로 먼저 입대했을 것이다.[55] 하지만 활동하면서 딱히 이렇다할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채 2019년에 활동을 종료하여 모두 스타쉽을 떠나 2021년에 다른 소속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재결합을 하여 활동 중이다.[56] 2022년 이후 IVE가 워낙 대박을 쳐서 그렇지 그래도 몬스타엑스는 탄탄한 팬덤으로 여전히 스타쉽에서 큰 수익을 담당하는 그룹이다.[57] 구정모, 함원진, 강민희, 송형준. 이 네 명은 방영 당시 '스쉽즈'라고 불리며 인기를 끌었고, 모두 파이널까지 생존했다. 이 중 강민희와 송형준은 최종 데뷔조 X1로 발탁되었으나 모종의 사건으로 해체되면서 스타쉽 차기 데뷔조인 CRAVITY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