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8 05:13:34

구룡성채


1. 소개2. 전경3. 역사4. 특징5. 관광 정보6. 대중문화에서의 구룡성채

1. 소개

아편굴 투성이에 더럽고 쥐가 득실거리고 치외법권이며 무척 위험하죠. 홍콩의 "sin city"[1]에요.
- 1990년 '아비정전'을 구룡성채에서 촬영했던 양조위의 회상.
九龍城寨·九龍城砦[2]

홍콩 구룡반도(九龍半島)에 있던 슬럼가.

'구룡성[3]'이라고도 불린다. 홍콩의 주요 언어인 광둥어로는 "까우룽씽짜이(gau2 lung4 sing4 zaai6)고, 표준중국어로는 주룽청자이(Jiǔlóng chéng zhài)다. 보통 구룡성채로 불렸지만 1993년에 철거될 당시 구룡채성(九龍寨城, 까우룽짜이씽)이라고 쓰인 현판이 발굴되면서 원래 이름은 구룡채성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냥 글자 하나 순서 차이다. 영어로는 Kowloon Walled City.

원래 구룡성채는 청나라가 영국을 막는 국경 요새였으나 홍콩이 영국으로 넘어간 뒤 여기만 청나라의 영토로 남아서 치안권이 붕뜬 치외법권이 되었고 그 결과 난민과 범죄조직이 자리를 잡아서 구룡성채는 충킹맨션(重慶大廈, Chungking Mansions)과 더불어 한때 외지 사람들이 발을 들여놓으면 두 번 다시 나올 수 없다는 홍콩의 양대 마굴이었다. 납치당한건가 아니면 길을 잃어버린건가[4]

구룡성채와 비슷한 예로 남아공폰테 타워, 베네수엘라콘피난사 금융센터, 나폴리의 스캄피아 아파트가 존재한다.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에 구룡마을이 존재하는데 구룡성채만큼은 아니지만 이곳도 불법건축물로 형성된 빈민가이다.

2018년 6월 10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817회에서 다뤄졌다.

2.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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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성채 철거 직전 항공 사진. 행정상 옆의 깔끔한 건물들은 영국령인 선진국 홍콩이고 저 지저분한 건물들만 계속 중국령으로 남아 있었다. 구룡성채 주변의 판자촌은 이전에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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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사진. 왼쪽 구석에 코카콜라 사인이 보인다. 100년이 넘게 계속 중국의 일부로 지켜왔지만 서구화, 개방의 물결은 여기도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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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 이 광경은 성채와 카이탁 공항이 둘 다 날아간 반환 이후 사라져 버렸다. 중국에 반환되기 이전의 향수로 이 광경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은데, 막상 근처의 쿤통 주민들에게는 아주 불쾌한 것이 저 둘이었다. 바로 코앞에 빈민가가 있지, 공항도 있지, 우범지대라는 인식+항공기 소음 때문에 아무도 이사 안 오려 해서 집값은 똥값이지 등. 실제로 쿤통 구와 카우룬시티 구 주민들은 성채와 공항이 사이좋게 중국 반환으로 날아가자 되려 환영하는 분위기였었다. 현재 쿤통에는 대규모 쇼핑몰과 사무 단지가 들어서는 등 분위기가 완전히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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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후인 2009년 9월의 모습(구룡채성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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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구룡성채 주택가를 축소해서 만든 미니어처. 구룡채성공원 내에 있다(출처).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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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말, 구룡성채의 모습▲ 1898년, 구룡성채의 모습

본래 구룡성채는 청나라의 요새로, 군대가 주둔하면서 홍콩의 영국군을 감시하던 요새였다. 그러나 2차 아편전쟁 이후 구룡성채가 있던 구룡반도까지 영국의 소유가 되었지만 구룡성채만큼은 중국의 소유로 남아 있었다. 원래 설치 목적을 생각해보면 현재의 중국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와 미묘하게나마 연결되기도 한다. 슬럼가로 악명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2차대전 직후부터로 1941년 홍콩을 점령일본군이 구룡성채의 성벽을 헐어버렸고, 45년 일본이 패퇴한 뒤에는 부랑민들이 모여들어 살기 시작했고, 1948년에는 영국 관리들의 진입 시도를 막아냈다. 그리고 홍콩 정부도 진입하지 못했고, 중국 국민당 정부도 관리를 거부하여 완전한 무법지대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중화민국과 영국의 사이가 나쁘지 않아서 치안 공백이 곧 해결될 것 같았지만, 1949년 국공 내전이 끝나면서 중화민국이 타이완 섬으로 도주하고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대륙을 차지하면서 구룡성채의 치안 문제는 더럽게 꼬여버린다. 상술한 대로 영국 정부가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구룡성채를 관리해야 할 “중국”이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으로 양립해버린 상황이 되어버렸다. 비록, 영국 정부는 1950년 1월 6일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한다는 선언을 했지만 중국 측에서 수교를 거부했다. 결국 구룡성채의 행정 관리 문제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2차대전 때부터 부랑민이 몰리기 시작해 50년에는 대륙에서 난민이 몰려오는 가운데 홍콩정부에서 정착을 거부한 난민들이 구룡성채로 몰려들었고, 위에서 언급한 관할 문제로 경찰들이 치안 활동을 못하니 온갖 범죄 행위들이 벌어졌다.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성매매업소, 도박, 아편굴, 헤로인, 무허가 한의원, 무허가 치과[5]등 불법 업소들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물론 성매매업소나 도박장같은 업소나 불법 의료시설같은 무허가 업소만 있는 건 아니고 저렴한 인건비와 세금이 없다는 장점 아닌 장점 덕택에 사실 식품 공장이나 의류 공장 같은 것도 구룡성채에 많이 들어서기는 했다. 물론 이것도 무허가. 살인 사건이 벌어져도 어떤 경찰도 손대지 않는 진정한 무법지대였다. 예를 들어 마약 거래를 적발해도 홍콩 시민권자만 처벌할 수 있었다. 이렇게 홍콩, 영국, 중국이 모두 관여하지 않는 상황을 3불관이라고 했는데, 자연히 성채는 소속이 분명치 않아[6] 공중에 붕 떠버렸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홍콩 소방처의 도움을 받기 힘들었고, 환자가 생겨도 성채 내 병원에서만 취급이 가능했다. 의무교육도 제공되지 않아 구세군이 세운 학교밖에 없었다. 전기와 수도는 무단으로 끌어다 쓰거나 자체적으로 우물을 판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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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 구룡성채의 모습▲ 1986년 주변의 목조 주택들이 철거된 이후의 모습

이후 1970년대 들어 무허가 고층 건물들이 제대로 된 설계도 없이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슬럼화가 가속화되었다. 1975년에는 베트남 전쟁 때문에 보트피플로 전락한 베트남인들까지 대거 몰려들어 성채는 더욱 혼잡해졌는데, 특히 이들이 베트남 화교들이어서 화교계 삼합회가 토착 삼합회와 알력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1984년 중영공동성명이 체결되어 홍콩의 중화인민공화국 반환이 결정됨에 따라, 영원히 치외법권일 것 같던 구룡성채도 철거 수순에 돌입한다.

1986년에는 홍콩(영국) 정부가 중국 정부의 암묵적 동의하에 경찰을 동원하여 범죄자들을 싹쓸이했다. 그리고 구세군등 봉사단체의 마약중독자 갱생 운동과 이곳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 활동한 자경단때문에 치안도 향상되었다. 자경단이 언급되는 시점에서 이미 심각한 거 아닌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와 영국 정부는 추가 논의 끝에 구룡성채의 철거를 1987년에 발표했다. 영국령 홍콩 정부[7]는 27억 홍콩 달러를 들여 구룡성채에 살던 3만 3천 여 주민들에게 보상금으로 지급했다. 보상금이 적다며 불만을 품은 주민들도 있었으나 홍콩 정부는 1991년 11월부터 1992년 7월에 걸쳐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킨다. 철거는 1993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직전에 성채의 합법적 소유권자인 중국 정부는 일본탐험가들로 하여금 지도를 작성하게 했다고 한다. 철거 작업은 1993년 3월 23일에 시작되어 1994년 4월에 완료되었다. 이로써 악명 높던 구룡성채의 주택가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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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정부는 이어서 이곳을 구룡채성공원(九龍寨城公園, 까우룽짜이씽공원, Kowloon Walled City Park)으로 조성했다. 공원 조성 작업은 1995년 8월에 완료돼 공식적으로 홍콩 정부의 시정총서(市政總署, Urban Services Department)의 관리 하에 들어갔다. 같은 해 12월 22일 영국령 홍콩의 마지막 총독이었던 크리스 패튼(Chris Patten)에 의해 공식 개원하게 되었다.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래 이 공원 일대는 공식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의 일부가 되었다.

4. 특징

구룡성채의 가장 큰 특징은 마구잡이로 지어진 건물의 숲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계획은커녕 제대로 된 설계조차 없이 외부로 뻗어나갈 수 없는 상태에서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대로 자꾸자꾸 빌딩을 높이 세우게 되었다.[8]

바로 옆에 악명 높던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이 있어 주변의 건물은 6층 이상 짓지 못하게 하는 규제가 있었지만 구룡성채는 영국령 홍콩이나 두 개의 중국도 법권이 미치지 않는 월경지대였기에 이러한 법률을 무시하고 최고 15층까지 올라가게 된다. [9]

거기에 증축 및 개축을 반복하다 보니 미로와도 같은 골목이 생겨났고 닭장처럼 빽빽한 아파트가 들어차서 대낮에도 햇빛을 못 보고 전등을 켜서 살아야 하는 곳이 되었다. 항상 어둡고 습기로 축축한 환경, 그리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이 없어서 수도관이나 전기 배선 등이 천장에 늘어지게 되면서 특유의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게 되었다. 이런 독특한 환경 때문에 영화 촬영지로도 많이 쓰였고 일본의 게임 등에서도 간간이 등장하게 되었다.

무분별한 증축 및 개축의 결과 불과 0.03㎢[10]의 면적에 무려 5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인구밀도로 환산하면 약 1,900,000명/㎢로서[11] 역사상 최고의 인구 밀도를 가진 곳이었다.

대략적인 내부 생활상은 이곳을 참조.[12] 이 곳도 참조해볼 만 하다.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월스트리트 저널의 구룡성채 탐험
홍콩의 공영방송국 RTHK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갱장집(鏗鏘集)'에서 방영한 구룡성채 내부의 모습 및 생활상.
구룡성채 내부를 돌면서 320여 장의 사진을 찍고 32명을 인터뷰한 사진집도 있다. City of Darkness. 홍콩에서도 라이프스타일샵인 GOD의 일부 점포(ex. PMQ점)에서는 원서로 팔기도 한다.
구룡성채의 당시 실제 생활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영어 자막

월스트리트 저널의 영상에서는 구룡성채에 살았던 사람, 성채를 연구하는 사람, 구룡성채에서 영화를 찍은 사람 등등이 등장하며 단순한 기괴한 건축물 단지가 아닌 몇 만명의 사람이 살았던 공간으로서 구룡 성채를 보여주고 있다. 상단의 구룡성채 탐험기 포스팅을 한 일본인 요시다 이치로 본인이 나오기도 하며, 일본 카와사키시에 구룡성채의 일부를 재현한 오락실도 나온다.[13] 18분의 영상은 구룡성채가 잊혀질까? 아니면 기억될까? 라는 자뭇 심오한 질문을 던지며 끝난다. 사이버펑크 장르가 있는 이상 누군가는 계속 기억할 듯.

5. 관광 정보

침사추이 충킹맨션 앞에서 KMB버스 1번을 타서 구룡채성공원 정류장에 내리거나 MTR을 타고 Lok Fu(樂富)역에서 내린 뒤 남쪽으로 15분 정도를 가면 큰 공원이 나오는데 거기가 구룡채성공원이다.

전체적으로 시대상은 청나라 말기 쯤, 구룡성채 자체로 치면 초창기에 가까운 분위기이며 공원의 관리사무소에 해당하는 곳이 지금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으며 오래된 편에 속하는 구룡성채의 유일한 흔적이다. 공원 내에는 당시의 역사를 보여주는 건물과 전시물이 남아 있지만 이에 대한 자료의 양은 없는 것보다는 나은 정도. 센서를 이용한 전자 사진집이 구비되어 있으나 사진의 양은 많지 않다. 3개의 방에서 프로젝터로 사진을 영사해주는 수준 정도여서 전자 사진도 거의 없다시피 하고, 벽을 따라서 구룡성채의 역사가 담긴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 게 그나마 남아있는 역사 자료이다. 게다가 공원의 전시 내용도 구룡성채의 탄생부터 철거까지 모든 범주를 다루고, 그나마 내용들도 청나라 성채의 역사에 집중되어 있다. [14]

흔히 홍콩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이 기대하는 구룡성채의 생활상 같은 건 프로젝터로 보는 사진 이상을 기대하면 안 된다. 그나마 구룡성채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는 게 다행이긴 하다. 구룡성채는 거의 홍콩의 흑역사 비슷한 곳이기 때문.

간이 매점도 있지만 기념품점 같은 걸 기대해서는 안 되고 그냥 구멍가게 수준이다.

그나마도 2015년 3월 기준으로 구룡성채의 중심에 있었던 집 유적이 공사중이다 보니 볼 것 자체가 진심으로 없다시피 했는데 현재는 완료됐다.[15] 그나마 유적지 흔적이라도 남아있는 포로 로마노나 콜로세움 처럼 상상으로 구경을 하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로 다 철거해 놓은 상태이다 보니 구룡성채에 대한 관광을 목적으로 일부러 찾아가기에는 그리 매력적이진 않다.

참고로 구룡채성공원은 침사추이의 구룡공원과는 다른 곳이니 주의.[16]

6. 대중문화에서의 구룡성채

이곳의 슬럼 이미지는 사진집 'City of Darkness' 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고, 수많은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풍경의 클리셰 중 하나는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에 착륙하기 전 저공비행하는 여객기가 배경에 등장하는 것이다.
  • 후지와라 요시히데의 만화 권아에서 주인공 켄지가 여기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켄지의 중국 모험이 시작되는 장소다.
  • 주성치쿵푸허슬에 나오는 낡은 주택촌인 돼지촌은 상하이가 배경이긴 해도 이곳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 풀 메탈 패닉!에서도 7~8권[17]의 후반부 무대이며, 이 부분을 애니화한 풀메탈 패닉 TSR에서는 비중이 크게 증가했으며 특유의 분위기도 잘 살렸다. 주로 낮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많다는 게 특징.
  • EZ2AC의 수록곡 JMJ의 BGA에서 이곳에서 관찰되던 비행기 이륙 장면을 참조한 듯한 씬이 초반에 등장한다.
  • 특유의 난잡한 스프롤 형식의 도시와 네온사인들은 사이버펑크 세계관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공각기동대 극장판의 한 장면으로도 나오며 SAC에서도 비슷한 모습의 슬럼이 등장한다. 마찬가지로 사이버펑크물인 PSYCHO-PASS의 슬럼가는 이 곳을 모델로 하는 듯 하다.
  • 크라잉 프리맨에서 푸친란이 귀도 무라마사를 남편 대신에 가진 후에 칼에 걸맞는 실력을 키우기 위해 찾는 스승이 있는 곳이다. 페야산이 그녀를 말리면서 말하길 막강한 백팔룡 조직도 건드리지 못하는 곳이라고 한다.
  • 1997년작 PS1용 호러 어드벤처 게임인 KOWLOON'S GATE -九龍風水傳-의 주 무대이기도 하다. 구룡성채에 헬게이트가 열려서 어둠세계의 구룡성채에 침식당하는 걸 막기 위해 분전하는 풍수사의 이야기를 다룬 게임인데, 특유의 약빤 듯한 센스로 인해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게임으로 취향에 따라서 카미게로도 쿠소게로도 평가받는다.
  • 세가의 쉔무 2에선 홍콩의 아바딘, 완차이에 이은 세번째 구역으로 등장하는데 구룡성채의 안 좋은 부분들을 어느 정도 순화시킨 선에서 재현한 곳이다. 20층이 넘어가는 높은 건물들과 여기저기 폐허[18]가 그대로 남은 곳에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동네인데, 치우문의 하부 조직인 황천회에서 대다수의 지역을 점거하고 있고, 렌 우잉이 이끄는 헤븐즈가 황천회와 대립하고 있다. 야생남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트리트 파이터들과 구룡성 여기저기에서 싸워볼 수 있고, 미니 게임 중 애프터 버너와 행온을 이곳에서 습득할 수 있는데, 행온은 찾기 어려운 곳에 숨겨져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모르고 그냥 지나갈 수도 있다. 잠입 액션, 대전 격투등 쉔무 2에서 가장 거칠고 화려한 활극을 즐길 수 있는 곳.
  • 섀도우런: 홍콩에서는 구룡성채가 철거된 곳에 다시 슬럼가가 들어선다. 원래는 하층민 복지의 일환으로 지은 주거단지였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슬럼화되었는데, 거의 지옥과 같은 곳으로 묘사되며 게임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풍수지리를 매우 중요하게 따지는 홍콩답게 풍수지리가 줄거리에 매우 밀접하게 엮여있다.
  • DARKER THAN BLACK에서도 배경으로 등장한다. 흑의 계약자 외전[19]에서 헤이와 인의 도피처 중 한 곳으로 나온다. 외전 1화의 차회 예고에서 '홍콩 구룡성' 이라고 언급되며 2화의 전반적인 배경 또한 구룡성채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 다음 웹툰 양말도깨비에서는 함박눈 마을의 모티브가 되었다. 물론 동화풍 웹툰이기 때문에 이곳만큼 무서운 곳은 아니다. 다만 다른 마을보다 범죄율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넘어진 사람을 봉변 당할까봐 무시하는 곳이니...
  •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되고 있는 웹툰 구룡특급에서 가상의 배경을 설정할 때 구룡성채의 일부를 차용하였다.
  • 토마p의 구룡 레트로의 가사는 이 곳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추측된다.
  • 판타즈멀이라는 서바이벌 호러 FPS 어드벤처 게임은 배경이 구룡성채인데, 정확히는 텍스쳐나 레벨 디자인만 구룡성채풍이고 나머지는 로그라이크 스타일로 맵이 랜덤 생성된다. 하지만 원래 구룡성채가 배배 꼬인 미로투성이다 보니 저렇게 나와도 위화감이 없다.
  • 장강명의 소설 호모도미난스에도 까울룽씽자이로 언급한다.

[1] 제법 오래된 표현이다. 1930년대에 마피아의 소굴이었고 부정부패로 막장을 달리던 도시인 매사추세츠 린(Lynn) 지역의 별명이 신 시티다. 그 이후에는 라스베이거스의 별명으로 쓰이다가 후에 이것에서 모티브를 딴 만화가 연재되기도 했다.[2] 寨와 砦는 통자(通字)다. 당시 주민들도 성채복리회(城砦福利會, 일종의 상가번영회)와 같이 城砦로 많이 썼다.[3] 이 흔적은 홍콩 행정구역 이름에 '구룡성 구'라는 식으로 남아 있다.[4] 충킹맨션은 양조위, 금성무, 임청하, 왕페이 주연의 영화 중경삼림의 무대가 되었던 장소로 유명하다. 그나마 충킹맨션은 홍콩이 직접 치안을 담당해서 구룡성채에 비하면 훨씬 안전한 서민 숙박 공간이였고. 최근에 충킹맨션은 이민국+경찰의 합동 단속으로 불법체류자는 모두 추방하고 범죄자는 전부 검거해 감옥으로 보냈다. 그래서 최근에도 배낭여행객들에게 추천될 정도다. 다만 도심 한복판이라 충킹맨션 내의 숙박업소 가격은 주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하더라도 절대적으로는 여전히 높다. 그나마 인도인이 경영하는 숙소는 싸지만 손가락만한 바퀴벌레와 과자만 열면 몰려드는 개미떼, 그리고 여성의 경우는 위협을 느낄 정도인 험악한 분위기 등으로 이쪽은 한국인은 잘 안 간다. 한국인이 잘 가는 일본계, 대만계 숙소나 홍콩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숙소는 당연히 깔끔한 만큼 비싸다.[5] 사실 이들 의료인들은 중국에서는 정식으로 의료 활동을 하던 이들로, 문혁의 광기를 피해 도망쳤다가 홍콩에서 중국 의사 면허가 호환되지 않아 개업을 못 하자 어쩔 수 없이 불법 영업을 할 수밖에 없던 이들이었다. 즉, 소위 말하는 야매는 아니었던 셈.[6] 타이완으로 망명간 중화민국 정부도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영국 입장에서 알 바 아니었다.[7] 당시 공식적으로 영국령 홍콩이 아닌 중국의 영토였지만 어차피 홍콩 전체가 중국에 반환될 예정이라 영국령 홍콩 정부가 구룡성채의 철거와 공원 조성 작업을 집행하기로 합의했다. 그래서 홍콩 경찰에 의해 철거 법집행에 들어간다.[8] 중심부에는 유치원과 양로원이 있었다. 중간에 고층 빌딩이 푹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단층 건물이 유치원과 양로원이다.[9] 이후에 카이탁 국제공항도 해체된 후 그 자리에 공원이 만들어졌다.[10] 잠실 야구장의 관중석 등을 합친 총 면적과 비슷하다.[11]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 하면, 서울시 안에 11억 5천만 명이 살고 있는 수준이다. 물론 저건 아파트들을 빽빽하게 꽂아놓은 특수한 곳이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그리고 문제는 편의시설(구청, 주민센터, 경찰서, 소방서 등)도 극도로 부족하기 때문에 구룡성채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저런 높은 인구 밀도를 구현한다는 게 말이 안된다. 굳이 비유하자면 서울시 시 경계 모양을 따라서 20~40층짜리 빌딩들을 쫙 이어붙여 짓고 그 안에 편의시설까지 마구잡이로 쑤셔넣어서 한 층 면적이 서울시 면적과 같은 초대형 건물을 지으면 비슷해진다.[12] 하단을 살펴보면 그냥 작은 마을 정도였던 성채가 어떻게 요새화(...) 되었는지 볼 수 있다.[13] 점포 홈페이지. 한 여행 블로그의 소개. 일본의 미디어 대여 서비스업체인 GEO에서 운영하는 오락실 중 하나다. 라인업은 여느 일본의 대도시에 있을 법한 대형 오락실과 비슷한 편이다.소개 영상(한글자막) 단, 일본 오락실치고는 이례적으로 24시간 내내 18세 미만은 출입 금지로 되어 있는 점포이므로 주의.[14] 실제로 초창기 구룡성채의 남문 유적 등은 잘 보존해놓고 전시하고 있다. 사실 쓰레기 더미에 묻혀서 그렇지(...) 대포 등은 멀쩡히 보존되었다. 치외법권지라 발굴 및 관리를 못 했을 뿐이다.[15] 구룡성채를 위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 가운데가 뚫려있는 것처럼 보이는 공간이 있는데 그 곳에 이 집이 있었다고 한다. 구룡성채의 성주(?)급 인사가 거주하던 곳이라고... 2016년 2월 기준으로 보수 공사(?)가 끝난 듯 하다.[16] '채성'이라는 글자가 없으면 십중 팔구 침사추이 북부의 구룡공원을 지칭한다.[17] '끝나는 Day by Day'. 국내에는 '일상에 고하는 작별'로 번역되었다.[18] 어느 정도냐면 고층건물 바닥이 여기저기 빠졌는데, 보수는 고사하고 그냥 길다란 나무 판자를 깔아놓은 게 다일 정도..[19] 2기 유성의 제미니에서 DVD/BD 영상특전으로 나왔다. 총 4화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