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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주의

근왕파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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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주의는 근대(modern)에 탄생한 이념이다. 따라서 21세기 기준 서구 선진국에서 국민보수주의가 강경 우익인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근대적/현대적(modern) 보수주의이며, 고전적(classical) 보수주의에 속하지 않는다.
상징 | 역사 |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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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치적 위치3. 각국의 사례
3.1. 그리스3.2. 독일3.3. 미국3.4. 부탄3.5. 영국3.6. 스페인3.7. 아프가니스탄3.8. 이란3.9. 이라크3.10. 이탈리아3.11. 프랑스3.12. 한국3.13. 호주
4. 같이 보기5. 둘러보기


君主主義 / Monarchism

1. 개요

군주주의는 군주제를 옹호하는 사상, 형태 등을 의미한다. 공화주의와 대조되는 용어로 사용된다. 군주주의를 지지하는 정치 세력을 근왕파(勤王派, monarchist)라고 한다. monarchist는 또한 왕당파라고도 번역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royalist도 왕당파로 번역하기 때문에 혼동의 여지가 있다.

2. 정치적 위치

영국, 일본 등 입헌군주제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국가에서는 주류 사회보수주의에 속하나[1][2] 대한민국, 미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 공화제가 확고히 자리잡은 국가에서는 반동적 보수주의로 간주된다.

3. 각국의 사례

3.1. 그리스

신화의 나라이자 서양 문명의 근원지라 할수 있는 그리스 역시 오스만 제국에게서 독립 이후부터 왕정이냐 공화정이냐를 놓고 지속적인 갈등이 벌어지던 유럽의 국가였다.

국왕 요르요스 1세가 50여년 동안 재위하며 안정적으로 나라를 통치하면서 공화파는 힘을 잃고 왕정이 자리잡는 듯 했으나, 그의 뒤를 이은 콘스탄티노스 1세 시대에 1차 대전 참전 문제를 놓고 국왕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총리가 갈등을 빚으면서[3], 다시 체제 논쟁이 불붙기 시작해 1930년대까지 여러 차례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실시된 1946년 국민투표에서는 왕정복고가 가결되고,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겠다며 내전을 일으켰던 공산당1949년 내전에서 완패하여 불법화되면서, 다시 왕정이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67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극우파 군인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가 역쿠데타를 시도한 국왕 콘스탄티노스 2세를 축출하면서 그리스의 군주제는 다시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파파도풀로스 정권국왕만 축출하고 왕정 자체는 유지하면서 왕 없는 왕국의 섭정[4] 노릇을 했지만, 1973년 왕당파 장교들의 쿠데타 시도가 무산된 이후 공식적으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전환했다.

이후 파파도풀로스를 축출하고 집권한 새로운 군사 독재자 디미트리오스 이오아니디스가 1974년 키프로스 전쟁에서 패하여 실각하면서 민주화가 이뤄졌는데, 과도내각의 총리를 맡은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5]의 주도하에 다시 왕정복고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1946년 국민투표와 달리 1974년 국민투표는 공화파의 압승으로 끝났고, 이로써 공화정 체제가 최종적으로 정착되었다.[6]

21세기에 마지막 국왕콘스탄티노스 2세[7]와 왕족들이 그리스 공화국 정부로부터 귀국과 거주를 승인받았고, 주류 우파 정당인 신민주당 내부에도 아직 왕당파가 남아있으며 1970년대 민주화 이후의 그리스가 역대 총리와 대통령들의 각종 실책과 부정부패로 인해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 차라리 비전도, 추진력도 없는 현 민주 공화체제의 정치꾼들보다 왕정 시절이 좋았다며 헌법 개정을 통한 왕정복귀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마저도 극소수에다 영향력은 미미하다. 그러나 왕가 구성원들이 왕정복고를 공식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있으며, 귀국 이후에도 조용히 생활하고 있어 그리스 국민들 사이에서도 큰 비난을 받지 않고 있다.

3.2.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이래 독일은 공화국이 되었지만,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는 독일 제국의 재건을 바라는 왕당파가 상당히 많았다. 많은 독일인들은 공화국 체제를 협상국이 강요한 혐오스런 체제로 인식했고, 독일 제국 체제를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지향점으로 여겼다. 국민뿐만 아니라 정치인들 중에서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는 대놓고 제정 복고를 찬성한 골수 왕당파였다. 그러나 패전국으로써 승전국인 협상국의 눈치를 봐야만 했던 국제정세와, 제국 체제를 싫어하는 독일 사회민주당독일 공산당 등 좌파의 압력, 그리고 누구를 황제로 추대할지에 대해 합의[8]가 이뤄지지 못한 등의 이유로 실제 왕정복고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아돌프 히틀러나치당이 급부상하자, 독일 내 왕당파는 히틀러에 협력하여 왕정복고를 이루고자 하였다. 그러나 히틀러는 군주제를 혐오하는 인물이었고, 그가 집권하면서 왕정복고는 이뤄질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히틀러는 왕당파와 우파의 여론을 고려해 호엔촐레른 가문을 우대하였지만 히틀러와 왕당파의 미묘한 갈등은 점점 커져갔고, 일부 왕당파는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아무튼 왕당파는 대체로 나치 독일에 협조적인 편이었고, 이 때문에 2차대전 패전 후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열렬한 왕당파였던 융커들은 동독과 폴란드의 공산화에 따라 대부분의 토지를 잃고 서독으로 도망쳐야 했으며, 서독에서도 전범으로, 혹은 전범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다. 그렇게 하여 왕당파는 정치적 입지를 완전히 잃고 몰락하였다.

2022년 12월에는 독일 내에서 왕정복고를 노리던 쿠데타 모의가 있었으나 독일 경찰에 의해 뭔가 해보기도 전에 전원이 체포되었다.

3.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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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시대~미국 독립 전쟁 시기에 대영제국에 충성하던 친영 왕당파 세력. 현대 미국 보수주의에는 없다고 봐도 무관하다.
** 중도우파적 사회관(온건 사회보수주의) 한정. 고전적 자유주의/재정보수주의 요소까지 포함된 일반적인 미국의 보수주의 그 자체라기 보다는 미국의 사회보수주의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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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파(Loyalist)[9]라고도 하며 반대 개념으로 애국파(Patriots)가 있다.

미국의 경우 13개 식민지 시절부터 보수적인 친영 세력들이 많았다. 이들 중 일부는 미국 독립 전쟁에 가담하였고 독립 이후 프랑스 혁명같은 자유주의 가치에 반대하는 유사 귀족적, 보수적 우익 정당인 연방당의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식민지 시대 왕당파들은 미국 독립 전쟁 당시 영국 편을 들었고, 미국이 독립하자 핍박을 피해 영국 본토나 캐나다로 도망쳤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왕당파에 대해서는 영어 위키백과 Loyalist (American Revolution) 문서도 참조하라.

3.4. 부탄

부탄의 경우 좀 특이한데, 국왕이 국가 발전 등의 명분으로 입헌군주제를 위해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려 하고 있지만, 왕당파 세력이 반대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입헌군주제라고는 하지만 민주주의가 잘 정착하지 못하여, 부탄 맹호군을 비롯한 공화파 반군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3.5.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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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까지도 왕정인 나라의 대표격인 영국의 경우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왕당파 지지가 확고해서 공화파의 세력은 크지 않다. 본래 왕당파에 뿌리를 둔 보수당이야 당연히 지지층의 절대다수가 왕당파다. 심지어 왕실폐지론자들이 지지하는 노동당 지지자들조차 왕실폐지론자보다는 유지론자가 더 많은 편이다. 비록 제러미 코빈더 가디언, 인디펜던트를 위시로 한 강성좌파 사이에서는 왕실폐지를 주장하는 여론이 우세한 편이지만, 이들조차 반영국적인 집단이라는 낙인이 두려워 함부로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데 북아일랜드의 경우 역사적 문제로 인해 영국 연합왕국을 지지하는 세력과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지지하는 아일랜드 공화주의 세력이 극한의 정치 대립을 보이고 있는데, 이 중에서 영국 연합왕국을 지지하는 세력을 연합주의자(unionist) 혹은 왕당파(royalist)라고 한다. 정당으로는 민주연합당이 대표적인 북아일랜드 왕당파(연합주의자) 정당.

영국인들이 많이 진출했던 식민지에서는 단순히 왕실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영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보내는 정치세력을 왕당파로 싸잡아 부르는 경향이 있다. 위의 북아일랜드 연합주의자를 왕당파로 부르는 예도 하나이고, 예를 들면 미국 독립전쟁 당시에도 독립에 반대했던 몇몇 미국인들은 왕당파(royalist)로 불렸는데,[10] 이들은 미국 독립 이후 탄압을 받아 대다수가 본국이나 캐나다로 망명했다.

3.6. 스페인

군주국인 유럽 국가들 중 비교적 공화파 세력이 큰 스페인에서는 공화주의가 대새 진보주의 이념과 연계된다면 근왕파들은 대게 보수주의 이념과 연결된다.[11] 이는 프란시스코 프랑코독재 당시 공화주의자들을 탄압하고, 자신이 죽을 때 왕정복고를 하여 후안 카를로스 1세를 새로운 스페인 국왕으로 즉위하도록 했기 때문. 오늘날 스페인에서 프랑코에 긍정적인 사람들은 대개 보르본 왕가에도 우호적인 왕당파들이 대다수이고[12], 프랑코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보르본 왕가를 싫어하는 공화파가 대다수이다.[13][14]

3.7.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 왕국마지막 왕이었던 모하마드 자히르 샤쿠데타로 축출된 이후에 들어선 정권들[15]독재부정부패로 나라를 말아먹고 전쟁[16]까지 겹쳐서 나라가 완전히 난장판이 되자, 자히르샤의 왕정 시대가 평화롭고 살기 좋았다며 그나마 평화로웠던 1950, 60년대 당시 왕정 시기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래서 2000년대탈레반 정권에 저항하던 사람들 상당수가 왕당파였는데, 하미드 카르자이가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미국왕정복고 대신 이슬람 공화국 수립을 선택하고, 카르자이가 공화파로 전향하여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왕당파는 구심점을 잃고 와해되었으며, 자히르 샤 국왕이 귀국하긴 했으나 워낙 고령이라서 제대로 된 정치 활동은 시도하지 못하고 조용히 살다가 2007년에 노환으로 사망했다.

현재 탈레반이 재집권한 아프가니스탄에서 구 이슬람 공화국 정부에 협력한 인사들에 대한 보복은 있어도 구 바라크자이 왕실가에 대한 탄압이나 사형은 딱히 없지만,[17] 그렇다고 해서 왕정복고를 시도할 정도로 우호적인 건 아니며, 아프가니스탄 국민저항전선을 비롯한 저항 세력은 탈레반이랑 싸우기 바빠서 왕가에까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물론 왕정 시절이 근현대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대였다는 것도 해외 역사학자들이나 아프간 국민들조차도 인정하는 사실이기에, 만일 2차 탈레반 정권이 몰락한 이후에 들어설 신정부가 국가 통합을 위한 상징으로 삼기 위해 바라크자이 왕조로의 왕정복귀를 택할 가능성은 없지만은 않다.

3.8. 이란

이란의 왕당파는 주로 팔라비 왕조를 지지하는 정치 세력을 의미한다. 팔라비 2세 시절에는 사회적으로는 이슬람주의를 반대하며 상당히 세속적이였지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는 모사데크 등 개혁세력을 반대하는 기득권 중심의 보수반동 세력을 구성했었기 때문에[18] 이란 혁명 이후 왕당파는 일부 망명세력을 제외하면 반정부 세력 사이에서도 인기가 없었다. 그러다가 2017-2018 이란 시위 이후로 자유주의적이면서도 민족주의적인 열망이 있는 젊은 층 사이에서 왕당파 지지층이 점차 생겨나고 있으나 전보다 왕당파가 좀 더 두드러진 것일 뿐이지 대부분의 민주세력들은 모사데크주의를 계승하고 있는데다 왕당파는 아예 주류라고까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3.9. 이라크

이라크 역시 1932년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독립 이후에 식민 종주국이던 영국의 식민지 독립 정책에 의해서 이웃 아랍국가인 요르단과 마찬가지로 친영/친서방 성향의 하심 왕가가 통치하는 이라크 왕국으로 독립했지만 독립 이후에 커다란 내부 혼란을 겪었는데 왕실 지배층인 하심 가와 국민 피지배층 모두 수니파 이슬람이 절대다수였던 요르단과 달리 이라크는 왕실 지배층이던 하심 가가 수니파였고, 국민 피지배층들은 시아파 이슬람 교도들이 다수였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자연히 내부적으로 수니파의 하심 왕가와 다수 시아파 피지배층 간의 종파 간 대립이 격화되었다.[19]

결국 1958년 압둘 카림 카심 장군이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하심 왕조의 왕정을 폐지시키고 이후 총리가 된 카심 장군의 주도로 이라크 제1공화국 정권이 성립되었지만 이 카심의 제1공화국 정부마져도 약 5년뒤인 1963년에 범아랍주의 노선을 내건 군부내 반 카심파와 바트당 세력들이 주도한 쿠데타에 의해 전복됐고, 이후에 이라크는 연이은 정권의 붕괴와 정치 혼란, 이라크 전쟁, 아랍의 겨울 등을 겪으면서 그나마 나라 꼴이라도 좋았던 하심 왕조의 군주국 시절을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일어나면서 이로 인해 대두된 이라크내 왕당파 세력들을 중심으로 왕정복귀론이 대두된 적이 있었으나 그마져도 소수의 의견에 지나지 않아 큰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2010년대 아랍의 겨울 당시 IS의 준동으로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에 수립된 이라크 신정부가 IS들을 모조리 제압하고 권력 기반을 더욱 더 강화하고, 후세인 정권 붕괴 이래 수니파, 시아파, 쿠르드 등으로 분열되어 내부적으로 반목해오던 분위기마져 IS 격퇴전을 통해 재차 국민통합이 이뤄지면서 왕정 복귀를 주장하는 왕당파들은 힘을 잃은 상태다

3.10. 이탈리아

이탈리아 역시 이탈리아 통일 당시부터 왕당파와 공화파가 극한 대립을 보였던 나라 중 하나. 이탈리아 통일 당시 왕정공화정을 두고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었는데, 이탈리아 통일 3걸 중 카밀로 카보우르는 왕당파였고 주세페 가리발디는 소극적 공화파, 주세페 마치니는 강경 공화파였다. 이탈리아 통일 당시 여건상 공화정은 현실성이 낮다는 이유와, 통일 주도국인 사르데냐 왕국이 왕정이라는 이유로 인해 통일 이탈리아는 왕국이 되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파시즘을 방조한 책임을 물어 1946년국민투표로 왕정을 폐지하고 이탈리아 공화국이 됨에 따라 왕당파는 소멸해갔다.[20]

3.11. 프랑스

프랑스의 경우 프랑스 혁명으로 왕실이 무너진 이후에도 100년 가까이 왕당파가 강고하게 존속하고 있었다. 이들은 혁명 이후에도 예전 프랑스 왕국의 왕조였던 부르봉 왕조를 강하게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제국7월 왕정이 들어서고 나서는 보나파르트 왕조오를레앙 왕조를 지지하는 왕당파들도 있었다. 19세기에만 해도 이들은 상당히 세력이 강고해서, 프랑스 공화파가 보통 선거의 실시를 망설였던 이유도 보통선거를 하면 선거에 따라 왕정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고 실제로도 성인남성들에게 보통선거권을 부여한 프랑스 제2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합법적으로 나폴레옹 3세(당시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당선되고, 친위쿠데타로 3년안에 헌법을 뒤엎고 군주정으로 되돌아갔다. 이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패전한 뒤에 프랑스 제3공화국이 들어섰지만 아돌프 티에르에 대한 실망감으로 루이 나폴레옹을 지지했던 보수층들이 대거 왕당파를 지지하며 의회 다수 의석을 차지했고 이 때문에 몇년만에 다시 군주정으로 복귀할듯 싶었지만 왕당파가 부르봉 지지파와 오를레앙 지지파 등으로 분열한데다가 앙리 5세가 사실상 왕위에 오르는 것을 스스로 거부하면서 왕정복고 여론은 사그러지게 되었고, 이전 공화국에 비해 비교적 안정적인 통치를 하게 되면서[21] 점차 세력을 잃어갔다.

이후 샹보르 백작의 죽음으로 법통주의자들은 정치적 생명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비시 프랑스 시절 필리프 페탱 행정부에 합류하여 권세를 노렸으나 패전 이후는 완전하게 비주류로 전락해 정계에서 퇴출되면서 프랑스 내 왕당파는 20세기 중반 68운동 이후에 정치세력으로는 완전히 소멸하게 되었다.

파리백작이자 오를레앙 가문의 왕위 요구자 파리 백작 앙리 도를레앙(1908-1999, 자칭 앙리 6세 도를레앙)은 1960년대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 대통령이 되어서 개헌을 통해 왕정으로 바꾸는 (누가 생각나면 맞다) 방식을 고려 했는데 샤를 드골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본래 악시옹 프랑세즈 지지 가정 출신인 드골도 앙리의 가문을 동정했으나 그와 별개로 이미 왕정복고는 무리수란걸 알기에 걍 명사대우만 해주고 후계자로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앙리는 이게 1940년대 드골이 런던으로 오라고 했을때 본인이 페텡과 간보다가 안간거 때문에 드골이 그것 때문에 앙심을 품고 왕정을 복고하지 않은거라고 후회했다고 한다.[22] 사실 지금도 악시옹 프랑세즈들이 일부 프랑스 시골에서 설치는거 고려하면 저 때 샤를 모라스, 모리스 퓌조 같은 왕당파 사상적 거두들이 걍 페탱 정부에 동조해버린건 실책이었다. 프랑수아 드 라 로크처럼 우익 레지스탕스로 설치다 순교하거나 자유 프랑스랑 접선했으면 동정 여론 훨씬 늘릴 여지도 있었을 테지만 결국 본인들이 파멸을 자초한 셈이다.

2022년 현재까지도 왕당파 정치단체인 악시옹 프랑세즈(한국어 위키 영어 위키 프랑스어 위키)가 현존하기는 하지만 정치적인 영향력은 전무하다.

3.12. 한국

대한제국 시기의 '황제파'와 '황국협회'가 근대적 왕당파 정당이였다. 이들은 전제군주제를 지지했으며, 자유주의/급진주의와 입헌군주제를 표방했던 '독립협회'의 반대파였다.

경술국치 이후 왕정이 폐지되고 엄청난 격변을 거쳐 탄생한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대한제국 황실 복원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정계에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정말 극소수에 불과하다. 자체 정당도 있고 정기적으로 집회도 열리는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에 비하면 사실상 없는 수준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미 공화제가 정착된 대한민국에서 왕당파란 어디까지나 어딜 가든 특이한 사람들은 있다는 정도고 정치적 세력으로서 실질적인 의미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황실이 제국주의 해본다고 군사에 기반시설에 별짓을 다 했지만 이걸 다 하다보니 돈이 부족하고, 외교도 나름 해본다고 했는데 외세의 위협에 최선을 다한 대응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데다, 하는 것 마다 각종 실정을 일삼아 일제강점기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평이 주류 이다. 망국 이후에도 황족 중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물이 의친왕밖에 없는 모습만 보여줬고, 독립후 공화파인 이승만 정부가 군주제 없애기에 들어갔으니 여론이 좋을 리는 만무했으며 지금은 세대교체가 이뤄져 무미건조하다.

사실 이미 왕당파는 조선왕조가 망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제의 남한 대토벌 작전으로 인해 의병들이 토벌되면서 소멸되었다. 이후 1919년 임시정부 수립 당시 이미 공화파가 대세를 차지했지만, 그렇다고 근왕파가 사라져서 공화파가 대세를 차지한 게 아니다. 알다시피 독립 열사들의 이념 다툼은 꽤 유명하듯, 공화파 외엔 전부 쓸려나가던 와중에 질기게 살아남은게 공산파였던 북한이니 말 다한 셈.

3.13. 호주

호주의 왕당파는 주로 호주의 보수주의와 연관 되어 있다. 계파적으로 따질경우, 호주 자유당 내에서도 온건파는 왕당파와 공화파가 혼재해있는 반면, 중도우파국민우파는 확실히 왕당파에 속해있다.

4.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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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밀로 카보우르 등 자유보수주의적 왕당파도 있다. 또한 이러한 국가들은 공화주의 여론도 소수라서 자유보수주의 세력도 군주를 부정하지 않는다.[2] 특이하게도 스페인에서는 사회주의 좌파 성향 왕당파라는 기묘한 성향을 보이는 구 카를리스타들도 있다. 스페인 내전, 프란시스코 프랑코, 보르본 왕가 항목 참조.[3] 콘스탄티노스 1세는 왕세자독일에 유학보낸 상태라서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하면서 은근슬쩍 친독 정책을 편 반면, 베니젤로스는 독일의 동맹국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동로마 제국를 되찾기 위해 협상국에 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4] 헝가리호르티 미클로시스페인프란시스코 프랑코라는 선례가 이미 있었다.[5] 그리스 왕국 시절 왕당파 정당인 국민급진연합(National Radical Union) 소속으로 총리를 지냈던 인물이다.[6] 다만 카라만리스 총리는 공화정 전환 이후에도 1980년까지 집권했으며, 그의 조카 코스타스 카라만리스도 그리스 공화국 총리를 지냈다.[7] 2023년 아테네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8] 빌헬름 2세를 복위시켜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고 황태자를 즉위시켜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다.[9] '왕당파'나 '충성파' 모두 맞는 번역이라고 한다.[10] 미국 독립혁명 당시의 왕당파를 특히 충성파(The Loyalists)라고 부른다. 반면 독립파를 애국파(The Patriots)라고 부른다[11] '대개'라고 표현한 이유는 카를로스주의 정통파는 현재 좌익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12] 인민당, 복스[13] 스페인 사회노동당, 수마르, 바스크 지방 연합, ERCSobiranistes[14] 프랑코가 시행한 왕정복고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의견이 엇갈린다. 어떤 사람들은 프랑코도 민주화는 피할 수 없음을 알고 민주화가 이뤄지더라도 자신의 세력을 온존시키기 위해 왕정복고를 택했다고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자신의 뒤를 이은 독재자가 되길 바랐다고도 한다.[15]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16]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그 이후에 무자헤딘, 탈레반 등이 벌인 내전[17] 같은 이슬람 원리주의 신정체제가 다스리는 이웃나라여도 1979년 이란 혁명으로 팔라비 왕조를 몰아내고 집권한 현 지배층 세력들이 현재까지 통치 중이며 구 왕가 세력들을 노골적으로 적대할 명분이 넘쳐나는 이란과 달리, 아프가니스탄은 1973년에 바라크자이 왕조가 쿠데타로 인해 무너지고 1996년 탈레반 등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들이 정권을 잡기 전까지 내전과 소련군의 침공 등 극심한 혼란을 겪었기 때문에 현 탈레반 정권의 입장에서도 이미 몰락한지 50년이나 지났고 직접적 이해관계가 낮은 바라크자이 왕실가 사람들을 대놓고 적으로 몰아세울 명분이 전무하다.[18] 팔라비 2세가 쫓겨나기 전에는 아예 군주를 중심으로 한 일당독재까지 시도했다.[19] 그나마 초대 국왕이던 파이살 1세와 2대 국왕인 가지 1세는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종파 갈등을 조정하며 이라크 국민 절대다수의 시아파들을 설득하고, 이라크를 근대화하려는 등 치적이 없진 않았으나 3대 국왕 파이살 2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보다 더 못한 정치력으로 국정을 말아먹는 등 이라크를 완전히 박살냈다.[20] 무엇보다 파시즘을 방조한 사보이아 가문의 후계자들이 온갖 사건사고를 저지르고 왕위 계승 자리를 두고 분가와 다투는 모습으로 이탈리아 국민들에게서 등 돌린지 오래라 사실상 왕정복고는 물 건너갔다.[21] 비록 내각이 1년도 못가 무너지는 혼란이 이어졌지만 매일이 전쟁과 숙청이 이어졌던 제1공화국이나 4년밖에 못간 제2공화국에 비하면 안정적이었다.[22] 사실 그것보다는 1960년대 68혁명으로 대표되는 당대 프랑스의 기조가 표면 위로 올라오는 상황에서 프랑스 공산당프랑스 사회당 같은 프랑스 국내 좌파들이 그런 반동 기조를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반대 이유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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