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성 교정국 도쿄도 교정관구 후추 형무소 [ruby(府中刑務所, ruby=ふちゅうけいむしょ)] | Fuchu Prison | |
<colbgcolor=#2f328e><colcolor=#fff> 종류 | 형무소 |
운영주체 | 법무성 교정국 도쿄도 교정관구 |
개소 | 1935년 (쇼와 10년)[1] |
형무소장 | 시라카와 히데시 (白川秀史) |
위치 | 도쿄도 후추시 하루미초 4-10 (〒183-8523) |
연락처 | +81 42-362-3101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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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Fuchu Prison | [ruby(府中刑務所, ruby=ふちゅうけいむしょ)]일본 도쿄도 후추시에 위치한 교도소.
2024년 기준으로 일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슈퍼맥스급 교도소다. 에도 막부 시대에 만들어져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일본에서 제일 악명높은 교도소이며 그만큼 살인적인 수준의 통제를 자랑한다. 주로 살인범, 테러리스트와 같은 중범죄자들이 수감되기 때문인지 다른 범죄자들도 이 형무소만큼은 죽어도 가기 싫어한다고 한다.
후추형무소장은 시라카와 히데시로 2023년 4월에 임명되었다. 출처
2. 역사
후추 형무소의 역사는 에도 막부 시대였던 간세이 2년(17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도쿠가와 막부의 수도였던 에도[2]는 당시에도 80만 명 가량이 살고 있는 대도시였던 만큼 노숙자와 범죄자들이 끊이질 않았고 이런 상황은 전반적으로 수도에서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어서 막부 입장에서도 큰 곤욕 중 하나였다. 이에 따라 당시 하타모토이자 화부도적개역(火付盗賊改役) 직책을 맡았던 하세가와 헤이조가 막부의 로쥬인 마츠다이라 사다노부에게 제안해서 이시카와지마에 대규모 닌쇼쿠요세바(人足寄場)를 만들었고, 이 곳에서 노숙자들에게는 일거리를 주는 한편 범죄자들에게는 노역을 통한 갱생을 시켰다.[3]
메이지 유신에 따라 신정부가 등장하면서 닌쇼쿠요세바는 그 기능이 축소되었지만 여전히 교정 시설에 대한 수요는 필요해서 1870년 일본의 근대적 교도소인 이치가야 형무소가 개소했고 1874년에는 이전 닌쇼쿠요세바가 징역서로 개칭했으며 1903년과 1922년에는 도시마구로 옮겨가면서 스가모 감옥에서 스가모 형무소로 이름을 바꿨다. 1935년 후추시에 새 형무소를 세우고 여기에 이전 스가모 형무소의 전임 역할을 부여하면서 오늘날의 후추 형무소가 되었다.[4]
보다 정확한 역사는 일본어 위키백과 후추 형무소 문서 참조.
3. 수감자 분류 등급
4. 유명한 수감자
"쇼와의 탈옥왕 (昭和の脱獄王)"이라고 불렸던 시라토리 요시에가 탈옥 혐의로 20년형을 선고받고 본인이 이감해 달라고 요청해서 여기에 수감되었다. 다만 4회차 탈옥 때 일어난 살인 사건이 재조사되면서 사형 위기를 벗어나고 살해 혐의도 무죄 선고를 받아서 탈옥죄 빼면 죄가 없었으며 아바시리 형무소보다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는 여기에서 그는 더 이상 탈옥할 이유가 없어져 모범수로서 착실하게 살다가 1961년에 가석방으로 풀려났다고 전해진다.일본 제국 시절 공산당 활동을 하다가 치안유지법으로 잡혀간 도쿠다 규이치와 시가 요시오도 여기에 갇혔다.
가수 겸 코미디언이었던 타시로 마사시도 여기에 갇혔다. 죄명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5] 이후 재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한국인 수감자도 있었다. 야스쿠니 신사 화장실 폭파 사건을 일으킨 범죄자 전창한이 여기에 수감되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경 징역 4년을 선고받았으니, 현재는 출소 후 한국으로 추방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1] 후추 형무소의 전신인 에도 이시카와지마 닌소쿠요세바(石川島人足寄場) 개소 연도는 1790년 (간세이 2년).[2] 이후 모두가 알다시피 도쿄로 개명했다.[3] 이들이 동원되어 만들어진 곳이 이시카와지마 조선소와 그 기반 시설, 오늘날의 IHI라고 한다.[4] 스가모 형무소는 스가모 구치소로 이름이 바뀌고 전후까지 존재했다가 미군에게 접수되어 구일본군 전범 처리용 시설로 쓰였다. 이후 이치가야 형무소가 도쿄 구치소로 이름을 바꾸고 들어서면서 잠시 쓰이다가 1971년에 카츠시카구로 이전하면서 부지가 철거되었고 현재 이 자리에는 마천루인 선샤인 시티와 히가시이케부쿠로 중앙공원이 지어졌다.[5] 각성제를 좀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마약이라는 단어보다는 각성제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