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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 (1993) 霸王别姬 | Farewell My Concubine | |
<colbgcolor=#ef2727,#010101><colcolor=#ffffff,#dddddd> 장르 | 드라마, 경극, 퀴어 |
감독 | 천카이거 |
각본 | 이벽화 |
원작 | 이벽화 - 소설 《사랑이여 안녕》[1] |
제작 | 서풍 |
기획 | 서걸 |
출연 | 장국영, 공리, 장풍의 외 |
촬영 | 구 창웨이 |
편집 | 배소남 |
음악 | 자오지핑 |
촬영 기간 | ○○ |
제작사 | 베이징 필름 스튜디오 중국전영합작제작공사 |
수입사 | 조이앤시네마 |
배급사 | 미라맥스 하명중영화제작소 제이앤씨미디어그룹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와이드 릴리즈 |
개봉일 | 1993년 1월 1일 1993년 7월 26일 1993년 10월 15일 1993년 12월 23일 2017년 3월 30일 (재개봉) 2020년 5월 1일[2] (확장판 재개봉) 2021년 3월 31일 (확장판 재개봉) 2022년 3월 23일 (확장판 재개봉) 2023년 4월 1일 (장국영 추모 20주기 확장판 재개봉) 2024년 3월 27일 (확장판 재개봉) |
상영 시간 | 156분 (국내 최초 개봉), 171분 (확장판) |
월드 박스오피스 | $6,451,450 |
북미 박스오피스 | $5,549,086 |
대한민국 총 관객 수 | 서울 248,539명[3] |
상영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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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3년 중국의 진개가(천카이거, 陳凱歌) 감독이 연출한 영화.
홍콩의 작가인 이벽화(李碧華)[4]의 소설 <사랑이여 안녕>[5]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원작자가 각본에도 참여하였다. 제목인 패왕별희는 본래 사면초가와 함께 항우와 우희의 비극적인 죽음을 담고 있는 고사를 바탕으로 하는 경극 작품이며, 이 영화의 중요한 소재이자 곧 영화의 제목이다.
1993년 제46회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피아노>와 공동수상했으며, 한국에선 1993년 12월에 하명중영화제작소가 수입 후 개봉되었다. 1994년에는 대우전자가 공급, 우일영상이 배급을 각각 맡아 비디오테이프로 출시했으며 90년대(1995년, 1997년) KBS에서 명절특선으로 더빙하여 방영한 바 있다. 당시 더빙 영상[6] 2002년에는 인피니티엔터테인먼트를 통해 DVD로 발매되었고, 2020년 노바미디어를 통해 블루레이까지 나왔다.
한국에서 자주 재개봉한다. '재개봉' 문단 참고.
==# 포스터 #==
공식 포스터 | |||
재개봉 포스터 | |
기념 엽서 | |
2. 예고편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NEW예고편 |
3. 시놉시스
경극을 하는 두 남자의 사랑과 질투, 그리고 경극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이야기! 어려서 북경 경극 학교에 맡겨진 ‘두지’(장국영)와 ‘시투’(장풍의)는 노력 끝에 최고의 경극배우가 된다. 여자 역할을 맡았던 두지는 시투를 흠모하게 되는데, 시투에게 사랑하는 여인 ‘주샨’(공리)이 생기면서 방황을 한다. 두지는 아편에 손을 대고, 시투는 주샨에게 빠져 산다. 이를 시작으로 두 남자는 중국의 역사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시작한다. |
4. 등장인물
한국의 비디오판이나 영화판의 자막은 영어자막을 중역한 듯 하다.[7] 중국어 한글표기법과는 거리가 있는 발음, 예를 들어 뎨이(Dieyi)는 "데이", 샤오로우(Xiaolou)의 경우 "샬로"라고 나온다.[8] 현재는 중국어 표기법이 확립되었으므로 이 문서에서는 정식표기를 사용한다.- 청뎨이 (程蝶衣: 정접의/아명: 더우쯔[豆子]) (성인역: 장국영 / 아역: 인쯔[尹治], 마명위[馬明威]) - 한글판 자막으로는 "청데이", 아명은 "도즈" 또는 "두지"라고 나온다. 더빙판 성우는 김승준.
이 영화의 주인공. 경극 패왕별희에서 여성인 우미인(우희) 역을 맡는다. 참고로 경극은 원래 남자들만 연기하는 게 전통으로(旦: 단), 여자 역할도 당연히 남자가 여장을 하고 한다.[9] 자신을 어릴 때부터 감싸준 샤오러우에게 남몰래 연정을 품고 있다.
극 내내, 더우쯔(=뎨이)가 가진 동성애 성향은 몹시 애매하게 그려진다. 엄마와 헤어진 후 유일하게 자신을 보살피고 보호해준 스터우에 대한 연정이 과하게 표현되는 것인지, 본래 동성애 성향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극중 언급되는 것처럼 경극(우희 역할)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극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게 되어 패왕으로서의 스터우를 사랑하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으며, 어느 쪽으로 해석하든 얼추 맞는다.
- 돤샤오로우 (段小樓: 단소루[10]/아명: 스터우[石頭][11]) (장풍의 [张丰毅][12], 아역: 자오하이룽(赵海龙)) - 한글판 자막으로는 "단샬로", 아명은 "시투"라고 나온다. 더빙판 성우는 신성호.
항우 역으로 패왕별희에 출연하는 배우. 경극학교 시절부터 뎨이를 항상 보살펴 왔다. 경극학교를 탈출해 무단으로 외출했던 뎨이가 스승에게 죽기 일보 직전까지 맞자 스승에게 대들어서 청뎨이를 구한다. 뎨이는 그에게 동성애적 연정을 품지만, 샤오로우는 현실과 극을 혼동하지 않고 친구로서만 뎨이를 보살핀다. 여자를 좋아하는 확고한 이성애자이다.
- 쥐셴 (菊仙: 국선) (공리) 한글판 자막으로는 "주샨"이라고 나온다. 더빙판 성우는 송도영.
홍등가의 "화만루"라는 유곽에서 일하던 매춘부. 눈치백단에 됨됨이도 웬만하며 대단히 영리하다. 화만루에서 여러 변태 남자들에게 수모를 당할 뻔한 것을 샤오로우가 구해준 이후[13] 유곽에서 나오며,[14] 자신을 구한 샤오로우와 연애 끝에 결혼한다. 샤오로우를 두고 청뎨이와는 연적으로 긴장관계가 있으며 쥐셴은 청뎨이가 샤오로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 위안스칭 (袁世卿: 원세경) (갈우 [葛优][15]) 자막판에서 주로 "원대인으로 번역되는데, 원어판에서는 원사야(袁四爺, 위안쓰예)[16]라고도 한다. 스칭(世卿)은 원래 이름이 아니라 귀족을 지칭하는 존칭이지만, 인민재판에서 판사가 "위안스칭"이라고 지칭한 것으로 봐서는 이 사람의 이름인 듯.
원세경 세경
경극 극단의 소유주로, 양성애자이며 청나라 시기 귀족의 후예. 극중에서는 희패(戏霸)라고도 하는데, 이는 연극의 왕이라는 뜻이다. 문화계에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영향력이 있으며, 일본이나 중국국민당과도 가까운 듯. 이 사람이 뎨이에게 선물로 주는 검의 원래 소유주가 장 내관이었던 것을 보면, 장 내관이 몰락한 후 경극극단을 인수한 듯. 경극을 직접 연기할 수 있을 정도로 경극에 조예가 있다.
1930년대부터 뎨이를 연모하다가 뎨이와 연인관계가 되며 뎨이를 멸시도 동경도 아닌 수평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진심을 다 해 대하는 인물. 중화민국이 중일전쟁에서 승리 후, 한간 처단을 위해 일본군 위문공연을 한 청뎨이를 법정에 세우지만 위안스칭이 연인의 구명에 힘썼고, 이후 국민당 고관 앞에서 뎨이가 공연하는 것으로 무마된다. 공산당 집권 후 인민재판에 넘겨져 사형선고를 받는다.[17] 극단의 우두머리로서는 배우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듯하며, 이는 선동으로 판결을 내리는 인민재판에서 과거 서로를 괄시하고 이를 되갚으려 한 전력이 있는 샤오로우마저 그를 변호하려다가 같이 반동으로 찍힐 것을 두려워한 쥐셴에게 제지당하는 데서 잘 나타난다. 위안스칭의 모델은 원세개의 차남인 원극문(위안커원, 1890-1931)이라고 한다.[18]
- 나쿤 (那坤: 나곤) (잉다 [英达]) 경극 극장주
만주족이다.[19] 작중 본인이 만주족임을 밝히는 대사 한마디 나오는 것만 빼면 만주족임을 알 수가 없다. 오른쪽 머리를 손으로 쓸어넘기는 버릇이 있으며[20] 불리하거나 난처한 일이 있으면 어색한 코웃음을 친다. 첫 등장은 뎨이와 샤오라이즈가 경극학교를 탈출했을 때 유명배우들을 안내할 때였고, 이후 장 내관의 지시를 받고 경극학교를 방문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들과 연을 맺는다. 경극 극장주로서 지배계급의 일원이지만, 위안스칭과는 달리 민국 - 일본지배 - 인민공화국 치하 하에서도 유연한기회주의적처신으로 꿋꿋히 살아남는다. 북경에 입성하는 공산군을 쳐다보면서 "공산당도 경극이 필요하니 우리는 새 지폐를 셀 일만 남았네"라고 말하는 데서 이런 태도가 드러난다. 공산화 이후에는 극장을 당에 바치고 공산당에 입당하지만, 문화대혁명 때 고초를 겪었는지 늙고 검버섯 핀 초췌한 얼굴로 다시 등장한다. 나쿤역을 맡은 실제 배우 잉다는 실제로 만주족이며, 만주족 중에서도 최상위급 귀족 출신으로서, 조상이 팔기군에서도 황제 친위부대인 정황기 출신이다. 원래 성은 허서리(赫舍里) 씨[21]이며 잉(英)씨는 신해혁명 후, 한족의 학살을 피해 바꾼 성이다. 특히 할머니가 청나라 황족인 아이신기오로(爱新觉罗)씨이다. 본인도 베이징대학을 나온 엘리트이며, 최근에는 배우보다 연출을 주로 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뎨이와 샤오로우보다 20살 정도 많은 인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1960년생으로 장풍의나 장국영보다 나이가 어리다.
- 샤오쓰 (小四: 소사) (레이한 [雷漢][22]) 한글판 자막으로는 "서"로 나온다. 앞의 샤오(小)는 중국어에서 애칭에 붙는 접두어.[23] 그러니까 이름은 그냥 사(쓰, 四)인 듯.[24]
뎨이가 장 내관에게 강간을 당하고 돌아오던 날, 경극학원 앞에 버려져있던 것을 뎨이가 거두어 동료들과 함께 키웠다. 그 후 경극학원에서 자라다 사부가 죽고 나서 경극학원이 해체되던 날, 사부의 벌을 수행하던 서를 뎨이와 샤우로우가 다시금 거뒀다. 뎨이를 사사하여 경극배우를 걷는가 했더니, 공산주의에 빠져 점점 스승인 뎨이와 경극 예술관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마오쩌둥 숭배자로서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에 가담, 데이와 샤오로우를 디스한다. 마지막에는 몰래 경극 분장을 하다가 홍위병들에게 들키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마지막에 분장을 들키는 장면은 자신들이 구시대적이라고 비난했던 선배 세대 예술인들을 후배 세대가 이해하게 된 것을 상징한다. 이 샤오쓰라는 인물은 천카이거 감독의 오너캐라는 분석이 있다.[25]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전통경극은 공연이 금지되고, 국공내전, 중일전쟁, 한국 전쟁에서 홍군의 활약을 다룬 현대 경극만 상영이 가능했다. 이런 현대경극은 전통경극과는 달리 분장이랄 것도 거의 없었다.
- 샤오라이쯔 (小癩子:소뇌자) (양잉차오 [楊永超])
샤오로우와 뎨이의 경극 학교 동문. 경극학교에서 교육을 빙자해 행해지던 구타와 학대를 잘 못 견디는 듯하다. 처음 등장은 경극학교 학생들을 동원한 거리공연이었는데, 중간에 날라버려서 스승을 곤혹에 빠뜨린다. 이후에도 뎨이와 경극학교를 탈출하였고, 극장에서 패왕별희를 본다. 그들이 보는 장면은 항우가 한나라군의 장수들을 도륙하며 무쌍을 찍는 장면. 관객은 열광하지만 샤오라이쯔는 "저런 갈채를 받으려면 얼마나 더 매를 견뎌야 하냐"며 절망한다. 경극학교에 돌아간 뎨이가 죽을 정도로 매를 맞는 것을 본 샤오라이쯔는, 자신도 그 정도로 맞을까봐 자살을 택한다. 그가 죽자 큰 소동이 벌어지고, 스승에게 맞던 청뎨이는 본의 아니게 구원을 받는다.
- 관사부 (關師傅) (뤼지 [呂齊])
경극학교의 교장. 구타, 가혹행위 등의 아동 학대와 다름없는 교육방법을 써서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근본이 나쁜 사람은 아닌 듯. 청뎨이의 어머니가 몸이라도 바치겠다는 식으로 말하며 뎨이를 경극학교에 받아달라고 하지만, 예를 갖춰 이를 거절한다.[26](후에 청뎨이의 어머니가 뎨이의 6번째 손가락을 잘라오자 그제서야 받아줬다.) 아이들에게 인간의 도리를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후에 스타가 된 제자들이 경극을 때려치우고 딴짓을 하자 호출하여 다시 무대로 돌아가라며 호된 벌을 내린다.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 경극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급사한다. 전형적인 옛날 방식의 스승이지만 뎨이와 샤오로우를 매우 아꼈던 듯, 데이와 샤오로우는 관사부의 장례를 부모의 상처럼 치른다.
- 장 내관 (張公公) (퉁디 [童弟])
샤오로우, 뎨이가 경극학교에 재학 중이던 시절의 경극 후원자 혹은 경극 극단주. 서태후를 모셨던 청나라 시절의 내시. 청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 듯, 뎨이와 대면했을 때 올해가 몇 년이냐는 질문을 하고, 뎨이가 민국 21년이라고 대답하자 "틀렸어! 선통 24년이야"라고 화를 냈다.[27] 청조는 몰락했지만 공화국이 들어섰던 북양정부-국민정부 시절에도 상당한 세도가였던 듯, 경극학교 학생들을 데려다가 자택에서 공연을 할 정도였다. 거세당한 몸이지만 색은 밝히는 듯, 자택에서의 공연에서 뎨이에 꽂혔고, 뎨이가 그 앞으로 끌려오기 전까지도 젊은 여성의 몸을 탐닉하고 있었다. 곧이어 뎨이에게 오줌을 눠 보라고 말하고 받아먹은 뒤 그를 강간한다. 하지만 1949년 공산군이 북경에 입성했을 때는 담배파는 노점상으로 몰락해 있었다. 이 역을 맡은 퉁디는 연극배우 출신으로, 패왕별희가 유일한 출연작이다. 영화에서는 매우 변태스러운 노인으로 나왔지만, 젊었을 때는 매우 미남이었다. #
5. 줄거리
===# 서막 (1977) #===
1977년, 불이 꺼진 체육관에 경극분장을 한 두 남자가 들어 온다. 그들은 한때 경극배우로 명성을 떨쳤던 돤샤오러우와 청뎨이로, 무대에 나오지 않은 건 20년 가량, 서로를 못 본지는 10년 가량 되었다고 한다. 매우 작게 등장하는 체육관 관계자[28]는 두 사람을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요즘은 악독한 4인방도 잡혀가고 문화대혁명의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 후[29] , 오래간만에 경극을 하고 싶다는 두 사람을 위해 조명을 준비한다. 그리고 우미인이 목을 긋는 것을 향해 손을 뻗는 항우의 그림을 배경으로 패왕별희가 시작된다.[30]
===# 소년기 (1924-1932) #===
1924년[31], 베이징 경극 학교에 더우쯔(豆子: 콩알)라는 소년[32]이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매춘부였던 더우쯔의 어머니 옌홍(蔣文麗 분)은 어느 정도 자란 사내아이를 유곽에서 키울 수 없어서 무작정 아들을 데리고 길거리로 나섰다가[33] 경극 학교 학생들의 공연을 보게 된다. 공연 중 샤오라이즈란 소년이 달아나면서 공연은 엉망이 되고 사람들은 사부에게 엉터리 쇼로 사기를 쳤다고 항의하지만 이때 스터우가 진짜 쇼를 보여주겠다면서 벽돌을 머리로 깨는 묘기를 보임으로 사부를 구해준다.[34] 이걸 본 옌홍은 아들은 경극 학교에 맡기려고 했지만, 본래 6손이었기 때문에 경극 학교에서 더우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옌홍은 눈물을 흘리면서 천하다고 버리지만 말아달라면서 아이만 받아주면 뭐든지 다 하겠다고 눈웃음을 짓지만, 관 대인은 "천하다니? 자네나 나나 마찬가지지! 배우될 팔자가 아닌 것을 어쩌겠나?"라고 완고히 거절한다. 그러자 옌홍은 식칼로[35] 그의 손가락을 강제로 잘라내어 절박한 진심을 표하고 이에 관사부도 뜻을 굽혀 더우쯔를 제자로 받아들인다.[36] 이렇게 요란하게 첫발을 들인 내성적인 성격의 더우쯔는 경극 학교의 다른 아이들로부터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는데, 단지 내성적이고 여린 성격 때문만은 아니고 창녀의 아들이라는 슬픈 이유도 있었다. 아이들이 옌홍이 더우쯔에게 걸쳐준 외투를 놀려대자 더우쯔는 그 자리에서 외투를 불태워버린다. 그런 더우쯔를 스터우(石頭: 돌멩이)[37]라는 1~2살 차이인 소년은 이내 흥미가 생겼는지 더우쯔에게 다가가지만 더우쯔는 그를 밀어내고 스터우는 그런 더우쯔에게 잘 자리와 이불을 주며 천진난만하게 장난친다. 다음날 벽돌로 다리를 고정시켜 유연성을 키우는 고통스러운 훈련을 받게 된 더우쯔는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는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스터우는 걸음을 연습하는 척 벽돌을 걷어차서 고통을 줄여주려다가 관 대인에게 걸려서 두들겨 맞고 눈오는 겨울밤에 물동이를 머리에 얹고 버티는 벌을 받는다. 꽁꽁 얼어붙은 스터우가 들어오자 더우쯔는 그를 안아 언 몸을 녹여주며 친구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두 소년은 사형과 사제로서 돈독히 정을 쌓으며 자라다가 경극의 큰배역을 받게 되는데, 더우쯔는 여자 주연을, 스터우는 남자 주연을 꿰찬다.
이 과정에서 더우쯔와 스터우를 포함한 경극 학교 수련생들의 훈련은 가혹함으로 시작해서 가혹함으로 끝났다. 수련 중 실수하면 매를 맞고 잘하면 앞으로도 계속 잘해라라는 격려 차원에서 마찬가지로 매를 맞았다. 더우쯔와 스터우는 이 가혹행위를 하루하루 견뎌내며 차츰 경극배우로 성장하고 있었다.[38] 세월이 흘러 이들이 수련을 한지 9년이 지난 1933년, 이들은 곧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더우쯔는 다른 건 다 잘해도 여자 역할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는 원래 계집아이로 태어나서 사내아이가 아닌데"라는 대사를 계속 "나는 원래 사내아이로 태어나서 계집아이가 아닌데"로 뒤바꿔 말하는 것이다. 선생들에게 손에 피와 물집이 잡힐 정도로 맞은 것은 덤. 더우쯔와 함께 샤오라이즈 역시 계속된 실수로 매일같이 죽도록 매를 맞고, 다른 학생들도 연좌제로 모두 기합을 받는 것이 일상이었다. 결국 데뷔 이틀을 앞두고 샤오라이즈와 더우쯔는 경극 학교를 탈출한다. 학교에서부터 탕후루[39]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샤오라이즈는 더우쯔가 챙겨둔 동전을 슬쩍하여[40] 그걸로 탕후루를 사먹는다. 그때 나곤의 극장으로 몰려드는 관객들과 경극 배우들을 본 더우쯔와 샤오라이즈는 극장 안으로 들어가 이들의 공연을 본다. 샤오라이즈는 경극을 보면서 얼마나 두들겨 맞았으면 이렇게 잘하게 된거냐고 눈물을 줄줄 흘리고, 더우쯔도 감동 받아 눈물을 흘린다. 결국 두 사람은 경극 배우가 되고 싶은 생각으로 다시 학교에 돌아온다. 학교에서는 남은 학생들이 두 사람이 달아나게 냅뒀단 이유로 다들 두들겨 맞고 있었는데, 매를 못 견딘 스터우가 달아나자 사부가 그의 뒤를 쫓다가 돌아온 더우쯔를 보게 된다. 더우쯔는 스터우는 잘못이 없으니 자신을 때려달라고 엉덩이를 까고 눕고, 사부는 전에 없이 가혹하게 더우쯔를 때린다.[41] 하지만 더우쯔는 잘못을 빌라는 사부와 스터우의 말에도 끝내 빌지 않고 매를 맞고 결국 스터우가 더우쯔를 때려죽일 참이냐고 사부에게 덤벼든다.[42] 한편 더우쯔가 두들겨 맞는 걸 보던 샤오라이즈는 챙겨둔 탕후루를 입에 모조리 욱여넣은 후 목을 매어 자살하고 다른 사부들이 그를 발견하면서 학교는 아수라장이 된다.
다음 날 사부는 패왕별희의 줄거리를 얘기해주면서 노래도 좋지만 인간의 도리를 가르쳐주는 극이라면서 우희가 되어서 패왕을 버린 더우쯔를 나무란다. 이에 더우쯔는 자신의 뺨을 스스로 치면서 눈물을 흘린다. 이들의 데뷔가 목전으로 다가오고 극장주인 나곤이 경극단의 후견인이며 청나라 시절에 궁중 내시였던 부유한 노인 장 내관의 분부를 받고 경극단을 찾아온다. 사부들은 나곤에게 굽신거리지만 나곤은 장 내관은 서태후를 모시고 경극을 관람하신 분이니 얼렁뚱땅한 경극으로 눈속임을 하려 들면 줄초상을 치를 것이라고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그때 더우쯔를 발견한 나곤은 흥미가 동해 더우쯔에게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지만 더우쯔는 또 다시 자신을 사내라고 하면서 가사를 틀리고 만다. 나곤은 인상을 쓰면서 다음에 보자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하고, 순간 경극단이 탄탄한 돈줄을 놓칠 위기에 처하자, 스터우가 나서서 눈물을 흘리면서 더우쯔의 입을 담뱃대로 쑤시며 제대로 하라고 크게 나무란다.[43] 더우쯔의 실수 때문에 중요한 후견인을 놓치게 될 상황이었고, 게다가 심한 체벌이 당연시되던 경극단 분위기상 뎨이는 정말 맞다가 불구가 되거나 쫓겨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스터우로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충격을 먹은 더우쯔는 그 직후 대사를 제대로 말할 수 있게 되고, 여자 역할을 받아 들인다. 결국 스터우를 위해서 자신의 남성성을 절제하며 모든 걸 시작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나곤이 다시 그들의 실력을 확인하게 되면서 그들은 장 내관 집에서 예정대로 공연을 하게 된다. 이들은 훌륭하게 공연을 해내지만[44] 공연직후 더우쯔는 자신을 줄곧 눈여겨보던 장 내관의 방에 밀어넣어져 강간당한다. 스승이 상납한 것이나 다름 없었는데,[45] 이 일은 여러 가지를 상징한다. 더우쯔의 유년 시절이 끝났음을 의미함과 동시에, 그들이 패왕과 우희로서 무대에서 존재하기 위해선 처음부터 뎨이의 희생과 더러운 뒷거래가 있었어야 함을 뜻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스터우와 돌아오는 길에, 더우쯔는 경극 학교 앞 마당에 버려진 아기를 보고 스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샤오쓰'라고 이름을 붙이고 데리고 와서 동료들과 함께 키운다. 후에 스승이 죽고 경극 학교가 문을 닫게 되었는데도 경극배우를 포기하지 않는 샤오쓰를 보고, 후배이자 제자로서도 양성하게 된다.
경극 학교 학생들은 졸업을 하게 되고 학생과 스승들이 다 같이 모여서 졸업사진을 찍는 것으로 유년 시절 파트는 종결된다.
===# 중일전쟁 (1937-1945) #===
이들이 데뷔하고 4년이 지난 1937년, 청뎨이(더우쯔의 예명)와 돤샤오러우(스터우의 예명)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경극 배우가 되어서 패왕별희의 주역으로 거침없이 성장한다. 하지만 이들의 명성을 떨치는 시기는 극도의 혼란기로, 이들의 활동 무대인 베이징이 화북분리공작에 휘말려 일본에 넘어가니 마니 하는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다. 데이와 샤오러우는 같이 기념사진을 촬영하지만, 반일 시위대에게 나라가 망해가는데 노래나 부르고 있냐고 봉변을 당하게 된다. 샤오러우는 중국인이 되어서 패왕도 몰라보냐고 마구 소리를 질러 시위대를 도발하지만 같이 있던 나곤이 같은 중국인끼리 싸워선 안된다고 시위대를 구슬러서 상황을 모면하고 예정대로 공연을 하게 된다. 극장으로 가면서 샤오러우는 젊은 놈들이 여자친구도 없으니까 애국자 행세나 하고 있다면서 일본군 앞에서 시위 해보라고 청년들을 비웃고 뎨이는 목청 좋은 남자를 지목하면서 무사 역할을 시키면 좋겠다고 맞장구 친다.
이날 공연에서 북경 문화계의 거물인 원세경이 나타나 공연을 관람하고 뎨이에게 매료된다. 원세경은 뎨이에게 값비싼 패물을 선물로 주는 한편 샤오러우에게는 패왕은 일곱 걸음을 걷는데 왜 다섯 걸음 밖에 걷지 않았냐면서[46] 샤오러우의 연기를 지적하나, 원세경 앞에서 너풀너풀 옷을 갈아입으며 노골적으로 원세경을 무시하던 샤오러우는 '대인께서 그러시다면 그러시겠지요~'라고 빈정대면서 나곤과 뎨이를 당황하게 만든다. 원세경은 뎨이와 샤오러우 두 사람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지만 샤오러우는 기생집에 선약이 있다면서 능글맞게 거절하고 자리를 뜬다. [47]
기생집을 방문한 샤오러우는 홍등가의 유명한 창녀인 쥐셴을 불러달라고 청하지만, 기생집 마담은 쥐셴은 선약이 있다면서 다른 기생을 샤오러우에게 붙여준다. 샤오러우는 말로는 쥐셴을 보고 싶다면서도 기생을 더듬으면서 즐기려는 모습을 보이지만, 갑자기 소란과 함께 윗층 방에서 쥐셴이 나타나자 샤오러우를 맡았던 기생은 그리 좋아하는 애인에게나 가보라고 화를 내면서 나가버린다. 쥐셴은 한 무리의 술취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의 주정에 시달리다가 결국 더 이상 괴롭히면 뛰어내리겠다고 위협하지만 취한 남자들은 그럼 자신들도 같이 뛰어내리겠다고 주접을 떤다. 이때 1층에서 자신을 향해 손수건을 흔드는 샤오러우를 발견한 쥐셴은 정말로 몸을 던지고, 샤오러우가 쥐셴을 받아낸다. 샤오러우에게 쥐셴은 저자들이 입으로 술을 먹여달라고 했다고 하소연하면서 어디 뛰어내려 보라고 남자들을 도발하지만, 남자들은 비겁하게 계단으로 내려와서 샤오러우에게 쥐셴을 만나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했으니 남의 좋은 밤을 방해하지 말라고 위협한다. 이에 샤오러우는 갑자기 쥐셴에게 ‘오늘은 네가 잘못했다, 왜 너와 나의 약혼날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라며 너스레를 떤다. 이에 샤오러우 역시 뭇사내들과 똑같이 자신을 노리갯감으로 대한다고 생각한 쥐셴은 장단을 맞춰주겠다는 듯 ‘그래! 오늘이 내 약혼날이지, 어디 술을 따라보시오!’라고 남자들의 편에 서려하지만 샤오러우가 정말로 자신이 따라놓은 홍주를 마시자 놀라는 표정으로 샤오러우가 건내주는 홍주를 마신다. 이에 손놈들이 지금 장난치는 거냐고 샤오러우에게 덤벼들자 샤오러우는 특별한 쇼를 보여주겠다고 머리로 도자기를 깬다. [48]
다음날, 뎨이는 도자기 파편에 이마가 찢어진 샤오러우에게 '홍등가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며?'라고 셀쭉하게 쏘아부친다. 샤오러우는 불쌍한 여자 하나 살려주려고 그런 것뿐이라고 둘러대면서 다음에는 같이 기생집에 가자고 장난스레 제안하나 뎨이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49] 당황한 샤오러우가 농담이었다고 사과하자 뎨이는 제발 평생 같이 노래를 부르자고 무릎을 꿇고 샤오러우에게 애원한다. 샤오러우는 이미 반평생을 같이 했지 않냐고 하지만 뎨이는 한평생이어야 한다면서 일분일초라도 부족하면 한평생이 아니라고 샤오러우에게 매달린다. 하지만 샤오러우는 뎨이보고 경극에 지나치게 매몰되었다며 무대와 현실을 구분하라는 말로 응수한다.[50]
한편 그날 샤오러우의 공연을 본 쥐셴은 마음을 굳히고 마담에게 자신이 번 모든 패물과 돈을 넘겨준 후 맨발로[51] 샤오러우를 찾아가 당신과 약혼하는 바람에 쫓겨났다면서 받아달라고 청한다. 샤오러우는 처음에 당황하지만 자신의 옷을 벗어서 쥐셴에게 덮어주면서 그녀를 받아들인다.[52] 다른 단원들의 환호 속에서 샤오러우와 쥐셴은 그날 밤 바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선언하지만, 무척이나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이던 뎨이는 쥐셴에게 신발 한 켤레를 던져주면서 연기를 어디서 배웠냐며[53] 빈정댄다.[54] 샤오러우가 결혼식의 증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자 뎨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건달과 매춘부의 연극은 관심도 없고 배운 적도 없다고 한다.[55] 그리고 떠나는 샤오러우에게 제발 가지 말라고 애원하면서 위안스칭
샤오러우를 사랑하던 뎨이는 넋이 나가 분장실에 쓰러지는데, 그때 원대인[56]이 살아있는 꿩의 깃털을 뽑아서 만든 장식을 들고 나타나 뎨이를 유혹한다. 결국 뎨이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원대인의 집을 찾아간다. 원대인의 집에서 과거 장내관의 집에 있던 검을 발견한 뎨이가 관심을 보이자 원대인은 검은 자고로 친한 친구들끼리 주는 것이라고 했다면서 '설마 우리 사이에 돈으로 사려는 건 아니겠지요?'라고 운을 뗀 후 자신의 친구가 되어 달라고 한다. 그날 밤 취한 두 사람은 경극 분장을 하고 패왕별희를 부르며 노래를 부르고 뎨이는 일순간 원대인의 검을 뽑아 자결하려는 시늉을 한다. 몹시 놀란 원대인이 침착하게 만류하자 뎨이는 검을 떨어뜨리며 눈물을 흘리다가 원대인의 마음을 허락한다. [57]
원대인에게서 검을 받은 뎨이는 인력거를 타고 샤오러우의 집을 찾아가던 중 일본군 기병대에 포위되지만 어찌어찌 풀려나서 도보로 샤오러우의 집에 도착한다. 사람들은 뎨이가 샤오러우와 화해하러 온 줄 알고 환영하고 샤오러우도 '형님 체면 살려주다니 기특한 녀석!'이라고 기뻐한다. 하지만 뎨이는 검을 결혼 선물로 던지듯 내려놓은 후[58] 각자의 길을 가자고 이별을 선언한다. 뎨이가 샤오러우의 집을 박차고 나가는 순간 일본군들이 베이핑으로 입성한다. 일본군들 틈 사이로 총총이 사라지는 뎨이를 보며 사오러우는 '뎨이는 괜찮겠지?'라고 걱정하지만 쥐셴과 경극 단원들은 일본군을 피해 문을 걸어 잠근다.
일본 치하에서도 뎨이와 샤오러우는 일단은 경극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장기와 대동아공존공영의 포스터가 나부끼는 극장 안에서 뎨이는 더 이상 패왕별희가 아니라 양귀비를 소재로 한 귀비취주를 공연한다. 그의 공연을 경극빠인 아오키 사부로 대좌는 몹시 흡족한 표정으로 관람하고 있었고, 원대인은 그의 눈치를 살피면서 바람잡이를 하고 있었다. 공연 중에 반일 포스터들이 뿌려지고 불이 꺼지는 소동이 벌어지지만 뎨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훌륭하게 공연을 마무리하여 아오키 대좌의 박수갈채를 받는다.[59] 한편 공연에 나서기 위해 준비하던 샤오러우는 자기 공연 의상을 빼앗아 입는 일본군 편을 들면서 네 조상 수의라도 이분이 원하면 얌전히 줄 것이지 어딜 대드느냐고 주접을 떨던 중화민국 임시정부(괴뢰정부) 경찰을 공격했다가[60] 일본군에 체포되어 처형될 위기에 처한다.
그 소식에 놀란 뎨이는 혼비백산하여 아오키 대좌가 주선한 위문공연을 열어 샤오러우를 석방시키고자 한다. 나곤은 말이 초청이지 협박이라면서 뎨이까지 일본군에게 끌려가서 어떻게 되면 극장은 어떻게 하냐고 징징대다가 쏘아보는 뎨이의 살벌한 눈빛에 꼬리를 내리는 순간 급하게 찾아온 쥐셴이 샤오러우를 구해달라고 간청하자 외출 준비를 모두 끝냈던 뎨이는 외투를 벗어버리고 모른 척 앉아 얄밉게 장신구를 손질하며 기싸움을 벌인다. 쥐셴은 샤오러우가 당신에게 얼마나 잘해줬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따지지만, 뎨이는 그걸 아는 사람이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었냐고 힐난한다. 샤오러우를 향한 뎨이의 마음을 눈치챈 쥐셴은 샤오러우만 구해준다면 자신은 다시 술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제안하며 차라리 술집에 있을 때가 마음은 편했다고 한다. 쥐셴은 뎨이의 외투를 덮어준다.[61] 그러자 뎨이는 약속은 지키라면서 일본군 앞에서 일본군 앞에서 곤곡 목단정(昆曲 牡丹亭)의 유원(游園)을 부르면서 위문공연을 한다. 일본군들은 뎨이의 공연에 흡족해하고 샤오러우를 석방시킨다. 샤오러우가 풀려나자 쥐셴과 뎨이가 모두 달려나가 그를 껴안지만, 샤오러우는 뎨이에게 일본군 앞에서 경극을 한 게 사실이냐고 비난한다. 뎨이가 아오키는 경극을 이해하는 일본인이라고 변명하자 샤오러우는 뎨이의 얼굴에 침을 뱉고 그를 무시한 채 차에 탄다. 뎨이가 샤오러우의 구명을 위해 공연을 펼친 걸 아는 쥐셴은 미안하고 당황하여 그의 얼굴에 묻은 침을 손수 닦아준 후 남편을 따라간다. 샤오러우가 자신에게 보인 싸늘함에 망연자실한 뎨이는 잠시 일본군영 안에서 서성거리지만, 일본군들이 많은 중국인들을 압송해서 총살시키는 것을 보고 놀라서 달아난다.
이후 샤오러우와 쥐셴은 결혼식을 올리고[62] 뎨이는 샤오러우를 잃은 상실감에 아편에 손을대기 시작한다. 하지만 샤오러우는 샤오러우대로 쥐셴의 요구에 따라 경극을 그만둔 후, 제대로 된 직업 없이 도박에 빠져 한량들에게 돈이나 빌려주는[63] 한심한 삶을 살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그들의 사부 관 대인이 두 사람을 경극 학교로 호출한다. 관 대인은 유명배우들이 납셔서 내 체면 살려줬으니 절이나 받으라면서 두 사람을 비아냥대고, 뎨이에게 형이 경극을 그만뒀으면 당연히 말렸어야지 왜 방관하고 있었냐면서 과거 샤오러우가 뎨이의 입을 쑤셨던 담뱃대를 던지면서 샤오러우를 때리라고 한다. 하지만 샤오러우가 담뱃대를 주워서 얼른 자신을 때리라고 채근해도 뎨이는 무시하고, 관 대인은 아플까봐 못 때리겠다는 거냐면서 자신이 형 아우도 몰라보라고 가르쳤냐며 뎨이를 체벌한다. 이에 샤오러우가 자신의 엉덩이를 까서 자신을 때려달라고 청하고, 관 대인은
이후 관 대인은 제자들을 가르치던 중 노환으로 급사하고, 뎨이와 샤오러우는 스승의 장례식을 치른 후 경극 학교의 문을 닫는다. 그런데 떠나지 않고 버티는 제자가 있는 걸 보고 그에게도 떠나라고 하지만, 그 제자는 스승님이 7일간 벌을 주셨으니 손대지 말라고 하면서 고집스럽게 남는다. 이제 학교도 닫았으니 떠나라는 말에 제자는 어차피 고아라서 갈 데도 없다고 대답한다. 샤오러우와 뎨이는 이 소년이 자신들이 과거 거둔 고아 샤오쓰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를 거두어 가르치게 된다. 이날이 일본 제국이 패망한 날이었다.
===# 국공내전 기 (1945-1949) #===
1945년 일본군이 패전하여 중국국민당이 대륙을 수복하자 베이핑을 수복한 국부군들이 몰려와 경극을 관람한다. 하지만 국부군들은 손전등을 마구 비추며 여장한 뎨이를 향해 조롱섞인 야유를 하는 등 공연을 방해하고, 견디다 못한 뎨이가 공연을 중단하고 돌아서려 하자 무대로 난입해서 계속 공연을 하라고 위협한다. 이에 샤오러우가 무대 위로 올라가 매우 정중하게 "공연 중에는 손전등을 비춰선 안 된다, 일본놈들도 이러진 않았다"라고 하며 착석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병사들을 지휘하던 장교가 그 말이 맞으니 자리에 앉자고 하다가, 갑자기 '하지만 저놈이 일본놈을 찬양했다!'라고 가만둘 수 없다고 선동한다.[66] 이에 병사들이 일제히 반합과 손전등을 던지면서 배우들을 공격하고, 배우들과 병사들 사이의 난투극이 벌어진다. 임신 중이던 쥐셴은 샤오러우를 때리는 병사들을 뜯어내려다가 배를 구타당해서 쓰러져 하혈한다. 난투극 내내 뎨이는 공포에 질린 채로 커튼 뒤에 숨는다. 병사들이 떠난 후, 쥐셴을 병원으로 데려가려는 순간 경찰들이 나타나 나곤 사장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후 폐허가 되어 버린 무대 위에서 망연자실하게 서있던 뎨이에게 수갑을 채워서 끌고간다. 샤오러우가 당한 건 우린데 무슨 근거로 사람을 잡아가냐고 항의하지만 경찰들은 뎨이는 한간(漢奸)죄로 체포되었다고 위압적으로 통보한다. 샤오러우가 한간이라는 증거를 대라고 항의하는데, 경극 단원들이 울부짖으면서 쥐셴이 유산했다고 알린다. 쥐셴은 샤오러우에게
샤오러우는 결국 원대인에게 사정하기로 결정한다. 그의 집에 가기에 앞서, 쥐셴은 샤오러우에게 두 사람이 같이 공연만 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뎨이를 구해주는 것으로 뎨이에 대한 빚을 모두 청산하고 다시는 그와 공연하지 말고 평범하게 살 것을 요구한다. 샤오러우는 원대인을 찾아가 뇌물을 바치면서 뎨이만 구해주면 극장의 3년치 수입을 바치겠다고 하지만, 한가롭게 새들에게 모이를 주고 있던 원대인은 '내가 당신들이 없으면 이 새들을 굶겨죽일까봐 걱정하는가?'라고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67] 그러더니 샤오러우를 보면서 '저 사람은 누구인가?'라며 짐짓 처음 본 양 상황을 연출한다.[68] 나곤이 패왕별희의 패왕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패왕이 우희를 구해야지 않은가?'라고 또다시 잰체를 시전. 그러자 나곤은 그건 극에서의 일일 뿐이고 현실에서는 원대인이 패왕 아니겠냐고 아부하고 오래전 원대인을 깔보았던 샤오러우도 잽싸게 맞장구친다. 그러자 원대인은 8년 전에 있었던 대화를 상기하며 그렇다면 패왕이 몇 걸음을 걸었냐는 계획된 질문을 던지고 원대인의 속내를 간파한 샤오러우는 원대인이 과거에 말한 것처럼 일곱 걸음이라고 대답한다. 이에 원대인은 한번 걸어보라며 샤오러우의 굴복을 확인하려 한다.
그때 뜻밖에도 쥐셴이 나서서, 원 대인이 뎨이에게 줬던 칼을 가져와 "뎨이가 말하길 이 칼의 주인이 자신을 구할 것"이라고 했다면서[69] 원 대인을 향해 상냥한 으름장의 포문을 열고 곧이어 ‘아무래도 뎨이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으니 그를 원망하지 말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이에 당황한 원대인이 설마 내가 일본군에게 노래하라고 시켰겠느냐며 당혹스러워 하지만, 쥐셴은 만약 원대인께서 시켰다면 체포될 일도 없지 않겠냐면서 집 앞에 기자들이 많으니 빨리 가봐야겠다고 은근슬쩍 만약 뎨이를 돕지 않으면 뎨이가 살기 위해서 원대인을 배후로 지목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에 원 대인은 뎨이가 자신이 일본군에게 고문 당해서 강제로 노래했다고 증언한다는 조건으로 뎨이를 구해주겠다고 한다. 원대인의 약속을 받아낸 쥐셴[70]은 뎨이를 면회하면서 원대인의 말을 전하는 한편, 더 이상 뎨이와 공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샤오러우의 편지를 전달한다. 그 사실에 절망한 뎨이는 감옥 안에서도 아편을 피우며 괴로워한다.
재판 당일, 검사 측은 뎨이가 일본군에게 아첨하면서 풍기문란의 노래를 불러 민족의 존엄을 훼손했다고 그를 기소한다. 이에 원대인은[71] 뎨이는 일본군의 총칼의 위협으로 억지로 노래 부른 것이며 곤극의 목단정은 중국 문화의 정수인데 이를 풍기문란이라고 하는 검사 측이야말로 민족의 존엄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경극 애호가인 그의 특기를 살려서 강하게 변호하고, 이에 청중들이 호응하여 박수를 친다. 하지만 판사의 발언 요구에 뎨이는 이 모든 것을 거부하고, 위문공연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강제는 아니었으며 "만약 나의 노래를 좋아했던 일본군의 아오키 사부로 대좌가 살아 있었다면 일본에도 경극이 퍼졌을 것"이라는 위험한 발언을 한 후 자신을 죽여달라고 외치고 만다.[72] 이 일로 원 대인과의 관계는 단절되고 뎨이의 생명은 그대로 끝나는 듯 했지만 갑자기 재판정으로 한 무리의 헌병들이 난입해서 재판장에게 모종의 서류를 전달한다. 이에 재판정은 뎨이가 지극히 위험한 증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무기한 연기하고 뎨이를 가석방한다. 그리고 당황한 뎨이에게 판사와 검사가 정중하게 인사하면서 조만간 또 보자고 아부성의 인사까지 던지고 퇴장한다. 이후 뎨이는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극장으로 이동한다. 베이핑을 방문한 국민당 고위 장교가 곤극 목단정을 보고 싶어하자 뎨이가 긴급히 투입된 것이다. 정황상 중일전쟁 이후 베이핑 행영주임에 임명된 리쭝런으로 추정되는데, 사령관으로만 불리며 이름이나 직위가 언급되지 않는다. 그를 위해 모인 청중들 사이에는 조금 전에 재판정에서 마주했던 검사와 판사가 양복으로 갈아입고 같이 있다.
다시 3년 후인 1948년, 뎨이는 여전히 아편에 찌들어 살고 있었다.[73] 만주에선 국부군이 패배하면서 베이핑도 풍전등화의 처지가 되었고 식량부족으로 연일 폭동이 일어나게 된다. 한편 나곤은 곧 공산당의 세상이 될 것이라면서 공산당도 경극을 볼 것이니 이제 새 돈 세는 일만 남았다면서 샤오러우와 뎨이의 화해를 강권한다. 수박 장사를 하고 있던 샤오러우는 뎨이가 건낸 칼을 받고 그와 다시 화해하고 세 사람은 베이핑 시민들이 식량을 실은 트럭을 공격하는 것을 구경한다. 나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좋든 싫든 우리 만주족은 300년간 대륙을 지배했다네. 그런데 민국은 건국되자마자 망해버리는군..."[74] 이라고 덧붙인다. 그리고 샤오러우에게 공산당과도 설마 싸울 셈이냐고 묻는데, 샤오러우는 공산당도 수틀리면 들이받겠다고 한다.[75] 그러자 나곤은 웃으면서 우리같은 사람들은 어림도 없고 원대인 정도는 돼야 가능한 일이라고 대답한다. 그때 뎨이와 샤오러우는 그들 뒤에서 담배를 팔고 있던 백치 노인이 다름아닌 어린 시절의 뎨이(더우쯔)를 강간했던 장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1937년 시점에서 이미 예전에 파산했다던 장대인은 두 사람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담배 사세요란 말만 반복한다.
===# 공산당 집권 (1949-1950년대) #===
다시 해가 바뀌어 1949년, 베이핑 시장 푸쭤이가 공산당에 투항하면서 홍군이 베이핑으로 입성한다. 샤오러우와 뎨이는 홍군을 위한 경극을 공연하는데, 아편에 찌들어 있던 뎨이는 고음처리를 하지 못하고 기침을 하며 공연을 망치고 만다. 과거 국부군이 행패를 부렸던 것을 기억하는 샤오러우는 뎨이를 자신의 등 뒤로 숨기면서 병사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하는데, 반듯한 자세로 정좌해있던 병사들은 열렬하게 박수를 치고는 일제히 군가를 부른다. 무대 위에 걸린 마오쩌둥과 주더의 초상화 밑에서 샤오러우와 뎨이는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고, 혹시 샤오러우가 또 싸움을 벌일까봐 말리러 달려왔던 샤오쓰는 국부군과 달리 엄정한 군기를 보이는 홍군 병사들의 관객매너에 감격하며 환하게 웃는다.
뎨이는 아편을 끊고 새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고통으로 울부짖으며 몸부림친다. 뎨이가 너무 고통을 못 이겨 하자 샤오쓰는 샤오러우를 찾기 위해 군중대회로 나가게 되는데, 군중대회에서는 원대인이 문화계를 타락시킨 악질 반혁명분자로 몰려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샤오러우는 어쩔 줄을 몰라하지만 쥐셴은 그에게 빨리 구호를 외칠 것을 종용한다. 샤오쓰도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반응이었지만 이내 열렬하게 원대인을 타도하는 구호를 외치며 시내의 군중집회에 참여한다. 샤오러우와 쥐셴은 귀가하여 혼자서 괴로워하는 뎨이를 보고 그를 묶어서 진정시킨 후 의사를 부르러 간다. 샤오러우가 나간 사이에 뎨이는 눈물을 흘리며 엄마를 찾는다. 그것을 본 쥐셴은 그를 아기 어르듯 안아주며 그때까지 대립했던 뎨이를 바라보다 함께 눈물을 흘리며 연민을 느끼게 된다. 아무래도 유산을 겪었기 때문에 아이를 잃은 그녀가 엄마를 떠나보낸 뎨이를 생각하자 모성으로 더 애틋한 것도 있을 것이고, 사실 여태까지 뎨이가 샤오러우를 위해 피할 수 있었던 치욕스런 일을 여러 차례 해왔다는 사실을 쥐셴은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군중집회에 나가서 인민복으로 갈아입고 돌아온 샤오쓰를 본 쥐셴은 스승을 버리고 나가서 노닥거리고 온 그의 뺨을 갈긴다.
감상을 덧붙이면 뎨이가 뒤에서 해왔던 치욕에 가까운 희생들 역시 결국은 창녀의 일상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뎨이가 자신의 치부를 떠올리게 하는 쥐셴을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는 자신을 버린 엄마도 창녀였는데, 엄마를 대신해준 샤오러우를 빼앗아간 사람도 창녀였으니, 당시 자신을 경극학원에 두고 간 엄마에 대한 원망까지 합쳐서 원망했을지도 모른다는 해석도 가능하다.[76] 이후 쥐셴이 뎨이를 대하는 모습이 이전과 달라지는데, 이전에는 연적으로 대했다면 이후는 동정심을 가지고 대하는 게 반항하는 사춘기 아들 대하는 듯한, 모정으로써의 느낌이 있다.
아편 중독에서 회복된 뎨이는 인민복으로 갈아입고 찾아온 나곤 사장 이하 경극단원들의 축하를 받는다. 이후 공산당의 경극 공연 논쟁에 참여한 뎨이는 현대극은 재밌지만 경극은 아니라면서 현대적 의상과 배경을 이용한 극을 하면 더 이상 경극이 경극이 아니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사회주의 사상에 물들기 시작한 샤오쓰는 전에 없이 뎨이의 의견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구태의연한 장사와 미녀만 노래해야 경극이고 노동대중을 노래하는 건 왜 경극이 아니냐고 따진다. 뎨이는 정진하다 보면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샤오쓰를 꾸짖지만, 다른 젊은 공산당이 고압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따진다. 결국 화살은 샤오러우에게 돌아가지만, 샤오러우가 대답하기 전에 쥐셴이 민감한 대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비가 왔다는 핑계로 우산을 건내주면서 그의 말에 끼어든다. 아내의 의도를 눈치 챈 샤오러우는 뭐든 간에 노래만 할 수 있으면 경극이 아니겠냐고 대답하고, 나곤도 끼어들어서 자신은 이미 극장을 당에 바치고 새 공산당원으로 거듭났으며 뎨이 동무의 의견이 틀렸다고 한다.(이때 뎨이가 놀라서 나곤을 쳐다본다.)
망신을 당하고 돌아온 뎨이는 샤오쓰에게 물쟁반을 지게 하는 체벌을 내리면서 잘 배우지도 못한 놈이 설친다고 크게 꾸짖는다. 하지만 관대인 밑에서 묵묵히 처벌을 감내하던 과거의 샤오쓰와 달리 지금의 샤오쓰는 목청을 드높히며 이런 체벌은 위법이라고 맞선다. 그러자 뎨이는 잘못을 했으면 혼이 나야 한다고 하지만 샤오쓰는 쟁반을 내팽개치며 대든다. 이에 뎨이가 목검으로 그를 후려치자 샤오쓰는 다시는 당신에게 무릎 꿇는 일이 없을 거라고 짐을 싸서 나가버린다. 충격을 받은 뎨이가 나가서 삼류배우나 하라고 저주하자 샤오쓰는 고압적인 공산당원의 태도로 돌변하여 그런 말은 구사회에서나 통한다고 비웃고 '당신 밑에서 배웠는데 내가 어떻게 삼류 배우가 되겠는가?'라고 빈정댄 후 그와 결별한다.
이후 패왕별희 공연에서 분장을 하고 있던 뎨이는 샤오쓰가 분장한 또 다른 우희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경악하여 자리에서 튕겨 일어난다. 단원들은 모두 두 우희 사이에서 눈치를 살피고 공연을 하기 위해 나타난 샤오러우도 우희가 두 명인 걸 보고 충격으로 굳는다. 뎨이가 알고 있었냐고 따지자 샤오러우는 방금 알았다고 변명하지만, 샤오쓰는 어제 회의에서 같이 결정내리지 않았냐면서 끼어든다. 당황한 샤오러우는 '네가 뎨이에게 말한다면서?'라고 소리 치지먄 샤오쓰는 '분명 돤 사부님이 말씀드리는 게 좋겠다고 하지 않았던가요?'라고 유들유들하게 대답한다. 이에 샤오러우는 공연 못해먹겠다면서 하고 싶은 놈만 하라고 분장을 걷어치우고 자리를 뜨려 하지만 샤오쓰는 샤오러우에게도 고압적인 태도로 '노동대중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냥 가겠다고? 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시오!'라고 쏘아붙힌 후 공연을 나간다. 다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이에 단원 한 명이 샤오러우가 팽개친 분장을 집어들지만 차마 자신이 전해주지 못하고 책임을 떠넘기듯이 서로에게 릴레이로 넘겨준다. 마침내 쥐센에게까지 분장이 돌아오지만 쥐센도 차마 분장을 씌워주진 못한다. 이때 뎨이가 나타나 샤오러우의 분장을 씌워주고 샤오러우는 공연을 하러 간다.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뎨이에게 안쓰러움을 느낀 쥐셴이 그에게 우희의 외투를 엎어주는데 뎨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쥐셴 소저, 고맙군요."라는 짧은 소회만을 남긴 채 쥐셴이 덮어준 외투를 벗어내며[77] 극장을 뜬다.
공연 후 샤오러우는 뎨이에게 사과하지만 뎨이는 나와보지 않는다. 샤오러우는 '그 뱀같은 놈을 키운 건 네가 아니냐? 그 뱀이 용이 됐는데 어쩌겠는가?'라고 하면서 노래만 부르면 우린 모두 패왕과 우희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뎨이는 결국 마지막에 희생당하는 것은 우희뿐이라고 대답한다. 결국 샤오러우는 너는 경극에 미친 놈이라고 화를 내면서 돌아선다.[78] 샤오러우가 떠난 후 뎨이는 집안의 모든 공연용 옷들을 불태우면서 공산화 직후의 시기도 막을 내린다.
===# 문화대혁명 (1966-1969) #===
다시 10년 후, 1966년, 중국을 휩쓴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기 전날이었다. 안경을 쓰고 많이 노쇠한 뎨이는 밤중에 샤오러우의 집을 찾아간다. 쥐셴과 샤오러우는 홍위병들에게 걸리면 봉건주의 잔재로 몰려 봉변당할만한 물건들을 태워 없애고 있었다. 샤오러우는 쥐셴이 결혼식 날 입었던 붉은 옷을 태워버리려 하지만, 쥐셴은 그걸 다시 끄집어내서 입는다. 두 사람은 술잔도 구사회의 것이니 마셔 없애자고 술을 마시고 잔도 깨뜨린다. 쥐센은 자신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는데 당신이 없었다고 한다. 이에 샤오러우는 반드시 쥐셴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고 둘은 격렬하게 정사를 나눈다. 빗속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뎨이는 쓸쓸하게 발걸음을 돌린다.
하지만 문화대혁명이 극에 치달으면서 샤오러우에게도 마침내 화살이 날아오게 된다. 심문장으로 압송된 샤오러우는 뎨이의 검을 몇 차례에 걸쳐서 받았냐는 질문을 받는다. 2차례에 걸쳐서 받았단 대답에 이번에는 2번째는 언제였냐는 질문이 돌아온다. 샤오러우는 베이징이 해방되던 즈음이라고 대답하자 그때 나눈 대화를 생각해보라는 심문이 떨어진다. 샤오러우는 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고 대답하자 다시 잘 생각해보라고 스피커가 외친다. 샤오러우가 아무리 생각해도 별게 없었다고 하자 스피커는 '공산당에 대해 어쩌고 했잖아!'라고 다그치고 샤오러우는 흥분해서 절대로 그런 일 없었다고 항변한다. 스피커가 '증인이 있는데?'라고 하자 샤오러우는 누군지 데려오라고 당당히 외치지만 벽돌을 들고 나타난 나곤을 보고 굳어버린다. 나곤에게 샤오러우는 '내가 무슨 말을 했단 말이오?'라고 따지는데, 나곤은 수틀리면 공산당과 싸우겠다고 한 것이 기억나지 않느냐고 한다. 무려 18년 전에 별 생각 없이 했던 말이 생각나 경악한 샤오러우는 나곤에게 악질 자본가라고 저주를 퍼붓더니 다시 도움을 청하고, 스피커에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하다가, 다시 한 적이 없다고 횡설수설한다. 이때 스피커를 통해 심문하던 샤오쓰가 나타나 '벽돌을 그리 잘 깬다면서?'라고 이마로 벽돌을 깨보라고 하지만, 겁에 질린 샤오러우의 이마만 깨질 뿐이었다. 샤오쓰는 구사회에서 기생집에 드나들고 매춘부와 결혼한 것이 부끄럽지 않냐고 샤오러우를 비판한 후 청뎨이에 대해서도 비판하라고 한다.
얼마 후 샤오러우와 뎨이가 몸담았던 경극단은 백주대낮 거리에서 경극분장을 한 채 심하게 조리돌림 당한다. 조리돌림에 앞서 배우들이 각자의 분장을 하는 가운데, 샤오러우는 공포에 질려 몸을 떨며 제대로 분장도 못하고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이때 완벽하게 분장한 뎨이가 나타나 그의 분장을 도와준다. 이후 길거리로 끌려나간 단원들은 홍위병들에게 인민재판을 당한다. 홍위병의 우두머리가 샤오러우를 때리면서 청뎨이에 대해 비판하라고 하자 샤오러우는 뎨이가 경극에 미친 자라서 상대가 누구든지 가리지 않고 경극을 했다고 비판한다. 홍위병들이 숨기는 것이 있다고 더 때리자 샤오러우는 뎨이는 한간
이에 배신감을 느낀 뎨이도 통곡을 하며 자신도 비판할 것이 있다고 일어선 후 샤오러우가 양심도 염치도 없는 놈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샤오러우, 넌 '패왕'을 버렸어!!!!!"
패왕조차 굴복하여 목숨을 구걸하고 있으니 경극도 끝이라고 울던 뎨이는 홍위병들이 그를 다시 꿇어앉히려 하자 아직 비판할 게 남았다면서 배신감과 분노에 이성을 잃고[80] 홍위병들에게 붙들린 쥐셴을 가리키며 그녀가 요사스러운 기생집에서 제일 잘 나가는 매춘부였노라고 폭로하면서 저 여자도 비판하라고 악을 쓴다.[81] 홍위병 두목이 정말이냐고 샤오러우를 추궁하자 샤오러우는 견디지 못하고 "단 한 번도 쥐셴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라는 거짓말을 한다. 게다가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술 더 떠 이젠 우리는 남남이라며 이혼선언까지 하고 만다. 쥐셴은 이런 샤오러우의 말을 듣고 극한의 절망과 배신감의 충격으로 온 몸의 기력이 쇠한듯 그 순간부터는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고 붙들린 몸을 거칠게 휘둘리기만 한다.
결국 그날 셋 다 살아서 홍위병들로부터 풀려나긴 하지만, 충격을 받은 쥐셴은 뎨이가 샤오러우에게 주기 위해 원대인에게 몸을 바쳐 얻어낸 보검을 뎨이에게 돌려주고[82] 집으로 돌아와 목을 매어 자결한다.
비척거리며 샤오러우의 집을 찾아간 뎨이에게 샤오러우는 이성을 잃고 울부짖으며 덤벼들고 두 사람의 몸싸움으로 집은 난장판이 된다.[83] 이때의 샤오러우와 뎨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실성한 이들이다. 그리고 그들을 배신하고 홍위병이 되었던 샤오쓰는 어느 큰 방에서 혼자 뎨이의 장식품을 가지고[84] 우희 분장을 한 채 도취되어 있다가, 갑자기 한손에 모주석 어록을 하나씩 든 홍위병들에 의해 잡혀가게 된다.[85]
===# 종막 (1977) #===
다시 영화 첫 장면인 1977년으로 돌아와, 세월이 흘러 마오쩌둥도 사망하고 문화혁명이라는 명분으로 경극을 탄압한 4인방도 체포되어 문화대혁명의 영향이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86] 샤오러우와 뎨이는 관객없이 둘만의 패왕별희를 연기하다가 절정 부분에서 숨이 딸려 공연을 멈춘다. 자신이 늙었음을 한탄하는 샤오러우와 그를 애잔하게 바라보는 뎨이. 갑자기 샤오러우가 뎨이에게 어렸을 적 계속 틀렸던 대사를 외치며, 뎨이가 대사를 틀리게 말하도록 유도한다. 유도에 말려들어 대사를 틀린 뎨이는 "나는 원래 남자로 태어났거늘..." 하며 중얼거린다. 샤오러우는 '또 틀렸지?'라며 웃고, 뎨이는 뭔가 깨달은 듯 그 구절을 한번 더 중얼거린다.
이후 재개한 연습에서 다시 극은 절정으로 치달아, 둘은 우희가 패왕의 검을 뽑아 자결하는 장면을 연기한다. 샤오러우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기 직전, 뎨이가 샤오러우를 향해 굉장히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경극의 장면처럼 뎨이는 샤오러우의 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샤오러우는 뎨이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하다가,[87] 나지막하게 더우쯔의 이름을 읊조리며 막이 내린다.[88]
이후 1990년, 베이징에서 경극 200주년 기념 공연이 열렸다는 자막으로 영화는 완전히 끝이 난다. 그리고 수미상관처럼 영화 시작 부분에 나왔던 항우와 우미인의 그림을 배경으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6. 샤오쓰와 청뎨이의 갈등 원인
작중 청뎨이가 거둬 키웠던 양자 샤오쓰는 뎨이와 사이가 벌어진다. 이에 대한 평론가들의 다양한 분석이 있다. 어느 한쪽만 맞는 것이 아닌 모두 다 가능하며, 분석의 유력함 순서가 아닌 그저 편집상의 순서로 나열된 것이니 참고할 것.1. 내재적 관점: 뎨이에 대한 샤오쓰의 질투심 때문이다.
뎨이가 아편에 심하게 취했을 때 샤오쓰가 뎨이의 대역을 한 적이 있고, 나중에 뎨이와 사이가 나빠진 후 공산당원 권력을 이용해 우희 역을 빼앗기도 하였다.
2. 외재적 관점: 중국 예술계의 세대갈등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위와 같은 첫 번째 분석은 개인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만, 패왕별희가 청조 몰락 후부터 문화대혁명 종말까지의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맥락에서 분석하는 게 더 일반적이다. 샤오쓰가 청뎨이와 멀어진 계기는 결정적으로 예술관과 경극관이 달랐기 때문이다. 청뎨이는 과거 전통을 고수하려는 구세대 예술인, 샤오쓰는 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새로 나온 신세대 예술인을 상징한다.
청뎨이는 자신과 샤오러우가 겪었던, 아동학대나 다름 없던 전통적인 경극수련 과정으로 샤오쓰를 가르치려다가 샤오쓰의 반발을 산다. 샤오쓰는 구습을 타파하려는 공산당 지지자이고, 구타와 인권유린ㆍ열정페이가 만연하는 이런 수련을 구습으로 본 것이다.(실제로 이런 교육과정은 대륙에서 공산당 집권 후 사라졌다. 그리하여 대만 경극이 더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뎨이가 추구하던 뼈를 깎는 수련을 거쳐야 하는 수많은 경극의 기교들은, 샤오쓰의 관점에서는 자본주의 유산층들의 쾌락을 위한 것이며 반동적인 것일 뿐이다. 거기다가 경극이 백화문으로 되어 있는 대사라고는 하지만, 이것도 이미 청나라 시기의 구어인데다가, 원래부터 경극은 사대부 이상의 지식층을 위한 노래이기 때문에, 고전지식이 미약한 일반 대중이 듣기에는 매우 힘들었다.[89] 이런 상황에서 뎨이가 무식한 관객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대사로 공연하는 것을 전통으로 고집하는 것은, 샤오쓰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또한 샤오쓰는 경극에 대해 인민대중에 공산주의적 사상을 불어넣는 도구로 쓰여야 한다는 입장을 가졌다. 이는 공산당 집권 이후 나온 여러 현대경극에 나타나며, 이런 현대경극에는 전통경극에 있었던 화려함이나 기예는 모두 사라졌고, 다만 사회주의의 승리 및 무산계급의 각성이라는 주제가 부각되었다. 이에 반해 청뎨이는 관객의 눈길을 끄는 화려한 분장 및 의상, 그리고 뼈를 깎는 수련 끝에 익혀야 하는 경극 특유의 기교가 없어진다면 경극의 예술적 가치는 사라질 것이며, 공산주의 선전만을 위한 경극은 예술적으로 파산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평상복을 입고 당의 이념만을 설파하는 현대 경극은 경극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이는 문화대혁명 직전에 경극극장에서 현대경극을 두고 뎨이와 샤오쓰가 벌인 논쟁에서 나타난다.
결국 둘의 갈등은 문화대혁명 당시 샤오쓰가 속한 홍위병에 의해 청뎨이 및 돤샤오러우가 거리에서 집단구타를 당하는 것으로 폭발한다. 이는 1960년대 중국 예술계의 신구 세대갈등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작품 후반부에서 샤오쓰 역시 경극 분장을 들켜 홍위병에게 잡혀가는데, 이는 샤오쓰로 대변되는 신세대 역시 뎨이를 위시한 구세대를 이해하게 되었음을 상징한다.
7. 명대사
한 번 웃으면 온 세상이 봄이요, 한 번 흐느끼면 만고에 수심이 가득하니(一笑萬古春,一啼萬古愁)...당신을 노래한 것 같군. 一
- 항우 분장을 한 원대인, 우미인 분장을 한 채 검으로 자결하는 장면을 연기하며 눈물을 흘리는 청뎨이에게.
- 항우 분장을 한 원대인, 우미인 분장을 한 채 검으로 자결하는 장면을 연기하며 눈물을 흘리는 청뎨이에게.
인간의 삶은 무상하여 봄날의 꿈과 같고 (人生在世如春梦)
- 청뎨이, 貴妃醉酒(귀비취주[90])의 대사 중 하나.
- 청뎨이, 貴妃醉酒(귀비취주[90])의 대사 중 하나.
나는 본래 사내아이로서 계집아이도 아닌 것이 머리를 깎여(我本是男儿郎,又不是女娇娥,被师傅消去了头发)...
- 어린 시절의 청뎨이(더우쯔), 이 노래는 곤곡[91] <얼해기(孼海記)> 중에서 한 막인 사범(思凡)에서 나오는 한 곡인 <山坡羊·小尼姑年方二八> 의 대사라고 한다. 비구니역의 등장인물이 하는 노래인데, 원래는 "나는 계집아이로서 사내아이도 아닌 것이"(我本是女娇娥,又不是...)라고 해야 한다. 청뎨이는 자꾸 반대로 노래한다.[92]
- 어린 시절의 청뎨이(더우쯔), 이 노래는 곤곡[91] <얼해기(孼海記)> 중에서 한 막인 사범(思凡)에서 나오는 한 곡인 <山坡羊·小尼姑年方二八> 의 대사라고 한다. 비구니역의 등장인물이 하는 노래인데, 원래는 "나는 계집아이로서 사내아이도 아닌 것이"(我本是女娇娥,又不是...)라고 해야 한다. 청뎨이는 자꾸 반대로 노래한다.[92]
일생을 같이 하기로 했잖아. 일 년, 한 달, 일 초라도 같이하지 않는다면, 그건 일생이 아니야...
- 청뎨이, 돤샤오러우에게.
- 청뎨이, 돤샤오러우에게.
你当今儿个是小人作乱,祸从天降?。。。不是,不对! 是自各儿一步步,一步步走到这步田地来的!!!报应! 报-应!!
(오늘 소인배가 난리를 피워 하늘에서 재앙이 내린다고? ...아냐, 틀렸어! (재앙은) 스스로가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서는 거야!!! 업보다! 업보야아아!!)
- 인민재판을 당하는 도중 청뎨이, 홍위병들에게 굴복하는 돤샤오러우를 보고 오열하며.
(오늘 소인배가 난리를 피워 하늘에서 재앙이 내린다고? ...아냐, 틀렸어! (재앙은) 스스로가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서는 거야!!! 업보다! 업보야아아!!)
- 인민재판을 당하는 도중 청뎨이, 홍위병들에게 굴복하는 돤샤오러우를 보고 오열하며.
네 붉은 화장을 지운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이 널 몰라볼 줄 아니?
- 유곽의 여성 포주, 홍등가를 떠나는 쥐셴에게.
- 유곽의 여성 포주, 홍등가를 떠나는 쥐셴에게.
두려워. 구름 사이로 높은 건물의 난간에 서있는 꿈을 꾸었지. 뛰어내리고 싶었는데...(샤오러우: 내가 받으면 되지.[93])당신은 거기에 없었어. 날 버리지 마.
- 쥐셴, 샤오러우에게.
- 쥐셴, 샤오러우에게.
8. 극중에서 나오는 경극
- 패왕별희(霸王别姬)
이 작품의 제목답게 이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나오는 초패왕 항우와 우희의 이야기를 그린 경극이다. 여러 장면이 나오는데, 뎨이와 샤우러우, 쥐셴의 상황과 시대상을 은유하고 있다.
- 귀비취주(貴妃醉酒)
일본군 점령 후, 일본군 위문 공연에서 나온 작품. 양귀비가 매비(梅妃)에게 가버린 당 현종을 기다리며, 환관 고역사 등과 술을 마시는 장면을 그린 경극인데, 이는 극중에서 샤오러우가 쥐셴과 결혼하여 뎨이에게 소원해진 시점이라는 점을 은유하고 있다. 마침 뎨이는 양귀비가 고역사에게 주정을 부리는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 모란정(牡丹亭)의 유원(游園)
모란정[94]은 곤곡(昆曲)으로, 명말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탕현조(湯顯祖)의 작품이다. 샤오러우가 붙잡혀 간 뒤, 뎨이가 샤오러우를 풀려나게 하기 위해서, 아오키 대좌의 초청을 받고 일본군 앞에서 한 노래이다. 뎨이는 유몽매를 그리워하는 여주인공인 여낭에 감정을 이입하기 위해 이 곡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95] 특히 극중에서는 유원(游園)의 경우 봄의 좋은 시기가 지난 모란꽃이 핀 시기를 노래하고 있는데, 이는 좋은 시기가 지났다는 점에서 샤오러우와의 틀어진 관계 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한 은연중의 저항의식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96]
- 야분(夜奔)
야분(夜奔)은 극중에서도 설명이 나오지만 수호전의 임충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극중에서는 관사부가 어린 제자에게 시범을 보이는 장면으로 나오고, 관사부는 많은 어린 제자들 사이에서 시범을 보이다가 쓰러져 사망한다. 이는 관사부가 거리의 건달 투성이인 수호전 이야기에서 금군의 교두로써 몇 안되는 조정의 엘리트인 임충이라는 캐릭터에 이입하여, 그가 바라보는 경극이라는 것의 개념에 대한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고, 또한 그가 두 수제자인 샤오러우와 뎨이에게 경극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샤오러우와 뎨이의 애정 문제 외에도 두 제자가 이러한 방향성에 대해서 변해가는 시대상 속에서 어떻게 생각을 가지며 어떻게 각자의 답을 찾는지에 대해서 보는 것도 이 영화를 감상하는 하나의 재미 요소가 될 것이다.
- 얼해기(孼海記) 중 사범(思凡)
곤곡(昆曲)이다. 위의 명대사 문단에서 자세히 상술하였듯, 뎨이가 자꾸 반대로 노래하는 '나는 본래 계집아이로서 사내아이도 아닌 것이 머리를 깎여'가 이 경극에서의 노래이다.
9.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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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도 90% | 관객 점수 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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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align=center><table width=480px><bgcolor=#14181c><tablebordercolor=#14181c><tablebgcolor=#fff,#191919><:> ||
(Letterboxd Top 250 226위{{{#!wiki style="display:inline-block; display:none; margin-left: 0.5e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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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별점 없음 / 5.0 | 관람객 별점 3.7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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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7.6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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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4.3 / 5.0 |
||<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333><bgcolor=#333> ||
평점 9.0 / 10 |
||<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6699cc><#edf4ec> ||
별점 9.6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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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4.0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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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95.3% | 별점 /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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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9.2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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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98% |
제46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작품이며 전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았다.
10. 기타
- 감독 천카이거는 중학생 때 문화대혁명을 겪었고, 직접 홍위병으로 참가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는 행동을 벌였는데, 이러한 모습들을 영화 속 문화대혁명 시기 예술과 가족의 관계성이 탄압받는 모습으로 그려내었다.
- 원래 뎨이의 배역으로 후보에 오른 사람은 〈마지막 황제〉에서 푸이 역을 맡은 존 론이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천카이거는 〈마지막 황제〉에서 황실 근위대 대장으로 출연했던 배우이기도 하다. 존 론도 미국으로 가기 전에 홍콩에서 경극학교를 다녔고, 그 시점에서 서방 영화계에서는 〈마지막 황제〉 덕에 장국영보다는 존 론이 더 유명했기 때문에 배역을 맡아도 그다지 무리는 없었을 것이다. 또 장국영이 워낙에 동안이었던지라 묻히는 감이 있는데, 존 론과 불과 4살 차이다.. 하지만 천카이거 감독은 아무래도 장국영이 뎨이와 더 맞다고 판단, 원작을 쓴 이벽화와 접촉해서 장국영을 움직였다고 한다. 장국영은 매염방과 함께 1987년 이벽화가 원작인 인지구(咽脂口)라는 영화에 출연했고, 이벽화와 안면이 있었다고 한다. 이 인지구에서 장국영은 잠시 경극 배우로 등장한다. 한편 존 론도 같은 해에 개봉된 〈M.버터플라이〉에서 여장 경극 배우를 연기했고, 이 영화는 패왕별희보다도 직접적으로 동성애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다만 패왕별희과 달리 비평과 흥행에선 폭망했다.#
- 마지막 장면에서 뎨이가 샤오러우의 검으로 자살하는 것에 대한 복선 및 그 검과 뎨이의 기이한 인연이 영화 초반부 및 중반부에 등장한다. 그 검은 원래 어린 뎨이를 강간했던 장 내시의 것으로, 당시 어린 샤오러우가 검을 보고 "패왕의 검은 이런 훌륭한 검이었을 것이다. 이것만 있으면 나는 패왕이고 넌 왕비가 될 수 있을 텐데."라고 감탄하며 갖고 싶어했다. 그런데 장 내시가 몰락한 후 원대인의 소유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샤오러우의 결혼식 날 밤에 절망한 뎨이가 원대인 집에서 술에 취해 원대인과 패왕별희를 연기하다가, 원대인의 허리춤에서 이 검을 뽑아 정말로 자살할 것 같은 위태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러자 원 대인이 몹시 놀라며 "조심하시오, 그건 진짜 칼이오!"라면서 만류하고, 이날 밤 실연과 배신감으로 절망한 뎨이는 원대인에게 몸을 허락하고 그 대가로 검을 받는다. 그리고 샤오러우의 결혼식 잔치에 뒤늦게 가서는 그 검을 결혼 선물이라며 주고 이별을 선언한다.
- 샤오러우가 점점 힘과 권위를 잃어가는 모습은 벽돌을 머리로 깨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린 시절부터 곤란한 상황이 닥칠 때마다, 자기는 천하의 영웅 패왕이라며 벽돌을 자신의 머리에 내리쳐 깨뜨리는 걸로 힘과 사내다움을 과시하며 위기를 넘겼다.(사부에게 "경극 배우로서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짓"이라며 혼이 난다.) 성인이 돼서도 홍등가에서 시비가 붙었을 때도 도자기 주전자를 깨면서 박치기 실력을 보여준다. 그런데 문화대혁명 와중에 홍위병들이 벽돌을 머리로 깨보라고 강요했을 때는, 나이가 들어 힘이 약해지기도 했고 공포에 질려 옛날의 패기를 잃었기 때문에 벽돌을 못 깨고 머리만 다쳐 피를 흘리는 지경이 된다.
- 경극 패왕별희의 내용을 반영한 영화답게, 사회의 변화에 따라 사면초가와 같이 뎨이와 샤오러우가 몰리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샤오러우를 잡아가 협박하는 일본군, 경극을 방해하며 소리를 지르는 국부군, 관객석에서 크게 노래하는 홍군, 문화대혁명 때의 홍위병 등등. 또한 홍위병이 든 깃발의 색깔과, 유방의 나라인 한나라를 상징하는 색깔은 둘 다 붉은색이다.
- 배우 장국영은 중성적인 뎨이의 모습과 경극 패왕별희 속 여인인 우희의 모습, 그리고 동성애 성향을 완벽히 소화해냈다. 그가 훗날 (비공식적으로) 양성애자임이 세상에 알려졌던 것을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부분.
- 장국영이 캐스팅되었을 때, 천카이거는 홍콩 배우가 뎨이 역할을 잘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고 한다. 이때 장국영은 자신이 뎨이에 적격이라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엄청난 열연을 펼쳤다. 뎨이가 원세경에게서 검을 받아 인력거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장국영의 연기를 보고 제작진들이 모두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번진 입가가 피를 흘리는 것 같이 보였다고 한다.
- 칸 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해외 언론들도 장국영의 연기에 감탄했지만, 이미 아시아에서 대스타였던 장국영에 대해 '신인인데도 연기력이 너무 훌륭하다'며 이런 배우를 어디서 발굴했냐고 묻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금만큼 아시아 영화가 서구권에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기는 했지만, 자기들이 인터뷰하는 대상에 대한 사전 조사를 전혀 안 해서 나온 무례한 질문이기도 했다. 패왕별희의 성공으로 장국영은 서구권 영화에 출연해달라는 제의를 여러 번 받았지만, 칸 영화제에서 황당한 질문을 받았던 경험 때문에 '내가 서구 영화계로 진출한다면 신인 단계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거절했다고 한다.
- 장국영의 아역으로 나오는 2명의 소년배우들은 외모가 출중했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아이[97]는 장국영의 어린 시절이라 해도 믿길 정도로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두 번째로 등장하는 아역은 실제 여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모가 돋보이는데, 특히 눈에서는 눈물, 입가에서는 피를 흘리며 경극 투자자를 뚫어져라 노려보는 장면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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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 촬영 당시 장국영과 함께 |
- 이 영화가 제작되었던 1993년은 아직도 중국이 경직되었을 때라서, 이 영화의 중국 내 상영은 엄격히 제한을 받았다. 중국 당국이 문제삼은 표면적인 이유는 동성애와 자살 미화. 그러나 실제로는 문화대혁명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면서 중국공산당에 대한 비판적 시각[99]이 간접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100] 하지만 현재는 제작된 지 오래되기도 했고, 국제영화계에서 상을 휩쓸는 등 수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기도 하며, 그동안 배달의 기수식의 관제-선전 영화만을 만들어 와서 수준이 저평가되었던 중국 영화의 실력을 보여준 작품으로 칭송되어, 아무 제한없이 TV에서 틀어주고 있었다. 또 중국 영화 평점 사이트에서도 최고점을 받는 걸작으로 등극해 있으며, 중국 대중의 평가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감독 천카이거 역시 중국의 거장 대접을 받으며 각종 시상식이나 방송에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한다. 중국의 역사영화에서도 민국이 대륙에 있던 시절의 청천백일만지홍기는 당연히 나온다.
- 장국영은 홍콩 토박이라서 광동어가 모어로 사용하는 사람이며 표준 중국어(보통화)를 못했으나[101], 이 영화를 찍으면서 보통화를 열심히 익혀서 보통화로 인터뷰를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고 한다.[102] 실제로 경극(京劇)은 문자 그대로 베이징의 지역의 전통 가무극이기 때문인 것도 있고, 경극 항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모든 대사와 가사가 보통화 밑 백화문으로 되어 있다. 또한 경극 무용도 짧은 시간에 전문가들이 인정할 정도로 완벽히 습득했다고 한다. 스탭진은 아이돌 가수 출신인 장국영이 영 못미더워서 대역을 할 수 있는 경극 배우 2명을 대기시켰으나, 이들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장국영은 뎨이 역을 완벽히 소화해냈다.
- 참고로 패왕별희라는 단어를 번역하기 어려웠던 탓인지, 이 영화의 영어판과 프랑스어판 제목은 각각 'Farewell my concubine" "Adieu ma concubine"(첩이여 안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건 패왕별희란 말의 원뜻이 "항우가 애인과 이별한다"는 뜻이므로 직역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희는 항우의 첩이라기보다도 애인에 더 가깝다. (정식으로 혼인하지는 않았지만, 사서에 나타나는 항우의 연인은 우희뿐이다.) 또한 동명의 원작 경극의 공식 영어 제목 역시 "Farewell My Concubine"이다.
- 주인공들의 옷차림과 마차와 인력거에서 승용차로 바뀌는 거리 풍경의 모습에서, 시간이 흐르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들은 한푸에서 정장을 거쳐 인민복(...)으로, 여주인공인 쥐셴은 치파오에서 민국학생장을 거쳐 서양식 카라티를 입는다.
- 정성일 평론가 오디오파일#
- 정성일 서인숙 조희문 평론가 토론글#
- 주인공 뎨이(蝶衣)가 아편에 빠져 허우적댈 때, 카메라는 어항 너머로 뎨이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 어항은 주인공의 삶을 은유하는 걸로 보인다. 또한 네이버 중국어 사전에 따르면, 접의(蝶衣, diéyī)는 나비의 날개를 가리키는 문어체라고 한다. 원 대인이 보낸 패물이 괜히 나비 모양이 아닌 셈이다.
- 경극 배우로 훈련받는 아이들이 力拔山兮氣蓋世를 외치며 해하가(垓下歌)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 중국 제5세대 감독인 천카이거 감독이 40대 초반에 연출한 정점 같은 작품이며, 천카이거는 이 작품 이후로는 그다지 인상적인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패왕별희 이전의 저비용 초기작들[103]이 더 명작이 많다. 패왕별희 이후 대가의 반열에 올랐고, 이 때문에 대자본을 쓸 수 있게 되어 여러 외국배우(장동건 등)을 기용해서 만든 무극(2006)이 있기는 하지만 욕만 먹고 그다지 흥행에 성공적이지 않았다. 역시 5세대의 다른 대표 감독인 장이머우와 마찬가지로 블록버스터 영화 연출에는 별로 재능이 없는 듯하다. 여명을 기용해 만든 경극영화인 매란방(2008)도 그냥 범작이며, 한국에서는 개봉조차 하지 않았다.
- 천카이거 감독은 미국에 유학한 적이 있고, 미국 대학에서 강사도 한 경력이 있어 영어가 유창하다. 패왕별희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당시 칸 영화제나 기타 해외 영화제 인터뷰를 보면 통역 없이 능숙하게 영어로 응답한다. 중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 거주지는 미국이며, 미국 영주권자라고 한다. 최근 중국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아들 진비우는 아예 미국 국적이기도 하다. 다만 작품활동은 중국에서만 한다. 2020년 중국 정부의 선전영화인 나와 나의 조국을 감독한 것으로 봐서는, 중국 정부와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닌 듯.
1993년 미국의 유명 기자 비비 위건트와의 영어 인터뷰.
- 지앙 원리(蒋雯丽, 1969)가 정접의의 어머니를 맡았다. 단역이었지만 미모가 눈에 띄었다.
10.1. 확장판, 감독판, 재개봉 등
- 중국 상영판에서는 뎨이가 자살하지 않고, 샤오러우와 공연을 이어나가는 장면이 페이드 아웃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원작 경극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비록 한글 자막은 지원되지 않지만 영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 한 번쯤은 보는 게 좋을지도.
- 한국에서는 자주 재개봉을 한다. 기존 156분 분량에서 15분이 추가됐고, 재개봉 일시는 문서 최상단 표의 개봉일 참고.
2020년에는 5월 1일 재개봉되었다. 원래 장국영 사망 17주기 기념으로 4월 1일 개봉하려고 했으나,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1달 미뤄진 것이다. 이후 2023년에 정확히 사망 20주기인 4월 1일에 맞춰서 재개봉한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기존 ‘패왕별희’의 156분에서 15분가량 추가된 버전인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을 상영한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화질이 보강되어 화려한 경극과 장국영의 아름다운 열연을 감상할 수 있다.
2024년 3월, 뉴스
2024년 3월, 뉴스
- 감독판(혹은 확장판)이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이라는 제목으로 재개봉되곤 한다. 일반적인 상영본보다 15분 정도 길고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화질도 보강된 완전판이다.
감독판에 추가된 장면은 상영에서 지나치게 늘어졌다고 판단되거나 혹은 동성애와 같이 중국에서 금기시되는 장면 등이라고 한다. 이런 장면들은 뎨이와 샤오러우의 어린 시절 일부, 장 내관의 뎨이의 강간 장면, 위안스칭과 뎨이의 동성애 장면(베드신), 뎨이의 아편흡입, 홍위병의 인민재판 일부 등이라고 한다.
덤으로 중언부언하던 과거 비디오판 자막에 비해서 자막의 질이 크게 올라갔지만 다만 이 재개봉판도 자막은 영어판에서 중역한 듯하다. 1994년판 자막에서 지적되었던 오기("두지", "시투", "데이", "샬로" 등) 등은 수정되지 않았는데, 이미 익숙해진 인명이기도 하고 그냥 한국 관객이 더 읽기 쉬운 인명으로 유지해버린 듯. 그러나 주인공들은 중국식 독음으로 읽으면서 원세경은 또 원세경이라고 한국식으로 읽는 등 좀 왔다갔다하는 독음도 흠이다. 사실 이 영화의 많은 경극 가사들은 보통 번역자로는 힘들고, 중국 문학 전공자가 아니면 제대로 손대기가 어렵기도 하다. 어설픈 중한번역을 하느니 차라리 중국인이 번역한 영어 자막을 한국어로 중역하는 것이 뜻은 더 통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11. 관련 문서
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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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국내 정발명.[2] 장국영의 기일에 맞추어 4월 1일 공식 재개봉이였으나, 코로나 19의 여파로 인해 재개봉이 미뤄졌다.[3] 서울 재개봉 1085명 포함[4] 표준 중국어로는 Li Bihua(리비화), 광동어로는 Lei Bik Faa(레이빅파), 영문명 Lilian Lee. 1959년생의 작가로, 홍콩에서는 가장 유명한 소설가 중 한 명이며, 여러 홍콩 영화의 원작이 되는 소설을 썼다. 가장 유명한 것은 서극 감독, 장만옥, 왕조현 주현의 무협극 '청사(Green Snake)'. 참고로 절대 대중과 언론에 나타나지 않는 성격이라고 한다.[5] 원작 소설의 결말은 영화와는 다르다. 1993년 도서출판 빛샘에서 정발되어 김정숙과 유운석이 번역했다. 다만 세월이 흘러 절판되었기에 굳이 보려면 교통비와 시간을 들여 국립중앙도서관까지 찾아가야 한다.[6] 후에 주인공 데이 역을 맡은 김승준 성우가 홍쇼에 출연했을 때 패왕별희를 본인의 인생작으로 꼽았으며 시사를 위해서 작품을 수십 번을 보았다고 말했다.[7] 번역자가 중국 문화를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자막판 곳곳에서 나타난다. 관사부가 급사하기 직전 경극학교 학생들에게 연기를 지도하며 "얘들아, (수호전) 임충은 80만 금군의 지휘관이야. 도둑의 두령이 아니란 말이다"라고 말하는데, 이것도 "린추우"라고 번역해놨다. 그나마 자막이 대폭 개선된 감독판 재개봉에선 임충으로 다시 나온다. 하지만 80만 금군은 관객들이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냥 대군으로 의역했다.[8] 10여년 후 나온 색, 계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졌다. 탕웨이가 맡은 "왕자즈"를 웡치아즈라고 자막으로 표기하기도 했다.[9] 다만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남녀평등이 확립됨에 따라서 경극에도 여배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현재도 여성 배역을 맡는 남자경극배우는 존재하며, 중화인민공화국 본토를 제외한 다른 중화권의 경극은 여전히 여자 역할에 남배우를 캐스팅하는 걸 고수하는 경향이 강하다. 비슷하게 일본 가부키에서도 온나가타라고 해서 여성 역을 남성이 맡는다.[10] 문화대혁명 조리돌림 장면에선 段曉樓, 小가 曉로 나오는데, 이것은 설정붕괴나 제작진들의 실수가 아닌 홍위병들이 자신들이 비판하는 대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었다는 것을 꼬집기 위해 철저히 의도된 것이다. 小와 曉는 현대중국어에서 동음(xiǎo)이다. 우리 식으로 바꿔보자면 홍길'동'(童)을 홍길'동'(東/洞)으로 오인하는 격.[11] 돌머리라는 뜻. 중국에서는 머리 나쁜 사람이라는 뜻은 없다.[12] 적벽대전(영화)에서 조조로 출연한 배우이다.[13] 입에 든 걸 마시라는 둥 무리한 요구를 하는 남자들을 피해 난간에서 뛰어내린 쥐셴을 샤오로우가 받아, 쥐셴에게 술을 나눠 마시길 권하며 "우리는 서로 약혼한 사이" 드립을 치고 위기를 모면한다. 샤오로우도 매춘을 하러 왔던 놈인 걸 생각하면 묘하다 다만 샤오로우가 원대인의 초대도 거절해 가며 화만루에 와서 쥐셴만 찾고, 쥐셴이 샤오로우를 보자 반가워하며 애틋하게 불렀던 걸 보면, 단순한 고객 사이라기보단 이 사건 전부터 이미 연애감정으로 만나는 사이였던 듯하다.[14] 샤오로우에게는 쫓겨났다고 거짓말로 동정을 자아냈지만, 실상은 샤오로우와 결혼을 작심하고 홍등가 마담에게 모은 돈을 지불하고 자기 발로 나온 것이다.[15] 이 배우는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의 명배우로서 1994년 장예모 감독의 "살아간다는 것(한국명 인생)"으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다. 거기선 쥐셴이 마누라다 한국에서 알려진 작품은 패왕별희 외에도 서기, 비비안 슈와 함께 주연으로 비성물요. 거기선 이성애자이다 장쯔이와 출연한 '야연' 등이 있다.[16] 넷째 나으리. 아마도 세도가의 넷째 아들인 듯.[17] 이 인민재판은 중국공산당 집권 직후 1950년 10월부터 1951년 12월까지 당시 벌어진 "진압반혁명운동"의 일환이었다. 이 당시 대륙에 남은 국민당 잔당 및 국민당 성향의 정치깡패, 국민당 특무들이 대거 체포되어 71만 명~100만 명이 처형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워낙 짧은 시간안에 대규모로 반대파들을 솎아내려고 했기 때문에 상당히 무리가 있었다. 여간해서는 자신들이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공산당이지만, 이 진압반혁명운동에서는 무고한 인물이 적지않게 처형되었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18] 원세개가 조선(서울)에 주둔했을 때 조선인 부인에게서 태어난 한중혼혈이다. 본인도 예술가였고, 베이징에서 예술활동을 후원하는 한량으로 이름이 높았다. 하지만 원극문은 이성애자이다.[19] 만주족은 대륙을 장악한 후에 경극을 좋아해서, 황제뿐만 아니라 많은 귀족들이 경극을 후원했다. 이 전통이 현재까지도 이어져 중국 영화계나 중국 드라마의 연출자나 제작자들 중에는 만주족이 많다. 화이브라더스의 창업자도 만주족이다. 중국의 다른 소수민족과는 다르게, 만주족계 인물에는 문화-학술-예술 분야의 인물이 많다고 한다. 나쿤도 이에 해당하는 셈이다. 본래 만주족의 조상은 여진족으로, 한(韓)민족과 한족(漢族)에게는 만주에 살던 오랑캐였지만, 청나라를 세우고 중국 대륙을 지배하여 17세기~20세기 초 중국 사회의 지배층이 되었다. 황족으로서는 몰락했어도 근대화 이후 고급교육을 받은 사람이 많다. 만주족은 신해혁명 후 거의 한족에 동화되어 버렸고, 현재는 그냥 보통 한족과 구별되지 않으며, 그들의 언어인 만주어 역시 사실상 사어(死語)이다. 정체성을 유지한 만주족들은 청나라 황실의 후예임을 자긍심으로 여기며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만주족 문서 참고.[20] 이건 캐릭터 연구 중 장국영의 조언으로 넣은 설정이다.[21] 허서리 송고투, 허서리 소닌 등의 청조 개국공신들을 배출한 집안이다.[22] 2019년 경극을 다룬 중국 드라마인 '빈변불시해당홍'에 원로 경극배우 '녕구랑'역으로 출연했다.[23] 비슷한 표현으로는 일본어의 '~짱(ちゃん)'이 있다.[24] 한글판에서 이름이 서가 된 이유는 병음 쓰(병음 si)의 끝에 북경어 특유의 얼화(er)가 붙어 "sir"(Si+er))로 표기되는데, 영어판을 중역한 번역자가 영어 sir로 혼동하고 그렇게 번역한 듯.[25] 천카이거 감독도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 생활을 했지만, 문혁이 끝난후 베이징전영학원에 입학해서 영화를 공부하게 된다. 천카이거의 초기작 중의 하나인 "현위의 인생"은 여러모로 자기가 홍위병 시절 디스했던 선배 예술인들에 대한 존경이 담긴 영화라고 볼 수도 있는데, 현위의 인생에서 주인공의 이름도 스터우이다.[26] 여담이지만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어머니가 이런 짓을 해서 지적장애가 있는 검프를 초등학교에 넣었다.[27] 민국 원년: 1912년, 선통 원년: 1909년.[28] 객석 사이에 서서 움직이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29] 1976년에 마오쩌둥이 죽으면서 문화대혁명이 끝났으므로 1977년이면 문화대혁명이 끝난 지도 이미 1년이 지난 시점이다. 다만 나라에서 주도한 정책이나 사업이 공식적으로 끝나도 그 여파가 사회적 분위기에 짧으면 몇 달, 길면 몇십 년씩 남아 있는 경우는 흔하니 '누그러졌다'는 말은 그 사회적 분위기가 누그러졌다는 뜻일지도.[30] 영화 마지막에서 더우쯔의 결말을 생각하면 이 그림은 사실상 더우쯔와 스터우의 결말을 암시하고 있는 스포일러다.[31] 중화민국 임시약법과 조곤헌법으로 이어지던 중화민국 법통성이 2차 직봉전쟁과 북경정변으로 공식적으로 소멸되고 북양정부의 정통성이 중국 지식인 사회에서 완전히 설득력을 잃었던 시기다. 1924년을 뒤흔든 정치적 사건들은 작중에서 전혀 다뤄지거나 언급된 바는 없으나 1924년에 굳이 북양정부 시기라는 자막을 단 것을 봐서는 나름 시대상의 의미는 있을지도. 다만 베이징은 그때도 베이징이었고 베이핑으로 개명된 것은 1928년의 일인데, 자막에서는 베이핑으로 오타를 냈다.[32] 청뎨이의 아명. 한국어 자막판에서는 '도즈'라고 잘못 표기되었다.[33] 더우쯔가 극단에 버려지게 된 이유는 촬영 후 편집되었는데, 더우쯔를 키울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손님과 함께 있을 때 더우쯔가 그들을 훔쳐보거나 손님을 물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더우쯔를 맡길 때 “남자아이라 더이상 곁에 둘 수 없다”고 말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34] 하지만 사부는 싸구려 서커스로 경극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스터우를 두들겨 팬다.[35] 마침 바깥에서는 식칼, 가위를 갈아주는 사람이 지나가고 있었다.[36] 이 장면을 두고 음경을 손가락으로 은유해, 청뎨이의 성 정체성이 소실되었음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다. 원작소설에서는 문화대혁명 후 강제노역 중 다른 손가락이 한 개 더 잘린다.[37] 돤샤오러우의 아명. 역시 한국어 자막판에서는 '시투'라고 잘못 표기되었다.[38] 홍콩에서 경극 학교를 다녔던 홍금보와 성룡도 어렸을 때를 회상하며 항상 언급하는 내용이다. 이들이 성장한 후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다룬 칠소복(1988)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 영화에 나온 경극 학교의 수련과정은 패왕별희에서 묘사된 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다.(물론 스승의 체벌이나 구타 장면 같은 것은 상당히 순화되었다.)[39] 탕후루는 2020년대 기준 누구나 다 아는 중국 간식이 되었지만 영화가 개봉한 시점에서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사탕 정도로 번역됐다.[40] 원래 더우쯔는 이걸 베개 밑에 숨겨두고 있었고 스터우에게 줬는데 샤오라이즈가 가로챘다.(...)[41] 좀 전까지 맞아도 싸다고 같이 꾸짖던 다른 사부들이 놀라서 정색할 정도의 강도였다.[42] 이때 사부가 휘두른 목검에 얼굴을 맞아 얼굴에 상처가 생긴다.[43] 성행위를 은유한다는 해석이 있다.[44] 이때 샤오러우는 멋진 검을 보고 이 검만 있으면 나는 패왕이고 너는 왕비가 될 수 있다며 감탄한다. 뎨이는 이때 샤오러우가 했던 말을 평생 기억한다.[45] 스승이 주도했다기보다는 장 내시 측에서 원한 것을 극단의 미래를 생각해서 거절할 수 없음에 가깝지만, 결국 방관한 것이고 뎨이가 희생한 것은 분명하다. 스승은 직전까지 눈치를 못 채다가 나곤에게 눈치가 그리 없냐고 핀잔을 듣고 나서야 눈치를 채지만 결국 현실을 받아들인다.[46] 이 대사를 잘 기억해두면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다.[47] 여기서 위안스칭이 청뎨이를 청 사장(程老板)이라고 칭하는데, 이는 당시 유명 배우들은 자신의 경극 교실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뎨이는 개인 사업자였던 셈.[48] 샤오러우가 머리로 물건을 깨는 장면은 영화에 총 네 번 나온다. 한 번은 극단을 위해, 한 번은 쥐셴을 위해, 한 번은 일제에 대한 반항으로, 한 번은 자신의 제자 공산당원 샤오쓰에 의해.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패왕의 의기가 다해(역발산기개세의 구절을 인용하여 비유하자면) 깨지 못한다.[49] 의역이 들어간 장면 중 하나이다. "빠다후통에서 이름 좀 날리고 왔다며?" 八大 빠다는 여덟 개의 거리를 합친 이름이고, 胡同 골목이란 뜻. "무이랑이 서문경을 만났는데 때리지 않을 이유가 있나?" "거기 반금련이 있었다는 거야?" 무이랑, 서문경, 반금련은 수호전에 나오는 인물. 반금련은 서문경과 애정 행각을 나누다 무이랑의 형을 살해하는 무이랑의 형수. 후에 무이랑이 이 사실을 알고 서문경과 반금련을 죽이는 게 수호전에 나오는 내용. 서문경과 반금련의 이야기가 따로 나온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금병매. 샤오러우는 자신을 무이랑에. 상대를 서문경에 빗대어 말한 것, 뎨이는 그 사이에 여자가 있었냐고 물은 것이다. 오로지 경극배우들만 할 수 있는 대화.[50] 패왕별희에는 不疯魔不成活 (미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라는 대사가 두 번 나온다. 이 장면에서 한 번, 그리고 샤오러우가 뎨이에게 사과하러 왔을 때 한 번.[51] 쥐셴이 일하던 빠다후통에서는 여자들이 영업을 한다는 의미로 신발을 대문에 걸어놓았다. 이 점을 유념한 상태에서 쥐셴이 그 신발을 팽개치고 맨발로 샤오러우에게 간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면 슬프지 않을 수 없다.[52] 이 장면에서 샤오러우의 표정으로 미루어 보자면 전날 밤 기생집에서의 일은 사내로서의 젊은 시절 호기로 펼쳐본 촌극에 지나지 않았지만 맨발로 극단까지 찾아온 쥐셴의 담대함에 감명을 받아 다소 즉흥적으로 혼인을 결심한 시퀀스[53] 그럴싸하지만 거짓인 걸 안다는 뜻으로 거짓 연기는 그만하라는 표현[54] 쥐셴이 일하던 빠다후통에서는 여자들이 영업을 한다는 의미로 신발을 대문에 걸어놓았다. 맨발로 샤오러우에게 온 쥐셴에게 디에이가 신발을 던져준 것은 너는 매춘부이니 허튼 생각말고 하던 매춘일이나 계속 하라는 뜻 아니었을까.[55] 뎨이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쥐셴에게 무엇인가 외치는데, 이는 배우가 무대 위에서 노래나 춤을 과하게 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보통 노랫소리가 듣기 싫게 갈라지거나 음 이탈을 할 경우에 많이 사용한다. 쥐셴을 관중의 갈채를 욕심내는 배우에 비유한 것이다.[56] 처음에는 경극애호가 같았으나... 어찌 보면 이 사람은 우희로서의 뎨이를 사랑한 유일한 사람. 다만 다소 변태스럽게 그려져서 동성애적 호감도 있던 것 같지만 여하튼 뎨이를 지극정성으로 대해주긴 했다.[57] 마지막 장면과 연출이 겹쳐보인다.[58] 장내관의 집에서 맨 처음 그 검을 발견했을 때 샤오러우가 그 검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본 뎨이는 샤오러우에게 꼭 그 검을 가지게 해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후로도 그 검을 입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별의 선물이 된 것이다.[59] 이때 쓰러진 모습이 재개봉판 포스터이다.[60] 왕징웨이 정권은 1940년 3월에야 성립되었으니 시기상으로 중화민국 임시정부이다. 패왕별희가 시간 흐름에 대해서 그리 친절한 연출을 하진 않지만, 1937년 시점에서 결혼을 약속한 샤오러우와 쥐셴이 일본군 침공 때문에 혼인을 잠시 미룬 시점이었으므로, 중일전쟁 발발에서 며칠 정도 흐른 상황이지, 왕징웨이 정권이 수립되는 시점까지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61] 뎨이가 처음 극단에 왔을 때 어머니가 덮어준 외투를 벗어 불에 태워버린 것을 생각하면 묘한 장면이다. 이때를 떠오르게 만드는 연출이 몇 번 등장한다. 감독은 이런 수미상관을 통해서도 매춘부인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뎨이와 아이를 유산한 쥐셴을 은유적 모자 관계로 묘사한다.[62] 이때 쥐셴이 일곱 걸음으로 걷는다.[63] 정황상 귀뚜라미 싸움에 걸 돈을 구하는 도박꾼들로 추정된다.[64] 쥐셴은 무대 의상들 사이를 뚫고 들어와 말한다. 이는 쥐셴이 뎨이와 샤오러우 삶의 극 패왕별희에 새로 들어온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65] 段小楼,你可真知道疼人呐. 정확히 번역하면 “샤오러우, 당신은 정말 사람을 아끼는 법을 알아.”이다.[66] 자세히 보면 무대에서 행패 부리는 회색 군복의 국부군 외에 갈색 군복의 장교 2명이 맨 앞에 있다.[67] 새장에 갇혀 지저귀는 새들이 왠지 뎨이와 겹쳐보이는 것은 우연일까?[68] 과거 자신을 없수이 여겼던 샤오러우와의 앙금을 되갚으려는 다소 치졸한 행태라 하겠다.[69] 이때 쥐셴이 일곱 걸음을 걷는다! 쥐셴이 하필이면 일곱 걸음을 걷는 장면은 극 중 두 번 나온다. 과연 무엇을 시사하는 것일까?[70] 쥐셴 캐릭터는 출신이 화류계이기는 하나 이렇듯 기민한 판단력과 적재적소를 아는 영리함은 극중 어느 캐릭터에도 뒤쳐지지 않는다.[71] 그 사이에 약삭빠르게 중산복으로 갈아입고 청천백일 뱃지를 차고 있다.[72] 뎨이는 재판에서 "일본군은 미웠지만 자신의 연극을 보러 온 손님들이라 무대를 선보였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때 샤오러우가 그를 구하기 위해 어떤 곤욕을 치렀는지를 안 쥐셴은 뎨이에게 실망하여 그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73] 이 장면에서 뎨이는 삐끼가 홍루몽에서 31회 때 청문이 부채를 찢는 것처럼 부채 하나를 찢거나, 임대옥처럼 쓴 편지는 바로 태워야 한다며(97회) 편지 하나를 쓰고 태우는 장면을 재현하는 걸 보고 아편에 취한 채 즐거워한다.[74] 실제 역사에서는 국부천대로 대만에서 중화민국이 이어지기는 하지만, 대만 현지에서조차 차이잉원과 같은 타이완 독립운동파와 범록연맹이 득세하는 것을 보면..[75] 별것 아닌 대사 같지만 이 말로 인해 나중에 정말 큰일이 난다.[76] 작중 내내 엄마를 그리워하기는 하지만 애증과 양가감정이 존재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게 적당할 것이다. 덧붙여 경극단에 막 들어갔을 때 엄마가 창녀라고 더럽다고 놀림받은 뎨이는 바로 엄마가 남긴 옷을 태워버린 것만 봐도 '창녀'에 대한 트라우마적인 부분이 있을 것이다.[77] 망신스런 참패의 순간에 유일하게 자신을 염려해준 쥐셴에게 인간적인 감사는 있겠으나 여전히 자신의 애정을 무참히 앗아간 연적에의 적개심이 남았음을 보여주는 장면[78] 47에서 설명한 바로 그 대사가 나오는 장면.[79] 혼란의 시기에도 극단이 건재할 수 있었던 건 뎨이의 수없는 희생이 큰 부분을 차지했고 이것이 옳지는 않지만 힘없는 예술가의 세상에선 묵시적으로 행해져 온 그릇된 관행임을 단원 모두가 알고있으며 저마다 마음으로 뎨이에게 빚을 지고있음을 시사한다.[80] 이때 장국영의 연기력이 대단했던 것이 뎨이에게 달려드는 홍위병이 마치 실성한 사람을 진정시키려는 사람들처럼 보여질 정도였다.[81] 46에 설명된 장면이 다시 언급되는 연출. 맨 끝에 "반금련!!" 이라 소리친다. 뎨이에게 쥐셴은 계속 반금련이었으며, 샤오러우와 한 사소한 대화들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82] 그게 얼마나 뎨이에게 소중한 물건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83] 이때 목을 맨 쥐셴의 모습을 비추는 장면에서 听奶奶讲革命(할머니에게서 혁명 이야기를 듣자)이 흐른다. 이 노래는 문화대혁명 시절에 만들어진 경극인 홍등기(红灯记)의 일부로, 사회주의 투쟁과 혁명을 노래한다.[84] 과거에 원대인이 뎨이에게 준 값비싼 패물들이다.[85] 이는 샤오쓰의 몰락을 보여줌과 동시에, 현실에서 뎨이와 샤오러우가 설 곳이 점점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뎨이가 무대에서 우희로조차 있기 힘들어짐을 의미한다. 그래서 엔딩 부분에서 뎨이는 마지막으로 우희로서 삶을 마감하기로 결심한 것이다.[86] 영화 첫 장면에서 샤오러우와 데이는 서로를 10여 년간 보지 못했다고 하는데 쥐셴이 자살한 이후 둘이 심한 몸싸움을 벌인 것으로 봐서는 10여 년간 절연 상태로 지내다가 겨우 화해를 한 듯하다. 아니면 둘 모두 지방으로 하방되었다가 문혁 종결과 함께 겨우 베이징으로 돌아온 것일 수도 있다.[87] 이때 칼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먼저 나고, 조금 후에 뎨이의 몸이 쓰러지는 소리가 난다. 중국판에서는 이 장면이 나오지 않고 그대로 종결된다.[88] 잘 들어보면 마지막에 가창조국이 울려퍼진다.[89] 현대 중국인도 전통 경극 대사나 노래 가사는 듣고 이해하기 힘들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마오쩌둥이나 저우언라이와 같은 중국 지도부는 고대의 지배층인 왕후장상이 주인공들인 고전 경극을 좋아해서 문화대혁명 이전까지는 매년 단체로 관람하러 왔다고 하는데#, 이들은 사실 청소년 시절까지 고전한학을 제대로 배운, 옛날로 치면 선비출신이었다.[90] 양귀비가 술에 취하다.[91] 경극의 원형이다. 원말-명대에 유행하다가, 이것이 청나라에 들어와서 경극으로 발전하였다.[92] 굳이 경극 "패왕별희"가 출전이 아닌 생소한 곤곡의 대사를 넣은 감독의 의도는 동성애자인 뎨이의 성정체성을 상징하기 위해서이다. 엔딩인 체육관 경극 신에서도 샤오러우가 자꾸 뎨이와 "패왕별희"를 공연하며 합이 안맞자 이 노래를 연습삼아 합을 맞춰 보는데, 결국 뎨이는 마지막까지 제대로 부르지 못한다.[93] 샤오러우는 극 초반에 난간에서 떨어지는 쥐셴을 받아냈다.[94] 한문 독음 방식에 따라 목단정이라고 읽기도 한다.[95] 문화대혁명기에 자신을 비난한 샤오러우에게 항변하는 장면에서 "내가 왜 일본군 앞에서 모란정을 불렀겠냐?"라고까지 하며, 그러한 마음을 드러낸다.[96] 마치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개념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97] 마밍웨이(馬明威)[98] 이 역시 경극에 관한 영화로, 아이러니하게도 심지어 매란방은 여자 역 남자배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청뎨이의 모델이 매란방이라는 설도 있다. 매란방은 북양정부 시절부터 이미 중국에서 대스타로 등극했으며, 매란방 팬덤은 혁명과 내전, 일본의 침공으로 결딴이 나는 중국 현대사와 무관하듯이 굳건하여 21개조 조약이 맺어지던 시점에선 매란방 공연에서 팬들이 울고불고 기절하는 소동이 벌어지자 중국 지식인들은 딴따라를 위해 흘릴 눈물이 있으면 나라를 위해 흘리라고 매란방 팬덤을 철부지 애새끼들로 후려치는 등 여러모로 90년대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천하의 마오쩌둥도 개인적으로 팬이었던 데다가(마오쩌둥은 베이징대학 사서 시절부터 경극 팬이었으며, 1949년 북경에 입성하고 나서도 매란방의 공연을 보러 왔다고 한다.), 다행히(?) 문화대혁명 전에 사망해서 청뎨이와 같은 굴욕은 겪지 않았다.[99] 이 작품에서는 중국공산당을 포함한 모든 권력을 억압적으로 묘사하며, 이들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니까 중화민국 북양정부, 일본 제국, 중국국민당이 통치하는 중화민국 국민정부 또한 주인공들을 비극적인 상황으로 몰아간다.[100] 문화대혁명은 현재 중국공산당이 공식적으로 마오쩌둥의 과오라고 인정하는 몇 안 되는 흑역사이기 때문에, 공산당이 아니라 문혁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별로 문제삼지 않는다. 그 이후로도 문혁을 비판하는 영화는 여럿 나왔다. 특히 문화대혁명의 피해자들 중 한 명인 시진핑이 집권하면서부터는 중국 내에서 문화대혁명에 대한 비판이 보다 더 자유로워진 편이다.[101] 물론 장국영은 패왕별희에 출연하기 전에도 영웅본색 1의 주제가 당년정과 영웅본색 2의 주제가 분향미래일자를 표준중국어 버전으로 따로 부른 적이 있었지만 애초에 자신의 모어가 아닌 언어로 노래를 부르는 것과 연기를 하는 것은 각각 별개의 영역이다.[102] 유창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30대에 들어 배웠으니 당연한 거지만.[103] 예를 들어 황토지, 변주변창(한국 개봉명-현위의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