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만옥의 주요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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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82a4f><colcolor=#ffffff> 장만옥 張曼玉[3]| Maggie Cheung | |
출생 | 1964년 9월 20일 ([age(1964-09-20)]세) |
영국령 홍콩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가수, 배우, 작곡가 |
가족 | 부모님, 언니, 본인(미혼) |
학력 | 대졸 |
신체 | 168㎝, 43㎏, O형 |
별명 | 玛姬、曼神 |
데뷔 | 1984년 영화 《청와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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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인기 및 위상
베를린 영화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공리, 양자경, 장쯔이와 더불어 중화권 영화계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 특히 이 중에서 공리와 라이벌로 묶이는 배우이다. 외모도 정반대 스타일이고 두 배우 모두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여자 배우라 불릴 정도로 연기력과 커리어가 훌륭하다.국내에도 <첨밀밀>, <아비정전>, <동사서독>, <청사>, <송가황조>, <신용문객잔>, <화양연화> 등으로도 인지도가 높은 배우다. 2005년 중국영화협회에서 선정한 '중국의 100대 배우'의 1인으로 뽑혔고, 2014년 홍콩 문화예술인재센터로 부터 1급 배우 직위를 획득하기도 했다. 또한 2019년 '신중국 70년 기념 전국 10대 여배우'중의 1인으로 선정되었다.
3. 활동
1980~1990년대 홍콩 영화계를 대표했던 배우. 1983년 참가번호 29번으로 미스 홍콩 2등인 아군(亞軍) 입상자 출신이다. 호리호리하고 고전적인 외모에 연기력도 빼어나[4] 8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데뷔 초에는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1편부터 3년까지 성룡의 여자친구 아미 역할로 출연하며 굉장히 일찍 스타덤에 오른 편이다. 폴리스 스토리 1편과 장국영, 매염방과 함께 주연을 맡은 <연분>에서는 아직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통통한 얼굴의 장만옥을 볼 수 있다.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를 찍을 당시에는 성룡과 합이 너무 잘 맞아서 스캔들이 나기도 했었다.[5]
신인 시절에는 그 당시 TVB 드라마에서 주로 활동했고, 대표적인 출연작은 1984년 드라마 신찰사형과 1985년 드라마 무림세가이다. 드라마 신찰사형에서 초원 감독의 아내인 남홍의 딸 역으로 출연했는데 남홍이 장만옥에게 잔소리를 많이 해댄다.[6] 드라마 양가장에서는 구천현녀 역으로 출연했다. 영화에서는 홍콩 영화계의 주류였던 코믹물에 주로 출연했는데 1988년 왕가위 감독의 멜로와 느와르물을 퓨전한 <열혈남아>에서 유덕화와 주연을 맡으며 본격적인 연기파 배우로 발돋움하게 된다.
열혈남아에서 연기력을 인정받고, 1989년에는 영화 <양말을 벗지 않는 여인>으로 첫 단독 주연작을 맡았다. 한편 같은 해 관금붕 감독[7]의 <인재뉴약>에서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의 공기에 눌리지 않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홍콩 출신 레즈비언 아교 역으로 출연한 장만옥은 그해 대만 금마장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본래 매염방으로 내정되어 있던 <완령옥>의 주연까지 꿰차게 된다. 이 영화로 홍콩 및 중화권 배우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1990년대 홍콩 영화계를 대표하는 스타로 자리매김한다.
1990년대 초부터 홍콩 영화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코믹물이나 액션물을 카피하고, 그것을 또 다른 제작자가 카피하는 등 자기복제가 심해지면서 점차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장만옥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잡은 영화에 출연하며 본인만의 연기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다. 또한 그간 소모품 혹은 꽃병 역할로만 머물던 기존 여성 캐릭터를 능동적인 캐릭터로 변화시킨 대표적인 배우로 임청하, 매염방과 함께 손꼽힌다. 1993년 개봉작 청사에서 여귀 연기에 있어서 최고의 존재감을 자랑하던 왕조현과 나란히 출연해서 전혀 존재감이 밀리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요괴연기를 보여주었다.
당시의 홍콩 배우들은 다작으로 유명했는데 장만옥도 만만치 않아서 1993년에 출연한 영화만 11편이다. 한 달에 한 편 꼴로 영화를 찍는 데다가 유명세로 인한 끊임없는 스캔들로 사정없이 공격하는 언론들의 행태, 자신을 연기자가 아닌 이름과 유명세뿐인 소모품 '재키걸'로만 여기는 당시 영화계의 행태에[8] 큰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적으로 피로해진 장만옥은 2년 정도 영화계를 떠났다가 진가신 감독의 <첨밀밀>로 컴백했다.
2004년 영화 <클린>에, 2010년 '베터 라이프'에 출연하였으며, 2013년 플레이타임이라는 비디오 아트에 가까운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바스터즈에도 출연했지만 편집 과정에서 잘려 나갔고[9] 이후 음악업과 사회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는 나이도 있는 만큼 좋은 시나리오를 고르느라 고심 중이라고는 하나,[10] 2013년 관금붕 감독과 함께한 자리에서 '무기한 배우 활동 중단'을 언급하며[11] 2014년 음반회사와 전속계약을 맺은 이후 본업인 배우활동보다 가수로서 음악활동에 전념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예전부터 가수가 꼭 되고 싶어 음악활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해 베이징에서 열린 록 페스티벌에서 노래를 불렀다가 엄청난 음치인 게 드러나 팬들을 경악시켰다. 중화권 언론에서 대놓고 신이 버린 목소리라고 비난했고,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연예계 친구들과 가수 활동 때문에 사이가 멀어졌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당연히 대다수 청중들도 잘하는 연기나 할 것이지 무슨 뻘짓을 하고 앉아있냐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록 페스티벌에서의 실책은 인정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12]
2015년에는 영화 <연애중적성시>의 OST를 작사, 작곡까지 하여 선보이기까지 했다.
2019년에 들어서서는 예능 게스트로 얼굴을 비추고 있고, 2022년 6월 말에는 홍콩 센트럴의 한 브랜드 행사에 DJ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특별 게스트로 행사에 참석했다. 단순히 포토월에 참석한 게 아닌, 디제이 자격으로 초청된 것. 10월 경에 새 앨범 발매 소식이 나돌기도 했으며, 2023년 들어서 음악프로나 예능프로에 출연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2024년 4월 중순경에 2024 파리 올림픽 성공기원 중국-프랑스 배우간 친선 배드민턴 경기에 참석한 것이 가장 최근 소식이다.
4. 출연
4.1. 영화
<rowcolor=#ffffff> 연도 | 제목 | 배역 | 비고 |
1984 | 청와왕자 | ||
연분 | 모니카 | ||
1985 | 마등선리기연 | ||
성탄기과결량연 | [13] | ||
폴리스 스토리 | |||
1986 | 영웅무언 | ||
과부남편 | |||
개심귀 3 - 개심귀당귀 | |||
로즈 | |||
1987 | 황색고사 | ||
천사양연 | |||
프로젝트 A 2 | |||
정장추녀자 | |||
1988 | 구애감사대 | ||
애적도병 | |||
유금세월 | |||
폴리스 스토리 2 | 아미 | ||
남북마타 | |||
비묘유랑기 | |||
열혈남아 | 아아 | ||
야생화 | [14] | ||
과부신랑 | |||
1989 | 소경찰 | ||
사랑의 난파선 | |||
소녀심 | |||
급동기협 | |||
인재뉴약 | |||
신용쌍주맥 | [15] | ||
1990 | 루안살성 | ||
삼인신세계 | |||
애재별향적계절 | |||
객도추한 | |||
아비정전 | 소려진 | ||
1991 | 쌍성고사 | ||
부귀길상 | |||
완령옥 | 완령옥 | ||
소야객 | |||
붉은 사랑(곤곤홍진) | |||
1992 | 쌍룡회 | ||
화영웅 | |||
백장미 | |||
가유희사 | 하리옥 | ||
신용문객잔 | 금양옥 | ||
폴리스 스토리 3 | 아미 | ||
1993 | 추남자 | ||
전신 | |||
동성서취 | 파사 국사 | ||
천면은호 | |||
천검절도 | |||
가을 날의 동화 2 | |||
첩혈가두 2 | |||
적각비협 | 대소저(백소군) | ||
대소비도 | |||
동방삼협 | 진칠 | ||
동방삼협 2 | |||
심사관 2 | 소옥 | ||
청사 | 소청 -청사 | ||
1994 | 동사서독 | 구양봉의 형수 | |
1996 | 첨밀밀 | 이요 | |
이마 베프 | 장만옥 | 프랑스 영화 | |
1997 | 송가황조 | ||
차이니즈 박스 | |||
2000 | 소살리토 | ||
화양연화 | 소려진 | ||
2002 | 영웅 : 천하의 시작 | 비설 | |
2004 | 클린 | 에밀리 왕 | |
2046 | 소려진 (까메오 출연) | ||
2009 |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16] | 미국 영화 | |
2010 | 베터 라이프 |
5. 여담
- 1996년 이마 베프를 감독했던 프랑스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1998년 결혼, 2001년 이혼했다. 하지만 3년 뒤 <클린>으로 협업하는 등 이혼 뒤에도 원만한 사이인 듯 하다. 참고로 클린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 장국영, 양가휘와 오랜 절친이기도 하다. 특히 양가휘의 아내 강가년과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이다.[17] 매염방과도 절친 사이였는데, 소원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2003년 장국영과 매염방이 세상을 떠나자 칩거하며 눈물로 지내기도 했었다고 한다. 특히 매염방의 발인 당일에는 오열하다가 실신하기도 했다고.
- 홍콩배우들 중 상복이 많기로 손꼽힌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장만옥의 수상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1991년 <완령옥>으로 28회 금마장 여우주연상을 시작으로 이듬해 초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과 12회 홍콩 영화 금상장 여우주연상까지 휩쓸었으나 흥행성적을 우선시하던 당시 홍콩영화계나 일부 동종업계 사람들 사이에서 장만옥의 수상에 대해 질투를 가지거나 루머가 많이 생겼다고 한다. 이에 대한 마음고생이 심했던 장만옥은 1993년 12회 금상장 여우주연상에 호명되어 '내게 여우주연상을 준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애초부터 내가 상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런 말들 때문에 나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제 정당하게 상을 받았으니 나는 이에 대해 떳떳하게 말할 수 있으며, 더 이상 신경 안 쓴다.'[18] 라는 수상소감으로 관중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후 이 발언은 다른 배우들의 수상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 발언으로 장만옥은 일부 영화계 인사들에게 한동안 찍히기도 했었다고 한다.
- 8살 때 영국으로 이주해서 9년간 살았기 때문에 영어 실력이 유창한데, 영국식 억양과 광동어 억양을 섞어서 말하는 편이다. 전형적인 중국 여인의 매력을 가졌지만 성장 환경 탓에 자유분방한 사고 방식의 소유자라고 한다. 다만,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을 바로 목격한 경험이 있는지라 토크쇼에서 가족 이야기를 꺼내는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 프랑스어도 곧잘 하는 편이다.
- 의외로 지독한 골초인데 영화 속에서는 이마 베프, 쌍룡회 정도를 제외하고 흡연하는 장면을 거의 보여준 적이 없지만 20대 초반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만성적인 호흡기 질환과 심장 질환을 안고 있다고 한다. 2014년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온 장면이 파파라치에게 목격되었는데, 검사를 마치고 나오면서도 담배를 피웠다.
- 다른 여성 배우들은 젊은 시절에는 과감한 헤어스타일을 시도하다가 나이가 들면 머리를 단정하게 틀어올리거나 차분하게 자르는데, 장만옥은 오히려 나이가 든 후 폭탄머리 파마에 드레스를 입고 시상식에 오기도 한다.
- 1983 미스 홍콩 2위 입상자이며 1983 미스 월드에서는 Top 15에 들었다. 참고로 1994년 미스홍콩 참가번호 9번 장가이(張可頤)의 영어 이름도 장만옥과 같다. 미스 홍콩 출전 당시 영상.[19]
[1] 북경 예스마담[2] To Live.[3] 광동어로는 (zoeng1 maan6 juk6) 쬥만욕으로 발음한다. 보통화로는 장만위 (Zhang Manyu)[4] 단 데뷔 초에는 늘 놀란 토끼 같은 한 가지 표정으로만 연기한다고 대차게 까였었다.[5] 다만 세월이 흐른 후 장만옥이 한 인터뷰에 의하면, 당시 성룡이 관심을 보인 사람은 폴리스 스토리 1편에 두 사람과 같이 출연했던 임청하였다고 한다.[6] 폴리스스토리 1편에서 장만옥은 초원감독의 발에 엉덩이가 까인다.[7] TVB 연예인 훈련반 5기생. 이후 <완령옥>에서 감독과 배우로 다시 만난다.[8] 또한 '완령옥', '신용문객잔'처럼 파격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에 대해 '망한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언론들의 가십성 기사에 큰 상처를 받아 연예계에 환멸을 느꼈다고 고백했다.[9] 멜라니 로랑이 맡은 역할인 쇼산나가 복수의 장소로 극장을 택하는데 그 극장의 주인은 원래 마담 미미유라고 영화 속 대사에 나온다. 원래 이 마담 미미유 역할을 장만옥이 맡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상술했듯이 편집되었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어쩌다 쇼산나가 극장을 관리하게 되었는지 나오지 않는다.[10] 실제로 런닝맨에 출연한 성룡에게 유재석이 '만옥이 누나는 요즘 어떻게 지내냐'며 안부를 묻자 성룡이 '좋은 시나리오를 찾는 게 어려워서 요즘 영화 출연을 잘 안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후에 성룡이 게스트로 출연한 해피투게더에서도 유재석이 다시 장만옥의 안부를 물었다. 그만큼 장만옥과 영화계에서 가장 친하게 잘 지낸 사람들 중 한 명이 바로 성룡이다.[11] 한편으로는 중국의 심각한 검열과 좋은 제작진들이 줄어든 홍콩영화계 상황으로 인해 좋은 영화들을 제작하기 힘든 상태가 되자 스스로 배우생활을 그만뒀다는 말도 있다.[12] 2019년 후난 위성 TV에서 방영된 예능프로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저 상황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동안 배우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실패한 적 없었다가 처음 가수활동을 하면서 대중과 언론들이 다 같이 실패했다고 지적한것에 당황했고 자신도 실패라는것을 처음으로 경험하면서 한 동안 방황했었다고 한다.[13] 한국에서는 80년대에 콜라깡통대소동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가게에서 인기있었다.[14] 종초홍, 정유령과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 원제는 '月亮 星星 太陽'으로, 해석하면 '달, 별, 그리고 태양'이라는 뜻. 세 호스티스들의 기구한 운명을 다룬 비극적인 영화. 정유령이 이 영화로 1988년 25회 금마장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선희의 'J에게'라는 노래가 광동어로 번안된 버전으로 이 영화의 삽입곡으로 사용된 바 있다.[15] 비디오판 제목은 '신용쌍매.' 쇼 브라더스에서 1972년에 만들어진 용쌍주맥의 리메이크 작품이며 원작의 남자 주연을 여자 버전으로 바꾸어놓았다. 또한 1988년에 야생화에서 같이 출연하였던 정유령과 더블 주연을 맡은 코미디 영화이다.[16] 극장판에서 최종 편집됨.[17] 일례로 장만옥이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이혼 후 다른 남성과 열애설이 떠돌 적에 언론에서 양가휘에게 '친구가 이혼하고 다른 사람과 사귀고 있는데 심정이 어떠세요?'라고 묻자 '만옥이 같이 멋진 친구가 남자 친구 사귀는게 뭐가 잘못임? 만약에 내 친구를 속상하게 한다면 따지지 않고 내가 뺨을 때리든지 반 죽일거임' 라고 답했다. 사실 양가휘보다는 강가년과의 사이가 더 좋고, 이들 부부의 쌍둥이 딸과 같이 백화점을 갈 정도로 아주 친해서 장만옥이 대모를 자처하기도 했었다.[18] 有很多人常常在爭論,有沒有搞錯,她拿獎?不該由她拿……以前會很介意,但是現在學會了,獎在我手,任你說講什麼都行,我不理[19] 29번이 장만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