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7-03 22:39:39

예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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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자조선은 현대 주류 학설에서는 인정되지 않음.[2] 한사군은 한국사 포함 여부에 대해 논쟁이 있음.[3] 가야는 신라의 복속 이후에도 사료에서 존재가 확인되어, 7세기 중엽까지 반독립적 상태로 존속했다는 학설도 있음.[4] 외세의 점거로 인해 한민족에 의한 정권수립이 되지 않은 경우.[4] [4]
주요 민족: 한민족 (예맥 · 삼한)}}}}}}}}}


예맥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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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맥인
고조선 | 진번국 | 임둔국 | 낙랑국? | 대방국?
예인
부여계: 고리국? | 북부여 | 동부여 | 갈사국 | 졸본부여
옥저계: 북옥저 | 남옥저 | 동옥저
동예계: 불내예국 | 화려국 | 북명
맥인
고구려 | 백제 | 비류국 | 조나국 | 개마국 | 구다국 | 주나국 | 해두국 | 행인국 | 황룡국 | 맥국 | 대수맥 | 소수맥 | 양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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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명칭과 지칭3. 예맥(濊貊)4. 예(濊): 부여, 옥저, 동예5. 맥(貊): 고조선, 고구려, 백제6. 한(韓): 삼한7. 표기 문제8. 같이보기9. 둘러보기

1. 개요

<nopad> 파일:6C69ED59-6C4A-4751-AB14-8525DFFD3978.jpg
고구려라고 적힌 나라는 이후에 고구려 세력권이 되는 예맥계다.
실제로 예맥계는 부여계, 동예, 옥저 등 더 있다.

예맥()은 협의적으로는 만주[1] ~ 연해주 남부[2] ~ 한반도 북부[3]에 걸쳐서 살고 있던 사람들까지를 광의적으로는 훗날 (韓)으로 분류되는 한반도 남부의 사람들을 포함한[4] 민족을 부르는 명칭이다.[5] 이들은 최소 기원전 22세기[6]쯤에서 기원전 10세기 경[7]에는 분명히 이 지역에 살았으며, 역사가 쓰여지기 이전부터 이곳에 살았던 선원주민으로서 오래 전부터 이 곳에 살았던 사람들로 추정된다.[8][9]

혈연상[10]이나 문화상[11]으로 여지없이 현대 한민족의 직계 조상이며 민족적 원류이다. 우리 조상들인 예맥인들은 요하강 유역에서 문명을 만들고 만주 전역연해주 그리고 한반도까지 개척했으나, 서쪽의 한족과 북쪽의 퉁구스족에 밀려서 점진적으로 동쪽과 남쪽으로 밀려났으며 최종적으로는 한반도를 제외한 다른 지역을 모두 상실했다.[12]

혈연상이나 언어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예(濊), 맥(貊), 한(韓)이 동질적이었지만, 정치적인 이유[13]로 당대에 이분들은 서로를 이질적인 존재로 봤다. 물론 당대에도 고구려는 자신들이 예맥인의 후손인들이라고 직접적으로 인식했고, 백제인들은 예맥인들의 후손이었던 부여[14]들의 후손으로 인식[15]했으며, 신라인들도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에 유민들이 남하해서 세웠기 때문에[16] 자신들의 근원이 단군 조선에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럼에도 단군조선이 예맥인들을 통일하지 못했었고[17], 고조선이 예맥을 통일하기 전에 한족의 통일왕조인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켜서 문화적 공통분모에도 삼한일통(676년)에나 대략적인 대표국가가 나오기 때문에 동족의식이 부족했다.

예맥인들의 민족의식 함양은 고조선 때 최초로 형성되었고[18], 그 다음은 고구려가 예족 계통들을 전부 정복[19]해서 예맥인들을 온전히 하나로 합쳤고[20], 신라가 삼한일통을 하여, 한반도 내에서 현대의 한민족 의식의 토대를 닦았다.[21]

예맥족 혹은 예맥인이란 개념은 남북국시대까지 어느정도 이어졌지만, 발해가 멸망(10세기)한 뒤에 만주 지역의 예맥족이 돌궐, 중원, 거란, 여진 등의 이민족에게 살육[22]당하거나 강제 동화[23]처리되어서 한반도 내의 세력으로 고착화되어갔고, 그 과정에서 좁은 영토에 근본이 같은 세 문화{ 예(濊), 맥(貊), 한(韓) }이 압축되어 합쳐진 결과[24], 현재의 한민족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25]

이와 같은 사실들로 예맥족은 우리의 직계 조상이며, 예맥족은 한민족계로 분류되는 것이 옳다. 일대기만 그려봐도 예맥족의 민족국가였던 고조선부여[26]의 중심지는 빠짐없이 그 후계인 고구려에게 흡수되었으며[27][28] 옥저와 동예 등 예로 분류되는 나라들을 모두 통합해 예맥족을 대략 통일했다. 그 고구려계(부여계)의 일파가 남쪽으로 넘어가 마한에 정착해서 새운 것이 백제이며, 그 백제가 무너뜨린 삼한의 구성국 상당수도 고조선계 유민들이 에 정착해서 세운 나라들이었다. 대표적으로 침미다례와 신라의 원류인 사로국이 고조선의 유민들이 세운 나라이다. 즉 신라 또한 예맥인들이 세운 나라이며, 통일신라는 남부 예맥인들을 통합한 나라인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통일신라 멸망 후에 고려를 세운 집단은 발해 남부(평양)와 신라 서북부의 패서귀족인데, 이들은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경기 북부를 아우르는 고구려계 예맥족 집단이었다. 평양은 자체가 예맥인들의 오랜 중심지었고, 한성은 삼한의 최고 인구밀집 지역이었는데, 고려가 건국될 때, 이 곳을 명백한 예맥계가 쥐고 있었고, 그 예맥계가 세운 나라가 고려라는 사실은 우리가 예맥혈족의 직계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떤 증거보다도 가장 큰 증거는 우리(한민족) 외에는 예맥을 계승한 나라나 민족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족이 만주를 경영하기 시작할 때에는 토착 예맥인들은 사실상 절멸한 후인 데다가 퉁구스족은 예맥족을 동화하는데만 집중하고 그들의 유산을 계승할 생각은 1도 없었다. 실제로 온돌문화같은 생활문화 뿐만이 아니라 ,고구려와 발해의 발전한 철기 기술조차도 계승 실패했다.[29] 당대에 한족도 몽골족도 여진족도 계승의식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연관성도 전혀 없었다.

예맥족의 문화를 모두 물려받은 고려(Korea)가 훗날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예맥족은 조선민족/한민족으로 계승 발전해 현재에 이른다.

2. 명칭과 지칭

일찍이 정약용(丁若鏞)은 '맥'이 종족의 명칭이고, '예'는 지역 또는 강의 이름이라고 보아, '예맥'은 맥족의 아홉 갈래(九貊, 구맥) 중의 하나를 지칭한 것이라고 했다. 능순성(凌純聲)도 '예'는 예수(濊水) 지역에 거주했던 맥족이라고 하여 동일하게 이해했다.

윤무병(尹武炳)의 경우, '예맥'이라는 명칭은 사마천이 저술한《사기》(史記)에서부터 사용되었는데, 예족과 맥족을 합친 범칭이 아니라 맥족인 고구려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봤으며, 한대 이후의 예와 (예)맥은 동일계통 내에서 각각 구분되던 실체였다고 주장했다.

한편, 대만의 학자 예일부(芮逸夫)는 한민족이 예맥과 한(韓)의 양계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예맥족 중 '예족'은 한반도 중북부와 송화강·길림·눈강(嫩江) 지역 등에 살았고, '맥족'은 산동·요동·발해만 연안 등에 거주하여, 그 거주지역의 분포에 따라 예와 맥이 구분되었다고 봤다. 김정배(金貞培)도 예·맥·한은 동일계 족속으로서, 그 분포지역의 차이에 따라 각각 구분되었다고 봤다.

이종설(異種說)의 대표적인 주장자는 미카미(三上次男)인데, 그는 예족이 유문토기문화(有文土器文化)를 영위하며, 생활방식에 있어서 수렵 및 어로의 비중이 컸던 고아시아족(古Asia族) 계통이고, 맥족의 경우 무문토기문화(無文土器文化)를 남겼기에 퉁구스족 계통인 것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미카미의 주장은 빗살문토기문화와 무문토기문화가 같은 시기의 것이 아니라, 시대를 선•후하는 문화였다는 사실이 확실해짐에 따라 부정되었다.

한편, 이옥(李玉)은 맥족과 예족이 원래 중국의 산시성과 허베이성 방면에 각각 거주하다가 점차 동쪽으로 이동해왔는데, 기원전 3세기 무렵 장춘 및 농안 방면에 먼저 정착해 있었던 예족이 이어서 이동해온 맥족에게 밀려 남쪽으로 왔다가 고조선에게 쫓겨 요동군(遼東郡)에 예속하게 되었고, 이것이 예군(濊君) 남려(南閭)의 집단이었으며, 이 예의 일부가 맥족에 흡수되어 기원전 2세기경 새로운 종족인 예맥이 성립되었으니 이것이 '고구려족'(高句麗族)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백가쟁명식으로 다양한 견해들이 제기되어 왔다. 현재 학계에서는 예맥이 예와 맥으로 구분되지만, 서로 다른 계통이 아닌 하나의 계통이더라도 다른 갈래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예와 맥은 사회적·정치적으로 서로 구분이 되지만 종족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어원
  • 류렬(1990)은 '濊'가 고문서에서 鐵(쇠)나 東(새)를 뜻하는 옛말 '사라·서러·사·서' 등의 음차자로 쓰인 예를 근거로 들며[30] '예(濊)'가 원래 '설'이나 '해'를 뜻하는 '歲(해 세)' 였으나 중국이 춘추필법에 따라 비하의 뜻이 담긴 '예(濊)'로 바꾸어 썼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맥(貊)'은 성(城)을 뜻하는 고대 한국어 '불'의 음차표기라고 하였다. 즉 예맥(濊貊)을 '동쪽나라', '새 나라'의 뜻으로 해석하였다.[31]
  • 도수희(2005) 역시 예(濊)의 고음이 sʌy이므로, 동(東)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한 철(鐵)의 고음인 soy와도 유사하므로 쇠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고 하였다.[32]
  • 조영광(2015)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예맥족들이 원주지에서 새로운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중국인들과 접촉하자 자신들을 새로운 곳에 정착한 사람, 혹은 새로운 사람이라 불렀던 것에서 유래한 것일 수도 있겠다라는 견해를 제시했다.[33]

3. 예맥(濊貊)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1,000리에 있다. 남쪽은 조선·예맥과, 동쪽은 옥저와, 북쪽은 부여와 접한다.
高句麗在遼東之東千里, 南與朝鮮·濊貊, 東與沃沮, 北與夫餘接.
–《삼국지》<위서> - 동이전- 고구려 편
... '예왕의 도장'이라 하니 나라의 옛성에 예성이 있다. 대개 근본은 예맥의 땅이다. 부여가 그 가운데에서 왕노릇을 하고, ...
–《삼국지》<위서> - 동이전 - 부여 편
동옥저는 고구려의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다. 큰 바다에 임하여 거한다. 그 땅의 형태는 동쪽과 북쪽은 좁고, 서쪽과 남쪽은 길다. 가히 1,000리이다. 북쪽으로 읍루와 부여에 접하고, 남쪽으로 예맥에 접한다.
–《삼국지》<위서> - 동이전 - 옥저 편
실상 예맥이라는 명칭은 고대 사서에서 매우 넓은 범위로 제시되는 일반적인 종족명이다. 예맥족의 범위는 남만주~한반도 중북부에 퍼져 있었다. 위의 - 동이전 -이라는 하나의 사료 내에서도 예맥은 고구려와 동옥저의 남쪽, 즉 한반도 동부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이기도 하며(일반적으로 언급하는 동예) 혹은 부여와 같은 송화강 일대에 있었던 고대 국가와도 연관을 가진다. 또한 고구려가 있었던 때는 이미 고조선이 멸망한 후였는데도 불구하고, 조선이 언급되는 것을 보니 고조선의 유민들이 마한과 변한에 세운 소국을 조선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에서 종족 명칭이 아니라 국가 명칭으로서의 “예맥”은 동예를 지칭하는데, 동예도 예맥족이다. 항목 참고. 한편으로 예맥은 예+맥이라는 주장 역시 존재한다. 이는 아래 항목들을 참고할 것.

《삼국지》<위지> - 동이전 -에 따르면 예족은 호랑이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삼한인들이 곰을 토템으로 했다는 설도 있다.

4. 예(濊): 부여, 옥저, 동예

일단 아래의 모든 항목은 학문적으로 현재 완전히 정립된 관점은 아니다. 는 다양한 형태로 사서에 제시되는데, 동예라고 흔히 한국사 교육과정에서 알려진 영동 지역의 예(濊)가 예족의 대표적인 일파이다.
당나라 가탐(賈耽)은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에 ‘지금 신라 북계인 명주(강릉)는 예(濊)의 고국’이라고 썼다.
또 다른 하나의 예와 관련해서는 [34] 세력을 말한다. 이 '예' 세력은 위만조선의 북부, 한사군 중 현도군 등의 고대 집단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기록에도 등장하지 않다가 전한 세종 무제 시기에 있었던 창해군 복속 사업과 당시의 군주였던 예군 남려와 관련된 기록으로 인해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위만조선과 느슨한 형태의 연맹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이며, 한무제에 의한 별도의 창해군 복속사업은 실패했고, 이후 위만조선 멸망(BC 108) 당시 현도군의 일부로 편입되었다가 고구려 등의 기반 지역으로 바뀌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명확한 구분 기준은 아직 알 수 없다. 위만조선 멸망 이후 기록된 《후한서》와 《삼국지》에 나오는 동예의 역사 파트는 《사기》와 《한서》의 <조선열전>을 복붙해놓았다.

5. 맥(貊): 고조선, 고구려, 백제

東萊大事記曰 顔師古曰 貉在東北方 三韓之屬 皆貉類也 回曰 燕人臧荼之人也 韓信説下之者 燕與遼東接 遼東與三韓接 是時 三韓未有髙麗之名 其箕子朝鮮之國歟 亦秦滅燕 王賁得燕王喜 遼東而有遼東 遼西郡 鄰於貉者歟 中國騎兵少灌嬰追項羽五千騎耳 項羽不得 此梟騎之助 而漢得之其亦㣲盧彭濮之類歟"
《동래대사기》에 이르기를, 안사고는 ‘맥(貉)은 동북 방면에 있으며, 삼한에 속하는 자들은 모두 맥과 같은 종류’라고 하였다.[35] 또 회(回)는 ‘연나라 사람 장도가 소속된 곳이며, 한신이 설득하여 항복한 자들이다. 연나라는 요동과 접하고, 요동은 삼한과 접한다’고 하였다. 이 시기에는 삼한에 고구려라는 이름이 없었고, 아마도 기자조선의 나라였을 것이다. 또한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키고 왕분이 연왕 희를 사로잡아 요동을 차지하였고, 요서군은 맥과 인접하였을 것이다. 중국의 기병은 드물었고, 관영항우를 추격할 때 겨우 5천의 기병을 이끌었다. 항우는 이러한 맹렬한 기병의 지원을 받지 못했으나, 한나라는 그것을 얻었다. 이는 또한 미루와 팽박과 같은 종류일 것이다."
『古今攷』#
이라는 민족에 관해서는 조선시대 실학자들 이후 다양한 가설들이 나왔으나 근래의 가설은 맥을 주로 고구려와 연관지어 이해하고 있다.

동로마 제국에서는 고구려를 맥과 관련하여 '무크리'(Moukri)라고 불렀는데 이는 '맥+고려'라는 의미이다. 돌궐 역시 '맥고려'라는 의미의 '뵈퀼리'(Böküli)라고 고구려를 칭했는데, 고대 튀르크어에서 b와 m의 발음은 통용되므로 정확한 발음은 '뫼퀼리(Möküli)'가 된다.[36]

여호규, 송호정, 김현숙 등의 고대사 사학자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가설은 '예맥'으로 분류되는 지린성랴오닝성 일대의 집단 중에서 기원전 3세기 이후 구별되어 구려, 고구려 등으로 분류되는 집단이 주변의 '예'와 구별되는 '맥'의 정체성을 발현시켰다는 것이다.

맥계는 이와 같이 고구려 건국 및 확장시에 보다 확실하게 대두된다. 물론 고구려 세력이 유일한 맥계 공동체는 아니었고, 고구려 통합 과정에서 대수맥(大水貊), 소수맥(小水貊), 양맥(梁貊) 등이 편입된 것이다. 중원 입장에서는 영 껄끄러운 세력이었기 때문인지, '맥'을 고구려 세력의 비칭으로 사용한 예가 많다. 대표적으로 북송 시대에 고려 사신의 행패를 소식이 비난할 때 비칭으로 '맥적'이라 부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근대 사학자들의 경우, 과거 《맹자》 등의 중국 고서에 나오는 '맥적' 내지 '맥'을 예맥과 연관시켜 왔지만 《맹자》나 《한서》가 저술되던 시대에 이민족의 족보를 따져 가면서 종족 명칭을 기술하지는 않아 역사학계에서는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 대체로 선진시대 문헌의 '맥'은 북방민족의 범칭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37]. 게다가 '맥'이라는 명칭은 예맥 외에도 '호맥, 만맥' 등 매우 많으며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맥'은 이민족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에 가깝다고 인지해야지 아무 맥이나 다 '예맥'에 갖다 붙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현대적 관점이다. 이 “일반적인 이민족을 뜻하는 호칭”으로서 쓰인 것 때문에 위말갈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삼국사》(三國史)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명주(溟州)는 옛날의 예국(穢國)인데 농부가 밭을 갈다가 '예왕의 도장'(濊王之印: 예왕지인)을 발견해 바쳤다.”
춘주(春州)는 예전의 우수주(牛首州)인데 옛날의 맥국(貊國)이다.”
“지금의 삭주(朔州)가 맥국이라고도 하고, 혹은 평양성이 맥국이라고도 하였다.”
《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 -마한- 中.

《삼국유사》의 지역 인식은 이러한 변화를 잘 반영한다. 여기에 나오는 명주는 영동이며, 삭주는 영서 지방을 의미하는데, 현대의 영동 지방은 '예'로 불렸으며 춘천을 중심으로 한 영서 세력과 평양성[38] 등 고구려계 세력을 주로 '맥'으로 칭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공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모습을 보였고, 일찍부터 뛰어난 용모를 지녔으니, 그 기세가 삼한(三韓)을 압도하였고, 그 이름이 양맥(兩貊)[39][40]에 드날렸다.
부여융 묘지명》, 682년

《부여융 묘지명》의 '양맥'은 '두 맥족'이란 뜻으로 백제와 고구려가 예맥을 계승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어느 시점에서는 단순히 예와 맥을 영동/영서로 구분하지 않기도 하며, 이러한 인식은 예맥이 예+맥으로서, 또는 예맥이라는 삼한 일통 이후의 단일민족적 관점에서도 동시에 인지될 수 있음을 드러내는 바이다.

이후에도 맥은 예와 함께 고구려 세력을 의미했다. 고유 풍습과 관련된 말로 '맥궁'(貊弓)이나 '맥적'(貊炙) 등을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맥적한국 요리너비아니와 맥적구이의 기반으로 추측되고 있다. 참고로 백제 기록에서도 '맥'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책계왕낙랑군이 주동이 되어 맥인과 함께 백제에 쳐들어가서 책계왕이 맞서 싸웠으나 전사했다고 한다. 이것 역시 낙랑군이 주동이 되어 고구려계 용병과 함께 백제(한성백제)와 대결했다고 하면 해석이 매우 부드럽다. 백제에서는 숙적 고구려에 대한 멸칭으로 '박적'(狛賊)을 사용했는데, 외관에서 알 수 있듯이, '박(狛) = 맥(貊)'에서 유래했으며, 곰이라는 뜻이었다. 흔히 고구려를 맥족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6. 한(韓): 삼한

예맥(濊貊)은 고대 만주 지방과 한반도 북부에 거주했던 종족명으로, 삼한계 민족들과 함께 한민족(韓民族)의 근간이 되는 민족들 중 하나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동안 예족맥족을 사실상 동질적인 민족들로 보는 견해가 주류였으나 최근의 연구 결과, 이에 관한 다양한 이설들이 제시되고 있다.
"내가 몸소 다니며 약취(略取)해 온 한인(韓人)예인(穢人)들만을 데려다가 무덤을 수호·소제하게 하라."
但取吾躬率所略來韓穢, 令備洒掃言教如此.
광개토대왕릉비』 비문에서.[해설]

'한예'(韓穢)를 '한'과 '예'가 섞인 별도의 집단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한'과 '예'를 연칭한 것으로 봄이 일반적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예'는 동예, 옥저와 같이 고구려 이외의 한반도 북부인을 지칭하는 언급이며, '한'은 당연히 '삼한' 즉 한반도 남부 지역의 제 부족을 지칭하는 것으로 봄이 매우 타당하다.

북쪽의 한민족과 남쪽의 한민족, 즉 예인(穢人)과 한인(韓人)들의 차이에 대해서는 백제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간의 언어 차이를 하나의 단서로 들 수 있다. 《주서》(周書) <이역전>(異域傳) -백제조-에 의하면
"왕의 성은 부여씨(夫餘氏)이고, 이름은 '어라하'(於羅瑕)라 하는데 백성은 '건길지'(鞬吉支)라고 부른다. 이것은 한자어로 왕(王)과 같다. 처는 '어륙'(於陸)이라 하는데 한자로 비(妃)가 된다."
고 하여 부여계 언어와 한계(韓系) 토착 언어와의 차이를 드러내주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지배층 언어와 일반민의 용어 차이로도 해석할 수 있으므로 확실한 근거가 되지는 못하나[42] 동시대 신라 사회나 고구려 사회가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왕을 서로 달리 부른 적이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확실히 '백제만의 특징적인 차이'라고 볼 수도 있으며, 바로 그 점에서 의혹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맥=고구려'라는 관점을 보강해서 설명하자면, 광개토대왕릉비의 저 구절만으로는 고구려가 같은 예맥계인 예족까지 아예 다른 민족으로 인식했다는 근거로 삼기 힘들다. 우선 고구려가 예족을 동질적으로 인식했든, 이질적으로 인식했든, 기존 고구려 영토의 바깥에 거주하다가 잡혀온 예족 계통 속민들을 "약취해온 예인" 외에 달리 뭐라 표현하겠는가. 게다가 애초에 고대에는 같은 민족끼리도 부족별로, 또는 다른 나라들로 나뉘어서 싸우는 경우가 많았기에 서로를 별개의 집단으로 구분하고, 더 나아가 대우를 달리 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유하자면 6.25 전쟁북한이 "약취한 남조선 포로들"을 노역에 동원했다고 해서 이를 근거로 한국과 북한이 서로 다른 민족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그 당시 고구려 또한 전쟁 포로들을 활용했다고 해서 같은 부여계인 예족과 맥족이 서로 아예 다른 별개의 민족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맥인'인 광개토대왕이 수많은 민족들 중에서 굳이 '한인'과 '예인'만을 골라 언급한 점으로 보았을 때, "예, 맥, 한을 고구려 천하관으로 포함해서 생각한 사례가 아니냐"고 해석하기도 한다. 진시황이 당시의 중원 천하관에 해당하는 나라들만 통일 대상으로 삼고, 이와 관련이 없는 이민족 국가[43]고조선은 제외한 것처럼 말이다.

'맥'이 백제를 지칭하는 경우도 많았다.「大周故指節嶲州都督陸府君(仁儉)墓志銘幷序」의 '소제예맥(掃除濊貊)' 및「大唐故騎都尉張君(德)墓志」의 '한맥(韓貊)' 등은 백제를 일컫는 표현으로 예맥 또는 한맥이 쓰였다. 백제 건국세력이 부여와 고구려에서 나왔으며, 마한의 건국세력도 북쪽 예맥조선에서 나온 것에서 연유한다.

애초에 전근대에는 혈통과 언어가 비슷한 같은 민족들을 부족이 서로 다르고 나라가 다르다는 이유로 침략해서 노예로 삼는 경우가 매우 흔했었다. 대표적인 예로 조선 시대 당시 여진족들만 해도 서로 부족별로 나뉘어서 치열하게 싸웠었고, 정복한 타 부족민들을 전부 노예로 만든 경우가 많았었다.

또한 앞서 명기했듯이 예맥이 항시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동등한 존재로서 나타날 필요는 없으며, 이것이 인류유전학적 관점이나 고고학과 반드시 조응할 필요도 없다. 인간의 인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 왜곡되며, 이를 후대에 압축해서 보는 과정에서 이렇게 편향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근대사학이나 현대의 재야사학의 대표적 오류이다.

예맥의 뿌리는 같으나 시대에 따라 예와 맥으로 분류되어 호칭되기도 했으며, 다만 그 기준이 과학적이고 혈통적인 것이 아니라 고구려, 동예/옥저 등 영동계열, 후대 백제 등으로 이주한 북방계 한반도 남부인, 부여인 등이 뒤섞여 나타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7. 표기 문제

이들 세력이나 종족을 '예맥족'이라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표현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문헌상으로 예와 맥은 (濊), (貊)으로만 존재할 뿐 '예족', '맥족'으로 기록된 적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반대로 예맥을 예와 맥이라는 특정 혈연 민족으로 보는 경우, 이들을 '예맥족'이라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헌상에는 羌(강), 氐(저), 凶奴(흉노)라고 나타나는 민족을 강족, 저족, 흉노족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신라본기> 극 초반에 등장하여 충돌하는 영서, 영동의 말갈 세력을 활동 영역과 기록 시기로 보아, 한반도 중남부에서 활동하던 이질적인 예맥 집단으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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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조선 사람들말고도 훗날 부여인, 북부여인, 두막루인이 되는 이들이 만주에 살았다.[2] 훗날 동부여인이 되는 사람들이 연해주 남부에 살았다. 연해주 북부에는 말갈인들의 조상들이 살았다. 다만 말갈인들도 처음에는 예맥인들이었을 것이라는 증거도 있다.[3] 고조선 인구의 다수가 거주했던 지역이며 훗날 고구려통일신라의 패서귀족들이 되는 사람들의 조상들이 살고 있었다.[4] 예맥(濊貊)인들과 한(韓)인들의 언어적 차이는 유의미하게 나지 않았다. 역사에 의하면 순수한 예(濊) 문화권으로 분류되는 부여인과 순수한 맥(貊) 문화권으로 분류되는 고구려인과 순수한 한(韓) 문화권으로 분류되는 신라인들은 서로 통역없이 대화할 수 있었다.[5] 고대 중국인들은 예, 맥, 한을 나누지 않고 하나의 예맥(혹은 해동인) 사람들로 봤고, 고구려인들은 고구려 천하관에 의거하여 예맥까지 분리하여 예(濊), 맥(貊), 한(韓)을 일부러 나누고, 고구려와 백제까지 맥(貊)으로 보고 신라를 한(韓)으로 분류했다면, 신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전부 한으로 봤다. 일부 학자는 본래 한(韓)인도 예맥(濊貊)인에 포함되었으나 삼한(三韓)이 건국된 이후 후천적으로 분리 분류되었다고 주장한다.[6] 예맥인들은 고조선 건국 이전부터 존재하던 원주민들이다. 빠르게 잡으면 신석기시대부터 늦게 잡아도 청동기 시대에는 이미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 자리잡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리아인들에 의하여 정복당한 드라비다인처럼 외부에 정복당한게 아닌 이상 원주민들이 나라를 세웠을 것이다.[7] 중국 역사책인 위서(魏書)에 의하면 조선 건국연도는 기원전 2357년이며, 현대의 역사가들은 기원전 10세기에서 기원전 8세기단군 조선의 건국시기로 잡고 있다.[8] 유전학적으로 동아시아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EDAR V370A 유전자가 동북아시아에 출현된 시점은 약 35,0000년 전으로 추정되며, 약 3,500년 전에는 확실하게 한반도 인들의 주류 유전자가 되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즉 단군신화가 사실이 아니더라도 늦어도 3천년 전부터 한민족의 조상님들은 다른 유전집단없이 만주 ~ 한반도에서 살고 계셨던 셈이다. 유전학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게 3000년 전이라는 소리이므로 3만 년 전부터 살아온 토착인일지도 모르는 일이다.[9]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한반도에 정착한 시점을 약 4만 ~ 5만 년 전 쯤으로 보기 때문에 어쩌면 원시인을 제외하면 정말로 예맥인들이 한반도 최초의 선원주민 집단일 수도 있다.[10] 예맥인들은 예외없이 EDAR V370A 유전자 집단이었다. 해당 유전자는 화북, 만주, 한반도, 일본 등에서 주류이다.[11] 현대 한국어한국 표준어는 패서귀족의 지역방언(평안 ~ 황해 ~ 경기 방언)에서 유래했으므로 고구려 맥어가 원류이다. 그리고 그 고구려어의 원류가 고조선어이며 그 고조선어가 예맥어이다.[12] 삼한일통으로 남북국시대가 개막하여 예맥인이란 명칭이 사어가 되고 해동/청구/신라로 불리다가 고려(Korea)인으로 재정립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민족의 영역을 상실했다. 고려 중후기 때는 민족의 최고(最古) 도시였던 평양조차도 순수한 한민족권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었을 정도로 민족적인 위기를 겪고 있었다. 몽골족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서북에서 몰아 붙이던 거란을 멸족시키고 동북에서 영역을 야금야금 먹으며 들어오던 여진 쥐어 패서 분열시키지 않았다면 현재 한민족의 영역은 황해도 이남 뿐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13] 통일되기 전이었으므로 나라가 달랐다.[14] 부여는 특히 예(濊)인으로 분류된다.[15] 하지만 현대 분류에 따르면 백제는 문화적으로는 맥(貊) + 한(韓)으로 분류된다.[16] 아이러니 한 사실은 부여고구려의 후예인 백제와 경쟁했던 침미다례신라처럼 고조선 유민들이 남하에 세운 도시국가들의 연합체였다.[17] 단군 조선이 존재할 때, 부여이 존재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위만조선 때는 부여삼한이 조선과 별개로 확고하게 존재했다는 것이 현대 학계의 주류이다.[18] 고구려. 백제, 신라는 공통적으로 환웅단군을 조상으로 인식했다. 현재의 단군신화해모수 신화로 현재까지 이어진다.[19] 두막루를 제외한 부여, 동예, 옥저를 완벽히 고구려령으로 합류시켰다.[20] 예맥(濊貊)족'이라는 하나의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설과, '예(濊)족'과 '맥(貊)족' 두 민족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는 설이 있다. 만약 후자의 설을 지지할 경우에도 고구려가 예맥갈래를 하나로 통합시킨 것은 맞다. 참고[21] 통일신라 시기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를 삼한(三韓)으로 보는 시각이 보편화되었다. 이는 신라가 멸망한 후에도 이여진다. 이는 훗날 단군조선의 후계자를 삼한으로 묶는 삼한정통론으로 이어진다. 삼한정통론은 한(韓)을 예맥(濊貊)의 정통 후예로 만들어 예맥(濊貊)계와 한(韓)계의 정치적 구분을 완벽히 상쇄한다.[22] 특히 거란족은 집요하게 한민족을 만주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다. 발해를 '형제 국가'로 보던 태조 왕건이 괜히 요나라를 원수의 나라 취급하고 거란족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긴게 아니다. 고려사에서는 요나라의 강제 동화와 학살을 피해 고려로 넘어온 인구 수를 수 만 호에 달한다고 기록했는데, 평양처럼 영토 째로 넘어온 자들을 포함하여 학계 추정으로 20만 명 이상으로 추정한다. 발해 인구수(예맥계 + 말갈계) 전체가 300만 명으로 추산되니 인구의 약 10분의 1이 도망처온 셈이다. 말갈계를 제외하면 에맥계는 제노사이드 수준으로 줄여나간 셈이다.[23] 당나라같은 경우에는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에 고구려인들을 대량으로 이주시키려고 했다. 성공하지 못해서 발해가 세워졌지만 결국 발해가 단일민족국가로 유지되는데는 애로사항이 생기게 되었고, 그래도 대화는 가능했던 예맥족에 대한 제노사이드 처분은 대화에는 관심없던 몽골계퉁구스계의 강화로 이어져 결국 한족에게는 업보로 돌아온다.[24] 무속 신앙 등은 예(濊)의 문화였고, 온돌문화는 맥(貊)의 문화였으며, 연 2회 제사(설날, 추석)와 벼농사 문화는 한(韓)의 문화였다. 우리는 그들 모두의 문화를 받은 셈 참고로 한족퉁구스족도 예맥(濊貊)족의 중요한 문화인 온돌문화는 못 가져갔다.[25] 그러나 거란족의 제노사이드에도 불구하고, 발해 멸망 이후에도 예맥계 자체는 만주에 한동안 남아있었다. 발해부흥운동도 꽤 오랜 시간동안 지속되었으며, 몽골족원나라는 만주 내의 예맥계 인구수를 확인하고 고려 왕족을 심왕에 임명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들었다. 심지어 광해군 시기에 만주에 예맥계 인구가 확인된 사례도 있었다. 심지어 조선어와 말이 통하는 방언을 하는 인구가 귀순을 요청하는 사레도 있었다. 그래서 만주에 토착 예맥계가 완전히 소멸한 것은 청나라 건국 이후로 추정된다.[26] 부여는 기록이 부족하지만 특히 예(濊)족의 원류로 여겨지며, 단군 조선과의 문화적인 동질성을 보일 뿐만 아니라 고조선이 한나라에게 멸망(기원전 108년)했을 때, 유민들을 받아들이기도 했다.[27] 고구려를 세운 집단의 인구 대다수는 고조선 유민들로 추정되면서도 시조왕인 고주몽은 부여계로 추정된다. 특히 졸본부여로 불리던 이들이 중심이 되어서 건국되었던 바, 부여와의 연관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28] 고조선의 중심지었던 평양 일대를 수복하여 옛 고조선인들을 포용하고 심지어 이곳으로 천도해 의심할 여지없는 맥계 국가임을 증명했다.[29] 괜히 거란과 여진이 야만인 취급받은게 아니다. 후금이 세워지기 전까지 농기구와 가구조차도 수입하거나 약탈해서 썼다.[30] 류렬, 1990, 《옛날의 겨레, 나라, 수도의 이름을 통하여 본 우리 민족의 단일성》 어문연구 67 : 세종실록(世宗實錄)( 地理志 江陵條)에 보이는 “本濊之古國或稱鐵國”이라는 기록과 같은 책 철원조(鐵原條)에 “太祖卽位, 徙都松嶽, 改鐵圓爲東州”라는 기록에서 근거한 것이다. 즉 강릉을 의미하는 예가 철(쇠)로 발음이 새겨졌으므로 예와 쇠는 통하는 것이고, 철원이 동주로 개명된 것은 철(鐵)의 훈 쇠(새)가 동(東)의 고훈(古訓) 새(쇠)와 같다는 것이다.[31] 류렬(1990)은 고구려와 백제의 수도 졸본(卒本), 소부리(所夫里)도 같은 의미로 보았다.[32] 도수희,《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앤씨, 104~105쪽, 2005.[33] 조영광, 《예맥 족명과 부여, 고구려 국호의 유래와 의미》, 한국고대학회, 2015 : 예족이 유사 이래로 지속적 이동을 한 것은 여러 사료를 통해 확인된다. 삼국지(三國志) 동이전 부여조에는 부여인들이 스스로를 (새로운 곳으로 온) 망인이라 불렀다고 하고 있으며, 예군 남려의 투항, 주몽과 유리로 대표되는 부여계 세력의 고구려로의 이주, 부여 멸망 후 북으로 이주해서 세운 두막루국 등이 예족 이동의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한반도 중남부에서 북만주까지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는 예족 관련 지명(족명) 또한 활발한 예족 이주의 증거로 볼 수 있겠다.[34] 穢, 《동사강목》 등에서는 濊로 혼용하여 기재. 穢라는 한자에 '더럽다'는 의미가 있어 이를 피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이기도 하며, 정확하게 ‘종족 이름’이라는 훈만 가진 한자는 濊라서 그런 듯 하다.[35] 혹은 '삼한은 맥족의 일파다'.[36] 항간에는 맥고려가 말갈을 의미하거나 발해를 칭한다고도 주장하지만 동로마와 돌궐에서의 기록이 7~8세기에 쓰여졌다는 점에서 발해 건국 시기나 말갈족의 등장 시기를 고려했을 때 현실성이 떨어진다.[37] 대표적으로 '동이'라는 명칭은 현대의 우리가 보기에는 한반도 고대 국가와 연관되지만, 《맹자》 이전의 선진시대 문헌 중에서는 중국 산동 지방의 '내이' 세력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이러한 명칭의 혼용은 고대 중국에서 흔히 발견되는 사례이다.[38] 왜 평양성을 놔두고 영서를 고구려 취급하냐고 할 수 있는데 평양성은 삼국통일 이후에는 전쟁피해로 인한 황폐화와 국경지대라는 문제 때문에 남북국시대에 이르러 영향력을 잃었다. 통일신라시대 당시 신라에 남은 고구려 유민들의 중심지는 평양이 아닌 영서와 패서지역, 한반도 중부 일대로 보아야 하며, 이는 후고구려 세력의 중심이 단순히 평양 등 서북한 지역이 아닌 주로 철원 등 영서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39] '두 개의 맥족'이라는 뜻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의미함[40] 반론 주체가 백제인데 백제를 언급할리가 없음. 양맥은 고구려신라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음. 애초에 고구려가 맥인지 한인지 구분 안하고 삼한으로 통칭해버리는 것을 보면 삼국을 그저 동족으로 여겼고 맥과 한을 동의어로 여겼을 수도 있음.[해설] 예맥(濊貊)을 하나의 종족을 보든, 두 개의 분리체로 보든 예맥은 같다고 기록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한인(韓人)을 예인(濊人)과 동일 취급하며 고구려의 천하관 안에 두고 있음은 신라의 동족의식은 신라의 것만이 아니었음을 뒷받침해준다.[42] 실제 조선 시대만 보더라도 사대부들은 '주상' 혹은 '전하'라고 부르고 일반 평민, 백성들은 '나랏님'이나 '임금님', 또는 '상감마마'와 같이 서로 다르게 부른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43] 초나라처럼 문화적으로 동화된 국가는 제외할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