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2 18:26:50

장무(동진)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유화 · 유선, 유총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석홍 · 장빈, 석계룡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배억 · 고첨, 모용황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왕타, 부견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1. 개요2. 생애3. 일화

1. 개요

張茂
(? ~ 322)

동진의 인물. 자는 위강(偉康).

2. 생애

젊어서부터 고독하고 빈곤한 생활을 하였으나, 포부가 있고 행실이 올곧아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초공 진민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장무는 의병을 일으켜 진민의 동생 진빈(陳斌)을 토벌하고 군(郡) 전체를 온전히 지키니, 낭야왕 사마예가 그를 징소해 연속(掾屬)으로 삼았다.

낭야왕 사마예가 지시를 내려, 늙어서 쓸모없어진 국가 소유의 소 30마리를 가져다 팔려 하자, 장무가 간했다.
"소를 잡을 때 지켜야 하는 금기가 있으므로, 이것들을 사는 자는 함부로 도살할 수도 없습니다. 또, 이 소들은 노쇠하여 농사를 짓거나 수레를 끌 수도 없으니, 이는 백성들에게 쓸모없는 물건을 팔아 이득을 챙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사마예는 소를 파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후 장무는 승진하여 태자좌위솔, 오흥내사를 역임했다.

영창 원년(322년) 3월, 대장군 왕돈이 무창(武昌)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그 심복인 심충이 호응해 오흥(吳興)에서 거병했다. 이때 심충은 장무와 그의 세 아들들을 전부 살해했다. 주찰(周札) 휘하에서 부장을 지내고 있던 장무의 동생 장앙(張盎)도 심충의 공격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이에 동진 조정은 장무를 태복(太僕)으로 추증해주었다.

3. 일화

  • 장무는 젊었을 적에 거대한 코끼리가 나오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장무가 점쟁이 만추(萬推)를 찾아가 그 꿈의 해몽을 부탁하자, 만추가 말했다.
    "그대는 마땅히 대군(大郡)을 다스리게 될 것이나, 이로 인해 좋지 못한 일을 당하게 될 것이오."

    장무가 어째서 그러느냐고 다시 물으니, 만추가 다시 말했다.
    "코끼리는 거대한 짐승이고, 짐승은 곧 지역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하니, 이에 따라 그대가 대군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 하였소. 하지만 코끼리는 그 상아 때문에 결국 인간에게 사냥당하고 목숨을 잃는다오."

    과연 점쟁이의 말처럼 훗날 장무는 왕돈의 난에 휩쓸려 일족이 살해당하는 참사를 당하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