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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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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형 및 어원3. 특징과 관점
3.1. 원리3.2. 종류
4. 관련 글귀
4.1. 문학
4.1.1. 대사4.1.2. 가사4.1.3. 문학가4.1.4. 정치가4.1.5. 속담
4.2. 종교4.3. 철학
5. 창작물에서
5.1. 사랑을 개성 있게 표현한 작품들
6. 관련 문서

1. 개요

사랑 또는 애정은 다른 사람[1]을 진심으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자신의 모든 걸 내어 줄 수 있는 감정, 또는 그런 관계나 사람을 뜻하는 단어이다.

2. 어형 및 어원

<colbgcolor=#f5f5f5,#2d2f34> 언어별 명칭
한국어 사랑, 애정()
ᄉᆞ랑(sawrang)(제주 방언)
러시아어 любо́вь(ljubóvʹ)
독일어 Liebe(리베), Zuneigung, Minne
라틴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amor(아모르)
마인어 cinta, sayang, suka(수카)[2](인도네시아)
아랍어 حُبّ(ḥubb), مَحَبَّة(maḥabba), عِشْق(ʕišq)
영어 love(러브)
이탈리아어 amore(아모레)
일본어 [ruby(愛, ruby=あい)](ai, 아이), [ruby(愛情, ruby=あいじょう)](aijō), [ruby(愛好, ruby=あいこう)](aikō, 아이코)
중국어 /爱(ài, 아이), 愛/爱情(àiqíng)
프랑스어 amour(아모르)
힌디어 प्यार(pyār), प्रेम(prem), सम्मोह(sammoh), स्नेह(sneh), अनुराग(anurāg), प्रीति (prīti), इष्ट(iṣṭ), मोह(moh)
مُحَبَّت(muhabbat), عِشْق('iśq), پْیار(pyār), پْریم(prem)

한국어에서 사랑을 나타내는 표현으로는 현대에까지 쓰이는 '사랑하다' 말고도 옛말인 '괴다'[3], 'ᄃᆞᆺ다'[4], '얼우다'[5] 등이 존재한다. 한자로는 (), ()이 사랑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한문에서 戀는 주로 연애 관계에서의 사랑, 愛는 그것보다 좀 더 포괄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정)의 경우 愛(애)나 戀(연)보다 의미가 매우 포괄적이며 사랑이라는 단어로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일본어의 경우 愛(あい)와 恋(こい)[6]의 두 가지로 나뉜다.

15세기 중세 한국어 문헌에서는 'ᄉᆞ라ᇰ'의 형태로 문증되며, 근대 이후 아래아의 음가가 소멸하면서 현재의 '사랑'으로 변화했다. 그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으나,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뜻의 한자어 '사량()'[7]에서 온 것으로 여기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한국 최초 향가 해독자인 양주동 박사가 이 어원을 처음으로 주장했다.
思ᄂᆞᆫ ᄉᆞ라ᇰᄒᆞᆯ씨라
(생각할 사)는 사랑하는 것이다.
월인석보(1459)》 1권
如是惟、澄寂名空、搖動名塵。
이ᄀᆞ티 ᄉᆞ라ᇰ컨댄 ᄆᆞᆯᄀᆞ며 괴외호ᄆᆞᆫ 일후미 空이오 搖動ᄒᆞᄂᆞᆫ 거슨 일후미 드트리니
이같이 생각건댄, 맑으며 고요한 것은 이름이 공(空)이요, 요동치는 것은 이름이 티끌이니.
능엄경언해(1464)》 1권
動一兩次時、便思量飯喫。
ᄒᆞᆫ두 번 동ᄒᆞ면 곧 밥 먹고져 ᄒᆞ야 ᄉᆞ라ᇰᄒᆞ리라.
한두 번 동하면 곧 밥 먹고자 하여 생각하리라.
번역노걸대(~1517)》 상권
[ 학술 자료 펼치기 · 접기 ]
>ᄉᆞ랑'은 '사량(思量)'에서 형성된 말로, '생각'이란 뜻으로 쓰인 말이다. 곧, 온갖 '생각'에서 '애정(愛情)에 관한 생각'만을 'ᄉᆞ랑'이라 하게 되었는데, 이 일반적과 부분적인 쓰임은 15세기에 함께 나타나고 있다.

유창돈, 《어휘사연구(1971)》 p197

위의 (14ㄱ~ㅍ)의 자료에는 '사랑하다'의 의미와 대응되는 한자어가 다음의 (15ㄱ~ㅂ)과 같이 모두 여섯 가지로 기술되어 있다.
(15) ㄱ. 思懷 ㄴ. 念 ㄷ. 思 ㄹ. 思惟 ㅁ. 戀 ㅂ. 思量
한한사전(漢韓辭典)들에 의하면 위의 (15ㄱ, ㄷ, ㄹ, ㅂ)에서의 '思(사)'는 '생각하다,' (15ㄱ)의 '懷(회)'는 '생각하다/품다,' (15ㄴ)의 '念(염)'은 '생각하다/외우다,' (15ㄹ)의 '惟(유)'는 '생각하다/꾀하다,' (15ㅁ)의 '戀(연)'은 '생각하다/그리워하다,' 그리고 (15ㅂ)의 '量(양)'은 '생각하다/헤아리다'의 뜻이다. 따라서 (15ㄱ~ㅂ)에 나타나 있는 '사랑하다'의 공통적인 기본 의미는 한마디로 '생각하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특히 앞의 (14ㅋ)에서 '사랑하다'의 어원으로 추정되는 '사량(思量)하다'의 의미는, 그것을 직역하면 '헤아려 생각하다'이고 의역하면 '깊이 생각하다'라고 할 수 있다.
노대규, 〈사랑하다의 의미 분석(2002)〉

중세국어의 'ᄉᆞ라ᇰ'은 '思量'에서 온 말로 '생각'이란 의미로 쓰이다가 15세기 중반부터 '愛'의 의미를 겸하더니 16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愛'의 의미만을 가지게 되었다.
조규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2010)〉 제3장 '어휘의 역사'

위의 자료들을 통해서 알 수 있듯, 조선 전기에 'ᄉᆞ라ᇰ'은 분명 현대의 '사랑[愛]'과 같은 의미로도 쓰였지만 '생각[思]'한다는 뜻으로 더 널리 사용되었다. # 실제로 한문과 언해문이 공존하는 중세 한국어 사료에서는 언해 부분의 'ᄉᆞ라ᇰ'이 (생각할 사), (생각할 념), 思(생각할 유), 思(품을 회)[8] 등의 한자와 대응되는 경우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9] 그 중 번역노걸대에서는 백화문으로 된 원문에서부터 思量이라는 어휘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한자어 '사량'과 한글 표기 'ᄉᆞ라ᇰ'이 일대일 대응 관계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또한 당시 '思量'의 한자음은 'ᄉᆞ랴ᇰ'으로, 'ᄉᆞ라ᇰ'과는 반모음 하나의 유무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으며 음운 변화의 결과로 파악 가능한 범주 내에 있다고 볼 수 있다.[10] 위와 같은 요소들을 고려할 때, '사랑'은 본디 '생각'의 뜻으로 쓰였다가 15세기 중반부터 점차 '애정'의 의미를 겸하였고, 16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현재까지 쓰이는 '애정'의 의미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언어의 변천 과정에서 의미 변용은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며[11], 당나라 때의 《돈황곡자사집》을 비롯한 한문 서적에서도 이미 '사량(思量)'이 '님을 그리워하며 생각하다'와 같은 낭만적인 맥락에서 사용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사랑의 어원을 '살다[生]' 또는 '사르다[燒]'와 연관 짓기도 한다. 그러나 '살다'의 경우 중세 국어 시기부터 '살다'였으므로 아래아로 시작했던 사랑과 모음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다. '사르다'는 'ᄉᆞᆯ다'였던지라 모음이 일치하긴 하지만, '불사르다'와 '사랑하다'는 의미가 완전히 다를뿐더러 거성이었던 'ᄉᆞᆯ다'와 평성이었던 'ᄉᆞ라ᇰ'은 성조의 차이도 있다. 반면 한자 사(思)와 량(量)은 둘 다 평성이었으므로 'ᄉᆞ라ᇰ'의 성조와 부합한다.[12] 따라서 현재로서는 한자어 사량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타당하게 받아들여진다.

중세 한국어의 '사랑'은 과거의 모습을 추억하기보다는, 아직 모르는 상태의 어떤 지식에 접근하고자 추론하거나 미래에 만날 누군가의 모습 등을 예상해 본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추억'의 의미로 사용된 어휘는 '생각하다'였다. 즉, 중세 한국어에서 '사랑하다'는 선험적이고, '생각하다'는 후험적이었다.

아학편에서는 영어 단어 love(러브)ㆁㅡㄹ노ᅄᅳ라고 적었다.

3. 특징과 관점

상대적으로 단순 명백한 감정인 희노애락과는 달리 도저히 그 정의를 내릴 수가 없는 오묘한 감정. '슬픈 연민', '아낌', '무엇이든 줄 수 있는 것' 등 사랑을 정의하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으나 어느 것도 딱 들어맞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 감정은 인류의 예술의 많은 부분을 지배해 왔으며, 주로 노래로 승화되는 편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완벽이나 단정보다는 배워가야 한다는 표현이 어울린다.[13] 자신이 사랑에 완벽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교만이거나 사랑에 단정을 지어 틀에 가두어버린다. 하지만 자신만의 마음에 닿는 사랑이라면 사랑하는 방법이다.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며 각자의 행복이 있듯이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랑을 강요하기도 하고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특징에는 지금 내가 사랑하는 마음과 감정을 타인도 내 마음과 같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지금 이 마음과 감정에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기도 하며 이것을 뒷받침하여 예시처럼 가르쳐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 사랑 안에 수많은 감정과 마음으로 자신이나 아니면 대상에게 원하는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나 주고 싶어 하는 것은 할 수 있다. 또한 사랑을 마음과 감정을 뒷받침해 설명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랑은 수많은 마음과 감정이 존재하기에 사랑이라는 뜻에 완벽이나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또한 사랑은 몸과 마음과 감정이 건강한 쪽으로 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쪽으로 갈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류의 감정 중 가장 흔하지만 복잡 미묘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누군가에게 이 감정을 가진다는 것 자체만으로, 그 대상을 좋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게 하며, 반대로 그 대상이 떠나갈 때에는 기분이 매우 슬프게 된다. 이 감정이 지나쳐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면 사람을 망치기도 한다. 이로서 사랑이라는 것은 한 사람을 웃고 울리는 묘한 힘을 갖고 있다. 또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대상을 향해 느끼는 감정에 취해 스스로를 사랑이 많은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경향성이 있다. 그렇기에 사랑이 많은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지 말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는 게 바람직하다.

또한, 희로애락과의 융합이 가능한 특이점이 있으며, 사랑에서 희로애락이 파생되고, 희로애락에서 사랑이 파생이 가능하기에 인간의 감정 중 가장 복잡한 감정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미움(증오)과는 정반대인 듯하면서도 동전의 양면과 같은 모습을 갖고 있어서 사랑에서 미움이 파생되는 경우도 많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14] 반대의 경우 미운 정이라고도 하며, 아이러니하게도 情(정) 중에서 가장 오래가는 정이라는 설도 있다.

기독교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 중 사랑을 제일로 친다.[15] 서양에서는 사랑 관련 문구로 성경의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3장 4~7절이 많이 인용된다고 한다.[16][17] 또한 이것은 교리/전통/신앙을 넘어서서 신의 속성이기 때문인지 구원과 직결된다.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사랑도 밥과 같은 것이라 계속 충족되지 못하면 결핍으로 인한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부모님의 사랑, 친구들과의 우정, 연인 간의 사랑을 많이 할수록 좋은 밥을 많이 먹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고. 그 근거로 상당수의 흉악범들이 어린 시절 부모나 이웃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현실의 사랑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 홀로 지내는 사람이나, 오덕인 상태라면 현실에 없는 존재를 사랑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증오와 더불어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매우 크게 끼치는 감정 중 하나이다. 감정의 크기가 매우 매우 거대하기 때문에 한번 제대로 사랑에 빠져버리면 이성을 마비시켜 버리고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사랑 때문에 온갖 구질구질한 모습 다 보여가면서 매달리거나,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을 비롯한 범죄까지 일어난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18][19]

3.1. 원리

여타할 다른 감정(기쁨, 슬픔, 분노)에 비해서 육체적으로 나타나는 증거들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사랑을 느낄 때 호르몬 활동이 매우 강해진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뇌에서 여러 화학 물질들이 분비되는데 페로몬,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등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껴안거나 단순히 애인의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체내에서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두통에 대한 진통제 역할을 한다.

생화학적으로는 뇌 변연계에서 분비하는 페닐에틸아민[20]이 작용하는 현상인데, 이건 각성제인 천연 암페타민의 일종이다. 페닐에틸아민이 1착이라서 그렇지 다른 호르몬들도 작용하는데, 그 호르몬이란 게 아드레날린, 도파민, 엔돌핀, 옥시토신, 세로토닌 같은 호르몬들로 각성제에 사용되곤 하는 물질들이다. "사랑은 마약이다"는 표현이 사실 마약이 사랑을 흉내 낸 것이니 반대가 된 셈이다.

다만 이 페닐에틸아민의 분비는 유통 기한이 있어서, 일반적으로 2년을 넘기지 못한다. 이것도 개인차가 있어서, 상당수는 3개월이면 끝이고 좀 길게 가는 경우는 3년까지 간다. 둘이 동시에 불꽃이 튀었다가 한 사람은 3개월에 끝나고, 다른 한 사람은 2년, 3년을 가면 그때부터 비극이 생기는 것. 그 기간이 지나면 약물에 쩔어있던(?) 뇌가 다시 정신줄을 잡게 된다는 이야기다. 콩깍지 OFF 링크. 이때부터 사랑은 화학의 단계는 끝나고 사회학의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다소 낙관적이지만) 이 2년 반의 기간이 상대와의 유대, 친밀감을 쌓고 다지기 위해 있는 것이며, 이때를 잘 지낸 커플은 잉꼬 커플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커플은 호르몬의 약발이 떨어지고 나면 들뜬 상태에서 한순간에 가라앉아 권태기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때 페닐에틸아민의 분비가 줄어들지만,[21] 옥시토신이 활발하게 분비되면서, 서로에게 편안함을 가지게 된다. 링크

하지만 이 페닐에틸아민을 평생 분비하는 부부도 꽤나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결국은 천생연분을 찾으란 소리다(...). 근데 이 경우도 평생 같은 농도로 쭉 분비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다른 커플들처럼 분비되는 시기와 분비가 사그러드는 시기가 반복적으로 온다. 근데 이 패턴의 주기가 두 사람이 비슷해서 평생 죽이 잘 맞는 것.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잠깐씩 권태기가 왔다가 다시 서로에게 반해서 빠져드는 것이다. 반대로 깨지는 커플들은 아직 한쪽이 분비기인데 반대편이 휴지기에 접어들어 분비기인 쪽이 상대의 사랑이 식었다고 여기거나, 휴지기에 접어든 쪽이 상대방이 집착한다고 여겨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남자와 여자가 사귀고 깨지는 주 패턴인 "한쪽이 고백 - 사귐 - 고백했던 쪽이 상대가 집착한다고 느낌 - 소원해짐 - 헤어짐"의 패턴은, 먼저 호감을 느낀 쪽이 분비기가 일찍 시작되었으므로 더 빨리 휴지기에 접어들고, 그 시점에 뒤늦게 분비기의 절정을 달리던 상대 쪽의 행동을 집착으로 여겨버리는 것일 수 있다.

다만 그렇다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단순한 호르몬 변화로만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과학적으로 사랑을 느낄 때 어떤 호르몬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밝혀졌다 하더라도 언제 그런 변화가 "왜" 일어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밝히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과학적으로 그것들을 밝혀낼 수 없는 이유가 '사랑'이라는 것은 정의되지 않았지만 모순적이게도 모두가 알고 있는 즉, 과학과는 정반대편에 있는 그런 추상적인 감정[22]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사랑에 대한 다양한 연구 결과들에서 사랑을 느낄 때 어떠한 호르몬이 분비되고 뇌에서 어떠한 반응들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피실험자가 실험 당시 느낀 감정이 정말 '사랑'이었는지, 아니 정말 '사랑'이란 '왜'라는 질문으로 가기 전 무엇인지 역시 알 수 없을뿐더러 피실험자의 부인이나 애인 등 사랑하고 있을 것이라 추정되는 인물들의 사진을 보여줬을 때와 부인과 애인이 아닌 포르노에 관련된 사진을 보여줬을 때의 호르몬과 뇌의 변화가 아주 유사했다는, 혹은 피실험자 스스로가 결코 사랑이라고는 정의하지 않는 스카이다이빙을 할 때 페닐에틸아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한 최근에는 막 사랑에 빠진 커플의 뇌와 오랜 기간 결혼 생활을 한 부부의 뇌 사이에는 별반 큰 차이가 없었다는 연구 결과 역시 나오기도 했다.

즉, 사랑에 대한 호르몬 연구결과들 역시 많은 사람들 자신이 사랑을 느낀다고 정의하는 순간 뇌와 호르몬 변화에 있어서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 것이 페닐에틸아민, 페로몬, 도파민과 같은 물질들이었다는 것이지 절대 페닐에틸아민이 곧 사랑이다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며 그 어떤 것도 사랑과 같다고 하기에는 사랑 자체가 아주 추상적인 것이고 개인적인 것이다.[23]

사랑 연구에 대한 한 일화로 1975년 3월에 미국 상원 의원이자 과학계에서 반(反)과학적인 정치인으로 이름이 알려진 윌리엄 프록스마이어(W. Proxmire)는 사랑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엘렌 버샤이드(E. Berscheid)와 일레인 하트필드(E. Hatfield)에게 일명 세금 도둑상, 밑 빠진 독상으로 불리는 황금 양털[24]을 수여하면서 "2억 명 미국인들이 수수께끼로 남겨놓고 싶어 하는 것 중에서 으뜸은 어떻게 해서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지 하는 문제일 것"이라고 혹평했다. 다만 이후로도 두 사람의 연구는 이런 논란에도 굴하지 않은 채 계속 진행되었고, 이후로도 그 둘로 인해 시작된 사랑에 대한 연구는 여러 연구자와 과학계에서 계속 연구하게 되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결국 프록스마이어는 사랑의 법칙을 알고 싶지 않으려 했다는 사적이면서도 너무 보수적이었던 감정으로 그런 상을 그 둘에게 수여했다고 비판받게 되었다.[25]

3.2. 종류

쉽게는 사랑은 크게 알고 있는 사랑과 알게 되는 사랑으로 나눠볼 수 있다. 전자는 가족애, 동료애, 박애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후자는 성애로 대표되며 급격히 찾아오는 편이나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찾아오는 것도 많으니 주의할 것.
  • 물애(物愛):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 음식, 물건 등 유적인 형태가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 동물을 사랑하는 것도 물애에 속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물애라고 보기는 좀 애매모호하다.
  • 성애: 가장 대중적이고 복잡한 사랑. 많은 미디어와 작품에 걸쳐 제일 많이 다루어지며, 많은 이들이 갈구하는 사랑 중 하나이다. 번식을 하고 가족을 꾸리고 동반자, 부모, 또는 긴밀하게 교감할 수 있는 분신적인 사랑 등 큰 사랑을 향해 거쳐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차세대 사회 구성원의 재생산의 기반이 되는 결혼 및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서인지, 각종 창작물에서는 유난히 달콤하고 특별하게 묘사된다. 어찌 보면 무수한 가짓수의 토대가 되는 가장 보편적인 사랑이다. 누구나 할 수 있고, 언제든 빠질 수 있다. 사랑은 성관계를 완곡히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성적인 욕구가 따르는 것은 아니다. 단 이 경우는 성애보다는 아래의 연애가 옳은 표현이다. 또한 성욕과 사랑은 다르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연애/우애/우정: 주로 이성 간에 맺어지는 사랑 또는 친구를 사랑하는 성격에 속한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이성적인 사고방식, 개인적인 절제심과 배려하는 마음이 함께 있어야 가능한 사랑의 종류로 사랑의 개념들 중 가장 지성적인 사랑에 포함된다.
  • 부성애/모성애: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은 부모님의 사랑이라고도 한다. 특히 이 사상은 유교와 결합되어 이에 대해 보답하는 효(孝) 사상으로 발전되었다. 부모님의 사랑은 알면서도 당연시하기 때문에 대개 평소에는 무시하다가 부모님이 떠나신 뒤에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평소에 잘 모시자. 하지만 요즘에는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부정적 견해 또한 존재한다. 잘못된 방향의 과한 자식 사랑은 자식을 망치는 지름길이며, 이를 통해 무개념한 사람들이 양산되는 경우도 흔하다. 대표적으로 한국 교육계의 문제나 외자녀 정책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중국의 무개념 젊은이 문제. 부모에게 있어서도 자신을 버리고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서 부모님의 사랑이 가장 큰 이유는 이성 간의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올 수 있지만 부모님의 사랑은 우리가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맞을 수도 있다. 다만 이것도 막장 부모라는 예외가 존재한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 박애/인류애: 감정을 초월해서 아낌없이 베풀 수 있는 것, 이러한 사랑은 시대와 장소와 국가를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심지어는 종교로 승화되기도 했다.[26] 대표적으로는 손양원, 알베르트 슈바이처, 존 피터 알트겔드 등이 있다. 휴머니즘과도 통한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지구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성인은 아니기에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의 사랑은 아니다. 그러나 잊을 만하면 간간이 등장하여 사람들에게 훈훈함과 희망을 가져다 주곤 한다.

플라톤이 정의한 사랑의 단계이자 종류는 총 4가지로 육체적 사랑(Eros)[27], 도덕적 사랑(Philia), 정신적(신앙적) 사랑(Stergethron),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무조건적인 사랑(Agape)이다.[28] 플라톤의 주장을 따르자면 사랑은 육체적인 사랑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서서히 발전해 간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에는 남녀 간의 사랑보다 남자 간의 사랑을 더 숭고하게 보았는데, 남자 간의 사랑은 육체적 단계를 건너뛰고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기독교적 윤리관에 입각한 근대 서양 학자들의 주장으로, 실제로 고대 그리스의 유적에서 발굴되는 암포라 등에는 동성 간의 육체적인 사랑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것들도 있으니 꼭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거기에 '사랑(에로스)'에 대해 논의한 플라톤의 향연 같은 작품에서도 남자끼리의 성관계를 암시하는 구절이 있으며 그다지 부정적으로 보지도 않는다. 그리스인들이 남자들끼리의 사랑을 더 고귀하게 여긴 이유는 그 당시에는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는 '이성'을 남성만이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여자를 제대로 된 사람 취급도 해주지 않는 심각한 성차별적인 사회였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

예수가 제자인 베드로에게 자신을 사랑하는지를 세 번을 물어보았는데 이는 각각 도덕적, 정신적,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후세에 한글 번역 중 이것이 무조건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번역되어 일부 사람들이 오해하였을 수 있다는 것. 신약성서 사본들은 당시의 대중적인 언어인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각각 사랑이란 말이 다르게 쓰여 있긴 하다. 하나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쓰던 언어 중 히브리어는 사랑이 한 단어이다. 이 주장이 모든 사람이 납득할 만한 이유가 되지 않는 이유.[29]

J. A. Lee라는 심리학자도 사랑의 유형을 6가지로 나누었다.
  • 열정적 사랑(eros, 에로스) - 육체적 자극을 필요로 하는 사랑. 위의 에로스와 비슷하다.[30]
  • 유희적 사랑(ludus, 루두스) - 사랑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몫이 크지 않으며 그저 다양한 상대와의 만남을 즐기는 사랑.
  • 친구 같은 사랑(storge, 스토르게) - 열정보다는 친구로서 알게 되는 과정을 더 중요시하는 사랑.
  • 소유적인 사랑(mania, 마니아) - 의존성과 질투가 강한 사랑. 극도의 질투를 보이며 상대에 대한 더 많은 애정과 헌신을 요구하고, 관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평온을 얻지도 못하나, 스스로 관계를 끊지 못해서 상대가 관계를 종결시키게 된다.
  • 실용적 사랑(pragma, 프라그마) - 현실적인 사랑. 상대의 자질을 계산하고 평가해서 의도적으로 고려하여 적절한 상대를 선택한다.
  • 헌신적 사랑(agape, 아가페) - 타인 중심적, 자기 상실적, 무조건적 사랑 [31][32][33]

스턴버그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주장했다. 사랑은 친밀감, 열정, 헌신이라는 3가지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 친밀감만 남은 관계: 서로에게 성욕도 헌신도 없고 그냥 친한 사이다. 그러니까 그냥 친구라는 소리. 실제로 친구와의 경계가 모호해 이건 사랑으로도 치지 않기도 한다.
  • 열정만 남은 관계: 상대에게 성욕만 느낄 뿐 친하지도 상대에게 뭘 해줄 수도 없어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그런 사이다. 다시 말해 짝사랑, 잘해야 원나잇 스탠드.
  • 헌신만 남은 관계: 친밀감도 성욕도 없고 그저 서로를 챙기기만 할 뿐인 관계다. 그냥 무늬만 부부 혹은 연인이고 얼마 안 가 깨지기 쉬운 관계다.
  • 친밀감+열정(낭만적 사랑): 서로 친하고 열정도 있는데 상대방에게 뭘 해줄 수 없는 그런 관계. 로미오와 줄리엣과도 같은 관계다.
  • 열정+헌신(얼빠진 사랑): 상대를 향한 열정과 헌신은 있는데 서로 친하진 않은 관계. 그냥 일방적인 짝사랑일 가능성이 높고, 심하면 사생팬, 스토커 등이 되어버린다.
  • 헌신+친밀감(우애적 사랑): 서로 친하고 헌신하긴 하는데 딱히 불타오르진 않는 관계. 오래된 부부가 해당한다.
  • 친밀감+열정+헌신(성숙한 사랑): 친밀감, 열정, 헌신의 삼위일체

일단 이렇게 다양하게 있는 편이지만, 가장 완벽한 사랑은, 위에 적힌 모든 사랑들중 하나라도 완벽하면서 조화롭게 존재할 때, 가장 진정한 의미의 완벽한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34]

4. 관련 글귀

4.1. 문학

4.1.1. 대사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동시에 불행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과연 변할 수 없는 것일까?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민음사.
Lolita, light of my life, fire of my loins. My sin, my soul. Lo-lee-ta: the tip of the tongue taking a trip of three steps down the palate to tap, at three, on the teeth. Lo. Lee. Ta. She was Lo, plain Lo, in the morning, standing four feet ten in one sock. She was Lola in slacks. She was Dolly at school. She was Dolores on the dotted line. But in my arms she was always Lolita.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 끝. 롤. 리. 타. 그녀는 로, 아침에는 한쪽 양말을 신고 서있는 사 피트 십 인치의 평범한 로. 그녀는 바지를 입으면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으로는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 안에서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소설 《롤리타Lolita》,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민음사.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매력적이었으며 보통 사람들과는 너무나 달라 보였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구두가 딱딱거리면서 돌길 위를 걸을 때
왜 아무도 자기처럼 정신을 잃지 않는지,
그녀의 베일에서 나오는 숨소리에 왜 아무도 가슴 설레지 않는지,
그녀의 땋은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거나 손이 공중으로 날아오를 때
왜 모든 사람들이 사랑에 미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El amor en los tiempos de cólera》,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To love another person is to see the face of God.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신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
완벽한 사랑을 체험하려면 인간의 모든 감정을 다 맛보아야 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연민을 느낄 수 없으며,
내가 한 번도 체험해 보지 못한 감정을 다른 사람이 품고 있을 때 용서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영원히 밟아가는 여행의 단순함과 그 외경스러운 위대함을 함께 보는 것이다.
인간 영원의 목표는 그 모든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소설 《신과 나눈 이야기》 - 닐 도널드 월시

4.1.2. 가사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대한민국 전통 민요 - <아리랑>
Pōkarekare ana, ngā wai o Rotorua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로토루아 호수는
Whiti atu koe hine, marino ana e.
그대가 건너온다면 잠잠해질 겁니다.
E hine e, hoki mai ra.
오 그대여, 내게로 돌아와 주세요.
Ka mate ahau I te aroha e.
당신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마오리족 전통 민요 - <포카레카레 아나>[35][36]
Because love's such an old-fashioned word
왜냐하면 사랑은 너무나도 진부한 단어니까
And love dares you to care for
그리고 사랑은 네가
The people on the (People on streets) edge of the night
밤의 끝자락에 있는 (길을 걷는 사람들) 사람들을 어루만질 수 있게 하니까
And love (People on streets) dares you to change our way of
그리고 사랑은 (길을 걷는 사람들) 네게 우리가
Caring about ourselves
우리를 보는 방법을 바꿀 수 있게 하니까
Queen - <Under Pressure>

4.1.3. 문학가

겸허한 사랑은 포학보다 훨씬 위력적이고 경외시되는 힘이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삶에 대한 절망 없이 삶에 대한 사랑은 있을 수 없다.
알베르 카뮈
사랑할 때는 사상 따윈 문제가 아니다. 내 사랑하는 여인이 나와 똑같이 음악을 좋아하느냐도 문제가 아니다! 결국 어느 사상에도 우열은 없다.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진리밖에 없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일이다.
로맹 롤랑(프랑스의 작가)
사랑받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행복이다.
헤르만 헤세
사랑한다는 것은 둘이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사랑이란? 무한한 관용, 자세한 것에서 오는 법열, 무의식적인 찬미, 완전한 자기 망각.
J.샤르돈느(프랑스의 작가)
영원히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랑하는 자가 아니다.
에우리피데스
사랑하라, 인생에서 좋은 것은 그것뿐이다.
조르주 상드
창조하기 위해서는 역동적인 힘이 있어야 하는데, 어떤 힘이 사랑보다 더 유력한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오!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오! 사랑은 우리를 풍요하게 만든다.
하인리히 하이네
어버이가 자식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전혀 이해를 초월한 유일한 질서이다.
서머셋 몸
사랑은 마음의 송곳이자 독이요,
그 송곳이자 독은 인생의 시작이오.
미상
사랑을 하게 되면 자신을 속임으로써 시작하여, 다른 사람을 속임으로써 끝맺는다. 그것이 이른바 로맨스다.
오스카 와일드
기갈과 사랑이 이 세상의 두 개의 축이다. 인간은 모두 사랑과 기갈을 축으로 하여 돌고 있다.
아나톨 프랑스(프랑스의 작가)
어려운 점은 사랑의 기술이 아니라 사랑받는 기술이다.[37]
알퐁스 도데
사랑의 1페니 무게는 법의 1파운드만큼의 가치가 있다.
T. 풀러(영국의 경구가)
여자에게는 사랑 이외의 인생의 즐거움은 없다.
B. 브라우닝(영국의 시인)

4.1.4. 정치가

첫사랑의 마력은 그것이 언제라도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벤저민 디즈레일리
재산도, 지위도 사랑에 비하면 먼지에 불과하다.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
If you would be loved, love and be lovable.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라.
벤저민 프랭클린

4.1.5. 속담

사랑엔 국경도, 나이도 없다
그대를 사랑하는 자는 그대를 울릴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속담
슬기는 사랑의 첩경이다.
유럽의 속답
무엇을 믿지 않으면 아무도 남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이지리아의 속담
오랜 사랑과 낡은 톱밥은 대번에 불붙기 쉽다.
사랑은 매미 같은 것, 당장 마음에서 혓바닥으로 옮겨 간다.
독일의 속담
사랑은 유리, 함부로 붙들거나 너무 세게 쥐면 깨진다.
러시아의 속담

4.2. 종교

4.2.1. 기독교

동족에게 앙심을 품어 원수를 갚지 마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아껴라. 나는 야훼이다.
레위기 19:18(공동번역성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성경에 기록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8:35~39(새번역성경)
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간음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탐내지 마라." 한 계명이 있고 또 그 밖에도 다른 계명이 많이 있지만 그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로마서 13:8~10(공동번역 성서)
34. 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38]
요한의 복음서 13:34~35(공동번역성서)
1.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2.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
8. 사랑은 가실 줄을 모릅니다. 말씀을 받아 전하는 특권도 사라지고,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도 끊어지고, 지식도 사라질 것입니다.
9. 우리가 아는 것도 불완전하고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도 불완전하지만
10. 완전한 것이 오면 불완전한 것은 사라집니다.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어린이의 생각을 하고, 어린이의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의 것들을 버렸습니다.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이지만, 그 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3:1~13(공동번역 성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두려움은 징벌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품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요한1서 4:18(공동번역 성서)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3:13(공동번역 성서)
그리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처리하십시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6:14(공동번역 성서)
모두들 조반을 끝내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예수께서 두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예수께서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바람에 마음이 슬퍼졌다.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분부하셨다.
그들 중 한 율법교사가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마태복음 22:35-40(공동번역 성서)
율법학자 한 사람이 와서 그들이 토론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예수께서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것이 첫째 가는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첫째 가는 계명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또 둘째 가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이 말씀을 듣고 율법학자는 "그렇습니다, 선생님.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은 과연 옳습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는 감히 예수께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르코의 복음서 12:28-31(공동번역 성서)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서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율법서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었느냐?" 하고 반문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이 대답에 예수께서는 "옳은 대답이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살 수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율법교사는 짐짓 제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놓고 갔다.
마침 한 사제가 바로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또 레위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다음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드리겠소.' 하며 부탁하고 떠났다.
"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율법교사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루가의 복음서 10장 25~37절(공동번역 성서)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이다.
내가 반기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이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다오.
호세아 6장 6절(공동번역 성서)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39]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4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마태오의 복음서 19:16-24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태오의 복음서 25장 31절 - 46절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요한복음 3:16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가 2장 10절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1서 4장 8절(공동번역성서)

4.3. 철학

Love is a decision, it is a judgment, it is a promise. If love were only a feeling, there would be no basis for the promise to love each other forever.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강렬한 감정만이 아닌, 결의이고 판단이자 약속이다.
Immature love says: 'I love you because I need you.' Mature love says 'I need you because I love you.'
미숙한 사랑은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다고 말한다. 성숙한 사랑은 사랑하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말한다.
IS LOVE an art? Then it requires knowledge and effort. Or is love a pleasant sensation, which to experience is a matter of chance, something one "falls into" if one is lucky? This little book is based on the former premise, while undoubtedly the majority of people today believe in the latter. Not that people think that love is not important. They are starved for it; they watch endless numbers of films about happy and unhappy love stories, they listen to hundreds of trashy songs about love—yet hardly anyone thinks that there is anything that needs to be learned about love. This peculiar attitude is based on several premises which either singly or combined tend to uphold it. Most people see the problem of love primarily as that of being loved, rather than that of loving, of one's capacity to love. Hence the problem to them is how to be loved, how to be lovable. Inpursuit of this aim they follow several paths. One, which is especially used by men, is to be successful, to be as powerful and rich as the social margin of one's position permits. Another, used especially by women, is to make oneself attractive, by cultivating one's body, dress, etc. Other ways of making oneself attractive, used both by men and women, are to develop pleasant manners, interesting conversation, to be helpful, modest, inoffensive. Many of the ways to make oneself lovable are the same as those used to make oneself successful,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 As a matter of fact, what most people in our culture mean by being lovable is essentially a mixture between being popular and having sex appeal.

사랑은 기술[41]인가? 기술이라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 혹은 사랑은 우연한 기회에 경험하게 되는, 다시 말하면 행운만 있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즐거운 감정인가? 이 작은 책은 사랑은 기술이라고 하는 견해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물론 사랑은 즐거운 감정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인이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인들은 사랑을 갈망하고 행복한 사랑의 이야기, 불행한 사랑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 무수한 영화를 구경하고 사랑을 노래한 시시한 수백 가지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특별한 태도는 몇 가지 전제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이 전제는 단독으로 또는 결합되어서 이 태도를 뒷받침해 준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들이 이 목적을 추구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남자들이 특히 애용하는 방법은 성공해서 자신의 지위의 사회적 한계가 허용하는 한, 권력을 장악하고 돈을 모으는 것이다. 특히 여성이 애용하는 또 한 가지 방법은 몸을 가꾸고 옷치장을 하는 등 매력을 갖추는 것이다.
남녀가 공용하는 또 한 가지 매력 전술은 유쾌한 태도, 흥미 있는 대화술을 익히고 유능하고 겸손하고 둥글둥글하게 처신하는 것이다. 사랑스러워지는 여러 가지 방법은 성공하기 위해, 곧 '벗을 얻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갖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방법과 같다. 사실상, 우리 문화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경우, 그 의미는 본질적으로는 인기와 성적 매력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42] 저, 문예출판사.
우정은 관조와 대화를 양분 삼아 자라날 수 있는 반면 사랑은 무언의 해석에서 태어나고 또 그것으로 양육된다. 사랑받는 존재는 하나의 기호, 하나의 '영혼'으로 나타난다. 그 존재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가능 세계를 표현한다. (……) 사랑,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 속에 감싸인 채로 있는 우리가 모르는 세계들을 '펼쳐서 전개시키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이다.
《프루스트와 기호들》, 질 들뢰즈
(…) 그러나 우선, '사랑'이라는 말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 한계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넓은 의미 폭을 갖게 되어, 그 말을 사용하기가 주저된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정이 '사랑'의 원의인데, 이제는 식욕이나 기타 물욕 내지 정복욕 등과 구별되지 않는 탐욕에 이끌려 도달하는 심정적 경개(景槪)나 행위마저 '사랑'이라는 말로 지칭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누가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라고 근엄한 음성으로 말하면, 그것이 음란한 농담으로 들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그 말이 특정 집단이나 유사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 의해 너무 헤프게 사용되다 보니, 그 말속에 있던 의미적 절박성과 곡진함이 약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그 말이 거짓과 위선의 냄새마저 풍기게 되었다. 지극히 아끼고 애틋하게 근심하며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리키던 말이, 음욕이나 기타 야욕까지도 지칭하게 되었으니, 진정한 연인들이나 개결한 벗들, 이웃들, 우애 깊은 혈연들은 오히려 그 말을 사용함에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요컨대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가 모호해진 것이다
《정염의 맥박(부제: 프랑스 문학, 그 천 년의 몽상)》, 이형식 저, 서울대학교 출판부. p.3~p.4 머리말에서 인용
He who knows nothing, loves nothing.
He who can do nothing understands nothing.
He who understands nothing is worthless.
But he who understands also loves, notices, sees. . . .
The more knowledge is inherent in a thing, the greater the love. . . .
Anyone who imagines that all fruits ripen at the same time as the strawberries knows nothing about grapes.

아무것도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한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무가치하다.
그러나 이해하는 자는 사랑하고 주목하고 파악한다….
한 사물에 대한 고유한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랑은 더욱더 위대해진다….
모든 열매가 딸기와 동시에 익는다고 생각하는 자는 포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파라켈수스Paracelsus
(仁)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공자
사랑의 시작과 종말은 양편이 다 자기 자신의 고독함을 발견했을 때 당황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라 브뤼에르(프랑스의 모럴리스트)
자기 이외의 인간들이 지금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음을 믿는 일, 그것이 사랑이다.
시몬느 베이유(프랑스의 철학자)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틀림없이 돈이 사랑을 망칠 것이다.
장 자크 루소
Where there is love there is life.
사랑이 있는 곳에 삶도 있는 법이다.
마하트마 간디
슬기 있는 자만이 사랑할 줄 안다.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사랑의 본질은 정신의 불이다.
에마누엘 스베덴보리
불의 빛이 처음이듯이 늘 사랑이 지식의 시초이다.
토머스 칼라일
연애의 초기에서는 여자는 애인을 사랑하고, 다음에는 정사(情事)를 사랑한다.
라 로시푸코(프랑스의 모럴리스트)

5. 창작물에서

※ 예시 문단이 포화될 수 있으니 해당 문단의 하위 문단에 해당하지 않는 창작물은 등재하지 말 것.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이든 가요든 여러 문화 매체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다. 예를 들어, 한국 가요에서 이성과의 사랑은 노래 주제 1순위이다.[43] 그래서 한국 가요를 까는 사람들은 이런 노래들을 사랑 타령이라고 까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그 비율에는 나라마다 전부 차이가 있지만, 이성과의 사랑은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 어느 나라를 가도 거의 대부분 노래 주제 1순위이다. 그만큼 보편적이고 공감하기 쉬운 감정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사랑이라는 주제는 옛날부터 흔히 창작물에 사용되던 제재(題材)이다. 예를 들면 고대가요 “가시리”나 운영전 등이 있다.

사랑은 셀 수도 없이 많고 다양한 매체에서 오만 가지 방식으로 표현되지만, 잘 표현해 내기가 정말로 어려운 주제 중 하나이다. 일단 사랑이란 것을 하게 되면 아무리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라도 최고를 바라게 되기 때문일지도. 긍정적으로 묘사하면 진부하고 오글거리기가 쉽고, 부정적으로 묘사하면 한도 끝도 없이 지저분해지는 것이 사랑이란 것이다.

일본 창작물에서는 사랑해(愛している/아이시테루)보다는 좋아해(好き/스키)나 정말 좋아해(大好き/다이스키)를 더 많이 쓴다. 그 이유는 일본어로 사랑한다는 말인 아이시테루(愛している)는 단순한 사랑 고백이 아닌 평생 동안 함께 하고 싶을 만큼 열렬히 사랑하는 상대에게 목숨 바쳐 사랑한다고 말하는 의미라고 한다. 또한 「愛/あい/아이」는 사랑(혹은 그 개념 자체), 「恋/こい/코이」는 연애(나 그러한 감정)를 주로 의미한다. 또한 아이는 주로 주는 사랑을 의미하고 코이는 받는 사랑을 의미해서, 아이는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 쓰이는 단어이며 코이는 연인이나 부부 관계에 쓰이는 말이다. 소설가 소세키의 영향으로 직접 좋다고 하지 않고 '달이 아름답네요.(月が綺麗ですね)'와 같이 돌려 말하기도 한다. 일본인인 미야와키 사쿠라가 유튜브 방송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이 아이시테루란 단어는 실제 일본에서도 사용하는 일이 극히 드문 말이라고 하며,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만났을 때에나 쓸법한 발언이라고 한다. 그리고 달이 아름답네요는 구닥다리고 오글거려서 현실에서는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Чем люди живы, 1885)에서, 하나님은 미카엘은 세 가지 질문을 받는다. 그 셋 중에 두 질문의 답은 사랑이다.

5.1. 사랑을 개성 있게 표현한 작품들

6. 관련 문서



[1] 간혹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나 개념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조국에 대한 사랑이 그렇고, 예술 따위의 추상적인 것을 사랑한다든가 어떤 행동, 습관을 사랑하는 경우도 있다.[2] 산스크리트어로 극락을 뜻하는 수카바티(सुखावती, sukhāvatī)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카(सुख) 자체는 산스크리트어로 기쁨, 즐거움, 행복을 뜻한다.[3] '귀엽다'가 '괴다'에서 파생된 표현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고려가요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기도 하다.[4] 어휘 자체는 사어가 되었지만 '따스하다(< ᄃᆞᆺᄒᆞ다)', '따뜻하다(< ᄃᆞᆺᄃᆞᆺᄒᆞ다)', '다솜(< ᄃᆞᆺ옴)' 등의 낱말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5] '얼다' 또는 '어르다'의 어간 뒤에 사동 접미사 '-우-'가 붙은 형태이다. 중세 국어 당시 '얼다'는 주로 혼인한다는 뜻으로 쓰였지만, 앞의 세 단어와는 달리 육체적 사랑을 나타내기도 했다. 때문에 고려 가요 만전춘에서는 '얼다'를 중의적 표현으로 사용했고, 조선 성종 때 간통 스캔들로 유명했던 박구마라는 여인에게는 얼우동(於乙宇同)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어른'과 '어르신'이 이 단어에서 유래하였다.[6] 戀의 신자체. こい는 일본의 고유어이고 恋의 일본식 독음은 れん이다.[7] 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학교 중한사전. 본래 불교계에서 자주 쓰던 표현이다.[8] 이는 《용비어천가》 78장에서의 용례인데, 일각에서는 'ᄉᆞ라ᇰ'이 '思量'이 아닌 '思懷'에 대응되며 '그리다'라는 뜻이기 때문에 '사랑'과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품을 회)는 회고(懷古)나 회모(懷慕) 등의 단어에서 쓰이듯 '생각하다'는 의미 또한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思懷 또한 思量과 마찬가지로 '생각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사량'과 본질적인 의미상의 차이는 극히 적다는 것.[9] 대표적으로 《석보상절(1447)》, 《능엄경언해(1464)》, 《두시언해(1481)》, 《번역노걸대(~1517)》 등의 자료가 있다. 노대규 저 〈사랑하다의 의미 분석(2002)〉 참조.[10] 특히 《광주천자문(1575)》에서는 아예 思(생각할 사) 자를 'ᄉᆞ랴ᇰ ᄉᆞ'로 새기고 있는데, 위의 《월인석보》 인용문에서 "思ᄂᆞᆫ ᄉᆞ라ᇰᄒᆞᆯ씨라"라고 한 것과 비교하면 'ᄉᆞ라ᇰ'과 'ᄉᆞ랴ᇰ'이 같은 의미로 통용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11] 한 단어가 두 의미를 동시에 지녔다가 나중에 한쪽으로 전이된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일례로 싣다의 경우 본래 중세 국어에서 '얻는다[得\]'는 의미와 현재의 '운반한다'는 의미가 공존하였다가 전자의 의미가 실전된 채 후자만 전해지게 되었다. 같은 한자어계 귀화어로 예시를 들자면, 본래 중생(衆生)의 한글 표기였던 '쥬ᇰᄉᆡᇰ'이 인간을 제외한 동물을 가리키기도 하다가 음운 변화를 거치면서 후자의 의미만 남은 채 현대어의 '짐승'이 된 사례가 있다.[12] 실제로 두 음절 모두 평성인 체언은 중세 한국어 고유어에서 비교적 흔치 않으며 한자어계 귀화어에서만 빈번히 나타난다고 한다. Ramsey (1991), "Proto-Korean and the Origin of Korean Accent" 참조.[13] 사랑을 단정 지어 설명하는 것은 자신에 생각을 단정 지어 강요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강요가 아닌 예시나 자신에 생각을 말하는 것이 바람직할 거 같다.[14] 그래서 오노레 드 발자크는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는 말을 남겼다.[15]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요한 1서의 내용 중에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구절이 있기에.... 다만,이 문서의 '사랑'과는 상이한 의미의 사랑이다.[16]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17] 사랑의 기본 특징 중 '오래 참음'은 최소한의 기준이고 기독교상에서 영원한 사랑은 오직 하느님과 천국 백성들에 한한다.[18] 다만 후자의 경우, 순수했던 사랑이 어떠한 계기로 인해 집착으로 나쁘게 뒤틀려 버린 탓이 크다. 만약 자신의 애정이 배신당했다 느꼈다면 이윽고 집착을 넘어서 대상에 대한 분노증오로 변하기도 한다.[19] 중요한것은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한것이지, 사랑을 받는 사람이 행복한건 아니란것이다. 내가 남을 사랑한다고, 남이 나에게 사랑을 느껴야하는것이 아니며, 내가 남을 사랑한다고 무턱대고 그 사람이 행복해 지는것이 아니다. 부모막장부모의 교집합도, '다 너를 위해서야' 라는 것을 상기해보자.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건 대부분의 부모가 같은 마음일 지라도, 그것을 받는 자식들은 대부분 다른 느낌을 받는다. 부모가 온 힘을 다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도 갑갑함을 느낄 수 있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이 사랑한다고 다가와도 받는 사람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20] 주로 포도주초콜릿, 이나 새우, 등의 고단백 식품에 많다. 보면 죄다 정력제 혹은 최음제로 알려진 물건들이다.[21] 늘리고 싶다면 운동을 하거나, 로맨스 소설이나 멜로 영화 등 로맨스 매체를 접하면 된다. 링크[22] 물론 실체하지 않고 정의할 수 없을 만큼 어쩌면 허무맹랑한 것일지도 모르나 그것을 믿고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는 인간의 한 면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것들이 바로 사랑과 같은 것이다.[23] 그러니까 '사랑에 빠져서' 페닐에틸아민이 나온 건지 '페닐에틸아민이 나와서' 사랑에 빠지는 것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뜻이다.[24] 원래는 유사 과학이나, 외계인 연구, 초능력 연구, 영능력 연구 등을 여러 연구자들이 과학계에서 지나치게 연구해 대서 세금을 낭비하는 것에 대해서 조롱 겸 막으려는 목적으로 만든 상이다.[25] 이후 1975년 심리학자인 로널드 허친슨이 자신의 연구 과제에 황금 양털상이 주어지자, 프록스마이어를 상대로 명예 훼손 등의 소송을 제기했으며, 두 사람은 1979년 미국 대법원의 판결 전에 합의했는데, 프록스마이어는 공개 사과와 함께 2만 5천 달러를 배상했다.[26] 특히 기독교 계통 종교가 이 부분에서 유명하다.[27] 여기서 육체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성적인 의미가 아니라 육체적인 충동으로서 자신에게 결여된 무언가에 대한 일방적 갈구의 의미이다. 욕구라는 것이 육체에서 기인한다고 보면 옳겠다. 그래서 정신적인 사랑이라는 플라토닉도 에로스의 일종이다.[28] 이러한 구분은 고대 그리스 시절에는 그렇게 명확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그냥 다 사랑으로 쓰였다는 이야기로 에로스가 정신적 사랑을 지칭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29] 다만 복음서를 포함한 성서라는 것들이 역사적 사실 그대로를 표현하려는 게 아니라 사가가 주장하려는 바를 내포하는 진실을 서술하는 것(사실 역사적 사실 그대로를 기술하는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의 일이고, 당시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저술이 그랬다. 그리고 성서의 경우는 주장하려는 바가 사가의 신앙 고백이고 거기다가 사가의 신학관이 겹쳐있기 때문에 더 정밀한 해석이 필요하다.)이기 때문에 복음사가는 그것을 표현하려 한 것일 수도 있다.[30] 그런데 에로스(큐피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에로스가 왜 육체적 사랑에 가까운지 의아한 부분이 있다.[31] 자기중심적에 가까운 에로스와는 방향성의 차이가 난다.[32] 특히 기독교의 사랑은 오직 '신'만 100%라고 본다. 그래서 여기에 따르면 세상에 사랑스러운 것은 드러낼 수 있어도 완전한 사랑은 그 누구도 될 수 없다.[33] 본래 단순히 "마음에 든다”, “만족하다”, “환대하는 정신”, “동정” 등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었던 단어가 신약 성경에 영향을 받아 저런 의미로 범위가 좀 더 확대되었다.[34] 만약 어느 쪽도 불균형적이게 되었을 경우에는,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장 끔찍하게 여겨질 수 있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충분히 생길 것이다. 집착, 카사노바, 얀데레, 스토커, 광신, 애정결핍, 이기주의 등 현실에서도 이런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병적인 상태는 치유의 대상이지 결코 사랑을 주는 건강한 대상이라 볼 수 없다.[35] 이 민요에는 이런 전설이 내려져 온다. 육지에 사는 아리족 족장의 딸 히네모아와 호수섬 모코이아에 살던 휘스터족 족장의 아들 트타네카이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었지만 적대시하던 두 부족의 반대로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트타네카이가 밤바다 호숫가에 나와 피리를 불고 그 소리를 듣고는 히네모아는 호수를 직접 건너서 만났다고 한다. 트타니카에가 애타는 마음에 불렀던 노래가 바로 포카레카레 아나였다는 것이다. 이 두 남녀 이야기에 감동한 두 부족은 화해하고, 히네모아와 트타네카이는 결혼할 수 있었다고 한다.출처[36] 한국에는 연가라는 이름으로 번안되어 널리 불린다. 뉴질랜드에선 제2의 국가 취급을 받으며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노래이다. 뉴질랜드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며 국회 본회의장에서 불리기도 했다.[37] 에리히 프롬의 철학과 전면적으로 상충되는 격언.[38] 예수의 가르침을 대표하는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이며, 동시에 예수가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려고 했던 최고의 사명이자 선물이기도 하다.[39] 10계명과 가장 큰 계명인 마태오의 복음서 22:35-40 참고.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40] 다만 디모데전서 5장 8절의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에서도 나와 있지만 이 구절을 친족을 돌보지 마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링크의 성경 해석 참고. 해석 참고.[41] 당연하게도 여기서 지칭하는 기술이란 연애 지침서 따위에서 늘어놓는 천박한 유의 것이 아니다.[42] 사랑이라는 주제를 최초로 철학적 논의의 대상으로 승격시킨 철학자이다.[43] 서양에선 특히 음악이 기독교 쪽과 관련이 깊어 그럴 수도 있다.[44] 이쪽은 연인 간 사랑이 아닌, 어머니와 자식 간의 사랑이다.[45] "사랑을 느끼는 것"은 감정이지만, 사랑 자체는 약속이라는 뜻.[46] 다만 이는 이누야샤 쪽은 50년 동안 쭉 봉인당한 채 있었던 영향도 있다. 키쿄우를 사랑하던 시절에서 세월이 하나도 흐르지 않았기에 키쿄우의 죽음은 그리 먼 과거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 하지만 그래도 50년 전에 죽은 연인을 그토록 그리워한 것은 사랑 아니면 대답할 수 있는 게 없긴 하다.[47] BGM: '사랑빛 매직', '사랑빛 마스터 스파크' 스펠: 연심「더블 스파크」[48] 특히 이 작품에선 모성애, 부성애, 부부애, 우애 등 다양한 사랑이 나온다.[49] 말만 놓고 보면 멋들어지긴 하지만 알고 보면 이런 생각과 대사는 작품 전체의 평가를 깎아먹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과격하고 극단적인 사랑의 표현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의 사랑에 대한 시간적, 사건적인 개연성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 사춘기 때의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라든가 흔들다리 효과라든가, 단순 얼빠라 하더라도 커버가 안 될 수준이었다.[50] 일본어로 恋와 愛는 둘 다 사랑을 의미하는 한자지만, '恋(코이)'는 짝사랑, 숨기고싶은 연심에 더 가깝고 '愛(아이)'는 노골적인 사랑,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대체로 연인 사이에서는 愛(아이)를 사용한다.[51] 단순한 연애 감정이 아닌 가족애, 우정, 이타심 같은 넓은 의미의 사랑이다.[52] 그리고, 이 사랑이라는 가치의 진정한 수호자는 다들 아시는 이분이다.[스포일러2] 이 말처럼 두 주인공은 정말 로운 사랑을 하고 결국엔 한쪽한쪽을 위해 희생하면서 이별하게 된다.[54] 타타가 화분에 마법을 쓰지 않고 물을 주면서 한 말이다. 설정상 BT 행성의 왕자이며 마법으로 행성에 사랑을 공급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그를 제외한 가족들은 사랑을 공급할 수 있는 건 마법뿐이라고 한다. 결국 타타는 이런 가치관의 충돌로 반을 타고 떠났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가 물을 준 화분에 꽃이 자랐다.[55]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닌 가족 간의 사랑, 그중에서도 형제애에 대한 대사이다. 형 쪽인 아키넬라 디스토브가 자신의 동복 형제인 아르넬로의 사랑에서 비롯된 오해로 살아남고[56], 자신의 동부 형제인 링클레터를 사랑했기에 일부러 동생의 소중한 사람들을 인질로 전쟁을 일으켜 그가 자신을 미워하게 해(즉 형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오해하게 만들어) 의도적으로 그의 손에 죽어 자신의 힘을 넘겨주며 남긴 유언. 여담이지만 이 대사는 작중에서 오페라 '라 트리비아타'의 주인공 비올레타의 마지막 대사로도 나온다. 이 사건 이후 작품 속 메시아인 링클레터는 진정한 메시아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