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21 23:40:27

삼한(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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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국가 소개
2.1. 정치2.2. 경제2.3. 제천 행사
3. 삼한의 군장4. 삼한시대와 관련된 유물 및 유적5. 삼한정통론 또는 마한정통론6. '한(韓)'의 의미
6.1. 용어 사용 사례
7. 번외
7.1. 분석7.2. 중국 측 기록7.3. 교과서상 내용

[clearfix]

1. 개요

파일:삼한위치비정통합수정본.jpg
각 숫자는 왼쪽부터 마한, 변한, 진한 문서 참고.

삼한(三韓)은 원삼국시대 임진강 이남에 있었던 세 느슨한 소국 연합체이다.

진국은 수많은 소국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대표적인 소국으로는 마한, 진한, 변한이 있었다. 이를 삼한이라고 부른다.

2. 국가 소개

생각건대, 우리 동방은 단군나라를 처음 세우고, 기자가 봉함을 받았는데 모두 평양에 도읍하였고, 한나라 때에는 4군(郡)과 2부(府)를 두었습니다. 이로부터 삼한(三韓)이 오이처럼 쪼개어져 마한은 54국을 통솔하고, 진한변한은 각각 12국을 통솔하였습니다.
동국여지승람》 서문 中 #
한(韓)은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마한, 둘째는 진한(辰韓), 셋째는 변진(弁辰)이다.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54국이 있으며, 그 북쪽은 낙랑, 남쪽은 왜와 접하여 있다. 진한은 동쪽에 있는데, 12국이 있으며, 그 북쪽은 예맥과 접하여 있다. 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국이 있으며, 그 남쪽은 왜와 접해 있다. 모두 78개 나라로 백제(伯濟)는 그중의 한 나라이다. 큰 나라는 만여 호, 작은 나라는 수천 가(家)인데, 각기 산과 바다 사이에 있어서 전체 국토의 넓이가 방 4천여 리나 된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를 경계로 하니 모두 옛 진국(辰國)이다.
『후한서』「동이열전」「한(韓)」조
마한은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 진한과 변한은 경상도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마한은 54개의 소국(小國), 진한과 변한은 각각 12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2.1. 정치

馬韓最大, 共立其種爲辰王, 都目支國, 盡王三韓之地.
마한이 가장 강대하여 그 종족들이 함께 왕을 세워 진왕(辰王)으로 삼았고, 목지국에 도읍하여 전체 삼한 지역의 왕으로 군림하였다.
후한서》 〈동이전〉
其十二國屬辰王. 辰王常用馬韓人作之, 世世相繼. 辰王不得自立爲王.
(변한·진한 24국) 가운데 12국은 진왕에게 신속(臣屬)되어 있다. 진왕은 항상 마한 사람으로 임금을 삼아 대대로 세습하였으며, 진왕이 자립하여 임금이 되지는 못하였다.
삼국지》 권30 〈위서〉 오환선비동이전 中 변진
삼한 중에서 마한이 가장 세력이 컸으며, 마한 출신의 귀족만이 왕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마한왕 또는 진왕으로 추대되어 삼한 전체의 주도 세력이 되었다. [1]

그리고 왕 밑에 신지•읍차라는 지배자를 두었는데, 지배자 중에서 세력이 큰 것은 신지, 작은 것은 읍차 등으로 불렸다.[2]

이 말고도 삼한에는 제사를 주관하는 계급인천군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신성스러운 곳으로 여기지는 소도를 다스렸다. 이 곳에서 천군은 농경과 종교에 대한 의례를 주관하였으며, 천군이 주관하는 소도는 군장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죄인이 도망쳐 이 곳에 숨으면 잡아가지 못하였다고 한다.

2.2. 경제

삼한 사회는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농경 사회였다. 벼농사를 지었으며, 철제 농기구의 사용으로 생산량이 늘어나게 된다.

대외 교역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삼한 중변한에서는 철이 많이 생산되어진 탓에 낙랑, 왜 등에 수출하였다. 변한에서 수출하는 철은 화폐처럼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덩이쇠가 그것이다.

2.3. 제천 행사

삼한에서는 해마다 씨를 뿌리고 난 뒤인 5월과 가을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10월에 제천행사를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이러한 제천 행사 때에는 온 나라 사람이 모여서 날마다 먹고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겼다.

3. 삼한의 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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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진왕이 목지국에 도읍하며 삼한 전체를 다스리며, 삼한의 여러나라 임금들의 선대는 모두 마한사람이다.

<< 후한서 동이열전 >>
고조선 준왕이 위만에게 패하고 마한에 내려와 한왕이 되었다. 준왕의 후대가 끊어진 후 마한 사람이 스스로 올라 진왕이 되었다.

<< 후한서 동이열전 >>
고조선 준왕이 후대가 끊어졌으나 아직 준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한인이 있다.

<< 삼국지 동이전 >>
신지 중에 호칭을 덧붙여 높여 부르는 신운견지보(臣雲遣支報,신운신국의 견지보), 안야축지(安邪踧支,안야국의 축지), 분신리아불례(濆臣離兒不例, 신분활국의 불례), 구야진지렴(狗邪秦支廉, 구야국의 진지렴)이 있다.

<< 삼국지 동이전 >>
마한의 진왕은 목지국을 다스린다.

<< 삼국지 동이전 >>
진한과 변한 24개국 중 12국은 진왕에 신속해 있다.

<< 삼국지 동이전 >>
진한의 나라들은 늘 마한 사람을 임금으로 삼으며, 계승하더라도 스스로 임금을 세우지 않고 마한의 통제를 받았다.

<< 진서 동이열전 >>

4. 삼한시대와 관련된 유물 및 유적

5. 삼한정통론 또는 마한정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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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한(韓)'의 의미

(周成王) 十二年, 王帥, 燕師城韓, 王錫韓侯命。
주성왕 12년, 왕이 연(燕)의 군사로 하여금 한(韓)을 위해 성을 쌓게 하고 한후(韓侯)에게 명을 내렸다.
죽서기년
薄彼韓城, 燕師所完。因先祖受命, 因時百蠻。王錫韓侯, 其追其貊, 奄受北國, 因以其伯。
저 웅대한 한성(韓城)은 연(燕)의 군사가 완성해 주었다. 선조로부터 명을 받아 백만(百蠻)을 관리하였다. 왕이 한후(韓侯)에게 추(追)와 맥(貊)을 맡기시니 북국(北國)을 받아 그 우두머리가 되었도다.
시경》 한혁편(韓奕篇) #
일찍이 주나라 성왕 시기(기원전 11세기) 《죽서기년》과 여왕·선왕 시기(기원전 8~9세기) 《시경》 한혁편의 기록에서 당시 연나라와 인접해 있던 한성(韓城) 및 한후(韓侯)가 언급된다.
昔周宣王亦有韓侯,其國也近燕, 其後韓西亦姓韓,為衛滿所伐,遷居海中。
옛날 주 선왕 대에 한후(韓侯)가 있었는데 그 나라 또한 연나라에 가까웠다. 그 후 한서(韓西) 또한 한씨(韓氏)로, 위만에게 정벌되어 바다로 이주했다.
《잠부론》
후한 학자 왕부는 저서 《잠부론》에서 이 한후를 위만과 함께 언급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위 문헌들의 한후·한성을 고조선과 연관짓는 학설에 따르면 한국사에서 한(韓)을 명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점은 기원전 9세기 이전까지 소급할 수 있다.

이후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고조선준왕이 위만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익산에서 건마국의 왕으로 새 출발을 했을 때 한왕(韓王)을 자칭했다는 기록이 있고, 《위략》에는 고조선에 잔존한 준왕의 일족이 한씨(韓氏)를 자칭했다고도 전한다.
侯準旣僭號稱王, 爲燕亡人衛滿所攻奪, 將其 左右宮人走入海, 居韓地, 自號韓王. 其後絶滅, 今韓人猶有奉其祭祀者.
[조선]후 준이 참람되게 왕이라 일컫다가 연나라에서 망명한 위만의 공격을 받아 나라를 빼앗겼다. 준은 그의 근신과 궁인을 거느리고 바다로 달아나 한(韓)의 지역에 거처하며 스스로 한왕(韓王)이라 칭했다. 그 뒤 준의 후손은 절멸되었으나 지금 한인(韓人) 중에는 아직 그의 제사를 받드는 사람이 있다.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 ##
이 한(韓)은 고구려, 백제, 신라 등과 마찬가지로 음차(音借)였기에 발음은 지금과는 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빌릴 음에 해당되는 한자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던 신라, 고구려, 백제와는 약간 다르다.[3]

한(韓)이라는 표기가 음차했을 본래 고유어 국명의 발음과 의미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상고한어 재구음 '*ɡˤar(가르)'와 변한의 계승국 가야의 이표기 가라(加羅)가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가라' 정도의 발음으로 읽혔을 것이라는 설이 존재한다. 가야의 야(耶)는 상고음이 /*laː(라)/로 재구되기 때문에 가야의 국명은 '가라'에 가깝게 발음되었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한편 삼국시대 당시 옆나라 왜국에서는 고대부터 을 'から(가라)'라고 훈독해 왔으며, 시집 《만요슈》 15권에서도 한국을 가라쿠니(可良國)라고 지칭하였다.

그렇다면 이 '가라'가 무엇을 뜻하냐는 질문으로 이어지는데, 성읍을 뜻하는 고대 한국어 '' 내지 '구루'와 관련이 있다는 설이 그나마 유력하다. 현대 한국어 겨레의 고대 발음이라는 설도 있으나, '겨레'는 중세 한국어에서 ㄱ 약화를 나타내는 ㅇ이 쓰인 '결에'라는 표기로 문증되므로 본래 '*결게'였을 것이라 추정되기 때문에 가라의 어원이 될 수 없다. 일본서기에서 (겨레 족) 자를 '가라'로 읽은 점을 근거로 제시하기도 하지만 이는 숙자훈의 일종으로, 자루를 뜻하는 일본 고유어 '가라()'에서 유래한 것이라서 가야와는 무관하다.

이외에도 크다는 뜻의 옛말 '하다'의 관형사형 '한'의 음차[4]라거나 군주를 가리키는 간(干)을 의미한다는 등 몇 가지 학설이 대립하고 있다.

이후 한반도 남부지역은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韓)으로 불리게 되었고, 훗날 고구려, 백제, 신라를 일컫는 말로 확장 변형되었다.

6.1. 용어 사용 사례

내가 몸소 다니며 약취(略取)해 온 한인(韓人)과 예인(穢人)들만을 데려다가 무덤을 수호·소제하게 하라.
광개토대왕릉비』 비문 중 한(韓)인에 대한 구절
광개토대왕비에는 삼한과 예족[5]에 관계된 문장이 있는데 둘은 병렬관계로 서로 구분되어 고고학적 삼한인과 예족의 부여나 동예, 그리고 자신들인 맥족의 고구려를 서로 구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모습을 보였고, 일찍부터 뛰어난 용모를 지녔으니, 그 기세가 삼한(三韓)을 압도하였고, 그 이름이 양맥(兩貊)[6]에 드날렸다.
《부여융 묘지명》, 682년
《부여융 묘지명》을 보면 굳이 삼한과 함께 예맥을 따로 구분했다. 양맥은 '두 맥족'이란 뜻으로 백제고구려를 뜻한다. 만약 신라맥족으로 본다면 양맥이 아닌 '삼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구려, 백제 두 나라만 '양맥'이라고 했다. 삼한과 양맥인 고구려, 백제를 병렬관계로 본 것이다.[반론]
魏遣兵擊百濟, 爲百濟所敗. 陳壽曰: 三韓凡七十八國, 百濟其一也. 據李延壽 史, 其先以百家濟海, 後浸強盛以立國, 故曰百濟. 晉世 句麗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
위나라(북위)가 병사를 보내 백제를 공격했지만, 백제에게 패배했다. 【진수가 말하길, 삼한은 78개국이고, 백제는 그 중 하나이다.】 【이연수의 사서에는, 그 전에 100가가 바다를 건넜는데, 후에 강성한 국가를 세웠으므로 '백제'라고 했다. 진나라 시기에, 구려가 요동을 다스리자, 백제 역시 요서와 진평 2군의 땅에 의탁했다.】
《자치통감》 권136 <제기>2 -세조 무황제- 상지하 영명 6년(488) 12월조.
북송 시대의 편년체 대역사서인《자치통감》에서는 진수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참고하여 삼한은 78개국이라 했는데 마한 54개국, 변한 12개국, 진한 12개국의 한반도 남부에 위치하는 여러 소국들의 집합인 고고학적 '삼한'의 뜻으로 용어를 사용했다.

요나라가 국서에서 고려 숙종을 언급할때 삼한(三韓)과 5부(五部)의 주인으로 불렀는데 5부란 고구려 내의 비류부, 환나부, 관나부, 연나부, 계루부의 5부족을 뜻했다. 즉 삼한과 고구려를 서로 다른 병렬관계로 보고 양쪽 모두의 주인이라 호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8]



7. 번외

7.1. 분석

傳子至孫右渠, … 眞番·辰國欲上書見天子, 又雍閼弗通.
(위만의)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 때에 이르러서는... (중략) 진번·진국이 글을 올려 천자를 알현하고자 하는 것도 또한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9]
《한서》(漢書) 권95 <서남이양월조선전>(西南夷兩粤朝鮮傳)#
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 辰韓者古之辰國也
[한에는] 세 종족이 있으니 첫째는 마한, 둘째는 진한, 셋째는 변한이다. 진한은 옛날의 진국이다.[10]

{{{#!wiki style="text-align:right"
삼국지》(三國志). 한(韓)의 기록}}}

삼한이라는 개념은 기원전 194년에 고조선에서 쫓겨난 준왕이 새로 자리잡아 왕에 오른 한(韓), 혹은 소국 연맹체 진국(辰國)과 고대 한반도 중남부 일대에서 형성된 소국들의 연맹체인 마한, 진한, 변한과 함께 탄생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러한 형태는 4세기에 목지국이 몰락하고, 마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가 통일할때까지 큰 틀에서 이어졌다. 마한, 진한, 변한이라고 편의상 세 나라로 분류하지만, 실제로는 이는 수십개 나라를 한데 묶어서 통칭한것으로, 같은 정체성으로서 서로 단결할 때도 있었고 열심히 싸우기도 하며 세력을 넓히기도 했다. 다만 이들 국가가 마냥 독립적으로 움직였던것은 아니었고, 건마국목지국이 직할지는 좁아도, 일단 삼한 전체를 통제, 중재하는 위치에 있었고, 각 소국들은 목지국이 쇠락하기 이전에는 제후국의 위치였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주나라신성로마제국과 비슷한 형태였었다.

마한 54개, 진한 12개, 변한 12개국으로 통칭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국들의 목록의 근거는 자체 기록이 아닌 《삼국지》 〈위지〉 동이전이니 정확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목록을 자세히 보면 바다 건너 중국과 교류가 쉬운, 서해와 남해에 인접한 지역 위주이다. 따라서 한반도 내륙에도 여러 성읍국가가 있었는데 기록에서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국립청주박물관은 2019년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충북 지역에서도 1~3세기 마한계 소국의 유적과 유물이 확인되었다면서 충북 지역 소국들이 《삼국지》 기록에서 빠졌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고고학 연구를 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관련 유물이 나오다 보니 학자들조차도 몇 개인지 모른다고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각 소국들의 크기는 지금의 · 한두 개, 커봐야 몇 개 정도 묶어놓은 수준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제대로 된 고대 국가라기보다는 성읍국가나 지역들의 연맹체에 가까운 형태였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연맹이라는 것도 거대 국가인 중국이나 한반도 북부 지역과의 교류에 있어 그런 형식을 취했다는 것이지, 포상팔국의 난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서로 싸우기도 했다. 따라서 원삼국시대의 삼한이 생겨난 시기는 한국사판 춘추시대[11]라고도 볼 수 있으며, 고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직까지도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은 수수께끼의 나라들이다.

사서에 따르면 진국(辰國)에서 마한, 진한, 변한으로 나뉘었다고 하지만 진국이라는 실체는 불분명한 측면이 많아 잘 인정되지 않으며, 마한과 진한, 변한의 각 나라들은 독립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한성백제가 3세기 중후반 제 모습을 갖춘 이래로도 마한의 모든 구성국이 백제국 아래 직접 지배 지역으로 편성되기까지는 무려 300여 년이 걸렸다. 일단 마한, 진한, 변한 등은 묘제와 생활 문화 등으로 봤을 때 그럭저럭 구성이 비슷했고, 그 중에서도 변한과 진한이 특히 더 비슷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강 마한졸본부여 사람들이 남하해 세운 한성백제목지국에게서 주도권을 뺏은 뒤 나머지 소국들을 병합하고, 변한은 후에 가야연맹으로[12] 발전했으며, 진한사로국에게 흡수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금세 일어난 일 같지만, 실제로는 백제와 신라의 건국 이후에도 삼한의 소국 세력들이 상당 기간 동안 남아있었다. 백제와 신라도 처음에는 삼한의 소국 중 하나였으며, 결국 시간이 흘러 마한은 백제국을 중심으로, 진한은 신라국을 중심으로 흡수된 것이다. 교과서에서도 잘 다루지 않으니[13]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신라와 백제는 현재 쉽게 접할 수 있는 삼국시대 지도처럼 건국하자마자 한반도 동부와 서부를 다 영토로 편입한 것은 아니었다.

가령 신라는 맨 처음에 수많은 진한 지역 소국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는데, 수도 경주 인근인 울산, 안강, 영천에 각각 우시산국, 음즙벌국, 골벌국이 존재했을 정도니 초기 신라가 얼마나 작은 나라였는지 알 수 있다. 이후 작은 나라들을 하나하나 연합하고 복속해나가면서 경상도 일대, 나아가 충청도와 강원도 등 바깥까지 지배하는 영역국가가 된 것이다.

백제 역시 그 세력이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서는 건국 직후 마한을 복속시켰다고 나오나, 《삼국지》 등 당대의 문헌과 고고학적인 연구 결과를 참고하면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자치를 유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7차 마지막 개정 국사 교과서에서는 이 추정이 공식적으로 삽입되어 마한이 천안, 익산, 나주 등을 중심지로 삼았다고 기술되어 있으나 이는 잘못된 서술이다. 실제로는 백제국이 천안 청당동에 위치한 목지국을 타도하고 대신 마한의 맹주국이 되었으며, 이후 왕도에 가까운 소국들부터 서서히 자치권을 빼앗고 직접 지배로 전환했던 것이다.

또한 마한의 최초 중심지는 다름 아닌 익산의 건마국이었을 가능성이 최근 높아지고 있다. 오래 전부터 고조선의 준왕이 익산 근처에 남래했다는 전승이 있었으나 고고학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었는데, 최근 확인된 것이다. 국사 교과서 상 언급을 요즘 학계 정설에 맞게 다시 고치면, 마한의 중심지는 익산천안서울공주부여가 된다.[14] 나주의 경우 영암 세력의 분가로 있었다가, 서진 시대에 마한 신미국을 자처하면서 백제의 마한 영도국 자격을 잠깐 부정했던 침미다례 연합의 영암 및 해남 일대 세력을 백제가 제압한 후 키워준 세력이다. 때문에 마한이라는 명칭은 아예 사용하지도 못했으니 여기에 낄 여지가 없다.

한편 후기 마한의 영도국인 백제와 그 나머지 소국들에 대해 더 얘기해보면, 목지국을 타도한 직후의 한성백제는 지금의 충청-전라 지역의 마한 소국들을 공납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다스렸다. 다만 백제의 영향력 아래에서 독자적인 운동력을 잃지 않은 소국들이 익산, 영암, 해남 등지에 있었던 것인데, 그 소국들마저 백제의 강력한 견제 탓에 일정 이상으로는 성장하지 못했던 정황이 고고학적으로 관찰된다. 거리가 상대적으로 백제국과 멀었던데다 본디부터 부강했던 침미다례조차도 최전성기에조차 전남의 1/3밖에 통할하지 못했을 정도다. 독자 세력이라고 하기에도 쑥스럽고, 한동안 신라, 백제 등과 대등한 외교·경쟁 상대였던 가야의 소국들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마한의 경우 워낙에 영역이 넓고 독자적 수계도 다섯이라, 목지국 같은 맹주격 국가가 있었고 수많은 마한계 소국들은 연맹체로 존속하거나 세력을 넓혔던 것으로 보인다. 백제 고이왕 시기에 통역 오류로 인해 마한과 한군현이 정면으로 충돌한 기리영 전투의 기록에 따르면 대방군의 태수 궁준이 전사하는 등 일부 소국들은 상당한 세력을 이뤘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신분활국이 임진강 인근에 소재한 북부 마한 소국들의 리더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한군현의 반격으로 신분활국이 아예 멸망하기도 했다.

광개토대왕릉비에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유언 중 "나의 묘지기 일은 내가 몸소 돌아다니며 잡아온 한인(韓人)과 예인(穢人)들에게만 맡겨서 무덤을 지키고 소제하게 하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서 예인들과 함께 언급되는 한인들은 곧 삼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다만 삼한의 주민 구성은 '삼한인'이라는 용어로 뭉뚱그려 말할 정도로 간단하지 않고 복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중국 전국 7웅 중의 하나였던 연나라고조선밀어붙였던 기원전 3세기 무렵 조선인들이 대거 남하했던 것으로 확인되며, 기원전 194년 준왕위만의 정변으로 쫓겨날 때도 준왕과 함께 대거 남하하였다. 물론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멸망할 때도 비슷한 흐름이 발생했다.

그리고 기원후 2세기 중후반경 후한이 혼란해지자 또 다시 낙랑으로부터 대거 낙랑인들이 남하하는 흐름이 발생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조선의 유민들이 혁거세 거서간을 왕으로 추대해 신라의 건국 집단이 되었다는 기록도 있고, 고고학적으로도 기원전 4세기경부터 기존 고인돌 집단과 다른 새로운 집단의 여러 차례 유입이 확인된다. 그 외에도 위말갈, 한나라 환령지말의 혼란을 피해 이주한 중국인 등 여러 이질적인 집단이 섞여 살았다.

문헌상에 이처럼 한반도 중남부에 여러차례 이주민 내지 유이민의 유입에 대한 기록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고고학적으로는 같은 시기 토착사회를 완전히 대체하는 수준의 급격한 주민교체는 확인된 바 없으며, 대체로는 기원전 13-12세기 경 청동기시대 전기 이후의 주민구성이 큰 변화없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요서 및 예맥계 종족의 이주를 중심으로 한국사의 시원을 연구한 문안식 역시 한(韓)족은 송국리 문화 및 지석묘를 영위하던 토착민이 주체가 되었으며, 요녕지방의 이주민들은 오히려 이들에게 흡수-동화되었다고 보고 있다.[15] 주로 고고학계에서는 이들 청동기시대 말기의 이주민들이 종래 토착사회에 국가형성을 자극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점은 인정하나, 이전의 토착주민들을 대체하거나 이주민들이 다수가 되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고고학적으로는 대략 기원전 4-3세기무렵부터 한반도 중서부일대에 처음 세형동검문화가 수립되고, 이것이 점진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지역에 따라 재래의 토착 송국리문화 및 울산 검단리문화 등과 결합함에 따라 마한 및 진-변한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영남일대에서는 세형동검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이전에도 이미 청동기시대 중기부터 농경을 기반으로한 인구집단이 집중되어 있어서, 해당지역에는 이들이 삼한시대 '읍락'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나아가 이미 영산강-만경강 사회와 교류하여 세형동검을 수용하고 대규모 지석묘를 건설하는 등 수장사회에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100년 경 무렵을 전후하여 중서부의 세형동검문화를 향유하던 세력들이 직접적으로 이주하고, 이들이 상위읍락을 형성, 기존 사회를 재편함으로써 진-변한이 성립된 것이다.[16]

그런데 이 때 한반도 중서부일대에 처음 등장한 세형동검문화의 성립 혹은 전파의 과정에 대해서는 연구자에 따라 그 연대나 담지 주체에 대해 여러 가지 이견이 존재한다. 종래에는 진개의 동정이나 준왕의 남천과 같은 문헌기록과 연관시켜, 기원전 4-3세기 무렵 고조선계 이주민의 이주로 인해 점토대토기문화 내지 세형동검문화 등으로 불리는 초기철기문화가 한반도 중남부에 일시에 성립했다고 보았으며, 극단적으로는 이들 이주민들이 재래의 청동기시대 주민들을 완전히 대체했다는 주민교체설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즉,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한반도 내 삼한사회의 등장은 전적으로 이주민의 영향이며, 토착사회는 이주민들에 의해 대체되거나 흡수되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고고학계에서는 고고자료만을 분석, 검토하여 유물군 간의 자체적인 상대연대를 정립한 연구들이 새롭게 나오게 되면서, 문헌기록에 의존한 종래의 연대관과 이에 근거한 주민교체설 등을 비판적으로 보는 입장이 우세해지게 되었다. 그 결과 현재에는 점토대토기문화의 유입과 세형동검의 유입, 그리고 진개의 동정이나 준왕의 남방도래 등이 서로 연대가 상이하다고 보고, 삼한의 기초가 되는 초기철기문화가 이주민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 토착사회와 이주민과의 지속적인 상호관계의 결과로 오랫동안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입장이 주류를 점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소수설이지만, 이러한 세형동검문화의 유입이, 청동기시대 초기부터 있었던 요동-서북한-한반도 중서부에 이르는 네트워크를 통해 청동장인집단이 점진적으로 외래문화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하여 초기철기문화 성립에 청동기시대 후기의 이주민의 역할이 거의 없었다고 보는 입장도 존재한다.[17] [18]

다만 근래에 이르러 모든 연구자들이 동의하는 것은, 준왕의 남래나 진개의 동정과 같은 사건으로 고조선계 이주민이 여러차례 한반도 중서부로 유입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나, 이들이 가져온 여러 문화요소들은 오랫동안 종래의 토착문화와 공존하면서 토착사회와 적극적으로 교섭하면서 점진적으로 동화되어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삼한사회의 성립에 있어서 이러한 이주민 혹은 적어도 이 무렵 세형동검문화의 성립에 기여한 외래문화의 영향을 과소평가하지 않되, 한편으로 외부세력 내지 이주민과 적극적으로 교섭하여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이주민들을 흡수, 동화하거나 새로 유입된 외래문화의 기층민이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토착민들의 역할 역시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고고자료 상에서는 청동기시대 말-초기철기시대 무렵에 종래 고고학계에서 막연히 '이주민'이라고 지칭되던 외래문화의 유물세트 자체가 명확하게 전모를 드러낸 경우가 거의 없는 반면, 송국리 사회 등 토착사회에서 새로운 외래유물을 수용하고 있는 현상 내지는 토착유물과 외래유물이 공반하는 현상이 오히려 더 일반적으로 관찰된다. [19] 이는 이 무렵 한반도 중남부에서는 토착민들의 간섭없이 오랫동안 자신들만의 문화요소를 보존한 이주민 집단의 존재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요컨대, 이는 설령 세형동검문화를 전파한 이주민이 존재하였더라도 그들의 수가 매우 적었거나, 이들 이주민들이 토착사회와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청동기시대 말-삼한시대 한반도 중남부의 상황은 차라리 이들 선주민들의 기후, 환경 등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한 결과로서 외부집단 혹은 새로운 이주민들과의 적극적인 교섭과 융화로 나타난 변화에 가까울 것이다.

삼한은 각각 백제, 신라, 가야로 판도가 정리되어 북쪽을 장악한 고구려와 함께 삼국시대를 만들게 된다. 사실 고구려도 처음에는 압록강 중류 척박한 산악지역의 작은 나라에서 시작해[20][21] 부여나 낙랑, 옥저 등을 전부 정리하고 한반도 북부와 만주의 고구려가 될 때까지 수백 년이 걸렸다.[22] 이 무렵 백제는 이제 막 목지국을 밀어내고 맹주국이 되어 경기도나 겨우 추스르는 수준이었고, 신라는 겨우 경주시 및 경북 동부 일대나 다스리는 부족국가 수준이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각 한사군, 마한, 진한, 가야 등을 병합하면서 주변 세력을 모두 제거했는데, 고구려는 4세기 초(314년)에 이미 이 임무를 끝냈지만 백제와 신라는 각각 6세기 초(520년경), 6세기 중후반(562년)에서야 이를 완료했다.

7.2. 중국 측 기록

후한서(後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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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권 「남흉노열전(南匈奴列傳)」 90권 「오환선비열전(烏桓鮮卑列傳)」
남흉노 오환 ·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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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은 연대가 일러 고대사가 부실한 한국 사서의 현황 때문에 기록이 매우 빈약하다. 그래서 서지학적 관찰은 중국 사서들에 곁다리로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한(韓)은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마한(馬韓), 둘째는 진한(辰韓), 셋째는 변진(弁辰)이다.
후한서》 〈동이전〉
"그 나라 안에 무슨 일이 있거나 관가(官家)에서 성곽(城郭)을 쌓게 되면, 용감하고 건장한 젊은이는 모두 등의 가죽을 뚫고, 큰 밧줄로 그곳에 한 발〔丈〕쯤 되는 나무 막대를 매달고 온 종일 소리를 지르며 일을 하는데, 이를 아프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게 작업하기를 권하며, 또 이를 강건한 것으로 여긴다."
其國中有所爲及官家使築城郭, 諸年少勇健者, 皆鑿脊皮, 以大繩貫之, 又以丈許木鍤之, 通日嚾呼作力, 不以爲痛, 旣以勸作, 且以爲健.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학계에서는 이를 지게로 해석한다. 실제로 등을 뚫거나 한 게 아니라 지게를 진 모습을 잘못 보아 착각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삼국지》를 기록한 서진 제국의 진수는 한반도에 와본 적이 없는 사람이므로,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부분은 대부분 들은 내용을 적은 것인 만큼 재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진한(辰韓)은 마한(馬韓)의 동쪽에 있다. 그곳의 노인들이 세대를 넘어 전하기를 자신들이 옛날 진나라의 사역(秦役)을 피하여 온 망명인이 한국에 왔다고 한다. 마한(馬韓)은 그 동쪽 땅을 떼어내 주었다.
辰韓在馬韓之東, 其耆老傳世, 自言古之亡人避秦役來適韓國 馬韓割其東界地與之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 '변진'# #
新羅者, 其先本辰韓種也. 地在高麗東南, 居漢時樂浪地. 辰韓亦曰秦韓. 相傳言秦世亡人避役來適, 馬韓割其東界居之, 以秦人, 故名之曰秦韓. 其言語名物, 有似中國人, 名國爲邦, 弓爲弧, 賊爲寇, 行酒爲行觴, 相呼皆爲徒, 不與馬韓同
신라는 진한의 한 종류였다. 땅은 고려의 동남쪽에 있고, 한나라 시대에는 낙랑의 땅이었다. 진한은 진(秦)한이라고도 하는데, 옛말에서 전하기로는 중국 진나라에서 노역을 피하여 도망 온 사람들로서 마한과 언어가 달랐으며 중국 사람과 언어가 비슷하다.
삼국유사》 <기이>1 -진한-#
북사 열전 신라편에서는 진한이 사실 진나라 유민들이 세웠다는 주장이 쓰여 있으며 삼국유사는 그것을 인용했으나, 《삼국사기》<신라본기>의 기록에는 진한의 원 거주민들이 고조선의 유민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실제로 발굴되는 유물의 양상도 고조선 계통으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진한(辰韓)은 고조선 계통의 종족으로 이해되고 있다.[23]




7.3. 교과서상 내용

  • 마한: 처음에 고조선을 공부할 때 '진국'의 언급이 마한의 등장을 암시한다. 54개국이 있었다라는 내용은 잘 나오지 않으며, 마한의 소국 중 백제가 있었다는 것만 주로 다뤄진다. 그나마 삼한 중 유일하게 목지국이 초기 마한의 맹주로 언급되는데 한성백제 시대 제8대 고이왕에게 멸망당했다고 되어 있다. 목지국 이외에는 침미다례 등 어느 정도 영향력을 끼친 나라도 일체 나오지 않는다. 삼한 중 멸망에 대한 이야기가 그나마 적혀있기라도 한데 제13대 근초고왕이 4세기 중반에 마한의 남은 세력을 병합했다라고 나온다. 물론 이 내용은 오직 문헌학적 내용이며, 고고학과는 관련이 없다.
  • 변한: 12개 나라가 있었다는 내용은 없으며, 변한의 땅에서 가야가 일어났다와 철이 많았다가 끝이다.
  • 진한: 과거에는 내물 마립간 시기 때 멸망당했다는 이야기가 서술되었으나 최근 교과서에서는 3~4세기까지 신라가 진한의 소국들을 병합시키고, 이후 내물 마립간 시기 때 김씨의 왕위 계승이 확립되었다는 이야기로 바뀌어서 나오고 있다. 왜곡에 대한 이야기는 확실히 줄었다. 사실 진한은 마한이나 변한과는 달리 애초부터 수장국이었던 사로국이 그 나머지 휘하 소국들을 직접 지배지로 편성해 신라로 순조롭게 전환되었으니, 신라가 진한을 멸망시켰다는 얘기는 자체로 성립 불가한 자기 모순이 될 수밖에 없다.
  • 문화: 소국을 다스리는 군장으로 신지, 읍차 등이 있고 '천군'이라는 제사장이 소도를 다스린다는 것, 5월과 10월에 제천 행사가 있다는 내용 정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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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지》 한전에서 당시 목지국 '진왕(辰王)'이 한(韓) 연맹체의 수장을 맡았으며 진왕은 마한에서 독점해왔다고 전하는데, 이 기록은 대체로 3세기 중반의 상황을 서술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를 통해 마한의 세력이 가장 컸으며, 마한 내 소국들이 가장 많았을 것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2]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삼한의 군장들은 나라 크기에 따라 신지(臣智)-검측(儉側,후한서)/험측(險側,삼국지)-번지(樊秖,후한서)/번예(樊濊,삼국지)-살해(殺奚)-읍차(邑借) 순으로 불렸다.[3] 예를 들어 신라는 사로, 시라, 서야, 서나, 신라 등으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모두 당시의 ㅅㄹ 계열 신라 고유어를 음차한 것이다. 현대에 이탈리아(Italia)를 이태리(伊太利, イタリー), 의대리(意大利, Yìdàlì) 등으로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후 지증왕 재위기에는 기존에 쓰이던 국호들 중 하나인 신라(新羅)에 '나날이 새로워져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을 부여하여 정식 국호로 확정지었다. 이렇게 음차할 한자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나라는 중국에서 한자로 가차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4] 실제로 신라에서는 17관등 중 제10관등인 대나마(大奈麻)를 한나마(韓奈麻)라고도 부르는 등 '한'을 음차하기 위해 한자 한(韓)을 사용하기도 했다.[5] 부여나 동예가 있다.[6] '두 개의 맥족'이라는 뜻으로 고구려와 백제를 의미함[반론] 그러나 삼국시대 말기로 가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을 하나로 묶어 삼한으로 호칭하는 일이 많았기에 먼저 삼한을 대집합으로 보아 삼국으로 보고, 맥족의 동족 계열인 고구려, 백제는 소집합인 양맥으로 분류하여 삼한에 대한 고구려와 백제를 종속관계로 보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시대 고구려 인물들의 묘지명의 내용은 고고학적인 삼한과 예맥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8] 이는 현대 중국에서 동북공정으로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고대 중국 왕조에서는 왕씨의 고려가 고씨의 고구려를 계승했으며, 고구려 외 다른 고대 한민족 계열 국가들까지 모두 계승한 것으로 인식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9] 그러나 진번과 진국이 실제로 국가 단위의 무역을 할만큼 세력을 갖추었다고 보기는 힘들다.[10] 진국이 진한이었다는게 아니고, 진한은 진국에 있던 소국연맹체 중 하나 라는 뜻. 이름이 비슷해서 부연설명한 것으로 보인다.[11] 춘추시대에는 주나라의 왕을 천자라고 부르며 봉건체제를 유지한 상황에서 구성국끼리 치고 박았고, 전국시대로 넘어가면 주나라가 망했다. 삼한 지역에서도 구성국들이 마한의 지도국인 목지국의 왕을 진왕이라 부르며 높여 칭했기 때문에 유사한 면모가 있다.[12] 삼한 중에서 유일하게 중앙집권국가로 발전하지 못했다. 변한의 소국들이 합병되고 남은 소국들이 개개의 국가로 발전한 형태이면서 연맹국가이다.[13] 고대의 강역 자체가 불분명한 측면이 너무 많은 데다 흐름이 명확하지 않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런 설도 있고 저런 설도 있다는 식으로 대부분이 결론나는데 이런 부분은 각종 한국사 관련 시험에서도 논란을 만들지 않기 위해 그냥 출제 자체를 하지 않는 편이고, 수업시간에 가르치기도 애매하다. 삼국시대 초기의 백제와 신라 또한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수많은 삼한 국가들 가운데에서 일부 지역만 영토로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한데, 현재까지 밝혀진 정도로는 백제와 신라 주변에 있었던 모든 삼한 국가의 이름과 역사를 정확히 알지도 못하거니와, 설령 모두 밝혀진다 해도 이를 교과 과정에 포함시키면 국사 수업 난이도가 급격하게 오를 수밖에 없다.[14] 백제는 마한의 소국들을 전부 철폐하여 직접 지배지로 완전히 편성한 성왕 재위기에 이르러서야 형식적으로 취해온 마한이라는 껍데기를 부정하게 되었다. 관념론적인 이야기지만, 이렇게 보면 마한은 부여가 중심지인 단계에서 완전히 소멸되어 백제로 거듭났다고 볼 수 있다.[15] 문안식, 요하 문명과 예맥, 2012[16] 위 단락 전체, 조진선, 진·변한의 형성과 분립 과정 -고고학 자료를 중심으로-, 2023.[17] 김현식, 남한 청동기시대 원형점토대토기문화 출현의 정치·사회적 의미, 2023[18] 단, 근래의 고고학계에서는 기원전 4-5세기 무렵 점토대토기문화의 출현에 관해서는 이주민의 영향이 비교적 적은 것으로 평가하지만, 기원전 2세기 무렵 만경강유역에서 나타나는 획기적인 사회변화 등은 여전히 준왕의 남천과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김승옥, 만경강유역 점토대토기문화의 전개과정과 특징, 2016 / 천선행, 만경강유역 韓 문화의 실체와 전개, 2023 / 조진선, 진·변한의 형성과 분립 과정 -고고학 자료를 중심으로-, 2023 등). 물론 이 경우에도 토착문화는 상당수 잔존, 새 문화요소와 융합하는 형태를 보이기 때문에 해당지역에서 지배층인 고조선계 이주민과 피지배층의 토착민의 문화가 공존 및 융화했다고 본다.[19] 송만영, 중부 지역 점토대토기 사회에 대한 다른 인식, 2019[20] 흔히 고구려 하면 떠올리는 만주의 평야지역은 이 때는 부여의 영역이었다. 고구려의 시작점이었던 압록강 중류는 강원도를 능가하는 산악지역이다. 첫 수도인 평지성 졸본성의 산성인 오녀산성만 봐도 매우 험준하다. 고구려는 평상시에는 평지성에서 생활하다가 전시에는 산성에서 농성을 했다.[21] 고구려의 초기 주요 지배지역인 남만주 지역은 산지비율이 많다. 그렇기에 사람이 살기 어렵다. 북만주나 요동쪽이 평야 비율이 많다.# 국경을 보면 요동부터 연해주까지 계속 해서 강이 있고 뒤에는 산이 있다.[22] 그럼에도 고구려의 국가 발전이 백제와 신라보다 훨씬 빠르긴 했다. 이미 1~2세기경 만주 남부와 함경도 영역을 거의 확보해 국가의 기본 체급을 갖췄고, 막 백제가 국가의 꼴을 갖추기 시작한 3세기 후반~4세기 초에는 아예 한사군을 축출하면서 요동, 평안도, 황해도 거의 전역을 차지했기 때문이다.[23] 마한을 이룬 고조선 유민들이 위만이 찬탈하기 이전의 고조선 원주민 세력이고, 진한을 이룬 고조선 유민들은 한무제의 공격으로 고조선이 멸망한 뒤에 내려온 것으로 본다면, 《삼국지》가 쓰인 당시 위나라 사람들이 진한의 원류를 '진(秦)'으로 보려던 시도를 아주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바로 위만 정권 시기의 고조선은 춘추전국시대초-한 교체기 시기에 유입된 이주민들이 주축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진한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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