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아가라 폭포 왼편이 미국, 오른편이 캐나다 쪽 폭포이다. 각각 직선과 U자의 형태를 띠고 있다. |
한국어 표기 | 나이아가라 폭포(瀑布) |
영어 표기 | Niagara Falls |
프랑스어 표기 | chutes du Niagara, chutes Niagagra |
좌표 | 43.080°N 79.071°W |
수원지 | 나이아가라강 |
폭포의 수 | 3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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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캐나다 국경에 걸친 폭포로서, 오대호 중 이리호[1]와 온타리오호[2] 사이를 잇는 나이아가라강(Niagara River)에 있는 폭포이다. 폭포 남쪽에는 나이아가라 협곡이 존재한다. 북미에서 가장 큰 폭포이며 이과수 폭포, 빅토리아 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로 꼽힌다.2. 구성
나이아가라 폭포는 두 개의 대형 폭포와 하나의 소형 폭포로 나뉜다. 원래는 하나였으나 오랜 시간에 걸쳐 지형이 깎여나가 폭포의 모양이 변했고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 두 개의 대형 폭포는 염소섬을 경계로 캐나다 폭포[3]와 미국 폭포[4]로 나뉜다. 소형 폭포는 브라이들 베일 폭포[5]이며, 신부가 쓰는 면사포와 모양이 비슷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루나 섬[6]을 경계로 주요 폭포들과 떨어져있고 미국에 속한다.나이아가라 폭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유량을 자랑하는 폭포이며 이 중에서도 말굽 폭포는 북미에서 가장 힘세고 강한 폭포이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캐나다 국경에 존재하며 1819년에 말굽 폭포를 기준으로 국경선을 정했지만 지속적인 침식과 건설로 인해 해당 지형이 변형되면서 국경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이 두 개의 폭포를 가지지만 정작 관광은 말굽 폭포가 있는 캐나다 쪽으로 많이 온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위스콘신 빙하에 생성되었다. 빙하의 육중한 무게에 눌려 나이아가라 지형이 융기를 하여 그에 따른 절벽이 형성되었다. 그 후 빙하가 녹으면서 오대호가 형성되었고, 오대호의 물이 대서양으로 빠지는 경로 중간에 위치한 절벽에 나이아가라 폭포가 형성되었다.
똑같이 세계 3대 폭포에 속하는 이과수 폭포, 빅토리아 폭포보다 폭은 좁지만, 각각 남미와 아프리카의 열대 지방에 위치해 365일 모습이 같은 두 폭포와 달리 한반도와 비슷한 위도에 위치해 있어 4계절의 모습이 모두 다르다.
3. 현황
오대호와 나이아가라 폭포의 모습
특이하게도, 뒤로 물러나고 있는 폭포다. 사실 거의 이렇게 생긴 대부분의 폭포[7]는 침식 작용으로 뒤로 물러나게 마련이지만, 나이아가라 폭포의 경우는 매년 엄청난 수량에 따른 침식으로 인해 매년 약 1m의 속도로 후퇴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즉 자연사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 역사의 개념으로 봐도 뒤로 물러나는 게 인식이 될 정도로 빠르게 침식해 들어가고 있는 케이스다.
연구에 따르면 이 폭포는 생성된 지 얼마 안 됐으며 결국엔 오대호의 하나인 이리호와 합쳐져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즉 이 폭포가 온타리오호와의 자연적인 둑을 파들어 가고 있는 꼴이어서 이리호에 도달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양의 담수가 유출되며 오대호의 수위는 약 54m 폭락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도 수력 발전소 건설 이후 수량을 조절하여 밤에는 폭포를 열지 않는 등으로 이전에는 연간 3피트(91cm) 후퇴하던 것이 1피트로 줄어, 그나마 남은 폭포의 수명이 5만 년으로 길어졌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높이는 캐나다 폭포가 53 m, 미국 폭포가 21~30 m다. 물의 양도 많기 때문에 수력 발전에 적합하다. 보통 늦봄~초여름에 유량이 많을 때면 분당 168,000 m3이 내려오며 보통 때는 110,000 m3 정도 내려온다. 하도 물이 많다 보니까 사시사철 물안개가 피어있고, 폭포 옆을 지날 때면 갑자기 웬 소나기? 하게 된다.[8]
1961년부터 수력 발전소가 건립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서구의 가장 큰 수력 발전소였다. 나이아가라 폭포 발전소에는 총 219만 kW 용량의 13개 발전기가 있다.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발전소의 1 ~ 5호기 설비 용량 362만 kW의 절반이 넘는 것에 비추어 보면 수력 발전소치고는 엄청난 발전량이라고 할 수 있다. 당장 나이아가라 폭포 발전소의 발전량으로 뉴욕, 토론토의 전력 수요까지 감당할 수 있다.
이런 국가 간 연동 체계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도 있으니, 1965년에 캐나다 측 발전소 하나가 조작 실수로 셧다운되는 바람에 캐나다의 온타리오주와 뉴욕시를 포함한 미 동북 지역에 걸쳐 정전을 가져온 흑역사도 있다.#
4. 역사
1840년에 찍은 최초의 사진 |
1647년 프랑스 선교사 루이 헤네핀이 백인 중 최초로 발견한 이래, 이과수 폭포, 빅토리아 폭포가 발견되기 전까지 세계 최고의 폭포였으며 1800년대 이후 관광이나 상업, 산업 용도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820년에 증기선이 운행을 했고 1840년에는 철도가 설치됐고 1961년부터는 수력 발전소가 설치됐다. 미영전쟁 후 1819년 이곳을 경계로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으로 설정되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첫 다리를 놓은 방법이 상당히 창의적이다. 1848년 공학자이자 현수교의 열렬한 애찬론자였던 찰스 엘릿 주니어(Charles Ellet Jr.)가 공사 계약을 따냈는데, 폭포의 특성상 중간에 기둥을 놓지 않고 곧바로 밧줄을 폭포 건너편으로 보내야 했다. 이에 여러 아이디어들이 나왔는데, 그중에는 심지어 대포알에 밧줄을 묶어서 쏘아 보내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엘릿이 최종적으로 택한 방법은 연(kite)이었는데, 이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유명한 피뢰침 실험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제안한 틈새를 건너는 법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엘릿은 이를 다리를 홍보할 수단으로도 이용하고자 연날리기 대회를 열어 아무라도 폭포 건너편으로 연을 날려 보내는 사람에게는 상금 5달러(현재 가치 약 195달러)를 주겠다고 했다. 이에 인근 마을에서 소년들이 몰려들었고, 이윽고 16세의 호먼 월시(Homan Walsh)라는 소년이 연을 폭포 건너편으로 보내는 데에 성공했고, 이렇게 이은 최초의 밧줄을 토대로 다리를 지을 수 있었다.
5. 관광
보통 캐나다 폭포가 미국 폭포에 비해 그 규모와 경관이 훨씬 뛰어나므로, 흔히들 나이아가라 폭포라 하면 캐나다 폭포를 떠올린다. 게다가 캐나다 쪽에서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모두 다 구경할 수 있고, 폭포에 대고 레이저 쇼도 해주고 유람선 타고 물도 맞아볼 수 있고 폭죽도 쏘아주고 공원도 있고 호텔[9]도 많고 식당도 많고, 아이스 와인 와이너리도 있는 등 캐나다 쪽이 훨씬 더 관광지로 개발이 잘되어 있다. 심지어 캐나다 여권에도 나이아가라 폭포 그림이 있다.
실제로도 미국 폭포는 그냥 직선 폭포라서 위나 옆에서 보면 잘 안 보여서 그냥 크다고 느끼는 정도고, 말굽 폭포도 미국 쪽은 주변 산책로 + 공원 + 주차장 정도로 끝나는데 거기다가 지형이 애매해 조금 떨어진 데서 봐야 하고 바위가 많아서 물이 심하게 튀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캐나다 쪽에서 미국 땅에 있는 전망대를 보면 어떻게든 자기 땅에서 폭포를 보려고 애쓴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미국 쪽에서 보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가버린다.
미국 쪽에서 관광을 왔을 경우 한국인이면 어차피 여권 지참이고, 절차도 간단[10]하니깐, 국경을 넘어서 캐나다 쪽으로 가보자.
지형도 깔끔해서 물보라가 적고 시선도 미국 측은 U 자의 오른쪽, 그것도 바깥쪽에서 보게 되어 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잘 볼 수 없는데 캐나다 쪽은 U 자를 따라가면서 땅이라서 지형상으로 전경을 보기 쉽게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직선을 따라서 드라이브하면 캐나다 폭포와 미국 폭포를 전부 정면에서 차에서 편하게 볼 수 있다. 폭포 근처로 내려가려면 산책로를 따라서 좀 걸어야 하고 그마저도 폭포와 좀 떨어져 있는 미국과 비교하면 미국이 장사 안되는 이유가 뻔히 보인다.
자기 얼굴에 있는 건 보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 쪽에서만 보고 실망하고 가려 했다가 국경 건너와서 감격하고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게다가 캐나다 쪽이 헬기 투어나 동굴을 통해 폭포 안쪽에서 볼 수 있는 액티비티[11]도 있어서 캐나다 쪽이 이득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실제로도 미국 쪽 시설은 겨울에는 영업을 안 하는 데 반해 캐나다 쪽은 성황리에 하고 있다.
그래도 캐나다 쪽이 시설 이것저것 지어놓고 대놓고 개발해 놓은 반면 미국 쪽은 산책로나 주변을 공원 분위기로 해놓고, 래프팅 같은 액티비티를 준비해 놓는 등 나름대로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해서 미국 관광 왔으면 캐나다 넘어가 볼 가치는 있는데, 캐나다 왔으면 미국으로 가지 않는 이상 굳이 넘어갈 필요 없다.
하지만 보통 이곳에 여행을 가면 배를 타고 나이아가라를 가까이서 구경하게 되는데 미국 쪽에서 운영하는 Maid of the Mist를 타도 캐나다 폭포이자 위에서 설명한 가장 유명한 말발굽 폭포를 배에서 구경할 수 있다. 물론 멀리서 폭포가 떨어지는 것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면 캐나다에 가는 것이 정답이다.
미국에서 나이아가라 폴스 공항이나 다른 인접한 행정 구역의 지역 공항(Regional airport)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버스를 타고 가는 게 일반적이나 자가용이나 렌트카를 이용할 경우 나이아가라 폴스 주립 공원 3번 주차장을 목적지로 해서 가는 것이 좋다. 내비게이션이든, 관광 안내소이든 나이아가라 폴스 국립 공원이라고 하면 고트섬 입구로 안내해 주는데 폭포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위치에서 좀 많이 떨어져 있다. 캐나다로 건너가기 위해 이용하는 레인보우 브리지에서도 멀찍이 떨어져 있기도 하다. 다만 미국 쪽의 관광 시설인 고트섬 관광지나 Cave of the Wind를 이용하고자 한다면 안내받은 대로 나이아가라 폴스 주립 공원 입구에 차를 주차하는 것도 좋다.
인접한 대도시로는 뉴욕 버펄로시가 있다. 버펄로시와 나이아가라 폭포 사이에는 나이아가라 폴스라는 작은 도시가 붙어있고, 강 건너편에는 또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속한 나이아가라 폴스라는 같은 이름의 도시가 있다. 두 도시는 서로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국가를 넘나드는 관광도 가능하다. 국경을 넘지 않아도 차 타고 다니다 보면 갑자기 핸드폰 로밍 표시가 뜨기도 한다. 참고로 11월만 돼도 이곳은 매우 춥다.
캐나다 쪽에서는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가기가 수월한 편이다. 캐나다 쪽에는 나이아가라 폭포역이 존재하는데, 인근 토론토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이다. GO 트랜짓에서 매일 나이아가라 폭포행 열차가 운행 중이고, 비아 레일도 운행 중이다. 참고로 뉴욕시 - 토론토를 운행하는 국제열차 Maple Leafs도 나이아가라 폭포역에 정차하니 참고. 역 옆에는 시외버스 터미널도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역에서는 시내버스를 이용해서 폭포 관광단지로 이동 가능 하다.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 관련 사이트
-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청 공식 사이트(한국어판)
- 온타리오주 나이아가라 폭포 공식 관광 사이트
-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 정보 사이트(미국 측)
- 나이아가라 폭포 유람선 "안개 아가씨"호 홍보 사이트(한국어판)
나이아가라 폭포 24시간 라이브: 한국 밤 10시가 미국 동부 아침 8시이다. 미국 밤 시간대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2024년 여름 동안 매일 밤 10시에 5분 동안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불꽃놀이가 진행된다. 또한, 나이아가라 폭포는 매일 밤 다양한 색상의 조명으로 밝게 비춰진다. 조명 프로젝트는 최근 에너지 효율이 높은 LED 기술로 교체되어 더 밝고 효율적인 조명 효과를 제공한다. #
6. 나이아가라 폴스
나이아가라 폴스(Niagara Falls)는 나이아가라 폭포 바로 옆에 위치한 캐나다 온타리오의 도시이다. 나이아가라 폴스에는 2021년 통계에 따르면 94,415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미국 뉴욕 주에 속하는 같은 이름의 도시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7. 매체
- 나이아가라(영화): 마릴린 먼로 주연 영화.
- 나이아가라(보드 게임): 이 폭포를 소재로 한 보드게임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크게 관련이 있는 게임은 아니고, 폭포 중에 제일 유명해서 이름을 차용한 듯.
- 브루스 올마이티: 버펄로시를 무대로 하는 영화 주인공 브루스 놀란(짐 캐리 분)이 생방송 취재를 나갔다가 에반 벡스터(스티브 카렐 분)에게 차기 앵커를 빼앗겨서 자신이 물먹었다는 소식을 듣고 뉴스 생방송 중계 중에 폭주하고 마는데, 이때 취재를 나갔던 곳이 바로 나아이가라 폭포 보트 투어 현장이다. 작중에서도 쏟아지는 물줄기 때문에 우비를 입고 머리에는 작은 우산 모양 모자까지 쓴다.
- 패키지로 세계일주 - 뭉쳐야 뜬다: 37회에서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 루트를 체험했다.
- 2013년 고 1 6월 학력평가의 영어듣기: 남자가 뉴욕에 간다고 했는데, 여자가 나이아가라 폭포를 추천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뉴욕이면 맨해튼이지 웬 나이아가라 폭포?'라고 반응할 법도 한데 사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뉴욕주에 위치한다. 한국과 비교하면[12] 엄청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미국의 무시무시한 땅덩이 크기상 그 정도는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야 들러볼 수 있는 거리다. 다만 상술했듯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 쪽에는 별로 볼 것이 없고 캐나다 쪽에 볼 만한 게 몰려 있다.
8. 여담
얼어붙거나 말라붙은 사례 목록.- 1911년에는 엄청난 한파로 폭포가 얼어붙은 적이 있다.
- 1938년에도 한파로 얼어붙었다.
- 1969년엔 미 육군 공병대가 나이아가라 폭포를 말려버린 적이 있다. 폭포 바닥에 쌓인 바위들을 치우고, 침식을 예방하는 공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강 상류에 댐을 쌓아버렸고, 일 끝난 후 공병답게 폭파시켜 없애버렸다.
- 2014년 연초 북미 지역에 몰아닥친 기록적인 한파에 103년 만에 폭포가 얼어붙었다. 완전 결빙은 아니고 부분 결빙이라고 한다. #
- 2017년~2018년 한파의 여파로 2014년에 이어서 폭포가 다시 한번 얼었다. #
- 신대륙의 랜드마크답게 슬픈 전설이 하나 서려있다. 먼 옛날, 이곳에 살던 어느 북미 원주민 부족은 1년에 한 번씩 폭포의 신에게 제물을 바쳐야 했는데, 부족의 추장은 제비뽑기로 자신의 하나뿐인 딸이 선택되자, 공정성과 추장으로서의 위엄을 위해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인다. 마침내 딸이 제물로 바쳐지던 날, 그녀는 꽃으로 장식된 작은 조각배를 타고 폭포를 향해 떠밀렸다. 그녀의 슬픈 절규가 물소리에 묻혀버리려던 찰나, 멀리서 그녀의 아버지인 추장이 배를 타고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두 부녀는 손을 맞잡은 채 함께 폭포 아래로 사라졌다.
- 일종의 도시전설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 온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 이 인물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본 것을 말하였으나, 모두 그가 헛것을 본거라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히려 증거를 내놔보라고 하자, 딱히 입증할 만한 게 없었던 그는 "그 증거란 바로, 내가 그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13]
- 다이빙 불가
- 과거에는 '나이아가라 폭포 떨어지기'라는 묘기 비슷한 것이 있었다. 그냥 간단하게 나무통(오크통)에 들어간 다음 폭포로 뛰어드는 것으로 속임수 같은 것은 없다. 당시 기록을 보면 사람이 든 통을 그냥 폭포 위에다 내다 던진다.[14][15] 샘 패치는 1829년 세계 최초로 고트섬에서 뛰어내렸는데, 놀랍게도 목숨을 부지했다. 최초로 성공한 사람은 1901년에 나왔는데, 63세의 애니 에드슨 테일러(Annie Edson Taylor)라는 할머니였다. 그녀는 '안개의 여왕'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 한 밑천 잡으려고 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 그 뒤로 영국인 Bobby Leach가 시도했다가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지는 바람에 법으로 금지되었다. 현재도 나이아가라 폭포에서의 다이빙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벌금이 1만 달러에 달한다. 참고로 Bobby Leach는 병원에서 퇴원한 뒤에 오렌지 껍질을 밟고 다리가 부러진 뒤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 메이저리그 레전드인 에드 델라한티는 커리어가 끝나지 않은 1903년 술에 취한 채로 나이아가라 폭포 다이빙을 했다가 그대로 사망했다.
- 벌금도 벌금이지만, 이곳의 폭포에서 다이빙을 하면 정말로 사망할 수 있다. 실제로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관람하던 일본인 여학생이 2011년에 추락사한 일도 있으며 폭포에서의 사망 사례가 상당히 많다. 영화에서나 폭포에 뛰어들지, 착수할 때 충격도 큰 데다가 폭포의 낙수점 부근은 와류가 심해서 물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익사할 확률이 높다. 또한 낙수로 인해 생기는 물거품은 부력을 약화시켜 더욱 물 위에 뜨기 힘들게 만들며 나이아가라 폭포뿐 아니라 모든 폭포에 적용되는 사항이다. 1961년에는 아빠와 함께 같이 배를 타다가 물에 빠진 두 아이들 중 한 아이가 구명조끼 덕에 운 좋게 살아남은 사례가 있지만, 그건 정말로 운이 좋은 사례일 뿐이다.[16] 배에 구멍을 뚫어 폭포로 떨어지는 걸 막은 캐나다 사람 이야기도 있다.
- 캐나다 쪽 폭포 근처에 폭포 횟집이 있다.기사. 2004년 5월 29일자 KBS2 스펀지에 나왔으며 지식의 별은 3개 반에 그쳤다.(영상)
- 2021년, 미국의 한 여대생이 애인의 이별 통보에 나이아가라 폭포에 투신했다. 애인의 이별 통보에 나이아가라 폭포에 투신한 美 여대생
- '안개 아가씨(Maid of the Mist)'라는 이름의 유람선은 관광객들을 싣고 캐나다 쪽이나 미국 쪽에서 나이아가라 폭포의 물보라 속으로 들어갔다. 이 유람선은 1846년 최초로 운영한 이래 2022년 기준으로도 계속 운행 중이다.[17] 위에 서술한 브루스 올마이티 영화에 등장하는 유람선이 이것이다. 안개 아가씨 홈페이지에 가 보면 위에 언급한 애니 에드슨 테일러도 나이아가라 유람선 역사의 한 축으로 기록해 놨다.
-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약 20km 정도 떨어진 나이아가라 온더레이크라는 마을이 있는데 (캐나다) 해변에서 날씨가 좋은 날엔 무려 직선거리로 50km나 떨어진 토론토가 보인다.
- 나이 많은 사람들이 가면 젊어진다고 하는 아재개그가 있다. 나이야 가라!
- 오대호 중 이리 호와 온타리오 호를 수운으로 연결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중 하나이다. 그래서 이리 운하라 하여 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우휘하는 운하가 있다.
- 2024년 4월 8일에 있었던 전면 일식으로 인해 약 백만 명의 관광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어 지역 당국이 비상사태를 선포한적이 있다.
9. 관련 문서
[1] Lake Erie[2] Lake Ontario[3] 말굽 폭포, Horseshoe Falls / Les chutes du Fer-à-Cheval[4] American Falls[5] Bridal Veil Falls[6] Luna Island[7] 절벽 암반에서 낙하하는 수량 적은 앙헬 폭포와 같은 생김새가 아닌, 강 본류가 직접 낙하하는 형태인 이과수 폭포나 빅토리아 폭포 등.[8] 특히 자동차. 와이퍼 작동해 주고 혹시라도 열린 창문 없는지 주의하자.[9] 온타리오주 나이아가라 폴스 시티에는 폭포 전망을 자랑하는 특급 호텔들이 즐비하다. 룸에서 대형 전망창을 통해 폭포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고 호텔 내의 식당이나 바 라운지 등도 폭포를 바라보며 식사와 음주를 즐길 수 있게 꾸며져 있다.[10] 레인보우 브리지는 차량과 도보 모두 이동이 가능하다. 도보 통행 기준으로 미국에서 캐나다로 갈 때는 공짜이지만, 미국으로 돌아올 때는 캐나다 국경에서 월경비를 지불해야 한다. 2018년 5월 기준으로 1달러이며 시즌별로 다르다고 하니 참고. 차량을 가지고 월경할 경우, 차안도 대강 쓱 보고 만다. 사유를 물으면 폭포 보러 왔다고 하면 씩 웃어준다. 다만 반대로 미국으로 들어올 때는 CBP 측에서 트렁크도 열어보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등 상당히 빡세다.[11] 대신 사진도 못 찍을 정도로 물보라가 심하다. 겨울에는 당연히 폐쇄. 이에 대응해서 미국 측은 미국 폭포에 "Cave of the Wind" 라는 비슷한 시설을 설치했으나 이쪽은 아메리카 폭포의 바깥쪽에서 폭포에 최대한 접근하는 코스이며 폭포 안쪽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그래도 평은 둘이 비슷하다는 모양.[12] 뉴욕 맨해튼과 나이아가라 폭포까지는 직선 거리로만 500km 떨어져 있는데, 평양에서 부산까지가 대충 이 정도 된다.[13] 영화 위대한 피츠카랄도에서 같은 일화가 언급되는데 미국이 아직 미지의 대륙일 때 한 프랑스 사냥꾼이 백인으로서 처음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로 나온다.[14] 생짜 오크통을 쓴 건 아니고 맞춤 제작을 하거나 추가 자재로 보강을 해 안전성을 높인 물건을 썼다. 중간에 통이 깨지거나 물이 새면 익사했기 때문. 아래의 바비 리치는 철제 밀봉통을 썼다.[15] 미국 고전 애니메이션 <딱따구리>(우드페커)에 보면 빌런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나무통에 들어가서 떨어지고 그걸 구경꾼들이 환호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빌런은 원해서 그런 짓을 한 건 아니고 딱따구리를 괴롭히려다가 역관광당한 것.[16] 같이 물에 빠진 다른 아이는 추락 직전에 행인들에 의해 무사히 구출되었다.[17] 다만 폭포가 얼어붙거나 미군 공병대가 강을 말려버리거나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중간에 결항하는 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