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 캐나다 | 프랑스 |
1. 개요
미국, 캐나다, 프랑스의 삼각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3국은 언어, 문화, 종교 등에서 공통점이 존재하며 교류, 협력이 활발하다.2. 역사적 관계
2.1. 근세
오늘날 미국의 북동부에 해당하는 지역 해안은 영국인들이 이주 및 정착하면서 13개 식민지가 되었다. 프랑스는 자크 카르티에가 퀘벡 일대를 탐험하면서 알려졌고, 1608년부로 프랑스인들은 모피 무역을 목적으로 퀘백 일대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인들은 퀘벡 일대 외에도 루이지애나 일대에도 프랑스인들이 정착했다. 당시 루이지애나는 지금과 달리 매우 큰 영토였다.초창기 퀘벡의 누벨프랑스 식민지에는 모피 무역업에 종사하는 남성 이민자와 현지처에 해당하는 원주민 여성 그리고 이들 사이의 혼혈인 메이스Meis가 살았다. 당시 프랑스인 여성이 이민 오는 경우는 드물었으며 인구는 별로 늘지 않고 있었다. 프랑스 식민지 인구가 비교적 소수였기에 영국 및 스페인 식민지 인구와 경쟁하는데 있어서 많이 불리한 환경이었다. 여기에 자극받은 프랑스 왕실은 1663년부로 15세에서 30세 사이의 미혼 여성 800여명의 여러 물자와 지참금을 딸려 보내 정착지에 합류시켰는데, 이들이 오늘날 퀘벡의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직계 기원을 이룬다. 당시 프랑스는 딸랑 800명민 보낸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들에게 출산 장려금을 후하게 주었기 때문에 새로 이민 간 여자들은 애를 되는대로 많이 낳았고, 프랑스 지배가 끝난 이후에도 다산 문화가 꽤 오래 이어졌다. 1700년 조사 결과 인구 약 2만여 명 정도였던 퀘벡 프랑스인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퀘백의 프랑스어 사용자들은 사실상 당시 파견된 여성 800여 명의 후손으로 상당히 제한된 유전자 풀을 가진다 한다.#
프랑스와 영국은 북아메리카에서 전쟁을 치렀고 결국 퀘벡 일대를 포함한 캐나다 지역은 영국의 지배하에 놓였고 프랑스는 북아메리카에서 루이지애나 일대만 유지했다. 퀘벡은 영국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영국 정부가 퀘벡 주민들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한다고 안심시키면서 퀘벡의 프랑스계 주민들은 심각한 반란을 일으키지 않고 순순히 영국의 지배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13개 식민지와 영국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당시 부르봉 왕조는 미국 독립군을 지원했다. 13개 식민지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미국이 되었다.[1]
2.2. 19세기
루이지애나 일대는 한동안 프랑스의 지배하에 놓였다가 잠시 스페인령이 되었다. 스페인은 이후에 프랑스에게 다시 루이지애나를 돌려줬지만, 미국 정부와 프랑스 정부와 루이지애나 매입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다. 프랑스의 알짜배기 식민지이자, 루이지애나와 프랑스 본토를 잇는 항로에 있던 생도맹그가 1791년 아이티 혁명으로 독립하자 프랑스로서는 루이지애나가 유지할 가치가 없는 식민지가 되었고, 결국 프랑스는 1803년부로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팔아버렸다. 프랑스가 스페인과 서로 루이지애나 좀 가져가라고 양보한 사례에서 보듯이 당시 루이지애나 해안 지대 식민지는 척박하고 가치 없는 땅으로 여겨졌었다. 루이지애나에 정착했던 케이준들 그리고 이들이 데리고 있던 흑인 노예들이나 생도맹그에서 탈출한 프랑스인 혹은 크리올 난민들 역시 미국 국민이 되었고, 이들 역시 프랑스계 미국인의 한 갈래를 이루게 되었다.그러나 프랑스계 미국인 사회에서 루이지애나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적었다. 퀘벡 프랑스인들은 19세기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과 인구증가율이 높은 민족 집단 중 하나로 추정되며, 심지어 1840년대에서 1930년대 사이에 1백만여 명에 달하는 퀘벡 프랑스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상당수가 메인주 북부 등등에 정착하였는데, 이들 퀘벡 출신들의 인구가 루이지애나에 케이준이나 크레올 등등보다 훨씬 더 많았다. 참고로 캐나다에서 이주해온 프랑스어 사용자들은 프랑스계 미국인 겸 캐나다계 미국인이라는 이중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오늘날에도 이들의 후손들은 미국 인구 통계 조사에서도 이중분류되는 편이다.
19세기 중반까지 캐나다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캐나다 자치령을 통해 독립했다.
2.3. 20세기
제1차 세계 대전이 되자 미국 정부는 독일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전쟁을 치렀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에 미국은 나치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했고 유럽 전선에서 프랑스 레지스탕스를 도왔다. 그리고 군대를 파견해 나치 독일군과 전쟁을 치렀다. 캐나다는 영국군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전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과 프랑스는 상임이사국이 되었다.냉전시절에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를 결성해 소련을 견제했다. 그리고 미국은 마셜 플랜으로 서유럽 국가들과 남유럽 국가들을 지원했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는 G7을 결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미국과 갈등이 생겨나자 잠시 나토를 탈퇴하기도 했다. 캐나다는 퀘벡을 방문한 드골 전 대통령의 연설이 퀘벡 독립운동을 자극하자 양국간에 갈등이 생겨났다. 90년대초에 프랑스는 나토에 복귀했고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었다.
2.4. 21세기
3국은 21세기에도 교류, 협력이 활발하다. 3국은 나토, G7에 가입되어 있다. 그리고 미국과 프랑스는 상임이사국에 속해 있다. 3국은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이 매우 강하고 이중 미국은 초강대국에 속해 있다. 캐나다는 지역강국에 속해 있고 프랑스는 강대국에 속해 있다.3국은 2010년대초에 러시아가 유로마이단사태로 크림 반도합병, 돈바스 전쟁을 일으키자 러시아를 제재했다. 그리고 중국이 시진핑 정권의 출범 이후, 점차 갈등이 커지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하지만 2016년에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프랑스와 캐나다는 미국과 갈등이 생겨나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3국간의 관계가 개선되었다.
G7국가들이 대러제재를 유지하고 러시아를 고립시키기로 했다.#
3. 문화 교류
3국은 문화교류가 활발하다. 캐나다와 프랑스내에선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와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는 미국과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영어가 주요 외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캐나다는 퀘벡과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영향으로 영어와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미국은 프랑스어가 주요 외국어로 지정되어 있고 프랑스어 화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미국내에서 프랑스 문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프랑스어는 캐나다 동부 퀘벡주에서 널리 사용되며, 퀘벡과 인접한 온타리오 주에서도 전체 인구의 4% 가까이가 프랑스어를 모어로 사용한다. 미국의 루이지애나 주의 경우 오늘날에도 프랑스어가 나름 활발하게 사용되는 지역이긴 하지만 퀘벡 수준까지는 아니다. 프랑스 문화는 미국과 캐나다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남겼다. 일단 프랑스가 근대까지 유럽 최고의 문명국 중 하나였던 만큼 미국 상류층들은 프랑스 문화를 어느정도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미국과 캐나다가 프랑스 문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상당히 달랐다. 퀘벡주의 프랑스어 사용자들이 거의 다 백인이었던 것과 다르게, 미국의 루이지애나의 프랑스어 사용 인구 중 상당수는 백인이 아니라 크레올들이었다. 퀘벡 주가 과장 좀 섞어서 프랑스를 북미 한복판에 이식한 거 같다는 소리를 듣는 것과 다르게, 루이지애나에서는 프랑스 문화와 미국 문화가 다소 오묘한 방식으로 혼합된 역사가 있는 것이다. 프랑스가 루이지애나를 미국으로 팔아버릴 당시, 루이지애나 흑인들은 미국 여타 지역 흑인들과 다르게 이런저런 권리를 보장받았고, 이러한 연유로 초창기 미국 흑인 문화에서 루이지애나 크레올들의 역할을 빼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아이티 혁명 당시 미국으로 피난 온 흑인들 역시 농장에서 노가다하다가 백인들 죽이겠다고 반란을 일으킨 흑인들이 아니라, 다른 흑인들에게 백인 혼혈 혹은 배신자로 쫓겨서 위협을 느끼고 도망온 사람들이었다. 루이지애나 흑인들 중에서는 농장주랑 흑인 처첩 사이의 자녀라든지 등등 이유로 나름 우수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고, 이들은 흑인 문화와 미국 문화, 프랑스 문화를 독창적으로 해석, 발전시키면서 미국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던 것이다. 과언이 아니고 바로 루이지애나의 크레올들 덕분에 재즈라는 음악 장르가 탄생하였다.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에서 쓰이는 북미 수화[2]는 프랑스 수화[3]와 같은 어족인데 그 이유는 미국, 캐나다에서 수화를 전해준 기관이 프랑스의 농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과는 같은 언어를 쓰지만 수어 체계는 다른 언어 체계를 쓴다.
4. 교통 교류
3국을 잇는 항공노선이 많다보니 미국인의 프랑스 관광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캐나다인들의 미국 관광, 프랑스 관광도 활발하다.5. 군사 교류
3국은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되어 있다. 그리고 군사적인 협력도 활발한 편이다. 캐나다는 미국과 방위협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미군과 프랑스군, 캐나다군이 아프간, 이라크에 잠시 주둔한 적이 있었고 3국간의 군사협력을 하고 있다. 미군은 프랑스에 주둔하지 않고 있다.2021년 9월에 미국, 호주, 영국이 AUKUS를 결성하자 프랑스는 반발해서 외교갈등이 일어났다. 캐나다는 이에 우려를 나타냈다.
6. 관련 문서
- 미국/외교
- 캐나다/외교
- 프랑스/외교
- 5개의 눈[4]
- 상임이사국[5]
- 프랑코포니[6]
- 미주기구[7]
- G7
- 나토
- 태평양 공동체[8]
- 강대국 / 초강대국 / 지역강국
- 미군 / 캐나다군 / 프랑스군
- 미국/역사
- 캐나다/역사
- 프랑스/역사
- 미국/경제
- 캐나다/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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