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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양국은 근대 이전 유럽의 패권을 놓고 대결하던 역사적 경쟁관계였다.2. 역사적 관계
2.1. 18세기 이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관계는 프랑스 왕국의 발루아 왕조와 신성 로마 제국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합스부르크 가문의 대결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발루아부르고뉴 가문 출신 부르고뉴 공국의 군주인 용담공 샤를 1세가 딸 마리 드 부르고뉴만 남기고 전사하자 프랑스 국왕 루이 11세는 부르고뉴를 침공하여 부르고뉴에 대한 야욕을 드러냈다. 막시밀리안 1세는 프랑스의 위협을 느끼고 마리 드 부르고뉴와 결혼하여 보호자를 자처하면서 프랑스와 충돌했다. 두 진영은 30년 전쟁과 9년 전쟁에서 다시 충돌했다.2.2. 18세기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이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충돌했고 여기서는 사실상 무승부로 끝났다.[1] 합스부르크 가문은 영국을 끌어들여 프랑스를 견제했지만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서 영국과의 동맹은 결렬되었고 7년 전쟁에서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의 편에 섰다. 하지만 7년 전쟁의 패배로 인해 동맹은 와해되었다. 동맹이 냉각되면서 프랑스는 스페인과의 관계에, 오스트리아는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과의 관계에 집중했다.양국은 이후 공수 동맹을 체결하고 부르봉 왕조와 대대적인 결혼동맹을 맺었는데, 여기서 1770년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당시 루이 15세의 왕세자였던 루이 16세와 결혼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으로 프랑스 왕국이 무너진 이후 양국의 관계는 역전되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프랑스 혁명을 위기로 인식하고 다른 국가들과 동맹을 결성하여 프랑스 혁명 전쟁에 맞섰지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등장으로 인해 실패했다.
2.3. 19세기
나폴레옹이 프랑스 제1제국을 선포한 이후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는 다시 충돌했다. 위기에 직면한 프란츠 2세는 오스트리아 제국을 선포하여 프랑스에 맞섰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 오스트리아는 상실했던 영토 대부분을 수복하고 빈 체제를 주도했다.1848년 프랑스 2월 혁명과 1852년 루이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2제국 선포 이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를 놓고 대립했고 이때 프랑스가 승리하여 이탈리아 통일이 이루어진다. 오스트리아는 이후 1867년에 헝가리와의 대타협을 통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선포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고 독일 제국이 출범한 이후, 오스트리아는 러시아 제국과 함께 3제 동맹을 체결하여 프랑스를 견제했지만 불가리아 문제를 놓고 3제 동맹은 결렬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이후 1879년에 이중동맹을 체결했고, 1882년에는 이탈리아 왕국까지 합하여 삼국 동맹을 체결했다. 여기에 맞서 프랑스는 러시아 제국과 러불동맹을 체결한다.
2.4. 20세기
러일전쟁의 발발 이후 프랑스는 영국을 끌어들여 영불협상을 타결했고, 러일전쟁이 끝난 이후 삼국 협상으로 확장했다. 삼국 협상과 삼국 동맹의 대립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고 제1차 세계 대전은 삼국 협상의 승리로 끝난다. 생제르맹 조약 이후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의 독립을 약속했다.2.5. 21세기
21세기에 들어서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유럽연합에 가입했고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3. 관련 문서
- 프랑스/외교
- 오스트리아/외교
- 유럽연합
- 프랑스/역사
- 오스트리아/역사
- 프랑스/경제
- 오스트리아/경제
- 프랑스/문화
- 오스트리아/문화
- 프랑스인 / 오스트리아인
- 프랑스어 / 독일어 / 천주교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서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중부유럽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