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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 리히텐슈타인 |
1. 개요
오스트리아와 리히텐슈타인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2. 역사적 관계
2.1. 중세
리히텐슈타인은 오스트리아와 함께 동프랑크 왕국의 일부였다. 동프랑크 왕국은 신성 로마 제국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리히텐슈타인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지였다.2.2. 근세
신성 로마 제국에서 합스부르크 왕조가 오스트리아 일대와 리히틴슈타인을 포함했다. 오스트리아쪽의 합스부르크 왕조는 리히텐슈타인을 영지로 두고 있었다.신성 로마 제국은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공국들로 사실상 나뉘어졌다. 합스부르크 왕조는 오스트리아와 리히텐슈타인을 포함한 지역을 통치했다.
2.3. 19세기
신성 로마 제국이 나폴레옹의 군대에 의해 멸망했다. 당시 리히텐슈타인은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였지만, 멸망 이후에는 독립국이 되면서 오스트리아쪽과는 차이점이 생겨났다. 그래도 여전히 리히텐슈타인은 공가가 오스트리아 빈에 머물고, 리히텐슈타인 내각에는 오스트리아인이 임명되는 등 여전히 오스트리아의 속국 비스무리하게 있었다. 보오전쟁 당시에는 리히텐슈타인이 오스트리아에 80명의 병력을 파견했다 그리고 합스부르크 왕조는 헝가리 귀족들과 대타협을 통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되었다.2.4. 20세기
1903년 리히텐슈타인의 알로이스 공자가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 아말리 여대공과 결혼했다.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엄연한 통치가문이긴한데 애매한 취급을 받았는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왕조와의 혼맥으로 본격적으로 통치가문 대우를 받게 된다.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패하고 각 독립국들로 해체됐다. 리히텐슈타인은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 중립을 선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리히텐슈타인은 스위스의 보호국이 되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스위스와 함께 중립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