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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과 알바니아의 외교관계에 관한 문서이다.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파리 강화 회의에서 알바니아를 승전의 보상격으로 이웃나라들(세르비아, 그리스, 이탈리아)에 분할하자는 연합국들(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제안에 거부권을 행사, 1919년 5월 6일에 "알바니아는 독립해야 한다"고 말하며 알바니아의 독립을 적극 지지했고, 알바니아는 국체를 보전함과 동시에 국제연맹의 회원국이 되었다. 때문에 알바니아에서의 우드로 윌슨은 한국에서의 더글라스 맥아더 이상으로 여겨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수준인 셈. #미국은 알바니아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인 1922년에 알바니아와 외교 관계를 맺었다. 미국은 아흐메트 조구가 알바니아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대사를 파견하였고, 1928년 아흐메트 조구가 알바니아의 국왕에 오른 뒤에도 알바니아의 정치적 변화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이탈리아 왕국이 알바니아를 침공하면서 양국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이후 알바니아는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양국의 관계는 냉각되었다.
양국의 냉각된 관계는 엔베르 호자가 죽은 뒤인 1991년 3월 13일 미국과 52년 만에 재수교한 후[1] 1991년 6월 22일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이 알바니아를 방문하면서 다시 해빙기를 맞이하였고[2][3], 이듬해인 1992년에는 살리 베리샤의 대통령 당선을 지지하였다.[4] 미국은 또한 코소보 전쟁에서 알바니아를 지원하였다. 1999년 매들린 올브라이트와 2003년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알바니아 방문 당시 이들은 '록 스타처럼' 대우받았다고 전해진다.
2.2. 21세기
2007년에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알바니아를 방문하여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5] 다른 영상 그래서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에는 부시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으며, 부시가 들른 빵집은 전국적인 명소가 되었고, 심지어 어느 마을에는 부시의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다. 2009년에는 알바니아의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가입을 지지하였다. 알바니아는 공산정권이 붕괴된 뒤에 친서방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이후로도 미국과 알바니아는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2012년 갤럽이 조사한 미국 글로벌 리더십 보고서에 따르면 알바니아인의 80%가 미국의 리더십을 지지했다고 한다. '미국의 리더십'이라고 했으니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호감도는 이보다도 높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6] 이는 코소보에 버금가는 수준이며, 때문에 알바니아인들은 세계 다른 어떤 민족 집단보다 미국에 대해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견해를 가진 민족이라고 한다.
한국계 미국인[7]인 유리 김(Yuri Kim, 1972~)[8]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알바니아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했다.
3. 관련 문서
- 미국/외교
- 알바니아/외교
- 미국/역사
- 알바니아/역사
- 미국/경제
- 알바니아/경제
- 미국인 / 알바니아인 / 알바니아계 미국인
- 영어 / 알바니아어
- 대국관계일람/아메리카 국가/북아메리카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
[1] 알바니아에 남아 있던 모든 정치범들을 사면한 바로 다음날이기도 하다.[2] 베이커의 알바니아 방문 당시 1991년 기준 인구가 25.5만 명에 불과하던 이 도시에 무려 30만 명이 몰려들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방한 당시(이쪽은 200만 서울시 시민의 겨우(?) 절반인 100만 명이 참여했다)보다 더한 장관이 벌어졌다고 한다. 티라나 인근에 살던 사람들도 베이커를 보기 위해 티라나로 상경한 경우가 많았을 높으며, 이들은 '미국=자본주의(=경제적 풍요)와 자유의 중심지=알바니아에 빵과 자유를 가져다줄 나라'라는 인식이 한몫한 듯하다. 마침 당시 국무장관의 성이 딱 제빵사(Baker)다. 참고로 베이커가 알바니아 땅을 밟은 기간은 겨우 7시간에 그쳤다. 베이커의 알바니아 방문을 다룬 글. 당시 티라나에서 한 연설문 전문도 포함되어 있다.[3] 증언에 따르면 1991년 기준 알바니아 국민의 40%가 영어를 구사하고 가장 인기 있는 이름이 윌슨(알바니아어 발음으로는 빌손)이었다고 한다. 극단적인 공산주의 쇄국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그 역으로써 극단적인 친미로 터져나온 것. # 전술했듯 윌슨이 알바니아의 국체를 보전해준 인물이란 것을 감안하면, 자신들의 국체를 보전해준 나라가 엔베르 호자의 학정으로 피폐해진 조국에 다시 빵과 자유를 줄 거라고 하니 열렬한 숭미 반응이 안 나오는 게 비정상적인 수준이던 셈.[4] 당시 민주당의 대선 축하 집회에서 성조기가 휘날렸을 정도. 실제로 당시 알바니아 대사였던 윌리엄 리어슨이 민주당 유세에 따라다니며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등 대놓고 민주당을 지원했으며, 베리샤도 미국을 2번 방문해 미국의 지지를 호소했다.[5] 이 과정에서 알바니아인이 부시의 손목시계를 훔쳤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6] 2024년 기준 한국인 중 77%가 미국을 지지하는데, 이는 미국(71%)보다 높으며 이스라엘과 동급이다. 1위는 86%가 친미로 기록된 폴란드. #[7] 3살 때 괌으로 이주했다.[8] 미국 최초의 한국계 여성 대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