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04 13:33:41

캐나디안 풋볼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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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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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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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게일식 축구
(1885)
*: 축구에서 파생된 구기 종목이지만 사이클을 이용해 경기하기 때문에 국제축구연맹이 아닌 국제사이클연맹에서 경기를 주관한다.


파일:CFL_2016_logo.png
1. 개요
1.1. 리그의 기원과 형성1.2. 국민 리그로써의 황금기1.3. 쇠퇴 - 경쟁 격화와 재정난1.4. 미국 진출과 실패1.5. 리그의 재정비1.6. 현황
2. NFL과의 경쟁과 인기 침체
2.1. 압도적인 자본력 차이2.2. 미디어 노출과 브랜드 파워2.3. 시장 규모와 팬층2.4. 인재 유출과 연봉 격차2.5. 팬층 세대 교체 실패와 디지털 격차
3. 참가 구단
3.1. 해체 구단
4. 미식축구와의 차이점5. 리그 합병?6. 그레이컵

1. 개요

캐나다의 스포츠 리그로서 미식축구와 같은 그리드아이언 풋볼의 일종인 캐나다식 축구의 프로 리그이다.

캐나다 출신 못지 않게 NFL에 진출을 하지 못하거나 방출된 NFL 선수들이 많이 뛰고 있고 감독과 코치도 미국 출신이 꽤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가끔 워런 문처럼 CFL에서 NFL에 역으로 진출하기도 한다.[1]

하술하겠지만, 캐나다의 캐나다식 풋볼 리그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붙어있다는 죄로 NFL과 자기 나라에서 경쟁해야 하는(심지어 자기네 나와바리에서 NFL에게 밀리는) 불쌍한 처지의 리그이기도 하다.

1.1. 리그의 기원과 형성

CFL의 뿌리는 19세기 말 영국식 럭비에서 발전한 캐나디안 풋볼에 있다. 19세기 후반 캐나다의 풋볼은 영국 럭비에서 변형된 경기로 시작됐다. 대학을 중심으로 발전한 초창기 풋볼은 점차 각 주(州) 간 대항전으로 확대되었고, 지역별로 서로 다른 규칙이 공존했다. 동부의 온타리오와 퀘벡 지역은 영국식 럭비의 전통을 많이 유지한 반면, 서부의 매니토바·서스캐처원·앨버타에서는 미국식 풋볼 규칙이 빠르게 도입되었다. 이 시기에는 아직 ‘캐나다 풋볼 리그’라는 전국 단위 조직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동부와 서부가 완전히 별개의 풋볼 세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1958년 동부의 IRFU(Interprovincial Rugby Football Union)와 서부의 WIFU(Western Interprovincial Football Union)가 통합되며 공식적으로 Canadian Football League(CFL)가 출범했다. 캐나다 고유의 3다운 전진 룰, 110야드 경기장, 12인 구성 등 독자적인 규칙은 캐나디안 풋볼 리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1.2. 국민 리그로써의 황금기

1960~1980년대는 CFL의 전성기로 평가된다. TV 방송의 확대와 함께 Grey Cup 결승전은 NHL의 스탠리컵 파이널과 함께 캐나다에서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로 자리 잡았고, 1970년대는 CFL의 전성기이자 국민적 스포츠로서의 정점이었다. 이 시기 리그는 캐나다 주요 방송 네트워크(CBC, CTV)와의 전국 중계로 막대한 노출을 확보했고,그레이컵의 평균 시청자는 700만~800만 명에 달했다. 또한 이 시기 CFL은 아이스하키와 함께 캐나다 문화정체성의 표상으로 기능했다. NHL이 점차 국제화되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등장으로 북상하기 전까지 CFL은 캐나다 스포츠 산업에서 주류 위치를 유지했다.

1.3. 쇠퇴 - 경쟁 격화와 재정난

1980년대 후반부터 경기장 노후화, 관중 감소, 경기력 저하 등 문제가 겹치며 리그의 재정이 불안정해졌다. 미국 NFL의 인기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젊은 층이 이탈했다. 토론토, 몬트리올, 밴쿠버같은 대도시에서는 CFL보다 NFL 경기를 더 많이 시청하게 되었고, 몇몇 구단은 재정난으로 운영이 어려워졌다. 1990년대 초에는 리그가 파산 위기에 몰려 몬트리올 알루에츠가 해체되기도 했다.

1.4. 미국 진출과 실패

이에 CFL은 수입원 다변화와 시장 확장을 목표로 1990년대 초중반, 미국 시장 진출이라는 과감한 모험을 감행했다. 1993년부터 1995년 사이, 리그는 총 7개의 미국 팀을 창설했다. 그러나 경기 규칙의 차이, 미국인들의 낮은 관심, 장거리 이동 비용 등이 발목을 잡았고, 결국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1996년 대부분의 미국 팀이 해체했다(볼티모어 스탤리언스는 예외적으로 성공했다. NFL의 볼티모어 콜츠인디애나폴리스로 이전한 뒤 공백을 메운 팀이었기 때문이다. 스탤리언스는 지역 팬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1995년 그레이컵에서 우승했고, CFL 역사상 미국 팀 최초이자 유일한 챔피언으로 기록됐다. 스탤리언스는 이후 몬트리올로 연고를 이전해 몬트리올 알루에츠로 다시 부활했다.) 이 사건은 CFL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흑역사로 평가된다.

1.5. 리그의 재정비

미국 진출의 실패는 CFL의 존립 자체를 위협했다. 리그는 대규모 적자 속에서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오타와 러프 라이더스(Ottawa Rough Riders)는 1996년 파산으로 해체되었다.
이후 대체 구단으로 창단된 오타와 레네게이즈(Ottawa Renegades)도 운영난으로 2006년에 해산하며 수도권 시장 확보에 두 번 연속 실패했다. 2000년대 들어 CFL은 방송권 재편을 통해 새로운 수입원을 확보했다. 2008년, TSN과 RDS가 독점 중계 계약을 체결하면서 리그는 연간 수천만 달러 규모의 안정적 수익원을 확보했다.

1.6. 현황

2000년대 이후 CFL은 일부 회복세를 보였지만 여전히 NFL과의 격차는 엄청나다. 토론토, 밴쿠버 등 대도시에서의 관중 감소는 여전하며 몬트리올과 퀘벡 지역에서는 프랑스어권 시청률이 급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FL은 여전히 캐나다 스포츠 문화의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 있으며, 서부 평원지역을 중심으로 꾸준한 지지를 받고 있다. CFL의 미래는 불확실하나, 캐나다만의 풋볼 정신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2. NFL과의 경쟁과 인기 침체

CFL은 캐나다 리그임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본국에서조차 NFL에 크게 밀리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캐나다인들조차 NFL을 선호하는 현상이 심해짐에 따라 특단의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CFL의 쇠퇴는 계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2.1. 압도적인 자본력 차이

NFL은 연 매출 약 200억 달러[2]로, 전 세계 스포츠 리그 중 최대 규모다. 반면 CFL은 1억 달러 안팎에 불과해 재정적으로 비교조차 어렵다. NFL은 중계권·스폰서십·머천다이징 등 다변화된 수입 구조를 갖고 있으나, CFL은 캐나다 국내 방송사(TSN 등)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이 격차는 선수 연봉, 시설, 마케팅, 심지어 경기의 질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 또한, CFL팀 대부분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CFL 팀들의 만성적 적자에 대한 CTV 기사.

2.2. 미디어 노출과 브랜드 파워

NFL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중계되고, 슈퍼볼은 연간 최대 시청률을 기록한다.캐나다에서도 주요 방송국들이 계약을 맺고 NFL 경기를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관계로 NFL 경기에 대한 접근성이 높다. CFL의 그레이컵(Grey Cup)은 캐나다 내 시청률은 있지만, 국제적 인지도가 낮고 스폰서 가치도 제한적이다. 결국 젊은 층에게 NFL은 “글로벌 스포츠”, CFL은 “지방 이벤트”로 인식된다. #캐나다인들조차 슈퍼볼 날에는 미국인들과 똑같이 NFL 결승을 보면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문화가 있으나, 그레이컵에는 별 관심이 없는 실정이다.캐나다에서 바에 술마시러 가면 맨날 NFL 게임만 틀어주지 CFL 게임 틀어주는걸 못봤다

2.3. 시장 규모와 팬층

캐나다에서 NFL의 인기는 대부분 캐나다 대도시에 기반을 두고 팬층이 광범위하지만, CFL 팀의 팬층은 위니펙, 리자이나와 같은 깡촌 소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토론토·밴쿠버 같은 대도시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버팔로 빌스시애틀 시호크스와 같은 NFL팀을 응원하며, 자기 도시 연고 CFL 팀에 대한 관심이 없다. 결과적으로 캐나다 대도시권을 NFL이 흡수했고, CFL은 인구가 적은 내륙 지역에 의존한다. #

2.4. 인재 유출과 연봉 격차

캐나다가 원래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나라라 인재 유출 문제가 심각하고, 이는 스포츠계에서도 마찬가지다. NFL과 CFL의 연봉 차이는 20~30배 이상이다. NFL 평균 연봉은 약 250만 달러, 스타급은 수천만 달러를 받는다[3]. CFL 평균은 약 10만 달러, 최저는 7만 달러 수준이다. CFL 선수들은 생계를 위해 오프시즌에 다른 직업을 가져야 하는 실정이다. 이 차이 때문에 캐나다 출신 유망 선수들은 대부분 NCAA와 NFL을 목표로 한다. 결과적으로 CFL은 캐나다 리그임에도 국가대표급 선수를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다. 또한 풋볼 선수 육성 시스템이 미국 NCAA 풋볼 체계에 종속되어 있어, 리그 자체의 인재 순환이 단절된다. # #

2.5. 팬층 세대 교체 실패와 디지털 격차

CFL 팬의 평균 연령은 노땅50대 이상이며 점점 더 고령화 되어갈 전망이다. 그에 반해 캐나다의 젊은이들은 틱톡, 유튜브 등 SNS에서 미국 NFL 게임 컨텐츠를 소비하며 NFL 스타를 일상적으로 접한다. NFL은 SNS, 판타지 풋볼, 스포츠 게임 베팅 서비스 등으로 팬 경험을 확장했지만, CFL은 여전히 전통적인 중계방송에 머문다. 이로 인해 젊은 층은 CFL에 관심이 점점 없어지고 있으며 CFL의 팬층은 점점 고령화 되어가고 있다. 디지털 시장 진입 실패와 젊은 팬의 유입 실패가 CFL의 장기적 존속을 위협한다. #

결론적으로, CFL이 NFL에 경쟁이 안 되는 이유는 단순히 규모 문제 뿐만이 아니라, 자본력·노출·시장 구조·인재 유출·팬층의 세대 교체의 5중 구조적 열세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수준의 압도적인 NFL과의 경쟁 하에서 CFL의 미래는 밝지 않다.

3. 참가 구단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ffff><tablebgcolor=#ffffff> 파일:CFL_2016_logo.png캐나디안 풋볼 리그
CFL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d1d1d,#e2e2e2
East Division
파일:193px-Hamilton_Tiger-Cats_logo.svg.png 파일:151px-Argonauts_Logo.svg.png 파일:165px-Ottawa_Redblacks_logo.svg.png 파일:Montreal_Alouettes_logo.svg
West Di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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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 해체 구단

  • 오타와 러프 라이더스
  • 오타와 레니게이즈
  • 애틀랜틱 스쿠너스(리그 참가 전 해체)
  • CFL USA
    • 볼티모어 스탈리언스
    • 버밍험 바라쿠다스
    • 라스베이거스 포시
    • 멤피스 매드독스
    • 새크라멘토 골드마이너스
    • 샌안토니오 텍산스
    • 슈리브포트 파이리츠

4. 미식축구와의 차이점

가장 큰 차이점은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의 숫자가 11명이 아닌 12명이고, 플레잉 필드(Playing Field)의 세로 길이가 미식축구처럼 100야드가 아닌 110야드로 럭비와 거의 동일하다는 점이다.[4][5] 골 포스트도 미식축구처럼 엔드라인에 걸쳐 있는 게 아닌, 럭비와 마찬가지로 골라인에 걸쳐있다. 대신 골 포스트의 모양은 럭비처럼 H자가 아닌 미식축구의 Y자 골포스트 모양과 같다. 그리고 미식축구는 4번의 기회에 10야드를 전진해야 다운이 갱신되지만, 캐나디안 풋볼은 3번의 기회에 10야드를 전진해야 갱신된다는 점이 다르다. 펀트(Punt)도 못하고, 10야드 갱신에도 실패하면 미식축구는 턴오버가 아니지만, 캐나디안 풋볼은 팀 실책으로 기록된다.

전체 플레이 인원은 미식축구보다 1명 더 늘어난 12명이지만, 스크리미지 라인(Line Of Scrimmage, LOS)에 서는 선수의 수는 7명으로 같기에 공격팀이나 수비팀이나 인원이 1명 남아 미식축구와는 다른 포메이션으로 시합이 치러진다. 대표적으로 공격팀에서 미식축구엔 1명밖에 없는 슬롯 리시버 3명이[6][7] 전술에서 주로 사용된다.

수비팀에서도 스트롱 세이프티 대신 두 명의 하프백(Halfback)을[8] 최후방의 프리 세이프티와 코너백 사이에 위치시켜 결과적으로 디펜시브 백을 미식축구보다 1명 많은 5명을 쓴다. 한마디로 공격 시에는 기존의 풀백[9] 1명이 없는, 쿼터백 1명 뒤의 러닝백 1명과 기존의 슬롯 리시버(타이트엔드) 1명에 2명을 더한 총 3명의 슬롯 리시버와 2명의 와이드 리시버에 라인맨 5명을 더한 총 12명의 포메이션을 쓰고, 수비 시에는 최후방에 스트롱 세이프티 1명이 없는 대신 기존의 프리 세이프티 1명에 최측면의 코너백 2명과, 이 둘 사이의 공간에 (미식축구엔 없는 수비 포지션인) 하프백 2명을 배치시키고 7명의 라인맨과 라인배커를 더한 총 12명의 포메이션을 쓴다.

마지막으로 일리걸 모션(Illegal Motion) 반칙이 없다. 즉, 스크리미지 라인(LOS)만 먼저 넘지 않는 한, 러닝백과 리시버 포지션은[10] 스냅 시점에서 미식축구처럼 무조건 횡방향이 아닌 전방으로 달려도 상관이 없다.[11]

또 하나의 차이점으로는 싱글(Single)이라는 득점방식이 있는데, 이는 득점에 실패한 필드골이나 펀트를 상대팀이 받은 후 그들이 엔드존에서 나오는 것을 저지한 상황에서 주어진다. 이 덕분에 CFL에서는 NFL에서 이론상으로만 가능한[12] 1 대 0 으로 종료되는 게임이 1966년에 딱 한 번 나오기도 했다.

5. 리그 합병?

XFL이 2020년 두 번째 파산을 하고 다시 한 번 출범시키려는 과정에서 CFL과의 합병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일단 아직은 확정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그럴 수도 있다 하고 얘기만 나오고 있는 것이다. 프로 레벨에서 하부 리그가 없는 NFL이기 때문에 꽤나 이상적인 계획이긴 하다.

2021년 7월, XFL의 소유주 더 락이 CFL과의 합병 논의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6. 그레이컵

역대 그레이컵 결과

리그 창설전부터 존재해온 100년이 넘은 유서깊은 결승전 경기이다. 1909년 부터 열렸으며 첫 대회 우승팀이 토론토 대학교 풋볼팀인것에 알 수 있듯이 대학팀도 참가했던 경기였다. 현재 존재하는 9팀 중 가장 우승을 많이 차지한 팀은 토론토 아고노츠가 18회로 1위. 도시로 따져도 25회로 1위이다. 플레이오프는 NPB와 똑같으며 각 디비전 2-3위팀이 경기를 해 승자가 디비전 1위와 대결하며 승리팀이 그레이컵에 진출한다. 9팀 중 총 6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그레이컵 중계는 TSN이 한다.
연도 우승팀 결과 준우승팀 결승전 장소
2005 에드먼턴 에스키모스 38-35(OT) 몬트리올 알루에츠 BC 플레이스, 밴쿠버, 브리티시 컬럼비아
2006 BC 라이언스 25-14 위니펙 블루 바머스 캐네드 인스 스타디움, 위니펙, 매니토바
2007 서스캐처원 러프라이더스 23-19 위니펙 블루 바머스 로저스 센터, 토론토, 온타리오
2008 캘거리 스탬피더스 22-14 몬트리올 알루에츠 몬트리올 올림픽 스타디움, 몬트리올, 퀘벡
2009몬트리올 알루에츠 28-27 서스캐처원 러프라이더스 맥마흔 스타디움, 캘거리, 앨버타
2010몬트리올 알루에츠 21-18 서스캐처원 러프라이더스 커먼웰스 스타디움, 에드먼턴, 앨버타
2011BC 라이언스 34-23 위니펙 블루 바머스 BC 플레이스, 밴쿠버, 브리티시컬럼비아
2012토론토 아고노츠 33-25 캘거리 스탬피드 로저스 센터, 토론토, 온타리오
2013서스캐처원 러프라이더스 45-23 해밀턴 타이거-캐츠 모자이크 스타디움 앳 테일러 필드, 리자이나, 서스캐처원
2014캘거리 스탬피더스 20-16 해밀턴 타이거-캐츠 BC 플레이스, 밴쿠버, 브리티시컬럼비아
2015에드먼턴 에스키모스 26-20 오타와 레드블랙스 인베스터스 그룹 필드,위니펙,매니토바
2016오타와 레드블랙스 39-33 캘거리 스탬피더스 BMO 필드,토론토,온타리오
2017토론토 아고노츠 27-24 캘거리 스탬피더스 TD 플레이스 스타디움, 오타와
2018캘거리 스탬피더스 27-16 오타와 레드블랙스 커먼웰스 스타디움,에드먼턴,앨버타
2019위니펙 블루 바머스 33-12 해밀턴 타이거-캐츠 맥마흔 스타디움, 캘거리, 앨버타
2021위니펙 블루 바머스 33-25 해밀턴 타이거-캐츠 팀 호턴스 필드, 해밀턴,온타리오
2022토론토 아고노츠 24-23 위니펙 블루 바머스 모자이크 스타디움,리자이나,서스캐처원
2023몬트리올 알루에츠 28-24 위니펙 블루 바머스 팀 호턴스 필드, 해밀턴, 온타리오
2024토론토 아고노츠 41-24 위니펙 블루 바머스 BC 플레이스, 밴쿠버, 브리티시컬럼비아
2025(예정) TBD - TBD 프린세스 오토 스타디움,위니펙,매니토바

[1] 워런 문은 NFL 최초의 성공한 흑인 쿼터백으로 1984년부터 1993년까지 NFL 구단 휴스턴 오일러스(현 테네시 타이탄스)에서 뛴 영구결번된 프랜차이즈 스타이다.[2] 2024년 NFL 매출은 230억 달러(약 33조 5,800억 원)이었다.[3] 2024년 CFL 최고 연봉이 60만 캐나다달러였다(2024년 당시 환율로 약 5억 8,800만 원). 같은 기간 NFL 최고 연봉은 6천만달러였다(2024년 당시 환율로 약 800억 원)[4] 엔드존의 가로 길이와 세로 길이는 제외. 캐나디안 풋볼의 엔드존 가로 길이는 65야드로 미터로 환산하면 대략 59m로 럭비의 엔드존에 해당하는 인골 구역의 가로 길이인 68~70m보다 짧다. 캐나디안 풋볼 엔드존의 세로 길이는 양끝 각각 20야드로, 럭비 인골의 양끝 각각 세로 길이인 6~22m보다 더 짧거나 길다. 즉 엔드존의 가로, 세로 길이까지 합치면 럭비 피치가 캐나디안 풋볼 필드보다 좀 더 넓다.[5] 미식축구의 엔드존의 가로 길이는 53과 3분의 1 야드, 세로 길이는 양끝 각각 10야드로 미식축구 필드는 캐나디안 풋볼 필드보다도 훨씬 더 좁다.[6] 슬롯(Slot)이란, 공격팀 양 끝의 와이드 리시버와 오펜시브 태클 사이에 위치한 공간을 가리키며 슬롯 리시버란 이 곳에 위치해 패스나 러싱, 러싱 플레이 시 러닝백을 위한 블로킹을 담당하는 선수를 가리킨다. 미식축구보다 캐나디안 풋볼이 2명 더 많다.[7] 미식축구에선 1명뿐인 슬롯 리시버를 타이트엔드라고도 한다.[8] 여기서 말하는 하프백은 미식축구에서 러닝백의 또다른 이름인 하프백이 아닌 캐나디안 풋볼에서의 세컨더리 포지션 중 하나인 하프백을 가리킨다.[9] 테일백이라고도 한다.[10] 1명뿐인 러닝백과 와이드 리시버 2명, 슬롯 리시버 3명[11] 단, 당연히 스냅 이전에 전방으로 움직였다간 짤없이 폴스 스타트 반칙에 걸린다.[12] 수비측의 1점 세이프티를 통한 방식이지만, 말 그대로 거의 불가능한 플레이다. 세이프티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