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성년이 되지 않은 나이, 즉 미성년자가 황제나 왕 등 군주가 되는 경우는 대체로 선대왕의 폭정 또는 단명, 주변 세력들의 간섭, 왕위 계승에 있어서 직계자손 고집으로 인한 폐해,[1][2][3] 혹은 앞의 세 가지 이유가 모두 어우러진 경우 등 이유가 다양하다.문제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이들의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대개 이러면 왕의 후견인이 섭정이 되어 대신 정치를 맡는데 이러면서 생기는 정치적 폐단과 민심 문란 등으로 하루가 편한 날이 없고 이 상황이 심화되기 시작하면 황실 가족들끼리도 유혈사태가 일어난다. 덕분에 어린 나이에 왕위에 등극한 사람치고 일생이 편안하거나 그 마지막이 정상적인 사람이 드물다.
물론 예외는 있다. 고구려와 신라의 부흥기를 이끈 정복군주 태조왕과 진흥왕은 고작 7세에 즉위했다.[4]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으로 유명한 후기신라의 명군 성덕왕은 11살 즉위, 조선 성종은 후세에 성공한 왕으로 평가받으며, 요 성종도 명군이었다. 그리고 여러모로 유명한 프랑스의 루이 14세도 어릴 때 즉위했다. 그리고 중국 역대 황제 중 끝판왕인 강희제도 8세에 즉위했다.
덧붙여, 시간이 지난 뒤에 어리다고 얕잡아보는 자들을 보복하는 경우도 있다. 조선 숙종[5], 진시황, 이반 뇌제, 루이 14세, 메흐메트 2세, 표트르 대제 등이 이 예시에 해당된다. 물론 반드시 그런 건 아니고 섭정 기간을 책임진 나이 든 노신들을 왕이 성인이 된 후에도 원만하게 동행하는 경우도 많이 존재한다. 이사부와 진흥왕의 관계가 그러하다.
다음 목차에서는 0~19세의 나이로 왕이나 황제가 된 사람들을 다룬다. 국가, 군주, 등극할 당시의 나이, 즉위년일, 퇴위년일, 재위기간, 섭정의 순서이며, 군주와 섭정이 혈연관계인 경우 괄호 안에 명기했고 섭정 없이 친정했을 경우에는 '친정'이라 표기했다.
2. 실존 인물
2.1. 한국사
고려, 조선 시대의 연대는 양력으로 환산되었다. 한국사 | ||||||
국가 | 군주 | 즉위연령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섭정/친정 |
고구려 | 대무신왕 | 14세 | 18. | 44. | 26년 | 친정 |
태조대왕 | 6세 | 53. | 146. | 93년 | 부여태후(생모) | |
신라 | 박혁거세 | 12세 | BC57. | AD4. | 61년 | 친정, 혹은 |
진흥왕 | 6세 | 540. | 576. | 36년 | 법흥왕비 보도부인(백모) | |
효소왕 | 5세 | 692. | 702. | 10년 | 신문왕비 신목왕후(생모) | |
성덕왕 | 11세 | 702. | 737. | 35년 | 친정?[7], 혹은 대신들? | |
혜공왕 | 7세 | 765. | 780. | 15년 | 경덕왕비 만월부인(생모) | |
애장왕 | 12세 | 800. | 809. | 9년 | 김언승(숙부) | |
경문왕 | 15세 | 861. | 875. | 14년 | 친정 | |
효공왕 | 12세 | 897. | 912. | 15년 | 대신들 | |
백제 | 삼근왕 | 12세 | 477. | 479. | 2년 | 좌평 해구 |
가야 | 수로왕 | 생후 15~40일 | 42. | 199. | 157년 | 친정[8] |
고려 | 헌종 | 10세 | 1094.06.17. | 1095.11.06. | 1년 142일 | 선종비 사숙왕후(생모) |
인종 | 14세 | 1122.05.15. | 1146.04.10. | 24년 | 이자겸(외조부) | |
충혜왕 | 15세 | 1130. 1339. | 1332. 1334. | 2년 5년 | 친정 | |
충목왕 | 8세 | 1344. | 1348. | 4년 | 충혜왕비 덕녕공주(생모) | |
충정왕 | 11세 | 1348. | 1351. | 3년 | 충혜왕비 덕녕공주(적모)[9] | |
우왕 | 9세 | 1374. | 1388. | 14년 | 충숙왕비 공원왕후(조모) | |
창왕 | 9세 | 1388. | 1389. | 1년 | 우왕비 근비 이씨(생모) | |
조선 | 단종 | 12세 | 1451.06.01. | 1455.06.25. | 3년 24일 | 김종서 등 고명대신 → 수양대군(숙부)[10] |
성종 | 13세 | 1469.12.31. | 1495.01.20. | 25년 20일 | 세조비 정희왕후(조모) | |
명종 | 12세 | 1545.08.07. | 1567.08.02. | 21년 252일 | 중종비 문정왕후(생모) | |
숙종 | 14세 | 1674.09.17. | 1720.07.12. | 45년 310일 | 친정 | |
순조 | 11세 | 1800.08.23. | 1834.12.13. | 35년 144일 | 영조비 정순왕후(계증조모)[11] | |
헌종 | 8세 | 1834.12.13. | 1849.07.25. | 14년 228일 | 순조비 순원왕후(조모) | |
고종 | 12세 | 1864.01.16. | 1907.07.19. | 43년 194일 | 문조비 신정왕후(양모) → 흥선대원군(생부) |
2.2. 세계사
2.2.1. 중국
중국 | |||||||
국가 | 군주 | 즉위연령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섭정/친정 | |
주 | 성왕 | 13세? | BC1042.? | BC1021.? | 21년? | 주공 단(숙부) | |
춘추 전국 시대 | 송 | 평공 | 5세? | BC576. | BC532. | 44년 | 화원 |
진 (晉) | 도공 | 14세 | BC573. | BC558. | 15년 | 친정 | |
평공 | 13세? | BC558. | BC532. | 26년 | |||
노 | 양공 | 3세 | BC572. | BC542. | 30년 | 계손행보 | |
정 | 간공 | 5세 | BC565. | BC530. | 35년 | 자사 | |
진 (秦) | 영공 | 10세 | BC716. | BC704. | 12년 | ||
출자 | 5세 | BC708. | BC698. | 6년 | |||
진 | 시황제 | 13세 | BC247.07.06. | BC210.08.10. | 37년 | 여불위 | |
전한 | 소제 | 8세 | BC87.03.30. | BC74.06.05. | 12년 298일 | 곽광, 김일제 | |
평제 | 9세 | BC1.10.17. | AD6.02.03. | 4년 109일 | 왕망 | ||
유자영 | 1세 | 6.04.17. | 9.01.10. | 2년 268일 | |||
후한 | 화제 | 10세 | 88.04.09. | 106.02.13. | 17년 310일 | 장덕황후(양모)[12] → 두헌[13] | |
상제[14] | 생후 100일 | 106.02.23 | 106.09.21. | 6개월 29일 | 화희황후(양모) | ||
안제 | 12세 | 106.09.21. | 125.04.30. | 18년 221일 | |||
순제 | 11세 | 125.12.10. | 144.09.20. | 18년 285일 | |||
충제 | 2세 | 144.09.20. | 145.02.15. | 4개월 26일 | 양기 | ||
질제 | 8세 | 145.03.06. | 146.07.26. | 1년 142일 | |||
환제 | 15세 | 146.08.01. | 168.01.25. | 21년 177일 | |||
영제 | 12세 | 168.02.17. | 189.05.13. | 21년 91일 | 효인황후 동씨(생모) | ||
소제 | 13세 | 189.05.15. | 189.09.28. | 4개월 13일 | 영사황후 하씨(생모), 하진(외숙부) | ||
헌제 | 9세 | 189.09.28 | 220.12.10 | 31년 81일 | 동탁, 조조 | ||
삼국 시대 | 위 | 전폐제 | 9세 | 239.01.22. | 254.10.17. | 15년 272일 | 사마의 |
후폐제 | 14세 | 254.11.01. | 260.06.02. | 5년 215일 | 사마사 | ||
원제 | 15세 | 260.06.27. | 266.02.04. | 5년 223일 | 사마소 | ||
오 | 폐제 | 8세 | 252.05.23. | 258.11.09. | 6년 171일 | 제갈각, 손준, 손침 | |
남조 | 동진 | 성제 | 5세 | 325.10.19. | 342.07.26. | 16년 284일 | 명목황후 유씨(생모) → 왕도, 유량 |
목제 | 2세 | 344.11.18. | 361.07.10. | 16년 238일 | 강헌황후 저씨(생모) | ||
효무제 | 10세 | 372.09.12. | 396.11.06. | 24년 61일 | |||
안제 | 14세 | 396.11.07. | 419.01.28. | 22년 87일 | |||
송 | 전폐제 | 15세 | 464.07.12. | 466.01.01. | 1년 173일 | ||
후폐제 | 10세 | 472.05.11. | 477.08.01. | 5년 83일 | |||
순제 | 10세 | 477.08.05. | 479.05.27. | 1년 295일 | 소도성 | ||
제 | 해릉왕 | 14세 | 494.09.10. | 494.11.23. | 2개월 13일 | ||
동혼후 | 15세 | 498.09.01. | 501.12.31. | 3년 122일 | |||
화제 | 13세 | 501.04.14. | 502.04.30. | 1년 16일 | 소연 | ||
양 | 경제 | 12세 | 555.11.01. | 557.11.16. | 2년 15일 | 진패선, 왕승변 | |
진 | 폐제 | 12세 | 566.05.31. | 568.12.27. | 2년 211일 | ||
북조 | 북위 | 문성제 | 12세 | 452.10.31. | 465.06.20. | 12년 232일 | |
헌문제 | 11세 | 465.06.21. | 471.09.20. | 6년 92일 | 문성문명황후 풍씨(적모) | ||
효문제 | 4세 | 471.09.20. | 499.04.26. | 27년 218일 | 문성문명황후 풍씨(적조모) | ||
효명제 | 4세 | 515.02.12. | 528.03.31. | 13년 45일 | 선무영황후 호씨(생모) | ||
원고낭 | 1세 | 528.04.01. | 528.04.01. | 1일[15] | 선무영황후 호씨(조모) | ||
유주 | 3세 | 528.04.02. | 528.05.17. | 1개월 15일 | 선무영황후 호씨(조모) | ||
동위 | 효정제 | 9세 | 534.11.08. | 550.06.07. | 15년 215일 | 고환 | |
북제 | 폐제 | 14세 | 559.12.04. | 560.09.08. | 9개월 4일 | ||
후주 | 9세 | 565.06.08. | 577.02.04. | 11년 243일 | |||
유주 | 7세 | 577.02.04. | 577.02.24. | 24일 | |||
북주 | 정제 | 7세 | 579.04.01. | 581.03.04. | 1년 338일 | 양견 | |
수 | 공제 | 12세 | 617.12.18. | 618.06.12. | 5개월 25일 | 이연 | |
당 | 상제 | 15세 | 710.07.08. | 710.07.25. | 17일 | 위황후[16] | |
경종 | 15세 | 824.02.29. | 827.01.09. | 2년 315일 | |||
희종 | 11세 | 873.08.16. | 888.04.20. | 14년 251일 | |||
애제 | 12세 | 904.09.26. | 907.05.12. | 2년 228일 | 주전충 | ||
후주 | 공제 | 7세 | 959.08.03. | 960.02.03. | 6개월 | 조광윤 | |
요 | 성종 | 11세 | 982.10.14. | 1031.06.25. | 48년 254일 | 예지황후 소씨(생모) | |
흥종 | 15세 | 1031.06.25. | 1055.08.28. | 24년 64일 | 흠애황후 소씨(생모) | ||
송 | 인종 | 13세 | 1022.03.23. | 1063.04.30. | 41년 37일 | 장헌명숙황후 유씨(적모) | |
철종 | 10세 | 1085.04.01. | 1100.02.23. | 14년 331일 | 선인성렬황후 고씨(조모) | ||
공제 | 4세 | 1274.08.12. | 1276.02.04. | 1년 176일 | 사황후(조모), 전황후(생모) | ||
단종 | 9세 | 1276.06.14. | 1278.05.08. | 1년 328일 | |||
소제 | 8세 | 1278.05.10. | 1279.03.19. | 10개월 9일 | |||
명 | 영종 | 9세 | 1435.02.07. 1457.02.11. | 1449.09.01. 1464.02.23. | 14년 206일 7년 12일 | 왕진 | |
청 | 세조 | 6세 | 1643.10.08. | 1661.02.05. | 17년 120일 | 예친왕(숙부) | |
성조 | 8세 | 1661.02.05. | 1722.12.20. | 61년 318일 | 보정대신 4명 | ||
목종 | 5세 | 1861.11.11. | 1875.01.12. | 13년 62일 | 효정현황후(적모)+효흠현황후(생모) | ||
덕종 | 4세 | 1875.02.25. | 1908.11.14. | 33년 263일 | 효흠현황후(백모) | ||
공종 | 3세 | 1908.12.02. | 1912.02.12. | 3년 72일 | 순친왕(생부[17])+효정경황후(백모[18]) |
- 예외로, 촉한 회제 유선은 16세라 미성년자에서 아슬아슬하게 빠진다.
중국 (16세) | |||||||
국가 | 군주 | 즉위연령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섭정/친정 | |
삼국 시대 | 촉한 | 회제 | 16세 | 223.06.10. | 263.11.??. | 40년 ??일 | 제갈량 |
2.2.2. 일본
일본 | ||||||
시대 | 군주 | 즉위연령 | 즉위년일 | 퇴위년일 | 재위기간 | 섭정/친정 |
아스카 | 몬무 덴노 | 14세 | 697.08.22. | 707.07.18. | 9년 332일 | |
헤이안 | 세이와 덴노 | 9세 | 858.10.07. | 876.12.18. | 18년 107일 | 섭정 후지와라노 요시후사(외조부) |
요제이 덴노 | 9세 | 876.12.18. | 884.03.04. | 7년 78일 | 섭정 후지와라노 모토츠네(외숙부) | |
다이고 덴노 | 13세 | 897.08.04. | 930.10.16. | 33년 81일 | ||
스자쿠 덴노 | 8세 | 930.10.16. | 946.05.23. | 15년 223일 | 섭정 후지와라노 타다히라(외백부) | |
엔유 덴노 | 11세 | 969.09.27. | 984.09.24. | 15년 1일 | 섭정 후지와라노 사네요리(백조부) 섭정 후지와라노 코데타다(외백부) 관백 후지와라노 카네미치(외백부) | |
고이치조 덴노 | 8세 | 1016.03.10. | 1036.05.15. | 20년 71일 | 섭정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외조부) 섭정 후지와라노 요리미치(외숙부) | |
호리카와 덴노 | 8세 | 1087.01.03. | 1107.08.09. | 20년 223일 | 섭정·관백 후지와라노 모로자네(처외조부) 관백 후지와라노 모로미치(처외숙부) 관백 후지와라노 타다자네(종형) | |
도바 덴노 | 5세 | 1107.08.09. | 1123.02.25. | 15년 204일 | 섭정·관백 후지와라노 타다자네 관백 후지와라노 타다미치 | |
스토쿠 덴노 | 5세 | 1123.02.25. | 1142.01.05. | 18년 319일 | 섭정·관백 후지와라노 타다미치(장인) | |
고노에 덴노 | 3세 | 1142.01.05. | 1155.08.22. | 13년 232일 | 섭정 후지와라노 타다미치 | |
니조 덴노 | 15세 | 1158.09.05. | 1165.08.03. | 6년 334일 | 관백 고노에 모토자네(처남) | |
로쿠조 덴노[19] | 2세 | 1165.08.03. | 1168.04.09. | 2년 250일 | 섭정 고노에 모토자네(처외백부) 섭정 마츠도노 모토후사(처외숙부) | |
다카쿠라 덴노 | 8세 | 1168.04.09. | 1180.03.18. | 11년 346일 | 관백 마츠도노 모토후사 관백 고노에 모토미치(처남) | |
안토쿠 덴노 | 3세 | 1180.03.18. | 1185.04.25. | 5년 39일 | 섭정 고노에 모토미치 | |
가마쿠라 | 고토바 덴노 | 4세 | 1183.09.08. | 1198.02.18. | 14년 167일 | 섭정·관백 고노에 모토미치 섭정 마츠도노 모로이에 섭정·관백 쿠조 카네자네(장인) |
쓰치미카도 덴노 | 3세 | 1198.02.18. | 1210.12.12. | 12년 310일 | 섭정 고노에 모토미치 섭정 쿠조 요시츠네 섭정 고노에 이에자네 | |
준토쿠 덴노 | 14세 | 1210.12.12. | 1221.05.13. | 10년 155일 | 관백 고노에 이에자네 | |
주쿄 덴노 | 4세 | 1221.05.13. | 1221.07.29. | 2개월 16일 | 섭정 쿠조 미치이에(처숙부) | |
고호리카와 덴노 | 10세 | 1221.07.29. | 1232.11.17. | 11년 114일 | 섭정·관백 고노에 이에자네(장인) 관백 쿠조 미치이에(장인) 관백 쿠조 노리자네(처남) | |
시조 덴노 | 2세 | 1232.11.17. | 1242.02.10. | 9년 87일 | 섭정 쿠조 노리자네(외숙부) 섭정 쿠조 미치이에(외조부) 섭정·관백 고노에 카네츠네(외숙부) | |
고후카쿠사 덴노 | 4세 | 1246.02.16. | 1260.01.09. | 13년 330일 | 섭정 이치조 사네츠네 섭정 고노에 카네츠네 섭정·관백 타카츠카사 카네히라 | |
가메야마 덴노 | 11세 | 1260.01.09. | 1274.03.06. | 14년 60일 | 관백 타카츠카사 카네히라 관백 니조 요시자네 관백 이치조 사네츠네 관백 고노에 모토히라 관백 타카츠카사 모토타다 관백 쿠조 타다이에 | |
고우다 덴노 | 8세 | 1274.03.06. | 1287.11.27. | 13년 269일 | 섭정 쿠조 타다이에 섭정 이치조 이에츠네 섭정·관백 타카츠카사 카네히라 관백 니조 모로타다 | |
고후시미 덴노 | 11세 | 1298.08.30. | 1301.03.02. | 2년 185일 | 섭정 타카츠카사 카네타다 섭정 니조 카네모토 | |
하나조노 덴노 | 12세 | 1308.09.11. | 1318.03.29. | 9년 201일 | 섭정 쿠조 모로노리 섭정·관백 타카츠카사 후유히라 관백 고노에 이에히라 관백 니조 미치히라 | |
남조 | 고무라카미 덴노 | 12세 | 1339.09.18. | 1368.03.29. | 28년 200일 | 관백 니조 모로모토 관백 고노에 츠네이에 관백 니조 모리모토 |
북조 | 고묘 덴노 | 15세 | 1336.09.20. | 1348.11.18. | 12년 62일 | 관백 고노에 츠데타다 관백 고노에 모토츠구 관백 이치조 츠네미치 관백 쿠조 미치노리 관백 타카츠카사 모로히라 관백 니조 요시모토 |
스코 덴노 | 15세 | 1348.11.18. | 1351.11.26. | 3년 8일 | 관백 니조 요시모토 | |
고코곤 덴노 | 15세 | 1352.09.25. | 1371.04.09. | 18년 200일 | 관백 니조 요시모토 관백 쿠조 츠네노리 관백 고노에 미치츠구 관백 타카츠카사 후유미치 관백 니조 모로요시 | |
고엔유 덴노 | 13세 | 1371.04.09. | 1382.05.24. | 11년 48일 | 관백 니조 모로요시 관백 쿠조 타다모토 관백 니조 모로츠구 | |
고코마쓰 덴노 | 6세 | 1382.05.24. | 1392.11.19. | 10년 182일 | 섭정·관백 니조 요시모토 섭정 고노에 카네츠구 관백 니조 모로츠구 관백 이치조 츠네츠구 관백 고노에 타다츠구 관백 니조 미츠모토 | |
무로마치 | 쇼코 덴노 | 12세 | 1412.10.05. | 1428.08.30. | 15년 333일 | 관백 이치조 츠네츠구 관백 쿠조 미츠노리 관백 니조 모치모토 |
고하나조노 덴노 | 10세 | 1428.09.07. | 1464.08.21. | 35년 357일 | 섭정·관백 니조 모치모토 관백 고노에 후사츠구 관백 이치조 카네요시 관백 니조 모치미치 관백 타카츠카사 후사히라 관백 이치조 노리후사 | |
에도 | 메이쇼 덴노 | 5세 | 1629.12.22. | 1643.11.14. | 13년 330일 | 섭정 이치조 카네요시(숙부) 섭정 니조 야스미치 |
고코묘 덴노 | 11세 | 1643.11.14. | 1654.10.30. | 10년 353일 | ||
레이겐 덴노 | 10세 | 1663.03.05. | 1687.05.02. | 24년 64일 | 섭정 니조 미츠히라(종형) 섭정·관백 타카츠카사 후사스케 관백 이치조 후유츠네 | |
히가시야마 덴노 | 13세 | 1687.05.06. | 1709.07.27. | 22년 88일 | 섭정·관백 이치조 후유츠네 관백 고노에 모토테루 관백 타카츠카사 카네히로 관백 고노에 이에히로 | |
나카미카도 덴노 | 9세 | 1709.07.27. | 1735.04.13. | 25년 196일 | 섭정 고노에 이에히로 섭정·관백 쿠조 스케사네 관백 니조 츠나히라 관백 고노에 이에히사(종형) | |
모모조노 덴노 | 7세 | 1747.06.09. | 1762.08.31. | 15년 76일 | 섭정·관백 이치조 미치요시 관백 고노에 우치사키 | |
고모모조노 덴노 | 13세 | 1770.05.23. | 1779.12.16. | 9년 209일 | 관백 고노에 우치사키 관백 쿠조 나오사네 | |
고카쿠 덴노 | 9세 | 1780.01.01. | 1817.05.07. | 37년 135일 | 섭정·관백 쿠조 나오사네 관백 타카츠카사 스케히라 관백 이치조 테루요시 관백 타카츠카사 마사히로(종형) 관백 이치조 타다요시 고사쿠라마치 상황(6촌누나) |
2.2.3. 기타
- 투탕카멘(9세, 신하들) - 이집트
- 샤푸르 2세(0세[20], 모후 이프라) - 사산 왕조 페르시아
- 네로(17세, 모후 소 아그리피나+스승 세네카+근위대장 부루스)[21] - 로마 제국
- 엘라가발루스(15세, 조모 율리아 마이사) - 로마 제국
- 알렉산데르 세베루스(14세, 조모 율리아 마이사) - 로마 제국
- 고르디아누스 3세(13세, 어머니 안토니아 고르디아나 → 장인 티메시테우스) - 로마 제국
- 발렌티니아누스 2세(4세, 어머니 유스티나) - 로마 제국
- 호노리우스(10세, 스틸리코) - 서로마 제국
- 발렌티니아누스 3세(6세, 어머니 갈라 플라키디아) - 서로마 제국
-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14세?, 아버지 오레스테스) - 서로마 제국
- 테오도시우스 2세(7세) - 동로마 제국
- 콘스탄스 2세(10세, 아버지의 측근이자 장인인 발렌티누스[22] 및 파울로스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 동로마 제국
- 알렉시우스 2세(11세, 모후 안티오키아의 마리아) - 동로마 제국
- 하인리히 4세(7세, 모후 아그네스) - 신성 로마 제국
- 장 1세(0세[23], 삼촌 필리프 5세) - 프랑스
- 자크 3세(0세[24], 모후 카타리나 코르네르) - 키프로스 왕국
- 프랑수아 2세(15세, 모후 카트린 드 메디시스) - 프랑스 왕국
- 샤를 9세(10세, 모후 카트린 드 메디시스) - 프랑스 왕국
- 루이 13세(9세, 모후 마리 드 메디시스) - 프랑스 왕국
- 루이 14세(5세, 모후 안 도트리슈 + 재상 쥘 마자랭) - 프랑스 왕국
- 루이 15세(5세,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2세) - 프랑스 왕국
- 앙리 5세(10세)[25] - 프랑스 왕국
- 보두앵 3세(12-13세, 어머니 멜리장드와 공동즉위) - 예루살렘 왕국
- 보두앵 4세(13세, 트리폴리 백작 레몽 3세) - 예루살렘 왕국
- 보두앵 5세(5세, 단독왕은 7세, 트리폴리 백작 레몽 3세) - 예루살렘 왕국
- 메흐메트 2세(12세, 찬다를르 할릴 파샤) - 오스만 제국
- 아흐메트 1세(13세, 친정) - 오스만 제국
- 오스만 2세(14세, 친정) - 오스만 제국
- 무라트 4세(11세, 모후 쾨셈 술탄) - 오스만 제국
- 메흐메트 4세(6세, 할머니 쾨셈 술탄 → 모후 투르한 하티제 술탄 → 대재상 쾨프륄리 메흐메트 파샤) - 오스만 제국
- 에드워드 3세(15세, 모후 프랑스의 이사벨라) - 잉글랜드 왕국
- 에드워드 5세(12세, 삼촌 리처드 3세) - 잉글랜드 왕국
- 에드워드 6세(10세, 에드워드 시무어 → 존 더들리) - 잉글랜드 왕국
- 헨리 3세(9세, 신하 윌리엄 마샬) - 잉글랜드 왕국
- 헨리 6세(생후 9개월, 삼촌들) - 잉글랜드 왕국
- 데이비드 2세 (5세, 신하들) - 스코틀랜드 왕국
- 마르그레트 에이릭스도티르(3~4세) - 스코틀랜드 왕국
- 메리 1세(생후 1주일, 모후 마리 드 기즈) - 스코틀랜드 왕국
- 제임스 6세(1세, 신하들) - 스코틀랜드 왕국
- 페트로닐라(1세, 약혼남 라몬 베렝게르 4세) - 아라곤 왕국
- 호아나 1세 (1세, 모후 아르투아의 블랑슈) - 나바라 왕국
- 카를로스 2세(4세, 모후 마리아나) - 스페인
- 이사벨 2세(3세, 모후 마리아 크리스티나) - 스페인
- 알폰소 13세(0세[26], 모후 마리아 크리스티나) - 스페인
- 이반 4세(3세, 모후 엘레나 → 삼촌들) - 루스 차르국
- 표도르 3세(14세, 삼촌들) - 루스 차르국
- 이반 5세(16세, 누이 소피야 알렉세예브나 로마노바) - 루스 차르국
- 이반 6세(생후 4개월, 모후 안나 레오폴트나) - 러시아 제국
- 크리스티나(6세, 재상 악셀 옥센셰르나) - 스웨덴
- 구스타브 4세 아돌프(14세, 숙부 쇠데르만란드 공작 칼) - 스웨덴
- 마리어 (11세, 모후 보스티나의 엘리자베타) - 헝가리 왕국-크로아티아 왕국
- 라디슬라우스 포스투무스(0세, 오스트리아 공작 프리드리히 5세, 보헤미아 이르지 스 포데브라트, 헝가리-크로아티아 후녀디 야노시) - 오스트리아 공국, 보헤미아 왕국, 헝가리-크로아티아 왕국
- 러요시 2세(10세, 보헤미아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 변경백 게오르크[27], 헝가리-크로아티아 서포여이 야노시 등 3명의 귀족 및 에스테르곰 대주교) - 보헤미아-헝가리-크로아티아
- 야드비가 (11세, 신하들[28]) - 폴란드 왕국
- 카럴 1세(6세, 고모 마르가레테 폰 외스터라이히) - 합스부르크 네덜란드
- 빌헬미나 여왕(10세, 모후 발데크피르몬트의 에마) - 네덜란드
- 피에트로 1세 (10세, 모후 수사의 아델라이데) - 사보이아 백국
- 움베르토 3세 (12세, 로잔 주교 아메데) - 사보이아 백국
- 톰마소 1세 (11세, 모후 마콩의 베아트릭스) - 사보이아 백국
- 보니파초 (9세, 숙부 톰마소 2세) - 사보이아 백국
- 아메데오 6세 (9세, 제네바 백작 아메데 3세, 보 백작 루이 2세[29]) - 사보이아 백국
- 아메데오 8세 (8세, 할머니 부르봉의 본) - 사보이아 백국
- 필리베르토 1세 (7세, 모후 프랑스의 욜랑드+숙부 필리포 2세) - 사보이아 공국
- 카를로 1세 (14세, 숙부 필리포 2세) - 사보이아 공국
- 카를로 조반니 아메데오 (2세, 모후 비앙카 팔레올로가+종조부 필리포 2세) - 사보이아 공국
- 프란체스코 자친토 (6세, 모후 프랑스의 크리스틴 마리) - 사보이아 공국
- 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 (4세, 모후 프랑스의 크리스틴 마리) - 사보이아 공국
-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 (9세, 모후 사부아느무르의 마리 잔) - 사보이아 공국
- 프란체스코 3세 곤차가 (7세, 모후 마르게리타 팔레올로가+두명의 삼촌들) - 만토바 공국
- 페르디난도 1세(8세, 카를로스 3세, 총리대신 베르나르도 타누치) - 나폴리 왕국 및 시칠리아 왕국 (1751~1825) 원래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국왕이었던 아버지 보르보네의 카를로가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로 즉위하게 되면서 양위받았고, 성년이 되기 전까지 부왕의 총리대신 베르다르도 타누치를 필두로 한 섭정단이 카를로스 3세의 결재를 받아 통치했다.
- 페드루 2세(6세) - 브라질 제국 (1831~1889) 자그마치 58년이나 재위했지만 브라질이 공화국으로 이양되면서 폐위되었고 2년 후에 죽었다.
- 요르요스 1세(17세) - 그리스 왕국 (1845~1913) 다른 사례들과는 원인이 좀 다른 특이한 경우인데, 보통 군주가 성년에 이르기 전에 즉위하는 경우는 나이가 어릴 때 부왕이 승하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이 경우에는 혈연과 무관하게 오톤이 폐위된 후 새로운 왕이 될 후보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그리스의 왕으로 선택되었다.
- 페타르 2세 (11세, 당숙 파블레) - 유고슬라비아 (1923~1970) 아버지 알렉산다르 1세가 마르세유에서 암살되자 즉위. 나치 독일군이 침공해오자 영국으로 망명하였고, 티토 정권이 들어서자 계속 망명생활을 하다가 사망.
- 미하이 1세 (6세, 숙부+대주교+대법원장) - 루마니아 왕국 (1921~2017) 조부 페르디난트의 뒤를 이어 즉위했지만, 3년 뒤에 아버지 카롤 2세에게 양위한다. 1940년 19세의 나이로 재즉위. 1947년 12월 30일 루마니아가 공산화되자 폐위되었고 이듬해에 루마니아 시민권도 박탈당했다. 그후 그는 영국을 거쳐 스위스에 망명했으며 1989년에 차우셰스쿠가
처단축출된 후에 1992년 루마니아 정부의 허락을 받고 귀국했다. 그가 귀국했을때 부쿠레슈티 시민 백만여명이 길거리에 쏟아져나와 환영했고 이에 긴장한 이온 일리에스쿠 대통령은 그를 추방하고 귀국을 금지했으나 1997년 에밀 콘스탄티네스쿠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 다시 루마니아에 귀국을 허가받았고 시민권도 돌려주었다. 그 후 엘리사베타 궁전에 사는 것을 허가받고 루마니아와 스위스를 오가며 살다가 2017년에 붕어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사망한 전승훈장 수훈자이다. - 시메온 2세 (6세, 숙부+신하들) - 불가리아 (1937~) 아버지 보리스 3세가 히틀러와의 회견을 마치고 돌아온 뒤 급서하자[30]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1946년 불가리아가 공산화되자 폐위. 그래도 1996년 공산당 붕괴 이후 귀국하여 군주제를 부활하기 위해 국왕 임기제까지 제안하며 동분서주했으나 국왕 개인에 대한 지지는 높아도 군주제 지지율이 3%도 나오지 않아 무산됐다. 허나 2001년 6월 17일 총선거에서 대승하여 불가리아의 총리에 올라 2005년까지 집권했으며 이는 동유럽에서 축출된 군주들 중 공화제의 형식으로나마 다시 권좌에 오른 유일한 형태다. 2005년 8월 불가리아 사회당에게 정권을 내주었다.
- 이불금 (7세, 진수도) - 이조 베트남. 부황 혜종이 진수도에게 살해된 뒤 즉위했고 곧바로 진수도의 조카인 진경에게 선양했다.
- 마아드 알 무스탄시르 (6세) - 파티마 왕조. 58년간 재위.
- 알 파이즈 (5세) - 파티마 왕조. 11세에 사망. 동생인 알 아디드에게 이맘위를 물려주었다.
- 알 아디드 (11세) - 파티마 왕조. 알 파이즈의 동생.
- 파이살 2세(4세, 삼촌 압둘라) - 이라크 하심 왕조.(1939~1958) 1958년 군부 쿠데타 때 살해당한다.
- 푸아드 2세 (6개월) - 이집트 (1952~) 아버지 파루크 1세가 가말 압델 나세르를 비롯한 자유장교단에게 퇴위당하고 왕위를 이어받았으나 즉위 11개월 만에 폐위되었고, 이집트는 공화국으로 바뀌었다.
- 콩스탕스(2~3세, 외할아버지 보두앵 2세 → 이모부 풀크) - 안티오키아 공국
3. 가상 인물
- 그리스 로마 신화 - 네오프톨레모스
- 나루토 - 가아라, 사루토비 히루젠
- 드래곤 프린스 - 에즈란
- 세월의 돌 - 나르디엔 루아 듀플리시아드(18세, 친정)
- 창세기전 2 - 라시드 팬드래건(16세[31], 친정) -
- 조이드 배틀 스토리, 기수신세기 조이드 - 루돌프 게어하르트 체펠린 3세(10세, 균터 프로이첸)
- 코드 기어스: 반역의 를르슈 시리즈 -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
- 리비우스 올비누스 이프리키아 - 그럼에도 세상은 아름답다
- 베이비 폭군 - 메이블 가데니아 에르마노
- 에빌리오스 시리즈 - 릴리안느 루시펜 도트리슈
- 에레원[32] - 마비노기
- 아르슬란 - 아르슬란 전기(15세, 친정)
- 미네바 라오 자비(하만 칸) - 기동전사 Z건담, 기동전사 건담 ZZ, 기동전사 건담 UC
- 스톰 호크 - 마스터 사이클로니스
- 시그너스 - 메이플스토리
- 시부야 유리, 사라레기 - 마 시리즈
- 아이테르 탈리[33], 지오[34] - 에픽세븐
- 에르빈 요제프 2세(5세,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카타린 케트헨 1세(생후 5개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알렉산더 지크프리트 폰 로엔그람(생후 2개월, 모후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 - 은하영웅전설
- 엔디미온 - 룬의 아이들 윈터러
- 카타리나(갈라하드) - 성해 멜로포비아
- 얼음과 불의 노래 - 재해리스 1세(14세, 모후 알리사 벨라리온), 아에곤 3세(11세, 아에곤 3세의 섭정), 다에론 1세(14세), 조프리 바라테온(13세, 모후 세르세이 라니스터), 토멘 바라테온(9세, 모후 세르세이 라니스터)
- 페르난데스 라스팔마스 - SKT
- 피터(13세, 공동), 수잔(12세, 공동), 에드먼드(10세, 공동), 루시(8세, 공동) - 나니아 연대기
- 필립 팬드래건(12세, 숙부 리처드 팬드래건) - 창세기전 외전 템페스트
- N - 포켓몬스터 블랙/화이트[35]
- 앙리에타 드 트리스테인, 샤를로트 - 제로의 사역마
- 홍령 - 신령
- 황제 - 아카메가 벤다![36]
4. 관련 문서
[1] 이게 동아시아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밑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이나 중동은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태아의 계승권을 미리 인정하고 아들로 태어나면 바로 왕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 오히려 동아시아보다 더 보수적이어서, 동아시아에서는 서자라도 왕의 아들이기만 하면 적자보다 우선순위가 밀릴 뿐 계승권을 인정해 주는데 서양에서는 서자에게 계승권이 없다.[2] 정확히는 아예 '첩'과 '서자'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첩'이라는 지위는 '정실부인에 비해 지위 및 권리가 열등하게 주어지도록 되어 있는 또 다른 공인된 혼인 관계'인데, 서양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철저한 일부일처제를 고수하였으므로 '정식으로 결혼한 배우자에 비해 열등한 지위에 있도록 규정된 또 다른 혼인 관계'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없었다. 배우자 한 사람 이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모두 공식적으로는 내연 관계, 불륜이었다. 따라서 그런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서출'이 아니라 '사생아'였으며, 정식 결혼에서 태어난 적자녀들과 달리 상속권도 계승권도 받지 못했다. 물론 생부 입장에선 자기 피가 이어진 자식이므로 대체로 뒷바라지를 해 주는 게 보통이었고 생부가 자신의 사생아라고 공식적으로 인지하거나, 호적상 생모의 법적 남편의 자식으로 처리하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부 케바케였고 법적으로 사생아에게 허락되는 권리는 없었다.[3] 대신 적녀에게도 계승권이 인정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살리카 법을 따르는 곳에서는 아예 여계 계승 자체가 금지되고 오로지 적자에게만 계승권이 주어졌다. 이 때문에 동양에서는 대가 끊겨 왕조가 망하는 일은 없었지만(있긴 있었는데 인위적으로 대를 끊어버려서 그렇게 됐다), 서양에서는 합스부르크 가문처럼 편법을 쓰지 않는 이상은(여성이 왕위/작위를 계승한 경우 그 후계자가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해서 왕조의 성씨를 유지하게 하는 등, 현재도 유럽의 몇몇 왕실에서 쓰는 방법이다) 왕조의 수명이 100~300년 정도를 넘는 경우가 잘 없다.[4] 어렸을 적 할머니나 어머니, 후견인들이 섭정에 충실하여 왕들이 성인이 된 후의 발판이 되어 주었다는 공통점이 있다.[5] 즉위 직후부터 예송논쟁을 이어받아 환국을 진행시켜버렸다. 또 다음 다음 환국에서는 송시열을 숙청했다.[6] 6촌이 6부가 되었고, 촌장들의 이름도 다 있으니, 엄밀하게 촌장도 맞다. 그러나 13세(만 12세)가 되니 숙성하여 왕이 되었다고 하니 13세(만 12세) 이후는 친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7] 성덕왕의 생모 신목왕후는 성덕왕 즉위 2년 전인 서기 700년에 죽었다.[8] 가야 건국 설화에 의하면 왕이 알에서 깨어난 뒤부터 계속 자랐다고 하며 다음 달 보름(생후 15~40일 사이)에는 웬만한 성인과 같아졌다고 한다. 프라이마크 물론 신화의 내용이므로, 실제 즉위 나이는 알 수 없다.[9] 충정왕의 생모는 충혜왕의 2비인 희비 윤씨지만 1비인 덕녕공주가 섭정을 했다.[10] 수렴청정을 맡을 대비가 없었다.[11] 이미지와 달리 3년만에 수렴을 거두었다.[12] 화제의 생모 양귀인을 죽였다.[13] 장덕황후 두씨의 오빠.[14] 황제로서 동아시아 최연소 즉위. 황제로 제한하지 않고 모든 동아시아 군주들을 통틀어 보아도 수로왕에 이어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15] 즉위하자마자 폐위당했다는 얘기도 있다.[16] 생모인지 적모인지 불명.[17] 선통제가 광서제의 양자로 입적되어서 족보상으로는 순친왕이 숙부가 된다.[18] 족보상으로는 양모가 된다.[19] 일본 역사상 최연소 즉위, 최연소 양위, 최연소 상황.[20] 호르미즈드 2세는 임신 중인 아내 이프라의 뱃속에 있는 태아에게 샤푸르 2세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왕위 계승자로 삼은 뒤 죽었다. 남편의 유언을 충실하게 지킨 이프라는 샤푸르 2세의 대관식 때 자신의 배 위에(물론 그 안에 샤푸르가 들어있기 때문) 왕관을 올렸으며, 출산 전까지 왕관을 다리 사이에 둬서 태아가 태어나자마자 즉위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아들이 아니면 어쨌으려고(...) 마기들이 아들이라고 호언장담하긴 했다. 일단 동서양 합쳐서 최연소 황제로 간주.[21] 엘라가발루스 즉위 전까지 로마 제국 임페라토르 중 최연소 군주였다.[22] 원래 장인은 아니었고, 이렇게 제위를 찾아준 후 딸을 시집보내고 권신의 행보를 보이다가 마침내 제위에 욕심을 보여서 수도 시민들에게 살해당했다.[23] 유복자였다. 즉, 태어나기 전부터 왕위 계승이 확정되어 있던 것. 비록 생후 5일 만에 숨졌지만.[24] 생후 4일째에 부왕 자크 2세가 죽어 왕위에 올랐다.[25] 프랑스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샤를 10세는 손자인 앙리에게 양위한 후 인기가 좋았던 친척 오를레앙 공작 루이필리프에게 섭정을 맡길 생각이었는데, 7월 혁명 때문에 샹보르 백작 앙리(앙리 5세)가 즉위했을 때 혁명의 주도 세력이 아예 루이필리프를 왕으로 옹립(사실 루이 필리프 자신이 혁명을 일으킨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다.)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26] 장 1세와 마찬가지로 유복자였다. 즉, 아들로 태어나면 누나들을 제치고 태어나기 전부터 왕위 계승이 확정되어 있던 것. 장 1세와는 다르게 오래살았지만 공화혁명으로 퇴위당했다.[27] 프로이센 공국의 창립자 알브레히트 폰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의 형.[28] 위의 마리어의 여동생인데 부왕 러요시 1세 사후 모후 보스니아의 엘리자베타가 언니의 섭정을 맡으면서 동생이었던 야드비가는 폴란드 귀족들의 섭정을 받았다.[29] 둘 다 사보이아 가문 출신 친척들이었다.[30] 독살설이 유력함[31] 실질적인 왕위에 오른 것은 16세, 대관식 후 정식으로 왕이 된 것은 21세이다.[32] 다만 G16을 끝냈을 경우에만 해당된다.[33] 선왕이 반역자에 의하여 시해된 후, 어린 나이에 국왕 자리에 올랐으나, 실질적으로는 최측근 기사가 일을 다 처리해주고 있다. 그래도 어린 나이에 친모와 사별하게 된 아픔을 겪었음에도 왕자 시절처럼 뭐든지 열심히 하고 씩씩하게 지내려고 하는 등 나름 성군의 기질이 보인다.[34] 테레나드의 전대 황제 시해 이후, 황족 혈통 중에서 왕위 계승 순위 중에서 거리가 가장 먼 존재였으나, 일련의 사건으로 의하여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된다. 다만, 무녀와 최고 대신의 보호를 받는 유약한 이미지와는 달리, 변혁을 위해 무시무시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일면이 존재한다.[35] 이쪽은 원래 게치스가 얼굴마담으로 놓은 황제. 그러나 그가 전설의 군주 하르모니아의 후예란 떡밥이 있다.[36] 사실 아카메 세계관의 현 황제는 왕위 계승 순위가 매우 먼 인물이었으나 대신 오네스트의 농간에 휘말려 황제가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