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E6E1B4><colcolor=#000> 피에몬테의 영주 톰마소 2세 Tommaso II, Principe di Piemonte | |
출생 | 1199년 경 사보이아 백국 몽멜리앙 |
사망 | 1259년 2월 7일 (향년 59~60세) 사보이아 백국 샹베리 |
재위 | 플란데런 백국의 백작 |
1212년 1244년 12월 5일 | |
피에몬테의 영주 | |
1233년 ~ 1259년 | |
배우자 | 플란데런 여백작 잔 (1237년 결혼 / 1244년 사망) |
베아트리체 피에스키 (1252년 결혼) | |
자녀 | 톰마소 3세, 아메데오 5세, 루이지, 엘레오노라 |
아버지 | 사보이아 백작 톰마소 1세 |
어머니 | 제네바의 마르그리트 |
형제 | 아메데오 4세, 굴리엘모, 피에트로 2세, 필리포 1세, 보니파초, 베아트리체 |
[clearfix]
1. 개요
피에몬테의 영주[1].2. 생애
사보이아 백작 톰마소 1세와 제네바의 마르그리트의 3남으로 어린 시절 부친에 의해 로잔에서 성직에 종사했다. 1235년 성직을 떠나면서 맏형 아메데오 4세에게 사보이아 백국을 분할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1234년 조카 프로방스의 마르그리트가 프랑스 국왕 루이 9세와 결혼할 때 동행했으며, 루이 9세의 권유로 라틴 제국의 보두앵 1세의 장녀 잔과 결혼하여 플란데런 백국을 공동으로 통치했다. 그러나 잔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두지 못했으며 잔은 1244년 사망했다. 잔이 죽은 후 교황 인노첸시오 4세의 조카 베아트리체 피에스키(Beatrice Fieschi 1225~1283)와 재혼하여 아메데오 5세 등 3남 1녀를 두었다.
사보이아 백국으로 돌아온 후 어린 조카 보니파초의 섭정이 되어 피에몬테를 통치했으나 1257년 아스티 시민들과의 전투에서 포로로 잡혔고, 풀려난 후 1259년 독살당했다. 사보이아 가문의 영묘당인 오트콩브 수도원에 묻힌 형제들과 달리 유해는 아오스타 대성당에 묻혔으며 막내동생 필리포 1세가 죽은 후 차남 아메데오가 사보이아 백국을, 장손 필리포(Filippo I di Savoia-Acaia 1278~1334)가 피에몬테를, 3남 루이지(Luigi I di Savoia-Vaud 1253~1302)[2]가 스위스 로만디 지역[3]을 분할 상속받았다.